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 조상의 시대에 살았더라면 피를 흘리는 예언자들의 대열에는 가담하디 않았을 것이다”
베드로가 하룻밤에 예수를 세 번 부인한 원인을 찾으면서, 단순히 베드로의 기질이나 그의 심리학‘에서 그 원인을 찾는 사람들은 내가 보기에, 길을 잘못 들어선 것 같다. 이들은 이 장면에서 인간 베드로를 능가하는 그 무엇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은 이 사도의 ‘초상화‘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베드로가 특별히 영향을 잘 받는 기질‘을 가졌다고단정하거나 아니면 같은 식의 다른 표현을 써가면서 이 사건의정말 중요한 의미를 해치거나 대폭 축소해버린다. 예수의 죽음을 목격한 모든 사람들이 빠져 있던 모방에 베드로도 빠진다. 이런 점에서 베드로는 그의 이웃과 다르지 않다. 심리학적인 설명에 의지하는 것은 보이는 것만큼 결백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모방적 해석을 거부하고서 베드로에게서 순전히개인적인 원인을 찾을 때 우리는, 물론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긴 하지만, 우리라면 베드로와는 다르게 행동하였을 것이라고, 즉 예수를 부인하지 않았을 것임을 입증하려고 애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행동은 예수가 나무랐던 바리새인들의 행동과 같은 것이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자기네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세워주고 있었다. 조상들이 죽인 희생자들에 대해 대단한 애도를표하는 의식은 이를 통해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를 숨기고 있을 경우가 많다.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우리가 우리 조상의 시대에 살았더라면 피를 흘리는 예언자들의 대열에는 가담하지 않았을것이다"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후손들은 자신들이 조상들보다 도덕적으로 더 우위에 있다고 여김으로써 조상들의 죄를 되풀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거짓 차이, 이것은 이미 오늘날 개인주의가 갖고 있는 모방적 환상이며,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모방적이고 반복적이라는 생각에 대한 최대한의 저항이다. 그런데 이 반복을 완성시키는 것이 바로 이 저항이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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