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혼 세일>


"그냥, 결혼이 부동산으로 유지되는 거란 생각을 했어. 도무지 감당이 안되는 금액의 집을 사고, 같이 갚으면서 유지되었을 뿐인 게 아닐까. 그래서 한동안 동산만 가지고 살아보고 싶어서." p.30

-

아영이 물건들이 제자리에서 조금씩 어긋나있는, 아직 차 있지만 곧 비게 될 집을 둘러보며 말했다. 존재하지 않는 점선을, 절단을 위한 선을 그릴 수 있었다. p.32

-

창비 서평단으로 미리 만나보게 된 정세랑은 그동안의 기대가 아깝지 않은 최고의 이야기꾼이었다. 역시 현 사회를 조망하면서 주인공들을 움직이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이번 36쪽의 단편에서 인물들을 같은 공간에 넣어두고는 많은 주제들을 짜임새 있게 다룬다. 깔끔하고 울림 있는 문장들이 인물들의 목소리가 된다. 소설의 발단은 이재의 이혼이다. 이혼을 하면서 물건을 처분하는 과정을, 이재는 '이혼 세일'이라 부르며 친구들을 초대한다. 


가볍지 않되 무겁지 않은 글들로 이야기를 읽다보니 어느새 책장이 덮였다. 원하는 물건들을 친구들이 골라가면서 풀어내는 각자의 사연들이 하나의 멋진 단편이 되었다. 정세랑은 작은 배려들이 조금씩 쌓여가는 과정을 잘 그려낸다. 그 배려를 받았던 사람들이 어떻게 변화하는 지도. 글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은 서로의 배려를 통해 힘든 날을 극복하거나, 상상치 못한 힘을 내며, 다채로운 장면들을 만들어나간다. 경이롭다. 


인물들이 대화를 주고 받고,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는 과정을 보며 치유받는 대상은 소설 밖 나이기도 했다. 나는 정세랑의 글이 늘 기대된다.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사소함들이 엮어내는 이야기에 큰 기대를 한다. 이혼하면서도 친구에게 맛있는 장아찌의 비결을 손에 쥐어주던,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