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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 읽어주는 남자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일상은 하루도 편안하고 행복할 날이 없습니다. 정부에서 발표하는 대한민국경제의 현상황과 외국에서 평가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은 눈이 부시도록 빛나고 있는데 정작 이땅에서 살고 있는 대부분의 국민들은 날이 갈수록 힘들고 지쳐가기만 합니다. 물가는 내리기는 커녕 계속해서 오르고, 기초생활의 기본이 되는 공공요금도 덩달아 오르고, 불안한 미래때문인지 무한경쟁과 물질만능주의 때문인지 범죄와 자살은 증가하고, 정치인과 권력자들은 다수국민들의 의견따위는 무시한채 자신들이 하고 싶은데로 모든일을 강행합니다. 보이지 않는 커다란손에 의해서 나라경제와 국민들의 삶이 좌지우지된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점점 그 사실이 체감되면 될수록 미래에 대한 불암함 때문에 견딜수 없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희망"이라는 단어대신 "절망"이라는 단어를 먼저 배우게 되는 현 대한민국의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울 따름이죠. 누군가 우리의 멱살을 잡고 앞뒤로 자꾸만 뒤흔듭니다. "잔소리 말고 하라는데로 해라!"고 말이죠.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땅을 밟고 서있는 99%의 대다수국민이 이런 답답한 상황을 벗어날수 있는 방법을 찾기란 불가능해 보입니다. "벗어나려면 경쟁에서 이겨라!"라는 이제는 식상하다 못해 숨쉬는 것처럼 당연시 된것 같은 이야기만 듣고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몇도일까요? 물은 99도까지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100도씨가 넘어가는 순간 뿌연 수증기를 내뿜으면서 팔팔 끓기 시작합니다. 단 1도의 차이인데도 불구하고 99도와 100도의 모습은 극과 극이죠. 단 한번도 99도가 아니었던 대한민국이 있었나를 의심해보긴 하지만 2011년 현재, 대한민국의 온도는 99도인듯 합니다. 마치 1987년 뜨거웠던 6월 민주화항쟁처럼 말입니다. 너무나 슬픈 역사이지만 꼭 기억해야만 하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페이지, "6월 민주항쟁운동". 그때도 대한민국은 99도였습니다. 최근 대한민국의 현상황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다시한번 책장을 넘기게 된 "100도씨(100℃). 수십번을 읽어도 뜨거워지는 "100도씨". 지금 시작합니다.
▶ 최규석의 "100도씨(100℃)
앞으로의 행보가 가장 기대되고 장차 한국만화계를 이끌어나갈 최고의 만화가라는 평가를 받는 "최규석"작가. 자타공인 가장 만화다운 만화를, 세상에 일침을 가할수 있는 만화를 그리고 있는 "최규석"작가.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쥬"라는 충격적인 작품으로 한국만화판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최규석"작가는 발표하는 작품들마다 언제나 베스트셀러, 혹은 스테디셀러의 반열에 오른다. 그의 네임벨류 때문에라고도 할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하는 만화들의 한권한권이 단 한번도 독자들을 실망시킨 적이 없다. 우리사회의 부조리를 비꼬는 웃어도 웃는게 아닌 개그코드와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서글퍼지는 장면들까지 만화한컷한컷에 혼과 힘이 실려 있는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듯 하다.
"100도씨"라는 "6월 민주화항쟁운동"을 다루고 있는 이 만화는 최규석작가 본인이 밝혔듯이 애초에 출판만화책으로 출간하려고 하지 않았다. 단지 CD형태로 제작되어 전국학교에 교육보충자료로서 배포되는 것으로 끝내려 했었다. 하지만 "100도씨"라는 만화가 인터넷상에서 급속하게 퍼지면서 결국 CD형태로 만들어 배포한지 1년후, 출판만화책으로 출간되고 만다. 이는 독자들의 엄청난 지지와 관심때문에 책으로 만들어졌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100도씨"는 도대체 어떤만화일까. 그리고 왜 지금 또다시 "100도씨"를 주목해야 하는 것일까?
▶ 민주주의의 의미와 권리를 찾기위한 뜨거운 100도씨
사실 최규석작가의 "100도씨"라는 만화에 대한 글은 예전부터 작성하고 싶었다. 만화관련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수많은 만화책을 읽은 경험들을 살려 다양한 글을 작성해 보려고 노력중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단순히 만화책을 자주 읽는 독자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를 자주 느낀다. 나름 만화와 관련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싶다는 소망을 품기도 하지만 관련분야에서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기에 아쉬움이 더 크다. 이런 상황속에서 단순한 재미와 흥미위주로 창작된 작품이 아닌 사회의 부조리한 일면과 생각할거리를 남겨주는 작품들만 그려내는 최규석작가의 만화는 더욱더 내 자신에 대한 깜냥의 부족을 경험하게 만든다. 이는 만화에 대한 부족한 지식의 수준을 떠나 최규석작가가 그려내는 만화속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를 모두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평소 사회현상에 대한 관심부족때문이 더 크다. 그냥 내가 살기 바빠서, 돈버는데만 급급해서, 먹고사는게 힘들어서,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을 제외하고는 관심을 두지 않으려는 우매한 자세때문이라고나 할까. 비단 만화에 대한 지식부족 때문에 최규석작가의 작품들을 감명깊게 읽었음에도 그의 만화에 대해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부끄럽다. 최규석작가의 만화들은 모두 그랬다.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쥬"도 그랬고, "습지생태보고서"도 그랬고, "울기엔 좀 애매한"도 그랬다. 현실사회에 대한 비판적이고 진취적인 시각이 아닌 단순한 가십거리수준밖에 안되는 "연예인 스캔들"기사에 더 집중하는 나는 어쩌면 최규석작가의 만화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말만 "만화광"일 뿐인 독자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간된지 2년이라는 시간이 훨씬 지난 "100도씨"라는 만화는 꼭 한번 짚고 넘어가고 싶다. 왜 그럴까? 요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온갖 모함과 음모론, 비리등이 난무하는 무법천지와도 같은 답답한 상황이다. 도대체 왜 음모론이 나올까? 그리고 그 음모론과 비리의 진실은 무엇일까? 그 어디에서도 진짜사실을 찾기 힘들다. 그래서 멍청해지는 기분이 든다. 너무 어리석은 국민이 되어가는 느낌이 든다. 나라는 존재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돌아가게 만드는 녹슨 톱니바퀴 그이상 그이하도 아닌존재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그리고 결국에는 답답해지고 나라가 걱정된다. 어떻게든 그 답답한 마음을 녹여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100도씨라는 만화는 몇번을 읽어도 "이길수 있다!"라는 "6월 민주화항쟁운동"당시의 어느 대학생이 외친 독백이 머릿속에 가장 맴돈다. 그리고 지금 현재도 대한민국의 대다수 국민들이 "이겨야만 하는" 무언가와 대치하고 있는 듯한 상황과 결부되는 듯하다. 그래서 2011년말, 나는 또다시 "100도씨"라는 만화를 찾게 된것일지도 모른다.
1987년에 일어났던 "6월 민주화항쟁운동"은 대학생들을 주축으로 그들의 어머니와 아버지, 문방구아저씨, 택시운전 기사님, 야채가게 할머니등이 모두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열망 하나로 시작된 운동이다. 하지만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듯, 현 정부와 정책에 반하는 의견을 품고 있거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반역자" 혹은 "빨갱이"로 내몰리는 것이 현실이다. 누군가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덤비지 마라!"라면서 "힘"과 "언론장악"으로 모든 것을 묻어두려고 한다. 이 만화속에 나오는 6월 민주화항쟁운동의 핵심에 있는 대학생들의 부모님들도 처음에는 "우리아들이 빨갱이의 꾀임에 넘어가서 워쩐댜."하며 걱정하고 밤잠을 설친다. 그렇다고 어르신들을 탓할수 없는 것은 "모르기"때문이다.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 하자면 "모른다"기 보다는 "알면서"도 그에 대항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를 "알기"때문에 "모르는"것으로 착각하는 것이 바로 이 만화에 나오는 우리의 "부모님"과 "어른"들의 모습이다. 하지만 "부모님"과 "어른"들도 서서히 "민주주의"의 발전과 대한민국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억누르는 것은 "가난"도 아니고 "미국"도 아니고 "북한"도 아닌, 정부와 경제실권을 쥐고 있는 일부 "있는자"들의 횡포와 권력욕, 재물욕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우리의 아들딸들을 위해서, 옆집 이웃 대학생들을 위해서 나아가 자신을 위해서 함께 "민주주의"를 외치게 된다. 회피하고 싶었던 현실을 탈피하여 할수 있는 것이라고는 함께 걷고 뛰고, 외치는 방법밖에는 없었지만 이미 그들 모두 99도씨를 넘어선 100도씨였다.
▶ 당연한 것을 외쳤을 뿐이다.
사실 시대가 언제이든, 장소가 어디든지간에 세상은 소수의 "능력있는"자들과 "힘"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중요한 일들이 결정되고 실현된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다. 하지만 그런자들이 행하는 일들 모두가 합리적이고 공정하다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그들의 뒤에서 묵묵하게 한나라의 힘을 키우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는 "국민"들을 잊어선 안된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아는 "힘"있고 "능력있는"자들은 없는 것만 같다. 완전히 반대가 되었다. 그래서 "힘없는" 국민들은 그렇게 수긍하고 인정하며 살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 과거에도,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힘"이 없기에 "더럽고 치사하면" 힘을 키우라고 사회는 "충고"같지 않은 "충고"를 계속한다. 그렇게 "힘"을 키우면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사회"가 변할수도 있다는 소망을 갖지만 그마져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어떤 정부와 정책이든, 절대다수의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고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적어도 그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과 꿈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수 있도록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한 곳에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간단한 방법이 간단하게 실현될수 없기 때문에 일부 생각있고, 뜻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익관계를 떠나 공정한 사회실현에 대한 요구와 외침을 유지하려 하지만 자신의 처지와 현실을 직시하고 쉽사리 포기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될수록 점점 정치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 먹고살기도 바쁜 국민들의 모습이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나또한 그렇다. 1980년대 제5공화국시절, 민주화를 실현시키기 위한 운동도 소수의 대학생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의 조그만 움직임이 포착되자 겉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가 그들을 억압하고 감금하며 구속시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것이 사실이었을까. 밟으려고 하면 할수록 새하얀 도화지에 검은색 잉크가 떨어진 것처럼 점점 퍼지기만 하고 없어지지는 않았다. 상황이 이러하자 더 강한 물감을 투입하여 빡빡 지우려고 하지만 그것도 한시적일뿐, 그들의 분노와 민주주의열망에 부채질만 할 뿐이었다. 이상하게도 당연한 것을 외치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빨갱이"취급하며 억누르려 하는 것은 왜일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답은 쉽다. 일부 "힘"있는 자들의 위치와 권력을 유지하기에 그들은 "귀찮은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소수의 의견모두를 들어가면서 큰그림을 어떻게 그릴수 있냐고 말할수도 있다. 또한, 일부 국민들의 요구 하나하나를 다 들어주다가 잘못된 선택이라도 하면 어쩌하냐 주장할수도 있다. 그러나 뻔히 답이 나와있는 불합리한 일들과 처사에 대해서 "요구"하는 사람들의 의견까지 무시한다면 어찌 한나라가 온전하게 돌아갈수 있을까.
▶ 반복되는 역사같지 않은가?
흔히들 1980년대 민주화항쟁운동때문에 현재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자유롭고, 편하게 살수 있다고 그들의 눈물과 고통을 감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허전하다. 단순히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고, 투표를 통해서 중요한 정책과 인물을 선출하는 것만이 민주주의의 전부라고 얘기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시대가 변해서 세상과 소통 할수 있는 방법이 그때와는 비교할수 없을 만큼 많이 늘어났지만 전체적인 사회의 고정된 틀은 그대로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단순한 착각일까? 시대가 아무리 변한다고 해도 인간이라는 존재가 누려야 할 권리를 지켜주고 국민들이 원하는 일을 행해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그런 민주주의를 위해서 우리의 부모님과 삼촌, 형, 누나들은 눈물을 흘리고 고통을 감수했는데 지금 우리가 편하게 누리고 있는 것은 단순히 "세상이 첨단화"되었기 때문에 누리는 편리함과 편안함이 아닌가? 그 편리함과 편안함이 "살만한" 세상, "행복한"나라가 되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도구로서 활용되고 있다면 분명 잘못된 것이다. 1980년대 당시, 누군가는 사회와 정부에 반하는 행동과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빨갱이"취급을 하여 그런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런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라는 교육을 시켰다. 또한,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다른곳으로 돌리려고 다양한 "물타기"작업을 실시했다. 게다가 "힘"있는 자들의 "권력과 돈"으로 정확한 정보전달을 해야만 하는 언론기관들이 "제대로 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억압하고 타협했다. 이상하다. 지금과 별반 다를바 없어 보인다. 분명, 100도씨라는 만화에서 말하듯이 "민주화 운동"은 1980년대에 일어났는데 2000년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도 "민주화"가 제대로 된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든다.
우리는 자꾸만 반복되는 역사속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착각이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지금 우리의 대한민국현실이 그런생각이 들지 않도록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는 단 한군데도 없는 듯 하기 때문에 착각이 현실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착각이 아닌 현실이라고 깨닫게 되었을때는 이미 늦었다고 한탄하고 후회하지만 어디가서 하소연 할곳도 없다. 결국에 그렇게 사회가 돌아가도록 톱니바퀴역할로서만 안주했던 것은 자기자신이기 때문이다. 조금만 신경쓰고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숨길수 없는 사실들에 대한 정보를 취할수 있는데, 그 어느곳에서도 당당하게 말하고 있지 않은 사실들을 힘들게 찾아야만 진실에 도달할수 있는 과정이 마치 "음모론", "괴담" 이라고 판단하게끔 만든다. 진정한 진실과 사실이 "증거 없는 괴변"이라고 치부받고 있다는 것은 무언가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 민주주의에 살고 있는 국민들이 당연히 "알아야할" 것들에 검은색 천막이 걸려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 형태과 과정, 방법의 차이와 변화는 있을지언정, 아직도 우리 대한민국은 100도씨에서 말하고 있는 시대와는 별반 다를바 없는 반복되는 역사의 과정속에서 눈물만 흘리고 있다. 또 한번 읽게된 만화 100도씨는 그것을 말해주고 있어서 너무나도 불편해진다.
▶ 2011년, 대한민국은 지금 몇도씨일까?
100도씨라는 만화속에서 중심인물은 "대학생"이 된 "영호"이다. 그는 어렸을적 "반공교육"을 받은 학생이었지만 대학교에 진학한 이후로 점점 진실을 접하게 된다. 그렇게 "영호"는 "민주화항쟁운동"에 뛰어든다. 그런데 사실 이 만화속에서 "영호"보다도 중점적으로 부각되는 일물은 "영호"의 어머니다. "영호"의 어머니는 처음에는 자기아들이 "빨갱이"가 되었다고 슬퍼하지만 조금씩 불합리한 "정부"와 "사회"의 모습에 자신의 아들인 "영호"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잘못된 것이라고 서서히 알게 된다. 단순하게 "자기자식"이 하는일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차원이 틀리다. 결국, 이 부분에서 100도씨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고 행동해야 하는 모습의 방향을 가르쳐 준다. 2011년 대한민국의 모습. 그 모습은 너무나도 이기적으로 변해버린 젊은이들에게 "어쩔수 없는 행동"이라고 칭찬하며, 살아남기 위한 "경쟁"이 전부인것 마냥 교육한다. 그리고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그것이 당연한 현재사회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인정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는 동안 무수히 많은 "불합리한" 일들과 "불편한" 사실들이 아무도 알지 못하도록 조금씩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가고 있다. 분명 높은분들이 한 일인데 그 화살은 국민들에게 돌아오고 만다. 오히려 1980년대 "민주화항쟁운동"을 펼치던 시대보다도 더하다. 우리는 "정치"에 관심을 갖고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행동을 할 틈이 없다. 왜? 먹고 살기 바쁘기 때문에. 우리는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곱씹어볼 여력이 없다. 왜? 격변하는 시대에 발맞추어 따라가기도 힘들기 때문에. 우리는 타인과 우리주변의 이웃에 눈을 돌릴 틈이 없다. 왜? 당장 내가 굶고 있기 때문에. 세상은 누구나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고 어디에서든 인터넷을 할수 있는 최첨단 시대인데 현재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1980년대 당시보다도 더 눈앞이 어둡고 침침해서 제대로 된 사실을 알아내기 힘들어졌다. 100도씨에서 "민주화운동"에 가장 처음, 적극적으로 참여한 "대학생"들의 모습을 2000년대 우리 사회속 "대학생"들에게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왜? 등록금을 벌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인맥을 쌓기 위해서 술을 마시며, 좋은 곳에 취직하기 위해서 토익시험과 자격증 공부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결국 우리가 눈을 돌리는 곳은 힘든 삶속에서 답답한 기분을 풀어주고 해소시켜주는 "TV, 연예계, 스포츠" 관련 소식이다. 나쁜것은 아니지만 좋다고만은 말할수 없는 곳에만 너무 눈과 관심이 집중된다. 그러다가 한살두살 나이를 먹게되면 "먹고살기 힘드네."라는 말을 내뱉으며 그마져 기분을 풀어주던 곳에도 관심을 갖지 못할정도로 삶이 버거워진다.
뭔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되었다. 100도씨의 배경은 1980년대인데 우리는 지금도 최규석 작가의 만화인 "100도씨"속 세상에 살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그동안 많은 국민들이 "살기에 바빠서" 몰랐을 뿐이다. 서서히 그 불이 지펴지기 시작한다. 2011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살고 있는 국민들은 한동안 너무 무서워서 부정하거나 알고싶지 않았던 사실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행동의 전파속도가 이상하게도 1980년대때보다도 느린듯 하지만 분명한 것은 조금씩 움직임이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반복되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당연한 권리에 대한 요구를 실현하고 외칠수 있는 방법과 통로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민중의 힘을 통해서 잘못된 현실을 바꿀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되게끔 할수 있는 행동의 지속성이 쉽지 않기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희망과 행복이라는 단어뜻을 알지 못할 것만 같다. 100도씨라는 만화속의 한 대사처럼 "이길수 있다."는 꿈을 갖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일어서기까지의 과정이 1980년대보다 더 힘들어진 현재 대한민국이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 또다시 대한민국은 99도의 끝자락에 있다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대한국민"을 위한 나라가 아닌것 같다는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기댈수 있는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땅위에 없다는 사실또한 심각한 절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누가 대한민국 국민의 마음과 몸에 대못을 박고 있는 것인가? 분명 물은 100도씨가 되면 팔팔 끓기 시작한다. 끓은후에 물이 수증기가 되는 것을 그 누구도 막을수 없다. 우리 대한민국은 지금 몇도씨일까? 누군가가 우리들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100도씨가 다 되어가는 99도"라고 답하자. 지쳐가는 대한민국의 톱니바퀴는 이제 100도씨 직전이다. 아직 60도, 76도, 96도, 97도인 사람들도 있지만 곧 그들 모두 99도가 될것이다. 만화책속 표현처럼 100도씨가 되는순간, "역사가 증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