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죄와 망언 사이에서
카또오 노리히로 / 창비 / 1998년 10월
평점 :
품절


 

 현재 일본의 자국에 대한 역사 인식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비단 중국과 우리나라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침략국인 일본 역시 예외는 아니었는데 특히 패전 후 이는 그 당시에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이에 대한 시각은 매우 첨예하여 극단적인 호헌론자에서부터 극단적인 개헌론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형성하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카토 노리히로의 ‘사죄와 망언사이에서’는 이러한 다양한 논쟁의 한바탕에서 일본의 평화헌법과 자국, 타국의 전사자의 문제 나아가 민족주의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소위 ‘역사주체논쟁’을 불러일으킨 책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패전 후의 일본이 혁신파와 보수파의 대립으로 인하여 인격 분열 상태에 있다고 진단하고 진정하게 일본이 역사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이러한 외향적 내향적 분열상태를 극복하고 새로운 주체로서의 일본이 완성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는 그의 주장의 골격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는 나아가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일본헌법 제 9조(전쟁과 군사력, 교전권의 포기)조항에 대한 각 호헌파와 개헌파의 주장이 모두 편협한 사고에 있다고 보고 다시 한번 일본인들의 재 선택에 이를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전의 대립은 그의 표현에 의하면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형상을 띄는 것으로 호헌파는 평화헌법이 강요에 의한 것임을 망각하고 있으며 전쟁을 자행한 패전 전의 일본의 정체성을 무조건적으로 부정함으로써 사죄를 해야 할 일본 주체의 성립을 막고 있으며 개헌파 역시 패전에 대한 반동으로 자주헌법을 지니는 보통국가를 지향하지만 ‘보통’이라는 보편이념은 존재하지 않으며 국제사회를 움직일 언어를 가지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또한 어정쩡하고 굴절된 자세를 취함으로써 역사 주체의 확립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비틀림’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러한 그의 주장은 사실 그동안의 일본 내 지식인들의 소모적이고 끝없는 논쟁 상태를 명쾌하고 꼬집은 것으로서 날카로운 시각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그는 자국과 타국의 사망자에 대한 애도의 우선성에 대해 생각하는데 이에 대한 인식은 사실상 일본의 역사인식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고 할 수 있는 문제이다. 여기서 카토는 죄없는 아시아의 2000만 사망자보다 자국의 300만 사망자를 우선시 함으로써 자국의 치욕스러운 역사를 긍정하고 이를 재탄생시킴으로써 새일본의 건설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주장이 반드시 옳다고는 볼 수 없다. 카토는 보수파의 ‘역사 위조’ 등을 포함한 망언들을 앞서 언급했듯 혁신파의 아시아에 대한 사죄 논리의 반동으로 파악하고 ‘자국의 300만 사망자’들을 우선시하며 생각하면서 보수파와 혁신파를 아우르는 통합된 일본을 확립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대립자를 포함한 형태로 우리를 대표한다’는 논리로서 그 유효성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한다. 더 나아가 이는 내셔널리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내포한다. 내셔널리즘이 항상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자체적인 일본’을 정의함으로서 민족성, 일체성 등을 강조하며 이는 타자에 대한 배제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자칫 잘못 이해되면 전쟁전의 군국주의의 성격을 띨 위험성도 농후하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진정한 민주주의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내셔널리즘을 넘어서는 민주주의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의 ‘패전후론’에서 특히 잘 나타나는 카토 노리히로의 이러한 논의와 그에 대한 비판들은 현재 교과서 왜곡문제,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야스쿠니 문제 등을 둘러싸고 일본과 한국을 포함한 피침략국 국가들의 역사의식이 첨예하고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카토의 주장은 일본의 진보주의 사학자들에게 있어 소위 자유주의 사관과 함께 그 큰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진정한 일본의 사죄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한다는 점에서는 그 의도에 있어서 충분히 긍정적으로 평가될 면이 있다고 본다. 또한 그가 보여준 예리한 역사 진단 안목과 참신한 주장들은 이 책을 읽음에 있어 느낄 수 있는 큰 재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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