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거리의화가의 서재 (거리의화가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ue, 03 Nov 2026 09:08:19 +0900</lastBuildDate><image><title>거리의화가</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155161733379275.jpg</url><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거리의화가</description></image><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괴델, 에셔, 바흐</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609906</link><pubDate>Mon, 02 Nov 2026 21: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60990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16382&TPaperId=1760990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328/50/coveroff/897291638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1328/50/cover150/897291638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3285054</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버지니아 울프: 디 에센셜 - [디 에센셜 버지니아 울프 (무선 보급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606931</link><pubDate>Sun, 01 Nov 2026 11: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60693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72929&TPaperId=1760693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852/58/coveroff/893747292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72929&TPaperId=1760693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디 에센셜 버지니아 울프 (무선 보급판)</a><br/>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22년 01월<br/></td></tr></table><br/>무언가 모르게 장벽처럼 느껴지는 작가들이 있는데 버지니아 울프가 그랬다. 그래서 그동안 계속 작품을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쌓아두고 있었다가 묵혀둔 이 책부터 시작해야지 하며 읽었다. 대표작인 &lt;자기만의 방&gt;을 비롯해 다양한 단편을 싣고 있어서 작가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내 기대를 충족시켜주었다.<br><br>울프는 19세기 말에 태어나 20세기 초까지 살며 다양한 작품들을 남긴 작가다. 아버지는 당대 영국 인명사전을 편찬할 만큼 최고의 지식인이자 에세이 작가로 이름을 날렸던 만큼 울프는 지식인의 삶을 곁에서 보고 자랄 수 있는 환경에서 성장했다. <br><br>울프가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에세이가 실려 있는데 ‘집안의 철학자 레슬리 스티븐‘이다. 그녀에게 아버지는 철학자로 비췄던 모양이다. 울프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읽노라니 내 눈에 비친 아버지는 어떤 모습인지 떠올리게 되었다. 어릴 때는 그 시절 보통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내게는 고지식하고 완고했던 가부장이었다. 시간이 흘렀어도 기본적인 스타일은 변하지 않았지만 나이가 들며 조금 바뀐 면도 있다.  <br>울프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고 인생 선배, 지식인이었던 아버지로부터 많은 지침을 얻기도 했다. 무엇보다 작가기도 했던 아버지에게 글쓰기 비법을 얻을 수 있었던 점도 있었다. ‘되도록 적은 단어로 되도록 명료하게 의도하는 바를 정확히 쓰는 것‘이 좋은 글쓰기의 비법이라는 지침은 내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글을 쓰다 보면 주제를 놓친 채 장황하게 늘어놓기 쉽다. 명료하고 간결하게 쓰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개인적으로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진 글이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다. 어제 신문을 읽으면서 AI가 던져주는 글은 결이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보기도 했다(요즘은 AI의 도움을 많이 얻으며 레포트를 내서 교수나 편집자들이 비슷한 글들을 읽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이 상당한 스트레스가 된다고 한다). <br><br>&lt;유산&gt;에서는 길버트 글랜던이라는 남자를 만났다. 길버트 글랜던은 사고로 아내인 안젤라를 잃었다. 아내가 떠난 뒤 그는 그녀의 일기장에서 B.M.이라는 남자와의 묘한 관계에 대해 알게 된다.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아내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br>˝용기를 내서 마침내 길버트에게 얘기했다. 그는 아주 친절하게도 기꺼이 도와주었다. 조금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는 그 대화를 떠올렸다. 그녀는 자신이 너무 나태하고, 너무 쓸모없다고 느낀다고 했다. 자신의 일을 갖고 싶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바로 저 의자에 앉아 이 말을 하면서 아주 귀엽게 얼굴을 붉혔던 것이 기억났다. 그는 가벼운 농담을 건넸다. 당신이 나를 돌봐주고 가정을 꾸리는 것만으로도 할 일이 충분하지 않소? 그렇지만 당신에게 즐거움을 준다면 물론 반대하지 않겠소. 무슨 일이라고? 어느 구역에서? 어떤 위원회라고? 다만 당신이 아프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해요.<br>아내는 일을 하고 싶어했다. 이 사연을 보면서 나는 여동생을 떠올렸다. 여동생은 이른 나이에 결혼 후 가정주부가 되었고 아이를 곧바로 낳아 엄마가 되었다. 아이 둘에 시아버지를 모시며 20 여년을 훌쩍 넘게 살았다. 결혼하며 사는 동안 빠듯한 살림에 자신의 일을 하고 싶어했지만 제부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못내 답답했고 화가 났다. 여러 번 불만을 토로했지만 대놓고 제부에게 이야기를 건네지는 못했다. 사실 지금까지도 그래서 제부와는 사이가 껄끄럽다. 인사를 하곤 하지만 그 찜찜함이 내 안에 남아 볼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 <br><br>19세기 런던 최고의 지식인 계층에서 태어나 지적 문화를 향유했던 울프였지만 당시 대다수의 여성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숨기며 ‘보이지 않는‘ 삶을 살았다. &lt;V양의 미스터리한 일생&gt;에서도 그런 대다수의 여성 중 한 사람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br><br>&lt;벽에 난 자국&gt;, &lt;큐 식물원&gt;은 묘사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lt;벽에 난 자국&gt;은 대체 벽에 난 자국이 무엇인지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추리하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lt;큐 식물원&gt;은 식물원을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는데 사실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마치 수채화를 보는 듯 인상적인 인 기법을 통해 묘사한다. <br><br>&lt;웃음의 가치&gt;나 &lt;질병에 관하여&gt;, &lt;여성의 직업&gt;은 서로 다른 이야기지만 같은 맥락으로 이어지는 글이다. &lt;웃음의 가치&gt;에서 울프는 웃음이 쉽사리 평가 절하되는 상황에 대하여 칼날을 겨눈다. 이는 진지한 체하는 정신이 훌륭하다는 남성적인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여성과 아이들은 예술에서 희극적 태도를 중요시하는 것처럼 일상을 살아간다. 물론 삶이 비극만으로 구성되지 않지만 웃음을 통해 삶의 균형 감각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br>&lt;질병에 관하여&gt;에서는 몸에 대한 기록이 부족함을 이야기하며 지성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감각에 대해서는 등한시하는 것에 대하여 비판을 가한다. <br>&lt;여성의 직업&gt;에서는 빅토리아 시대 집안의 천사(?)였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하며 여성이 자신의 일을 가져야 함을 말하고 있다. 앞으로도 여성들 앞에 많은 유령과 방해물이 가로막겠지만 그럼에도 계속 나아가야 한다고.<br><br>대표작인 &lt;자기만의 방&gt;은 케임브리지 대학 내 여자 대학인 거턴과 뉴넘에서의 강연을 토대로 나온 작품이다. 워낙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작품이라 읽지 않았음에도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결론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 과연 이를 어떤 방식으로 끌어낼지가 궁금했다. <br>여성이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려면 연간 500파운드의 ‘고정 수입‘과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을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예전보다 여성이 직업 세계에 진출하고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아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일과 가사(살림, 육아)를 병행하기란 쉽지가 않은 상황에서 약 100 여 년 전 이런 글을 썼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br><br>뿐만 아니라 여성이 가져야 한다고 여기는 고정적인 편견들에 대해서도 가감 없는 말을 던진다. <br>여성은 평정을 지켜야 한다고 흔히들 생각한다. 그러나 여성은 남성들이 느끼는 것을 똑같이 느끼며, 자신들의 남자 형제들처럼 자신의 능력을 훈련하기를 바라고 자신의 노력을 기울일 활동 영역을 요구한다.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지나치게 엄격한 통제와 절대적인 침체에서 고통받는다. 여성은 푸딩을 만들고 양말을 짜며 피아노를 치거나 가방에 수를 놓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고 보다 많은 특권을 누리는 동료 남성들이 말한다면 그들은 도량이 좁은 것이다. 만일 여성이 관습적으로 자신들에게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것 이상을 배우려고 하거나 더 많은 일을 하려고 해도 그들을 나무라거나 비웃는 것은 분별없는 일이다.<br><br>당시 여성 작가들은 얼마 없었던 만큼 출간된 글들은 남성 작가들의 시선에 의해 좌우되었다. 문학 속에 여성들 간의 관계는 지나치게 단순했다. 대부분 여성들의 모습은 남성과 맺는 관계를 통해서만 제시되었는데 이는 남성의 여성에 대한 이해가 편파적이고 제한되어 있음을 의미했다. <br>울프는 앞선 여성들의 글을 보면서 배울 점은 배우고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당시 대부분의 여성 소설가들은 남성의 생활을 동경하거나 모방하여 남성의 시선에 의하여 글을 내놓았다. 반면 제인 오스틴이나 에밀리 브론테 등은 여성이 여성의 정체성으로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 작가이기에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울프는 여성 소설가들이 자신의 성의 한계를 용감하게 인정함으로써 탁월한 경지에 이르기를 열망할 수 있다고 말했다. <br><br>결론적으로 ˝아무리 사소한 것이든 아무리 광범위한 주제든 그냥 써라!˝라는 말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말이다. <br>내가 쓴 글이 너무 보잘 것 없어 보여서 타자를 치기를 망설이거나 그만두지 말고 용기를 내 써보라는 것이다. <br><br>울프의 말은 지금도 현시성을 가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여성의 삶이 계속되는 한 이는 앞으로도 계속되지 않을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852/58/cover150/893747292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8525836</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만물은 서로 돕는다 - [만물은 서로 돕는다 -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601223</link><pubDate>Thu, 29 Oct 2026 22: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60122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828287&TPaperId=176012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5/73/coveroff/899082828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828287&TPaperId=1760122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만물은 서로 돕는다 -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a><br/>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 지음, 김영범 옮김 / 르네상스 / 2005년 04월<br/></td></tr></table><br/>촉망받는 지리학자가 스위스 여행 중 아나키즘 노조 사람들과 만나면서 아나키즘 사상에 영향을 받고 러시아에 돌아와 혁명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로 인해 체코 감옥에 수감되었는데 그와중에 탈출해서 사회주의 아나키즘 운동에 매진했다. 이 책을 쓴 크로포트킨의 이야기다.&nbsp;<br>현대 사회에서 다윈의 진화론은 지금까지 많은 영향을 끼친 이론이자 사상이다. 아주 오랫동안 그 이론은 생존경쟁 과정에서 약자와 강자에 의한 약육강식이 벌어진다는 논리로 인종 차별과 인간 중심주의로 해석되었다. 최근 들어 그 해석에 반기를 들며 다양한 주장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 같다. 크로포트킨은 그 시절 이미 다윈의 이론에 대한 해석이 오해에서 비롯된 통념이라고 주장했다(상호부조가 진화를 낳게 하는 진보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nbsp;<br>진화를 주제로 유럽 대륙에서 최근에 발표된 중요 저작들은 대부분 생존경쟁에서 나타나는 두 가지 양상을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첫 번째는 외부적인 전쟁으로, 이는 혹독한 자연조건에 대한 투쟁 혹은 경쟁 관계에 있는 종에 맞서 벌이는 투쟁을 말한다. 두 번째는 내적인 전쟁으로, 이는 같은 종 내에서 생존 수단을 놓고 벌이는 투쟁을 가리킨다. 생물학자들은 또 진화에 있어서 내적인 전쟁이 벌어지는 범위나, 이것이 진화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모두 과장되었다고 지적했는데, 이는 다윈 자신도 상당히 뼈아프게 인정한 부분이기도 하다. 반면에 종의 번영을 성취하는 데 동물들의 사회성이나 사회적 본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다윈도 이미 인정한 바 있는데도, 오히려 그의 뜻과는 달리 과소평가되었다. ...당대의 사상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대중들이 인간사회 제도의 진화에 거의 관심을 갖지 않으며, 또한 대중은 무기력할 뿐이어서 인간사회 제도의 진보는 정신적, 정치적, 군사적 지도자들에 힘입은 것이라는 주장을 여전히 고수하는 경향이 있다. - P7<br>그는 오히려 고대부터 현대까지 인간은 상호부조하는 과정에서 진화했다고 말한다(진화 과정에서 동물이나 인간들 사이에 보이는 도움은 사랑이나 동정이 아닌 상호부조나 상호지원에서 얻어지는 힘이다). '오?' 나같이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하는 놀라움이 일었다. 이 책을 사게 된 계기는 솔직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어떤 책을 읽다가 장바구니에 담은 것 같은데 항상 장바구니에 담을 때 어떤 계기로 담았는지 적어둬야지 하면서도 매번 지나치곤 한다. 아무튼 그렇게 읽게 된 책이다.<br>이 책은 동물의 상호부조부터 역사적 흐름에 따른 인간의 상호부조에 대해 다양한 사례를 들어 독자를 설득시킨다.&nbsp;<br>동물계에서는 진화의 단계마다 군집을 발견하게 된다. 군집은 순전히 자연적인 성격을 잃게 되어 더 이상 단순한 본능에 따르지 않고 이성에 의해 이루어진다. 더 고등한 척추동물들은 주기적으로 군집을 이루고, 군집에 의존해서 주어진 욕구, 즉 종의 번식, 이동, 사냥이나 상호 방어 등을 충족한다. 군집은 임시적으로도 이루어진다. - P82~83동물은 집단 생활 속에서 동정심을 배우는데 이는 감수성과는 다른 더 높은 수준의 도덕에 의한 감정이다. 동물은 경쟁에 의한 충돌이 아니라 기후나 전염병에 의해 더 큰 피해를 입는다.&nbsp;<br>고대인은 이동생활을 하다가 정착 생활을 하게 되면서 군집을 이끌 새로운 조직이 필요하게 되었다. 공동체는 특정한 규율 하에 공동작업을 했으며 공동체에 피해를 주는 자에게는 사법절차에 따라 처벌을 했다. 다양한 부족들의 상호부조 사례가 나오는데 그중 나는 특히 카바일족의 상호부조가 인상적이었다. 카바일족은 이미 사적인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그들 사이에는 분명히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모두 존해했다. 하지만 가깝게 함께 살며 어떻게 빈곤이 시작되는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가난을 모든 사람에게 찾아올 수 있는 일종의 사고로 여긴다. 가난한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부자들은 그들의 논밭에서 일을 해준다. 마찬가지로 가난한 사람은 답례로 자기 차례에 일을 해준다. 더욱이 젬마에서는 가장 가난한 사람이 쓸 수 있도록 공동으로 경작하는 정원이나 논밭을 따로 떼어 놓는다. ... 카바일 마을에 들어온 모든 이방인들은 겨울에 집을 지을 권리를 갖게 되고 24시간 동안 공유지에서 말들이 항상 풀을 뜯을 수 있다. 필요학다면 이방인은 거의 무제한적인 지원을 기대할 수도 있다. - P181~182이후 공동체가 국가적 규모로 커져 국가법이 만들어졌음에도 부족 공동체의 민회와 관습법은 유지되었다.<br>중세 시기 전사집단의 수장들은 법과 권리를 통해 세력을 얻어 확장해나갔다. 그들은 잘못된 행위를 적절하게 복수하는 행위를 정의라 내세웠는데 이는 앞선 부족 단계에서 발전된 것이다. 부족이나 동맹마다 관습법이 달라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는 과거의 법을 존속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벌금은 공동 설비나 방어를 위한 일에 사용되었다. 자유도시가 등장하면서 동맹회, 협동단체, 친목회 같은 조직들이 만들어진다. 조직을 통한 상호지지와 자유 추구는 유럽을 새로운 모습으로 바꾸었다. 이는 길드라는 새로운 모델이었는데 구성원들은 서로를 형제나 자매로 부르고 대우하며 평등하게 대했고 공동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했다. 중세도시는 지역에 의한 세대주들과 직업에 따라 서약을 맺은 길드 구성원들인 이중의 연합체로 구성되었다. 중세도시는 개인의 자유, 자치 경영권을 존중하면서도 공동체 내에서는 평화를 바탕으로 한 상호부조로 굴러갔다.&nbsp;<br>중세도시는 특히 수공업길드가 중심이 되었다. 수공업길드의 구성원들은 상인이면서 수공업자들이었고 수공업 장인들은 길드를 상대로 물건을 만들어 조합인들을 위해 제품을 만들었기에 품질에 책임을 지면서 장인 정신을 발휘했다. 중세인들은 장인 정신을 존중했기에 제품을 믿고 샀다. 기본적으로 길드는 독립적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교회는 신권을 유지하기 위해 왕이나 황제에 빌붙으며 중앙집권화된 정치를 발달시켰다. 영주는 도시가 자리잡지 않은 곳에 영지를 확보하고 농노들의 노동력을 이용해 왕실을 위한 요새 도시로 만들어 기사들을 위한 땅을 분배하고 상인들을 위한 권리를 확보했다. 이 영역이 커지면서 점차 국가화되었다. 국가는 길드의 독립성을 침해하기 시작했고 이에 길드 구성원들의 불평이 증가하며 농민, 시민들이 봉기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도시는 농업을 무시하고 상공업의 부를 기반으로 성장했기에 점차 농촌, 지방과 멀어지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실제로 전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nbsp;<br>점차 중앙집권화되는 국가 체제에 맞서 촌락 공동체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에 저항하는 투쟁이 있었다. 그래도 19세기 초반까지 스위스,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지에서 촌락 공동체(의 공유 제도)는 보편화되어 있었으며 그들은 촌락 공동체 생활에서 유래된 습속을 유지하며 생활했다. 그러나 대세는 거스를 수 없었다. 국가는 공유자를 압박해 분할을 집행하거나 땅을 사적으로 전유하도록 부추기면서 점차 공유 경제는 무너지고 촌락 공동체는 힘을 잃었다.&nbsp;<br>근대 시기 길드를 이은 것은 노동조합이었다. 노동조합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공동으로 투쟁하며 때론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다양한 목적을 위해 노동조합끼리 자유롭게 연합을 맺고 협동했다. 그밖에 모든 가능한 방면으로 공동 행위를 위해 만들어진 무수한 사회집단들이 있었다. 국가는 개인 집단 위에 군림하며 동맹을 저항으로 받아들였으나 노동자들은 다양한 위장으로 노동조합을 만들고 단결했다. 때로 정치 활동을 통해서 투쟁하기도 했다.&nbsp;<br>중앙집권국가의 파괴적인 권력도, 고상한 철학자나 사회학자들이 과학의 속성으로 치장해서 만들어낸 상호증오도 무자비한 투쟁이라는 학설도 인간의 지성과 감성에 깊이 박혀 있는 연대의식을 제거할 수는 없다. 모든 인간의 연대감이란 앞선 진화 과정 속에서 자라난 것이기 때문이다. 최초의 단계부터 진화를 거듭하며 얻어진 연대감이 마찬가지로 진화 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가지 양상 가운데 단 한 가지 요인 때문에 극복될 수는 없다. 최근에 작게는 가족이나 빈민가에 사는 이웃들 그리고 촌락이나 노동자 비밀 결사 형태로 숨어들었던 상호지지와 지원에 대한 욕구는 근대 사회에서도 다시금 거듭 주장되었고, 늘 그래왔던 것처럼 미래의 진보에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면서 그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 P339<br>결론적으로 저자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동물은 연합하여 자연 조건에 맞선 투쟁을 위한 최고의 무기로 삼았다. 인간도 씨족을 시작으로 종족, 종족끼리의 연합, 국가로 확대되며 상호부조의 원리 하에 진보했다. 상호투쟁보다 상호지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의 윤리적인 진보라는 개념 때문이라고. 이처럼 자연 하에 동물, 인간이 서로 협력하고 연합하여 상호부조했다는 사실을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개인적으로 진보와 윤리라는 개념이 서로 합이 맞기란 쉽지는 않아 보인다. 그래도 이런 낙관적인 해석을 시도한 경우가 있었다는 것을 챙겨 가려고 한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5/73/cover150/899082828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57348</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 -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598761</link><pubDate>Wed, 28 Oct 2026 20: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59876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22030703&TPaperId=1759876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793/89/coveroff/k62203070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22030703&TPaperId=1759876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a><br/>안드레아스 말름 지음, 추선영 옮김 / 두번째테제 / 2025년 07월<br/></td></tr></table><br/>지난 여름부터 시작해 장장 4개월에 걸친 팔레스타인 주제 독서 읽기 모임이 이번 달로 끝이 났다. 마지막 주인공은 이 책이다. <br><br>저자는 팔레스타인의 파괴와 지구의 파괴는 그 연관성의 간격이 갈수록 엷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어째서인가. <br><br>1840년은 중동과 기후 체계 모두에 역사상 중추적인 해였다. 대영제국은 그해 처음으로 주요 전쟁에 증기 함정을 투입했다. 증기력 기술이 도입된 이후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이 시작되었다. 증기 엔진을 돌리는 연료는 석탄이었다. 영국의 산업을 통해 확산된 증기력은 영국을 최초의 화석연료 경제국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러나 증기력이 영국 제도 내부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그것은 절대로 기후에 각인되지 않았을 것이다. 영국이 지구의 운명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증기력이 나머지 세계로 수출되어 인류가 대규모 화석연료 내연기관의 소용돌이로 끌려 들어간 덕분이었다. - P43<br><br>영국의 산업혁명이 근현대에 미친 영향은 컸다.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산업 시스템의 동력이 그것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기후 문제도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볼 수 있다. 다만 중동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 1840년 영국이 증기 함정을 투입한 곳이 레바논과 팔레스타인 해안이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당시 이집트의 최고 집권자인 알리의 중동 세력 확대에 위협을 느끼고 전쟁을 선언한 것이다. 알리는 고위층 귀족으로 오스만제국에 충성을 해야 했으나 술탄은 그의 세력 확대에 위협을 느꼈다. 영국은 부상하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 오스만 제국의 안정이 필요했다. 게다가 오스만제국은 자유무역협정 이후 영국의 주요 수출터인 곳이기도 했다. 알리는 아랍 땅에 화석 제국을 건설하고자 했으나 영국 제국주의에 힘에 가로막혔다. <br><br>1830년대 말 영국에서는 기독교 시온주의가 급증하던 터였다. 1840년 대영제국의 주요 설계자인 파머스턴 경은 유대인에 의한 팔레스타인 식민지화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이스탄불 대사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서한을 발송한다. <br>이 유대인들을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시도하기 바랍니다.<br>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귀환하여 땅을 사들이도록 격려하고 그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지극히 분별력 있는 처사일 것입니다. ... - P74<br><br>당시 팔레스타인은 비옥했으나 사람이 없는 땅이었다. 시온주의자들은 ‘사람이 없는 땅은 땅이 없는 민족을 위한 것‘이라는 구호에 따라 팔레스타인 땅에 모여들었다. 유럽의 반유대주의의 뿌리는 오래 되었고 시온주의의 기원도 이처럼 더 이른 시기에 시작되었다 할 수 있다. 다만 시온주의가 그저 제국에서 생겨나고 정작 유대인은 시온주의 프로젝트에 설득당했을 뿐일까 하는 의문점은 남았다(이스라엘의 행위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br><br>1917년 영국의 팔레스타인 통치가 시작된 이후 1947년, 1967년을 거쳐 서구가 지원하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정착민 식민주의를 시행한다. 이 책은 팔레스타인 파괴 과정은 아주 간략하게 다루고 앞서서 말한 것처럼 화석 자본에 의한 제국주의의 확대 과정으로 인한 지구의 파괴 단계에 더 주목한다. <br>저자가 팔레스타인 현안을 기후라는 문제와 연결시킨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이 나크바를 지구라는 하나의 행성 전체로 확장한 문제로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파괴되고 있는 것은 하나의 조국이 아니라 지구라는 하나의 살아갈 만한 행성 전체이다(P175). 현재의 기후 위기에 저항해야 하는 것처럼 팔레스타인 문제에 저항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라는 이야기다. 일견 이해되는 면도 있으나 그대로 대응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기존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현안을 다룬 책들과는 다른 전략을 썼기에 차별화되는 면이 있다. <br><br>2023년 10월 7일 알아크사 홍수 작전으로 팔레스타인 공동체의 인적, 물적 파괴가 심각해졌다. 하마스의 작전 수행 중 민간인의 피해가 있었기에 그를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섣부른 선택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팔레스타인이 수행하는 모든 일이 옳은 것은 아닐 테니까. 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과 이를 동조하는 세력의 책임이 무마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민간인에 피해를 분명 입혔으니까. <br>뒷부분은 저자의 주장인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에 대한 내용, 이스라엘이 유럽과 미국 등 서구에 로비를 했다라는 로비설 등에 대한 반론과 이에 대한 저자의 답변이 실려 있다. <br><br>4개월에 걸쳐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읽으며 공부했다.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그들의 역사와 문제를 이번 기회에 조금 더 상세히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팔레스타인의 역사는 한국의 역사와도 좀 겹치는 면이 있다고 생각되어서인지 갈수록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생각하면서 읽었다. 그렇다고 해서 앎과 실천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렇게 책을 읽고 나누는 것이 현재로선 내가 최소한으로 할 수 있는 실천적 범위가 아닐까 생각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793/89/cover150/k62203070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7938988</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어제의 세계 - [어제의 세계]</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596567</link><pubDate>Tue, 27 Oct 2026 20: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59656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130410&TPaperId=1759656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75/8/coveroff/k182130410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130410&TPaperId=1759656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어제의 세계</a><br/>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노은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08월<br/></td></tr></table><br/>19세기 사람들은 자유주의적 이상주의 속에서 자신들이 '온 세상 최고의 세계'를 향해 곧고 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확신했다. - P28<br>19세기 유럽인들은 자유주의와 산업혁명에 의한 진보 속에 하루 하루를 낙관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전 세계만 해도 두터운 신분제 하에서 고정된 방식에 갇혀 지냈던 사람들이 최소한 더 나은 자유 속에 평등을 꿈꾸는 일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동적인 자유주의와 낙관주의 속에 살았던 그들은 창밖에서 동터오는 새로운 하루하루가 우리의 삶을 산산조각 낼 수도 있다는 것을 예감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들이 겪었던 가장 암울한 밤에도 그들은 인간이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 존재인지 꿈에도 알지 못했고, 마찬가지로 인간이 얼마나 강인하게 위험을 견뎌내고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지도 상상하지 못했다(P62).&nbsp;<br>좋은 책이 최고의 대학을 대신한다는 에머스의 공리는 내게 지금도 변함없이 유효하다. 사람은 굳이 대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심지어 김나지움을 나오지 않고서도 뛰어난 철학자나 역사학자, 문헌학자, 법학자, 혹은 그 밖의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나는 여전히 확신한다(P166).&nbsp;그는 어릴 적부터 좋은 책을 읽으며 기초 체력을 키웠다. 그렇다고 해도 정말 남다르긴 했던 것 같다. 그는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첫 시집을 써내 출판사로부터 계약을 따냈으며 시집에 릴케로부터 헌사가 적힌 답장을 받았다. 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당대 최고 작곡가였다는 막스 레거가 시집 속에서 선택한 6편의 시에 붙인 곡이 연주장에서 연주되기도 했다.이후 그는 &lt;노이에 프라이에 프레세&gt;에 편집진으로 들어가 활동하며 일약 스타가 되었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 명사들을 만나며 우정을 쌓아 나갔다. 특히 릴케와 남다른 우정을 쌓았고 로댕의 작품에 대한 몰입을 보면서는 배워야 할 부분이라 여겼다.&nbsp;<br>츠바이크는 유럽을 넘어 인도, 미국 등지를 여행하게 되었다. 여러 배경의 사람을 만나며 그는 자신이 우물 안의 개구리였음을 서서히 깨닫는다. 여행은 책에서 알려주지 않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며 때론 긴장하고 충돌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츠바이크의 이전까지의 경험의 범위는 유럽 내였다. 그러다 이때 바깥 세상을 보며 겪은 충격은 유럽이 다가 아님을, 유럽이 세계의 중심이 아닐 수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라테나우는 그에게 유럽을 넘어선 시각도 있음을 알려준 사람이었다. 그 덕분에 인도와 미국 여행을 하게 된 것이기도 했다. 인도 여행에서는 칼 하우스호퍼 부부를 만났다. 일본 주재 독일대사관의 무관으로 파견된 칼 하우스호퍼는 다방면에 지식이 풍부했기에 츠바이크는 동양에 대해 더 아는 기회가 되었다. 그런데 칼 하우스 호퍼의 제자 중 루돌프 헤스가 가진 사상(‘생활공간’, 지정학) 중 '생활공간'이란 이론이 히틀러에 의해서 “오늘은 독일이 우리의 것이고, 내일은 온 세계가 우리의 것이다”라는 구호로 변질되었다(P309)는 것이 아이러니다.&nbsp;츠바이크가 미국에 처음 도착해서는 지독한 외로움을 느꼈다 한다. 낯선 땅에 떨어져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그럴 법도 했겠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그는 여행을 포기하지 않고 구직을 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내던졌다. 1910년대 미국은 구직을 위해 국적, 종교, 출신을 묻지 않았고 여권 없이 여행이 가능했다고 그는 언급했다. 그런데 그것은 서양인이고 유럽인이기에 가능했다는 생각도 든다. 아시아, 아프리카 출신의 노동자였다면 제약을 받았을 테니까 말이다.&nbsp;<br>1914년 세계 1차대전이 시작되었다. 대중은 전쟁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었단 말인가? 그들은 전쟁을 알지 못했고, 그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거의 없었다. 전쟁은 전설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거리감이 전쟁을 영웅적이고 낭만적인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전쟁을 학교 교과서나 미술관 그림의 관점에서 보고 있었다(P374). 독일이 벨기에를 침공한다는 소문을 듣고 츠바이크는 독일로 돌아가기 위해 벨기에에서 마지막 열차를 타고 출발한다. 그런데 막상 독일에 하차하고 보니 역내에 진입할 수 있다는 통보를 받고 만다. 그 허탈감과 불안감이란 어떠했을까. 그동안 작은 충돌들은 있었겠지만 전쟁이 벌어지리라곤 꿈도 꾸지 않았을 사람들, 눈 앞에 벌어진 현실에 그들은 어안이 벙벙했을 것 같다. 1차 대전에서는 역사상 최초로 독가스를 이용한 화학전이 벌어졌고 군용기를 이용한 항공전이 이루어지기도 했던 전쟁이었다. 결과적으로 앞선 시대와는 전혀 다른 전쟁의 양상,생각보다 더 길어진 전쟁에 피해는 더욱 컸다.&nbsp;<br>그래도 1차 세계대전의 기간 동안에는 전쟁중이면서도 각 나라들이 폭력보다는 문화 국가임을 보여주고 증명하기 위한 문화 예술 공연이 넘쳐났다고 한다. 그럼으로써 여전히 자신들이 양심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스위스는 중립국으로 1차 대전이 벌어지는 곳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자유로웠다고. 궁정 고문관 람마슈(후에 헤이그평화회의 의장)가 츠바이크에게 고백하기를 오스트리아가 독일과의 동맹에서 탈퇴하고 평화의 길을 걷고자 카를 황제의 약조를 받아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만약 이것이 성공하여 현실화되었더라면 1차 세계대전의 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을까.&nbsp;종전 후 오스트리아 크로네 화폐 가치가 급락하면서 초인플레이션이 시작되었다. 외국화폐만이 유일하게 안정적인 가치를 지녔는데 그 시절 전쟁을 치른 국가들은 대부분 이러했을 것이다.&nbsp;&nbsp;<br>츠바이크는 1924년부터 1933년까지 나름 긴 기간 동안 러시아에 있었다. 톨스토이의 무덤을 찾기도 하고 막심 고리키와는 개인적으로 만남을 갖기도 했다. 츠바이크는 잘츠부르크 집에 집을 마련했는데 이 무렵 잘츠부르크는 여름 축제이자 예술의 순례지로 자리매김했기에 자연스레 그의 집은 유럽 각지의 명사들이 드나드는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자필 문서를 수집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자필 문서에 관해 쓰인 책과 인쇄된 경매 목록을 모은 문헌들을 찾아다닌 끝에 그는 수집가이자 필적 영역의 최고 권위자로 명망을 떨쳤다. 수집활동 마지막 10년 간은 특별히 행복한 기분으로 창작한 작품, 마지막 절정기에 창조된 작품을 모으고자 했다고.&nbsp;나는 수집을 통해, 나 자신의 작품들보다 그 전체로서 더 오래 지속될 가치가 있는 어떤 것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 히틀러의 시대가 시작되고 내가 집을 떠나게 되었을 때, 수집의 즐거움은 물론이고 무언가를 영속적으로 보존할 수 있다는 확신 또한 사라졌다. 한동안 나는 그 일부를 금고나 친구들에게 맡겨두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박물관, 수집품, 무기고는 계속 발전시키지 않으면 그 자체로 굳어버린다는 괴테의 경고에 따라, 더 이상 내가 정성을 들여 완성해 나갈 수 없게된 수집품과 작별하기로 결심했다(P576, 577). 더 이상 수집을 할 수 없게 된 이유가 서글펐다. 그런 시절이 아니었다면 그는 멀쩡히 살아나가서 더 많은 수집품과 그의 작품들을 남겼을 것이 아닌가.&nbsp;<br>기술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가장 끔찍한 저주는,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단 한 순간도 현재로부터 도피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점이었다. 이전 세대는 재앙이 닥치면 고독과 고립 속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우리 세대에 와서는 지구 어딘가에서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경우, 바로 같은 순간에 모든 것을 알고 함께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유럽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운명은 나와 함께 있었다. - P650히틀러 집권 전 잠시 평화로웠던 시기 츠바이크는 개인적으로도 성공가도를 달렸으나 히틀러 집권 이후 츠바이크의 저서들은 금서 조치가 내려진다. 1938년 독일의 오스트리아의 침공, 그리고 이어서 2차 대전이 시작되었다.&nbsp;츠바이크는 재혼을 위한 서류를 증명받기 위해 간 날 독일의 폴란드 침공 소식이 들었다. 영국이 독일에 대해 선전포고를 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인 그는 영국의 입장에서 적국의 외국인으로 여겨질&nbsp; 수 있었다. 탈출해야 했다.&nbsp;1차 대전만 해도 대중들은 전쟁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제대로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1차 대전을 경험해본 유럽인들은 1939년 2차 대전이 시작되자 이전과는 다른 반응을 보인다. 전쟁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불안감과 공포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었던 반면 평화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그것이 지속될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감을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다.&nbsp;<br>츠바이크가 쓴 마지막 이야기라고 알려진 이 책은 이처럼 대략 19세기 말부터 시작하여 2차 대전 시작 후까지를 다루었다. 근현대 역사상 가장 격변이었던 시대, 그의 서술을 빌어 시대를 지나오면서 한 사람의 인생을 경험했다. 그 시기 사람들은 그런 복잡한 시류를 어떻게 따라갔을까, 벅차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할 여력이 없을 정도로 순간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늘날도 AI의 흐름에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상황들을 보면서 이것 또한 새로운 격변인가 생각하니까 말이다.&nbsp;사실 어찌 보면 개인이 쓴 일기이자 에세이인데 역사로도 읽히고 철학, 인문, 예술, 사회 비평 등 다양한 장르로 읽혔다. 무엇보다 지금 읽어도 다양한 생각들을 던져주는 책이었다. 띠지에 적힌 '현대의 고전'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었던 것 같다. 잘 읽었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75/8/cover150/k182130410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750859</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은, 욕망의 세계 - [은, 욕망의 세계 -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단 하나의 금속]</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594635</link><pubDate>Mon, 26 Oct 2026 21: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59463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92131869&TPaperId=175946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27/75/coveroff/k392131869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92131869&TPaperId=1759463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은, 욕망의 세계 -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단 하나의 금속</a><br/>틸만 벤디코프스키 지음, 최은희 옮김 / 오팬하우스 / 2026년 08월<br/></td></tr></table><br/>인간이 부를 좇아 벌여온 사냥, 불의와 불평등의 역사는 오래 되었다. 이 책은 은이라는 광물에 집중하여 지난 역사를 기술한 것이 특징이다. <br><br>은은 최초 순은 형태로 발견되지 않아 채굴 후 제련 과정을 거쳐야 해서 공정 과정이 까다로워 특히 귀했다. 은은 세공품으로서 장신구로 이용되었고 봉헌물이나 예물 등 종교적인 목적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또 의학에서 치료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전쟁 자금이나 협박이자 몸값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십자군 전쟁 때는 전리품이자 약탈 대상이 되기도 했다. <br>은이 발견되는 곳이면 어디든 제련이 시작되고 나서 일시적으로 성업을 이루었다. 그러다 이동성을 위해 동전화가 된 은은 채굴 지역을 이탈하여 화폐로서 상업 혁명에 이용되었다. 은은 교역 수단으로 동방과 서방을 넘나들며 유출되었는데 이는 품질이 떨어지는 주화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br><br>신대륙이 발견된 후 대서양 항해는 수익성 높은 사업으로 자리잡는다. 스페인 선박을 통해 금은 유럽으로 이동되었다. 순수한 방법으로 광물을 캐던 원주민들을 영국과 네덜란드 식민 제국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처음에 동인도회사나 서인도회사 사람들은 노예를 비롯한 약자들의 노동력을 더 투입함으로써 해결했다. 그러다 나중에는 아메리카의 광산에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제련 전문가들이 투입시켰다고 하는데 나는 이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렇게 획득한 광산 제련 기술은 아메리카 광산의 약탈에 더 가속도를 붙였을 것이다. <br><br>포토시의 산은 표층에 50%의 천연 은이 존재해 처음부터 주목을 받았다. 포토시의 산은 과거 종교적 제례를 올리던 장소였는데 은의 발견으로 포토시는 남아메리카 최대 도시로 성장하게 된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광산 내 의사 소통을 위해 여러 언어를 모은 특수 사전도 만들어졌다는 내용이 흥미로웠다. 스페인은 제련을 거쳐 얻은 귀금속의 20%를 왕실 재정에 채웠다. 스페인은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들을 차출하여 1년 간 광산에 묶어두며 일을 시키고 임금은 다른 곳에서 일하는 자유 노동자들의 보수보다 낮게 주었다. 포토시가 마을과 떨어진 경우가 많았기에 노동자들은 사비로 일터를 가야 했기에 걸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강제 부역에 동원된 이들은 무수히 도망치는 시도를 거듭했으나 수배령이 내려져 갈 수가 없었다고. 그럼에도 탈주는 계속되었다. 게다가 은을 걸러내는 공정 중에 발생하는 유해한 수은 증기에 노동자들은 계속 노출되었다. <br><br>포토시에서 가까운 항구를 가는 길은 멀었고 대서양으로는 육로가 없었다. 이웃 나라 브라질은 포르투갈 식민지였기에 태평양 길이 이용되었다. 운송수단은 주로 라마가 이용되었다. 파나마는 1519년 스페인이 건설한 도시로 국제 무역의 거점으로 성장했다. 포토시의 은이 파나마에 하역되 일부는 필리핀으로 또 다른 일부는 유럽을 이동하기 위해 떠났다. 페루, 멕시코에서 생산된 은은 스페인에서 실린 물자와 함께 파나마 해협을 거쳐 태평양 연안을 돌아 다시 페루, 멕시코로 귀환했다. <br><br>은은 밀수로 이용되거나 불법 귀금속 거래로 이용될 확률이 있었고 운송 과정에서 가로채 약탈당하기 쉬웠다. 게다가 스페인의 행정 체계는 국가 독점 체제로 밀수 시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스페인은 가톨릭 종교를 보호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전쟁을 일으켰고 전쟁 자금이 된 은은 은의 경제 의존도를 높이는 결과를 불러왔다. 은은 스페인, 유럽에 대량 풀리며 화폐 가치를 떨어뜨리고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아시아까지 영향을 미쳤다. <br><br>은은 처음에 귀족 엘리트들이 사용했으나 나중에는 상인, 후에는 시민 전반으로 확산되며 사용되었다. 당시 유행하던 바로크 예술은 유럽으로 들어온 막대한 은 덕분에 교회 미술에 이용되며 귀금속 등으로 화려함을 뽐냈다. 종교개혁 이후 성물로 사용된 은들은 녹여져 전쟁 자금 등에 쓰였다. 국가는 재정 확보를 위해 화폐로 이용되던 은의 함량을 줄였고 나중에는 신민들의 충성과 애국심을 표시하라며 강요와 협박으로 시민의 은을 약탈하는 지경에 이른다. 19세기 말 금본위제가 시행되면서 은은 화폐적 지위에서 점차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br><br>은은 전쟁과 궁핍한 시기가 되면 늘 약탈의 대상이 되었다. 1938년 반유대주의에 의한 약탈대상이 된 유대인은 은의 헌납을 강요받았고 전쟁으로 인해 은 강탈은 당연시되었다. 반면 나치 간부들은 귀금속 선물들을 받았다고 하니 결국 권력자의 배가 곯는 일은 결코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앞선 내용과는 달리 내용의 결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br>은은 여전히 사용되고 있으며 채굴되고 있다. 은은 형태, 모습을 바꾸어왔지만 결코 사라지지는 않았다. <br><br>전체적으로 광물 하나에 집중해서 서술하고자 한 시도는 좋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은광이 개발되고 화폐화되기까지의 과정과 은이 유럽을 향해 이동하는 경로를 기술한 부분이 좋았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27/75/cover150/k392131869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1277587</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라틴아메리카의 열린 혈맥 - [라틴아메리카의 열린 혈맥]</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591529</link><pubDate>Sun, 25 Oct 2026 12: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59152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22032121&TPaperId=1759152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41/98/coveroff/k822032121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22032121&TPaperId=1759152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라틴아메리카의 열린 혈맥</a><br/>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지음, 조구호 옮김 / 알렙 / 2025년 11월<br/></td></tr></table><br/>라틴아메리카의 저발전 역사는, 누군가가 말했듯이, 세계자본주의의 발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우리의 패배는 항상 다른 자들의 승리에 내포되어 있었다. 우리의 부는 다른 자들, 즉 제국들과 그들 제국의 토착 감독자들의 번영을 부양하기 위해 항상 우리의 빈곤을 창출해 왔다. 식민지와 신식민지의 연금술 속에서 금은 고철로 변하고, 식량은 독으로 변했다. 포토시, 사카테카스, 오루 프레투‘는, 귀금속으로 이루어진 번영의 절정에서 빈 광산 갱도의 깊은 구멍으로 곤두박질쳤고, 칠레의 초석(石) 지대와 아마존 고무 숲도 결국 파멸이라는 운명을 맞았다. 브라질 북동부의 설탕생산지, 아르헨티나의 케브라초‘ 숲이나 마라카이보 호수‘의 석유를 생산하는 일부 마을은 자연이 부여하고 제국주의가 빼앗아 가는 부도 언젠가는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해주었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제국주의 권력의 중심부에 물을 대주는 비가 그 체제의 광범위한 주변 지역을 질식시킨다. 마찬가지로, 그리고 대칭적으로, 국내적으로는 지배하고, 국외적으로는 지배당하는 우리 지배 계층의 복지는 짐을 나르는 짐승과 같은 생활을 강요받는 우리 대중의 저주다. - P13~14<br>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는 유럽이 해외 진출을 시작하면서 바뀌었다. 아메리카에 도착한 에스파냐 인들은 현지 부족 간의 분열, 말과 세균을 이용하여 정복 작전을 수행하여 성공했다.&nbsp;에스파냐는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자국 출신의 식민 통치자에게 원주민 보호를 조건으로 식민지 토지와 원주민에 대한 통치권 일체를 위탁했다. 이는 원주민에게 조공과 노동을 요구함으로써 이들을 노예로 전락하게 만들었다. 또 에스파냐는 식민지 정복 공로자에게 토지, 원주민 노동력을 분배하는 제도를 시행했는데 이는 자연스레 원주민의 강제 노동, 착취로 이어지게 된다. 물론 인디오를 강제 노동에 동원하도록 허용한 제도도 있었다. 아메리카의 자산을 통해 부를 획득한 에스파냐 귀족들은 그 이윤을 유럽에 투자했고 이것이 아메리카 식민지 경제의 시작이 되었다.&nbsp;<br>에스파냐의 광산 개발을 통한 경제 구조는 인구 이동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라틴 아메리카의 기존 토지를 기반으로 한 농업 경제를 무너뜨렸다.&nbsp;18세기가 되면 브라질 금 생산량이 앞선 세기 에스파냐가 식민지에서 거둔 생산량을 넘기게 된다. 브라질 남동부 도시인 미나스 제라이스는 브라질 경제의 핵심이 되었고 이 지역의 항구 도시인 리우 데 자네이루는 1763년부터 수도가 되었으며 오루프레투는 광부들이 밀려들면서 1711년 도시가 되었다. 1703년 잉글랜드와 메투엔 조약을 체결한 포르투갈에서는 금이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영국과 네덜란드는 포르투갈 왕실이 브라질에 징수할 세금의 절반 이상을 불법으로 빼돌리면서 자신들의 주머니 사정을 채웠다.&nbsp;<br>콜럼버스는 2차 항해 때 카나리아 제도에서 가져온 사탕수수 뿌리를 현재의 도미니카 공화국에 최초로 심었다. 사탕수수 재배는 이후 브라질, 카리브해의 섬들, 베네수엘라, 페루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사탕수수 재배를 위해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노예들이 대거 들어가기 시작했고 설탕 재배로 인해 기존의 유기질의 토양이 황폐해졌다. 이는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미국의 공업 발전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향후 이 지역들은 세계 자본 시장에 통합되면서 경쟁 구도, 수탈로 인한 토지 고갈 등으로 인해 쇠퇴하게 되었고 종국에는 경제 둔화로 빈곤을 겪는 공통점을 겪게 된다.&nbsp;<br>19세기 세계 패권의 주인공이 된 영국은 라틴 아메리카에 지배력을 미치게 되었다. 증기 기관의 동력을 바탕으로 한 산업 혁명은 영국을 단숨에 부상하게 만들었다. 영국 기업은 새 지선을 건설할 권리를 획득하고 철로 노선 양쪽의 토지 사용권을 받아 이득을 챙기면서 성장했다. 영국의 직물 산업은 원주민 인디오 강제 노동에 의존하면서 가능했다. 아르헨티나 정부의 보호 관세법은 지배 계층과 거대 상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초석 광물이 붐을 일으키자 1879~1884 칠레, 볼리비아, 페루 간 전쟁이 벌어졌다. 전쟁에서 승리한 칠레는 영국의 투자를 받았는데 이는 경제 의존성을 높이는 결과를 낳을 뿐이었다. 칠레 초석 산지는 시간이 지나며 폐허가 되었고 경제는 망가졌다.&nbsp;<br>볼리비아의 주석은 한 기업가인 시몬 파니뇨가 독점을 하고 있었다. 이후 정부가 국유화를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독점력은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했다. 기업은 노동자를 굶주리게 했고 학살을 조장하기도 하면서 재산을 늘려나갔다. 브라질의 철광석은 미국의 한나 사, 유에스 스틸과 밀접한 연관을 맺었다. 석유는 라틴 아메리카에 쿠데타를 일으키고 볼리비아, 파라과이 사이의 전쟁을 촉발시키는 매개체가 되었다. 파라과이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와의 전쟁으로 인해 대량 학살이 벌어지면서 당시 50 만명에 이르는 국민이 떠났는데(파라과이는 전쟁 전에는 자주적으로 발전하던 국가였다고 한다) 현재도 볼리비아와 함께 빈곤 국가로 분류된다고 한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이후 세계 자유무역 경제 질서에 편입되었다.&nbsp;<br>미국은 남북 전쟁 이후 세계 무대에 서서히 부상한다. 당시 자유 무역을 주장한 남부와 보호 무역을 강조한 북부 사이에서 북부가 승리함으로써 미국은 세계적으로 자유 무역이 대세인 상황에서 보호 무역을 고수했다. 커피는 미국 시장, 소비자 능력과 가격에 의존했다. 1929년 대공황으로 커피 가격이 하락하고 판매량도 급감한다. 이는 온두라스, 과테말라, 니카라과 노동자들의 실업 확산을 불러왔다. 노동자들의 봉기를 정부에서 탄압하면서 사회는 혼란에 빠진다. 그래도 혼란한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시도는 있었다. 예를 들어 라틴 아메리카 남부에서는 호세 아르티가스가 농업 혁명을 실현하겠다며 나섰다. 그는 가우초를 농민화하여 시골의 빈농을 땅에 정착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집권 세력들이 보복하면서 그는 사망하고 정책도 좌초되었다.&nbsp;<br>2차 대전 이후 유럽의 이익이 약화되고 점차 미국의 이익이 본격적으로 강화되면서 미국은 명실상부 세계 패권의 주역이 되었다. 미국 제국주의는 식민지 지역 긴장을 심화시키고 산업을 위성화시킴으로써 식민지 소수에 부를 집중시키고 다수를 가난으로 몰아가는 정책을 시행했다. 라틴 아메리카 정부는 이전 경제 구조를 그대로 둔채 산업화를 진행하면서 내수시장인 농축산업이 피해를 보았다. 부를 쌓은 수공업자들은 결혼 인맥을 통해 지배층이 되기 위해 대지주의 딸과 결혼하거나 토지를 구입하여 이를 굴려 남는 자금을 산업에 투자했다. IMF는 통화를 안정화시키고 무역을 자유화하면서 수출을 촉진하겠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지배층의 이익에만 부를 가져다주고 외국인들이 국내 기업을 흡수시키는 결과를 낳았다.&nbsp;<br>미국은 자국 은행의 저축을 보호하면서 라틴 아메리카에 급증한 미국계 은행 지점들을 확산시킴으로써 라틴 아메리카 국내 기업을 신용 부족에 빠뜨렸다. 미국은 차관을 이용해 그들을 도와준다는 명목을 들었으나 이는 미국 경제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군대를 해외에 파견하고 자국의 기술 관료를 내보내고 대출 자금을 내 사업을 키우면서 시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원조 비용으로 계산되며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의 은혜를 받은 국가의 외채에 부담이 된다." 종속적 산업화는 세계 시장의 불평등 구조에 기여했다. 라틴 아메리카는 순수 기술을 개발하지 못한채 다국적 기업이 통제한 기술에 의해 독립성을 상실했다. 기술 간 격차는 갈수록 더 심화될 수밖에 없었다.&nbsp;부의 집중, 독점 자본의 폐해, 상품을 향해 달려가는 국가들, 물건을 위해 봉사하는 인간, 라틴 아메리카의 수출용 상품이 내수용 상품보다 품질이 더 높아 경쟁력이 있음은 뼈아픈 사실이 아닐 수 없다.&nbsp;<br>비교적 최근에 쓰여진 책이라는 것을 알고 놀랐다. 이보다 훨씬 이전에 쓰여진 책인가 싶었던 것이다. 어찌 되었든 책을 읽어보니 라틴 아메리카의 과거 뿐 아니라 비교적 최근의 역사까지 배경 지식을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데다가 딱딱한 지식만 나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풍부한 묘사로 맛깔나게 설명해주어 읽기 수월했다.&nbsp;&nbsp;라틴 아메리카의 수탈의 역사를 다룬 책들이 과거 종종 있었으나 이 책이 특별한 것은 비단 과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현재 어떤 흐름으로 이어지는지 상세하게 추적한다는 데 있다. 낯선 용어들이 나오지만 바로 아래 주석이 상세한데다 비교적 어렵지 않은 서술 방식을 사용하고 있어 라틴 아메리카의 지리와 역사가 낯선 이들에게도 충분히 잘 읽힐 수 있는 책이다. 특히 라틴 아메리카의 문학 작품을 읽기 전후 이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br>라틴아메리카의 재건을 향한 여정에는 바다 깊숙한 곳에 버려야 할 썩은 것이 너무 많다. 그런 일은 바로 빼앗기고, 짓밟히고, 저주받은 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민족적 대의는 무엇보다도 사회적 대의다. 라틴아메리카가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나라의 주인들을 나라별로 무너뜨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반란과 변혁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운명은 신의 무릎 위에 놓여 있다고 믿는 이들이 있지만, 진실은 인간의 의식 위에서 절박한 도전처럼 작동하고 있다. - P500]]></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41/98/cover150/k822032121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5419818</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괴델, 에셔, 바흐</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578825</link><pubDate>Sun, 18 Oct 2026 17: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57882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16382&TPaperId=175788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328/50/coveroff/897291638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1328/50/cover150/897291638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3285054</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만물은 서로 돕는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577363</link><pubDate>Sat, 17 Oct 2026 19: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57736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828287&TPaperId=1757736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5/73/coveroff/899082828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5/73/cover150/899082828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57348</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만물은 서로 돕는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568437</link><pubDate>Mon, 12 Oct 2026 21: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56843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828287&TPaperId=1756843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5/73/coveroff/899082828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5/73/cover150/899082828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57348</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환구음초 - [환구음초 - 한시로 읽는 1896년 조선 사절단의 세계 일주]</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546900</link><pubDate>Wed, 30 Sep 2026 21: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54690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338586&TPaperId=1754690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42/32/coveroff/895733858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338586&TPaperId=1754690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환구음초 - 한시로 읽는 1896년 조선 사절단의 세계 일주</a><br/>김득련 지음, 황재문 옮김 / 아카넷 / 2025년 10월<br/></td></tr></table><br/>1896년 조선에서 러시아 황제 대관식을 위해 사절단이 꾸려진다. 김득련은 사절단의 일행으로 특명전권대사인 민영환, 수원 윤치호, 참서관인 김도일과 함께 2등 참서관 자격으로 참여했다. <br><br>이 체험이 특별한 것은 그들이 그저 러시아 황제 대관식만 참여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1896년 혼란스럽던 구한말 조선의 상황에서 외교관으로 파견된 그들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돌아왔고 그 과정에서 아메리카, 유럽 땅을 밟고 무사히 돌아왔기 때문이다. 자동차나 비행기가 없던 시절 배와 마차 등으로 다닌 체험은 쉽지 않았을 여정이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세계 곳곳을 누비고 돌아올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br><br>&lt;환구음초&gt;는 이 여정을 한시로 기록한 것이라면 &lt;환구일록&gt;은 이를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lt;환구일록&gt;은 체험을 메모로 기록해두었다가 조선에 돌아온 뒤 민영환의 기록과 비교해보면서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책에는 &lt;환구음초&gt;만 실려 있지 않고 그 배경이 되는 &lt;환구일록&gt;까지 함께 실어두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김득련의 체험기는 민영환이 남긴 기록과 윤치호가 남긴 기록이 있어 서로 비교해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일반 독자가 두 기록을 뒤져가며 읽기에는 번거로울 수 있는데 책에서는 두 기록을 함께 등장시키기 때문에 더 읽는 맛이 풍성하다. 아무래도 민영환은 전권대사 자격으로 가서 상대국인 러시아에 민감할 수 있는 내용은 가급적 빼고 최대한 공식적으로 기록했던 것 같다. 김득련의 기록은 이에 비해 가족에 대한 이야기 등 사적인 기록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윤치호는 앞서 미국을 다녀온 경험이 있어서인지 두 사람과의 기록과는 차이를 보이는 면이 많았다. <br><br>사절단은 인천 제물포항에서 상하이항으로 가 당시 동양 제일이었다는 번화하고 화려한 상하이의 모습을 구경한다. 원래는 여기에서 프랑스 공사선을 타고 홍콩을 거쳐 러시아로 향할 작정이었으나 배편을 놓치는 바람에 일본, 미국을 거쳐 유럽으로 건너가는 여정으로 변경되었다. 그러는 바람에 사절단은 대관식에 늦지 않으려고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으나 길어진 루트 덕분에 우리로서는 간접 경험을 더 많이 하게 된 셈이 되었다. <br><br>옆나라 일본에서는 나가사키, 시모노세키를 거쳐 고베에 잠시 들렀다 기차를 타고 도쿄를 향한다. 고베에서 하루 반나절이면 도쿄로 갈 수 있었다니 서양 문물을 적극 받아들이면서 그만큼 발전한 일본을 보고 소회가 남달랐던 모양이다. 도쿄는 의화군이 신바시에 있었기에 만나러 간 것이었다. 참고로 1872년 신바시와 요코하마를 잇는 철도선이 일본 최초로 개통된 것이다. <br><br>태평양을 거쳐 캐나다의 벤쿠버항에 닿아서는 호텔의 엘리베이터와 전기의 모습을 보고 감탄한다. 캐나다에서 기차를 타고 동쪽으로 9천리 떨어진 뉴욕으로 향하는데 김득련의 표현에 의하면 마치 ‘축지법’을 써서 금방 닿는 것 같았다고. 그만큼 찰나로 느껴져서 신기했던 모양이다. <br><br>광활한 아메리카의 평원을 보면서는 중국의 요동과 지금의 베이징 동쪽에 해당하는 연경의 광활함보다 몇배나 더 큰 규모라 표현한다. 또 뉴욕은 근심 없는 장춘원, 불야성 같은 화려함으로 표현한다. 뉴욕은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도 많고 화려한 도시였던 것 같다. 마침 뉴욕 전기 박람회가 있어서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한다. 퀸스타운을 거쳐 영국의 리버풀 항구에 도착하며 유럽의 관문에 입성했다. <br><br>영국 런던의 ‘정치가 융성하고 천하 오대주에선 패권국으로 일컬어지며 하늘 위에선 신선의 세계요, 인간 세상에선 부귀의 그림(P165)’이란 표현도 흥미로웠다. 이는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하고 활동한지 어느덧 50년이 지나갈 무렵으로 번성한 도시 속에서도 국법이 엄격하고 명백한 모습을 보며 영국이 부강하다고 느껴서인 듯하다. 아쉽게도 사절단은 당시 유명했던 수정궁은 시간상 둘러보지도 못하고 떠나야 했다 한다(내가 다 아쉽다). <br><br>베를린을 거쳐 폴란드를 지나 드디어 러시아 땅에 입성한 사절단. 그곳 모스크바에서 사절단은 황제의 대관식을 경험한다. 당시 세계 각국의 사신이 하례에 참여했는데 모자를 썼다는 이유로 청나라, 튀르키예, 페르시아 사신들과 더불어 대관식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외부의 누각 위에서 기웃거리며 보았다니 당황스러웠다. 아무튼 사흘 밤낮동안 환한 등불이 집, 거리, 크렘린 궁을 비추었다니 과연 장관이었을 것 같다. 김득련은 놀라했으나 윤치호는 이미 미국에서 더 멋진 연등 행사를 경험한 바 있었기에 다소 냉소적으로 기록했다. 황궁에서 밤에 공연을 관람을 하기도 했으나 내용을 알 길이 없으니 뭐 사실 무용만 보고 온 것이 아닐까 한다. 이와중에도 윤치호는 공연 감상기에 발레복을 보며 종교적인 이유로 비난을 하다니 좀 눈살이 찌뿌려지기도 했다. <br><br>상트페테르부르크는 사절단이 2개월 넘게 머무른 도시이기에 기록 분량상으로도 그렇고 이야깃거리가 많다. <br>특히 김득련이 이곳에서 작성한 기록에는 그날의 일과와는 관계 없는 정보나 지식으로 최대한 주관적인 판단이나 감상을 자제하고 관찰한 바 그대로를 표현했다. <br><br>일단 조선과는 다른 기후에서 느낄 수 있는 자연 현상인 백야 현상을 보기도 하고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면서 기록한 것들이 많다. <br>동물원과 식물원, 영화관, 맥주 공장, 수돗물 정수장, 도서관, 자기공장, 유리공장, 양초공장, 개선문, 겨울 궁전, 천문대, 미술관 등을 다녀왔다. <br>장례 행사를 경험하고 황제가 타는 요트를 타볼 기회도 있었고 엘라긴 섬에 가 피서를 보내기도 했다. <br><br>표트르대제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고 도읍을 정한 뒤 스스로는 검약한 모습을 취하는 것을 보며 배울 점이 있다 느낀 점이 인상깊었다. 네바강의 해질 무렵 풍경을 보면서는 이국적으로 느끼는 동시에 고향을 그리며 향수를 느끼기도 한다. <br><br>음력 2월 떠난 사절단은 8월 19일 드디어 그곳을 떠나게 된다. 윤치호는 그곳에서 귀국하지 않고 파리행을 선택한다. 사실 민영환, 김득련, 윤치호는 글에서 이미 너무 다른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여행길 초반에는 민영환과 윤치호는 앙숙인가 싶을 정도로 서로를 못마땅해하는데 이무렵이 되면 서로 가졌던 선입견이 많이 완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김득련은 영어를 잘하는 윤치호에게 도움을 많이 얻었기에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한다.<br>사절단은 시베리아를 거쳐 흑룡강, 블라디보스토크를 지나 부산항-&gt;제물포로 귀국한다. <br>당시 완성되지 않았던 시베리아 철도과 바이칼 호수의 풍경, 이르쿠츠크/하바롭스크 총독부에 들른 소회, 곳곳에서 만난 조선인 유민들을 만난 소회가 인상깊었다.<br><br>사절단은 7달 동안 8개국을 거쳐 그렇게 돌아왔다. 과연 이 경험들은 네 사람에게 어떤 경험이 되었을지. <br><br>이 책은 정말 우연히 건진 책이었다. 참 오랜만에 오프라인 서점에 갔다가 눈에 띄어서 읽게 된 책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서점은 무어든 읽을 만한 거리를 챙겨오게 되어 수확이 있는 듯하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42/32/cover150/895733858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5423297</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고독서정 - [고독서정 - 서양 철학자 강유원의 한시 읽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545094</link><pubDate>Wed, 30 Sep 2026 09: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54509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32130248&TPaperId=1754509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73/3/coveroff/k83213024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32130248&TPaperId=1754509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고독서정 - 서양 철학자 강유원의 한시 읽기</a><br/>강유원 지음 / 라티오 / 2026년 09월<br/></td></tr></table><br/>외로움에는 여러 가지 감정 상태가 결집되어 있다. 화남, 억울함, 슬픔, 시샘이나 부러움, 부끄러움, 쌀쌀맞은 쓸쓸함에 이르는, 부정적 심정의 묶음이다. 외로움은 추상적 묶음이고 그것의 드러남은 이러한 구성 속성 중 하나 또는 몇 가지의 결속체로 이루어져 있다. 누군가를 원하면서도 찾지 못한 상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결핍도 외로움을 유발한다. 이는 '스스로 존재함'과는 확연히 다르다. 외로움이 고립된 몸의 내면이라면, 스스로 존재함은 독존하는 몸의 정신적 표상 형식이다. - P47~48서양 철학자이자 인문학자인 저자가 한시에 관한 책을 내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래서 부제도 '서양 철학자 강유원의 한시읽기'다. 서문을 읽어보니 본인에게 한시는 모호한, 몽롱한, 가 닿을 수 없는 철학 같은 수수께끼 같은 존재였다고. 그러나 책을 읽어보면 저자의 소리가 스스로에 대한 겸손의 표현임을 느끼게 된다. 나는 몇 권의 책을 통해서 한시를 경험한 것이 다이기 때문에 정말 문외한에 가깝다. 이 책은 한시를 읽는 처음 경험하거나 아직 잘 모르는 초보 독자라도 겁먹을 필요 없음을 느끼게 한다.&nbsp;<br>제목이 '고독서정' 고립과 독존에 대한 서정읽기다. 이에 따라 고른 한시들은 대체로 저마다 다른 사정의 외로움이 드러나고 스스로 존재하기 위해 맞서고 분투하는 감정이 놓여 있다. 한시의 해석을 앞에 싣고 뒤에는 원문과 독음을 준 뒤 이에 대한 저자의 감상을 덧붙였다. 한시를 쓴 시인의 상황과 감정은 이랬을 것이라는 추측을 통해 독자도 저마다 추측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에만 그치지 않고 저자의 배경과 시를 쓸 당시의 상황을 알려줌으로써 그 해석을 돕는다.<br>마음에 드는 한시들을 체크하면서 내 마음이 어느 시에 공명하는지 확인하며 읽었다.&nbsp;<br>이백의 시는 술을 홀짝이고 기울인 뒤 읽으면 그 감상을 더할 수 있다. 저자의 감상기에 웃음이 났는데 본인이 이백의 짠한 외로움을 느끼기에는 술을 하지 못해서 감정 이입이 되기 어렵다고 해서다. 어쨌든 그의 시가 널리 읽히는 것은 저자의 말처럼 읽기 쉬운데다가 술에다가라도 의지하려는 결핍의 영혼을 가진 이들과 공명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는 그의 시가 은근함이 없어서 어느 순간 감정이 파사삭 식는다고 하는데 뭐 나는 그의 그 지지리 궁상같은 속이 훤히 보이는 투명함 때문에 그의 시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nbsp;<br>이백, &lt;장진주&gt;(술을 권한다)<br>뜻이 이루어졌을 때는 마땅히 온전히 기뻐하고술잔은 헛되이 달을 마주해서는 안 될 것...잠부자, 단구생술을 올리니 멈추지 말고그대들에게 노래 한 곡 부르니내게 귀 기울여 들으라음악도 안주도 귀하게 여기지 말고오래 취하고 깨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옛부터 성현은 고요하고 쓸쓸했고술 마신 이들만 이름을 남겼다...주인은 어찌 돈이 적다 말하는가주저 말고 술 사오시라, 그대와 마실테니...<br>이백은 어느 술집에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과 세상에 대놓고 분노를 토한다. 이 상황을 보는 이들은 혀를 끌끌 찼으려나. 왜 진상이야 하는 말을 들었을 것 같기도 하다. 이러다 싸움이라도 안 났으면 다행이려나.&nbsp;<br>왕유는 안사의 난 때 안록산이 세운 대연국에서 벼슬을 한 것 때문에 난이 평정된 후 더는 자신의 뜻을 펼치기 어려웠던 듯하다. 개인의 뜻을 펼치기 어려운 시대를 만났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왕유의 삶과 그의 시에서 한 사례를 만날 수 있다. 왕유의 시는 감정이 폭발하지 않아 대체로 어느 정도의 감정적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살갑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냉소적인 것은 아니다. 뭐 츤데레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nbsp;<br>왕유, &lt;송별&gt;(사람을 보냄)<br>말에서 내려 술을 권하며그대에게 묻는다, 어디로 갈 것인지그대 말하길, 뜻한 바 같지 않아남산 자락으로 돌아가 눕겠다고그저 가시라, 다시 묻지 않을 테니흰 구름 없어질 때는 없으리니<br>떠나는 친구를 보내며 행선지를 묻는 왕유나 답하는 친구나 무심한 듯 툭 건네는 상황이 인상적이었다. 친구는 뭔가 뜻한 길이 잘 풀리지 않아 어디엔가 은거할 작정으로 들어가는 것일까. 왕유는 그를 감히 붙잡을 수 없고 그저 가시라 툭 하고 말을 건넬 뿐이다.&nbsp;<br>왕창령, &lt;새하곡 - 둘째&gt;(변방 요새 아래서)<br>가을, 말에게 물 먹이며 건너는데물은 차갑고 칼바람 분다가지런한 모래밭, 해도 저물지 않았는데임조성은 희끄무레 보인다오래전 장성 싸움들,뜻과 기세가 높았다고들 한다이제나 예나, 누런 티끌 가득 차고썩고 남은 뼈들 들풀 속에 어지럽다<br>진나라 이후 장성이 쌓이고 나서 변방으로 출정하는 장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변방에 나간 어느 장병이 시를 읽는 중이니 평시인 비전투기임을 짐작하게 한다. 시인은 가을에 물을 건너와 장성 앞 모래밭 풍경을 보며 과거 이 터에서 벌어졌을 전투와 거기 있었을 사람이 이제는 백골이 되어 떠돌고 있는 황망함을 느낀다. 남은 것은 들풀들 뿐이다.&nbsp;<br>유종원, &lt;강설&gt;(눈 내린 강)<br>온 산에 새 날아감 끊기고온 길에 사람 자취 사라졌다배 한 척에 도롱이 삿갓 쓴 늙은이눈 내린 강 홀로 낚시하는 차가움<br>고립된 이는 누군가 곁에 있어 주기를 원한다. 혼자서는 못 이겨 낸다. 독존하는 이는 강에서 홀로 낚시를 해도, 강에 들어선 순간부터 늘 그렇게 낚시하는 것을 연습했기에, 추운 날씨를 몸으로 느끼고, 애써서 온기를 찾지 않으며 차가움 자체를 구현한다. 물론 독존이 초월적인 것과의 접촉 통로일 수는 있다. 세상과 떨어져 지내던 은수자가 그러했을 것이다. 이들은 다른 인간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무도 느끼지 않는다. 유종원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인간을 외면하고 신 앞에 선 단독자로 살아가려는 계시종교의 수도자가 아니라, 강에 들어선 순간부터 내가 서 있는 지반을 조심스레 살펴 보고 그 위에 나를 하나씩 조금씩 쌓아 올리고, 무너지는 것을 토닥여 가며 전진해온 인간이다. '실존의 편력을 통한 독존의 구축'-이것이 '시유'라 물리는 그의 삶이다. 오십 년도 살지 않은 그의 삶의 최종 귀결은 '차가움'이다. - P207<br>유종원은 벼슬을 하다가 호남성으로 좌천되어 영주에서 실질적인 권한이 없는 직책으로 지냈다. 내가 아는 그의 시에는 노년을 다룬 시가 많은데 이는 인생의 끝자락에서의 회한처럼 고립과 외로움의 환경에서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그는 결코 감정을 닫고 숨지 않았으며 스스로의 꿈을 펼칠 시기를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움직였다. 저자의 유종원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nbsp;<br>오랜만에 경험하는 한시 여행이 참으로 즐거웠다.&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73/3/cover150/k83213024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730369</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Are you good enough? Yes, you are. - [Becoming (Paperback) - 비커밍 - 미셸 오바마 자서전]</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544410</link><pubDate>Tue, 29 Sep 2026 22: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54441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1524763144&TPaperId=1754441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6323/43/coveroff/152476314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1524763144&TPaperId=1754441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Becoming (Paperback) - 비커밍 - 미셸 오바마 자서전</a><br/> / Crown Publishing Group / 2021년 03월<br/></td></tr></table><br/>한참 전에 사두고 앞부분만 조금 읽다 만 책을 드디어 다 읽었다. 역시 원서는 함께 읽어야 읽을 수 있는건가. 아무튼 '강제'의 힘은 확실히 강한 것 같다.&nbsp;<br>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든 생각은 미셸 오바마는 몸도 마음도 참 건강하다라는 생각이었다. 물론 미셸도 인생 여정을 거치며 쉽지 않은 우여곡절을 지나왔지만 스스로를 아끼고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면 어떤 상황에 놓여졌을 때 상처받고 흔들려서 무너질 수 있었을 것이다.<br>그녀가 부러웠다. 멋진 부모님, 특히 어머니가 있다는 것은 미셸이 어떤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미셸과 오빠를 항상 어른으로 대접해주었다. 결코 어리다고 무시하지 않았고 어떤 질문에든 경청하고 나서 일방적인 훈계가 아닌 방식으로 진지하게 답해주었다. 냉혹한 현실에는 꾸미거나 왜곡하지 않고 어물쩍 좋은 말로 넘기지도 않았다. 언제라도 세상에 나아가서 뛰어들 수 있도록 준비를 해주신 게 아닐까. 그래서&nbsp;덕분에 그녀&nbsp;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요소를 최대한 통제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일찍부터 깨달을 수 있었을 것 같다.<br>프린스턴은 극도로 백인적이고 대단히 남성적이었다. 남학생 수가 여학생 수의 두 배가 넘었고 흑인 비율은 9%도 안 되었다. 그녀는&nbsp;제3세계센터(TWC)를 통해서 흑인, 라틴계 학생 공동체와 자주 어울렸다. TWC 센터장인 처니에게서는 망설이는 일이 있을 때는 고민하지 말고 그냥 도전해보라는 메시지를 얻는다. 룸메이트인 수잔을 통해서 나와 다른 자유분방한 성격과 마주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웠다(아마도 이것으로 오바마를 만나기 전 미리 어느 정도 준비를 할 수 있었을 듯),&nbsp;<br>미셸은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이었다. 그래서&nbsp;남들 평가에 지나치게 신경 쓰기 마련이었는데 그로 인해 남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는 일로 정해진 길에 당연한 듯 들어섰고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칭찬을 잃을까봐 다른 길을 택하지 못했다. 늘 그래왔듯이 노력과 의지에 맞춰서 사는 것에 절여지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질문을 놓치고 있었다. 그녀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얻는 편인데 변호사는 늘 한 공간에 갇혀 수많은 사건 서류 더미와 씨름해야 했던 것. 그렇게 그녀는 변호사라는 직업이 소명이 아님을 점점 깨닫게 된다.&nbsp;물론 그 직업을 선택해서 평생지기인 오바마를 만났으니 그녀에게는 어쨌든 짧지만 중요한 전환이기는 했을 것이다. 첫인상은 좋지 않았지만 지역사회운동가로 활동하는 모습으로 점점 호감을 갖게 되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는 신선했고, 관습적이지 않았고, 희한하게 우아했다."고. 뭐 이즈음이면 이미 콩깍지가 씌어진 것이라 할 수 있겠다.&nbsp;“우리 데이트해야 할 것 같아요.” 버락의 제안에 만남을 가진 그녀는&nbsp;모든 것이 뒤섞인 이 이상한 남자(!)에게 결국 넘어갔다. 미셸의 이상형이&nbsp;언제고 단숨에 자신을 사로잡는 남자를 만나, 최고로 멋진 사랑 이야기들에 빠짐없이 나오는 해일 같은 격정에 휩쓸리기를 바랐던 것을 생각하면 뭐 대충 비슷한 거 아닐까 싶기도.&nbsp;<br>미셸의 청춘에서 가장 큰 아픔이었던 사건은 가장 친한 친구였던 수잔의 때이른 병으로 인한 사망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사는 동안 원없이 하고 싶은대로 살았기에 미셸에게 주는 메시지가 분명 있었다. 이후 이어진 아버지의 죽음과 장례식은 자신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드디어 그녀는 변호사를 그만두고 시카고 시청에서 보좌관으로 일하기로 한다. 월급은 반으로 줄어들었는데 버락은 어떻게든 해낼 것이라며 힘을 실어주었다.&nbsp;<br>아무튼 미셸과 오바마는 축복 속에 시카고에서 성대하게 결혼식을 치뤘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났지만 이상주의자인 오바마에게서 미셸은 그의 비전이 실현되기를 어느 순간 소망하게 되는데 그것이 오바마가 정치를 선택하여 그 길을 걸어가는데 앞날을 예견하는 것이 아니었나 싶었다(1996년 버락은 정치인이 되었다).&nbsp;두 사람은 임신을 시도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첫 아이는 결국 유산이 되었다. 두 사람은 상담 끝에 배란 촉진제를 복용받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드디어 노력 끝에 첫째인 말리아가 태어났다. 이후 둘째인 샤샤가 태어났다. 힘들게 얻은 아이들이었기에 두 사람의 기쁨과 간절함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nbsp;현실! 미셸은 학교에서 일하는 것을 그만두고 조금 더 자유도가 높은 병원의 일자리를 수락한 반면 버락은 강의와 입법 활동을 병행했다. 게다가 그는 더 높은 정치인의 길에 올라가기를 꿈꾸고 있었다. 미셸은 지금도 충분히 바쁘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일 정도로 정치가 싫어질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이때 부부 상담을 하러 가야할 정도로 악화일로였다고. 뭐 상담 후에는 서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무마되었지만.&nbsp;<br>오바마는 정치인의 단계를 밟았고 결국 대통령의 길에 들어섰다. 이걸 미셸이 수용하기란 참 쉽지 않았을텐데 다시 생각해도 대단하게 느껴진다. 대통령이 되면서&nbsp;미셸은 가족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공개적인 생활에 익숙해져야만 햇을 것이다.&nbsp;백악관에 살면서 버락은 예전보다 규칙적이 되었다고. 아이들이 가장 걱정이었지만 다행히 그들은 생각보다 기대 이상으로 잘 적응했단다.&nbsp;미셸은 이것저것 정치에 직접 개입해서 간섭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이자 최고의 결과를 냈다. 백악관에서 텃밭을 가꾸고 비만이 늘어가는 아이들을 위해 건강식으로 된 급식을 추진하고 군병원에 방문을 해서 장병들을 위로하고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멘토링을 하기도 했다. 세계 곳곳에 재난이 생기면 기피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일부러 가족들과 그곳을 찾아 여행을 하기도 했다.&nbsp;특히 총기로 인한 사건, 사고가 생길 때마다 슬퍼하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수장이기에 총기 규제 법안을 어떻게든 추진하려고 밀어붙일 수 있었다(결국은 안되었지만).&nbsp;<br>번역서가 읽어서 겨우 읽을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다른 원서들보다는 재미나게 읽었다. 그녀의 인생이 궁금했었기에 이렇게 읽은 것으로 만족한다. 그녀는 참 강인하면서도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앞으로도 부디 남은 인생 멋지게 살아가시길!]]></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6323/43/cover150/152476314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3234340</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라틴아메리카의 열린 혈맥</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537238</link><pubDate>Sat, 26 Sep 2026 07: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53723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22032121&TPaperId=1753723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41/98/coveroff/k822032121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41/98/cover150/k822032121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5419818</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라틴아메리카의 저발전 역사는, 누군가가 말했듯이, 세...</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531425</link><pubDate>Tue, 22 Sep 2026 20: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531425</guid><description><![CDATA[<br>]]></description></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완벽한 피해자 - [완벽한 피해자 -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존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521392</link><pubDate>Thu, 17 Sep 2026 09: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52139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32137156&TPaperId=1752139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95/1/coveroff/k632137156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32137156&TPaperId=1752139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완벽한 피해자 -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존재</a><br/>모함메드 엘쿠르드 지음, 박종주 옮김 / 마티 / 2026년 04월<br/></td></tr></table><br/>책의 제목이 생각하기에 따라 좀 과도하게 느낄 수 있다 싶은 제목이다. '완벽한'이라는 형용사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과연 '완벽한 피해자'란 있을 수 있을까(사실 나는 이런 제목을 경계하고 보는 편이다). 작가는 예루살렘 출신의 시인이자 작가, 저널리스트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인권 문제를 미국의 독립 언론 매체에서 팔레스타인 관점으로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짐작하겠지만 미국의 주류 언론 매체와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책에서도 여럿 나오지만 트럼프 등 미국의 보수 진영에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NYT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br>팔레스타인 문제로 어느덧 3달 째 독서 모임으로 함께 책을 읽고 있다. 책을 읽기 전 이 책이 여러 논란을 안고 있다는 경고(!)를 받았기에 어느 정도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들어갔다. 읽고 난 느낌은 생각보다는 과도하지 않다? 표현의 과격함은 있지만 내용 자체는 팔레스타인 인권과 정치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물론 내가 앞서 여러 책들을 두드려맞으며 읽었기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br>비인간화는 보다 은밀한, 하지만 훨씬 치명적이며 제도화되어 있는 현상, 우리네 신사적인 살인범들로 완성되는 실천을 가리킨다. 내가 말하는 비인간화란, 서구가 우리 눈을 마주 보기를 거부하는 것을 가리킨다.&nbsp;세계는 우리의 비극을 비극으로, 우리의 반응을 반응으로 보기를 꺼리거나 그럴 능력이 없다. 고집스레 우리의 정상적인 것들을 일탈로 분류한다. 근본적인 본능-예컨대 생존이나 자기방어-이, 그리고 지상의 생명체들에게 내재하는 기본적인 행동이 그들만 누릴 수 있는 호사가 된다. 비인간화를 하는 것은 저속한 우익이나 잔인한 경찰만이 아니다. 더없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살인자들,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눈을 맞추기를 거부하며 인간미 없이 수백미터 밖에서 싸늘하게 저격하는 그 살인자들도 마찬가지다. 이곳의 저격수, 대면할 필요도 없이 저 멀리서 우리의 존재를 삭제할 권한을 갖고 있는 그 인물은 문자 그대로 우리의 언덕 꼭대기의 지붕 위에, 비유적인 의미에서는 정보와 보도국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실이 이러하기에, 저격수의 손에는 피가 묻지 않는다.&nbsp; P25~26<br>'신사적인 살인범들'만큼 적나라한 표현이 있을까.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는 이스라엘(군)만이 살인범이 아니다. 로비에 엮여 있는 강대국들, 그를 옹호하는 언론과 매체들도 동조자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에 의해 팔레스타인들은 비인간화된 존재가 되어 있으므로 그들이 하는 행동은 마치 일탈처럼 취급된다. 살인자에 '올바른'이라는 형용사를 썼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저격수도 마찬가지. 살인자는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과 펜 등으로도 가능한 존재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nbsp;<br>그렇다면 기존의 정치와 문법을 수정하고 변화시키면 팔레스타인 문제를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지 않느냐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는 결코 간단하지가 않다.&nbsp;"주인의 연장"을 쓰면 가끔은 어느 정도 성공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불행하게 끝난다. 그리고 결코 제도의 논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의 차이를 무시하"고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한심한 자기최면"을 걸라고, 또한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죄에 무혐의 처분을 받을 수 있기를 앙망하며 불가능하리만치 적절한, 신화적인 생명체-무고한 민간인-를 흉내내라고 배웠다. - P35호소의 정치는 먹힐 수 있는가 곱씹게 된다. 예전에는 그렇다 믿었지만 이제는 회의적으로 기울었다. 식민지배자의 제도와 문법으로 피식민자들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어쩌면 순진한 개량주의나 온건주의로 치부될지 모르겠다. 하긴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나라를 선언한 이후 몇 십년이 흘렀다. 얼마 후면 100 여년에 가까운 시간이 된다. 그동안 이 문제가 얼마나 해결이 되었는가 말이다.&nbsp;<br>그럼 팔레스타인인들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팔레스타인은 현재 어떤 시선으로 취급되고 있는가. 2023년 하마스의 공격으로 더 안 좋은 시선이 강화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지만 몇 권의 책을 읽어본 바 하마스는 단순히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기에는 무리가 있는데 앞선 역사가 이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인은 성급하게 낙인받고 그런 취급을 받지 않으려면 우리 체제 안에서 행동해란 시선을 받는다.&nbsp;우리에게 주문하는 인간성, 혹은 우리가 스스로 발명한 인간성은 복잡하고 머리 아픈 규정집을, 상형문자로 쓰인 그 계명들을 따른다. 영원한 피해자성으로써 유지되고, 동정과 연대를 얻으려면 따라야 하는 [외부, 특히 서구의] 자민족중심주의적 한계선을 통해 규제되는 인간화 기획은 부적격이다. ... 인간화란 그 설계상, 우리가 공공연히 드러내도 되는 정서 및 감정, 가치, 이데올로기, 응징받는 일 없이 밝힐 수 있는 제휴의 폭을 제약하며, 심지어는 검열하고 재교육할 것을 찾아 우리의 사상과 공상을, 지레짐작된 우리의 의도와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것을, 그리고 깊이 묻어둔 신념을 샅샅이 뒤진다. - P47수동성, 약자로서 의도적으로 노출되는 그들은 피해자의 지위자로 한계지어져 있다. 그들이 말하는 도덕성을 갖추어도 인간으로 취급되지 못하는 것이다.<br>우리는 애초에 피살자가 왜 칼을 집어 들려 했을지보다 누군가 피살자 옆에 칼을 심어둔 것인지-종종 그렇다-여부에 매달리며 시간을 낭비한다. 하지만 "그 성원들을 자포자기식 방안으로 내모는 사회는 [...] 대체되어야 하는 사회"라면, 그리고 우리에게 식민 권력에 맞서 폭력적으로 저항할 도덕적, 법적 권리가 있다면, 폭행 용의자를 변호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nbsp;'비당파적', '중립적' 인물이라는 민간인의 발명은 팔레스타인 대의의 탈정치화를 심화했다. - P70~71서구는 비당파성, 중립성을 지닌 이상적인 신화 기준을 바라고 요구한다. 과연 비당파적이고 중립적 인간이 얼마나 있을 수 있는가. 1960년대 미소의 대결 하에 아시아는 중립주의를 표방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적 시선일 뿐 얼마 가지도 못했다. 해방 후 조선은 어떠했나. 우파도, 좌파도 아닌 중도주의를 표방한 이들은 말로가 좋지 못했다. 희망을 노래했지만 희망으로 그쳤다.&nbsp;<br>피점령지 예루살렘에서 자라던 시절, 우리를 동네에서 쫓아내려했던 이들은 유대인이었고, 그들이 속한 단체의 이름에도 종종 "유대인"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었다. 우리 집을 훔쳐 간 것도, 우리 가구를 길에다 내던진 것도, 아기였던 여동생의 요람을 태워버린 것도 유대인이었다. 우리를 추방한 것에 문제가 없다며 법봉을 흔들어댄 판사들도 유대인이었고 체계적으로 우리를 내쫓는 법을 만든 입법자들도 마찬가지였다. ... 우리의 파란색 신분증을 발급하고 말소하는 관료는 유대인이었고 나는 특히 그를 경멸했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고조부의 도시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nbsp;언어는 점령당한 골란 고원과 시리아의 나머지 지역을 가르는 경계지대보다 더한 지뢰밭이었고, 어린아이였던 우리는 우리를 신뢰 못 할 존재로 만들 폭탄 같은 말을 실수로라도 밟지 않기를 바라며 그 지뢰들 사이를 이리저리 팔짝거리며 다녀야 했다. ... 틀린 신념을 갖는 것은 훨씬 더 위험했다. 그랬다간 그런 잔혹 행위를 당해도 싼 존재가 되었다. - P111~113유대국가 하에 사는 팔레스타인의 실상이란 이런 것이다. 피점령지 예루살렘이라는 말이 잔혹하게 느껴진다. 쫒기고 내몰리는 것에 그치지 않았고 다치거나 죽었다. 강제로 그어진 경계선을 억지로 지켜야 했고 살아남기 위해 분투해야 했다.&nbsp;<br>제임스 볼드윈은 "자신의 상황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적다는 것쯤은 그다지 똑똑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자신을 비인간화하는 이들과 함께 사느라 "쉼 없이 이유 없는 수모를 당하고 위험을 겪다 보면 비상하게 예민하지 않아도 지칠대로 지쳐 낭떠러지 끝으로 내몰린다"라는 것이다. - P158능력, 성실만 있으면 개천에서 용이 될 수 있는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편안한 환경에 놓이지 못했다. 그런 아이들을 교육시킨다고 해서 전쟁, 현실,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할 수 있는가. 공부하면 할수록 느끼지 않을까. '이 환경을 바꾸려면 바꾸고 뛰어들어야 해. 투쟁해야 해. 터트려야 해.'<br>파편화는 그저 상징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를 제각기 다른 나라에 살게 만들었다. 근년에 우리 사회의 한쪽은, 어떻게 됐든 그쪽에 남아 있는 이들은, 다른 이들보다 크고 피에 젖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 한때 나는 오래도록 경멸하고 질투했던 계급들, 엘리트들, 부르주아들, 팔레스타인을 미적 은유로 쓰는 이들과 쉽게 거리를 둘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자 지구라는 좁다란 아수라장에 새로운 계급 하나가 등장했다. 바로 굶주리는 계급, 반복적으로, 가차 없이, 무자비하게 빼앗기는 계급이다. - P194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도 계급화되어 문제가 더 복잡해지고 있다. 먹고 살 만한 계급은 괜찮겠지만 빈자들에게는 더 혹독한 환경이 되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도 트럼프의 입과 이스라엘 등 주요 중동 국가에만 눈길이 가 있지 팔레스타인의 문제에 집중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br>서구의 지식 생산자들 혹은 서구의 목소리를 활용해 지식을 생산하는 이들이 자문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다. 이 작업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자리는 어디인가? 그들은 주체성이라 할 만한 것을 지녔는가, 아니면 논지를 제시하기 위한 도구인가? 내가 착취적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어떻게 책임 있는 저자성을 실천할 수 있는가? 나의 기획에 관객이 그것을 비판적으로 소비하도록 독려하는 단서를 충분히 넣었는가, 아니면 그저 내 등을 토닥이고 있는가?... 내가 정말로 가서 '직접 확인해야' 했던 것인가, 아니면 한 세기에 걸친 팔레스타인 문헌들을 무시한 것인가? ... 내 작업에 계급 분석이 있는가? ... - P179대부분의 언론과 매체 등에 기록된 내용과 인용 자료를 이용할 때 생각해보아야 할 점이 아닌가 싶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먼저 주의를 기울여야겠지만 그것을 읽는 사람들도 당연하다듯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확인하며 읽을 필요가 있다.&nbsp;<br>이 정도로 이 책의 읽기 소감을 갈음하고자 한다. 저자가 시인이기도 해서인지 묘사나 표현력이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한 뒤 이 책을 읽으면 좋을 듯하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95/1/cover150/k632137156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0950125</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8. 웃고 미소를 짓는 것은 행복하다는 표시이다. 분...</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511291</link><pubDate>Sat, 12 Sep 2026 12: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51129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338586&TPaperId=175112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42/32/coveroff/895733858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42/32/cover150/895733858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5423297</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환구음초</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492534</link><pubDate>Thu, 03 Sep 2026 21: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49253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338586&TPaperId=1749253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42/32/coveroff/895733858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42/32/cover150/895733858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5423297</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환구음초</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487818</link><pubDate>Tue, 01 Sep 2026 22: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48781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338586&TPaperId=1748781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42/32/coveroff/895733858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42/32/cover150/895733858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5423297</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읽고 살고(2026.08.30)</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480930</link><pubDate>Sun, 30 Aug 2026 18: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48093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890122758&TPaperId=1748093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387/39/coveroff/e89012275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1524763144&TPaperId=1748093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6323/43/coveroff/152476314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오랜만에 사는 이야기를 올린다. 회사에서 무얼 기한 내에 끝내야 하는데 진행이 잘되지를 않고 있어서 압박을 받고 있는 상태다. 뭐 사실 누가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스스로가 좀 못마땅한지라 최근에는 에너지가 그곳에 많이 가 있다. <br><br>그나저나 업데이트된 북플 앱(아이폰 기준)은 좀 낯설어서인지 적응이 안 된다. 드디어 제목을 입력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생긴 것 같고 이미지도 멀티 업로드가 가능해진 것은 좋은 것 같다. 그 이외에는 적응이 안되서 헤매는 중이다. <br><br>이제 39도에 육박하는 폭염은 아니라서 주중에는 산책하며 머리를 식히고 주말에는 늘 그렇듯 동네를 산책한다. 하늘이 조금씩 높아지는 모습을 보며 힐링을 하곤 한다. <br>얼마 전에는 여름 휴가를 이용해서 콩국수를 먹으러 1시간 남짓 떨어진 곳에 다녀오기도 했다. 콩국숫집이 그렇게 많은데도 집집마다 자리가 없었다. 특히 내가 간 곳은 웨이팅이 길었다. 사실 나는 웨이팅을 정말 안하는 편인데 이 집 콩국수는 먹고 싶어서 20여분을 기다렸다. 그래도 먹어보니 다행히 맛있었다. 양이 좀 적어서 보통, 곱배기 하나씩 시켜서 먹었더니 딱 맞았다. 옆지기가 콩국수를 잘 먹었다면 곱배기 2개를 시켰어야 했을 것이다. <br><br>참! 필라테스 수업은 사정상 그만두게 되었고 집에서 2~3일에 한 번씩 안 아프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역시 체육관에 나가 운동을 하거나 개인 수업을 받으면 좋겠지만 일단은 에너지가 그렇게까지 되지 못하므로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br><br>9월까지 함께 읽기로 한 비커밍은 열심히 읽고 있다. 그러나 이제 1/3 넘긴 듯함ㅎㅎ 미셸과 오바마가 사랑에 빠진 뒤 합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두 사람이 그렇게나 다르다니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는 미셸의 직업적 선택에 대한 고민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생각해보면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 시간은 너무나 짧은 것 같다. 나도 어느 직업을 선택하기 전에 이것 저것 경험을 해보고 무엇이 맞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면 더 좋았겠다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것도 집이 그래도 찢어지게 가난하거나 힘들지 않을 때 가능한 이야기겠지만.<br><br>오늘은 밀린 글들을 좀 쓰고(읽는 것보다 역시 배는 더 걸리는) 집안일을 하고 나니 하루가 거의 다 흘러갔다. 저녁으론 레토르트 순댓국이 되지 않을까 싶다. <br><br>8월도 어느덧 끝물이다. 다음주 기온을 보니 아침저녁 기온이 좀 내려가는 듯하다. 이 더위도 이제 정말 물러갈 때가 되었다. 모두들 건강하고 행복하게 8월을 마무리하시길.<br clear="all">]]></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6323/43/cover150/152476314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3234340</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중국 신화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480844</link><pubDate>Sun, 30 Aug 2026 17: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48084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81096&TPaperId=1748084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94/68/coveroff/893648109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173&TPaperId=1748084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3/55/coveroff/8937460173_3.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165&TPaperId=1748084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19/coveroff/8937460165_3.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729203&TPaperId=1748084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1/57/coveroff/8990729203_1.gif"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72919X&TPaperId=1748084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0/19/coveroff/899072919x_1.gif"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480844'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몇 년동안 봐야지 생각만 했던 &lt;산해경&gt;을 완독했다. 의외로 보다 보니 이미 내가 다른 책을 통해서 알게 된 것, 매체를 통해서 친숙해진 사실들이 많아 흥미롭게 읽었다. 애당초 모든 것을 외우겠다 덤비지만 않는다면 편하게 쓱쓱 볼 수 있다. 다만 신묘한 동물(?)에 대한 것은 전체적인 그림만 나오고 개개의 그림은 없어 설명만으로는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nbsp;<br>예를 들어 이 책은 북차1경의 괴이한 동물이라고 해서 이렇게 전체적인 삽화도를 실어놓고 옆에 간단한 설명을 실어놓았다.<br>상고시대에 모우는 지금보다 넓은 지역에 살았지만 지금은 청해, 티베트 지역에서만 산다. 이 구역에는 소리를 낼 줄 아는 뱀이 있어 제단의 수호신이 되었다. 더욱 괴이한 것은 제건이란 동물인데, 사람 머리에 눈이 하나뿐이고 특이하게 춤추며 꼬리가 무척 길어서 꼬리를 입에 물고 걸어다닌다. 옛날 사람들은 제건 흉내내기를 좋아해서 그를 따라 춤도 추고 소리도 지르며 혼자 기분을 내거나 씨족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도 했다. 또 사냥하기 전이나 출정하기 전 혹은 무술 의식 전에 이 동작으로 몸을 풀기도 했다. - P63<br>근데 나는 이걸 봐도 잘 와닿지가 않았다. 그림을 알아먹는 재능이 없는 걸로. 아무튼 개개의 동물을 이미지화시켜놓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전자책을 통해 도움을 얻었다(물론 &lt;산해경&gt;에도 몇몇 동물은 개별적으로 설명하고 있기는 하다). 해당 동물이 어느 곳에 거주하고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 간단한 설명을 제공하기에 레퍼런스로 딱이었다.&nbsp;책에 나오는 모든 동물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아래 그림은 상류에 대한 설명이다. 머리가 아홉개 달린 뱀인데 이미지로 보니 확실히 더 감이 잘 왔던 것 같다. 사실 이 전자책은 중국에 갔을 때 사려고 했다가 전자책에 이미 있는 것을 발견하고 구입하지 않고 넘어갔던 책이었다.&nbsp;&nbsp;<br><br>그리고 나는 방향을 비롯한 공간(지리) 감각은 없는 편이라서 역시 설명만으로는 이해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이것은 개인적인 부분으로 고질적인 문제니 넘어가기로 했다. 이런 곳이 있나보다 이런 곳이 있나보다 하고 넘어갈 수밖에. 어차피 해당 시기는 역사인 듯 아닌 듯 대부분의 내용이 역사와 신화가 섞여 있기도 하니까. 그래도 한반도와 가까운 곳이 나오면 좀 더 집중하게 보게 되더라.<br><br>앞서 정재서 교수의 이야기 동양신화 1, 2권을 통해서 어느 정도 맛보기로 접한 바가 있었던 것이 꽤나 도움이 되었다. &lt;산해경&gt;의 역자들도 원문을 번역하면서 의문이 드는 부분은 정재서 교수의 책을 참고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조사 끝에 판단 내린 결론을 책에 실어두었더라. 이런 좀은 흥미로웠다. 배울 점을 찾아 보완하려는 모습이 좋았다. 사실 원문을 번역을 통해서 보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번역에 의지해서 원문을 해석할 수밖에 없다. 원어를 아는 독자라도 애써 찾아보지 않으면 오류를 걸러내기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좋은 접근이었다 생각한다. <br><br>그렇다면 산해경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담고 있고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을까.&lt;상서&gt;와 &lt;여씨춘추&gt;, &lt;사기&gt;를 보면, 대우가 치수한 후에 대신들을 거느리고 산천대지와 생산물의 분포상황을 조사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 조사결과에 근거하여 당시 매우 정확한 ‘국토자원 분포도’를 제작하면서 전국을 구주로 나누었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 보는 &lt;산해경&gt;의 &lt;산경&gt; 부분이 바로 대우의 조사결과에 해당된다. &lt;산해경&gt;은 서적으로도 만든 동시에 &lt;산해도&gt;라는 그림으로도 제작되었다. 사실 &lt;산해경&gt;은 이 &lt;산해도&gt;를 설명한 글이라고 한다. &lt;산해도&gt;는 세발솥 구정에 넣었으나, 춘추전국시대의 사회가 어수선하고 전쟁이 빈번하여 구정이 사라지면서 &lt;산해도&gt;도 자취를 감춘다(P4).그후 진이 통일을 하면서 산해경을 찾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nbsp;<br>지금 전해지는 산해경은 18권으로 남산경, 서산경, 북산경, 동산경, 중산경이 각각 한 권으로 합해져 5경으로 &lt;오장산경&gt; 또는 &lt;산경&gt;이라 부른다. 해외남, 서, 북, 동경이 각각 한 권, 해내남, 서, 북, 동경이 각각 한 권, 대황동, 남, 서, 북이 각각 한 권, 해내경을 한 권으로 해서 13권을 &lt;해경&gt;이라 부른다. 합해서 &lt;산해경&gt;이다.  <br>그러니까 산해경의 지리 정보는 측량에 기반한 정보라 할 수 있다.<br>이처럼 산해경은 그야말로 방대한 백과전서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상고 시대 살았던 이들이 디디고 있던 땅과 그들의 이야기에 주목하여 지리, 역사, 종교, 문학, 철학, 민족, 민속, 동물, 광물, 의약 등 다양한 지식을 담아낸 것이다. 그래서 오래도록 꾸준히 언급되고 회자되며 다양한 컨텐츠를 통해 다루어지고 있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산해경을 중요하게 다루어오면서 중화민족에 얽힌 신화와 전설을 끄집어내어 꾸준히 이용하는 듯하다.<br>개인적으로는 지리에 약하기도 해서 땅을 묘사하고 그곳에 사는 생물에 대한 설명보다는 전승되는 역사에 대한 뒷이야기들이 더 재밌었다. 대표적으로 서왕모, 황제와 치우에 얽힌 이야기나 요, 순임금에 대한 내용 등이 그렇다.&nbsp; &nbsp;<br><br clear="all"><br>  <br>중국 신화전설에 대해서는 이 책으로 가장 먼저 접하지 않았나 싶다. 그때는 잘 모르고 읽었던 것 같은데 다시 읽으면 더 잘 읽히지 않을까 생각한다. <br>그리고 얼마 전&nbsp;정재서 교수의 신간으로 이 책이 나왔길래 구입했으나 언뜻 책의 내용을 보니 조금 어려워보여서 읽기를 망설이고 있다. 그래도 흐름을 끊기지 않기 위해서는 읽어야겠지. 이 책과 더불어 한국의 신화에 대한 이야기도 더불어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nbsp; <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03/56/cover150/899280104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035608</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삼국지를 위한 첫 걸음</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480378</link><pubDate>Sun, 30 Aug 2026 12: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48037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02033562&TPaperId=1748037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773/21/coveroff/k002033562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모름지기 영화든 드라마든 한 번에 몰아서 보아주어야 하는데 드라마 &lt;삼국지&gt;는 아직 끝을 보지 못했다. 워낙 길다보니 이제 반쯤 보았나. 다 보고 나면 엮어서 쓸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계속 그 시간이 길어져서 이제 그만하자 생각하고 읽은 책이나 정리해야겠다 결단을 내렸다.&nbsp;<br>삼국지를 한 권의 책으로 이렇게 핵심만 쏙쏙 골라서 써낼 수가 있구나 일단 놀라웠다. 그리고 생각보다 잘 읽히고 재밌어서 순식간에 읽을 수 있었다.&nbsp;<br>대부분 삼국지는 중반까지 가지도 못하고 책을 놓게 된다. 워낙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고 사건도 다양하다보니 읽다 보면 머리에 쥐가 나기 마련이기 때문. 나도 초반에 유비 삼형제가 만나고 동탁이 권력을 잡은 뒤 조조가 그를 공격하려다 실패해서 도망자가 되는 과정, 그를 물리치기 위해 군웅이 모여서 한판을 벌이기까지의 과정은 몇 번을 읽어서 그 과정을 꿸 정도이나 그 이후의 벽은 넘기가 참 쉽지 않았다.&nbsp;<br>초반에 나를 사로잡은 인물은 단연 여포였다. 공격력 면으로는 관우나 장비도 제칠 수 있을 정도로 최강이었으니 사실 초선이 아니었다면 더 오래 살아남지 않았을까. 물론 그는 지혜가 부족하고 편협하여 여러 번 좋은 기회를 놓치면서 스스로 무덤을 팠다. 책사인 진궁의 말만 귀기울여 들었어도 좀 나았을텐데 말이다. 진궁은 동탁을 공격한 뒤 그를 피해 달아난 조조를 영웅이라 생각했으나 조조는 그가 생각하는 도의를 아는 이상적 지도자는 아니었다. 잘 알아보지도 않고 자신을 거두어준 이의 가족들을 몰살시켰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nbsp;<br>물론 오늘날 조조는 예전과 달리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경우가 늘어났다. 무엇보다 관도대전에서 70만 대군을 상대로 몇 만의 군대로 승리를 일구어낸 것은 그야말로 쾌거였다. 사람을 소중히 할 줄 몰랐던 원소의 핵심 인사였던 허유가 조조에게 투항하면서 원소군의 군량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기에 가능했다. 조조가 사람에 진심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여럿 있는데 앞서 유비 삼형제가 전투에 패해 서로 헤어지게 되었을 때 관우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한 것, 뒤에 조자룡을 얻기 위해 보인 관심 등이 있다. 조조가 오래 갈 수 있었던 것은 그 이유가 가장 컸다고 생각한다. 조조는 관도대전으로 삼국의 승자로 떠올랐다.<br>유비는 삼고초려 끝에 제갈량을 얻는다. 이로써 장수 뿐 아니라 소중한 책사를 확보했다. 앞서 유비가 계속 조조에게 밀려 전투에게 패했던 것은 그의 곁에 걸출한 장수들은 많았으나 두뇌를 쓸 줄 아는 자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투는 공격력만으로 결코 가능한 것이 아니며 제대로 된 작전이 없다면 승리를 얻기 힘들다.&nbsp; 제갈량은 유비에게 조조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강동의 손권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손유연합의 결성으로 유비는 조조를 물리칠 준비를 끝마친다. 이로써 조조와 손유연합의 대결이 시작되었다.&nbsp;손유연합이 만들어졌으나 주유와 제갈량의 두뇌 싸움은 치열했다. 손권 측에서는 유비 측에서 먼저 손을 내밀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이 더 우위에 싶었을 것이다. 게다가 싸움은 강동에서 이루어질테니 오랜 기간 수전에 단련되어온 자신들이 우위에 서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주유는 강동의 브레인이었다. 손견이 죽고 손권이 그 뒤를 이었으나 손권은 아직 나이가 어린 만큼 전투 경험이 많지 않았다. 반면 주유는 손견과 오랜 기간 전투를 하면서 그런 경험들이 풍부했다. 제갈량이 손유연합을 위해 손을 내밀면서 두 사람의 두뇌 대결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제갈량이 한 수 위였다. 주유도 대단한 책사였으나 제갈량은 늘 그의 수를 꿰뚫고 있었을 뿐 아니라 번번히 그보다 앞선 수를 내놓았다. 자신보다 항상 더 앞서는 지략가를 만난 주유는 평생 얼마나 한스러웠을까 싶은 생각도 했다.&nbsp;<br>어쨌든 이제 삼국지 하이라이트 전투인 적벽대전이 시작된다. 전투를 위한 사전 작전들이 정말 대단했다. 본 전투 이전에 만약 이런 치밀한 작전들이 없었다면 적벽대전의 결과가 그리 마무리될 수 없었을 것이다. 주유는 친구인 장간을 역이용하고 황개의 고육계와 방통의 연환계를 이용해 조조를 속였으며 제갈량은 안개를 이용해 조조군 진영에 가서 10만 개의 화살을 얻어냈다. 화공작전이 가능했던 것은 방통의 연환계로 조조군의 배를 엮어 불을 연달아 붙게 한 것이 컸다. 이로써 다윗(손유 연합)과 골리앗(조조 진영)의 싸움은 다윗의 승리로 끝날 수 있었다.<br>조조는 왕위에 올랐고(그전까지는 왕처럼 행세하기는 했으나 승상의 위치에만 있었음) 유비는 형주에 이어 익주 땅까지 얻으며 기반을 얻게 되었다. 조조 진영은 책사였던 순욱과 순유가 사망한 뒤 사마의가 그 책임을 맡게 된다. 조조는 유비가 한중을 차지하자 위기감을 느꼈다. 한중은 익주를 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땅이었다. 조조의 꿈인 중원 점령을 위해서는 익주를 지나야 가능했기 때문에 반드시 사수해야만 했다. 그러나 조조는 한중마저 유비에게 내주면서 후퇴해야만 했다.&nbsp;<br>여러 곳을 다스려야 하게 된 유비는 홀로 그 모든 곳을 관리할 수 없게 되었다. 이때 관우는 형주성을 맡게 된다. 적벽대전 이후 여러 전투에서 계속 승리 진영에 있었던 관우는 이제 수성해야 할 성주의 입장에 있었다. 기고만장해진 그는 손권의 아들과 자신의 딸의 결혼인 사돈 제의를 말도 안되는 말(호랑이의 자식을 어떻게 개의 자식과 결혼을 시키겠는가)로 거절한다. 이것은 비극의 씨앗이 되는데 화가 난 손권이 형주를 비우고 조조를 공격하기 위해 관우가 북으로 간 사이 형주성을 빼앗기 때문이다. 더 결정적인 것은 그의 목숨도 부지할 수 없었던 것이겠다. 정말이지 가장 안타깝고 씁쓸한 장면이었다. 관우의 끝은 이렇게나 좋지 않았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여야 하는데 그는 초심을 잃은 뒤 오만함으로 사망하고 말았다.&nbsp;장비의 죽음은 더 황망했다. 그는 예전부터 술을 너무 좋아했고 술버릇도 고약했다. 그것을 지키지 못한 장수의 말로는 잠자는 사이 부하들에 의해서 목숨을 잃는 결말로 남는다.&nbsp;<br>정사에서는 과연 두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다. 아래는 정사 촉서 관우전의 내용 중 일부이다.<br>손권은 아들을 위해 관우의 딸에게 구혼하려고 사자를 보냈다. 관우가 그 사자를 모욕하고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으므로 손권은 무척 화가 나 있었다. 또 남군 태수 미방이 강릉에 있고 장군 사인이 공안에서 주둔했는데, 평소 관우가 자신들을 경시했으므로 싫어했다. 관우가 출병하자 미방과 사인이 군수물자를 대었는데 힘을 다해 돕지는 않았다. "돌아가면 반드시 그들을 징벌하겠다." 미방과 사인은 속으로 두렵고 불안했다. 그래서 손권이 미방과 사인을 은밀히 유인하니, 미방과 사인은 사람을 시켜 손권을 맞이했다. 게다가 조조가 서황을 보내 조인을 보았으므로 관우는 이기지 못하고 군대를 이끌고 돌아왔다. 손권이 이미 강릉을 점령하고 관우의 병사들과 처자식을 모두 포로로 붙잡았으므로 관우의 군대는 흩어지고 말았다. 손권은 장수를 보내 관우를 공격하고, 관우와 그 아들 관평을 임저에서 참수했다.역시 예상대로 관우가 했다는 말은 나오지는 않았고 오히려 그 원인이 되는 이야기가 사실 더 핵심이었다.&nbsp;&nbsp;<br>장비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장비는 군자를 아끼고 존경하지만 소인은 보살피지 않았다. 유비는 늘 이 점을 경계하여 말했다."그대는 형벌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것이 벌써 지나치고, 또 매일 병사들을 채찍질하면서 그들을 측근에 임용하고 있으니 이는 화를 부르는 길이오."그러나 장비는 깨우치지 못했다. 유비가 오나라를 토벌할 때, 장비는 병사 만 명을 인솔하여 낭중으로부터 나와 강주에서 유비와 만나기로 했다. 출발하려고 할 때 그 막하의 장수 장달과 범강이 장비를 죽이고, 그 머리를 갖고 장강을 따라 손권에게로 달려갔다. 장비 군영의 도독이 표를 올려 이를 유비에게 보고했다.&nbsp;<br>유비는 관우가 사망한 것 때문에 손유연합을 깨고 손권을 공격한다. 삼형제의 의리가 그렇게나 중요했을까. 관우는 오만해서 화를 불렀고 장비는 나쁜 버릇을 고치지 않아 자멸했다. 지도자로서 어떤 것이 더 중요했을까. 유비는 의리에 목매어 우선순위를 그르친 끝에 내리막을 걸었다는 생각이 든다. 손유연합이 깨진 이상 유비와 조조의 대결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nbsp;<br>그러나 유비가 후회하고 깨달은 뒤에는 그의 목숨이 이미 다할 때였다. 그는 제갈량에게 촉나라를 부탁하고 사망한다. 제갈량은 그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북벌을 단행함으로써 위나라와 촉나라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이는 사실상 위나라의 브레인인 사마의와 촉나라의 브레인인 제갈량간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nbsp;1차 북벌인 가정 전투에서는 위나라가 승리한다. 이는 “높은 산 위에 진을 치지 마라"는 제갈량의 당부를 잊은 마속이 산을 아래에서 포위함으로써 물이 없었던 산에 불을 놓은 사마의가 쉽게 승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속은 유능한 장수였으나 제갈량은 본보기로 결국 눈물을 흘리며 마속을 참수한다. 여기에서 유래한 말이 읍참마속이다.&nbsp;서성 전투에서는 군량을 지켜내기 위해 제갈량이 직접 참전했다. 촉군은 2500명이었던 반면 위군은 15만명에 달했다. 아무리 수성의 위치에 있던 촉군이었다 해도 이는 쉽게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제갈량은 성의 깃발을 내리고 오가는 사람이 없게 한다. 그리고 군사들을 보내 성 앞에서 쓸게 한 뒤 성문을 활짝 열어둔다. 그는 비단옷을 입고 성 위에서 거문고를 연주했다. 사마의는 그 모습을 보고 ‘설마 뭔가 있겠지’ 하며 돌아가고 만다. 제갈량의 완벽한 승리였다. 여기에서 허장성세(허세)라는 말이 유래했다.사마의는 사마사, 사마소를 데리고 촉군의 식량창고를 습격한다. 그런데 창고문을 열었더니 마른 풀과 장작, 기름만 있을 뿐이었다. ‘아뿔싸!’한 사마의, 여기에 제갈량은 불화살을 쏘면서 불바다로 그들을 섬멸하려 했다. 그런데 이때 하늘에서 비가 내리며 위군은 살아남아 돌아갈 수 있었다.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이구나." 제갈량은 이런 말을 남기며 씁쓸하게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nbsp;&nbsp;이후 오장원에서 위군과 촉군의 마지막 전투가 벌어진다. 제갈량은 하늘을 통해서 본인의 죽음을 미리 알고 촉군을 위한 퇴로를 준비했다. 제갈량은 죽었으나 작전을 남겨두었다. 자신의 가면을 만들어 그가 살아있음을 믿게 만들어 촉군을 도망치게 했던 것이다. 사마의는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물리쳤다.” 했다.&nbsp;<br>개인적으로 제갈량의 두 라이벌인 주유와 사마의 간의 두뇌 싸움이 너무나 흥미로웠다. 물론 조조와 유비 간의 라이벌 대결도 만만치 않았지만. 작가는 ‘절제’라는 키워드로 삼국지의 인물과 사건을 추적한다. 권력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절제가 없으면 리더로서의 신뢰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2세기 말부터 3세기 말까지 후한이 무너지고 진이 삼국을 통일하기까지 약 100여 년의 시간인 역사 &lt;삼국지&gt;가 14세기 나관중의 &lt;삼국지연의&gt;라는 재미난 소설로 탄생하며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lt;최소한의 삼국지&gt;는 복잡한 삼국지를 비교적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재미난 스토리텔링으로 엮어냈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773/21/cover150/k00203356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7732124</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진리의 발견: 앞서 나간 자들 - [진리의 발견 (양장) - 앞서 나간 자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480069</link><pubDate>Sun, 30 Aug 2026 09: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48006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637810&TPaperId=1748006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3308/8/coveroff/k44263781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637810&TPaperId=1748006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진리의 발견 (양장) - 앞서 나간 자들</a><br/>마리아 포포바 지음, 지여울 옮김 / 다른 / 2020년 02월<br/></td></tr></table><br/>우리는 한꺼번에 모든 것이 됨으로써 동시성을 관통한다. 우리의 이름과 우리의 성姓, 우리의 외로움과 우리의 사회, 대담한 야망과 맹목적인 희망, 보답 받지 못한 사랑과 부분적으로나마 보답 받은 사랑이다. 수평과 수직으로 뻗어나가는 삶은 비선형적인 방식으로만 파악되며 "전기"라는 직선의 그래프가 아닌 여러 측면과 여러 빛을 지닌 그림으로 나타난다. 삶이란 다른 삶과 얽힐 수밖에 없으며, 그 삶의 직물을 바깥에서 바라보아야만 인생의 핵심을 파고드는 질문에 어렴풋이나마 답을 구할 수 있다. - P15~16<br>한 사람의 삶의 궤적을 어느 한 시기로 정의할 수 있을까? 질문에 대한 답은 당연히 ‘아니오’이다. 하물며 몇 권의 저서로도 그 사람을 다 파악할 수 없다.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아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에 숨은 뜻이 많다면 더 파악하기 어렵다. 설사 그 이야기에 자신의 이야기가 있다고 해도 그의 개인적인 관계를 다 알지 못하는 한 우리는 표면에 드러난 층으로 일부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한 사람의 인생은 결코 단편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책은 ‘앞서 나간 자들’이 어떤 삶을 살았으며 그의 주변 관계는 어떠했는지, 그가 무엇을 남기고자 했는지 충실히 담아냈다 .&nbsp;<br>다양한 분야만큼이나 여러 인물을 담아내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문학가 쪽보다는 비문학, 과학자 쪽 계열의 이야기가 더 친숙했던 것 같다. 그나마도 에밀리 디킨슨을 제외하고는 요하네스 케플러, 허먼 멜빌, 찰스 다윈, 레이철 카슨의 이름만 알 뿐이었다.&nbsp;이 책을 통해서 마리아 미첼, 메리 서머빌, 윌리어미나 플레밍이라는 여성 과학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에밀리 디킨슨, 레이철 카슨의 삶을 더 깊숙이 알게 된 것도 좋았다. 그래도 이 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은 마거릿 풀러가 아닐까 싶다.&nbsp;<br>마거릿 풀러는 여성 해방 운동의 기초가 되는 책을 쓰고 미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문학, 예술 비평을 썼으며 뉴욕에서 가장 큰 신문사인 뉴욕트리븐에서 최초의 여성 편집자로 일했다. 또 교도소의 개혁을 주장하고 흑인 선거권을 지지하기도 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책을 너무 많이 읽어 일찍부터 근시가 왔고 등이 굽어 스스로 추하다고 생각했다 한다. 풀러는 &lt;19세기 여성&gt;을 통해서 성별의 이원성을 비판했고 ‘대화’라는 모임을 통해 20세기 페미니즘 운동의 포문을 열었다. 그녀는 나중에 로마에 가서 이탈리아의 통일 운동 진행 과정을 목도하기도 했다. 이런 다양한 활동을 해서인지 마거릿 풀러는 책의 다른 인물을 설명하면서 끊임없이 언급된다.&nbsp;<br>인상적이어서 더 언급하고 싶은 인물은 마리아 미첼, 메리 서머빌, 에밀리 디킨슨, 레이철 카슨이 있다.&nbsp;<br>마리아 미첼은 수학에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 여성 최초로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으며 망원경으로 관측할 수 있는 새로운 혜성을 발견한 사람이다. 그녀는 배움의 기회를 가진 이들을 위해 학교를 스스로 열어 운영하고 낸터킷 애서니엄 관장으로 일하면서 대중 강연회를 열었으며 해군에 들어가 계산자로 일하기도 했다. 우주에 대한 소명을 가지면서도 사회 개혁을 위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틀릴 수 있고 틀려진 것이 밝혀지면 밝힐 줄 아는 용기를 가진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과학자란 직업인으로서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소명이자 가치가 아닌가 생각한다.&nbsp;<br>메리 서머빌은 스코틀랜드 과학자이자 네 아이의 엄마로 자외선의 자성을 연구한 과학 논문을 썼을 정도로 타고난 재능을 가졌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뉴턴의 &lt;프린키피아&gt;를 대중에게 소개하고 &lt;천계의 구조&gt;를 써서 마리아 미첼에게 칭찬의 편지를 받을 정도였다. &lt;물리적 과학의 관계에 대해서&gt;라는 논문을 통해서 천문학, 수학, 물리학, 지질학, 화학을 하나로 묶어내는 작업을 하며 반향을 일으켰다. 이는 성실함을 지니지 않았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미션이라 생각한다. 특히 과학은 남자의 분야(man of science)라고 일컬어지던 때 일구어낸 일이었기에 한 비평가에 의해서 그녀에게 과학자라는 용어가 주어지기도 했다.<br>에밀리 디킨슨은 평생에 걸쳐 수많은 작품을 써서 이름을 알린 시인이다. 사실 그동안 그녀의 시를 몇 차례 읽었으나 무슨 의미가 담긴 것인지 결코 알 수 없었다. 마치 눈뜬 장님 같은 느낌이었달까. 이 책을 통해서 그녀 곁에 어떤 이들이 있었는지 알게 되니 조금이나마 그 의문이 해소가 되었던 것 같다. 중심 인물은 수전 길버트다. 그녀는 평생에 걸쳐 디킨슨에게 영향을 주었다. 디킨슨의 시는 찬양과 비탄을 이중적으로 담는 애가의 형식으로 그녀만의 리듬과 운율을 지녔다. 특히 다양한 물질에 대한 상징성을 이용한 것이 특징이다. 그 대상에는 식물이 가장 많이 이용되었으나 일식 같은 자연 현상도 있었다. 그녀는 죽기 전 30여년 간 거의 밖을 나오지 않고 은둔한 채 작품에만 매달렸다 한다. 수전과 더이상 함께 지낼 수 없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이런 의도적인 제약이 오히려 창의성을 이끌어내는데는 돌파구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디킨슨 사후 수전의 존재는 지워지고 만다. 그래도 메이블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디킨슨의 작품이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는 것은 다행인 것 같다.<br>레이철 카슨은 문학적 재능을 가진 과학자로 그야말로 두 문화의 경계를 허문 인물이 아닌가 싶다. 사실 카슨의 문학적 재능을 잘 알지는 못했는데 그녀는 어릴 적부터 작가를 꿈꾸었고 여러 매거진을 통해 그녀의 이야기가 실릴 정도로 탁월한 글쓰기적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 특히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글을 써냈다는 것이 놀라웠다. 생물학자이자 과학자로만 알고 있었던 나는 그녀를 그야말로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독서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특히 문학을 좋아해 여러 문학가의 글을 섭렵했다 한다. 카슨은 대학 2학년 때 생물학 수업을 듣고 과학계의 길에 들어선 뒤 인간의 관점이 아닌 바다, 생물의 환경에 관한 다양한 저서를 펴내 큰 반향을 일으킨다. &lt;우리를 둘러싼 바다&gt;, &lt;바다의 가장자리&gt;, &lt;침묵의 봄&gt;에 이르기까지. 특히 &lt;침묵의 봄&gt;은 출간하면서 주변의 공격을 예상했다 한다. 카슨은 과학이 아니라 비과학적 태도를 비판하며 과학을 올바르게 적용하는 일에 대해서 윤리적인 물음을 던졌다. “우리를 둘러싼 우주의 신비와 현실에 우리가 좀 더 분명하게 주의를 기울일수록 파괴를 향한 인류의 성향이 약화될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자본에 의해 환경은 끊임없이 공격받아 파괴되고 있다. 불과 며칠 전 있었던 네팔의 안타까운 사건을 보면서 여전히 그녀의 메시지가 우리에게 묵직한 물음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br>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라면 한 사람을 설명하면서도 그의 주변 관계를 끌어오고 당시의 문헌이나 사건을 끊임없이 가져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리아 미첼이 혜성을 발견하기 몇 달 전 랠프 왈도 에머슨은 처음 출간한 시집에서 이런 시를 썼다는 식으로 설명한다든가 열두 살 소녀였던 마리아 미첼이 일식을 관찰하고 별을 향한 자신의 소명을 발견한 지 몇 달 후, 21세의 마거릿 풀러는 초월적인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특별한 별”에 도달했다(P164)는 식이다. 하나의 이야기만 파고들고 싶은 이는 이런 방식의 이야기를 따라가기 벅찰 수 있을 것 같다. 반면 이야기를 서로 얽어 한 시대를 정리하고 싶은 이라면 꽤나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3308/8/cover150/k44263781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33080859</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진리의 발견 (양장)</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469659</link><pubDate>Mon, 24 Aug 2026 22: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46965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637810&TPaperId=174696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3308/8/coveroff/k442637810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3308/8/cover150/k44263781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33080859</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역사 앞에서: 한 역사학자의 8.15 일기 - [역사 앞에서 : 상 - 한 역사학자의 8·15 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468300</link><pubDate>Mon, 24 Aug 2026 08: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46830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81630&TPaperId=1746830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02/90/coveroff/893648163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81630&TPaperId=1746830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역사 앞에서 : 상 - 한 역사학자의 8·15 일기</a><br/>김성칠 지음, 정병준 해제 / 창비 / 2026년 08월<br/></td></tr></table><br/>이 책은 앞서 같은 제목으로 1945년 말부터 1951년 4월까지 일기의 내용이 실려 출간된 바 있었다. 그러다 최근 8.15 해방 직후부터 그해 11월 말까지 기록이 추가로 발견되어 작년에 한 신문사에 연재된 내용을 바탕으로 개정판이 나오게 되었다. 앞선 구판은 사실상 하권의 내용이 되며 이 책과 더불어 2권의 책으로 분간되어 나오게 되었다. 상권은 8.15 일기, 하권은 6.25 일기가 되는 것이다. 앞부분은 1945년부터 1946년 4월까지의 내용이 실려있는데 주로 해방 직후 2~3개월 내용의 분량이 많아서 해방 직후사라 할 만했다.<br>이 책의 내용은 해방 후 서울의 공간이 아닌 충북 제천군 봉양면이라는 지방의 공간적 관점이 적용되어 있다는 것이 특별하다. 이는 저자가 그곳에서 주로 생활했고 금융조합 이사로 일했기 때문에 그렇다. 덕분에 중앙이 아닌 지방에서는 어떤 일이 구체적으로 벌어졌는지 그 실태를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nbsp;<br>먼저 저자의 해방 전 이력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는 1928년 대구고보 2학년 때 대구학생 비밀결사 사건으로 검거되어 10월 징역 2년 집행유예 선고를 받을 때까지 근 1년간 미결수로 복무한 이력이 있다. 그리고 1942년 경성제대 법문학부에 입학해 조선역사를 전공했다. 1943년 일제가 학도지원병을 강제하자 입대를 거부한 그는 1944년 징용훈련소에 수용되었다. 다행히 그곳에서 경성법학전문 시절 훈련교관을 만나 퇴소할 수 있었고 그 이후 조선금융조합 연합회 제천군 봉양면 이사로 일하게 되었다.&nbsp;당시 제천은 원주와 경주를 잇는 기차가 지나가는 교통의 요지였다. 1941년 7월 현재의 중앙선이 개통되면서 봉양역이 생겼다. 봉양면은 제천군의 북쪽에 위치하여 원주군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nbsp;<br>봉양면의 해방은 8월 17일에 느껴진다. 여러 분위기가 있는데 일반 서민들은 환호하는 반면 일제에 협력했거나 부역했던 자들은 불안해했다. 관청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가다가 사람들이 던지는 돌에 맞거나 구타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시간이 지나면 자포자기로 바뀌거나 나태나 무책임의 태도로 변화하기는 하지만 초반에는 실제로 공격당해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그가 몸담고 있던 금융조합 직원들도 그랬다. 금융조합은 곧 사라질테니 하루 빨리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하던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언제 올지 모를 폭풍우를 예상하며(애써 외면하며) 몸조심하는 사람이 있었고 또 에라 모르겠다 하며 어차피 사라질 금융조합 일이니 대충 하자며 근무 태만인 자도 있었다. 하루는 그가 금융조합 내부에서 위로금을 나눠 가지기로 했다고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이는 명백한 배임죄라며 불같이 화를 내었다 한다.&nbsp;그는 혼란한 상황 속에서도 각자의 역할에 충실(학생은 학생답게, 직장인은 직장인의 일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시스템의 구조적인 개혁보다는 개개인의 자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하는 사람이었기에 보수적인 입장이었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친일파 강력 처벌에 대해서도 회의적이거나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는 치안력이 확립되지 못해 주먹이 앞서는 세상을 경계했다.&nbsp;&nbsp;<br>해방이 되어 하루 빨리 조선을 떠나야 했던 재조일본인들도 있었으나 자의 반 타의 반 나가 있던 조선인들은 귀환을 서둘렀다.&nbsp;1945년 8월 31일 흐리다.제천행.역에 내리니 "귀환 병정, 응징사 환영, 강원도 영월군"이라는 깃발이 보이고&nbsp; 그외에 평창, 정선 등 군도 있었다. 그리고 마이크로폰으로 "강원도 영월 사람으로 병정이나 징용 갔던 분은 이리 오시오" 하고 외치고 있었다. 이 더위에 갖는 고생을 겪고 가까스로 여기까지 돌아와서 다시 몇백리 산길을 어떻게 톺아 갈까 하고 걱정하던 사람들이 저 깃발을 보고 저 목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기쁠까. 동포애에 눈물겹고 새 결심이 용솟음칠 것이다.근래에 보던 중 가장 유쾌한 광경의 하나이다.저자의 마음이 바로 내 마음이었다. 강제동원당한 뒤 조선에 돌아오던 사람들의 모습이 어떠했을까 궁금했는데 이 일기로 그 광경을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었다. 다른 곳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해방 후 이렇게 한 달도 안 되어서 돌아올 수 있던 사람도 있었겠지만 여러 이유들의 사정으로 아예 돌아오지 못하거나 귀환이 늦어졌으리라 생각한다. 실제로 11월의 일기에서 조선에 있는 일본인의 사정이 나쁘다는 소식이 일본에 전해지자 일본 내 분위기가 악화되었고 이것이 조선인의 귀환에 발목을 잡는 일이 생겼다고 한다. 자신이 원해서 나간 것이 아니었는데 돌아오는 것도 뜻대로 안되는 이 상황은 정말이지 씁쓸하기 짝이 없다.<br>그는 전재 귀환 동포를 위한 구휼 사업을 금융조합 내부에 건의하여 시작했다. 기다림 끝에 돌아오는 동포를 위해 음식을 마련하여 전해주면 했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따뜻한 조선 입성의 기억으로 남았을 것 같다.&nbsp;<br>9월이 되자 미군이 들어온다는 소식이 퍼졌고, 이에 분위기가 뒤숭숭해진다. 심지어는 대학도 미군이 점거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어느 날에는 미군 접대를 위한 환영 연회가 열리는데 그는 미군들을 위해 애쓰는 꼴이 우습다고 넋두리하기도 한다.그리고 이 무렵 초기 대한민국을 지도할 만한 교육 행정 책임자가 마땅히 없어 순수 학문을 연구하던 학자들을 끌고 와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그는 연구에 매진해야 할 사람들이 행정에 가담해야 하는 현실에 통탄하며 대한민국교육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모습을 보인다.&nbsp;그리고 당시 통화가 시중에 대량으로 풀리면서 인플레이션으로 물가도 급등한다. 그런데 받는 급료는 그대로이니 직원들의 불만은 커졌고 이때를 틈타 회계 장부에 손을 대는 직원도 생겨났다.&nbsp;그는 총독부와 군정청을 매한가지라고 생각했다. 일부는 미군을 해방군으로 여기기도 했겠지만 결과적으로 미군은 해방군이 결코 아니었기에 그의 생각은 옳았다고 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선의 정치는 무능함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이 세태를 비판하며 '그만큼의 질서도 기적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복잡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굴러가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던걸까. 시니컬함이 엿보이기도 하다.&nbsp;<br>여기 한 사나이가 있다. 그의 운명의 고삐는 자꾸만 엇나가려 하고 있다. 그는 혼신의 힘을 기울여 버티고 버티고 했으나 운명의 작희는 끝이 없다. 그러나 그는 이를 하늘님이 주시는 시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밀물처럼 밀려오는 슬픔과 애달픔을 이를 악물고 눈물을 삼켜버린다. 그는 꿈에도 술에 숨으려 하지 않고 아편에 도망하려 하지 않는다. 하늘님이 영 그를 버리시기 전엔 그는 앞으로도 언제나 그러하리라. ... 낙천주의여. 허허 하고 웃는 그의 웃음 뒤에 만겹 시름이 첩첩이 쌓이고 쌓이었음을 그 누가 알랴. - P146~147일제강점기 이후 조선과 조선인의 운명은 가혹하였으나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낙천주의를 가지고 있다고 그는 자신의 마음을 빗대어 말하였다. 가까운 친구는 그를 안온적이고 보수적이라고 비판하며 좌익으로 노선을 달리하기 시작한다. 내심 괴로워하면서도 그는 자신의 노선을 끝내 고수하고자 했다. 그러나 복잡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던 듯하다.&nbsp;<br>그는 학문에 대한 태도를 구기를 배우는 태도에서 나아가 상업으로까지 연결시킨다. 여기에는 정공법, 속여서 얻기, 정공으로 시작했으나 이익으로 나아가는 세 가지의 모습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공부하는 목적은 단순히 문제를 풀기 위함이 아니라 올바른 길을 찾아 그 길을 똑바로 지켜나갈 수 있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공부는 유한 계급 엘리트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이자 자기 성장의 유일한 길이기에 나이, 환경 등을 따지는 것은 핑계라 말하고 있다. 어느 정도 공감하는 바가 있었다.&nbsp;<br>그는 일기에 여러 차례 한글의 우수성과 위대함에 대해 피력한다. 한글만큼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과학적인 문자가 없다고 말이다. 그는 문화적인 독립을 위해서라도 한문을 전폐하고 한글을 사용해야 함을 계속 일기에서 강조하고 있다.&nbsp;그리고 그는 다양한 책을 번역했는데 그중 강용흘의 자전소설인 Grass Roof를 '초당'으로 내었다는 이력이 눈에 띄었다. 그뿐 아니라 펄벅의 대지도 그 목록에 있다. 1945년 12월에는 &lt;조선역사&gt;를 쓰고 정리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당시 출판계의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았다고 한다.&nbsp;12월 초 임시정부 요인들이 개인 자국으로 입국했다는 신문이 지방에도 보도되었다. 얼마 후 임시정부 요인의 개선 환영식이 있었으나 이와중에도 인민공화국과 한국민주당으로 파가 나뉘어 극도의 혼란한 모습을 보였다.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과가 발표되자 이 분위기는 더욱 심화되었다.&nbsp;<br>그는 금융조합 지회에 몸담고 있었던 만큼 자문을 하러 오는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았으나 가능하면 이를 회피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1946년 1월에는 &lt;조선역사&gt;를 기고 및 탈고하는 데만 매진했다. 이를 통해 향후에는 학문 연구, 기고에만 집중하겠다는 생각을 점차 굳힌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금융조합 연합회에 사의를 표명하는데 이는 갈수록 금융조합이 우익편향이 되는 모습을 보였던 것도 한몫을 했다. 물론 그는 공산당의 독단과 사대주의를 경계했다. 공산주의의 이념은 배울 점이 있으나 공산당의 방향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nbsp;<br>책을 읽으면서 내 안에 드는 질문은 이것이었다. 과연 개개인이 각자의 일에 매진하는 것과 투쟁을 포함한 사회를 개혁하는 것 중 해방 후의 미래를 위해서 어느 것이 더 나은 과정이었나 하는 생각 말이다. 저자는 앞선 관점을 고집했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의문이 남았다. 해방 초기 잠깐은 친일에 부역하던 이들이 몸을 사리고 눈치를 보았지만 이후에는 그러지 않았다. 더군다나 미군정이 들어온 뒤에는 각자가 생각하는 국가의 모습이 달라 난맥상이 벌어지지 않나. 개인적으로 당시의 상황에서 구조적인 개혁 없는 미래는 그려지지 않는 것 같다.&nbsp;<br>고백하자면 사실 이 책의 전작을 사두고 아직 읽지를 못했는데 개정판이 나오는 바람에 스텝이 꼬였다. 뒷내용은 아직 나오지 않았기에 구판을 먼저 읽을지 아니면 개정판을 읽고 다시 구판을 읽을지 고민을 좀 해보려 한다.<br>저자의 일기 자체로도 좋지만 정병준 선생님의 해제를 함께 읽으면 배경을 좀 더 소상히 알 수 있어 도움이 된다. 하권도 하루 빨리 나왔으면 한다.&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02/90/cover150/893648163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029087</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뭉우리돌의 광야 - [뭉우리돌의 광야 - 국외독립운동 이야기 : 중앙아시아 편]</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460373</link><pubDate>Wed, 19 Aug 2026 21: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46037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42130109&TPaperId=1746037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69/31/coveroff/k942130109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42130109&TPaperId=1746037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뭉우리돌의 광야 - 국외독립운동 이야기 : 중앙아시아 편</a><br/>김동우 지음 / 수오서재 / 2026년 07월<br/></td></tr></table><br/>한 생의 결말은 작은 돌덩어리로 남겨졌다. 거기 새겨진 얼굴은 그들이 지나온 시간의 압축이다. 그 압축을 풀어내는 건 불가능하다. 단지 잔잔한 응시로 잠시 시선을 주면 된다. 그러면 바람결이 와 속삭인다. 광야에 덩그러니 남겨진 자들의 합창은 그렇게 슬며시 찾아왔다. 곡조는 구슬프지 않다. 무미건조하고 감정이 배제된 게 대부분이다. 누굴 울리려는 소리가 아니다. 망자들과 눈을 맞추며 깨달은 내 해석이 맞다면 그들은 기억되고 싶을 뿐이다. - P15<br>1937년 연해주에 살고 있던 한인들은 미래를 알지 못한 채 중앙아시아로 내몰렸다. 이미 고향을 한 번 떠나온 사람들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정착해온 삶의 뿌리가 또 다시 흔들리는 경험이었을 것이고 그들에게 이는 설움이자 애환이 되었을 것이다. 사진가인 작가는 전작인 두 권의 작업에서 세계 곳곳에 흩어진 독립운동(가)의 흔적을 찾아 헤맸고 현재 존재하는 형태를 글과 사진으로 담아냈다. 전작들을 이미 읽은 바 있었기에 신작이 나왔다는 이야기에 반가웠다.<br>이번 주제가 담긴 장소는 중앙아시아다. 공교롭게도 불과 이틀 전 신문에서 중앙아시아(타지키스탄)로 간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과거의 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당시 37세, 자신과 같은 나이였다고 한다. 광복 81주년을 맞아 무어라도 읽자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읽고 싶은 신간이 나와주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nbsp;<br>'현장을 채우고 있는 건 지독한 외로움의 냄새'라는 문장이 시선을 끌었다. 때때로 카메라의 렌즈에 담긴 피사체는 말을 건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사진가의 사진이 정말 그랬다. 그 결과물이 결코 쉽게 얻어질 리 없다. 휴대폰 카메라로 얼마든지 일상의 순간을 '찰칵!'하고 찍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피사체에 온전히 공을 들여 사진을 찍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촬영 일정이 길면 좋겠으나 부족한 자금, 한정된 시간이기에 최선의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분투할 수밖에 없었을 작가의 고충이 느껴졌다. 작가가 전해주는 이야기도 좋았다.&nbsp;<br>그렇다면 1937년 한인들은 어떻게 하여 중앙아시아로 가게 되었나 그 배경을 알 필요가 있다. 1930년대 중반 소련에 레닌이 사망하고 스탈린이 집권한 이후 정책의 기조는 민족 자결주의에서 소비에트 애국주의로 바뀌며 한인 포함 외국인에 대한 경계, 탄압으로 변화한다. 게다가 중일 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을 견제할 필요가 있던 소련은 중국의 국민당과 불가침 조약을 맺고 내부 단속 강화를 위해 대숙청을 시작한다. 이로 인해 일본 첩자, 반혁명 분자라는 오명을 떠안고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다. 한인 강제 이주는 이런 배경에서 시작되었다. 갑작스럽게 떠나게 된 한인들은 영문도 모른채 부랴부랴 짐을 싸야 했다. 짐도 30kg로 제한되어 있어 현재 가진 살림 살이를 모두 포기한채 말이다. 전체 한인 중 55%는 카자흐스탄, 45%는 우즈베키스탄으로 3차에 걸쳐 강제 이주가 진행되었다(소규모지만 부근의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으로도 갔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때 소련 정부는 한인 가구당 370루블, 1인당 150루블을 주고 가옥과 토지를 담보로 수령증을 발급한 이후 수령증을 기반으로 토지, 가옥의 무상 지급을 약속했으나 지켜지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nbsp;<br>카자흐스탄 우슈토베는 한인들이 강제 이주를 당한 뒤 첫 도착지였던 곳이다. 몇날 며칠을 열악한 기차를 타고 지나온 끝에 그들이 닿은 곳이었다. 바슈토베 언덕은 초기 경작지였다. 한인들은 연해주에서 이미 땅을 옥토로 바꾼 경험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도 그랬다. 이곳 땅은 주변 호수의 영향으로 염분기가 많아 그것을 제거하는 데 많은 공을 들여야 했다고. 안타깝게도 현재 바슈토베 언덕은 더 이상 과거의 모습이 아니다. 불과 6년 전에 작가가 찾아왔을 때만 해도 그러진 않았다. 2019년 기념광장 포장, 울타리배수로 설치, 고려인 추모비 건립, 2021년 한-카 우호기념비 건립, 조형물 설치, 나무 식재, 2022년 8월 고려인 항일 독립운동가 추모벽이 만들어졌다. 추모비에 기념한 재단 문구 등이 새겨지고 흙을 쌓아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등 의도적으로 연출되면서 기존의 모습이 사라졌다. 작가의 안타까움과 한숨이 내게도 전해졌다. 다른 건 그렇다치고 이곳에 독립운동가 시신이 있는 것도 아닌데 추모비와 추모벽이 만들어지는 건 장소에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nbsp;<br>홍범도가 수위로 일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이미 유명해진 고려 극장의 전신 역사가 흥미로웠다. 최초 1932년 원동 변강 조선극장이 출범할 때만 해도 이동 극장의 형태였다. 해삼시 고려극단으로 개명한 뒤 고려음악드라마극장이 되었다가 지금의 고려극장이 되었다. 강제 이주 때문에 카자흐스탄의 크즐오르다에서 우슈토베로 극장을 이동해야 했다. 1968년 알마티로 이전해 국립극장으로 승격되면서 현재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태장춘은 극작가이자 배우로 홍범도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린 사람이면서 그에게 고려 극장 수위 일을 제안한 사람이기도 하다. 연극 '의병들'이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진 것은 홍범도의 강력한 주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자신을 미화하거나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물과 사건을 표현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런 태장춘이기에 작가는 그의 무덤을 찾아내고자 애를 썼고 2024년 마침내 찾아냈다고. 덕분에 나도 이제 태장춘 세 글자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br>헬렌 선교사님도 그렇다. 그녀는 한인 강제 이주 역사 복원 알리기에 헌신하고 계시는 분이다. 우슈토베 임마뉴엘 교회 선교사님으로 고려인 역사 단지를 조성하고 고려인 기념관을 건립하는 일에 앞장서셨다. 그런데 고려인 기념관을 본 작가가 기존 전시 자료에 오류가 많고 내부 건물도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음을 발견하고 재건립을 건의하여 2025년 재탄생했다고 한다. 그 앞에 태장춘 묘지 비석도 제작되었다니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강제 이주 1세대인 지순옥 할머니를 작가가 배웅한 일도 기억에 남는다. 사진을 찍고 얼마 후 돌아가셨다고. 책에 실리지 않았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사연이기에 참 값지다는 생각을 한다.&nbsp;<br>의병장 민긍호의 후손들 이야기는 너무나 안타까웠다. 직계후손인 민 알렉산드리아는 코로나 때 사망했고 고손자인 데니스 텐은 괴한의 칼에 찔려 2024년 사망했다고 한다. 아니 이 무슨 당황스럽고 처참한 상황인지.인민배우 김진은 춘향전에서 이몽룡 역을 맡은 최초의 배우라고 한다. 손녀인 한다나는 알마티 한인교회 전도사로 일하고 있다. 김진의 무덤 형태가 너무나 특별했다. 사각형 돌 무덤인데 춘향전의 한 소절인 '내가 간들 아주가며 아주간들 잊을소냐' 글자들을 모자이크 형식으로 돌마다 새겨 넣은 것이다. 대체 무덤을 누가 이렇게 만든 것일까 궁금증이 일었다. 본인의 유언일까. 그렇다면 이몽룡 역을 맡았던 만큼 죽어서도 배우로 기억되고 싶어서 그리 한 것일까. 한 번 보면 결코 잊지 못할 무덤의 형태였다.<br>최봉설은 철혈광복단 15만원 탈취 사건의 주인공 중 한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현재 부인인 김신희 여사(역시 독립운동가)와 함께 쉼켄트에 묻혀 있다. 따님인 최 알렉산드라 여사로부터 15만원 사건 현장의 자세한 상황을 알 수 있었다. 15만원 사건의 주인공들은 최봉설 이외에는 다 붙잡혔다. 그는 경관에게 쫓겨 도망치다가 오른쪽 등뒤 날갯죽지에 총탄을 맞았다. 최계립이란 가명을 짓고 74세까지 살 수 있었다고 한다.&nbsp;김준은 철혈광복단 15만원 사건을 소설화하여 펴낸 작가다. 그는 언론인으로 일하며 작가로도 활동했다. &lt;십오만원 사건&gt;은 소비에트 문학에서 처음 조선말로 쓰인 조선작가의 작품이었다 한다.&nbsp;계봉우는 한글학자이자 역사학자로 최봉설과도 지인이었다. 소련 수교 이후에나 그의 독립운동 이력이 알려졌다. 상해, 북간도, 연해주를 넘나들며 독립운동을 했다. 1937년 크즐오르다로 강제이주한 이후에는 공개 정치 활동을 삼가고 국어 문법, 국어, 국사 강습, 역사 저술 활동에만 집중했다. 그의 유해는 2010년 서울 현충원에 옮겨 안장됐다.참고로 크즐오르다는 한인들이 벼농사를 성공시킨 땅이자 독립운동가들이 거주하던 곳, 강제 이주 초기에 한인 극단, 방송국, 교육 기관, 신문사 등이 있던 곳이다.<br>한편 한인들은 벼농사에 매진했다. 관련해서 여러 인물들을 책에 거론하고 있다. 최창학은 제3인터내셔널 콜호스(집단농장)을 운영했다(현재 그가 쓴 사무실과 무덤 등을 가볼 수 있다). 김만삼은 1942년 벼농사꾼의 어버이이자 전설로 기록적인 수확량을 올렸던 인물이어서 이곳에 도착한 한인들이 그의 영농법을 너도 나도 배우려고 했다 한다. 그는 추후 레닌 훈장까지 받았다.&nbsp;그러나 벼농사에는 그늘도 존재한다. 벼농사를 위해 만들어진 관개수로 때문에 아랄해는 기존의 1/10 크기로 축소되었고 기후 변화까지 생겼다 한다.<br>카를락 박물관과 스파스크 국제 추모단지는 강제 노동으로 끌려온 많은 이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일본이 그곳에 가장 먼저 추모비를 세웠다는 사실이다.&nbsp;독립운동가 김경천은 바로 이곳 카를락 강제 노동수용소의 수용자로 지냈다. 그는 카를락에 있다가 나중에 코미 자치 공화국, 이후에는 코틀리스 북부철도 수용소(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의 배경이 된 곳)에 있다 1942년 숨을 거두었다. 그의 유해는 안타깝게도 아직 발굴되지 못했다.&nbsp;<br>키르기스스탄은 최재형과 허위 가문으로 기억될 수 있는 곳이다.&nbsp;최재형의 둘째부인이었던 최 엘레나 무덤이 2017년 비슈케크 세베르니 공동묘지에 있(음이 확인되었)는데 그 전까지는 최재형의 가짜 후손 행세를 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러시아 해체 후 진짜 후손이 따로 있다는 것이 밝혀졌으니 참 이게 무슨 일인지 싶다. 그리고 2023년 최재형의 묘는 현충원에 조성되었다. 현재 카라콜에는 최재형의 손녀와 딸이 살고 있다. 최재형이 죽고 나자 집안이 몰락하여 가족들이 소련 전역에 흩어져서 살게 되었다. 역사가 낳은 비극이 아닌가 싶다.<br>허위 가문은 3대에 걸쳐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곳이다. 허위의 손녀인 허 로자는 살아생전 독립운동가 후손을 지원해 달라며 대한민국 대사관 문을 여러 번 두드렸으나 매번 문전박대를 당했다. 그러다 2006년 당시 한명숙 총리가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팔십 평생 만에 처음으로 조국 땅을 밟았다 한다. 2007년에는 귀화 신청을 했으나 서류에 아버지 이름을 잘못 기재했다는 이유로 법무부에서 거부하여 45일 간 여관방 생활을 하다가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갔다(대한민국 국적은 2011년에야 주어졌다). 2021년 서울에서 별세했을 때 빈소와 장례 비용도 없었는데 한 국회의원과 기업의 도움으로 겨우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고. 현재 비슈케크 외곽에는 허위의 넷째 아들인 허국의 가족묘가 자리하고 있다.&nbsp;<br>우즈베키스탄은 한인들의 눈물이 어린 땅이다. 더불어 우즈베키스탄에도 5.18 광주 사건과 비슷한 안디잔 학살 사건이 있었음을 알게 되어 더 친숙해졌다.&nbsp;이인섭은 '망명자의 수기'라는 자서전을 통해 한인들의 강제 이주 역사를 여실히 보여준다. 강제 이주 당시 한인은 16000여 가구, 인원은 76000여 명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마련된 주택은 250채가 다였기 때문에 열악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들은 한곳에 살지 못하고 여러 곳의 콜호스로 분산되어 배치되었다. 주로 목화만 생산되던 곳에 벼를 비롯한 채소 등을 심으며 농사가 가능해지도록 만들었다.&nbsp;<br>북극성 콜호스에는 김병화가 있었다. 그는 솔선수범하는 모범적 삶을 실천하며 그곳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친 지도자여서 1948년, 1951년 두 차례 노동영웅 칭호를 받기도 했다. 북극성 콜호스는 나중에 김병화 콜호스가 되었고 현재는 그의 업적을 기린 김병화 박물관이 남아 있다. 어둠을 밝히는 북극성처럼 그는 당시 사람들에게도 힘과 의지가 되는 지도자가 아니었나 싶다.한인들은 이주 후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이 출범하기 전까지만 해도 한인 전통 문화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 이후 한인 문화에 러시아 문화가 침투하면서 전통 문화가 점차 축소되고 있는 상황이라 한다. 그래도 당근채, 양배추 김치, 국시는 오늘날에도 그곳에서 볼 수 있는 한인 전통 음식 문화이다.<br>책의 사연 중 가장 놀라웠던 이야기는 작가가 한 탈북자를 만났는데 그 아내(남 타티아나)가 최재형의 후손이었다는 사실이다(너무 놀라워서 한동안 입을 벌리고 있었다). 앞서 최재형의 후손들이 소련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다 했는데 손녀와 며느리의 무덤이 타슈켄트에 있었다. 아는 분들의 도움으로 찾아간 무덤 상태가 영 좋지 못했다. 가는 길이 가시밭길일 수는 있으나 무덤 상태를 보니 정말이지 한숨만 나왔다. 그곳을 지나가기도 어렵겠지만 지나친다 해도 결코 무덤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처참했던 광경이었다.&nbsp;<br>또 하나 기억해야 할 인물로 작가는 천도교 독립운동가인 강연상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사연도 안타깝기 짝이 없다. 2024년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무덤을 발견했다며 비교적 상태가 양호하다고 발표한다. 그런데 막상 작가가 가보았더니 엉망진창 상태였다. 작가처럼 나도 속으로 중얼거렸다. '차라리 말을 말지 대체 왜?' 울화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타슈켄트에서 우리 역사를 흑백 필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는 안 빅토르도 기억에 남는다. 작가는 그의 사진에 대한 태도를 보며 자신을 돌아본다. 자신이 기록을 멈추면 그마저도 기록이 사라진다 생각했다는 안 빅토르, 작가도 그런 마음으로 이 작업을 계속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겠지만 부디 이 작업이 계속 이어질 수 있기를 소망했다.<br>이 책은 이야기와 사진 뿐 아니라 방문한 곳의 GPS 좌표를 제공한다. 구글맵에서 해당 좌표를 입력하면 쉽게 저장할 수 있다. 나도 몇몇 군데는 저장해놓았는데 언젠가 꼭 한 번 방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nbsp;역사를 자본주의적 시각에서 유불리로 바라보면 어떤 이익도 취할 게 없다. 역사는 단지 지나간 서사일 뿐이고 거기에 자본과 시간을 투자하는 건 소모적 지출이 될 뿐이다. 하지만 역사는 공동체를 하나로 연결하고, 유대를 형성하는 에너지원이다. 그 힘은 현재 판단을 도와 미래를 여는 열쇠가 된다. 희망은 "너무 비싸도 사야지"란 의지에 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지만 함께라면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위정자에게 희망을 걸기보다 이 책을 나누는 독자들이 미래다. - P17<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69/31/cover150/k942130109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693162</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Becoming</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455849</link><pubDate>Mon, 17 Aug 2026 16: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45584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1524763144&TPaperId=1745584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6323/43/coveroff/152476314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6323/43/cover150/152476314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3234340</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454204</link><pubDate>Sun, 16 Aug 2026 18: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45420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21482&TPaperId=1745420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253/44/coveroff/893292148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253/44/cover150/893292148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2534468</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Becoming</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449285</link><pubDate>Thu, 13 Aug 2026 21: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44928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1524763144&TPaperId=1744928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6323/43/coveroff/152476314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6323/43/cover150/152476314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3234340</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445959</link><pubDate>Wed, 12 Aug 2026 07: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44595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21482&TPaperId=174459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253/44/coveroff/893292148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253/44/cover150/893292148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2534468</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