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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라운드 - 개정판
제임스 도드슨 지음, 정선이 옮김 / 아침나라(둥지)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여든의 나이에 재발된 암으로 길어야 2개월의 삶을 남긴 아버지와 아들이, 아버지가 처음으로 골프를 치게 된 2차대전당시의 주둔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골프 코스를 순례하며 지나간 추억을 되새기는 '마지막 라운드'는 가을과 같은 책이다. 낙엽 태우는 냄새가 나는 책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수수께끼 옵티(Optimist:낙천가의 약어인 듯)'라 불렸다. 골프를 좋아하는 옵티는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어떠한 샷을 했더라도 골프장에서 기분 안좋은 날이 없었을' 정도이며, 처음 본 아이들에게 말을 걸고 쉽게 친해지는 옵티다운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아들은 이런 옵티가 싫지는 않았지만, 옵티로서의 아버지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데에는 서툰 반감이나 방황의 절차가 필요했다. 어린 시절 아들이 어처구니없는 샷을 날리고 시무룩해 있을 때, 옵티는 다른 사람이 티샷을 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데도 아들을 그린에 누워보라고 시킨다.
'기분이 어떠니?'
'정말 바보 같아요!'
'지금 무엇이 보이는지 말해 보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지금 눈을 감고 있거든요.'
'눈을 떠라. 그러면 모든 것이 보인단다.'
아들은 차가운 땅의 촉감이 싫지는 않았지만, 어린시절에 누구나 경험했던 부질없는 반감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아들의 여자친구이자 정신적인 안식처였던 크리스틴이 나이 어린 권총강도에 의해 목숨을 잃었을 때, 싫다는 아들을 설득하여 옵티는 장례식에 함께 간다. 그로부터 2년 후 아들이 신문사를 그만두고 골프가방만 메고 스코틀랜드로 골프여행을 가겠다고 했을 때, 옵티는 공항까지 나와서 아들을 배웅해 주었다.
아들과의 '마지막 라운드' 여행 중에 옵티는 그때를 회상하며, 언제나 따뜻하게 맞이할 수 있는 부모의 마음과 자식에 대한 신뢰를 베이컨의 말을 인용하여 나타냈다, '부모의 기쁨과 슬픔은 비밀이다. 기쁨은 굳이 말하지 않고, 슬픔은 도저히 말할 수가 없다'라는 말로.
옵티와의 골프 순례가 절정에 다달았을 즈음, 아들은 아버지가 옵티로 다시 태어난 비밀을 처음으로 알게 된다. 젊었기에 자신감이 넘쳤고 건방지기도 했을 아버지는 2차대전 당시에 자신이 근무했던 마을의 반을 불로 태우고 유치원생 서른여덟 명을 죽게 만든 폭격기 추락사고를 목격했다.
죽은 아이들 중에는 아버지와 아주 친하게 지내던 여자아이도 있었다. 그 후 아버지는 옵티로 다시 태어났던 것이다. '인생은 우리에게 슬픔을 약속한다. 기쁨을 만드는 것은 우리가 하기에 달려 있다'는 아버지의 말은, 자신의 견딜 수 없는 슬픔을 인생에 대한 낙천적인 희망으로 승화시키는 옵티로서의 다짐이 되었을 것이다.
여든의 나이와 2개월 밖에 안남은 수명, 늙은 몸을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의료보조기구를 차고서도 옵티는 세인트앤드루스를 비롯한 골프 명문 코스에서의 게임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숨을 거두고 자신이 즐기던 골프장에 재로 남게 된다.
옵티는 여행을 마감하며 '정말 멋진 여행이었다'라고 말했다. 아들은 말대꾸로 여행 중에 머물었던 호텔 샤워기에 대한 불평을 했지만, '네가 말하고 있는 것은 이번 여행이지만, 난 인생이라는 여행을 말하는 거란다.'라고 옵티는 말 한다.
누구나 인생을 마감할 때, '옵티와 같은 말을 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은 쉽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부인과 아들과의 관계, 또 그들과 골프와의 관계를 통해 삶의 진지한 의무를 알려주는 옵티의 멋진 퍼팅을 모르고서는 말이다. 마지막 골프 코스에서 빈손으로라도 너무나 진지하고 즐겁게 게임을 하던 옵티와 아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