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의 품격 - 빵에서 칵테일까지 당신이 알아야 할 외식의 모든 것
이용재 지음 / 오브제(다산북스)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누군가는 종종 요리를 예술에 비유한다. 절반 정도는 동의한다. 수많은 조리법과 요리는 인간의 음식문화에 새로운 시각과 맛을 제시해왔다. 그런 점에서 요리는 예술적이다. 미술평론가 임근준은 “퀸이 레드제플린보다 좋다고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퀸이 레드제플린보다 위대하다고 말하는 것은 멍청하다”고 말했다. 취향과 감식안은 구분돼야 하는 것이며 예술적 평가는 자신의 취향과 관계없이 작품이 역사적인 관점에서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요리의 경우에도 이러한 관점으로 평가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더하다. 요리는 음식 재료를 제대로 먹기 위한 예술적 기술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요리는 아주 오랜 시간에 거쳐 수많은 조건들 속에서 가장 최선의 식사를 만드는 방식으로 개량, 발전해왔다. 예술을 취향으로서 감상할 수는 있지만 평가할 수는 없듯, 그 이상으로 요리는 역사적 바탕과 그렇게 발전해 온 이유를 알아야 제대로 평할 수 있다.


리뷰에 앞서 고백하자면 나는 미식에 둔감하다. 최근 나의 대다수의 끼니는 삶은 계란과 바나나 따위로 이루어져 있으며, 간혹 요리된 음식을 먹을 경우는 물 탄 알코올인 소주를 마실 때 정도다. 나는 사먹는 된장찌개에서 MSG의 맛을 포착해낼 줄 모르고, 그냥 고기 요리가 적당히 짜고 달면 맛있다고 느낀다. 아마도 저자가 자신의 블로그에서 한국 식당들에 대한 신랄한 비평과 푸념을 늘어놓는 것의 원인은 나 같은 사람들일 것이다.


<외식의 품격>은 서양식 요리 재료들과 요리들이 어째서 그러한 형태로 발전해왔는지 그 연유를 설명해주는 책이다. 저자가 서양식 코스의 순서에 따라 소개하는 식재료와 요리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와 역사적 맥락을 읽으면 그 음식을 어떻게 맛보는 것과 별개로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기준이 생긴다. 그 기준은 저자의 지론인 ‘요리의 수준이 그 요리의 가격에 얼마나 부합하는가’에 따라 합리적으로 형성된다. 즉 평가의 기준은 ‘김밥천국 라면에 돼지고기 육수와 미소로 간을 낸 국물을 요구하는 것’과 같이 무리한 것이 아니라, 각 요리의 가격대에 맞는 재료, 방식, 노력과 기술이다.


요리를 평가하는 역사적 가치와 기준 또한 변화하는 것이 아니냐, 저자가 불만을 표하는 한국의 서양요리는 한국식 서양요리로 변화하는 중일 수도 있다고 반문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의 피자는 미국으로 넘어가 미국식 피자로 변화했고, 중식요리는 미국으로 가서 MSG범벅의 중국식 미국요리로 변화했다. 하지만 저자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그러한 변화 또한 합리적인 이유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식 피자와 미국식 중국 요리는 미국에서 가장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한 끼이다. 재료, 방식, 노력, 기술에서 일정 부분을 포기하는 대신 그것들은 값싼 음식이 되었다. 과연 ‘그 한국식 서양 요리가 합리적인 이유를 가지고 변화하고 있냐?’는 질문에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자가 바라는, ‘제 돈 낸 요리가 돈 값 한 상태로 제공되는 대동세상’은 오기 힘들 것 같다. 앞에서 얘기했듯 요리는 예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술은 하루에 세 번씩 모든 사람이 감상하지 않아도 되기에 일반인들의 미감에 더욱 반하고 기괴한 형태로 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리는 그렇지 않다. 취향이 그 형태를 더욱 크게 좌우할 수 밖에 없다. 저자의 말마따나 ‘뚝배기에 담겨온 뜨거운 국물을 입천장 까지면서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먹으며 시원하다고 말하는’ 한국인들의 취향에는 안타깝게도 저자가 요구하는 서양 요리의 섬세함과 본질은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외식의 품격>은 나와 같은 사람을 위한 책이다. 빈곤한 취향을 가진 내가 어쩌다 한번 서양요리를 외식할 때, 큰 맘 먹고 지불한 값에 걸맞는 재료와 수고가 담긴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저자의 블로그에 있는 리뷰들을 보면, 제대로 된 재료와 방식으로 조리하던 식당이 고객의 항의를 이기지 못하고 방법을 변경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외식의 품격>을 많이 읽고 품격 있는 외식을 한다면, 저자가 꿈에 그리는 대동세상은 무리더라도 동네마다 품격 있는 식당 한 두 군데는 생기고 유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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