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처음 월패스를 주고받았던 건 언제였을까?
십몇 년 후의 어느 날에도 이렇게 여전히 패스를 주고받을 거라는 걸
그때는 생각이나 했을까? 그들의 월패스를 볼 때마다 그들이
공을 주고받으며 함께 건너왔을 시간들, 그들이 함께 열어젖혔을
무수히 많은 제3의 공간들을 떠 올린다.
그들만의 시공간, 그것은 그들만의 우주다. (p.88)
그건 검은색 물감이 묻은 두꺼운 붓으로 도화지를 슥슥 그은 자리마다 흰 크레파스로
그려 놓은 밑그림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과 비슷했다. 평소라면 그냥 넘어갔을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 작은 실수들이 슥슥 지나갈 때마다 그 밑에 숨어 있던
서로를 향한 마음이 공격이나 다툼의 형태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한번 그렇게 붓질이
시작되면 도화지 귀퉁이 어딘가에 그려진 채 몇 년간 묵어 있던 밑그림까지도
선명하게 드러나 몇 년을 거슬러 올라가 다투기도 했다. (p.126)
축구뿐 아니라 유니폼을 입고 하는 모든 팀 스포츠들이 그렇겠지만,
때로 유니폼의 커다란 가시성은 그 안의 개인을 지나치게 비가시화한다.
한 사람의 고유한 개성이나 인격이 유니폼에 박힌 번호 뒤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수많은 사진들 속에서 등 번호와 얼굴을 함께 볼 수 없는 것처럼. 뒷모습은 앞모습이 아니니까.
아마 어떤 팀들에게는 우리 팀도 그럴 것이다. (p.196-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