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없는 사회 - 합리적인 개인주의자들이 만드는 현실 속 유토피아
필 주커먼 지음, 김승욱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우선 저자의 의도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하느님이 없는 사회는 지상의 지옥이 될 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입에 담는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라니... 『신 없는 사회』는 약 1년간 덴마크에 살면서 스웨덴과 덴마크의 비종교성에 대한 연구를 한 결과를 담고 있다.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내용도 명확하다. 덴마크와 스웨덴 같은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들은 빈부의 격차가 크지 않고 막중한 세금을 내지만 그에 합하는 강력한 복지정책을 통해 안정된 국민생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국민 대다수가 기독교인이라 생각하고 있는 이 나라 국민들은 신을 믿지 않는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 없고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신을 믿지 않는 기독교인이라는 이율배반적 표현이 어째서 가능한지를 저자는 다양한 계층과 연령의 사람들과 많은 인터뷰와 사회학적 연구를 통해서 도덕적인 사회를 만드는데 종교가 반드시 필수적이지는 않음을 역설한다.

 

사실 이 책은 기독교의 힘이 거의 미비한 스웨덴과 덴마크의 모습을 소개하는 것과 동시에 저자가 주로 살고 있는 미국의 왜곡된 기독교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고도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근본주의적인 기독교가 맹신하고 있는 초자연주의적 유신론이 낳는 패단에 대한 경계와 우려를 곳곳에 표출하고 있다. 세상의 분쟁이 일어나는 주요 원인 중 하나인 종교간 갈등은 왜곡된 종교상이 낳은 결과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지 않은가?

 

이 책을 통해 재고할 수 있었던 편견 하나는 (어떤 형태라도) 종교가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면 도덕적으로도 타락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내 속의 욕망과 탐욕을 절제하고 이웃과 뭇 피조물들을 사랑하라는 종교의 가르침이 없는 곳이 과연 살기 좋은 곳이 될 수 있을까? 내세에 대한 기대도 구원에 대한 희망도 없이 우리를 악의 세력에서부터 스스로를 지키면서 현실을 잘살 수 있을까? 헌데 저자가 인터뷰한 덴마크와 스웨덴 국민들에게 이러한 불안과 걱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책의 전개가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고 느껴졌던 것은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과의 인터뷰내용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수많은 사람들의 인터뷰 내용은 대체로 대동소이하다. 삶의 의미란 없으며, 신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고, 기독교인이긴 하지만 교회는 거의 나가지 않고,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며 종교는 개인적인 문제이기에 당연히 정치와는 분리되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민들의 자연스러운 세속화가 이뤄진 이유에 대해 저자는 크게 3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이들 국가에서 가장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루터파 교회는 국민들에게 자연스레 스며든 것이 아닌 통치자들의 정략적 이점을 얻고자 기독교를 들여온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수세기 동안 국가의 지원까지 받으며 사실상 국교나 다름없는 종교적 독점은 사람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노력을 게을리 하는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두 번째로 (가장 설득력 있게 생각되는 부분인데) 사람들이 점점 안전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면서 종교에서 멀어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적 삶을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들이 충족되면서 가난과 질병에서 멀어짐에 따라 안정적인 생활을 영유할 수 있게 되고 굳이 초월적 절대자에게 의지하지 않게 된 것이다. 엄청난 재벌도 없지만 비참하게 가난한 사람들도 없는 스웨덴과 덴마크 국민들은 전반적으로 현재의 삶의 수준에 만족하고 있다. 세 번째는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증가하면서 점점 종교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밖에 여러 의견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분명 이 모든 것들이 크거나 작게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이른바 “문화적 종교”라는 개념에 대한 설명은 무척 중요하게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이 책에서는 문화적 종교에 대해 “오랜 역사를 지닌 종교적 전통에 일체감을 지닌 사람들이 종교 안의 초자연적인 요소를 진심으로 믿지 않으면서도 확연히 종교적인 행사에 참여하는 현상”이라고 정의한다. 이 나라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내가 속한 교회에서도 기독교에 대해 일종의 문화적 종교로 대하는 젊은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교리적 지식이나 신앙적 깊이는 알 수 없지만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사회적 기여나 봉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이들은 신을 믿지 않고 교회는 그저 자신들 삶에 매우 친숙한 환경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들이 구원을 받지 않고 지옥에 간다고 말하는 것은 무척 무식한 생각일 것이다. 오히려 이런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것이 이 세상에 종교적인 갈등이 없어지는 길이 되지는 아닐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사회학자의 관점에서 충분히 유의미한 결과물로 인정되는 이 책에서 물론 동의하지 않는 것들은 있다. 한국이 종교적이지 않다는 것에는 나는 좀 다른 생각이다. 그저 기독교인의 비율이 낮을 뿐이다. 어느 통계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종교에 등록된 교인이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5배 ~ 2배라고 하니 한국은 (다양한) 종교적 영향력이 강하게 존재하는 나라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아마 저자가 한국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또한 저자가 바라보는 기독교라는 것은 여전히 미국국민 대다수가 생각하고 있는 초자연주의적 유신론을 근간으로 하는 근본주의(복음주의) 기독교라는 점이다. 저자가 미국사람들에게 강하게 어필하기 위한 목적에 충실한 책의 구성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이 책을 읽은 내가 생각하는 종교의 정의와는 차이가 있다. 덴마크와 스웨덴의 이 현상들과 정확히 다른 대척점에 알맞은 근본주의적 종교를 언급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저자가 언급하는 종교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신을 믿지 않고도 이렇게 행복하게 잘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말로 (저자가 정의하는)종교가, (일반적 신자들이 생각하고 있는)신이 우리에게 필요한 건가?”라고 저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임에 분명하다. 그렇다면 비록 종교는 다르지만 아직도 개발도상국이나 문명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신을 잘 믿고 살면서도 행복도나 삶의 만족이 높은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과연 덴마크와 스웨덴에 기독교의 힘이 미비한 것처럼 보여도 정말로 그런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비록 저자가 정의하는 종교나 현상적으로 종교기관의 힘이 약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허나 약자를 돌보고 더불어 잘사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면서 현재를 충실히 살고자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은 종교가 지향해야 하는 “현실에서의 새 하늘과 새 땅 혹은 땅에서도 이뤄진 하늘나라”에 근접한 모습이란 생각이 든다. 책 뒷면에도 적혀 있듯이 사람들의 가치관이 종교에 바탕을 두고서 살아가는 것... 그것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범위를 국가에까지 확장시키면서 낙원을 건설하려는 성숙한 국민의식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런지... 분명 현재 그들이 만들어가는 “신이 필요 없는 사회“는 왜곡된 신앙이 낳은 초자연주의적 유일신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증거이자 참된 신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가야 하는 사회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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