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시조를 연속 읽어보고 있다.
오늘은 부정적 세상에 물듦을 경계하도록 주의를 주는 시들을 살펴볼까 싶다.
워낙 세상은 다양한 인생들이 교차하는 곳이니,
자기 이익을 위하여 상대방을 해코지하는 일도 많은 곳이니 말이다.
가마귀를 뉘라 물드려 검따하며 백노를 뉘라 마전하여 희다더냐
황새다리를 뉘라 이어 기다하며 오리다리를 뉘라 분질러 자르다하랴
아마도 검고 희고 길고 자르고 흑백장단이야 일너 무삼하리오 (무명씨)
(해석)
가마귀를 누가 물들여 검다하며, 백로를 누가 하얗게 바래도록 만들어서 희다더냐.
황새 다리를 누가 이어 길다하며, 오리다리를 누가 분질러 짧다고 하느냐.
아아! 검고 희고 길고 짧고의 흑백(黑白) 장단(長短)을 따져서 무엇하랴?
* 마전하여 : 햇빛에 쬐어 흰빛이 나도록 하여
이 시조는 역시 사설시조지.
재미있는 것은 보통은 까마귀를 싫어하고 백로를 좋아하니깐,
까마귀 나쁘다 생각하는데
발상을 바꾸면 백로가 나쁜 놈일 수도 있다, 이렇게 전개하기 쉽거든.
이 시조에서는
까마귀는 검고 백로는 희다.
그런데 누군가는 까마귀는 물들여 검고 백로는 마전하여 흰 것이라 우기지.
황새는 다리가 길고 오리는 짧아.
그치만 억지부리기 좋아하는 누군가는
황새 다리도 원래 짧은데 이어서 길어 진 거고, 오리다리는 분질러 짧아진 거라 우긴대.
세상에!
우길 게 따로 있지. ㅋ
그치만, 사노라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걸 우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단다.
특히 정치가가 그렇지.
화자는 '흑백장단'을 가려서 뭐하겠느냐!
다 허무하고 무의미한 것이다!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어.
정치에 혐오감을 느낀 모양이지.
조선의 역사를 살펴보면,
자기네 편이 아니라고 상대방을 모해하여 곤경에 빠트리는 경우가 많거든.
그러려면 이런저런 말로 옭아매야 하는데,
그런 세태를 비판한 시로 읽으면 되겠다.
이 시조와 유사한 시조가 있어.
가마귀 거므나다나(검다고 하거나) 해오리 희나다나
황새다리 기나다나 올해다리 져르나다나
세상에 흑백장단은 나난 몰나 하노라(무명씨)
(해석)
가마귀가 검다고 하거나, 해오라비 희다고 하거나
황새다리가 길다고 하거나, 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하거나
세상살이의 검고, 희고, 길고, 짧은 것을 나는 몰라 하노라.
흑백장단을 나는 모르겠다.
그걸 가려서 뭐하겠느냐~는 위의 시조와,
나는 모르겠다!는 아래 시조는 쌍둥이처럼 보이는구나.
그만큼 세상이 혼란스러운 곳이었단 이야기겠지.
세태를 풍자한 시를 하나 더 읽어 보자.
발가버슨 아해들이 거믜쥴 테를 들고 개쳔으로 왕래하며
발가숭아 발가숭아 져리 가면 죽나니라 이리 오면 사나니라 부르나니 발가숭이로다.
아마도 세상 일이 다 이러한가 하노라. (이정신)
(해석)
발가벗은 아이들이 거미줄 채를 들고 개천으로 오고 가며,
발가숭아 발가숭아, 저리 가면 죽고 이리 오면 산다하고 부르는 것이 발가숭이로다.
아마도 세상일이 다 이처럼 속고 속이는 것인가 하노라.
이 시의 재미는 '발가버슨 아이들'을 가리키는 '발가숭이'가
'고추잠자리'를 가리키는 '발가숭이'와 동음이의어가 되어
앞의 발가숭이가 뒤의 발가숭이를 잡으려 한다는 말이 된다는 점에 있어.
세상사는 이렇게 비슷한 존재끼리 서로 속이고 속는 것이라는
왠지, 씁쓸하구만~ 이런 어조로 읊은 시가 되겠지.
세태를 풍자한 대표적인 시조로 문제에 잘 등장하는 편이란다.

가마괴 눈비 마자 희난 듯 검노매라
야광(夜光)명월(明月)이 밤인들 어두오랴
님 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이야 변할 줄이 이시랴. (박팽년)
(해석)
까마귀가 눈비를 맞아 희어지는 듯하다 다시 검어진다.
밝은 달이 밤이라고 해서 어두울 리가 있는가?
임금(단종)을 향한 한 조각 붉은 마음이야 변할 수 있겠는가?
다시 까마귀 이야기.
시조를 보면 까마귀가 정말 많이 등장해.
박지원의 이야기를 봐도,
까마귀는 검지만은 않다, 는 주장을 하거든.
까마귀를 보면 붉고 푸르며 누런 빛들이 모두 반짝이는데 사람들은 '검다'고 표현한다는 거지.
세상의 다양성을 살려 읽지 못하고,
제 눈에 비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여 '고정'시키는 사태의 문제점을 지적하려 한 것이겠지.
이 시에서는
까마귀가 눈을 맞아 희어지는 듯 하지만 다시 검어진대.
까마귀의 본질은 검은데,
눈비를 맞아 잠시 희어지는 듯 하지만 본질은 바뀌지 않는단 거지.
아마도 까마귀는 수양대군을 가리키는 듯 해.
조카를 죽이고 임금이 된 세조 말이야.
원래 음흉한 까마귀인데, 잠시 희어지는 듯 하지만, 본질은 시꺼먼 놈이란 비아냥이 들었지.
야광주는 밤이라도 어두워지지 않는 구슬이지.
까마귀의 빛이 변치 않고 드러나듯,
야광명월은 아무리 어두워도 변치 않고 빛나는 거야.
그러니 화자의 단종 임금을 향한 일편단심(한 조각 붉은 마음)은 변함이 없다는 충성의 표현이지.
초장의 '가마귀'는 '세조를 지지하는 세력'을 가리킬 수도 있고,
중장의 '야광 명월'은 '단종을 잊지 못하는 세력'이고 말이지.
왕조 시대에는,
이렇게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 중요했을 거다.
그에 따라서 출세를 하기도 하고, 귀양을 가기도 하고 했으니 말이야.
이렇게 꼿꼿했으니 세조가 권력을 잡았다고 굽히지 않았지.
그래서 역모를 꾸미고 고문당하다 죽게 되는데, 아버지, 동생, 아들까지 다 죽였대.
그치만 며느리가 손자를 잘 숨겨둬서 후손이 전한다는구나.
왕조 시대는 '왕'의 안존을 위하여 참 비극적인 일도 잘 꾸몄다 싶어.
가마괴 디디는 곧애 백로야 가디 말아
희고 흰 긷헤 거믄 때 무칠셰라
딘실로 거믄 때 무티면 씨을 낄히 업사리라 (이시)
해석
가마귀 발 디디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희고 흰 깃털에 검은 때 묻힐세라.
진실로 검은 때가 한번 묻으면 씻을 길이 없으리라.
이 시조는 어렵지 않지?
까마귀는 전형적인 '악'의 대표,
백로는 '선'의 대표자인 거야.
청렴결백을 모토로 삼았던 학자에게
검의 때가 묻으면 그것을 씻는 길은 참으로 어렵고 먼 길이라
그런 세상을 경계하며 깨끗한 이는
더럽히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시조야.
'근묵자흑, 근주자적'이란 한자 성어가 있단다.
먹을 가까이 하면 저절로 검게 되고,
인주를 가까이 하면 저절로 붉어 진다.
주변의 친구나 상황에 따라 사람들은 때가 묻기도 하고 더러워지기도 하는 법이지.
가마귀 검거라 말고 해오리 셸줄 어이
검거니 셰거니 일편도 한져이고
우리도 수리두로미라 검도셰도 아녜라
* 검거라 말고 : 검다고 비웃지 말고
(해석)
까마귀 검다고 하지 말고, 해오라기 희다하지 말 것을
검거나 희거나 너무 치우쳐 외곬수로구나.
우리는 수리두루미처럼 검지도 희지도 않기를....
까마귀가 검다고 비웃고 욕을 했나봐.
아, 저놈은 엄청 더럽고 치사한 놈이야~ 이러고.
해오라기는 희고희다고 했는데 어이하랴~
검고 흰 것이 <일편 :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침>하구나.
우리는 수리두루미처럼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자는 이야기를 권하고 있어.
세상은 너무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 피해를 입는 경우도 많거든.
그렇지만, 또 양쪽으로 나뉘어 싸우는 일도 많아서
그것의 중도를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단다.
어렵지만, 치우치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시조겠지.

가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것치 거믄들 속좃차 거믈소냐
것 희고 속 거믄 즘생은 네야 긘가 하노라(이직)
cf) 이본(異本)에서는 종장이 '아마도 것 희고 속 검을슨 너 뿐인가 하노라'로 되어있는 곳도 있다.
(해석)
까마귀가 겉보기에 검다하고, 해오라기야 비웃지 말아라.
비록 겉이 검을지라도 속마음까지 검을쏘냐?
겉이 희면서 속이 검은 짐승은 바로 너인가 하노라.
이 시조가 가마귀 시조의 대표작이지.
겉이 검은 가마귀,
겉이 흰 백로.
그러나 중장에서 <가마귀는 겉이 검지만 속조차 검겠는가>하며 반전을 기하지.
종장에선 대놓고 백로를 비판해.
<겉 희고 속 검은> 너야말로 비판의 대상이야!
알겠어?
겉만 흰 척 하지마!
우린 다 알고 있다고!!! 이런 말이야.
이 시의 작가 이직은 조선의 개국 공신이야.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될 때,
고려 유신들은 절의를 지킨다면서 <맥수지탄>의 노래를 부르곤 했지.
새 왕조의 개국 공신들에게는 강한 비판을 던지고 말이야.
개국 공신으로서 <가마귀> 처지가 된 화자.
절의를 지킨다는 <백로>들이야말로,
이적지 고려 왕조에서 부유층으로, 귀족으로 배불리 잘 먹고 잘 살았으면서,
그야말로 썩어빠진 고려 왕조의 몰락에 기여한 공이 큰 넘들이면서,
우리를 비웃는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이러는 시조란다.
늘 조국의 안위를 걱정하는 우국지사인 체하는 인사들은
시대가 불안할수록 더 많은 법이지.
자기가 살아 남으려고 남들을 욕하는 자들 말이야.
가마귀 싸호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셩낸 가마귀 흰 빗츨 새올세라
청강에 조히 씨슨 몸을 더러일까 하노라(정몽주 모친)
해석
까마귀들이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말아라.
성이 난 까마귀들이 새하얀 너의 몸빛을 보고 시기하고 미워할세라.
맑은 강에서 깨끗이 씻은 너의 결백한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정몽주 모친이 자식을 백로에 비유했어.
까마귀 옆에 가면 흰 빛을 시샘할까 두렵구나.
맑은 강에 깨끗이 씻은 몸이 더러워질까 두렵다고 했는데,
역시 백로 정몽주는
까마귀 이방원의 무리에게 당하고 말지.
이런들 엇더하며 져런들 엇더하료
만수산 드렁츩이 얼거진들 긔 엇더하료
우리도 이갓치 얼거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이방원)
이렇게 '하여가'를 부르며 회유하는 이방원에게
거부의 뜻으로 남긴 '단심가'는 정말 유명하지.
이 몸이 죽어죽어 일백 번 고쳐 주거
백골이 진토되야 넉시라도 잇고 업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정몽주)
결국 정몽주는 돌아가는 길에 선죽교에서 제거되고 만단다.
세상 만사가 그런 거야.
필요하면 쓰고,
반대하면 버리고...
비정한 시장통 같은 곳이지.
비장성시라고 하던가.
검으면 희다 하고 희면 검다 하네
검거나 희거나 올타하리 전혀없다
찰하로 귀먹고 눈감아 듣도보도 말니라 (김수장)
(해석)
검으면 희다하고 희면 검다하네.
검거나 희거나 간에 옳다할 사람 전혀 없다.
차라리 귀먹고 눈을 감아 듣지도 보지도 말리라.
세상사람들은 이렇게 남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거야.
검은 걸 희다고 우기지.
흑백간에 옳다고 인정해주는 이가 전혀 없대.
그러니 차라리 귀멀고 눈감아 듣고 보지 않겠대.
아, 얼마나 세상에 회의적인지...
얼마나 세상에 대하여 염세적인지...

구룸이 무심탄 말이 아마도 허랑하다
중천에 떠이셔 임의로 다니면서
구태야 광명한 날빗츨 따라가며 덥나니 (이존오)
(해석)
구름이 사심(邪心)이 없다는 말이 아무래도 허무맹랑하다.
하늘에 높이 떠 있어(떠서) 제멋대로 다니면서
하필이면 구태여 밝고 밝은 햇빛을 따라가며 덮는단 말인가?
고려는
왕조 국가였지만,
지방의 귀족들이 상당한 패권을 가지고 있던 국가였던 모양이야.
상대적으로 왕권은 약화되었겠지.
조선에 비하면 왕권이 약하던 고려는,
몽고의 침략 이후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단다.
고려 말, 새로운 사상으로 성리학이 들어오게 된다.
성리학은 '자신을 꼿꼿하게 가다듬는 철학'이기도 하고,
'세상을 다스리는 경륜의 철학'이기도 했지.
출세하기 전에는 '위기지학'으로서 자신을 가다듬고,
세상에 나간 다음엔 '위인지학'으로서 세상에 올바른 정치를 베푸는 것이야.
출세하기 전의 '사'와 출세한 뒤의 '대부'로서의 <사대부>가 새로운 세력이 되고,
이성계 역시 그런 신진 세력의 의지를 틈타 임금자리를 얻게 된 것이고.
흔들리던 고려 말,
공민왕 때 개혁가 신돈이란 사람이 있었단다.
그는 승려였지만 고려는 불교국가였으니 승려가 주요직책에 오를 수 있었지.
공민왕은 신돈을 꽤 믿었던지 신돈의 개혁 정책에 힘을 실어주었지.
그는
토지개혁 관청을 두어 부호들이 권세로 빼앗은 토지를 각 소유자에게 돌려주고,
억울하게 노비가 된 자들을 해방시켰으며,
국가 재정을 잘 관리하여 민심을 얻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그렇지만 귀족국가 고려의 부호 세력들은
그의 개혁 정책이 달갑지만은 않았겠지.
결국 신돈은 제거되고, 역사 속에는 <나라를 망친 요망한 승려>로 남게 된다.
역사는 패자에게 먹칠을 하는 경우가 많단다.
백제 의자왕이 삼천궁녀랑 놀아 나다가 나라를 망쳐 먹었다는 둥,
(실제 의자왕은 성실한 왕이었대.)
신라 경순왕이 맨날 술이나 마시며 포석정에서 놀았다는 둥,
승자 위주의 역사 서술을 하곤 하지.
이 시조는 고려 말의 '신돈'을 풍자한 시조래.
구름이 '무심'하다고 하지만,
정말 욕심없는지... 아닌 것 같다고 의문을 제기해.
하늘 가운데 멋대로 다니는 구름은, (신돈이 임금의 총애를 받고 활동이 많은 걸 비꼬는 거지.)
구태여 밝은 햇빛을 따라다니면서 덮는 존재라고 하고 있단다.
역사 서술에 남은 어떤 것이 신돈의 본모습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빠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개혁에 반대하다가 투옥까지 된 작가가
신돈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쓴 시가 아닌가 싶어.
오늘 다룬 시조들은,
혼탁한 세태에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 시조들로 엮었다.
흑백을 가리기 어려운 곳이 세상이고,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제거하려는 곳이 세상이야.
암튼,
돌다리도 두드려보면서
조심조심 건너야 하는 곳이 세상이란다.
이 시조들이 들려주는 함축적 의미를 두고두고 곱씹어 볼 필요가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