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얼구나 강의 오른쪽 ㅣ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3
츠쯔졘 지음, 김윤진 옮김 / 들녘 / 2011년 7월
평점 :
사람은 태어난 이상 누구나 죽음을 비껴갈 수 없다. 또한 삶에 있어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세월은 흐르고 자라남에 따라 주위 여건도 변화를 함께한다. 변화에 적응하느냐 못하느냐는 모두가 자신에게 달려있으며 그에 따른 인생의 여정도 희노애락(喜怒哀樂)속에 흘러간다.
어원커족의 조상들은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면 또 다른 세상으로 간다고 여겼다. 즉 살아생전 행위와 품성에 따라 행복한 세상으로 가느냐, 생전 불량한 행위도 회개하면 구제 받는데 그렇지 못해 영혼마저 잃느냐는 오래전부터 내려온 이야기이다. 이 책의 주 무대인 어얼구나 강은 1,800여개의 크고 작은 지류와 수많은 소수 민족이 자리한 천혜의 지역이다. 선조들이 러시안군에 쫒겨 강제로 야쿠터땅 레나 강을 떠나 어얼구나 강 오른쪽 언덕 숲 속에서 우리렁 어원커족의 새 삶이 시작된다.
그들은 강가에선 물고기를 잡고 때로는 숲속에서 사냥한 수달. 늑대. 친칠라 등 곰 가죽과 생활에 필요한 소금. 밀가루. 면직물. 탄알. 술등을 물물교환하며 순록을 키우고 보살핀다. 순록의 먹이를 찾아 이동을 하며 화자는 무려 4대에 걸친 90세 생의 긴 이야기를 그녀의 씨족사람들과 함께 펼쳐 보인다. 다른 사람을 구하려면 자신의 자식을 죽음으로 잃어버려야 하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차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그 생명을 구하는 니하오의 삶은 거룩하다기 보단 쓰리고 애처롭다. 풍장을 하며 자연에 순응하는 가운데 시대의 흐름 따라 굴곡진 삶의 방향이 작품 속 인물들에 따라 가슴 아련하게 그려지고 있다.
가슴속 깊이 상처를 간직한 여인 이푸린 그녀는 사랑하는 건 반드시 잃게 되며 오히려 사랑하지 않은 것이 오래도록 함께 있을 수 있다고 설파한다. 그러나 화자는 사랑했다면 찰나의 행복이 떠나가버린들 무엇이 두렵겠냐고 참을 수 없어한다. 그런가 하면 싫어하는 결혼 강행에 자살한 진더나, 버림받은 여인을 위해 결혼하고자 하는 다시, 다른 사람에게 더 이상의 피해를 주지 못하도록 부정한 여인 와샤를 아내로 삼은 안다오얼등 사랑이란 의미에 대해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한다.
또한 이처럼 자연과 동화되어 그들만의 삶의 방식대로 오랜 세월 이어가며 살았을 인디언들의 슬픈 역사를 떠올리게 되는데, 미국 서부 개척시대에 강자에 의해 무너져야 하는 약자의 무력감과 개발이란 이름으로 사라져버린 수많은 숲의 파손과 더불어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는 생활과 현대화된 도시의 생활중 진정 무엇이 인간의 삶에 있어 가치 있는 것일까 되돌아보게 한다.
이 책을 통해 잠시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주인공 서희가 떠올랐다. 성격은 다르나 섬진강물줄기 따라 자리 잡은 평사리 마을 삼대에 걸친 최 씨 일가의 삶속에 대지주의 딸 서희가 지키고자 했던 토지나, 저자인 츠쯔젠이 자신의 고향인 중국 북쪽 변경 다싱안리에 순록을 방목하며 삶을 꾸려나가는 어원커 부족의 발자취를 쫓아 야영지에 도착, 늙은 무당을 만나 운명적인 삶의 이야기를 듣고 이 작품 속 주된 테마로 삼았던 것처럼 어원커족들이 사랑하는 것은 태고적 원시 그대로의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며, 대대로 이어 내려온 삶의 방식을 쫒는 것은 무수한 역경을 거치면서도 지키고자 하는 강한 바램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부족 마지막 추장의 아내인 화자는 그 바램을 위하여 모두가 부쑤로 삶의 터전을 이전하는 순간에도 끝까지 손자인 안챠오얼과 남아 어얼구나 강의 오른쪽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이 작품은 중국 최고의 영예로 손꼽히는 `마오둔문학상‘(제7회)을 수상했으며, 저자는 `루쉰문학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유일무이한 작가이다.
아쉬운 것은 이완의 장례식에 나타난 수양딸이라는 두명의 여인이 참석한 후 바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푸린의 말에서 흰여우가 보은의 차원에서 나타났다 하나 신화적 신빙성으로 보기엔 조금 생경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독자의 상상에 맡기고자 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나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무죄라고 생각한다. 그림은 내 가슴속에 있는 많고 많은 사념과 몽상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자신이 그리는 그림을 통하여 조상들이 그린 암벽위의 그림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음에 이르는 이별의 슬픔. 내면에 울리는 자신을 찾아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었음을 엿보게 되는데, 이로 인하여 화자는 베이얼츠 강을 따라 흘러간 손녀 딸 이렌나를 비춰주는 등잔불 그림으로 마지막 암벽화를 마친다.
이 책속 화자의 마지막 구절인 “나는 고개를 들어 달을 바라본다. 달은 나를 향해 달려오는 흰 순록 같다. 고개를 돌려 가까이 다가오는 순록을 바라본다. 순록은 지상에 떨어진 반달 같다. 내 눈에서 눈물을 흐른다. 나는 더 이상 하늘나라와 인간세상을 구분할 수 없다.” 이 것으로 서평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