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K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이리나 레인 지음, 강수정 옮김 / 예담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그래요. 닫혔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고 앞으로도 죽 그럴 겁니다.

-안나 카레니나





 모호하고 불확실한 무엇. 아무리 달콤한 말도 구태의연한 것으로 들리게 하는 재주. 소용돌이 속에서 헛발질하는 개구리 같은 모양새. 남김없이 소진해 버릴 것이라는 헛된 다짐. 왜곡된 시선. 본의와는 무관한 해석. 작가가 전혀 의도지 않은 데에서 홀로 엉뚱하게 감동하는 독자. 단순간 어디론가 뻗어 나가 돌아오지 않는 생각. 안나 케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러시아계 유대인 소설가 이리나 레인이 현대 뉴욕을 무대로 재구성했다. 티파니와 펜디, 나이키, 불가사리 모양의 은 펜던트. 여자의 마음. 첼시와 소호, 소호의 프랑스 레스토랑, 랑그도크 지방의 와인, 그리고 아이오와. 남자의 마음. 세상에 그런 남사스런 일이. 부하라 유대인. 댁의 따님은....세간의 반응. 이 세 가지가 통속적으로 얽혀들어가는 모양새를 보자면 안나 카레리나는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도 또 죽을 수밖에 없는 인물이라는 결론이 허망하게 남는다. 굳이 누군가를 꼭 살리라고 할 생각 없이도 이 죽음 앞에서는 또 한 번 무릎을 꿇게 된다. 꼭 그래야만 했을까, 시대가 다르고 사람이 다르고 주변 환경이 다르고 심지어 안나마저도 메타 소설의 모양 앞에서 달라지지만 안되는 것은 역시 안되는 것일까.




 물론 결말에 집중하고 그에 이르는 흐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잘못된 태도이다. 그런데 참으로 난처하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거장의 필치 앞에서 대상을 무한대로 확대하거나 축소한 이리나 레인의 렌즈를 들여다보자니 그 길 끝에 이르는 이 책의 지도가 너무 쉽거나 통속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19세기 러시아 귀족 사회와 농노제, 법률 사회까지 사회 전반에 관한 깊은 생각을 거친 작품이었다. 많은 이들이 소설의 첫 문장과 그 번역본에 그리 관심을 두곤 한다. 그러나 작가 김영하의 말을 빌리자면, 작가들은 의외로 문장의 얕은 술수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아니다. 문체와 문맥. 조금의 기교를 부린 장식체 문장이 아닌 소설의 주제, 핵심에 도달하는 독자에게 펼쳐지는 세계야말로 문학의 핵심 중 하나다.




 그렇다면 안나 카레리나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것 하나만으로도 괜찮은 논문 몇 개는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안나 카레니나는 넓은 지평을 다룬다. 나뭇잎을 가리키는 손끝이 아닌 나뭇잎을 들여다 보자.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소설의 제목과는 달리 안나 없이 시작하여 안나 없이 끝난다. 어떤 이는 이 소설을 가정파탄의 슬픔이라고 읽기도 했고, 어떤 이는 이 소설을 독자를 가르치고자 하는 작가의 끝없는 열망이라 읽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모두가 같이 읽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모두가 다른 것만 읽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정확히 톨스토이가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기 전에 나는 이리나 레인이 안나 카레니나를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지를 깊이 고민하다 이 소설을 썼다고 확신한다. 




 이리나 레인은 아주 간단한 선택을 했다. 자신이 가장 잘 쓸 수 있는 것에서 시작한다. 안나의 외양 묘사에서 알렉스를 만나 하는 연애에서는 탄산이 빠져나간 탄산수의 맛이 느껴진다. 알렉세이 카레닌의 환영이 분명한 알렉스의 청혼을 잠시 살펴보자. 





"사랑하는 안나." 안나가 반지에 묻은 초콜릿을 핥아, 아니 빨아먹어서 다이아몬드 알과 주변 장식은 침 범벅이 됐다. " 당신을 향한 내 마음 알지?"

 "네." 안나는 책을 읽듯이, 어색하고 서투르게 "복선"을 의도한 대화를 읽듯이 대답했다. 자신도 이 일에 가담했다는 걸, 게 그에 따른 피치 못할 결론이라는 걸 간파했다. 아니라고 말할 거였으면 계획을 궁리하고 실행하던 몇 달 전에 했어야 하지 않아?

 "지난 일 년 반 동안 우리가 너무 잘 어울린다는 걸 확인했어." 알렉스는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 웅얼웅얼 둘이 거쳐온 지난 날들을 훑었다. 와인 두 병을 마시며 밤이 깊도록 이어진 첫 데이트, 그녀가 발을 접질렸ㅇㄹ 때 그가 의사를 불러왔던 버몬트 스키 여행, 그녀가 로댕을 좋아한다고 고백했던 로댕 전시회, 처음으로 함께 보냈던 애틋한 밤 등.  ...

 "안나, 나랑 결혼해 줄래?" 시간, 그녀는 시간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책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가장 무미건조하게 지나간다. 

 안나와 알렉스의 모든 것이 잘 깔린 대리석 바닥처럼 평탄하다. 

 그에 반해 안나와 데이비드의 모든 것은 낙차를 지닌다.




 문자가 왔다. "뭐해요?"

 "당신 생가해요." 알렉스가 앞에서 어슬렁거리고 친정 부모님까지 앞에 계셨다. 가슴은 쿵쾅거리는데 자판을 누르는 엄지는 둔해서 급하게 서두르다 맞춤법이 틀렸다. '전송'을 누르고 자리로 돌아와 알렉스의 팔짱을 꼈다. 너무 행복해 보이는구나. 엄마는 딸의 뺨을 가볍게 꼬집으며 말했다. -책속에서





 이리나 레인의 안나 카레니나는 안나로 가득하다. 물론 키티와 레빈이 나타난다. 모든 것은 똑같이 재현된다. 다름이 없어서 독자는 이리나 레인의 안나를 읽을 때마다 모든 것이 닫혔다고 말하던 톨스토이의 안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리나 레인의 안나를 읽으면 안나 카레니나가 떠오르건만 안나 카레니나를 읽어도 안나 케이가 떠오르지는 않는다. 오리지널의 위세. 이것이 원본과 샘플링의 차이라면, 역사상 이런 시도는 무수히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진대 무엇이 다른 것인가. 어떤 글이 좋다고 말하면 물론 작가는 기뻐할 일이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하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좋아? 좋다고? 좋다는 것은 일차원적인 일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다른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에서 생겨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리나 레인의 안나 케이는 어쩌면 참 좋은 소설일 것이다. 끝없이 소설 속에서 안나는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 싶어한다. 남편 알렉스에게 이혼해 달라는 말을 하고 한달음에 데이비드에게 택시를 타고 간 다음 처음 그녀가 하는 말도 이제는 자신을 가지고 소설을 써달라는 말이었다. 알렉스가 낯선 곳, 옥수수밭이 끝없이 펼쳐지는 아이오와에 가자고 말할 때 하는 말도 '당신을 주인공으로 써낸 소설을 좀 더 살려볼 수 있을지도 몰라.' 였다. 픽션 속의 픽션이 피카레스크식 구성으로 펼쳐지지는 않는다. 그 이상 작가가 나아가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이 소설은 안나 카레니나의 직업에 집중한다. 바로 그녀의 삶이라는 직업. 




 

이상한 꿈, 배에서 꾸게 되는 꿈. 끈적끈적해서 헤어나올 수 없는 꿈. 곤경에 빠진 안나를 죽음으로 돌아가는 불길하고 모호한 상황들. 좀처럼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일들. 어떤 색깔, 갈색이 도는 엷은 자주색 립스틱을 찾는다면. 양배추 잎 뒤에 숨은 새끼 고양이를 발견한다면. 배를 벗어나 뭍에 오르는 길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여러 남자들의 조합. 얼굴과 정체가 뒤섞인 남자들이 안나의 몸을 위협했다. 주머니칼로 그녀를 으르며 인적이 없는 뒷골목으로 데려갔다. 그들은 앞으로 닥칠 재앙을 경고했다. 그리고 그녀의 꿈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덜컹덜컹 흔들리는 기차.-책속에서




 

 이리나 레인이 사용하는 단어는 안나를 향할 때는 혼란스럽게 좌초되는 배처럼, 알렉스에게 가해질 때는 공무원이 꾸민 공문의 첫 페이지처럼, 데비드를 향할 때는 답답한 짐꾼을 볼 때 짜증 나는 회초리처럼, 카티아를 그릴 때는 순진무구한 시절의 지젤처럼, 레프를 묘사할 때는 적당히 타협하는 한강 이남의 회사원처럼 독자에게 다가온다. 

 서서히 베일을 들어 올리지 않고 단번에 확연히 모습을 드러내어 독자를 사로잡는 안나의 모습처럼, 이리나 레인은 독자들의 호기심과 이미 알려진 플롯의 재구성을 통해 안나 카레니나에 관한 가치판단을 다시 한 번 미룬다. 이 소설 전체를 통해 독자는 자신이 만나보지도 않은 안나를 들여다보게 되는데, 처음에 안나는 창백하도록 흰 피부에 검은색 모피 코트를 입고 발끝을 살짝 밖으로 틀고 흐트러짐 없이 우아하게 걸으며 무대에 등장한다. 물론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이는 눈빛을 하고서. 




 그러다가 나중에는 관자놀이가 쿵쿵 울리고, 심플함을 드러내기 위해 늘 점점 더 힘들어하고, 조심하라는 말에 조금 물러나는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혈색과 걸음걸이, 몸매와 눈빛이 등장하다가 언젠가부터 우리가 보는 안나는 실루엣이 아닌 형체로 굳어진다. 

 정지된 것에서 움직이는 것으로 가려는 시도. 이것은 이리나 레인의 안나가 소설작법에 관심을 두었고, 계속 데이비드에게 자신을 소설 속에서 숨쉬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과 일치한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느라 너무 멀리 나가지 말자고 다짐한 다음 이 소설을 다시 들여다 보면, 이리나 레인의 안나 카레니나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톨스토이의 그것과는 다른 양상을 강조한다.




 이리나 레인의 안나 케이는 안나가 행하는 행동, 안나가 하는 말에서 그 모든 의미를 끝맺지 않는다. 외려 안나가 겪는 사건을 읽는 이가 마음속에서 재구성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현대 뉴욕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사건. 나를 비롯한 다른 이가 낱말 하나하나를 읽어나갈 때마다 새로운 의미가 있다. 그리고 살짝 생기는 기대와 예측, 호기심. 안나 카레니나는 검은색 드레스를 입었는데 여기서도 그럴까? 하고 생각하다가도 '그녀는 오일릴리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시간과 공간이 달라졌음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막힌 벽, 여전히 높은 천장, 여전히 낮은 바닥에 안나가 부딪힐 때마다 작가는 닫힌 문장이 아닌 허물어진 기대감을 의도했을 것이다. 




 어떤 종류의 글이든 읽을 때의 기대감과 읽은 후의 실망이 반복되는 리비도의 곡선이 그려질 때, 독자에게 어떻게 작품을 읽어야 할지, 더 나아가서 작가의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관찰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이리나 레인의 안나 케이를 읽노라면 독자는 좀 더 확실한 지식을, 명확한 진실을 원하지만 읽기 경험을 통해 늘 기대는 좌절되고 희망은 꺾이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렇다 하여 모든 읽기가 쓸모없는 것일까? 오히려 독자 앞에 조용히 놓인 문장은 그 어느 것도 명확하거나 법률처럼 정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독자가 스스로 쌓아나갈 읽기에 관한 경험이 더 값진 것이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우리가 어쩔 수 없이 행하는 오독, 읽기에 따르는 여러 가지 어려움, 해석을 해나가는 데에 생겨나는 여러 과정, 이런 모든 것이 독자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이리나 레인은 안나 케이를 통해, 다시 쓰기를 통한 읽기의 방법을 제시한다. 독자의 안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경험을 살짝 보여줌으로써 톨스토이의 아난 카레니나는 완전무결하거나 이미 원작에 존재하는 것과 같이 유일무이하지는 않아도, 다양한 방법으로 읽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새롭지 않다 하여도 읽기의 한 갈래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보면 아주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닌 한 조각. 

그리하여 언젠가 모습을 드러낼 다른 누군가의 안나 카레니나의 자리를 비워둔다. 







 "대단하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삼십 분도 넘게 기다렸네."

 안나는 노란 선으로 슬금슬금 다가가 그 위에 섰다. <데일리 뉴스> 1면에 나오면 어떻게 될까? 신문을 읽는 데이비드, 비통에 잠긴 레프의 모습이 그녀의 뇌리를 스쳐갔다. 신문에서는 제일 아름다운 사진, 알렉스를 만나기 전, 어쩌면 서른다섯 번째 생일 케이크 앞에서 촛불을 끄는 사진을 쓸지도 모른다. 길쭉한 광대뼈가 도드라지고 머리를 귀 뒤로 넘긴 그 사진. 무심결에 찍힌 사진이었는데, 물이 올라 봉오리를 터트리기 직전의 튤립 한 단을 몸 속에 품은 것처럼 눈동자가 반짝였다. 카티아의 소개로 데이비드를 만났던 신년 파티의 사진이라면 더 좋겠다. 악수를 나눌 때 데이비드의 눈 속에서 봤던 그 여자, 그의 잔에 비쳤던 그 여자, 검은 옷에 부드러운 홍조를 띤 그 여자의 사진이면 좋을 텐데.

 터널 안에서 불빛 두 개 어렴풋이 빛났다. 이렇게 쉽다니, 제대로 한 발만 디디면. 선택, 결정, 도약. 그런데 정말 할 수 있을까? 승강장 밖으로 오른발을 슬그머니 내밀었다. 터널을 막 벗어나려는 6번 노선의 녹색 동그라미가 깜빡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조심하세요, 부인." 조금 전에 옆에서 말을 하던 남자였다. "너무 앞으로 나가셨네요."

 그래서 조금 물러났다. 그녀의 몸은 지시를 따르는 데 익숙했다. 하지만 그랬다가 다시 끌린 듯 그 자리로 돌아갔다. 전철은 빠른 속도로 진입하면서 두 개의 흰 전조등으로 그녀를 강렬하게 비췄다. 생가갈 시간, 가능성을 타진할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늘 따지기만 했고 자기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에 지쳐버렸다. 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닌, 영원한 연옥. 좀 솔직해지자. 퀸스에 가면 뭐가 될까? 아이오와에서는? 지금은 뭐지? 필요한 것은 찰나의 선택, 근육을 움츠렸다가 스스로 뛰어올라 스스로를 놓아버리는 것. 이번에는, 이번만큼은 옳은 선택을 할 거야.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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