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베트남 -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의 현장을 가다
이규봉 지음 / 푸른역사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그동안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읽어 온 분야가 인간의 광기 내지 어두운 심성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폭력성이나 연쇄 살인, 식인 풍습, 또는 전쟁 상황에서의 잔학한 행위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상당히 많은 책들을 읽었다(갖고 있는 관련도서가 책꽂이로 두 칸 분량이니까 약 100여권쯤 된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세계의 분쟁지역에서 벌어지는 잔혹 행위나 테러리스트의 정신세계 등으로 까지 범위가 넓어졌는데, 그 과정에서 운명처럼 만나게 된 책이 바로 이 규봉 배재대학교 교수가 쓴 <미안해요! 베트남>이다. 이 책은 저자가 베트남인들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하노이에서 호찌민까지 자전거로 달리며 곳곳에 남아 있는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기록한 것이다. 즉, 일본군의 남경대학살이나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 북미의 인디언 학살 등, 인간 역사에 남아있는 수많은 학살이나 인종 청소에 못지않게 잔혹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광기에 가득찬 행위들을 한국군들도 저질렀다는 것. 우리 한국인들이 일본 제국주의에게 받은 박해가 육체적, 정신적인 거대한 trauma로 남아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상처가 되었듯이, 학살에서 살아남은 베트남인들에게 한국군은 미국의 용병으로써 미국인보다 더 증오하는 대상이었다. 그동안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한국군의 잔학한 행위에 대해 한국 정부는 한 번도 베트남 정부에게 사죄를 한 적이 없다(물론 김대중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해도 韓國民 전체가 진심으로 사죄한 적이 없다는 말이다. 한국인들은 베트남인들에 대해 우월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한국보다 못사는 동남아인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인이 얼마나 잔혹하게 구는가?). 일본에게 위안부 관련 사죄나 역사 왜곡, 또는 망언에 대한 사죄를 요구하기에 앞서 우리도 베트남인들에게 먼저 사죄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을 읽어 나가면서 처음엔 내가 마치 학살 현장에서 한국군과 함께 잔혹 행위를 하는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만큼 책에 소개된 내용들은 같은 인간에게, 그것도 비무장의 부녀자나 노인들을 대상으로 저지를 수 있는 극한의 폭력이었다. 책을 읽어 나가면서 베트남인들이 느꼈을 공포에 동화되었고, 그 공포는 광주에서, 노근리에서, 제주에서 같은 한국인이 느꼈을 두려움과 겹쳐졌다. 베트남인들에게 수천 번 사죄한다고 해서 미국과 한국을 등에 업고 한국군이 저질렀던 전쟁범죄 행위가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이제라도 한국민 전체가 제대로 된 사죄를 하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책을 눈으로만 읽은 것이 아니다. 마음은 울고 정신은 사죄하며 입으로는 수도 없이 되뇌면서 베트남인들을 생각했다. 한국이 진정 민주국가라면 베트남을 동일하게 대해야 한다고. 절대 과거의 잔인했던 역사를 묻어두어서는 안된다고. 한국민 전체가 베트남과 베트남인들에게 미안함과 정신적 부채를 느껴야 한다고. 인종, 종교, 국가를 뛰어넘어 같은 인간으로서 진정한 연대의식을 공유한다는 것이 이토록 힘든 일일까? 결국 전 세계 인류가 발붙이고 살고 있는 이 지구에서, 어느 한 곳에서 벌어진 잔혹행위는 나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베트남에서의 학살이 제주 4.3 학살과 국민보도연맹 학살, 광주학살의 연결고리이듯, 폭력의 악순환은 나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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