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머리 여인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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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나는 원래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지만, 글을 읽을 때, 문장 속의 장면에 대한 묘사를 함께 하면서 읽기 때문에 한권의 책을 읽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생각보다 긴 편이다. 첫 번째 독자 서평프로그램에 당첨되었을 때, 당첨된 사실이 기쁘기도 했지만 2주안에 완독하고 서평을 남겨야 한다는 압박감과 강박증에 사로잡혀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오르한 파묵은 이야기의 전개를 아주 재밌고 빠르게 풀어내며, 동시에 긴장감을 주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사건의 발달과 갈등까지 흡입력 있게 이끌어주는데, 소설에 숨어 있는 3~4가지 반전 요소는 마지막 장을 넘길 때 까지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2부까지는 젬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3부에서 갑자기 빨강 머리 여인 귈지한의 시점으로 젬이 여태껏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한다. 젬은 몰랐던 이야기. 젬이 30년간 감춰온 진실과 그 동안 던져졌던 의문과 궁금증이 퍼즐처럼 완성된다.



나는 그 나무 아래 누워 깜빡 졸곤 했다. 그러면 내가 생각을 하기도 전에 빨강 머리 여인이 ˝난 널 알아˝하는 표정으로 저절로 내 눈 앞에 생생하게 나타났다. 이것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정오의 무더위로 기절할 지경일 대면 그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 환상에는 나를 삶에 매이게 하고 나에게 낙관론을 불어넣는 무엇인가가 있었다.(49p)

˝그러니까 결국 신이 말한 대로 되었군˝ 마흐무트 우스타는 말했다. ˝그 누구도 운명을 거역할 수 없는거지.˝(75p)

점심 휴식 기간에 단걸음에 왼괴렌으로 가서 빨강 머리 여인을 봐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마흐무트 우스타에 대해 묻고 싶었다. 나는 줄이 풀어지지 않도록 도르래를 잠갔다. 우물 입구에 도착한 양동이의 손잡이를 잡고 선반에 옮기려는데 마흐무트 우스타가 나를 향해 또다시 고함을 쳤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양동이를 약간 눕혀 나무 선반에 내려놓으려고 하는 순간 꽉 찬 양동이가 갈고리에서 빠져나가며 우물 아래로 떨어졌다.(159p)

쉬흐랍과 뤼스템 이야기가 얼마나 친숙하고 오이디푸스이야기와 비슷한지는 한 걸음 떨어져서 냉정하게 생각하면 바로 알 수 있다. 오이디푸스의 이야기와 쉬흐랍의 이야기 사이에는 놀랄만큼 비슷한 점들이 있다. 하지만 차이점도 있다.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이는 반면, 쉬흐랍은 아버지에게 죽는다. 하나는 부친 살해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자식 살해 이야기다. 그러나 이 커다란 차이점은 공통점을 더욱더 강조한다.(210p)

그날 무대에서 흘렸던 눈물과 삼십 년이 지나 아들과 그의 아버지를 위해 흘린 눈물에는 전설과 삶 사이의 부인할 수 없는 유사성이 있습니다. 나는 흥분하며 물었습니다. ˝삶은 전설을 반복한답니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나요?˝(3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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