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세스 아카데미 해를 담은 책그릇 1
섀넌 헤일 지음, 공경희 옮김, 이혜진 삽화 / 책그릇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행복의 참된 의미는 무엇일까? 이 책은 맑고 순수한 한 소녀의 성장기를 통해 이런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행복의 의미는 극단적으로 상반되는 두 가지 생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선명하게 부각된다. 전혀 상반되는 생활 모습의 차이는 주인공 미리에게도, 또한 독자에게도 자신의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자문하게 한다.

소설의 배경은 댈랜드의 오지 에스켈 산이다. 이곳의 주민은 조상 대대로 산에서 대리석을 캐며 생계를 꾸려왔다. 산 아래 사람들과의 접촉은 대리석을 사러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상인들뿐이다. 이들은 다른 사회와의 단절이 주는 그들만의 순박한 자연성을 유지한 반면 세상 물정에 어두워 자신들이 캐낸 대리석의 경제적 가치를 모른다. 따라서 상인들로부터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얻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겨우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형편이다. 이곳의 소녀들은 열 살만 넘어도 경제활동에 참여한다. 주로 대리석을 캐는 작업 현장에서 잡일하는 것을 시작으로 점차 선조의 가업을 끌어가는 중심적 역할을 자연스럽게 터득해간다. 그들에게 학교라는 배움터는 애초 존재 가치가 상실되어 있으며, 생계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가사노동이나 삶의 터전에서 이루어지는 노동 그 자체가 배움이요, 학습의 전부이다.

이런 에스켈 산에 전혀 상반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에스트랜드(댈랜드를 복속한 본국)의 사제들이 댈랜드의 오지에서 왕자비를 간택해야 한다는 신의 계시를 전하면서 에스켈 산은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외부의 강력한 권력에 떠밀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작업현장에 투입되어야할 14세에서 18세 사이의 소녀들이 왕자비의 간택을 준비하는 수업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제안은 마을을 온통 뒤흔들어 놓을 만한 제안이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그들에게 자신의 딸이 왕자비가 된다는 것이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보면 왕자비가 된다는 것은 돌가루를 뒤집어 써가며 돌을 캐며 생계를 이어가야할 그들에게 파격적인 변신이 이루어질만한 일이다.

이제 소녀들은 가족을 떠나 몇 시간 거리의 프린세스 아카데미에서 궁중 생활에 필요한 수업을 받게 된다. 처음엔 가족과 떠나 따로 생활해야 한다는 불안감에 저어했던 소녀들의 마음속에도 차츰 왕자비로서의 화려한 궁중 생활에 대한 동경이 커져간다. 이전까지 산 아래 사람이나 궁중 생활에 대해 전혀 몰랐던, 아니 아예 자신들의 삶과 비교할 생각조차 못했던 그녀들의 의식 속에 산 사람들의 곤궁한 생활과 궁중의 화려한 생활이 대비되어 교차되는 것이다. 이런 차이의 발견이 격차의 의식으로 바뀌어 이전의 삶에 대한 열등감이 심층에 쌓여갈수록 그 열등감으로부터 탈피하려는 의식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이런 상승욕구는 경쟁자에 대한 반목과 질시를 낳기도 한다. 소녀들의 마음속에 내재된 왕자비에 대한 열망도 바로 이런 측면으로 차츰 전개되어가는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현명한 주인공 미리는 스스로에게 반문한다. ‘자신이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고 전혀 알지도 못하는 왕자를 만나 그의 아내가 되는 것이 과연 행복한 삶일까?’ 이런 반문은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빠져있는 현대인들의 속물근성에 일침을 가하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주인공 미리에게 중요한 것은 왕자비로 화려한 궁중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왕자비가 되는 것이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 것인가라는 점이다. 여기에서 독자는 앞으로 전개될 왕자비의 운명적인 간택의 주인공이 누구인가라는 것보다는 주인공 미리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더 주목해야 한다. 신데렐라의 주인공이 누구인지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그 선택이 과연 선택된 당사자는 물론 선택한 왕자 자신에게도 참된 인생의 선택이라 할 수 있는지 독자들은 스스로 판단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 책이 제시하는 행복의 진정한 의미의 발견이자 그 선택에 대한 독자의 반응이 독자 자신의 행복관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으로 주인공 미리는 자신의 결정을 늘 유보한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왕자에 대한 선입견을 떨쳐내고 오직 자신의 현재에 충실하며, 자아실현에 도움을 주는 프린세스 아카데미의 수업에 열중한다. 이런 학습을 통해 자신의 잠재력과 소질을 발견해내고, 이의 실현에 경주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이는 미리의 진실한 남자 친구 페더의 선택에서도 드러난다. 조상의 가업을 주어진 운명처럼 수용하는 에스켈 산 주민들과 달리 페더는 자신만의 꿈을 품고 있다. 대리석에 자신의 내면에서 떠오르는 미적 영상을 부여하는 것, 바로 자신의 예술적 열정을 실현하는 것이다. 미리와 페더의 우정은 이런 서로의 꿈을 인정하고 북돋아줌으로서 진실한 사랑으로 싹터간다.

그렇다면 왕자비는? 그것은 애초 미리를 비롯한 에스켈 산 소녀들에게 어울리지 않은 가식이었다. 그런 가식적 허울은 왕자 스스로가 자신의 진정한 배필을 찾아감으로서 확연히 드러난다. 사제들의 운명적 장난은 왕자가 마음에 담아둔  브리타를 진정한 배필로 확인하는 소설적 설정이었을 뿐이다. 사제들의 결정으로 사랑하는 왕자와 헤어질 상황에 처한 그녀는 신분을 위장하고 에스켈 산에 잠입하여 프린세스 아카데미에 참여했던 것이다. 이로써 독자들은 이 책이 제시하는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알게 된다. 신데렐라적 환상이 결코 행복을 보장하는 게 아니라는 것. 외적 대상에 기대어 얻어지는 물질적 화려함보다는 자신의 심연의 울림에 귀 기울이는 것. 진실한 자아를 찾아 이의 실현에 노력하는 것. 바로 이것이 진정한 행복을 찾는 길이라는 것을 독자들은 깊이 새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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