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거리의화가의 서재 (거리의화가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hu, 23 Apr 2026 22:18:57 +0900</lastBuildDate><image><title>거리의화가</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155161733379275.jpg</url><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거리의화가</description></image><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베이징 여행기(2026.04)</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28147</link><pubDate>Mon, 20 Apr 2026 15: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28147</guid><description><![CDATA[지난 주 베이징에 4박 5일 간 여행을 다녀왔다.<br><br>대부분 인생에 한 번쯤은 자금성과 만리장성에 가보는 꿈을 꿀 것이다.<br>나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br>그러고 보면 어릴적부터 내 버킷 리스트에는 유독 어딘가를 여행하는 것에 대한 갈망이 많았다.<br>무언가를 직접 보고 경험하는 것은 그때부터 내게 소중한 가치였던 셈이다.<br><br>베이징에 대한 인상은 상하이와는 완전 달랐다.<br>상하이는 금융 도시이자 경제 특구로 일찍부터 개방되어 외국인들, 관광객들이 많아 음식도 그렇고 글로벌적인 느낌이 강하다면<br>베이징은 중심가를 제외하면 골목에 옛 정취가 남아 있어 로컬적인 느낌이 강했다.<br>그리고 지역 범위가 넓어 가려는 곳을 걸어다니기는 무리인 만큼 지하철도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나 있는 편이었다(총 17호선이었던가?).<br>상하이는 도보를 많이 했고 항저우는 디디를 많이 이용했다면 베이징은 지하철을 정말 많이 이용했다.<br><br>베이징은 상하이보다 확실히 정치적인 느낌이 있다. <br>어딜 가든 보안 검색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경찰서가 거의 도로 한 블럭마다 존재했고 돌아다니는 군인과 경찰이 많았다. CCTV는 말할 것도 없고^^<br>또 봄철 황사가 워낙 악명이 높아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심했다.<br>폭우가 내린 한 날 빼고 대기질이 불쾌하다고 날씨앱에서 계속 알림이 왔다. 그런데 이 정도 수준은 예사인지 마스크를 안 쓰고 다니는 분들이 많았다. <br><br>만리장성은 여러 개의 코스가 있다. 현재 3군데 정도가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일찍부터 개방된 팔달령 만리장성이다. 이곳은 시내에서 기차로 이동할 수 있어 접근성이 좋아 늘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다. 그리고 목전욕 만리장성이 있다. 이곳은 후에 개방된 만큼 보존 상태가 좋아 외국인 등 관광객에게 인기가 많지만 버스 투어로만 이동 가능한 단점이 있다. 세번째는 사마대장성이다. 이곳은 야간에 개방이 되어 주로 야경을 보러 가는 곳이다. 앞선 두 곳이 낮에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이곳은 밤에 가볼 수 있는 만큼 특화된 점이 있다. 나는 사람에 떠밀리는 게 싫어서 목전욕 만리장성 코스를 택했다.&nbsp;<br>만리장성 가기 전날에 폭우가 내렸다.<br>봄철 베이징에는 비가 거의 안 내린다는데 폭우 수준으로 내리다니 아무튼... <br>당일 오전 7~8시 무렵까지 비가 내려서 걱정했는데 11시가 넘으니 구름이 걷히면서 해가 나기 시작했다.<br>하지만 오후가 날이 좋았어도 아침 일찍부터 이동하지 않았다면 인파에 떠밀려 사진 찍기도 어려울 뻔 했다.게다가 운무에 쌓인 만리장성은 제법 운치가 있었다. <br>케이블카와 리프트-루지 코스가 있었는데 나는 체력을 생각해서 케이블카를 골랐다(사방이 뚫린 곳은 고소공포증 때문에 어렵기도 하고). <br>14번에서 18번 코스까지 다녀왔다. 19, 20번은 깔딱 고개라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br><br>천안문과 자금성은 보통 같은 날 관광하는 경우가 많다.<br>천안문은 처음에는 개인으로 갈까 했는데 사전 예약이 갈수록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았고 자금성은 공부 안하고 가면 건물만 보다 올 것 같아 해설을 들으려고 투어를 신청했다.<br>단체라도 사전 예약이 어려워서 못 가는 경우도 많다는데 다행히 되어서 다녀올 수 있었다.<br>오전부터 황사가 심했고 후텁지근한 날씨였다. <br>천안문를 입장하는 데까지는 직진 코스를 다 막아버려 빙 둘러가야만 했다. <br>검문소 앞을 도착했을 때는 10시도 안 된 시간이었는데 이미 사람이 꽤나 되었다. 개인 줄은 이미 몇 바퀴를 돈 상태였고 단체 줄은 좀 적었다. 보통 개인 줄이 단체 줄보다 훨씬 길다고 한다. 심한 날에는 3~4시간도 서는 경우가 있다고. 그늘 하나 없는 볕에서 30분 넘게 서 있으니 이미 지치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그 정도에 끝나고 천안문 광장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운이 좋은 것이었다. <br>천안문 광장하면 떠오르는 모택동. 나는 이것이 사진인 줄 알았는데 그림이란다. 게다가 매년 그림을 바꾼다고. 예전에는 전담 화가가 있었는데 현재는 미술 대학 교수와 재학생들이 합작해서 그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br>자금성은 역시나 노란? 황금? 기와가 인상적이었다. 물론 우리나라 궁궐처럼 자연스런 느낌은 아니고 인공적인 느낌이 강하긴 하다. 한줄로 쭉 선 궁궐들은 고압적인 느낌이 강했다. <br>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옷차림이었다.<br>전세계의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긴 하지만 국내 방문객의 경우 지방 곳곳에서 올라오기 때문에 특별한 추억을 갖고자 하기에 대부분 명, 청 시대의 전통 복장과 화장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br>우리도 고궁 방문 때 한복을 입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처럼 이곳도 그런 것인가보다. 아무튼 복장이 정말 다양하고 화려했다.<br>베이징 하면 경극이 유명한데 사실 볼까 말까 망설였다.
내용을 하나도 이해를 못할 것 같아서...
그치만 현지에 가서 경극을 볼 기회가 또 있을까 싶어 과감하게 질렀다. 
대부분 관광 상품은 여러 극의 레파토리를 짜집기하여 1시간 남짓으로 구성하고 차를 곁들여 공연하는 것이 많았는데 나는 그런 방식은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모로 찾아본 끝에 완전한 극본의 풀 공연을 하는 곳을 찾아 사전에 예약하여 찾아갔다. 경극 배우로 유명했던 매란방을 기려 만들어진 공간인 매란방 대극원이었고 제목은 &lt;옥잠기&gt;다. &nbsp;사랑 이야기라 잘 알아 듣지 못해도 극을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전방 좌우로 대본이 나와 도움이 되었다.&nbsp; <br><br>이렇게 여행 기간 동안 보고 걷고 먹고 쉬고 그러면서 지냈다.<br>책은 한 자도 안 읽었다(혹시나 해서 종이책을 가져갔지만 역시나 그대로 가지고 왔다는^^;).<br>이번에도 서점은 한 곳을 다녀왔고 페이지 서점이라고 내부가 깔끔하게 잘 되어 있었다. <br>특히 어린이 책 코너가 참 잘 되어 있다고 느꼈다. 나도 그 코너에서 2시간쯤 머물면서 책을 읽다가 졸다가 하며 보냈다. <br>그리고 나오기 전 ‘역경(주역)‘ 관련한 만화책이 있길래 한 권 구입해서 왔다.<br>위화 등단 40주년 기념으로 된 책 ‘인생‘이 있었는데 살까 말까 하다가 무거워서 제외했다. 이미 읽기도 한 내용이니까.<br><br>온몸이 욱씬욱씬 여독이 풀리려면 며칠 걸릴 듯 하다. 그래도 언젠가 경험해보고 싶었던 곳을 다녀와서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20/pimg_715516173510023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28147</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사라지는 노동과 세계에 대한 이야기 -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09996</link><pubDate>Sat, 11 Apr 2026 11: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0999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72002&TPaperId=1720999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89/4/coveroff/8972972002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72002&TPaperId=1720999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a><br/>이라영 지음 / 동녘 / 2026년 02월<br/></td></tr></table><br/>작가의 이름은 여러 번 접했지만 책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간인 이 책이 노동사이자 한국 광업의 역사의 단면을 볼 수 있겠다 싶어 관심은 있었으나 읽은 분들의 후기가 궁금했다. 좋은 책이라는 반응이 많아서 믿고 읽어도 좋겠다 싶어서 구입은 해놓았으나 다른 책들에 밀려 읽지 못하고 있었는데 우연하게도 이 책을 이달 함께 읽는 책읽기 모임에서 읽을 기회가 생겼다. 읽을 순간은 이렇게 더 빨리 찾아왔다.<br>작가의 아버지는 양양의 광업소에서 30년을 넘게 일을 했다. 작가는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함께 양양에 살면서 광부들의 삶과 생활을 보고 들으며 성장했다. 하지만 부모는 가능한 그녀가 광산의 일에 거리를 두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일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곁에서 보고 들은 것이 있었으니 그녀는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광산이 들여다 보아야 할 과제로 마음 속에 남아 있었다. 국내 광산은 공급 감소와 가격 경쟁력에 밀려 상당수가 사장길을 걸었다. 그녀의 아버지도 1994년 일하던 광업소가 폐광하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이제는 다 죽었어.”라는 그녀의 아버지의 말이 미뤄둔 숙제를 결행해야할 때임을 주지시켰다.&nbsp;<br>광부하면 동굴에서 채광을 하는 모습만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광업은 여러 일로 나뉘어져 있다. 크게는 직접 작업장에서 일하는 생산직과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사무직으로 나뉜다. 이 생산직은 다시 갱 안에서 일하는 부서와 갱 밖에서 일하는 부서로 나뉜다. 갱 안에서 직접 광물을 캐는 채광직이 우리가 흔히 보아온 광부의 모습이고 이 채광을 위해 각종 기술을 지원하는 부서, 채광한 광물을 운송하는 부서 등 여러 부서가 있고 갱 밖에서도 전기나 중장비를 다루는 각종 기술직과 운반직, 채광한 광물을 선별하는 업무인 선광과가 있다. 쇳돌을 고르는 ‘선광’은 거의 여자들 몫이었다고 한다. 1950년대 한국 수출품 중 2위가 흑연, 철광석이었다 하니 그 규모를 가늠할 만하다.&nbsp;<br>양양 광업소는 국내 최대 자철을 생산하던 곳으로 일제강점기인 1933년 시험 채광을 시작하여 1938년 광산사업소를 짓고 광산 채굴을 시작했다. 1941년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시작한 이후 양양 동굴에서 캐낸 철광석은 일본으로 건너갔다. 1956년 국유화된 후 채굴을 재시작했고 1973년 포항 제철이 생기기 전까지 양양 광업소는 국내에 필요한 수요를 담당하다가 이후에는 생산된 철을 일본으로 수출했다 한다.&nbsp;해방 후 양양은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해방 후 38선이 그어지자 양양은 북한 땅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후 휴전이 되자 남한 땅이 된 것이다. 양양하와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으나 정작 뜻을 찾아볼 생각은 못하고 막연하게 긍정적인 의미로 쓰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차별과 혐오가 들어 있는 말이었다.&nbsp;&nbsp;‘양양하와이‘라는 속어를 연구한 이한길은 "양양하와이란 단어의 의미를 역사적 맥락, 군사적 충돌, 당시의 사회적 긴장 속에서 그 의미"를 찾는다. "5년여의 인공생활, 다시 5년여의 전쟁과 점령지로서의 생활, 도합 10여 년의 생활은 이 시대의 양양 사람들의 의식을 완전히 황폐화시키기에 충분했다며 양양하와이의 유래를 더 구체적으로 정리한다. "양양 사람들은 남쪽 사람들과 대화를 할적에는 항상 말 한마디마다 조심을 하였다. 그러니 말이 느릿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상대하던 남한 사람들은 양양 사람들을 가리켜 하와이라고 하였다. 마치 외국 사람이 한국말을 하는 것과 같았다고 비유했던 것"이다. 멀리서 보기에는 ‘다 비슷해 보이지만 양양과 강릉은 가까운 지역임에도 미묘하게 말씨가 다르다. 지금도 나는 강원도말을 ‘북한 말씨 같다‘고 하는 사람들을 볼 때 웃기 어렵다. - P180조심해서 느릿하게 말을 하는 것 뿐인데 이를 하와이라고 표현하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되짚어보면 강원도 사람들의 말이 북한 사람들의 말과 비슷하다고 하여 매체 등에서 너무나 안일하게 코미디 소재 등으로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이를 생각 없이 퍼나르고 배우지 않았나 곱씹게 되었다.&nbsp;양양의 이런 이력은 작가의 가족력과도 이어지는 면이 있다. 작가의 할아버지는 1921년생으로 남로당 당원으로서 좌익 활동을 했다. 한국 전쟁 중 할아버지가 실종이 되자 월북을 의심받으면서 가족들은 연좌제에 걸려들었다. 연좌제는 남은 가족들을 정서적으로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을 뿐 아니라 남한 사회 내에서 제도적으로 불이익을 주었다. 원래 작가의 아버지는 군인이 되기를 원했으나 연좌제라는 발목은 그가 온전한 직업을 가질 수 없게 했다. 작가의 어머니는 “네 아버지가 주저앉았잖아. 광산에.”라며 그때 그의 스트레스는 말도 못했다며 삶이 온통 울분에 차 있었다고 표현한다.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는 말에 함축된 삶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지 못하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엄연히 다르니까. 1978년 여러 노력 끝에 할아버지의 사망신고가 이루어지고 나서야 그녀의 아버지는 광부라는 직업을 비로소 얻을 수 있었다. 그 전에는 늘 빨갱이의 자식이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니며 감시 받는 세월을 견뎠을 것이다. 연좌제로 피해를 겪은 그는 광산의 불합리한 환경을 바꾸어보고자 광산 노조를 결심했으나 빨갱이에게는 그마저도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여러 번 시도하여 결국 노조위원장까지 갔다고). 게다가 당시 노조는 어용노조로 정부의 구미에 맞는 인사들로 채워져 있었다. 1980년 4월 일어난 사북항쟁은 신군부가 노조를 정화하겠다며 벌이는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과 충돌의 현장이었다. 신군부의 비상계엄령 후 노동법이 개정되어 노조는 산업별 체제에서 기업별 체제로 전환되었고 노조의 힘이 약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1987년 직선제가 시작되면서 노조도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분출했다. 그렇지만 이무렵이 되면 광산은 이미 규모가 축소화되면서 노조의 힘도 발휘되기 힘든 환경이 되었다.철광산업이 사장길에 접어든 것은 수입산 철광석이 증가하면서 국내 철광 가격이 경쟁력에 밀린 탓이 크다. 석탄산업이 사장길에 접어든 것은 신도시가 건설되면서 아파트가 증가하고 석탄 대신 기름 보일러를 때기 시작하면서 연탄 소비량이 감소되었고 1989년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에 의해 강제된 측면이 있다. 1995년 정선의 탄광촌은 생존권을 보장해달라며 투쟁한 끝에 합의를 보기도 했다. 이를 비롯해 여러 광산에서 생존권을 위한 투쟁이 벌어졌다.&nbsp;<br>광산 투쟁은 다른 산업 노조 투쟁과는 달리 여성들의 참여율이 상당히 높은 것이 특징이(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광업소와 사택의 거리가 가까워서 자연스레 직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성들은 사택촌에서 노동가를 익히기도 하고 서로 정보를 주고 받으며 노조에 힘을 던지기도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작가의 어머니는 작가의 아버지가 노조 위원장으로 집에 몇 달간 자리를 비우는 동안 강릉에서 작가와 함께 있으며 투쟁과는 거리를 두었다. 그런 영향 때문에 작가도 양양 철광산이 폐광 투쟁할 때 여성들의 활약을 몰랐다고 한다. 가정(과 아이)을 생각했던 측면도 있을테고 아버지의 활동이 그녀에게 부담을 준 측면도 있었으리라 보인다.<br>적지 않은 여성들이 ‘어머니마저‘ 밖에서 투쟁에 참여했을 때 자식들의 위치가 더욱 취약해질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은 그가치를 지키는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야만 정상적인 어머니로 인정받는다. 다른 자원이 없는 여성에게 모범적인 어머니 되기는 중요한 가치다. 1980년 사북항쟁에서도 자식 때문에 참여하지 않은 여성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집단생활이나 다름없는 지역에서 투쟁에 참여하지않는 아내/어머니의 복잡한 입장이 있다. - P272<br>세상이 변화하고 발전하면서 직업도 사라지고 새로 생겨난다. 어떤 직종은 어차피 ‘없어질 직업이기에 사라지는 수순으로 가는 게자연스럽게 여겨진다. 그러나 직업이 사라진다고 해서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사라지진 않는다. 직업은 사라져도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로 꾸준히 이동한다. 그들이 다 죽을 때까지 사회가 그들의 이동경로에 무심할 뿐 사람들 대부분은 사는 동안 꾸준히 일을 바꿔가며 생존한다. 무언가를 이루는 삶이 아니라 ‘견디는‘ 삶은 이름 없이 소멸하고, 이 삶의 경력은 무수한 노동으로 채워진다. - P45~46<br>일자리를 잃고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공포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나도 최근 몇 년간 지속해오는 걱정과 불안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AI가 등장하면서 인력이 기계로 대체되는 흐름을 더는 막을 수가 없게 되었다. 대부분의 광업 종사자들은 그 일에만 익숙하던 사람들이라 실직에 많은 이들이 무너지곤 했으리라 짐작한다. 과연 그들이 어떤 식으로 삶을 이어갔을지 궁금했는데 그 이야기도 담겨 있다.<br>광부들은 공통적으로 경제적 상실을 겪었고 일하던 환경과의 단절 속에서 관계가 분리되었으며 그리움(향수)를 경험했다. 그렇지만 광산 이후의 삶은 천편일률적으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어떤 이들은 다른 광산을 찾아 떠났고 아예 다른 직종을 찾기도 했다. 아파트가 늘어나던 1990년대 중반에는 아파트 경비원으로 취직하거나 시험을 봐서 주택관리사가 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편 카지노 기계실에서 일하다 이제는 사회복지가이자 서예 강사, 아마추어 연극인이 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죽어도 여기에서 죽겠다며 그곳을 떠나지 않고 채굴노동자에서 현장 관리 소장이 된 사람도 있다. 광산을 떠나 직업을 찾은 이들은 공부를 해서 시험을 보거나 구직을 위해 적극적으로 뛰어 들고 여러 취미를 가지며 정서를 돌보는 경우가 많았다.&nbsp;<br>그렇다면 폐광 후 그 도시는 어떻게 변모했을까. 정동진은 1991년까지 석탄 광산이 있었다가 폐광된 후에는 해돋이 관광지로 성공적으로 변모한 경우다. 광명도 탄광이 있었으나 지금은 테마 산업인 황금 동굴로 알려지게 된 곳이다. 동해는 노천 광산이 있었으나 지금은 거대한 테마파크로 변모했다. 문경도 대표적인 탄광 도시였으나 지금은 사극 촬영지로 더 유명해진 곳이 되었다. 정선 사북은 폐광 후 지역 경제를 진흥시키겠다는 목적으로 들어선 강원랜드로 이미지가 많이 변화한 곳이다. ‘극단 광부댁’은 광산 이야기를 전하는 연극 단체로 구성원들 중 광부 부인들이 있어서 이름이 그렇게 지어졌다. 처음에는 정선 아리랑을 배우는 동아리에서 출발했는데 이제는 도박 중독을 예방하기 위한 시민 연극 단체로 활동 중이라고 한다.&nbsp;<br>광업은 이제 한물 간 산업이고 광부도 빛바랜 존재로 느끼는 경우가 많아졌음을 느낄 때 정작 광업 종사자(였)던 사람들과 가족들은 힘을 잃는다(고 한다). 정작 국내 광산은 여전히 300개 정도가 운영 중이고 석회광산은 특히 많이 남아 있다고(정말 몰랐던 사실이다).&nbsp;<br>작가는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그러나 기억은 온전히 믿기가 어렵고 회고는 증언이 될 수 있는지 여부도 확실하지 않아서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1980년대 이후 자신이 온전히 기억할 수 있는 시기는 해석과 판단이 개입할까봐 거리두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 우려스러웠다고.&nbsp;<br>작가는 우려스러웠다지만 나는 이 책이 한 가족의 노동사이자 양양의 광업사로 확장되고 그곳에 살던 사람의 광부로서의 삶과 이후의 세계까지 담아낸 점이 정말 좋았다. 일반 역사책처럼 딱딱하지 않고 쉽게 읽히는데다가 사람들의 이야기에 녹아들다보면 감동과 함께 생각할 점을 많이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언급하고 싶은 것은 남성 광부의 삶 뿐 아니라 선광부로 일하는 여성의 삶, 그리고 광부 아내로서 사는 여성의 삶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점이다. 광부는 결코 혼자 존재할 수 없다. 매일 출근하는 이를 위해 도시락을 싸고 가족을 챙기던 여성들의 삶을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는 탓이다. 그들의 지원은 국내 광업이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던 힘이 되었다고 믿는다.&nbsp;<br>싸우는 사람들이 특별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 일상의 평범한 얼굴 속에 이미 투쟁과 저항의 역사가 흐른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다. 특별하게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누구나 싸우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것. 또한 이 싸움은 완벽하지 않고 모순과 뒤엉킨 채 일상을 살아가는 얼굴들이라는 것. 평범한, 싸우는 사람들이 지탱해온 역사의 일부를 기록하고자 했다. 혀가 없다고 취급받은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목소리를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그저 평범한 삶을 살다가 거대한 사건의 깊은 서사 속으로,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 작은 사람의 역사"는 여전히 부족하다. - P618]]></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89/4/cover150/897297200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3890449</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쇳돌</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07707</link><pubDate>Fri, 10 Apr 2026 07: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0770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72002&TPaperId=1720770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89/4/coveroff/8972972002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89/4/cover150/897297200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3890449</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쇳돌</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98273</link><pubDate>Sun, 05 Apr 2026 18: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9827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72002&TPaperId=1719827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89/4/coveroff/8972972002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89/4/cover150/897297200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3890449</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혁명의 러시아 1891~1991</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95819</link><pubDate>Sat, 04 Apr 2026 09: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9581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12531540&TPaperId=1719581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2220/48/coveroff/k612531540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2220/48/cover150/k61253154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2204878</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일상, 봄봄(2026.04.03)</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93847</link><pubDate>Fri, 03 Apr 2026 09: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93847</guid><description><![CDATA[매해 봄꽃이 피는데 언제나 봐도 좋다. 올해는 작년보다 빠르게 개화를 시작하여 벚꽃도 거의 반 이상이 폈다. <br>도심에 있으면 아무래도 삭막한데 이 시즌이 오면 만개한 봄꽃들을 볼 수 있다는 즐거움에 매일이 설레는 것 같다.<br>어제는 특히 날이 좋았다. 이틀 연속 날이 흐려서 피어난 꽃을 찍어도 우중충해서 아쉬웠는데 어제는 날이 쨍했기 때문이다. 미세먼지는 살짝 나쁨이었지만 봄 치고는 이 정도면 괜찮다 싶은 수준이었다.<br>점심 먹고 산책 나갔다 역시나 많은 인파에 놀란…!<br>사람들이 꽃을 배경으로 웃으며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니 ’봄은 봄이네.‘ 싶었다. <br>물가는 고달프고 전쟁 소식 때문에 암울하지만 그래도 봄꽃이 핀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잠시 행복 회로를 돌리게 하는 듯하다.<br>원래라면 벚꽃이 이번 주말이 피크일텐데 오늘 밤부터 비가 온다고 한다.<br>남은 봄 예쁜 풍경 많이 마주해야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03/pimg_7155161735080040.jpg</url><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93847</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혁명의 러시아 1891~1991</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93712</link><pubDate>Fri, 03 Apr 2026 08: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9371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12531540&TPaperId=1719371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2220/48/coveroff/k612531540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2220/48/cover150/k61253154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2204878</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혁명의 러시아 1891~1991</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91785</link><pubDate>Thu, 02 Apr 2026 08: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9178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12531540&TPaperId=1719178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2220/48/coveroff/k612531540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2220/48/cover150/k61253154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2204878</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혁명의 러시아 1891~1991</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91035</link><pubDate>Wed, 01 Apr 2026 20: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9103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12531540&TPaperId=171910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2220/48/coveroff/k612531540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2220/48/cover150/k61253154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2204878</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혁명의 러시아 1891~1991</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88259</link><pubDate>Tue, 31 Mar 2026 22: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8825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12531540&TPaperId=171882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2220/48/coveroff/k612531540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2220/48/cover150/k61253154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2204878</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1894년 동학농민운동 2차 봉기 중심으로 밑줄 정리</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84566</link><pubDate>Mon, 30 Mar 2026 20: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8456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482636948&TPaperId=1718456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30/14/coveroff/e48263694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92630412&TPaperId=1718456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4405/24/coveroff/k39263041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1894년 동학농민운동 제1차 봉기는 기존 정부에 대한 불만을 가진 농민들이 주도한 무장개혁 운동으로서 기존의 민씨 척족 정권을 무너뜨리고 그 대신 흥선대원군을 받들고 새 정부를 세우려 했다. 동학군의 1차 진주성 전투 성공을 계기로 조선 조정은 청군에 파병을 요청한다. 동학군은 군사적으로 일본군의 맞수가 되지 않았지만 나약한 조선 조정은 그런 농민조차 감당할 수 없었다.(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2, P21) 1885년 맺은 텐진조약의 조항에 따라 일본군은 경복궁을 점령하고 고종을 유폐, 대원군을 옹립한 뒤 조선에 개화 정권이 들어선다. 일본은 국제적 비난을 피하기 위해 주한 외교관을 보호하고 공사관 피해를 막으라는 지시를 내렸으며 만일의 불상사에 대비한 고종 보호 예방 조치에 대한 지령을 내렸다. 일본군은 부산에서 서울까지 전선을 가설하면서 경비를 이유로 현지에서 인부를 구하고 나무를 함부로 베거나 사유지에 함부로 전신주를 시우는 등 추태를 부렸다.&nbsp;<br>그동안 남접과 북접 동학군은 따로 움직였는데 이제는 각 지도자 측에서도 힘을 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nbsp;<br>전봉준은 동학 북접 교단과 연합작전을 모색하면서 흥선대원군 계열과도 접촉한 사실이 일본 첩자들에 의해 포착되었다. 동학교도 장두채라는 인물이 흥선대원군을 만났고 흥선대원군이 청나라군과 합세해 일본군을 격퇴하기로 뜻을 맞춘 뒤 김덕명, 김개남, 손화중 앞으로 봉기를 촉구하는 편지를 보낸 사실이 드러났다.&nbsp;흥선대원군이 전봉준에게 사자를 보낸 사실도 포착되었다. 1894년 8월에 전봉준이 태인에 있을 때 두 사람이 찾아와 흥선대원군의 친서를 내밀었다. 서찰에는 "서울에 있는 일본군을 몰아내야 하니 곧바로 서울로 진격해달라"고 쓰여 있었다.&nbsp;또 8월에는 흥선대원군이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농민군에게 겉으로는 효유문을 보내 해산을 종용했으나 뒤이어 재봉기를 당부하는 글을 은밀하게 보냈다. 흥선대원군의 수족들도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움직이며 양쪽의 뜻을 전했다. 9월 초 무렵 전봉준은 송희옥의 편지를 받았고 이어 흥선대원군의 밀사인 박동진과 정인덕이 전주로 내려와 전봉준에게 재봉기를 당부했다.(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2, P76~77)<br>흥선대원군이 전봉준에게 친서를 보내고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전봉준 계열의 동학 인사가 흥선대원군과 정말 접촉을 했을까. 일본 첩자들에 의해 포착되었다는 부분이 걸린다. 다만 흥선대원군이 전봉준에게 연락한 것은 어느 정도 사실로 보여진다.&nbsp;<br>제2차 봉기는 흥선대원군이 전봉준을 사주했거나, 적당한 때를 알렸다는 주장도 있다. 이상백에 의하면 '대원군은 전봉준의 처족 8촌이자 전주대도소 도집장 송희옥을 선공주사로 임명하고 대원군의 측근인 박동진과 정인덕은 이 송희옥과 접선하여, 전봉준에게 밀지(密旨)를 보내 대원군의 뜻에 따라 재봉기할 것을 주문하였던 것이다. 김개남에게는 대원군의 손자 이준용을 통하여 전 승지 이건영과 접촉하고 이건영은 김개남을 만났다. 이에 전봉준, 김개남이 적극 호응하였음은 물론이다. 체포된 이후 전봉준은 이를 부정하고 있으나 김개남은 대원군의 지시에 의한 것임을 자백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역사넷 '동학농민운동' 中)<br>위 사료를 보면 책의 전개 내용과 상당히 비슷함을 알 수 있다. 정말 대원군은 효유문을 내려서 표면상으로는 동학군의 봉기의 흐름을 억제하려하면서도 이면으로는 봉기를 계속 가져다주길 바랐을까. 사실 개인적으로는 대원군이 설사 그런 제스처를 취했다고 해도 온전한 마음이었을지는 회의적이다. 아무리 무너져 가는 조선 왕조였다고 해도 왕조 국가의 최고 수장자의 눈에 동학군의 봉기가 곱게 비칠리 없기 때문이다(2차 봉기 때 공주에서 일어난 전투 상황을 보면 조선 조정은 관군과 일본군과 함께 지방 사족과 유생에 힘을 빌어 농민군을 탄압하는데 혈안을 올렸다).&nbsp;&nbsp;<br>남접집단이 9월 10일 삼례 재기포를 단행하고 북접교단이 9월 18일 기포령을 발하였으나, 두 집단 모두 일본군과 관군의 공세를 막아낼 방법이 묘연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원군 효유문과 더불어 고종의 선참후문 교서 등이 삼남일대에 전해지자 갑오변란 이후 척화거의를 도모했던 척사유생들조차 항일연대는 커녕 도리어 반동학군 활동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 몇몇 호남 지역의 북접계 지도자들이 남북접 연대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 것은 남접계 동학군의 집요한 ‘동참 요구’ 때문이었다. ... 9월 18일 기포령 이후 북접교단 휘하의 동학군도 관아를 습격하여 무장을 갖추기 시작했으나 본격적으로 무장대를 편성하기 시작한 것은 공주 점거투쟁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는 9월 그믐 이후였던 것으로 보인다.(1894년 남북접 공주 점거투쟁 中)<br>호남에 속한 김낙철 등은 남북 교단의 조화방법을 모색해 김방서, 유한필, 오지영 등을 먼저 전봉준에게 보내 화해를 건의했다. 고대하던 전봉준을 이를 받아들여 전라도 지역 북접 인사에 대한 압박을 중지하고 세 사람을 최시형에게 보내 타협을 모색했다.신중을 기하던 최시형은 이들을 만난 뒤 김연국, 손병희, 손천민 등 교단 지도자들을 불러 상의했다. 여러 북접 지도자는 논의 끝에 대세가 어쩔 수 없다고 판단했다. 더욱이 조정에서는 집강소 기간에 경기도, 충청도 등지에서 남접 북접 교도들을 가리지 않고 한통속으로 보아 탄압했고 교단 지도자들을 체포하려고 포교들을 풀어놓은 상황이었다.최시형은 손천민을 전봉준에게 보내 진의를 확인했고 손천민은 이를 최시형에게 알려 연합전선을 펴야 한다고 건의했다. 손병희는 대세를 거론하며 남북접이 함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최시형은 마침내 전국의 교도들에게 남북접이 손을 잡고 항일전선에 나서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를 대동원령이라 한다.(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2, P85)<br>북접 선봉장 이종훈은 10월 중순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장내리에 도착하여 사흘 동안 진을 치고 머물렀다. 해월신사께서 군사 지휘부를 정할 때 의암 선생에게 대통령기호를 받게 했다. 전규석을 선봉으로 삼고, 나는 중군으로, 이용구를 후군으로 삼았다. 의암 선생의 말씀을 준칙으로 받들어 논산으로 내려가 전봉준과 군대를 합했다. 두 군이 진용을 합한 지 사흘 만에 의암 선생께서 해월신사를 모시고 오셔서 진중에 주둔하고 머물러 계셨다.(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2, P97~98)<br>남북접 연합의 세력은 차이가 있지만 그 과정은 비슷하게 기술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nbsp;<br>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이후 기존은 동학동민군의 삼례 봉기를 주목했다. &lt;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2&gt;도 역시 삼례 봉기에 상당 부분을 할애한다. 이에 반해 &lt;1984년 남북접 동학군의 공주 점거투쟁&gt;에서는 삼례 봉기와 비슷한 시기에 이뤄진 공주, 이인 등지의 충청 지역에서 일어난 봉기의 규모가 훨씬 컸기에 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전투에서 동학군이 패배했다. 첫째로, 일본군과 관군이 우금치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고 공주로 들어오는 통로를 봉쇄하여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시켰다. 농민군은 같은 포위 작전을 폈지만 일본군과 관군에 비해 그 변경 범위가 넓어 압박하는 효과가 크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무기의 열세 차이도 있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지방의 사족이나 유생들 대부분은 관군과 일본군에 협력했다(물론 일부는 동학군의 편에 서기도 했지만). 동학군이 내건 기치가 그들에게 먹히지 않았기에 혁명을 위한 탄력을 받기에 부족했다. 그리고 남북접 내부 세력의 충돌과 갈등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북접과 남접 간에만 갈등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같은 북접끼리, 같은 남접 끼리도 세력 다툼이 있었다. &lt;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2&gt;는 패전의 원인 중 가장 먼저 2차 봉기 준비 과정에서 삼례에서 시일을 너무 끌었던 이유를 대었다. 북접 지도자와의 호응과 동의를 얻는데 시간을 빼앗겨 정작 일본군과 관군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 주면서 우위에 서게 했다는 이유다.&nbsp;&nbsp;<br>공주 전투 후 전봉준은 포기하지 않고 물러나 다시 몇 차례 공격했으나 원평, 태인 전투에서 패한 것을 끝으로 해산 명령을 내렸다.&nbsp;<br>이렇게 &lt;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2&gt;는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한 뒤 청일전쟁을 치르는 일을 시작으로 동학농민군의 2차 봉기 운동이 실패하고 전봉준이 재판을 받는 결과까지가 그려진다. 이 책은 동학농민운동의 전개 과정을 전반적으로 확인할 수 있고 전국적인 관점에서 일어난 봉기 내용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느꼈다. 전라, 충청 지역 뿐 아니라 경기, 황해 등 다른 지역의 상황도 다룬다.&lt;1894년 남북접 공주 점거투쟁&lt;은 제목과 노선의 파격적인 내용 때문에 급진적 관점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적어도 2차 봉기 중 북접 진영의 더 상세한 상황과 공주 중심의 전투 과정을 상세히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생각했다.<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4405/24/cover150/k39263041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4052452</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여자, 생존 전쟁을 치르다 : 행랑어멈과 식모들*우리 시대의 커리어우먼 - [여자, 생존 전쟁을 치르다 : 행랑어멈과 식모들*우리 시대의 커리어우먼]</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83502</link><pubDate>Mon, 30 Mar 2026 11: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8350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137901&TPaperId=1718350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10/coveroff/k40213790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137901&TPaperId=1718350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여자, 생존 전쟁을 치르다 : 행랑어멈과 식모들*우리 시대의 커리어우먼</a><br/>이아리.권혁은 지음 / 푸른역사 / 2026년 03월<br/></td></tr></table><br/>˝우리 집은 엄마(또는 할머니)가 먹여 살렸는데˝라는 회고는 한국 사회에서 낯설지 않다. 압축적인 근대화와 산업화를 겪었던 한국 사회는 매우 오랜 기간 여성들의 노동에 의존해 생계를 도모하고 살길을 찾아온 역사였다.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면서도 여성들은 스스로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혹은 삶의 의미를 찾고 자아실현을 이루기 위해 노동을 했다. - P11~12<br><br>의미 있는 내용의 신간이 나왔다. &lt;역사 속 여자 OO하다&gt; 시리즈다. 우선 4권의 책이 나왔는데 덜컥 한꺼번에 사기보다는 한 권을 먼저 읽어보기로 했다. 1권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4권이었다는. 다른 무엇보다 4권의 제목과 내용이 가장 먼저 끌렸다. <br>이 시리즈가 왜 기획되었는지 독자들 입장에서 대부분 어느 정도 짐작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역사학계에서 일하는 여성학자들은 역사 속 사료를 보고 읽으며 여러 번 한계를 마주한다. 남아 있는 사료와 기록은 대부분이 남성이 쓴 것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료 속에서 아무리 이를 잡고 헤집어봐도 여성들의 목소리를 접하기란 쉽지 않다. 근현대 이후 시기부터 여성들이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그 전에는 그런 경우도 드물었으니 말이다. <br>이 시리즈는 2024년 여성 사학자들 몇몇이 담소를 나누다 의기 투합하여 기획하게 되었다고 한다.<br><br>4권의 내용은 먹고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다. &lt;여자, 식모 살다&gt;를 통해서 근대 시기 행랑어멈과 식모에 주목을 했다면 &lt;여자, 회사 가다&gt;는 여성이 회사에 취직하고 맞닥뜨린 현실을 다룬다. 여러 사료를 접목하여 사건을 재구성하여 독자가 당시의 현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br><br>행랑은 본래 근대 이전 하인들이 주인이 사는 안채와 분리되어 사는 공간이었다. 그러다 1894년 갑오정권의 개혁 내용으로 신분제가 공식적으로 폐지되면서 노비들이 차차 주인을 떠나자 그들을 대신해서 지방에서 농사를 짓고 살다가 경제적으로 몰락해서 상경하게 된 농민들이 서울 양반집의 행랑채를 채우게 되었다. <br>식민 지배가 어느 정도 안정되자 단기간만 조선에 머물던 재조일본인들이 가족을 이끌고 상당수 들어오며 서울에 자리하기 시작했다. 확산 중이던 서울의 행랑살이는 주택난이 심화되면서 쇠퇴했다. 게다가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전시 호황을 누린 일본은 젊은 여성 공장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섬유공업이 크게 발달하였다. 이 때문에 일본 본토에서도 식모 일을 할 만한 젊은 여성이 크게 부족해졌다. 반면 조선의 재조일본인 가정들은 달랐다. 조선인 식모가 일본인 식모에게 주는 급료의 6활 정도만 주어도 기꺼이 일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들은 조선인 식모를 고용하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이 모여사는 진고개에는 치마저고리를 입은 채 발에는 일본식 게다를 신고 딸깍딸깍 소리를 내며 돌아다니는 조선인 여성들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한다.<br><br>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는데 식모살이를 하려는 여성들이 어떻게 재조일본인 가정에서 일을 할 수 있었을까. 대부분이 어려운 형편에 돈을 벌기 위해 시골에서 상경한 여성들일테니 서울에 아는 이는 없었을 것이다. 이들은 다름 아닌 직업소개소를 통해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1920년대부터 주요 도시에 국가적으로 인사상담소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1920년대 중후반 무렵에는 인사상담소가 전문 ‘직업소개소‘로 분리되기 시작했다 한다. 직업소개소에서 부르던 공식 명칭은 ‘호내사용인‘으로 여러 직업 중 식모가 전체 중 절반 이상을 차지했을 정도라니 놀랍다. <br>그러나 당시 식모를 보는 사회적인 시선은 별로 곱지 않았다. 언론도 그렇고 남성들의 편견도 많았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 직업을 선택한 경우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허영심 있거나 유혹하는 여성으로 보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들은 범죄에 연루되거나 성폭력 및 인신매매의 희생양이 될 위험성이 많았음에도 사회는 개인에게 책임을 지웠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은 모습인 것 같다. <br><br>대학을 간다 했을 때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기억이 난다. 하필 나라 경제도 어려웠고 살림이 팍팍했을 때니 말이다. 그래도 여성이 대학을 간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었던 때였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전두환 정부의 정책 때문이다. 전두환 정부는 과외 과열 해소를 명분으로 1981학년도부터 각 대학에 기존 졸업정원의 30퍼센트를 추가 선발하되, 그만큼을 중도에 탈락시키도록 했다.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부에겐 당장 눈에 띄는 치적이 필요했다. 그 일환으로 입시 지옥을 해소하겠다며 과외 금지와 함께 졸업정원제를 내세운 것이었다. 졸업정원제는 대학생 수를 급격히 팽창시켰다. ... 여대생 수 역시 급격하게 늘어났다. 여학생이 점차 고등교육에 진입하기 시작했고, 고등학교만큼은 아니었지만 많은 부모가 딸에게도 대학 교육을 시키기 시작했다. - P102~103<br>전두환 정부가 과외 금지를 한 것은 알고 있었는데 졸업정원제를 시행했다는 이야기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아무튼 늘어난 대학생 정원만큼 여학생의 수도 자연스레 늘어난 것이다. <br><br>1993년 8월 서울대에 심상치 않은 대자보가 붙었다. A교수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대자보였다. 대자보를 붙인 여성은 조교로 불쾌한 일을 겪었다. 무언가 잘못 되었다를 느꼈는데 전임 조교로부터 자신과 똑같은 일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고 ‘이 사람은 상습범이구나.‘느꼈다. 짐작하겠지만 대자보를 붙인 후 논란과 더불어 거센 후폭풍에 휩싸였다. 그럼에도 그녀가 대자보를 붙일 때 그것을 찢으려는 이들을 막아선 학생들, 대학본부와 학과의 외면 속에서도 먼저 진상조사단을 꾸렸던 학내 단체들, 끝없는 법정투쟁을 함께하며 곁을 지켰던 활동가들, 멀리서 연대의 목소리를 보내 온 시민들, 그들이 있었기에 단 한 장의 대자보가 시대를 움직일 수 있었다. <br>1999년 2월, ‘남녀고용평등법‘이 개정되며 ‘직장 내 성희롱‘ 개념이 명문화되었다. 또한 사업주가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하고, 성희롱 가해자에 대한 부서 전환과 징계 조치를 취해야 하며, 피해 근로자에게 고용상의 불이익 조치를 취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들어갔다. 여성을 채용 공고에서부터 배제하는 일이 법적으로 금지되었고, 이제 직장 안에서의 성희롱이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br><br>작고 얇은 책인데 쉬우면서도 알차다. 앞으로도 이 시리즈에 관심을 가지며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10/cover150/k4021379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61058</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1894년 남북접 동학군의 공주 점거투쟁 - [1894년 남북접 동학군의 공주 점거투쟁 - 남접·호남 중심 농민전쟁론 넘어서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74923</link><pubDate>Thu, 26 Mar 2026 14: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7492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482636948&TPaperId=171749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30/14/coveroff/e48263694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482636948&TPaperId=1717492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1894년 남북접 동학군의 공주 점거투쟁 - 남접·호남 중심 농민전쟁론 넘어서기</a><br/>지수걸 지음 / 역사비평사 / 2025년 09월<br/></td></tr></table><br/>공주 점거투쟁은 갑오변란과 청일전쟁 등으로 말미암아 크게 달라진 정세와 조건 가운데서 전개된 assembly/occupy(이하 A/O 투쟁으로 줄여 씀)이었다. 이 책의 표제로 ‘모이고 모으자! 점거하고 담판하자!‘라는 슬로건을 특기한 것은 공주 점거투쟁 시기 남북접 지도부가 합의한 공동투쟁의 목표와 방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구호라 판단했기 때문이다.<br><br>어떤 과거(의 이야기)이든 후대의 독자는 기존에 누군가가 정리해놓은 역사를 만나는 경험이다. 그리고 이 역사적 정리는 여러 번의 논란과 재고를 거쳐 가장 최근에 정설로 굳어진 것이다. 굳어진 정설을 깨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저자는 감히 그런 도전을 감행했다. <br><br>동학농민운동(동학농민전쟁, 동학혁명 등등 다양한 용어가 있지만 이것이 교과서에도 일반적으로 쓰는 것이라 이걸 택하겠다)은 관련 자료와 데이터가 방대히 축적된 만큼 이미 충분히 많은 저서들이 나와 있다. <br><br>이 책은 동학군의 2차 봉기로 초점을 맞추었다. 장소는 호남이 아닌 호서, 충청 지역의 공주다. 공주라는 지역 이름만 보면 우금치 전투를 말하려 하는 것이구나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갑오년 항쟁에서 공주를 중심으로 한 호서 지역의 역할이 간과되었기에 이를 복원해야 한다 말한다. 기존에는 지나치게 전봉준 중심의 호남, 남접 집단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동학농민운동의 전개는 기존의 농민 전투(전쟁)이 아니라 임술년 이래 항쟁의 역사에서 어셈블리(도회)라는 말로 상징될 수 있는 비폭력적인 연대와 소통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모두 다 기존의 관점을 뛰어넘는 새로운 내용들이다.<br><br>기존 동학농민운동의 서술은 보통 호남 배경으로, 전봉준 중심으로 서술된 측면이 많다. ‘전라도 고부 군수의 학정에 못이긴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 봉기를 일으켰고 놀란 정부가 부랴부랴 전주성에서 농민들의 요구를 들어주며 화약을 맺었다. 그러나 새로 파견된 안핵사의 농간에 다시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자 조선 정부는 청에 원병을 요청했고 톈진조약의 발효로(구실이겠지만)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했다. 이에 농민들은 반봉건에 반외세 구호를 걸며 들불처럼 일어났다. 그러나 일본군 구식 무기에 밀린 농민군은 우금치에서 많은 사상자를 내며 대패했다.‘ 이렇게 말이다.  <br><br>동학농민운동에 대해 저자가 말하려고 한 바는 다음과 같다. <br>첫째, 동학군의 2차 봉기는 남접 집단의 8월 27일 남원 도회나 전봉준의 9월 10일 삼례 재기포령 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다. 임기준과 이유상 등 공주와 충주 등 호서 지역의 척사유생들이 대원군 밀지나 고종 명의의 ｢조가밀지｣를 받고 동학군과 함께 항일의려를 결성한 때로부터 시작된다고 하였다. <br>둘째, 기존 연구는 남북접 지도부 사이의 연대가 먼저 이루어진 후 최시형의 9월 18일 기포령이 나왔으며, 이에 의해 북접이 남접 전봉준과 협력하여 연합군을 결성했다고 본다. 공주를 점거하는 투쟁에 남북접 지도부가 합의한 시기는 9월 그믐경이고, 그들이 연대한 이유는 일본군과 관군의 탄압 및 동학 내부의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br>셋째, 기존 연구는 11월 8일~11일의 우금치싸움을 포함한 일련의 투쟁을 공주 점거투쟁의 절정으로 이해하였으나 저자는 우금치싸움이 아닌 10월 23일∼25일 공주를 둘러싸고 금강 남북 양안에서 전개된 효포 싸움이 더욱 중요한 사건이라고 주장하였다. <br>넷째, 남북접 동학군의 사망자 통계 사상자의 숫자가 과장되었으며 기존 연구는 공주 점거투쟁에서 동학군이 대규모로 참여하고 대규모 살상을 당했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동학군의 대규모 사망은 그들이 정식으로 해산한 11월 중순 이후 집단 학살로 나타났다고 말한다. <br>다섯째, 저자는 동학 연합군의 공주 점거투쟁은 기존 연구에서 말하는 “병력을 몰아 한성으로 진격하기 위한” 중간 단계가 아니라, 호서와 호남을 연결하는 요충지 공주를 점거한 상태에서 애국적 사민이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와 무장 시위(도회와 의거)를 통해 중앙군·감영군, 향리·군교·상인들의 호응을 유도하여 조선 왕조나 일본 정부와 정치 담판을 하려 한 최종 단계라고 했다.<br>여섯째, 공주 점거투쟁의 성격을 논하면서 저자는 이 투쟁의 주역이 농민군이 아니라 동학군이며 혁명군이 아니라 (무장)시위대/의려이므로, 이들을 전사라고 부르거나 이 사건을 내전이나 혁명, 심지어 전투로 부르는 것도 역사 조작이라고 주장한다. <br><br>저자의 주장에 대해서 나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느꼈다.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이후 기존은 동학동민군에 삼례 봉기를 주목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공주, 이인 등지의 충청 지역에서 일어난 봉기의 규모가 훨씬 컸으며 중요했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이렇듯 호남 중심의 배경 중심에서 호서 지역 배경으로 사건의 흐름을 재구성하려한 점이 엿보인다. 또 기존에 동학군이 서울로 진격하기 위한 전제를 뒤엎고 공주 점거를 위한 투쟁이었음을 강조하고 공주점거 투쟁 시기 지방수령이나 척사 유생들이 동학군과 연대하지 않은 것은 일본군의 최신식 무기나 동학군의 무기 열세 때문이라기보다는 서로 연대하고 협동하는 정치적 힘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 것 등은 충분히 공감이 되었고 새로운 의견 제시이기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했다. <br>그러나 과연 반침략 반봉건 민중 항쟁으로 일컬어지는 동학농민운동을 어셈블리(도회 또는 의거)라고만 정의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의거와 전투를 그렇게 무자르듯 구획지을 수 있는지 모르겠어서다. 또 어셈블리라는 용어도 좀 난해한 측면이 있다. 저자는 굳이 어셈블리라는 용어를 쓰면서 기존에 도회라는 단어가 사어가 됐기 때문이라고 했으나 그렇다고 한국에서 어셈블리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선뜻 와닿지는 않는다. <br>그리고 정말 호서 지역의 유생들이 고종 명의의 밀지를 받았는가. 저자도 이 부분은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다 그런 설이 있다는 것만으로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전봉준이 우금치 싸움을 결행(및 실패)하면서 정말 교단에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며 회개했을까라는 것도 의문이었다. 전봉준은 호남 남접 기반의 대장군이었고 호남 남접은 당시 자료를 마땅히 기록하지 않았다(남아 있는 것이 없다). 해당 자료는 북접 동학교단에서 생산했기 때문에 신빙성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를 비롯하여 저자가 전개한 논지가 추론에 기대는 경향이 강하다는 인상을 받아서 아쉬웠다. <br><br>이렇듯 장점도 있지만 한계도 엿보이는 책이다. 근래 들어 읽은 책 중 가장 도발적인 책이었다. 실제로 이 책이 나온 뒤 여러 건의 서평이 올라와 논쟁이 되었다고 보았다.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역사는 1980년 이후 민중 중심의 역사 담론이 유행하고 2004년‘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1894년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여 봉건제도 개혁과 국권 수호에 기여한 인물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참여자와 유족의 명예를 회복하며 민족정기를 선양하기 위해 위한 법률)이 제정되고 시행된 이후 민족적 측면이 강조되고 혁명화된 부분이 있어 보인다. 이 책이 시간이 흘러 그냥 묻히게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시선의 물꼬를 트는 책이 될지 사뭇 궁금해진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30/14/cover150/e48263694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4301483</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러시아의 역사 - 하 - [러시아의 역사 - 하 - 제8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58039</link><pubDate>Wed, 18 Mar 2026 17: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5803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15114&TPaperId=171580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373/14/coveroff/897291511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15114&TPaperId=1715803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러시아의 역사 - 하 - 제8판</a><br/>니콜라스 V.랴자노프스키.마크 D. 스타인버그 지음, 조호연 옮김 / 까치 / 2011년 10월<br/></td></tr></table><br/>소련 역사 전체는 비록 생존과 성취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커다란 어려움, 위기, 갈등의 이야기도 하다. ... 그러나 소련 역사를 환경의 산물이라고 말하면, 이 역사를 그토록 놀랍고도 눈에 띄도록 만드는 핵심적인 사항을 놓치게 된다. 아마도 어떤 다른 근대국가 이상으로, 공산주의자들(그들은 스스로를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다)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이데올로기, 즉 자신들이 마르크스주의-레닌주의 혹은 변증법적 유물론이라고 부르는 것으로부터 동력을 공급받았다. 그 이데올로기 자체는 진화되고 변화되었으나-모든 상황과 결정을 그것을 통해서 바라보아야 하는 렌즈로 남아 있었다. - P707~708<br><br>앞선 상권에 이어 하권은 19세기 중후반부터 푸틴이 집권한 시기까지를 다룬다. 푸틴 집권 시기는 2008년 정도까지만 다루는데 이는 현재 제8개정판이 나온 시기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런 아쉬움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이 책은 러시아의 역사를 잘 정리하고 있는 것 같다. 번역본으로 나온 책 중에 러시아의 통사를 훓을 수 있는 책은 그나마 이 책이 거의 유일해보였다. <br><br>알렉산드르 2세는 지방정부인 젬스트보를 설치하여 대중 교육과 의료에서 상당 부분 효과를 보았다. 그리고 법원을 행정부에서 분리시켜 독립적인 역할을 하게 하고 배심원 재판과 치안판사 제도를 도입하는 등 사법 제도를 개선하였다. 또 하층 계급만 하던 군 복무를 모든 러시아인들에게 확대하는 대신 복무 기간을 축소하고 군사전문학교를 설립하였으며 군법과 법 절차를 개선하였다. 그리고 재정을 혁신하고 교육 및 검열을 조금 자유롭게 하는 조치를 취하는 등 여러 근대화 개혁을 추진했다. <br>대외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던 시기다. 러시아는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와 협상을 맺고 발칸 반도를 놓고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다. 또 캅카스 전역, 중앙 아시아를 정복하고 극동 경계를 넓혔다. 그러나 농민 문제는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br>농노 해방은 러시아의 근현대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이전부터 진행된 정부의 정책으로 농노제가 강화되고 공 등을 비롯한 귀족의 이익은 커져가고 있었다. 농민들의 불만은 쌓여갔고 일부는 봉기, 탈주하는 사태가 이어진다. 실상 이 문제는 한 세기 이상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서 주기적으로 농민들의 봉기를 불렀다. 이 무렵 인텔리겐치아들도 농노제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보았던 상황이었다. 정부로서도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였다. 이에 농노 해방은 알렉산드르 2세 시기인 1861년 공식 발표되었다. 그러나 농노들에게 제공된 토지는 여전히 불충분했기 때문에 농민들의 불만과 소요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br>문제는 그가 암살당하는 바람에 재위 기간 동안 진행했던 개혁이 다 부정당하는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알렉산드르 3세는 변화를 최소화하면서 종교 통일(정교회), 전제 정치, 국민성을 강조하였다. 이는 니콜라이 2세 시기에도 이어진다. <br><br>20세기 초, 노동자들의 불안과 자유주의 및 마르크스주의 확산으로 1905년 혁명이 발생했다. 두마 통제가 가능해지면서 자체 입법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고 농업 개혁을 통해 농민은 자유 이동이 가능해졌다. 귀족의 수는 감소하였고 귀족이 가진 보유지의 수도 감소했는데 이는 부의 상당수가 국가에 진 빚을 청산해서 남은 돈이 얼마 없었고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 귀족들은 많은 경우 이민을 떠났고 그러지 않은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쳐야 했다. 대신 기업가, 사업가, 기술자 같은 중간 계급이 떠올랐다. 정부는 철도를 증설하고 외국 자본을 유치하였으며 중공업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발칸 전쟁과 이어진 1차 세계 대전으로 러시아도 격랑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br>제정 러시아 시대부터 1917년 혁명에 이르기까지 이르는 동안 많은 문학가들이 탄생했다. 투르게네프가 1840년대를 배경으로 관념론자들, 자유주의자, 허무주의자, 인민주의자들을 다루었다면 1860년 무렵 등장한 도스토옙스키는 반합리주의, 슬라브주의에 입장에 서 있었다. 레프 톨스토이는 종교적으로 세속에 대한 비판과 예언을 다루었다. 이밖에도 잉여인간을 다룬 곤차로프, 교회 및 민중을 다룬 레스코프, 인텔리겐치아/농민/염세주의자를 다룬 우스펜스키, 현실을 풍자한 실티코프, 상인 중하층 계급을 묘사한 오스트롭스키, 평민 영웅을 다룬 고리키, 근대 단편 소설을 창시한 체호프 등이 나왔다(관련 문학을 읽을 때 이 부분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br><br>1917년 2월 23일 식량을 달라며 일어난 섬유 노동자들의 시위를 시작으로 혁명의 불길이 치솟았다. 2월 26일 임시 두마 정부는 니콜라이 2세를 퇴위시키면서 로마노프 왕조를 종식시켰다. 이 무렵 소비에트도 조직을 갖추었다. 그러나 임시 정부는 온건한 자유주의 입장을 고수하여 전반적인 개혁을 원하는 민중의 요구를 받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더군다나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기에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웠다. 이때 등장한 것이 레닌이다. 레닌은 현 정부가 부르주아적이라면서 소비에트에게 권력을 주고 토지를 국유화하여 농민에게 분배하고 산업을 노동자평의회의 통제하에 두는 등 사회 혁명의 방안을 제안하고 즉각 종전을 요구했다. 볼셰비키가 10월 25일 정부의 통제권을 장악하며 소비에트 러시아가 시작되었다. <br><br>1921년까지 볼셰비키는 무력을 동원한 급진 경제 정책을 실시했다. 이로 인해 거의 대부분의 사기업이 사라지고 국유화되었으며 사적인 교역은 억압되었다. 강제 배급이 실시되고 모든 토지가 국유화되었다. 이에 내부 반발로 백군 세력이 등장하였으며 주변국도 적군에 의한 통제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러시아는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처지가 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러시아는 1928년까지 국가 회복을 위한 후퇴이자 타협으로 자유도를 조금 높이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도시에서 활동하는 소기업인들이 증가하고 농촌에서는 부농의 수가 증가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는 기존 공산주의자들의 불안을 초래하였다. <br>이런 배경에서 스탈린이 등장한다. 스탈린 시기 러시아는 국가적 산업 계획 정책으로 농업 집단화를 완성하면서 농업 생산량을 다소 증가시켰고 식량 배급제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도급 노동이 일상화되고 임금 격차는 확대되었으며 강제 노동이 시작되었고(반대 세력에 대한 대숙청) 사회주의체제에 대한 강조로 인하여 요식 행위가 늘어나는 부작용을 낳았다. <br><br>스탈린 사후 소련 지도자들 사이의 권력 투쟁이 일었다. 스탈린에 대한 흐루쇼프의 비난은 대내외적으로 충격을 주었던 사건이었다. 흐루쇼프는 당제1서기로 올라서면서 권력의 중심에 섰다. 흐루쇼프 시기 러시아는 개인숭배에 기반한 스탈린주의를 벗어나 레닌체제로의 복귀를 선택했다. 경제적으로는 생산, 소비를 자극하면서 산업 경영에 중점을 두었다. 대외적으로는  냉전의 중심에 서 있었고 중국과의 갈등, 쿠바와의 전쟁이 있었다. <br>이후 들어선 브레즈네프 시대에는 모스크바 중앙에서 정치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복귀하면서 정치가 정체되었다. 그러나 국민의 복지 정책이 확대되고 데탕트 정책으로 훈풍이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br>고르바초프는 낮은 성장률로 침체된 경제로 인한 불만과 이전 같은 이데올로기적 강요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회적 현실을 직면해야 했다. 그럼에도 그가 레닌주의 사회주의 이상을 강조하며 국민들에게 더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자세로 국가 발전에 이바지함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나아간 것은 한계가 있었다고 보인다.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 정책으로 자율권을 부여하고 통제를 완화하는 등 개혁을 시도했으나 역설적으로 중앙의 통제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각지에서 민족주의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며 소련은 동유럽을 포기하고 동유럽의 국가도 독립을 자처하면서 결국 1991년 소련은 붕괴의 길을 걸었다. <br><br>옐친은 최초로 민주적인 절차에 의한 대통령 선거로 대중적인 지지를 얻으며 최고위 권력자에 선 인물이었다. 그의 재임기 초반에는 급진적인 사유화가 진행되었는데 이로 인해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재임기 중반기에는 대통령의 권한을 높이는 것으로 스스로 권력을 강화하면서 내분이 극대화되었다. 이후 그는 개혁을 후퇴하면서 사회 안정성을 높이려 했으나 급격하게 진행된 사유화는 사회적 혼란을 높이고 부패를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제2차 체첸전쟁이 벌어지자 옐친은 푸틴을 지휘관으로 보냈다. 옐친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이는 푸틴의 지지율을 높이고 입지를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br>권력자에 올라선 푸틴은 러시아의 발전과 진보를 강조하며 국가주의와 애국주의를 강화하였고  강력한 중앙 통제를 바탕으로 관리형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했다. 관리형 민주주의는 비정부기구를 통제하면서 다른 견해가 들어설 공간을 위축시키는 것인데 용어만 좋게 포장한 것일 뿐 과연 좋은 평가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푸틴은 헌법을 고쳐가며 현재도 집권중이니 말이다. 더불어 크림 반도에 이어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을 노리며 시작한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br><br>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은 최근에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의 중심이 되어버린 ˝원한의 정치˝에 사실상 편입되었다. 공산주의의 종식이 많은 고통, 소외, 공인된 모욕 등을 초래했다는 것은 냉혹한 사실이다. 특히 푸틴의 러시아에서는 민족주의가 대중문화와 여론에서 주류이며, 공식적인 미사여구가 되었다. - P1002~1003]]></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373/14/cover150/897291511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3731443</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러시아의 역사 - 재정 러시아 시대까지 - [러시아의 역사 - 상 - 제8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53667</link><pubDate>Mon, 16 Mar 2026 13: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5366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15106&TPaperId=1715366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373/13/coveroff/897291510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15106&TPaperId=1715366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러시아의 역사 - 상 - 제8판</a><br/>니콜라스 V.랴자노프스키.마크 D. 스타인버그 지음, 조호연 옮김 / 까치 / 2011년 10월<br/></td></tr></table><br/>역사의 재료는 바로 지속성이다. 비록 모든 역사적 사건이 독특하고, 따라서 모든 일련의 사건들이 유동성과 변화와 다양성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현재에 의미를 부여하고 우리가 역사를 가지도록 해주는 것은 주어진 현재와 과거의 관련성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속성을 구성하는 세부적인 사항은 주장일 따름이고, 종종 논란거리가 된다. 비록 겉보기에는 별문제 없이 보이는 이 책의 표제도 하나의 주장이다. 왜냐하면 많은 특정 민족들, 문화, 역사를 "러시아"라는 제목 아래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중에는 러시아어가 아닌 언어를 구사하면서 스스로를 러시아와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민족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중 일부는 나중에 차이점을 인식한 데에서 영감을 얻어 민족국가로서의 독립을 얻어내고, 자신들의 역사가 러시아 역사가 아니라고 주장하게 된다. - P30~31<br>오늘날의 러시아가 오기까지 역사는 어떠했을까. 다민족으로 구성된 국가임을 알고는 있지만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과정이 궁금했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도무지 끝날줄 모르는 상황을 보며 답답한 마음과 안타까움이 이는 까닭에 분석하고 싶은 이유가 있었다. 또 러시아 관련 문학 작품을 더 잘 읽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앞선 인용문을 통해서도 느끼지만 러시아의 역사는 복잡다단한만큼 사소한 것 하나라도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느꼈다. 

러시아의 기원은 키예프부터가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키예프국은 동슬라브족을 통일하고 비잔티움과의 전쟁 끝에 강화조약을 체결하면서 부상했다. 전성기(980~1054년)의 키예프는 영토를 확장하고 유럽의 많은 지배가문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으며 같은 시기 유럽의 국가들처럼 기독교를 수용했다(로마가 아닌 비잔티움으로부터). 키예프는 지배 하에 있던 영토에서 모피, 밀랍, 꿀, 노예 등을 공물로 거두고 비잔티움 등과 교역하며 상업을 발전시켰다. 사회는 최상위층이었던 공, 보야르(귀족), 드루지나(가신), 스메르디(농민), 자쿠피(반자유농민), 수공업자, 노동자, 노예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공은 군사 지휘권 뿐 아니라 재판권, 행정권을 지니고 있었다. 보야르, 드루지나가 이에 협력하였으나 전쟁 등을 논의하거나 긴급 법령 등을 결정해야 할 때는 민회가 소집되었다.&nbsp;이런 키예프가 몰락하게 된 것은 내부적으로는 교역로가 파괴되고(국제 교역에서 키예프의 가치가 떨어짐) 정치 체제가 실패(합의 없는 무력에 의한 지배, 친족 간의 공동 통치, 형제 간 순환 통치 간의 갈등)하면서 국가 붕괴를 이끈 탓이 크다. 거기에 남동쪽 스텝 지대에서 끊임없는 외부 세력의 공격으로 소모전을 치룬 이유도 더해졌다.&nbsp;<br>공의 독립 보유지에 따른 분령지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분열이 시작되었다. 키예프는 대외적으로 끊임없이 공격을 받았는데 특히 1240~1380년까지의 몽골이 핵심 타격이었고 남서부는 리투아니에게, 북부는 노르웨이, 독일, 스웨덴에게 의해서였다. 키예프인들은 언어적, 민족적으로 갈라져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인 세 분류로 나뉘어지게 되었다. 몽골이 남부 러시아 스텝 지대를 차지하면서 러시아인들은 영토를 빼앗기고 권력의 중심이 북동쪽으로 이동하여 유럽과 단절되는 계기가 되었다.&nbsp;<br>오늘날 많은 역사학자들은 분령 시기가 위기와 생존의 시기였을 뿐만 아니라, 공국들 사이에서 앞을 향한 경쟁의 시기이기도 했고, 변화의 시기이기도 했다고 본다. 각각의 공국들은 키예프의 과거에서 자신들의 유산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중 모스크바가 경쟁 공국들을 물리치고 승자로 입증되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역사적 시대 구분이라는 언제나 골치 아픈 문제에 대한 관점에서 보면, 역사학자들이 키예프와 분령 시기를 "중세 러시아"로 부르며, 중앙집권화된 모스크바국의 성립기를 "근대 초기의 출발이라고 규정하는 경향은 점차 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러시아 발전의 독자성보다는 폭넓은 유럽적 흐름과의 비교 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 P103<br>15세기 초 킵차크 한국은 크림, 카잔, 아스트라한으로 분리되고 모스크바는 1480년 몽골로부터 완전히 독립한다.&nbsp;모스크바 러시아 시기 이반 3세(1462~1505년)는 흩어져 있던 주변 공국들을 모으며 통합하는 과정을 진행했다. 이반 3세는 비잔티움 공주인 소피아와 결혼하면서 통치자로서의 권위를 높였다. 리투아니아는 모스크바와 결혼 동맹을 맺었으나 이는 중앙 집권적 정치를 진행하던 모스크바가 지방 분권형 정치를 진행하던 리투아니아에 대해 우위에 서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nbsp;&nbsp;<br>혁명 이전의 대부분의 러시아 역사학자들은 모스크바의 성장이 모스크바 공들과 러시아 민족의 위대하고도 필연적인 업적이라고 찬양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외부의 침략을 받고도 살아남아서, 역사에서 자신들이 맡은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 통합해야 했기 때문이다. 소련시기의 역사학자들도 동일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고, 이 주장은 소련 이후의 공식적인 역사 교과과정에서, 그리고 러시아 지도자들이 민족의 과거에 대해서 언급할 때 소중하게 다루어진다. 반면에, 프레스냐코프 같은 혁명 전의 러시아 역사학자들, 오늘날의 많은 서구 역사학자들, 그리고 당연하게도 폴란드, 리투아니아, 우크라이나 역사학자들 등은 이런 해석-비판자들이 보기에 이것은 "민족주의적 신화이다에 종종 의문을 제기한다. 이런 저술가들은 칭찬의 대상이 되고 있는 "러시아 모으기가 무엇보다도 노브고로드와 프스코프 같은 러시아인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다양한 비러시아 민족들을 대상으로 한 모스크바국 공들의 교묘한 침략이라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그리하여 모스크바국 공들은 그들에게서 자유를 빼앗았고, 모든 사람들을 모스크바국의 전제정치에 예속시켰다는 것이다. - P169<br>모스크바 러시아는 이반 뇌제와 표도르 시기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반 4세(이반 뇌제)는 개혁을 하는 한편 공포정치를 병행하며 근대 국가 및 제국으로의 기틀을 마련했고 볼가 지역과 시베리아로 영토를 확장했다. 표도르는 스웨덴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그루지야국을 속국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 시기 농민 지위가 낮아지며 봉직 귀족과 충돌 및 갈등이 빚어지자 정부는 봉직 귀족의 편을 들면서 농민들이 여기저기에서 들고 일어났다. 또 표도르가 죽을 당시 후계자가 하나도 없는 상태였고 보리스 고두노프처럼 여기저기에서 권력자임을 참칭하며 사회적으로 혼란이 발생했다. 이는 1613년 미하일 로마노프의 즉위로 로마노프 왕조가 시작되면서 일단락되었다.&nbsp;<br>미하일 정부는(1613-1645년) 국제 관계를 안정화시키고 재정 확충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뒤이은 알렉세이는(1645-1676년) 1649년 탈주한 농노를 붙잡아 주인에게 돌려보내는 기한이 무기한으로 변경된다는 법을&nbsp; 공포하면서 농노제를 더욱 강화했고 우크라이나까지 모스크바의 관할 영역을 확대했다.&nbsp;행정을 뒷받침한 것은 보야르 두마 혹은 협의회(오늘날로 보자면 의회)였고 차르는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중앙집권에 열을 올렸다. 관료의 수가 증가하며 관료제는 확대된 반면 지방행정은 취약해졌다. 이 시기 농업은 여전히 중심 산업으로 위치했으나 교역, 수공업, 제조업도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nbsp;알렉세이 시기 종교 인쇄가 가능해지면서 기독교 저술이 활발해졌고 교회 개혁 운동 진행으로 국가와 교회가 통합되었다. 유럽을 통해서 서구의 세속 문학이 확산되자 개인주의 주제가 대두되었으며 궁정 극장이 설립되면서 러시아 희곡이 시작된다. 이전부터 유행하던 성상화는 서구의 영향을 받아 원근법, 해부학 지식이 더해져 달라진 모습을 보였고 초상화 같은 세속적 회화도 등장하였다.<br>18세기부터 19세기는 제정 러시아의 시기다. 이 시기는 제국 시대라고도 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대이자 이전 러시아 시대라고 불린다.&nbsp;<br>18세기의 러시아는 압도적으로 농촌 사회였다. 인구의 대부분은 농민이었다. 그들은 농노와 국가농민이라는 두 부류로 나뉘었는데, 대략 수는 비슷했다. 농노의 처지는 표트르 대제로부터 파벨과 알렉산드르 1세의 통치기를 거치면서 더욱 악화되었고, 1800년 무렵에는 최악의 상황에 다다랐다. 세금 부담의 증가 이외에도 농민들은 점점 더 경제적 착취의 대상이 되었고, 농노들이 시정 요망 사항에 대한 청원권조차 가지지 못하고 주인의 의지에 사실상 완전히 예속됨에 따라서 형편은 더욱 악화되었다. - P407<br>표트르 대제는 서구화 개혁을 단행하여 군대, 행정, 교육 시스템을 근대화했으며, 대북방 전쟁 승리로 발트해 주도권을 확보하고 폴란드에도 우위를 확보했다. 예카테리나 대제는 영토 확장(폴란드 분할)과 학문과 예술 발전을 이끌며 근대화를 주도했으나 이 시기 농노제는 더욱 확대되었다. 알렉산드르 1세 시기 러시아는 프랑스, 프로이센을 포함한 유럽국가와 스웨덴, 영국, 러시아 연합 간 전쟁 끝에 빈 회의에서의 협약으로 유럽 내 위상이 높아졌으나 내부적으로는 농노제 폐지 실패와 데카브리스트 반란으로 갈등이 일었다. 니콜라이 1세는 관제 국민성을 강조하며 군국주의적 통치를 이어갔다. 페르시아, 투르크와 전쟁을 벌이고 폴란드,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를 러시아화했으나 크림 전쟁에서의 패배로 한계에 부딪힌다.&nbsp;<br>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는 사실상 전례가 없는 놀라운 외교력 및 군사적 성공을 거두었다. 이 국가들은 거대한 유럽 국가를 해체하고 완전히 파멸시켰으며, 과거의 적이자 경쟁자이자 갈등의 근원인 국가를 제거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영토, 자원, 인구를 크게 늘렸다. 동유럽은 완전히 이 나라들의 통제하에 들어갔으며, 프랑스는 자신들의 옛 동맹국을 잃어버렸다. 의미심장하게도, 폴란드 분할 이후 오랫동안 동유럽의 이들 세 군주국은 국제무대에서 서로 긴밀히 협력했다. 다른 한편으로 폴란드 분할은 지속적인 결과를 낳은 고통스러운 유산을 남겼다. 특히 러시아 제국 내에서의 "민족 문제"의 출발이 폴란드 분할로부터 유래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 P394<br>19세기 전반 고등 교육의 확산으로 과학 등 학문이 발전하면서 인텔리겐치아가 대두되는 등 지적인 해방이 이루어진다. 낭만주의, 관념론이 유행하는 한편 슬라브주의, 민족주의 같은 보수주의 기치가 일어서기도 했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373/13/cover150/897291510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3731371</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일상(2026.03.12)</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45788</link><pubDate>Thu, 12 Mar 2026 12: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4578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82630413&TPaperId=1714578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4405/47/coveroff/k982630413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670006&TPaperId=1714578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520/76/coveroff/893567000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342637526&TPaperId=1714578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40/75/coveroff/e34263752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482636948&TPaperId=1714578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30/14/coveroff/e48263694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2239X&TPaperId=1714578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168/46/coveroff/893292239x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45788'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오래 전 앞부분만 보았다가 묵혀놓았던 중국 드라마 삼국지를 최근에 보기 시작했다.<br>2010년작이니 꽤 오래된 작품이지만 지금 봐도 공들여 만든 작품임을 느낄 수 있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은 대배우들이 된 주연 배우들을 만나는 것도 반가운 일이고. <br>아무튼 워낙 스케일이 크고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지라 당시 연기자 가동 범위 풀을 다 끌어다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를 보는 김에 만화로 쉽게 설명해주는 중국어 삼국지도 읽고 있는 중이다. 드라마만큼 진도를 뺄 수는 없지만 매일 조금씩 읽고 있는데 재미가 쏠쏠하다. <br><br>그리고 알라딘에서 산 노트로 중국어 단어 공부를 진행 중이다. 듣기만 하고 단어 공부를 안하니 제자리 걸음이거나 퇴보하는 것 같아서. 건너뛰는 날도 있지만 아직까지 2일 이상은 넘기지 않고 있다. 욕심내지 않고 하루에 2~4개 단어를 쓰면서 공부한다. 많은 양의 단어가 아니라서 투자 시간은 길어봤자 20분 남짓이지만 노트의 빈 페이지가 채워져감을 보는 일은 작은 성취감을 준다. <br><br>주말이면 여지없이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한다. 겨울 동안에는 해가 짧아 오전 8시가 되어서야 날이 밝았는데 이제는 7시만 되어도 해가 난다. 오전 시간이 인적이 드문 편이라 걷기 좋지만 그동안은 추워서 좀 미뤄왔다. 이제 걸어도 될 듯하여 얼마 전 이른 새벽 산책을 하며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았다. 역시 더 좋았다. 당분간은 이른 아침 산책을 하지 않을까 싶다.<br><br>이것 저것 읽는 중이다. <br>우선 러시아 역사 책을 읽고 있다. &lt;러시아의 역사&gt; 상권을 끝냈고 하권을 읽는데 하권이 아무래도 내가 관심이 있어서 알고 싶었던 내용들이 많다. 상권의 뒷부분과 하권의 앞부분은 재정 러시아 말과 혁명 초입 기간까지로 혼돈의 사회상만큼 이야기 소재가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덕분에 문학과 예술 분야가 풍요로웠다. 종이책을 주로 사지만 전자책도 조금씩 산다. 급하게 읽어야 하거나 종이책으로는 딱히 읽을 것 같지 않은 책을 전자책으로 사는 편이다. 혹은 대여 기간이 충분한 경우 살 때도 있다. 열린책들 문학 전집도 마지막 이유 때문에 구입했었다. 리스트를 보니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이 많이 들어 있어서 굳이 새로 구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러시아의 역사를 읽으면서 닥터 지바고를 읽기 시작했다. 다 읽으면 남길 이야기가 많으면 좋겠다^^<br>지난 달 동계 방학으로 쉬어갔던 역사책 함께 읽기도 이달 예정되어 있어서 동학 운동 관련 책을 읽기 시작했다. &lt;1894년 남북접 동학군의 공주 점거투쟁&gt;은 기존 동학 운동의 역사가 전봉준이라는 구심점, 호남 중심의 운동 서술 흐름으로 한계가 있다 지적하면서 그것을 깨기 위한 시도를 한다. 동학 운동의 공주하면 우금치(우금티)만 떠올렸던 나 같은 사람이라면 새로운 시선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동학 초기 지도자인 최제우, 최시형을 다룬 책이 있어서 &lt;최제우.최시형.강일순&gt;을 병행하면서 읽고 있다(강일순은 비록 구한말 증산교를 창시한 인물로 비록 동학과는 관련이 없지만 비슷한 시기의 인물이다). 책에서 최제우가 동학을 만든 배경, 그리고 동학을 만든 이후 개인적으로 겪었던 일들이 상세히 다뤄지고 있다. 최시형과 최제우의 연결 고리를 찾는 과정도 흥미롭다. 또한 앞선 책들과 관련해서 동학과 전봉준 관련해 많은 이야기를 남긴 이이화 선생님의 책들을 함께 비교해보며 읽어봐도 좋겠다.<br clear="all">]]></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373/13/cover150/897291510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3731371</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마이리스트</category><title>동학농민혁명 관련 읽을 거리 -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18 - 민중의 함성 동학농민전쟁] 포함 4종</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31805</link><pubDate>Thu, 05 Mar 2026 15: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31805</guid><description><![CDATA[<br><br/><br/><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670006&TPaperId=1713180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520/76/coveroff/893567000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670006&TPaperId=1713180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18 - 민중의 함성 동학농민전쟁</a><br/>이이화 지음 / 한길사 / 2015년 08월<br/></td></tr></table><div style='border-top:1px solid #CCCCCC; margin-bottom:5px; margin-left:15px;'> </div><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82630413&TPaperId=1713180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4405/47/coveroff/k982630413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82630413&TPaperId=1713180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 1~3 세트 - 전3권</a><br/>이이화 지음 / 교유서가 / 2020년 07월<br/></td></tr></table><div style='border-top:1px solid #CCCCCC; margin-bottom:5px; margin-left:15px;'> </div><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6965949&TPaperId=1713180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827/82/coveroff/897696594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6965949&TPaperId=1713180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1894년 남북접 동학군의 공주 점거투쟁 - 남접·호남 중심 농민전쟁론 넘어서기</a><br/>지수걸 지음 / 역사비평사 / 2024년 09월<br/></td></tr></table><div style='border-top:1px solid #CCCCCC; margin-bottom:5px; margin-left:15px;'> </div><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80359&TPaperId=1713180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275/78/coveroff/8936480359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80359&TPaperId=1713180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최제우·최시형·강일순 - 개벽 세상을 꿈꾸다</a><br/>최제우.최시형.강일순 지음, 박맹수 편저 / 창비 / 2024년 07월<br/></td></tr></table><div style='border-top:1px solid #CCCCCC; margin-bottom:5px; margin-left:15px;'> </div>]]></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6520/76/cover150/893567000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5207663</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일상(2026.03.04)</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29244</link><pubDate>Wed, 04 Mar 2026 09: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2924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15114&TPaperId=1712924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373/14/coveroff/897291511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15106&TPaperId=1712924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373/13/coveroff/897291510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92534513&TPaperId=1712924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665/89/coveroff/k19253451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532783&TPaperId=1712924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380/16/coveroff/k18253278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12531540&TPaperId=1712924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2220/48/coveroff/k612531540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29244'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아침 기온은 다시 내려갔지만 그래도 낯은 따뜻한 볕 덕분에 봄 기운이 나기 시작했다.<br>어제 점심 먹고 산책하면서 보니 매화 꽃망울이 어우러진 것을 발견했다. 곧 꽃봉오리가 피어오름을 짐작케 한다.<br>매화, 산수유를 시작으로 개나리, 목련, 벚꽃, 철쭉 순으로 피어오르겠지. 꽃을 기다리는 일은 즐겁다.<br><br>연거푸 소형 참사가 있었다.<br>가방에 만년필 잉크를 넣어둔 걸 깜빡했는데 며칠 뒤 확인해보니 잉크가 좀 쏟아졌는지 가방 바닥이 젖어있는 것 아닌가.<br>중국어 교재 책에 일부 묻었길래 이 정도야 괜찮지 했으나 실크 스카프가 안에 든걸 몰랐다.<br>그 실크 스카프는 작년 중국 여행 갔을 때 항저우에서 산 거였는데...<br>짐작하시겠지만 스카프에 잉크가 쏟아지는 바람에 얼룩이 졌다. 비싸게 준 건 아니지만 기념으로 하나만 산 건데 아깝게 되었다.<br>덕분에 교훈을 얻었다. 이제 다시는 가방에 만년필 잉크를 넣지 말아야지 싶었던 것.<br>그런데 어제 퇴근하다가 휴대용 만년필 노트를 꺼냈더니 노트가...노트가...<br>핑크색 노트에 검은 만년필 잉크가 다 번져 있는 것이 아닌가. <br>나름 봄맞이 한다고 평소 잘 쓰지 않던 화사한 색의 노트를 산 것이었는데...<br>이쯤되면 궁금했다. 대체 왜 묻은 걸까. <br>병잉크가 들어있던 건 아니었는데 만년필의 뚜껑이 제대로 안 닫혀 있었던 건지?<br>엎질러진 물이지만 실크 스카프도 그렇고 노트도 그렇고 어쩔 수 없이 속이 쓰리다ㅜㅜ<br><br>어제 레드문이 뜬다길래 퇴근 후 집밖을 나섰다.<br>그런데 구름이 많이 껴서 달 언저리가 희미했다.<br>‘이래가지고 사진 찍어서 나오겠어?‘<br>그래도 시도는 해봐야겠지 싶어서 카메라를 야간모드를 설정한 후 최대한 줌을 당긴 후 하늘 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사진을 찍었다.<br>다행히 2~3장쯤 건졌다.<br><br>얼마 전 미국의 역사를 읽고 러시아의 역사를 읽기 시작했다. <br>러시아 문학 작품을 읽을 때 도움을 얻기 위해서다. <br>이미 집에 구비해 놓았던 &lt;러시아의 역사&gt;에 이어 관련 역사책을 장만했다.<br>아쉽게도 번역된 책들이 풍부하게 갖춰져 있지 않은 것 같지만(절판되었거나 아직 번역안된 책들도 있어서).<br>아무래도 19~20세기에 관심이 가므로 해당 시기 역사를 더 읽게 될 것 같다.<br>역사책을 읽으면서 관련 소설도 읽지 않을까 싶다. 집에 있는 도선생님 남은 작품도 읽을겸...<br clear="all">]]></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967/83/cover150/897966202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9678338</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러시아의 역사 - 상</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25977</link><pubDate>Mon, 02 Mar 2026 15: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2597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15106&TPaperId=1712597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373/13/coveroff/897291510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373/13/cover150/897291510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3731371</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러시아의 역사 - 상</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24653</link><pubDate>Sun, 01 Mar 2026 19: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2465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15106&TPaperId=1712465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373/13/coveroff/897291510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373/13/cover150/897291510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3731371</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에드거 앨런 포 단편 소설을 읽고</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21260</link><pubDate>Sat, 28 Feb 2026 19: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2126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533357&TPaperId=171212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034/25/coveroff/600085336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3083&TPaperId=171212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374/7/coveroff/8937463083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최근에 에드거 앨런 포 단편 소설들을 읽었다. 어느 영화를 보다가 주인공들이 서로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작가와 그의 작품이어서 궁금해져서다.&nbsp;에드거 앨런 포는 19세기 미국 추리/공포 장르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포는 순회극단의 배우였던 부모 밑에서 태어났으나 두 사람 모두 일찍 사망하여 양부모 아래 성장했다. 그는 여러 이력을 거쳤는데 문필가로 생활하기에는 안정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그는 미국 주류 문단 세력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 특히 그래스월드는 포에 대한 악의적인 부고와 평론을 쏟아내며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 그의 초창기 이미지를 좋지 못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사후 그의 평가가 많은 작가들에 의해 회자되며 개선되었다고 한다. 포는 미국 현대 추리 소설의 창시자로 영국 추리문학 캐릭터인 셜록 홈스의 앞선 모델인 오귀스트 뒤팽을 만들어내기도 했다.&nbsp;<br>그가 작품을 쓰던 당시 문학계는 이성주의에 반해 신화와 전설, 비이성적이고 초자연적인 것, 극단적인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나타났는데 포도 그 영향을 이어받았다.&nbsp;소설 속 주인공은 대체로 불안한 심리와 충동이 잠재되어 있다가 환각에 빠진 상태에서 기현상을 목격한다. &lt;어셔가의 몰락&gt;의 상황이 전형적으로 그런 경우다. 하지만 상황은 기괴하거나 공포스러워 보이지만 주인공이 꿈꾸었던 결과인 경우도 있기 때문에 결코 천편일률적이지 않다는 느낌도 받았다. &lt;리지아&gt; 같은 작품이 그런 경우였다(리지아의 아름다움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와 그곳이 성소라도 되는 양 머무르던 시기 이후, 나는 그녀의 크고 빛나는 눈동자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일으켰던 바로 그 감정과 꼭 같은 감정을 물질세계의 많은 존재에서도 느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느낌을 정의하거나 분석하는 것이 더 쉬워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느끼는 것이 더 쉬워지지도 않았다. - P53) 리지아는 강렬한 느낌으로 주인공을 사로잡았다. 특히 그녀의 둥근 검은 눈동자는 기이한 느낌을 주었다(고 당사자는 이야기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리지아가 시름시름 앓더니 주인공 곁을 떠난다. 이후 그는 로웨나라는 여자와 결혼하지만 그녀 또한 4일 만에 사망한다. 그는 로웨나의 시신에서 생의 감각을 느끼는데 그건 다름 아닌???(결론은 읽어보시길)<br>당연히 섬뜩하고 무서운 이야기도 있었는데 일반적으로 귀신의 소리를 듣거나 귀신의 형상을 보거나 그런 공포가 아닌 다른 경우도 있었다. &lt;배반의 심장&gt; 같은 경우 어떤 사람의 특정 신체 기관을 보고 문제를 삼아 그를 죽여야겠다고 다짐, 그것을 실천하는 상황으로 벌어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독자가 자신을 보고 미쳤다고 탓할 거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건 상대가 문제였기 때문에 살인이 정당화되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이런 내용에서는 인간혐오에 대한 생각이 엿보여서 무서웠다. 이는 &lt;군중 속의 사람&gt;, &lt;검은 고양이&gt;, &lt;아몬티야도 술통&gt;에서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nbsp;&lt;군중 속의 사람&gt;에서 화자는 건물 안에서 거리에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 군중 속에서 눈에 띈 한 사람을 쫓아가면서 사건이 만들어진다(매일 밤 침대 위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유령 같은 고해신부의 손을 꽉 쥐고 그의 눈을 안쓰럽다는 듯 들여다보면서 죽어 간다. 밝혀지기를 거부하는 흉측한 비밀 때문에 마음속 깊은 곳에 절망을 품고 목에 경련을 일으키며, 참으로 슬픈 일이지만, 인간의 양심은 이따금씩 너무나도 무시무시한 짐, 오로지 무덤 속에서만 부릴 수 있는 짐을 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범죄는 본질을 드러내지 않은 상태로 남게 되는 것이다. - P237). &lt;검은 고양이&gt;에서는 주인공의 도착 심리와 광기가 심해지면서 사건은 벌어진다. &lt;아몬티야도 술통&gt;도 복수를 하겠다는 핑계로 벌어지는 일인데 &lt;검은 고양이&gt;도 그렇고 &lt;아몬티야도 술통&gt;도 그렇고 마지막에는 도둑이 제발저려 범죄를 실토한다.&nbsp;작가는 이처럼 복잡한 인간의 심리를 꿰뚫듯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사건을 읽는 동안 현실에 이런 사람들이 있겠지 싶어 연이어 소름이 돋았다.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 분노와 폭력에 대한 잠재 의식은 누가 다 알 수 있겠는가.&nbsp;&nbsp;<br>한편 &lt;도둑맞은 편지&gt; 같은 추리 단편도 있었다. 사건 해결사인 오귀스트 뒤팽이 출연하는데 그는 명문가 출신에 독서광으로 날카로운 관찰력과 추리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이미 이전에 &lt;모르그 가의 살인&gt;, &lt;마리 로제 미스터리&gt; 사건을 연이어 해결하여 파리의 경감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바 있었다. 이 책에는 앞선 사건에 대한 내용이 나오지 않아 아래 책을 통해서 읽었다.&nbsp;쫄깃한 반전을 생각하면 ‘뭐지?’ 할 수 있는데 사건은 의외로 단순하게 생각해야 보이는 법이라는 교훈을 준다. 그리고 현실에서 만나는 사건은 인간 간의 벌어지는 일들이니 수학 공식처럼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는 법칙도 경험하게 된다.&nbsp;<br> <br>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단편은 &lt;군중 속의 사람&gt;이나 &lt;타원형 초상화&gt;, &lt;배반의 심장&gt;이었다. 인간이 어떤 것에(감정이든 대상이든) 미쳐서 꽂히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여실히 느끼게 해준 이야기들이었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374/7/cover150/8937463083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3740782</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러시아의 역사 - 상</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20755</link><pubDate>Sat, 28 Feb 2026 17: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2075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15106&TPaperId=1712075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373/13/coveroff/897291510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373/13/cover150/897291510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3731371</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미국의 우생학 - [미국의 우생학 - 혐오와 차별은 어떻게 ‘과학’이 되었나]</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09090</link><pubDate>Mon, 23 Feb 2026 16: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0909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92135037&TPaperId=1710909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13/99/coveroff/k49213503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92135037&TPaperId=1710909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미국의 우생학 - 혐오와 차별은 어떻게 ‘과학’이 되었나</a><br/>N. 오르도버 지음, 김현지 옮김 / 오월의봄 / 2026년 02월<br/></td></tr></table><br/>우생학은 언제나 극히 기민한 이데올로기였다. 우생학은 스스로 힘을 실어주기도 하고 동원되기도 한 운동들, 즉 국가주의, ‘개혁 지향‘ 자유주의, 절대적인 동성애 혐오, 백인우월주의, 여성혐오, 인종주의와 따로 떼어낼 수 없다. 우생학이 오래도록 살아남은 것은 순전히, 어떤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오명을 뒤집어쓰더라도 나머지 사람들은 다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런 운동들과 공모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생학이 모든 유형의 편견에 호소력이 있다는 것은 배제나 유전적 추정이나 외과 수술의 대상으로 지목된 개인들이 대부분 다중적 정체성을 가지며, 어느 하나가 아니라 그 이상의 표적 집단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P56~57<br><br>미국의 우생학은 이제는 더는 사라진 학문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더는 자신이 백인 코카서스 인종임을 드러내는 사람은 없지만 여전히 흑인과 이민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중이니까. 인종, 계급, 젠더의 위계에 의한 불평등은 우생학을 낳는 기본 토대다. 거기에 정책 입안자, 의사, 법률가, 기업가 등이 서로 간에 양분을 주며 우생학이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 우생학은 가산적 이데올로기다. <br><br>20세기 미국 이민의 역사는 우생학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실천 영역 중 하나다. 1875년 페이지법부터 1882년 중국인 배척법, 연방이민금지령, 1917년 재외국인 미국 이민 및 거주 규제법에 이르기까지 인종 및 계층에 따라 입국 불가 범위는 계속 넓어졌다. 특히 1917년 재외국인 이민법이 발표될 당시는 볼셰비키 혁명으로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사회주의자, 급진주의자에 대한 적대감이 커지면서 보편적인 반이민정서가 횡행할 때다. 이후 1921년 이민자의 범위를 총 인구의 3%로 제한하는 법이 통과되더니 1924년 이민제한법이 발표된다. 이민제한법은 우생학 전문대리인인 로플린이 적극 역할을 했는데 그는 재외국인 국가등록제를 촉구하고 자격 통과한 이민 예정자에게 개발적으로 여권을 발급해야 한다고 권고했던 것이다(정책에 거의 그대로 반영되었다). 이 법은 나중에 히틀러의 나치 독일 단종법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우생학을 지지한 사람들은 몰려드는 이민자들로 인해 인종 혼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증폭됨에 따라 백색 인종적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렸고 이를 적극적으로 타개하고자 뛰어들었다. 파이어니어 펀드라는 회사는 우생학 출판물을 영어로 번역하고 미국의 우생학회 등 우생학을 선전하는 단체를 지원하며 반이민 기조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br><br>동성애의 원인이나 치료법을 찾는 것이 동성애에 일탈이라는 꼬리표를 단다는 점, 동성애에 대한 의학적 또는 정신의학적 병리화가 이성애를 정상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미 국립보건원은 어쨌든 이성애 유전자를 찾는 일에는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다만, 아마도 의도치 않게 연구를 하는 경우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니 1869년 헝가리 작가 카로이 마리아 케르베니 Károly Mária Kertbeny가 만든 ‘동성애자 homosexual라는 용어가 ‘이성애자 heterosexual‘라는 용어보다 먼저 통용된 것도 놀랍지 않다. - P183<br><br>동성애는 유전의 영향인가, 환경의 영향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은 사항이다. 그러나 동성애를 문제시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생물학적으로 애당초 문제가 있었다는 식으로 이끌고 가려 했다. 한쪽에서는 동성애는 유전이 아니지만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성향은 유전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는 실패를 선천적인 지적 결함으로 이야기하면 특권층에 유리하기 때문에 먹히는 매커니즘이다. 한편 의학이, 의사의 주장이 사법 제도가 된 사례는 단종법의 통과다. 1909년 캘리포니아의 단종법 통과 이후(1911년 아이오와주, 나중에는 오리건주까지) 상습성범죄자 등에 대한 단종 수술이 징벌적 성격이 아닌 치료 목적으로 둔갑되었다. 이는 명백한 우생학적 이데올로기에 의한 사고다. 동성애자는 이렇게 사회에서 근절되어야 할 악이자 그 대상이 되버렸다. <br>마찬가지로 젠더가 유전적 요소에 따른다는 편견과 집착이 존재했다. 젠더부적응도 마찬가지다. 젠더 역할에 대한 의학적 판단은 인종, 계급에 기초하여 동성애를 구성하고자 했다. 의사든 비전문가든 레즈비언은 신체적으로 이상하고 기괴하다는 생각이 있었다. 동성애로 짐작되는 아이들 중 자위하는 아이들의 음핵을 제거하고 두개골 크기 및 얼굴 생김새로 범죄 성향을 연결지으려는 시도도 있었다. 레즈비언도 지배적 레즈비언과 소극적 레즈비언으로 구별하여 정량적으로 계산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br>동성애에 대한 정신의학 및 생물학 논문이 내놓은 가설은 퀴어에 대한 적대감 및 신체적 위해를 제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호르몬으로 동성애자를 치료할 수 있다는 가설은 심리학자, 의사, 연구자들을 만족시켰다.<br><br>테크노픽스는 점점 더 암호화된 방식으로 활용됐고, 자유주의자들에게 더욱 강력한 호소력을 발휘했다. 자유주의자들은 의식적이든 아니든 보수주의자들과 합세해 인종, 계급, 젠더(청소년 여부 및 장애 유무에 의해 더 강화됨)를 우생학 프로젝트의 주요 결정 요인으로 확립했다.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공공 정책 분야의 ‘혁신‘과 손을 맞잡고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양상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여성 및 여자아이들이 먼저 하나 이상의 특정 인구통계학적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병리화된 다음, 의학적으로 위험하고 헌법에 비춰 의심스러운 ‘치료법‘을 받아들이도록 압박을 당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 P411~412<br><br>산아제한은 계급(지위든 경제든)과 연관되어 우생학적 관점에서 해석되었다. 마거릿 생어는 적극적 우생학(‘적자‘는 인종과 국가에 봉사하기 위해서 가족 구성원을 늘려야)은 비난했으나, 소극적 우생학(‘부적자‘ 사이의 생식은 방지되어야)은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푸에르토리코의 가난한 여성을 대상으로 경구프로게스테론 실험약이 투여된 것은 미국의 식민주의와도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이다. ‘니그로 프로젝트‘는 흑인 사이의 출생률을 감소시키면 남부의 빈곤이 해결될 것이라는 가설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다(반대 목소리를 낸 것이 W.E.B.듀보이스). 클래런스 겜블은 강제 단종수술 클리닉을 설립하고 널리 시행했는데 여기에 생어는 적극 동조하고 지원했다. 생어는 빈곤층이 재정 부담을 가져오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인구 과잉은 국가적 재앙을 불러온다며 단종수술이 필요하다 보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장애나 정신적 부적자에게도 단종수술이 필요함을 설파하는 인간개량재단에도 참여했다.<br>미국 남부에서는 조직적인 단종수술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1929년에서 1940년 사이 노스캐롤라이나 주 단종 수술 후보자 중 78%가 여성이었고, 그중 21%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으며, 1964년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전체 단종 수술의 65%를 차지했다. 수술 대상자로 지목된 사람들에는 인종 및 사회 경제적 지위 뿐 아니라 연령(낮은) 기준이 작용했다. 가장 큰 문제는 단종 수술을 받지 않으면 복지 혜택이 줄어든다고 하는 사실 때문에 수급자에게는 협박으로 작용했다는 현실이다. 이처럼 산아제한의 명목으로 여성의 선택권은 보호받지 못했고 의료계가 선택한 자율성과 편의성에 의해 단종수술이 시행되었는데 이를 제공한 의료 서비스 제공자들의 권리는 철저히 보호되었다. 이는 난관결찰술 및 자궁적출술에 이은 노플란트, 데포-프로베라도 마찬가지다. 국외 빈곤 퇴치 방안으로 행해진 두 시술은 모두 부작용이 제대로 고지되지도 않은 채 미국 외 저개발국가에서 실시되었다. 특히 노플란트는 원상태로 돌릴 수 있다(주로 5년 이후 빼낸다고 하지만 빼내는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지...)는 사실 때문에 더 호혜적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여성의 몸(의 부작용과 위험적 결과)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생각할수록 소름이 끼친다. <br><br>이처럼 이 책은 과거 미국의 우생학이 펼쳐진 다양한 국가 정책적 사례를 자세히 보여준다. 그러나 서두에도 이야기했지만 우생학은 결코 죽지 않았고 여전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미국 사회 전반에 뿌리내려져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미국의 과거와 현재를 확인하고 진단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br><br>미국 우생학의 역사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반동주의적 의제와 개혁주의적 의제가 늘 협력한 것은 아니더라도 공통의 목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그럼에도 많은 경우 자유주의는 보수주의, 그리고 심지어 전면적인 파시즘도 이룰 수 없었던 것을 더 밀고 나아갔다. 여성, 가난한 사람, 인종화된 사람, 장애인에 대해서는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 양쪽 모두 온정주의적인 자세를 취했다. 구조적 불평등을 해결하는 데양쪽은 모두 실패했다. 양쪽 모두 미국 국내와 ‘개발도상국‘의 인구 조절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이런 공동의 대의의 기틀을 만들고 조성한 사람이 바로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우상 중 한 명인 마거릿 생어다. 물론 생어 혼자서 한 일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 P430]]></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13/99/cover150/k49213503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139906</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미국의 우생학</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06749</link><pubDate>Sun, 22 Feb 2026 15: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0674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92135037&TPaperId=1710674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13/99/coveroff/k49213503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13/99/cover150/k49213503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139906</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인종으로 읽는 미국의 역사 - [인종으로 읽는 미국의 역사 - 식민지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미국을 만들어온 인종이라는 거울]</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06159</link><pubDate>Sun, 22 Feb 2026 07: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0615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209151&TPaperId=171061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00/55/coveroff/895820915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209151&TPaperId=1710615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인종으로 읽는 미국의 역사 - 식민지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미국을 만들어온 인종이라는 거울</a><br/>한국미국사학회 지음 / 궁리 / 2025년 12월<br/></td></tr></table><br/>연초에 잡지를 보다가 이 책을 ‘또‘ 발견하였다. 진작에 신간 꾸러미에서 발견한 책이었지만 외면하고 있던 책이었다. 다른 책을 소개하면서 이 책을 같이 소개하니 궁금하기도 하고 과연 두 책이 어떤 다른 느낌을 가져다줄까 싶어 주문하여 읽게 되었다. 어쩌다보니 미국사를 다시 훓어보는 계기가 되었다.<br><br>이 책은 한국미국사학회에서 그동안 여러 학자들이 만들어낸 성과물을 엮은 것이기 때문에 학술서라고 보아야 한다. 대중교양서처럼 수월하게 읽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어렵지는 않았다. 기존에 미국 인종, 계급, 젠더 관련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읽어나갈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라고 느껴졌다. <br>부제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인종‘이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여러 사회 현상을 고찰하며 미국의 역사를 훓어본다. 정치 분야만이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스포츠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읽는 맛이 있었다. <br><br>오늘날 ‘인종‘이 왜 문제인지는 해외 뉴스 한 두개만 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미국 뿐의 문제는 아니지만 미국은 트럼프 제2집권기에 들어서서 그 심각성이 커지고 있는 양상이다. 다만 인종을 이해하는 시각은 점차 달라져왔다. 과거에는 생물, 유전, 인류학적인 개념으로 이해되었다면 오늘날에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br><br>건국기 링컨은 주로 남부 노예해방을 한 인물쯤으로 미화된 측면이 있는 것 아닌가 싶다. 그는 원주민에 대하여 온정주의적 자세를 가지고 있었으나 그들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다. 그는 인디언 시스템의 에이전시직을 비전문가이자 인디언을 만나본 적도 없었던 자신과 친분이 있었던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정치적 지지자들에게 보상을 하기 위해서였다. 또 백인들을 서부에 정착시킨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진 홈스테드법과 대륙횡단철도 사업으로 원주민들의 땅은 강탈당하기에 이른다. <br>프리메이슨은 중세 유럽 길드에서 기원한 용어로 17세기 유럽에서 비밀결사우애단체로 출발했다. 이들은 개인과 사회를 개선하며 질서와 조화, 안정을 추구하고 신비주의를 고수했는데 18세기 미국에 유입되어 독립을 위해 뛰던 지도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프리메이슨 흑인 활동가들은 아프리카인들의 억압의 역사를 강조하기 보다는 흑인의 인종 평등과 노예제 폐지에 힘을 실었다. 이들은 흑인의 정치적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여겨 교회와 연계하여 흑인의 시민권과 투표권을 획득하고 교육의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했다(폭력적 저항으로 나아가지 않았다).<br><br>1917년 미국은 문맹테스트 이민법을 만들고 아시아 이민금지 구역을 설정하였으며 이민자 인두세를 인상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테스트 항목을 킹 제임스 성경에서 발췌함으로써 개신교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었고 검열관의 판단에 따라 편의적으로 이민 테스트 통과 여부가 결정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았다. 이 이민법은 1952년 폐지되기까지 계속되었다. <br>짐크로시대 외면으로는 구별하기 어려운 흑인들이 백인으로 통과하기를 감행했다. 그러나 정체성을 숨기고자 한 흑인들은 자신들의 존재가 발각될까 늘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 흑인들의 지위가 상승하면서 백인으로 통과하기는 퇴물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정말 사라진 유산일 뿐인가? 여전히 외형적으로 모호한 아프리카계 또는 아시아계 혼혈인은 백인 통과하기를 시도한다. 문제는 이것이 백인 사회를 더 공고히 하는데도 역할을 한다는 현실이다. <br><br>20세기 흑인 권리 찾기를 주도한 이로 윌리엄 듀보이스가 있는데 다른 한편에 부커 워싱턴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커 워싱턴은 워싱턴에서 있었던 애틀랜타 타협으로 흑인은 백인 사회로 점진 통합해야 하며 경제적으로 자립, 현재 상황에 순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등 백인과 흑인의 협력이 필수라 보았다(당연히 백인들은 이에 환호했다). 이는 흑백 분리와 인종 차별을 수용하는 입장으로 보수적인 쪽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윌리엄 듀보이스는 흑인만의 고유성을 강조하며 흑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치적 권한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1980년 레이건이 당선되고 미국 사회에 우파적 흐름이 거세지자 과거 부커 워싱턴의 정책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미국 내 이민이 증가하고 백인 여성이 노동 시장에 진입하자 취업문이 좁아진 흑인들이 위협을 받은데다 1960년대 민권법과 투표권법이 통과되면서 계층간 간격이 커진 탓이었다. <br>두순자 할린스 총기 사건도 기억에 남는다. 한인 상점주 두순자가 10대 흑인 소녀 할린스를 총기로 쏜 사건이었다. 사건 발발 후 한인들은 이 사건을 인종적으로 다루지 않으려 했으나 사건은 인종 이데올로기의 논리에 따라 할린스를 불량하고 남성적이며 싸움질하는 강도로 몰았고 두순자는 가정적이고 도덕적이며 중산층 계급의 여성의 내러티브가 만들어졌다. <br><br>19세기에는 인종 질서가 형성되고 백인의 차별적인 시선이 시작된 시기이다. 미국의 법과 정책은 건국기부터 백인 중심의 인종 질서를 구축했고 19세기 중후반이 되면 서부 확장을 통해 이를 더욱 공고히 했다. 필리핀을 식민지로 만드는 과정에서 그들을 야만인이자 타자로 규정해 백인의 입장으로 이들을 문명화시켜야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20세기 전반이 되어서도 백인 중심의 질서를 재구축하려는 시도는 지속되었다. 산업화로 만들어진 도시공간은 인종주의가 기능하는 장소로 작동하는데 흑인이 백인화되려는 거듭된 시도는 인종의 위계를 무너뜨리고자 함이었지만 오히려 또 다른 분류를 만들어내는 역효과를 낳았을 뿐이었다. 20세기 후반 인종 정치는 인종 위계에서만이 아니라 인종 내부에서도 다양한 과정을 통해 형성되어 전개되었다. 이처럼 미국의 역사는 곧 인종의 역사이므로 인종 연구는 여전히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00/55/cover150/895820915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005587</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미국의 우생학</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05478</link><pubDate>Sat, 21 Feb 2026 20: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0547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92135037&TPaperId=1710547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13/99/coveroff/k49213503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13/99/cover150/k49213503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139906</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천국의 가을 - [천국의 가을 - 중국과 서양, 그리고 태평천국 전쟁의 역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03256</link><pubDate>Fri, 20 Feb 2026 15: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0325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72034425&TPaperId=1710325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22/86/coveroff/k87203442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72034425&TPaperId=1710325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천국의 가을 - 중국과 서양, 그리고 태평천국 전쟁의 역사</a><br/>스티븐 플랫 지음, 임태홍 옮김 / 글항아리 / 2026년 01월<br/></td></tr></table><br/>책의 제목에 오랜만에 감탄했다. 특히 '천국'은 기독교의 '천국'과 태평천국의 '천국'으로 중의적인 의미를 담은 것 같아서 그렇다. 그치만 가을을 붙인 이유는 잘 모르겠다. 홍수전이 태평천국을 공식적으로 선포한 해는 1851년이지만 사실 운동의 시작은 1850년부터 주요 흐름으로만 따져도 4년여간 이어졌기 때문에 딱히 가을을 붙이기에는 애매함이 있지 않나 싶어서다.&nbsp;<br>이 책은 태평천국운동(입장에 따라 운동이라는 글자 대신 다양하게 부르지만 그나마 운동이란 단어가 중립적인 것 같다)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논픽션이다. 중국의 역사를 연구하는 외국 학자들이 이젠 제법 많아져서인지 다양한 저서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논픽션은 사건을 그저 서술만 하지 않아 딱딱하지 않게 읽을 수 있고 중요 사건은 좀 더 강조하여 마치 드라마 같은 느낌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일반 역사서였다면 이 정도 페이지의 분량을 며칠은 걸려서 읽어야할텐데 덕분에 2~3일 투자해서 읽을 수 있었다.<br>태평천국운동이 있던 시기 청은 대내외적으로 혼란에 빠진 상황이었다. 1842년 영국과 맺은 난징 조약을 시작으로 프랑스, 미국 등과도 관계를 맺으며 세계 경제 체제에 합류하게 되었다. 내부는 곳곳에서 민란이 발생하고 있었다.&nbsp;<br>책은 역사적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서대로 배치하지 않고 인물과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며 이목을 끌었다가 다음엔 특정 사건(전투)을 설명하는 식으로 나열되어 있다. 목차를 보지 않으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독자로서는 더 신선하게 읽을 수 있지 않나 싶다.<br>홍인간은 스웨덴 선교사인 테오도레 함베리에게 세례를 받았고 홍콩에 갔을 때 만난 스코틀랜드 출신 선교사인 제임스 레그 등을 통해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관련 책도 읽어서 서양 문화와 문물에 아주 익숙한 인물이었다. 외국어도 능숙했다니 재주가 있었던 인물임에는 틀림 없는 것 같다. 레그는 홍인간에게 전도와 공부에 집중하라고 권했지만 홍인간은 정치적 욕망이 있었던지 뿌리치고 홍수전을 만나기 위해 떠난다.&nbsp;홍수전이 신을 만난 이야기는 마치 무슨 신화나 전설처럼 많은 이야기가 떠도는데 어쨌든 배상제회를 중심으로 모인 신도들은 그를 영적인 지도자로 여겼고 이후 태평천국은 점점 확장되어 나갔다. 1851년 1월 홍수전은 기독교 개종과 만주족 타도를 기치로 태평천국을 수립하며 스스로 천왕이란 자리에 올랐고 홍인간에게는 간왕이라는 직함을 내렸다. 홍인간은 이 무렵 논설을 통해 태평천국이 나아갈 방향이자 뚜렷한 목표로 근대 산업 강국으로 내세우며 비전을 제시했다. 사촌인 홍인간이 상대적으로 한 자리를 얻기 쉬웠다면 충왕인 이수성은 홍수전의 신임을 얻기 위해 바닥부터 무진장 노력하여 마침내 장군 자리에까지 오른 사람이다.&nbsp;&nbsp;<br>태평천국운동 초기 영국은 청 정부군과 태평천국군 중 어느 한편에 힘을 실어주지 않고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다만 당시 상하이에 있던 영국 최고위직 프레더릭 브루스는 청 정부군 고위직에 있던 '오후'의 부탁으로 청군을 지원하는 편에 섰다. 물론 상하이에 있던 영국인들을 보호하겠다는 명분도 있었을 것이다. 이에 반해 미국인 지휘관인 프레더릭 타운센드 워드는 중국인 상인 집단의 손을 잡고 외국인 중심의 민병대를 꾸려 태평천국군 편에 서서 청 정부군을 몰아내려 했다. 그리고 청에 들어와 있던 선교사들은 태평천국 편에 섰는데 중국이 기독교로 개종해야 한다는 생각과 서양에 우호적인 방향성이 대체적으로 부합했기 때문이다.&nbsp;그러나 제2차 아편전쟁으로 다구포대에서 패배한 영국은 청에 설욕하기를 원했기에 중립 노선을 내려놓고 당시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와 프랑스 함대까지 동원해 베이징으로 향했다. 이들에 대항하기 위해 증국번은 청의 상비군을 이용하지 않고 자체 군대를 새롭게 조직하였다. 자체 규율로 충성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끔 세뇌를 한데다 구성원이 마을, 가족 단위였기에 서로 서로 감시하는 역할까지 더해져 결속력이 강한 군대가 되었다. 덕분에 태평천국군에 승리하여 황제의 주목을 받았지만 함풍제는 얼마 후 사망하고 너무 어린 황제를 대신해 서태후(와 동태후)가 정치 무대에 메인으로 등장하기에 이른다.&nbsp;<br>1861년 미국에 남북전쟁이 시작되자 영국산 면직물 가격이 폭등하여 중국으로 수출하는 물량이 급감하는 등 실물 경제가 요동쳤다. 링컨이 남부연합의 모든 항구를 봉쇄하자 영국은 중국의 조약항들이 자신들을 구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라고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보복이라도 하듯 영국이 미국 남부연합의 교전국 지위를 인정한다고 발표하자 결과적으로 이는 태평천국의 주권도 인정하겠다는 꼴이 되었다. 태평천국군으로서는 호재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nbsp;이홍장은 증국번의 군대와 비슷한 성격의 민병대를 안후이성에서 조직하기 시작했다(규칙까지 복붙). 서태후와 어린 황제는 증국번에게 정부군 지휘 책임을 맡겼는데 정황상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nbsp; &nbsp;1862년이 되면 영국군과 프랑스군, 프레더릭 타운센드 워드가 힘을 합해 태평천국군이 점령한 상하이를 탈환하기 위해 뛰어들며 접전이 벌어진다. 1863년에는 피난민이 몰려들어 상하이에는 콜레라가 창궐했다. 이는 톈진에서 베이징까지 확산되었고 군대도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증국전의 기습 공격을 시작으로 위화타이의 석축 요새를 점령한 이후 청군은 계속 세력을 뻗어나가며 태평천국군이 빠져나갈 출구를 장악해나갔다. 1864년 홍수전은 이미 병으로 사망한 뒤였던 때 좌종당 부대가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항저우를 탈환하고 이수성이 증국번에 의해 잡히고 난 뒤 사실상 전쟁은 종결되었다. 이수성은 태평천국군의 거의 마지막을 지휘한 반면 홍인간은 이때가 되면 초기의 진취적인 기운도 없어졌다는 식으로 묘사가 되어 있다.&nbsp;<br>앞서도 설명을 했지만 개인적으로 홍수전의 사촌이자 태평천국에서 간왕 노릇을 한 홍인간과 충왕 이수성에 대한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읽었다. 태평천국운동이 진행되는 동안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지만 그동안 사실 홍인간에 대해서는 뚜렷한 인상을 받지 못했었다. 이 책에서는 홍수전은 오히려 약간 뒷배경처럼 배후 같게 그려지고 홍인간이 메인에서 지휘를 이끄는 실세처럼 그려져 있다. 충왕 이수성의 역할도 제법 비중 있게 다뤄진다. 물론 약간의 과장이나 축소를 감안해야겠지만 태평천국운동을 조금 더 상세히 뜯어볼 수 있게된 것 같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22/86/cover150/k87203442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2228606</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미국의 우생학</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01473</link><pubDate>Thu, 19 Feb 2026 20: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0147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92135037&TPaperId=1710147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13/99/coveroff/k49213503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13/99/cover150/k49213503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139906</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문명이야기 1-2 동양문명 - [문명이야기 1-2 - 동양문명, 수메르에서 일본까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00680</link><pubDate>Thu, 19 Feb 2026 12: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0068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83564&TPaperId=1710068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247/40/coveroff/893748356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83564&TPaperId=1710068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문명이야기 1-2 - 동양문명, 수메르에서 일본까지</a><br/>윌 듀런트 지음, 왕수민.한상석 옮김 / 민음사 / 2011년 05월<br/></td></tr></table><br/>문명 이야기 동양 두 번째 편을 읽었다. 1편이 초기 인류 문명 중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지중해 부근을 다루었다면 2편은 인도, 중국, 일본 문명을 다루고 있다. 이것으로 사실 동양 문명을 포괄한다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는 생각이지만 그럼에도 2편은 인도, 중국, 일본 문명을 꽤나 공들여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분량으로만 따지면 사실 인도가 가장 비중이 높고 그 다음이 중국, 일본 순인 것 같다.&nbsp;<br>인도는 아라비아 숫자가 탄생하고 십진법이 탄생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음수 개념도 찾아내 수학의 기초가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아라비아 숫자는 인도에서 아랍을 거쳐 유럽이나 다른 아시아로 향한 것이다.&nbsp;인도의 종교는 불교에서 출발하여 힌두교와 이슬람교를 거쳤다. 불교를 탄생시킨 부처는 극단적 금욕주의를 실천하고자 했다. 인생은 고통이며 고통은 욕망에서 비롯되기에 지혜는 모든 욕망을 잠재우는 데 있다는 것이다.&nbsp;부처 사후 불교는 대승불교와 소승불교로 나뉘어졌다. 이후 인도는 힌두교와 이슬람교로 대체되었으나 역설적으로 주변 국가들로 불교가 확산되며 그 명맥을 이었다.&nbsp;힌두교는 창조를 뜻하는 브라만(여기서도?), 보존을 뜻하는 비슈누, 파괴를 뜻하는 시바를 3대 신으로 모신다.&nbsp;이슬람교는 쿠샨 족 등 이슬람인들이 들어오면서 상당 기간 동안 인도를 지배하며&nbsp; 다양한 문화를 낳게 했다.&nbsp;<br>인도에서 지금도 여전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카스트 제도는 계급에 따른 일상 생활의 모든 규범과 의무를 규정해놓은 것으로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신분이 세습된다는 특징을 가졌다. 가장 상위를 차지하는 계급인 브라만 관점에서 규정이 정해졌기 때문에 하위 계급은 브라만을 존중하는 등의 조항도 들어가 있다.&nbsp;인도의 철학은 대표적으로 베다, 우파니샤드에서 출발했다. 베다는 '지혜들'을 뜻하며 지혜에 관한 책에서 기원했다. 베다는 네 가지 내용(만트라, 브라마나, 아라냐가, 우파니샤드)으로 되어 있다.&nbsp;'우파니샤드'란 '우파'(가까운), '샤드'(앉다)로 스승에게 가까이 앉아 있음을 뜻하는 말로 스승이 제자들을 불러놓고 한 가르침의 내용이다. 그곳에는 BC 800~500년 활동하던 다양한 성인과 현자들의 강론이 실려 있다.&nbsp;우파니샤드 철학은 이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가르침이다. 1단계는 아트만으로 자아의 본질은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무형의 침묵하는 존재이며 2단계는 브라만으로 어떤 것에든 자리하며 중성의, 인격과 무관한, 모든 것의 근간이 되는 무형의 세상의 본질이자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영혼이다. 3단계는 아트만과 브라만의 통합을 지향한다.&nbsp;브라만 철학 체계는 사실 읽었지만, 읽어도 무슨 말인지 어려웠다(발음이 어려운 탓도 있는 듯). 그래도 이 중 부처 시대에 번성했다는 요가 체계(요가는 지금 요가 교재로도 사용하는 그 요가 맞다. 요가 경전인 요가수트라에는 요가 체계의 실천사항과 전통을 담고 있다)와 우파니샤드 철학에 논리를 제공하고자 탄생한 베단타 체계는 기억에 남는다. '베단타'란 '우파니샤드의 끝'을 의미하는 것으로 신과 영혼은 하나이니 브라만과 합일되려는 열망으로 우리는 탐구하고 생각하려는 자발적인 태도를 가지고 자제력과 평정심을 꾸준히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nbsp;서사시로 지금도 알려져 있는 것은 아마도 마하바라타와 바가바드기타가 아닐까. 마하바라타는 폭력과 도박, 전쟁에 대한 이야기다. 바가바드기타는 개개인이 나라를 위해 일어서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하는 것이다. 예전에 바가바드기타는 발췌본으로 읽어서인지 그런 메시지는 느끼지를 못했던 것 같다.인도 관련하여 이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이 정도로 하는 것으로 한다.<br>중국은 역시 철학 체계가 가장 흥미로웠다. 예전에 읽었던 중국철학사와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책의 비중도 철학 쪽에 치중되어있다는 느낌이었다. 고대 분열과 통합의 시기가 끊임없이 오갈 때 혼란의 시기마다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등 철학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 역시 공자의 영향은 막강했다. 공자 사후 공자를 주해한 책들이 쓰여지면서 중국 내 뿐 아니라 주변 국가에도 공자의 사상이 알려지게 되었다. 공자를 추존하는 사당이 여기 저기 만들어진 것은 물론이다.&nbsp;여러 시인이 탄생된 시기는 당나라였다. 당시는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표현과 절제된 감정이 특징이다. 이태백, 두보, 도연명, 백거이 등 유명한 시인들이 있고 이들의 당시는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nbsp;송나라는 종이, 먹, 도장이 개발되고 목판 인쇄가 가능해지면서 학문이 전수될 수 있는 길이 열린 시기다. 옥과 돌을 다루는 기술이 최상급이었으며 특히 칠공예가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림에는 북종화와 남종화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두루마리 형태도 있었지만 병풍 형태도 있었다. 서양화와는 달리 원근법이 무시되었으며 선과 먹의 농담으로 사물과 자연을 암시하여 간접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사실상 동양 수묵화가 시작된 것이 이 시기가 아닐까 싶다. 이들의 영향은 한반도의 고려, 조선에도 이어져 유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nbsp;유교가 정착되면서 하늘을 숭배하던 이들이 조상을 숭배하게 되었으나 점술을 비롯한 신비주의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역경을 바탕으로 한 도교의 영향이 있을 것 같다.<br>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 쇼군, 영주, 가신, 무사 계급으로 중세 이후 체계가 근대 시기로 오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이 중 사무라이는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요 받는 것 말고는 노역을 받지 않았고 검을 소지하면서 하층민을 죽일 권한을 가졌다.&nbsp;일본은 9세기 가타카나 문자를 개발하기 전까지는 한자를 사용했다. 현재도 명맥을 잇고 있는 대중 연극인 가부키 시바이는 18세기 승려들이 의식에 합창곡을 더하고 연기자에게 연기를 하도록 한 3부작 연극을 기본으로 막간인 소극이 더해져 지금의 형식이 만들어졌다. 단카와 하이쿠 문화도 있다. 중국, 조선에서 건너간 도자기 문화는 현재도 일본을 대표하는 예술 작품으로 남았다. 건축은 소담한 정원이 떠오른다. 아기자기한 멋으로 일본의 차와 함께 대표적인 문화 예술이 되었다. 호쿠사이, 히로시게를 대표 작가로 하는 우키요에 판화는 서양의 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nbsp;후지와라 세이가, 하야시 라잔, 무로 규소, 가이바라 엣켄에 의해 주자학이 전래되고 일본 내 정착되었다. 나카에 도주 등에 의해 양명학이 수용되기도 했다. 이렇게 친중국적인 학자들이 있기도 했지만 근대 시기로 갈수록 친일본 경향으로 애국(심)을 강조하는 학자들의 수가 늘어난다. 마부치, 모토오리 노리나가, 히라타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일본과 일본성의 우월을 주장했다. 이는 일본이 사실 메이지 이후의 근현대 시기 봉건 사회를 탈피하여 산업 사회로 이행하면서 걸었던 제국주의의 기치의 모습과도 연결된다.<br>아무래도 한반도와 더 지리적으로 가깝기도 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도 교류가 많았던 지역이어서인지 그 역사도 조금 더 익숙해서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nbsp;그리고 역시 정치사보다는 사회, 철학, 종교, 문학을 다룬 쪽이 더 재밌었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247/40/cover150/893748356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474074</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문명이야기 1-2</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096064</link><pubDate>Mon, 16 Feb 2026 17: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09606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83564&TPaperId=1709606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247/40/coveroff/893748356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247/40/cover150/893748356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474074</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