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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메이드 퀸 세트 - 전3권 ㅣ 블랙 라벨 클럽 10
어도담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제가 몇개 안되는 리뷰 작성하면서 스토리를 전혀 쓰고 싶지도 않고, 쓰기도 힘든 책은 이 책이 처음입니다. ^___^
스토리가 요약하기에는 장대하기도 하거니와 깨알 같은 그 흐름을 꼭, 직접 읽으면서 느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readymade : 미리 준비된, 이미 만들어져 나오는, 이미 주어진
보통 이런 뜻으로 쓰이는 단어죠. 이 책의 여주와 딱 맞아떨어지는 그런 단어가 아닐까 싶어요.
여주인 비올레타가, 시녀 에비가일에서 황녀 비올레타의 삶을 대신 살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황녀의 모습에 푹 빠지게 됩니다. 더불어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몰아치는 거센 환경 속에서 목적을 위해 나아가면서도 자아와 타인을 향한 통찰력 있는 현실적인 감각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어서 더 깊이 와닿았던 것 같네요. 그래서 로맨스소설에서 흔히 나타나는 심리적 오류(내지는 구멍?)는 가려지고 상황 속에서 각각의 개인이 어떻게 변해가는가, 변할 수 밖에 없는가 하는 당위성을 더 절실히 느끼고 공감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 측면에서 보니 각각의 캐릭터들이 선인과 악인으로만 양분할 수 없고, 껍데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의 역사와 깊이를 가지고 있어서 스토리를 더 풍성히 만들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답니다.
가끔 시시콜콜할 정도로 심리적인 묘사들을 많이 해주는게 아닌가 싶긴 하지만, 아마도 스토리가 복잡하다보니 그런 묘사들이 없다면 스토리의 개연성도 좀 떨어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덕분에 지문을 몇번을 되풀이 해서 읽고, 잘라읽고, 되새겨보면서 쉬운 책은 아니었을지라도 그만큼 제게는 읽고 난 후의 충족감이 남다른 책이기도 합니다. 비로소 블랙라벨다운 느낌을 받았다고 해야할런지.... ㅎㅎ
작가후기를 보니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유럽 근대 초기 특유의, 투박한 기계 공장들과 귀족들이 공존하던 고풍스럽고 불완전하게 변화하던 시대를 막연히 좋아했다고 쓰셨던데... 이 책을 읽으니 중간중간 그런 장면들이 머릿속에 저절로 그려지더라구요. 고풍스러운 의상과 축축한 흙바닥,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황제의 무구와 비올레타의 조그만 리볼버, 순진무구하게 황제를 칭송하는 백성들과 반면에 여론의 중심이 되는 노동신문과 정치세력.... 이런 것들이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을 잘 그려주고 특히나 여성들은 당당한 혈연관계의 주인공으로서, 물밑에서 보다 능동적으로 정치와 로비에 참여하고 그 가운데서도 주인공인 비올레타는 전형적으로 생활력이 강하고 책임감 강하고 강단있는 여성으로 나온답니다.
다만 남주인 라키엘과의 애정선은 오해의 소지가 좀 있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사실은 비올레타가 에비가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주제 파악을 잘했던 현명함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또한 당대 뿐 아니라 선대부터 시작된 사건들을 통해 혈연으로 이루어진 관계가 어떻게 혈연으로 파괴되고, 가짜인 황녀가 진짜 황실의 피를 이어가게 되면서 책 전체를 꿰뚫는 그 아이러니함에 대해서도 감탄했답니다. 특히나 그 '피'라는 면에서 창녀의 아들로 황제가 되었으나, 황제의 아들로 죽은 루드비히 황제는 여러가지 생각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기억에 남는 캐릭터였어요.
여튼 다 읽고 나서 이렇게 가슴 벅찬 책은 참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세권이 로맨스 일색이었다면 끝까지 다 못읽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로맨스가 좀 약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지만 한편의 대서사를 보는 기분으로, 죽음과 공포와 모략 일색인 왕궁에서 한 여인이 여제로 당당히 서기까지의 과정과 그 여인을 목숨 바쳐 사랑하고 도왔던 '남자'와 '남자들', 그들의 일생을 큰 그림으로 본다면 가슴이 먹먹함과 함께 충족감과 아련함을 함께 느끼실 수 있을거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