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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필로 : 너를 너로 만들어 주는 생각들
타하르 벤 젤룬 지음, 위베르 푸아로 부르댕 그림, 이세진 옮김 / 바람북스 / 2022년 7월
평점 :
책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너의 생각이 과연 너의 것이 맞느냐고 질문한다.
훌륭한 책의 내용에 비해 다소 우스운 사례이지만, 일상에서 종종 책 속 질문을 만날 때가 있다. 내가 지금 고르는 옷은 진짜 내 취향일까? 요즘 자주 보이는 옷이어서 예뻐 보이는 건 아닐까? 내가 지금 애인과 헤어지려는 건 진짜 내 생각일까? 애인이 갖추어야 할 더 좋은 조건을 누군가가 나에게 인식시킨 건 아닐까?
사실 이 질문의 태도는 더 다양한 주제에서 쓰여야 한다. 그리고 안녕 필로는 그 일을 시작하는 책이다. 다양한 주제에서 던져야 하는 질문의 시작점들을 만들어주고 있다. 교사로서 그리고 독자로서 마음에 와닿은 시작점이 된 문장들을 나열하자면 아래와 같다.
17쪽 ‘교실의 규칙을 존중하면서도 수업의 흐름에 흥미를 품고 계속 깨어 있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조용히 해야 한다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체득하나 이는 곧 생각의 흐름까지 고요하게 만들어버리곤 한다. 그래서 교사는 수업 시간에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학생 개개인은 생각의 흐름을 놓지 않도록 노력한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고민에 대한 명확한 답이 바로 규칙을 존중하면서, 깨어 있자는 것이다. 학생들은 이 문장을 읽고 나면 규칙은 무엇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규칙을 존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깨어 있는 상태는 어떤 상태인지도 고민하게 될 것이다.
26쪽 ‘부모님이 하는 말도 무조건 옳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자칫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이간질하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청소년에게는 ‘유레카! 역시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어!’라는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말이다. 실제로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부모님이 늘 완벽한, 늘 무언가를 해주실 수 있는 영웅 같은 어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사춘기가 찾아온다’고 조언한다. 부모님으로부터의 정신적 독립을 준비하라는 의미이면서도 모든 부모님이 그러하니 부모님에게서 인간적 흠이 보였을 때 이를 멸시나 공격의 지점으로 보지 말라는 의미이다. 거기에 위 문장을 더하면, 나의 사고방식이 과연 오롯한 나의 것인가를 의심하라는 완벽한 조언이 될 듯하다.
33쪽 ‘확신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주위로 모아들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요즘 밈(Meme)이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밈은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사회학에서 연구되었던 대상으로, 사회적 유전자를 말한다. 5인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있으면 개별적인 특성들이 모여 그 집단의 특성이 새롭게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나와 같은 걸 보며 웃고 슬퍼하고 분노하는 사람들은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과 있으면 편안하고 즐겁다. 하지만 거기까지일 수 있다. 새로운 의견이나 반론이 제시되고 이를 건강하게 수용할 수 있는 집단이 아니라면 정말 거기까지일 수 있다. 그러면 그때부터 그 집단은 안주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만나지 않을 때도 랜선으로 연결되는 오늘날의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문장이다.
109쪽 ‘한 사회의 가치관은 여러 가지로 가늠할 수 있지만 특히 여성과 아이가 어떠한 조건에서 살아가는가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고 싶다. 여성과 아이와 동물이 어떤 조건에서 살아가는가를 보면 사회의 가치관을 알 수 있다. 스토킹에서 시작된 여성 타깃 범죄가 살인으로 끝나는 일이 비일비재 했어도 2021년 10월 20일까지 한국에서 스토킹은 10만원 벌금에 해당하는 범죄였다. 노상방뇨도 10만원 벌금의 범죄다. 원영이 사건이 있은 지 5년도 되지 않아 정인이 사건이 발생했다. 언론에서는 아동학대 사건이 있을 때 특집으로 사건을 다루지만 그때뿐이다. 동물학대 사건이야 말할 것도 없다. 동물은 늘 2순위일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여성, 아이, 동물의 존엄성을 후 순위로 선택하는 사회의 모습이 곧 우리 사회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것이다. 학생들이 위 문장을 읽고 이 어마어마한 사회의 오만한 선택들을 조사해보았으면 한다.
196쪽 스스로 판단하기 중 ‘필요 없는 것을 치우고 나서 더 살기 좋은 방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보세요’
사실 이 문장은 ‘필요와 불필요를 나누는 기준을 직접 만들고 방을 치워보세요’로 다듬었으면 어떨까 한다. 책의 후반부까지 달려온 독자 혹은 학생이라면 가볍게 살기 위한 방 청소를 시작하면서 필요와 불필요의 기준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조금 수정한 이 문장은 우리 반 학생들에게 2학기 중 과제로 내주려 한다.
의심하고 고민하는, 뇌에 힘을 주는 시간을 갖다 보면 어떤 방향으로든 성장하게 된다. 내가 만나는 학생들이 그런 성장을 이뤘으면 한다. 동시에 나 또한 계속 성장하는 어른이고 싶다. 그래서 필자 타하르 벤 젤룬의 조언대로 계속 의심하려 한다. 내가 지금 쓴 이 리뷰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