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 한 팀이 된 여자들, 피치에 서다
김혼비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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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러시아 월드컵 3차전 경기를 하는 날이다.

독일과의 결전의 날...

우리나라는 자력으로16강 진출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1%의 가능성을 기대해 본다.

 

월드컵과 맞물려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를 읽게 되었다^^

 

 
 




민음사에서 신간도서가 여러 권 나왔는데 그중에서 제목에 끌렸던 책이
김혼비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한 제목 때문에 끌렸을까?
우아하다(고상하고 기품이 있다) ≠ 호쾌하다(호탕하고 쾌활하다)

제목과 표지를 보면 영락없이 여자 축구 이야기이다.
내용도 김혼비 작가가 여자축구팀에 들어가서 겪은 에피소드를 묶은 에세이다.
그러나 단순히 축구 이야기만이 아니라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들이며 여자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느꼈다.
에세이보다 소설을 좋아하는데 이 책은 소설처럼 재미있어서 한숨에 읽어졌다.
정세랑 작가님의 추천평처럼 (_책을 읽으며 네 번쯤 크게 웃었고 세 번쯤 눈물이 났다)
나도 네 번쯤 큰소리로  깔깔거리며 웃었고 두 번쯤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축구뿐만이 아니라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을 보고 '나도 축구를 해야겠구나'라던가
'○○운동을 해야지'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축구 이야기인데도 전혀 남의 이야기 같지 않고 내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처음 축구를 시작하고 할아버지 팀과 축구를 하는 이야기,
여러 팀을 뛰고 있는 정실 언니 이야기,
그리고 주장과 총무 언니의 충돌 이야기,

Wk리그는 관중이 없어서 무료 관람이란 이야기,
식당 하는 언니가 가게에서 FC마리케를 만나서 축구팀에 들어가게 된 이야기....
무엇 하나 공감되지 않는 이야기가 없었다.

한숨에 책을 다 읽고 나니 작가가 궁금해졌다.
김혼비? 처음 들어보는 작가인데 이름이 특이 하네... 했더니만
축구광인 영국 소설가 닉 혼비라는 작가의 이름을 따온 필명이라고 한다.
이 언니(? 사실은 내가 언니^^;;) 다음 책도 참 궁금해진다.

 


책 속 문장


그날 이후 회사나 일상에서 맨스플레인하려 드는 남자들을 볼 때마다 주장의 슛이 떠올랐다.
살면서 본 가장 의미심장한 슛이 아니었을까? 거기에 담긴 메시지는 매우 명확했다.
"나의 킥은 느리고 우아하게 너희들의 '코칭'을 넘어가지." 느리고 우아하고 통쾌했던,
잊지 못할 로빙슛! 러빙슛! (P.68)


 

이들이 처음 월패스를 주고받았던 건 언제였을까?
십몇 년 후의 어느 날에도 이렇게 여전히 패스를 주고받을 거라는 걸
그때는 생각이나 했을까? 그들의 월패스를 볼 때마다 그들이
공을  주고받으며 함께 건너왔을 시간들, 그들이 함께 열어젖혔을
무수히 많은 제3의 공간들을 떠 올린다.
그들만의 시공간, 그것은 그들만의 우주다.  (p.88)



그건 검은색 물감이 묻은 두꺼운 붓으로 도화지를 슥슥 그은 자리마다 흰 크레파스로 

그려 놓은 밑그림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과 비슷했다. 평소라면 그냥 넘어갔을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 작은 실수들이 슥슥 지나갈 때마다 그 밑에 숨어 있던

서로를 향한 마음이 공격이나 다툼의 형태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한번 그렇게 붓질이

시작되면 도화지 귀퉁이 어딘가에 그려진 채 몇 년간 묵어 있던 밑그림까지도

선명하게 드러나 몇 년을 거슬러 올라가 다투기도 했다. (p.126)


축구뿐 아니라 유니폼을 입고 하는 모든 팀 스포츠들이 그렇겠지만,
때로 유니폼의 커다란 가시성은 그 안의 개인을 지나치게 비가시화한다.
한 사람의 고유한 개성이나 인격이 유니폼에 박힌 번호 뒤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수많은 사진들 속에서 등 번호와 얼굴을 함께 볼 수 없는 것처럼. 뒷모습은 앞모습이 아니니까. 
아마 어떤 팀들에게는 우리 팀도 그럴 것이다. (p.196-197)


 

낯선 곳으로 향하는 밀폐된 차 안은 묘한 공간이다. 짧은 여행이 일상에 만들어 낸
작은 틈으로 불어든, 적당히 설레고 어딘가 낯선 바람이 가득 차 있는 공간.
설레고 낯선 바람에 취해서 평소였으면 하지 않았을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어 도로 위에
무료할 것처럼 길게 펼쳐진 시간을 함께 메우는 공간. (p. 200-201)


어떤 새로운 세계 안에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은 그게 그저 생각에서 그칠 뿐
실제로 이루어지기 힘든 상황일 때 그 안전한 거리감 속에서 마음 놓고 펼칠 수 있는 것이다.
일상에서 친해지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사람에게는 잘하지 못할 적극적인 구애의 표현을
생전에 만나 보기도 힘든 스크린 속 스타에게는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것처럼.

그러니까 그동안 복잡한 생각 없이 '시합에 나가고 싶다!'라는 열망을 열렬히 품고 살 수

있었던 건 나 같은 축구 초짜가 입단 첫해에 시합에 나가는 게 전무하다시피 한

일이라는걸(빨라야 2~3년 후에나 가능하는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p.224)


 

작년과 올해 사이에 선명하게 선이 그어지며 구획이 뚜렷하게 나누어지는 느낌,

정말 오랜만이다. 긴장과 비장이 적절히 섞인 이 알 수 없는 기운이 축구와 상관없는

일상으로까지 흘러들어서 다른 것들도 덩달아 새롭게 보였다. 새해가 먼저 달려와

내 손을 꽉 잡은 것이다. (p.234)


어제 진상 손님들 두 테이블이나 있어서 진짜 힘들었는데 오늘 아침에 축구

올 생각하니까 왜 짜증이 별로 안 나냐, 하하하. 왜 그런 거 있잖아?

'야, 너희 내가 그냥 보통 식당 이모인 줄 알겠지만 알고 보면 나 축구하는 여자다

이거야!'라고 속으로 생각하면 괜히 어깨도 펴고 턱을 치켜들며 으쓱대는 제스처를

취해 팀원들이 다 깔깔대고 웃었다. (p.240)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여 가며 코치 언니의 말에 열심히 귀 기울이는 팀원들을 잠깐

둘러보는데 '(나도 겪어봐서) 그 마음 다 안다.'라는 눈빛과 '(잘은 모르지만) 그 마음

알 것 같다.'라는 눈빛이 허공에서 교차하며 그들을 한데 감싸 안는 동그란 자장을

만들어 내는 것 같았다. 그 안에 흐르는 어떤 자력을 느끼면서 나는 가끔씩 떠올리곤 했던

의문을 새삼 다시 품지 않을 수 있었다. 축구······대체 뭘까? 축구란 대체 뭐길래.

뭐길래 말입니까.(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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