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3년 전인가. 문구점에서 알바를 할 때 나와 동갑인 친구가 있었다.

저질 눈썰미에 그보다 더 저질의 기억력을 가진 나지만,

그 아이의 성이 워낙 특이했던지라, 아직까지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깡마른 체구의 그녀는 하얀 얼굴에 생기라곤 거의 없었다.

그녀는 대구의 4년제 사립대를 휴학하고 1년째 방황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IMF때 회사를 그만두고 소일거리를 하시고,

어머니는 아프셔서 아무것도 할수 없다던 그녀는,

앞으로 학업을 계속하기도 어려운 형편인데, 곧 수능을 쳐야하는 두 동생들까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며 무기력한 표정으로 하소연했다.  




그 때 -내 앞가림도 막막한 시기였기에-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공무원 시험 준비에 관한 몇 가지 팁 외엔 없었다.

그녀와 진로를 고민한 이후부터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세상이 이렇게 먹고 살만해졌는데, 왜 이렇게 먹고 살기가 어려운가...’

너무도 원초적인 의문이지만, 하나의 화두처럼 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그때 나의 우둔한 주변머리로 내린 나름의 결론은-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소극적이고

1차원적인 답이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이라는 거였다.

 

우리는 조부모 세대처럼 목숨을 바쳐 전쟁에 뛰어든 적도 없고,

부모 세대처럼 가난을 면하기 위해 피땀흘려 일만 해본 적도 없고,

삼촌 세대처럼 부정한 정부에 항거에 민주주의를 투쟁해 본 적도 없다.

먹고 살만해진 80년대에 태어나, 그 여느 세대보다 경제적 문화적의 혜택을 받고 자랐으며,

비록 청소년기에 IMF를 겪긴 했지만, 그건 부모 세대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했을 뿐이다.

어학연수에 토익에 어렵게 대학을 졸업하고 보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건 지독한 실업률뿐.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 아무것도 해본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하나 없는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면서도 가장 불운한 운명의 세대인지도 모르겠다.

 

미안한 소리부터 하자면, 요즘 하도 ‘88만원 세대, 88만원 세대’ 들었어도

나는 그 단어가 그저 신문에서 떠도는 유행어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마음깊이 착찹한 심정을 감출수가 없었다.

그것은 나의 얘기고, 내 친구들의 얘기고, 내 후배들의 이야기였다.

보통 이 정도 분량의 책이라면 두어 시간이면 가뿐히 읽고 해치워버렸겠지만,

책을 읽는 내내 너무도 마음이 무거워 좀처럼 진도를 낼 수가 없었다.

이 책 ‘88만원 세대‘는 그 동안의 막연했던 나의 의문에 대해

경제학의 입장에서 일목요연하게 논리적으로 써내려가고 있었다.



또한 고맙게도 그 분석과 해답을 철저히 지금의 20대 입장에서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처음부터 ‘깨는’ 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나라가 ‘청소년들의 동거권이 없는 사회’기 때문에 이렇게 위기가 온거라는-

다시 말해 ‘사회에 진출하는 연령이 늦을수록 정체가 심화된다‘는 논리다.

서두부터 나는 강하게 뒤통수를 두드려 맞은 느낌이 들었다.

어디 그 뿐인가, 청소년들은 동거권뿐만 아니라 아무런 경제권도 없다.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나 무서운 벽인가, 싶어졌다.

학생이 무슨 독립이고 동거고 임신이야? 하는게 너무도 당연한 정서가 아니였던가.

 

우리나라에서 고등학생이 ‘XX와 사랑에 빠졌으니 독립하겠다‘하면 당장 난리난다.

학교는? 대학은? 벌이는? 집은? 혼자서 해결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세상에 최저임금이 이렇게 낮은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때문에 청소년이 할 수 있는 경제활동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후로 ‘지체’ 될 뿐이다.

취업은 기본 20대 중반에, 결혼은 30대 이후에 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곧 자신의 삶에서 주도적으로 결정할 권리가 10여년이나 유예 된 채

앞으로 나아갈 능력발달의 기회가 그만큼 늦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늦은 사회진출에, 감당이 안되는 대학등록금과 집값, 게다가 자녀 부양비까지.

지체된 인생들은 사회의 지체발달 장애로 이어짐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르겠다.




나혼자 가끔 자조적으로 의문을 갖곤 하던게 또 하나 있다.

‘모두가 다 서울대, 모두가 다 서울....그 이후엔?’ 이란 거다.

전국민 모두가 다 서울대에 갈수가 없고, 전 국민이 모두다 서울에서 살수 없는데,

그 다음 차례로 서울을 등지고 또 모두가 다 미국으로 떠나는게,

과연 더 나은 삶을 위한 진짜 대안이냐는 것이다.

미국이 싫어지면 그 후는 달나라인가? 달나라가 싫어지면 그 다음은?

말할 것도 없이 우스운 질문이 아닌가.




이 책도 그런 점에서 내 생각과 관점의 궤를 같이 한다.

모두가 다 대졸-써먹을 데 없는-인 현 세태에 대해서 말이다.

여기서 이 책의 첫 번째 키워드인 ‘승자독식의 구조’가 나온다. 일명 '배틀로얄게임'.

지금 우리나라의 기업구조나 자본생산구조 모두 철저히 승자 독식의 구조라는 거다.

적자(fittest)가 아닌 승자(strongest)만이 살아남는 세상이다.

만약에 청소년 동거권과 경제생활을 인정한다고 가정한다면,

공부가 길이 아닌 이들은 자영업이나 제조업으로 활발히 진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온 국민이 일류대학 간판을 위해 공부-그것도 4당5락의 중노동-에 매달리기 때문에

완전히 패배자들은 사회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유럽처럼 청소년 고용에 정부나 지역사회가 완충제 역할을 하기엔

우리나라의 인프라가 허접할 뿐이라는 현실이 너무도 절실히 다가온다.




승자 독식의 구조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저자는 노무현 정부 이후 대기업의 독과점화,

특히 프렌차이즈 사업이 자영업을 패배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승자 독식의 구조는 곳곳에 만연해 있다. 이미 할수 있는건 30,40대가 다 해먹었고,

남아있는건 전체 취업자수의 20%도 안되는 공무원 및 몇몇 대기업 정규직뿐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약자 중의 약자는 ‘20대 여성 고졸자’다. KTX여승무원 사태가 대표적이다.

인구가 집중화된 서울(승자)만봐도 그렇다. 지방(패자)민들은 착취당하는 구조일뿐이다.  

어디 그 뿐이랴, 일찍이 민주화에 앞장섰던 386세대가 후배 세대들을 위해 남겨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냐면 그들은 지금의 기득권 사회의 완전한 승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승리에 혜택을 받을 세대는 20대가 아니라 그들의 자녀세대인 10대들이라고 한다.

너무도 서글픈 대목이질 않는가. 이러니까 모모 사회 유명인사라는 분들로부터

‘한심한 20대, 니네가 한게 뭐가 있냐’는 이 따위 소리나 듣고 있는거다.




여기서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두 번째 키워드는 ‘인질의 경제구조’다.



멀리서 찾아볼 것도 없이 현 연금제도만 봐도 한숨이 나오는 구절이다.

즉 3,40대가 10대(대학 및 교육부), 20대(실업 및 부양)를 인질로 잡고 있다는 거다.

이는 곧 경쟁의 범위가 세대 내에서, 세대 간의 경쟁으로 확대됨을 의미한다.

지금 20대가 앞으로 살아남으려면, 같은 세대와의 경쟁에서도 살아남아야함은 물론,

기득권이 쥐고 있는 조직결정권을 쟁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저 나이들면 저절로 승진하고 월급 상향되는 그런 시대가 이제는 더 이상 아니라는 말이다.

이는 20대는 물론 앞으로 10대들의 경우에도 미래가 밝지 않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책에서는 70년대 연공서열제가 파괴되면서 세대 간의 경쟁으로 이어지는 사회변화를

일본이나 유럽의 경우와 비교해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너무도 현실적이라 다른 토를 못 달게 할 정도로 면밀히 분석해 놓았다.




88만원 세대.

비정규직 평균 급여 119만원에 20대 급여의 평균비율 74%를 곱한 숫자.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를 대변해 주는 말인가. 곱씹을수록 억울해지는 이유는 뭘까.

문제는 현재 20대들이 자신들에 대한 정확한 진단에 거의 관심이 없다는 거다.

왜? 자기 앞가림하기도 급급하니까. 서글퍼진다.

저자가 말하듯 막말로 ‘토플 책을 집어치우고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던질’ 용기가

우리에게 남아있기나 한 걸까?!

언제까지 줏대없이 사회의 주변에서 머뭇거리기만 할텐가.

20대의 비정규직으로 시작해도 3,40대엔 나아질거란 뜬구름만 잡고있질 않은가.

그보다 더한 삭막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면, 지금부터 정신 바짝차리고 덤벼도 모자랄판에.

저자가 제시하는 몇 가지 대안이나 답들은 여전히 우리와 요원하기만 하다.

그 대안이라는게 정부나 사회, 심지어는 선배세대들의 몫이라,

그것마저도 20대가 할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왜 그 누구도 가장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20대의 문제에 대해

정식으로 문제 제기하지 않는걸까.


 

이 책에서 하고 있는 논의는 여러 가지 많다.

교육에서 자영업, 비정규직과 중소기업문제, 알바시장, 부동산정책까지.

총 망라하면서도 경제학적인 관점이라 설득력있고 명쾌하다.

굳이 구절을 일일이 인용하지 않는 이유는

나와 같은 20대라면 정말 꼭 읽어봤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이 책은 현재 무능한 20대를 탓하는게 아니라,

벼랑끝에 몰린 20대를 유일하게 두둔해주는 책이다.



왜 이렇게 사는게 어려운지-에서부터

IMF이후의 현 위기에서, 또 다음의 위기때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완벽한 대답이란 얻을순 없겠지만, 적어도 현 시점의 스스로들에 대해

가장 명확하게 분석을 해놓은 책이라고 확신한다.

 

그 예전의 무기력했던,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던 친구가 생각난다.

아직도 그녀는 절망한채 살고 있을까, 아니면 어디서 비정규직이라도 취직했을까.

한창 날개를 펴도 좋을 나이에 혼자 세상을 다 짊어진듯

무거운 어깨의 그녀의 안부가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는 왜 이렇게 모든것을 체념한채 살고 있는건가.

앞으로 문제의식조차 없이 무엇을 타계하겠다는 말인가.

승자독식, 인질경제, 세대간의 경쟁-에서 우리의 선택은 과연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얼른 '88만원 세대'라는 꼬리표를 던져버리길 진심으로 갈구한다.



기성세대들처럼 승자가 되기 위해 더 많은 패배자들을 양산할것인가.

아니면 제 3의 대안으로 우리의 이름표를 단 '세대'가 될것인가.

선택은 지금 바로, 우리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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