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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리성으로 가는 언덕길 - 가마쿠라 요시타로와 근대 오키나와의 사람들
요나하라 케이 지음, 임경택 옮김 / 사계절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길을 떠나는 날은 길일을 택할 것.
밧줄을 풀고 항구를 떠나면
바람은 순풍이 되어 기쁘옵니다.
왕국 시대, 사족 남자들에게는 길을 떠나는 것이 중요한 임무였다.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로 가는 여행은 때론 수년이 걸리기도 했고, 객사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자마미가에도 중국에서 객사한 조상이 있어서 메이지 중반에 조주가 습골拾骨을 하러 다녀오기도 했다. '가라타비唐旅'라는 말은 지금도 중국으로 가는 여행뿐만 아니라 명토(저승)으로 가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 p. 68
'오키나와' 하면 역시 태양이 내리쬐고, 파도가 넘실대는 남도의 해변이 생각난다. 당장 돈과 시간이 생긴다면 가보고 싶은 곳,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휴양지의 이미지가 강하다. 오키나와의 이국적인 정취는 관광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이곳은 본토와는 다른 매력이 있네' 정도의 사소한 감흥을 이끌어 낸다. '씨줄과 날줄로 깊게 엮인' 그 저면의 깊은 과거를 망각한 채 말이다.
오키나와는 다른 46개의 광역자치단체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독자적인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 1879년, 강제로 일본에 편입되고 나서 이전 시기의 전통은 철저히 '일본화'되어 희미해지고 사라져 갔다. 정치와 행정의 중심, 옛 왕국의 번영을 구가하던 붉은 색의 슈리성과 슈리 시가지는 쇠퇴하여 활기를 잃었다. 1945년 오키나와 전투는 빛나던 류큐왕국의 잔재에 일격을 가했다. 모든 것이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요나하라 케이의 『슈리성으로 가는 언덕길』의 주인공은 근대 오키나와의 사람들이다. 오키나와(류큐)의 전통과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끝없이 투쟁하고, 노력했던 보통의 오키나와 사람들 말이다. 그 중에서도 대표격 인물로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인물은 부제에서부터 알 수 있다시피, 가마쿠라 요시타로이다. 교사였던 그는 오키나와 연구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학자이다. 가마쿠라 요시타로가 남겼던 사진, 메모들은 1980년대 이후 사라졌던 슈리성을 복원하는 프로젝트에서 빛을 발했다. "가마쿠라는 우리의 은인이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발화되었다. 요나하라 케이는 이 책에서 가마쿠라 요시타로의 말을 빌려 우리에게 아름답고도 슬픈, 오키나와의 근대를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류큐 서쪽 끝의 요나구니시마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었던 성종실록의 내용을 일부 발췌한다.
섬의 이름은 윤이시마(閏伊是麿)라고 【그곳 풍속에 섬을 일컬어 시마라고 한다.】 하였습니다. 인가(人家)가 섬을 둘러 살고 있고, 둘레는 이틀 길이 될 듯하며, 섬사람은 남녀 1백여 명으로 풀을 베어 바닷가에 여막을 만들어서 우리들을 머물게 하였습니다. 우리들이 제주(濟州)를 출발한 때로부터 큰 바람이 파도를 일으켜 파도가 이마[顙] 위를 지나고, 물이 배 가운데 꽉 차서 뱃전이 잠기지 않은 것은 두어 판자뿐이었습니다. 김비의와 이정이 바가지를 가지고 물을 퍼내고, 강무는 노(櫓)를 잡았으며, 나머지는 모두 다 배멀미를 하여 누워 있어서 밥을 지을 수가 없어 한 방울의 물도 입에 넣지 못한지가 무릇 열나흘이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섬사람이 쌀죽[稻米粥]과 마늘을 가지고 와서 먹였습니다. 그날 저녁부터는 처음으로 쌀밥 및 탁주(濁酒)와 마른 바다물고기를 먹었는데, 물고기 이름은 다 알지 못했습니다. 7일을 머문 뒤에 인가(人家)에 옮겨 두고서 차례로 돌려가며 대접을 하는데, 한 마을에서 대접이 끝나면 문득 다음 동네로 체송(遞送)하였습니다. 한 달 뒤에는 우리들을 세 마을에 나누어 두고 역시 차례로 돌려가며 대접하는데, 무릇 술과 밥은 하루에 세끼였으며, 온 섬사람의 용모(容貌)는 우리 나라와 동일(同一)했습니다.
...술은 탁주(濁酒)는 있으나 청주(淸酒)는 없는데, 쌀을 물에 불려서 여자로 하여금 씹게 하여 죽같이 만들어 나무통에서 빚으며, 누룩을 사용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많이 마신 연후에야 조금 취하고, 술잔을 바가지를 사용하며, 무릇 마실 때에는 사람이 한 개의 바가지를 가지고 마시기도 하고 그치기도 하는데, 양(量)에 따라 마시며 수작(酬酢)의 예가 없고, 마실 수 있는 자에게는 더 첨가합니다. 그 술은 매우 담담하며, 빚은 뒤 3, 4일이면 익고 오래 되면 쉬어서 쓰지 못하며, 나물 한가지로 안주를 하는데, 혹 마른 물고기를 쓰기도 하고, 혹은 신선한 물고기를 잘게 끊어서 회(膾)를 만들고 마늘과 나물을 더하기도 합니다.
-성종실록 성종 10년 6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