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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의 과거 여행 - 한 빨갱이 마을의 역사를 찾아서
윤택림 지음 / 역사비평사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우선 이 책을 다 읽은건 엄밀히 아니다. 총 3부, 10장의 책 중에 내가 읽은 챕터는 반정도이고 나머지는 띄엄띄엄 또는 아예 건너뛰며 읽었기에 말이다. 무엇보다도 쉽지않은 책이였다. 흥미는 있었으나 사전지식이 없던 나에게는 전문적 내용은 부담이기도. 하지만 친밀하기도 했다. 그리고 내 사고가 조금 넓어진 기분이다.
나는 대학생활을 하며 학생들의 소위'운동권'을 보아왔고 간혹 참여도 해보았다. 물론 지배적 계층들을 위해, 그들에 의해 쓰여진 우리나라의 역사, 현실 개탄할만하다. 우리나라 국사 교과서를 보자. 우리와 가장 밀접한, 해방후 근대사중에 독재정권의 폐해가 얼마나 나와있는가. 현재 사회가 과연 얼마나 민중들의 입장을 대변해주고 있는가.
그런데 말이다, 대학생들의 시위,데모로 대표되는 그것에도 불만이 있던거다. 그들은-물론 나도 포함되었겠지- 통일을 부르짖고 반미를 외치며 총선때는 반이회창을 외치었다.(학생운동에는 다양한 성격이 있겠지만 이러한 것들이 주체가 되었다.) 순수한 그들 자의식의 발로이다. 좋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민중들의 삶속에는 그게 어떻게 다가오는가.
'대학생 자식들 또 데모하는구만.' 이런 반응이 많다. 왜 민중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학생운동이 그렇게 괴리되어있는가. 답은 이 책의 3장에 나와있다.
문제는 두 진리체제-국가의 공식적 담론과 민중사로 대변되는 대항담론-가 그 안에 다수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하게 획일적 담론구조를 가지고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 진리체제가 낳은 담론적 획일화 속에서 실제적인 지방민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두 진리체제 사이의 담론적 경합 속에서 지방민의 사적인 기억을 위한 장소는 어디 있는가. 공장노동자와 농민들의 사적인 삶의 경험은 얼마나 그들 속에 반영되어있는가... 그것은 누구의 역사인가. 대항담론은 성이라는 요인을 포함하는가. 가부장제와 권위주의적 국가의 이중 억압하에 있는 한국여성은 누가 대변하는가. 이것이 민중이데올로기에 기초한 대항담론을 대변하는 민중사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요구하는 질문들이다
그동안의 내 궁금증을 어느정도 풀어주는 구문. 한민족도 좋고 평화를 위한 반미도 좋지만 이데올로기 안에서 인간이 이리저리 치이는 모습은 싫다. 인간이 아닌 이데올로기가 주가되는 주객전도 현상처럼 무서운게 어디있는가. 이데올로기가 부수적인 방법이나 수단이 아닌 목적 자체가되어버린게 전쟁과 같은, 우리 인간 역사의 추한 모습이다
학생운동도 마찬가지이다. 거창한 대의명분을 내세우기에 앞서 과연 자신들역시 획일적인 구조속에서 민중중의 일부분만을 대변하고 있지않은가 반성해야 하지않을까? 저자가 이 책을 쓴것도 지방민, 여성과 같은 주변인속의 역사를 찾아내기 위해서일것이다. 전에 말했듯이 그게 대표적 역사가 될수 있느냐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다리가 되기 위해서일것이다.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 저자가 쓴 도구는 구술사, 생애사라는 새로운 개념이었고 결과는 만족스럽다.
인류학자는 -적어도 윤택림같은 분은- 이데올로기에 휩쓸려버리는 우를 범하지는 않을것이다. 그들속에서, 그들연구의 주체는 인간일테니 말이다. :) 새로운, 만족스러운 책이였다. 학문의 맛을, 그러니까 소위 '어려운책'의 묘미를 처음 느껴본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나중에 기회가 있을때, 다시 한번 읽고싶어질때는 제대로 읽지않은 나머지 반 정도도 마저 읽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