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88만원 세대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야 할 첫 섹스. 그러나 저자들은 한국의 20대들의 첫 섹스는 슬프다고 말한다. 그들의 첫 섹스에는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높은 대학 등록금, 낮은 취업률, 열약한 아르바이트 환경, 비싼 주택비. 어느 요소로 보나 한국 젊은이들의 사랑과 섹스가 동거, 결혼,출산, 육아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 마디로 이들은 열약한 사회적 환경에서 자신들의 미래를 설계할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는 이러한 20대들을 그저 기업의 마케팅 대상으로만 바라보거나, '이태백'이란 신조어를 붙여주어 동정의 눈길로 바라보거나, 혹은 게으르고 생각없는 세대라 힐난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것이 이 땅의 20대들의 개개인에 달린 문제일까.

 

현재 한국의 경제구조는 '미래 세대의 몫을 빼앗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30년 동안 고도의 압축성장을 해 온 터에 한국 사회는 자본주의의 병폐를 시정할 장치들을 갖추지 못했고, 이러던 차에 IMF의 충격은 그 어떤 완충장치도 없이 사회 전체를 강타해 버렸다. 그리하여 나타난 것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한국의 '승자독식' 체제이다. '선택과 집중' 그리고 제한없는 경쟁끝에 재벌, 프랜차이즈로 대표되는 거대 자본만이 살아남고 작은 가게와 같은 중소규모 업체들은 거의 몰락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는 신규진입자들은 도저히 발붙일 곳이 없다. 기득권이 창출하는 극히 소수의 일자리를 차지하느냐, 아니면 하청업체와 같이 이들의 착취 대상으로 전락하느냐의 선택만 있을 뿐이다. 게다가 한 번 전락했다가는 끝장이다. 독점구조가 강고해지면 후발주자의 역전이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저 '시작이 미약하면 끝도 미약하리라!' 따라서 지금 이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쟁이란 '승자'가 아닌 '생존자'가 되기 위한 경쟁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구조상 생존자란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승자독식체제는 이처럼 사회적 약자들을 극단적으로 희생시켜가면서 사회를 유지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빈 손으로 새로 출발하는 20대는 철저한 약자일 수 밖에 없다. 현재의 20대가 바로 IMF 이전에 한국사회가 가졌던 삶의 양식이나 가치관은 경험해 보지 못한 채, 맨몸으로 이 폭력적인 게임에 노출되는 첫 세대인 것이다. 그래서 승자독식게임 외에 다른 체제를 상상해 볼 경험조차 하지 못했던 20대는 다수가 탈락자인 게임의 탈락자가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고, 10대는 이런 구조의 인질이 되어 그들이 경험할 첫 '생존과 탈락의 기로' 즉 입시에 목을 매고 있다. 정작 승자독식이 아닌 가난한 자에게도 기회를 주는 환경에서 성장했던 이 땅의 유신세대, 386 세대는 현재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미래의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대체하는 등 계속해서 미래 세대의 희망을 빼앗고 있다. 지금의 문제가 같은 20대 세대 내의 경쟁이 아니라 '세대착취'에서 비롯한다고 볼 수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경쟁은 세계적 추세가 아니더냐. 물론 이렇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 중 어느 나라도 미래 세대의 운명을 나락으로 떨어뜨려가는 경쟁을 방관하지 않는다. 지방자치의 전통이 발달한 독일과 스위스에서는 지역사회 공동체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고 있고, 프랑스는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중앙정부에서 나서고 있으며, 정부의 복지정책이 미약한 일본조차 노사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일본 자본주의 특유의 전통에 따라 문제점들을 최대한 완화시키려 하고 있다. 오직 한국만이 이 비정상적인 경쟁을 방관하다 못해 제도적으로 촉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는 한국의 경쟁력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래 세대의 몫을 보존하지 않는 생태계는 반드시 다음 세대에 위기가 찾아오듯, 언제까지 신규진입자들의 몫을 빼앗아 이루어내는 경제성장이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당장에 지역사회 공동체의 노력에 힘입어 일찌감치 자신의 삶을 창조해 나가는 서구의 20대와, 그저 죽지 않기 위해 경쟁하는 한국의 20대의 경쟁 결과도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러한 경쟁구조가 지속된다면 한국사회는 사회적 다양성을 상실한 채 소수의 공룡과 같은 존재들만 살아남게 될 것이다. 공룡들은 언제나 단 한 차례의 위기에 취약하다.

 

저자는 현재 한국의 20대를 '88만원 세대'라 명명한다. 비정규직 평균임금 119만원에 20대의 급여율 74%를 곱해서 나온 수치가 바로 88만원이다. 지금의 경제 구조가 계속되었다가는 대다수 이 세대들이 받을 임금은 고작 119만원~88만원 사이에 불과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40대가 되어도 50대가 되어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세대에게 국제경쟁력은 물론 꿈과 희망, 결혼과 같은 일상적 삶의 행복조차 기대할 수 없다. 첫 섹스가 슬픈 것은 88만원 세대들에게 단지 시작일지도 모른다. 그 후의 더 슬픈 삶. 이를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는 물어볼 필요가 없는 질문이다. 20대여,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

 

88만원 세대를 읽는 우리들

 

"얼른 공무원 시험에 붙어야겠군" 

 

친구가 88만원 세대를 읽고 대뜸 한 말이다. 충분히 일 리가 있는 반응이다. 저자들은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이란 이름으로 이 책을 집필했지만, 정작 20대 독자인 우리들은 상당수가 이 책을 '절망의 시대를 확인 사살하는 우울한 텍스트'로 받아들인다. 물론 책의 주된 메세지만으로는 그렇게 비칠 수도 있겠으나, 이는 저자들의 잘못이 아니다.

 

책에서 언급된 바, 이탈리아에서는 얼마 전, 두 명의 젊은이가 쓴 <천유로 세대>란 소설이 큰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이 소설이 각광을 받은 것은 문학성이 특별히 빼어나서가 아니다. 우리 돈으로 120만원의 임금을 받으며 생활해가는 이탈리아 젊은이들이, 자기 세대의 삶의 모습을 자기 세대의 눈으로 절절하게 그려낸 '독한 진실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역시 마피아 경제처럼 한국식 깡패경제, 지하경제의 폐단이 큰 나라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젊은 이들은 자기 세대 스스로 자신들의 처지를 설명하는 언어를 만들어냈지만, 한국의 젊은이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을 접했을 때 분노보다 무력감을 먼저 접한다. 이것이 '88만원 세대' 담론의 한계, 즉 위로부터 주어진 언어의 한계인 것이다. 우리에게 정녕 희망은 없는 것일까.

 

이 책이 나왔다고 당장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저 막연하게 느껴졌던 우리 현실의 암담함이 도리어 구체적으로 절절하게 확인되었을 뿐이다. 게다가 대관절 짱돌과 바리케이드는 갑자기 어디서 구하란 말인가. 얄밉게도 저자들도 '물리적 바리케이드'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인정했고, 게다가 우리는 짱돌 찾으러 간 사이 취업경쟁에서 낙오될 까 두려워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아니던가.

그러나 적어도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사실 자체에서 이미 우리는 전과 다른 처지라 할 수 있다. 저자들은 이름도 없는 세대가 너무 가슴아파서 이름이라도 붙여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최소한 이름이 있다면 분석대상이 될 수가 있다. 사회문제로서 호명 될 수 있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88만원 세대라는 이름과 프레임을 통해 현실의 많은 것들에 의문을 제기해 볼 수 있다.

 

왜 요즘 대학 가요제는 재미가 없지?

왜 요즘 집, 차, 직장 없으면 결혼도 못한다고 하지?

왜 학교에 생협 카페 대신에 외부 프랜차이즈가 들어오는 것이지? 누구에게 이익이 되지?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더러 눈높이를 낮추고 다양한 경험을 해 보라고 하는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말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가?

왜 홍세화, 박노자, 김규항, 진중권...등 10년 전 이름날린 논객들은 아직까지 날리는데 왜 신세대 논객은 없는걸까?

누가 영어공용화를 주장하고 있는 거지?

왜 요즘은 대학마다 이중전공을 강제하는 거지?

대학입시자율화가 맞을까 대학평준화가 맞을까?

지금 이마트의 가격파괴가 과연 좋은 일일까?

 

이러한 물음들은 상상력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 물음들의 답을 생각해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다른 미래를 구상하는 '정치적 상상'을 해 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긴 안목으로 볼 때 정치적 상상은 공상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달에는 뭐가 있을까?'라는 평범한 사람들의 상상력이 천재들로 하여금 유인우주선을 만들게 했다고 한다. 상상력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의 집단은 결코 무력하지 않다. 그러기에 누군가는 말했다. 바로 이 상상력이 권력을 쟁취한다고. 우리의 바리케이트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우리 20대는 절망을 뛰어넘을 보다 급진적인 정치적 상상력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것은 우리의 처지가 마음이 아파 '88만원세대'란 이름을 내려준 저자들에게 감사해서가 아니다. '천유로 세대'와 달리 우리 스스로 자신들의 이름을 만들지도 못했다는 무력감을 극복하는 것은, '88만원 세대'란 언어에 우리의 상상력으로 생명력을 불어넣는 길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우리의 형제, 자매, 이웃 그리고 우리 자신의 생존과 행복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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