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김영하다운 소설. 가독성 있는 단문에 건조하고 냉소적인 문체. 반갑다. 이 책은 출간 전에 예약 주문을 했고, 어제 받자마자 한 시간만에 후딱 읽었다. 읽고 나니 허탈하다. 오래 기다리던 연인을 플랫폼에서만 잠깐 본 것 같은 아쉬움. 다음 열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야 할 것같이 잠시 공허하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살인’과 ‘기억’에 관한 이야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늙음’과 ‘추억’에 관한 이야기이다. 늙으면 옛일을 추억하며 산다는데, 그 기억을 잃어버린다면 대체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하룻밤에도 몇 번씩 레테를 오가며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허방을 짚는 인물의 일상은 고독하고 무상하다.

김영하의 팟캐스트(책읽는 시간)을 자주 듣는 나로서는 책을 읽으며 작가의 음성이 자동지원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중저음의 목소리가 내는 무심한, 차가운 단문들. 한때 연쇄살인범이었던 노인의 오락가락하는 기억과 그 기억을 붙들기 위해 악착같이 메모하고 녹음하는 그의 행동이 손에 잡힐 듯 명료하다.

이번 소설의 제목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그리고 결말은 <호출>을 연상케 한다. 소설은 과거 연쇄살인범이 현재 연쇄살인범이라 확신하는 사내를 쫓는 형식이다. 때문에 독자 역시 노인을 따라 손에 땀을 쥐며 사내를 추적하지만 결말은 허망하다. 멀리서 찾아갔지만 예정시간보다 일찍 마감한 맛집의 닫힌 문 앞에 서있는 느낌.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는 니체, 몽테뉴, 프랜시스 톰프슨 등의 어록들 또한 스토리를 따라가지 못하고 생경하게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다. 포, 차 떼고 중편 정도로 다듬었으면 더 좋았을 걸…….

뭔가 5% 부족한 듯한 이 독후감을 김영하의 팟캐스트를 들으며 달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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