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 - 아주 사적인, 긴 만남, 두번째 이야기 아주 사적인, 긴 만남 2
마종기.루시드 폴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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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왔던 그들의 따뜻한 이야기. 팍팍한 삶에 햇살같은 그들의 편지를 몰래 훔쳐보고, 제 주변에 소중한 사람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내년에도 내주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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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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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작가 이름 세 글자만 믿고 예약 구매하는 바람에 어떤 주제인지 감도 잡지 못하고 덥석 읽어버린 김영하의 신작 <너의 목소리가 들려>. 아무래도 직업이 사회복지사인지라 소설에 등장하는 아이들과 그런 아이들을 길러내는(?) 부모들을 만나는 것이 업(業)이기 때문에, 날 것 그대로의 현실을 굳이 소설에서까지 읽어가며 되새겨야하는지 읽는 내내 의문이 들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왠지 ‘그 다음을 알 것만 같은 찝찝함’이 여름날 땀구멍에서 솟아난 땀방울처럼 집요하게 달라붙는데, 결국에는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모를 애매모호함 속에서 마지막 페이지를 삼켰다.

 

소설은 제이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린 여자아이가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제이를 출산하는데, 이 첫 장면에서부터 제이는 세상에 버려지기 ‘시작’한다. 버려진 제이를 길러준 돼지엄마가 그를 버렸을 때는 서서히 괴물로 성장하는 제이가 낯설지 않았다. 초반에 성장소설인가 싶었던 예상을 뒤엎어준 장면이 바로 돼지엄마에게 버려진 후 복수를 위해 악마를 붙잡아야한다고 설치한 거울을 보여주는 부분인데, 결국 붙들린 악마는 바로 제이 자신이었을 것이다. 그 후, 세상은 제이에게 보호를 빙자하여 여러 번의 기회를 주지만, 정작 제이에게 필요한 것은 기회가 아니라 단절이었다. 전개될 이야기와의 단절. 즉, 제이 앞에 펼쳐지는 마비된 세상에서 이를 악물고 고개를 돌릴 수 있을 힘. 그럼에도 제이의 이야기는 계속되었고 그 가운데서 그는 성장했고, 많은 이들이 인정하는 상징적인 사람이 되었다. 폭주를 하며 이름을 알렸고 적어도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여러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제이는 어쩌면 자신의 영혼이 고속버스터미널에 깃들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과연 제이는 어디로 갔을까. 폭주족들의 증언처럼 하얀 날개를 펼치고 승천하여 자신이 태어난 그곳으로 돌아갔을까. 제이가 어디에 있든 그의 세상과 단절되기를, 조용히 바래본다.

 

비단 제이, 동규, 목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에는 아직도 수많은 제이와 동규와 목란과 소설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이, 태어나고 버려지고 길러지고 가출하고 난장을 까고 폭주하며 하루하루를 그야말로 ‘질주’하고 있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의 수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른들의 수를 넘어섰다. 뺑이 치는 경찰처럼 무능하기만한 부모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찾아올 때는 이미 부모도 아이도 한참을 방황한 후이다. 단단한 후회의 응어리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부모들과 그 부모들이 길러낸 자식들도 모두 ‘무엇’의 희생자라는 생각이 들 뿐, 우리가 그들에게 돌을 던지거나 비난할 자격은 없다. 

 

나도 가끔은 제이들을 만나며 그 ‘무엇’에 분노한다. 소설에 묘사된 것은 정말 현실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상상이 도달할 수도 없는 현실 앞에 오히려 덤덤하지만 짧고 강렬한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그 분노가 존재의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결국은 완벽하게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과 동시에 그들을 도와줄 수 없다는 것에 부딪치면서는 괴로움에 무너지고 만다. 세상이 길러낸 아이들은 너무나도 단단해서 나처럼 어수룩하고 물러터진 어른들이 그들을 붙잡을 수 없다는 사실이 참인 명제가 되어 머릿속에 새기고 또 새겨지는 것이다. 그래도 열 명의 제이 중에 한 명이라도, 라는 착각이 발목을 붙잡아 나조차도 그의 세상에서 단절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소설을 읽고 사람들이 ‘역시 아이들은 미숙한 존재다’라거나 ‘저런 애들은 더 강하게 다뤄야 해’라는 엉뚱한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실에서 함께 분노하고 그저 제이 옆에 묵묵히 서주는 일로 충분할 정도로, 제이의 세상에서 어른들은 최악이고 엉망이다.

 

 

웃을 수 없는 불편한 진실에 많은 이들이 괴로워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제이가 우리에게 남기고 갔을 선물 같은 <너의 목소리가 들려>. 지금 이 순간에도 태어나고 버려지고 상처를 주고받고 폭주하는 제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들의 목소리에 당신은 어떻게 답하겠는가. 함구증에 걸린 것 마냥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을 수 있고, 비난 할 수도 있으며, ‘나는 네 편이다’라고 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선택은 당신의 몫이지만 당신이 우리의 목소리를 지울 수는 없다’고, 아직도 수많은 제이들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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