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거리의화가의 서재 (거리의화가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ue, 30 Jun 2026 19:20:12 +0900</lastBuildDate><image><title>거리의화가</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155161733379275.jpg</url><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거리의화가</description></image><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2026년 상반기 내가 고른 책</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64342</link><pubDate>Tue, 30 Jun 2026 13: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6434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137901&TPaperId=1736434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10/coveroff/k402137901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137901&TPaperId=1736434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10/coveroff/k232137901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137901&TPaperId=1736434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10/coveroff/k282137901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72137900&TPaperId=1736434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1/coveroff/k77213790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15114&TPaperId=1736434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373/14/coveroff/8972915114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64342'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어느덧 2026년도 절반이 지나가는 시점이다. 매달 읽은 책을 정리하던 시기도 있었으나 이제는 그마저도 아니지만 간만에 좀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쓴다. 읽은 책 수를 세어보지는 않았고 그래도 매달 5권 정도는 읽지 않았을까. 어쨌든 이제는 읽는데 연연해하지 말고 양보다 질이기에 어떤 책을 읽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튼 상반기에 읽은 책들 중 6개의 책을 골랐다. 고른 책이 한 권 빼고는 역시나 한 분야로 몰렸다. 하반기에는 한 두권이라도 다른 분야의 책을 선정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br>       <br><br>재미로만 따지면 '중드보다 중국사'가 TOP이다. 중국의 역사를 중드와 결합시킨 아이디어가 좋았다. 시대별 중드를 소개하고 배경과 인물, 사건을 이야기함으로써 자연스레 관련 역사를 다루는 형식이다. 책에 소개된 중드를 보지 않았다 해도, 설사 중드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라도 이 책을 읽으면 보고 싶은 중드 한 편쯤은 건질 수 있을 것 같다. 행여 그게 아니더라도 가볍게 역사를 훓어볼 수 있으니 역사 공부에 골머리 쌓는 일반 독자 입장으로서는 꽤나 좋은 선택이라 여겨진다.<br>왕겅우 회고록 시리즈는 상반기 막바지에 읽게 되었는데 '유레카'를 외칠 정도로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1권인 &lt;집 아닌 곳에서&gt;는 식민지 시기의 말라야 연방이 말라야 연맹기를 지날 때까지를 다루고 있다. 왕겅우의 부모가 중국을 떠나 말라야에 정착하게 된 사연을 확인할 수 있었다. 2권은 아내인 마거릿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세계를 경험하고 삶을 이해해나가는 이야기다. 저자는 여러 번의 용기 있는 결단으로 자신의 미래를 유동적으로 바꾸어가며 살았던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중국인으로 태어났으나 디아스포라로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아간 학자의 꿈과 가족, 주변 사람의 이야기다.&nbsp;<br>명상록은 기존에 인용 발췌로 몇 차례 경험한 적이 있었으나 완전하게 읽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좋은 메시지가 많아서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한 번에 다 읽지 않아도 되고 몇 개의 글만 읽어도 되니 부담이 없는 것이 장점이다. 독자마다 취향껏 읽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 될 것 같다. 자기계발서로 읽을 수도 있고 철학서로 읽을 수도 있고 딱히 장르를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내 경우에는 책을 읽으며 심신이 안정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머리가 혼란할 때 한 번씩 읽게 될 것 같다.<br>천국의 가을은 태평천국운동의 과정을 풍부하게 읽을 수 있게 된 책이라 기억에 남는다. 전쟁의 과정과 결과가 대외적인 영향으로만 그려진다거나 대내적인 문제로만 그려지지 않고 전반적으로 균형 있는 관점이었던 것이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기존에 미처 집중하지 못했던 홍인간과 이수성이란 인물에 대해 좀 더 고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서술 방식의 일반 역사 기술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빈 곳을 엮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낸 논픽션의 장점을 충분히 활용한 책이라 독자가 읽기에 덜 딱딱하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될 듯하다.<br>러시아의 역사는 상반기에 집중했던 러시아의 역사 책 중 하나였다. 개인적으로 현재 나온 러시아 통사 번역서 중 가장 나은 선택인 듯이라 보여지는데 쇄를 거듭해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찾는 독자가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니까. 특히 러시아의 근현대 문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가 읽는다면 더욱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 싶다. 나도 러시아의 현재를 이해하고 러시아 문학과 좀 더 친숙해지고 싶어서 이 책을 골랐다. 특히 나는 러시아 차르 체제와 농노제에 대한 이해를 통해 러시아 혁명의 배경을 분석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정작 러시아 문학은 읽어보지도 못했는데 이는 하반기로 결국 밀리게 되었다.&nbsp;<br>역사 속 시리즈는 좋은 기획이 돋보이는 책이다. 역사학계에서 일하는 여성학자들이 사료 속 여성의 목소리의 부재에 대해 오랫동안 해왔던 고민을 공감하고 의기 투합하여 기획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4권까지 나온 상태인데 한 권만 빼놓고는 다 읽었다. 타인에 의해 삶이 기록된 조씨 부인과 기생의 이야기, 다양한 욕망에 대한 이야기, 먹고 살기 위해 생존 전쟁을 치르는 여성들인 행랑어멈과 식모, 현재의 커리어 우먼에 대한 이야기까지 역사 속 여성의 사례가 담겨 있다. 얇아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시리즈에서 다뤄주길 기대한다.&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50/68/cover150/k02203430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1506848</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여자, 기어이 욕망하다 : 고려 안정궁주*인조 후궁 조 귀인*열녀들 - [여자, 기어이 욕망하다 : 고려 안정궁주*인조 후궁 조 귀인*열녀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55224</link><pubDate>Thu, 25 Jun 2026 20: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5522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137901&TPaperId=1735522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10/coveroff/k28213790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137901&TPaperId=1735522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여자, 기어이 욕망하다 : 고려 안정궁주*인조 후궁 조 귀인*열녀들</a><br/>황향주.이민정.장지연 지음 / 푸른역사 / 2026년 03월<br/></td></tr></table><br/>이번 기획은 역사 속 여성 중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신체적 욕망인 간통, 타인을 저주하는 욕망이 있었던 가 하면 수절에 대한 욕망이 있다.<br><br>첫 번째 이야기는 12세기 고려 안정궁주가 주인공이다. 그는 의종의 둘째딸로 당시는 무신정변이 일어나 사회가 극도로 혼란스러운 때였다. 이로 인해 의종은 폐위되고 안정궁주의 남동생이 명종으로 즉위하였다. 그녀의 남편인 왕박은 왕씨 성을 가졌으므로 태어날 때부터 국왕의 예비 사위 자격이 있었던 사람이다. 왕박은 형과 동생이 있었는데 삼형제 모두 혼인 관계를 맺으며 고려 왕실의 일원이 되었다. 형은 인종의 셋째 딸 창락궁주와, 동생은 의종의 첫째 딸이자 안정궁주의 언니인 경덕궁주와 혼인을 것. 이처럼 과거 왕실의 근친혼은 흔했다. 가까운 중국도 그렇고 유럽의 합스부르크 왕실도 근친혼이 당연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중국의 경우 자식은 부계로 계승된다는 원칙 하에 다른 가문으로 시집간 딸의 자식들은 다른 부계 가문 소속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고려는 중국과 달리 딸은 출가외인이 아니었기에 딸뿐만 아니라 외손과 사위 또한 가문의 구성원으로 간주되었던 점이 서로 다르다. 그리하여 동생은 제후가 된 반면 왕박은 그 하위인 제왕에 머물렀다. 왕박은 경덕궁주의 상대가 되기에는 나이차가 커서 후보군에서 제외되었다. 이는 의종이 인종의 맏아들로 동생들과 나이 차가 커 자식들도 사촌 그룹에서 연장자에 속했기 때문이다(당시 의종의 남자 조카들은 10대 초반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 언니의 남편감으로 거론되었다 탈락한 인물을 배우자로 맞게 된 안정궁주는 입장이 곤란하게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난한 결혼 생활을 하는듯 보였던 안정궁주는 어느 날 악공 가영의 연주를 듣고 반한다. 악공은 서인과 천인의 경계에 있던 신분층이었다. 고려 왕녀에게 부인으로서의 도리는 당연한 의무가 아니었다. 왕실의 체면을 손상하지 않는 선에서 안정궁주는 무엇이든 시도하고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왕실에서 악공과의 간통을 용납할 수는 없었다. 만약 안정궁주가 사대부 집의 엇비슷한 나이대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들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br><br>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17세기 인조의 후궁이었던 조 귀인이다. 그녀는 1630년 궁녀로 입궁하여 인조의 총애 속에 1649년이 되면 종1품 귀인에 봉해지며 궁궐의 실세가 되었다. 조 귀인은 인조의 정비인 장렬왕후에 이어 인조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신의 아들을 왕에 올리고 며느리를 저주하고자 했다. 장렬왕후를 질투한 마음은 짐작할 수 있으나 시기가 인조 사후였다는 것이 이상하다. 또한 며느리를 저주한 점도 이상하다. 장렬왕후는 일찍 사망한 인열왕후 대신 계비로 간택되 들어와 중전이 되었으나 인조의 마음은 이미 조 귀인에게 가 있었다. 인조는 반정으로 즉위하여 정통성이 부족했기에 항상 주변을 경계하였고 병자호란이라는 큰 전쟁을 치러야 했으며 이괄의 난을 비롯하여 자신을 겨냥한 궁중 저주 사건이 4차례나 발생하는 건 물론 그때마다 병고를 치렀다. 조선이 아무리 유학 이념을 기반으로 한 국가였다 하더라도 과거에는 병이 저주 때문이라는 믿음이 일반적이었다. 사람이 자꾸 아프면 기력이 떨어지는 만큼 평상시의 컨디션으로 살아가기 어렵다. 인조도 그리하여 무속신앙의 힘에 기댔던 것으로 보인다. 조 귀인을 건드릴 사람은 궁중 내 없었으나 그녀는 수동적으로 머물러 있지 않았다. 인조의 또 다른 후궁인 이씨가 조 귀인을 음해하려 했다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 인조는 결과적으로 조 귀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처럼 공식 기록에서 확인되는 ‘악녀 조귀인‘은 유학 이념에 충실한 남성과 무속신앙에 기대는 여성이라는 조선의 젠더화된 구조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비합리적이고 충동적이며 욕망에 사로잡힌 비도덕적인 여성이 선택하는 저주라는 수단은 조선의 상층 남성들이 좀처럼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조의 사례에서 확인되듯, 사실 그들도 현실에서는 무속신앙의 힘을 인정했다. 다만 그것을 공식적으로 표하지 않을 뿐이었다(P124). <br><br>세 번째 이야기는 주인공이 여럿으로 조선후기의 열녀 현상을 다룬다. <br>행실이 나쁜 부녀 및 재가한 여성의 소생은 동서반의 관직에 서용하지 않는다-경국대전 이전 경관직. 이는 조선후기 사대부가 여성들의 재혼을 막는 가장 강력한 금령이 됐다. <br>조선초기만 해도 여성들의 재혼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세종 때 시작된 유학 기반의 사회 체계는 성종 때 강화되고 완성되었다.  조선후기 사가의 여인은 과부가 되어도 수절을 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미덕인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함양 박씨는 혼인하자마자 남편이 사망하고 과부가 되었다. 그녀는 남편과 같은 묫자리에 묻히길 원한다는 유서를 쓰고 남편의 대상 날 제수를 장만하여 제를 지낸다. 그리고 상에 온 삼촌에게 자신이 죽을 것을 알린 뒤 준비된 시각에 독을 먹고 자결했다.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었다. 이것이 세종 때 만들어진 삼강행실도의 영향인가 싶으면서도 심정적으로 온전히 이해는 가지 않았다. 18세기 초 가난한 평민이었던 향랑은 혼인 후 남편의 손찌검이 계속되자 도망쳤지만 어디서도 자신을 받아주지 않자 물에 빠져 자살했다. 당시 하층 여성들의 자살은 성폭력이 만연하던 환경 하에서 이루어졌다 한다. 일부 열녀라는 호칭을 부여받는 경우에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 사대부 남성의 시선은 그녀들을 주체성이 있는 사람으로 봤을 리 만무하다. 하층 여성들의 열녀 현상은 성폭력에 대한 저항의 의지, 자신들의 주체성을 천명하고자 한 의지의 표출로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여성의 정절을 추앙하는 문화 속에서 자신의 행위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게 되자, 이들은 더욱 과감히 이를 결행한다. 이는 한편으로는 조선이라는 국가권력이 부여한 규범에 에속되는 과정이었으나, 동시에 그러한 종속을 통해 주체로 성장하는 과정이기도 했다(P169).<br><br>특히 마지막에 본 과부살이와 열녀 현상을 욕망으로 본 시선이 새로웠다. 나도 사대부 남성의 열녀 담론의 답습론자가 아닌가 싶어 부끄러웠다. 조 귀인의 이야기도 그렇다. 무속 신앙을 믿는 것을 터부시한 사대부 남성과 임금이었지만 그들도 그 문화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 않았던 것 같다. 고려 시대 황실에서의 연분 맺기 문제도 그렇다. 왕씨만을 고집한 것은 역설적으로 딸이든 아들이든 그 일가는 모두 황실의 일원이었기에 더 압박하는 수단이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흥미롭게 잘 읽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10/cover150/k2821379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61017</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역사비평 155호 - [역사비평 155호 - 2026.여름]</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50290</link><pubDate>Tue, 23 Jun 2026 08: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5029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22139616&TPaperId=1735029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23/69/coveroff/k72213961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22139616&TPaperId=1735029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역사비평 155호 - 2026.여름</a><br/>역사문제연구소 지음 / 역사비평사 / 2026년 06월<br/></td></tr></table><br/>이번 특집호의 기사는 전 세계적으로 이는 우경화 흐름에 따른 나라별 역사 인식의 우경화를 다루었다. 독일과 프랑스, 미국, 중국을 다루었는데 과거 극우 나치에 몸살을 앓았던 독일이 뉴라이트 계인 아르민 몰러 이후 역사수정주의로 나아가는 현상을 짚었다. <br>몰러에게 과거청산은 독일 민주주의의 윤리적 토대가 아니라 독일인의 불안을 재생산하고 정치적 자기주장을 제약하는 권력 기제였다(P28). 나치 범죄를 정면으로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기억이 현재 독일인의 자기이해를 규율하는 방식을 공격하는 것. 독일사의 긍정적 연속성을 회복하려 하면서도, 그를 위해 과거청산의 도덕적 권위를 약화시키는 것. 희생자의 기억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그 기억이 독일인의 정치적 자기주장을 가로막는다고 주장하는 것(P40~41). <br>2차 세계대전 친나치 정권이 세워진 프랑스도 마찬가지로 홀로코스트 부정 논리를 만드는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 홀로코스트 부정 담론의 출발점에는 니체가 제기하는 모든 가치의 전도가 있었다. 전후 극우 지식인들은 불공정한 관점이 전쟁범죄에 대한 공인된 진실을 만들었다고 간주하고, 이 가치 체계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명분을 통해 홀로코스트 부정 담론을 구성하고, 네오-파시즘의 논리를 확대해갈 수 있었다(P70~71).<br>미국의 자유지상주의에 중심에 서 있는 미제스연구소는 링컨 부정론으로 역사서사를 정치화시켜 대안 흐름을 만들어나간다. 냉전 이후 자본주의의 승리 이후에도 여전히 권력을 행사하는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해체하며 주 중심의 정치 경제를 주장하며 국가 없는 자유시장 경제를 도출해내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중국은 과거를 이용해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경우다. 이는 고대 ‘천하‘주의, 중국적 세계질서의 역할을 선택적으로 취하여 평화적 세계라는 허구적 신화를 그리는 방향이다. <br><br>특집 코너에 이어 기획 코너는 혐오의 역사와 극우정치로 절묘하게 흐름을 이어간다. 우선 증오와 혐오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고 한국에서 북한을 증오와 혐오 대상으로 선동하는 방식을, 중국의 시진핑이 과거의 유교 천하체계를 이용해 국가주의적 방식으로 이용하는 방식을 각각 설명한다. 두 글 모두 흥미롭게 읽었다. <br>극우는 시대에 따라 정동의 지배적 형식을 변형시켜왔지만, 북한을 자기 이해 관철의 수단으로 삼아왔다는 점에서는 일관되었다(P151).<br>오늘날 한국 사회가 직면한 과제는 중국을 무조건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초기의 과도한 기대도, 최근의 과도한 혐오도 모두 중국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P190). <br><br>역비논단 코너 중에서는 한국 역사학의 현재성에 대해 짚는 글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는 비단 한국 역사에만 그치는 문제는 아닌 것 같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역사가 현재적 시의에 물러나 뒷짐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에 꼭 읽어볼 필요가 있는 글이라 생각된다. <br>현실과 괴리되거나 대중들과 호흡하지 못하는 역사학은 앞으로 설 자리를 잃어버릴 것이라는 시각에서는 역사학이 더욱더 현실에 집중하도록 추동한다. 그럼에도 역사학은 현실의 문제를 연구의 소재로 끌어들일 뿐 현실 비평의 기능을 적극적으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P293).<br>근대와 서구중심적 발전사관이 퇴조하는 대신 그 자리는 단순한 실증으로 채워지거나 안정 혹은 장기지속을 강조하는 논리로 대체되기 쉽다. … 이러한 관점은 한국의 뉴라이트 역사관과 일부 접점을 이룬다. 서구 학계가 조선 사회의 특성을 드러내는 데 관심을 가지기는 했지만 발전에 대한 부정과 노예제사회라는 성격 규정은 근대 이전의 조선을 암울하고 부정적으로 묘사하려는 이들에 의해 오용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적 관점의 이러한 오용은 극우 매체나 흥미를 좇는 상업 매체에 의해 젊은 층을 포함한 대중들의 편견을 확산시키고 있다. 조선시대에 대한 연구자들의 관심은 줄어드는 대신 대중들의 편견은 늘어날 우려마저 있다(P294, 295).<br>그리고 여운형의 친일행각을 조사한 글도 흥미로웠다. 년초에 여운형을 두고 또 친일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는 것을 이 글을 통해서 알았는데 그에 대하여 연구자는 조목조목 반박 논리를 편다. <br>찰스 오리오던(이 하지에게 보낸 최종 결과 보고서:1947.1.11)의 설명은 여운형에 대한 미군정의 편견과 예단, 마타도어에 근거한 공작적 접근이 이를 뒷받침할 일본 정부의 문서 확보, 고관들의 증언 확보에 실패하면서 정반대의 진실과 대면하게 되었다. 여운형은 친일협력자가 아니라 한국의 절대독립론자이며, 총독을 비롯한 일본 고관들이 모두 인격적으로 높이 평가하는 한국의 애국자이자 민족주의자라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P334). <br><br>특집이나 기획 원고도 좋지만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코너는 서평란이다. 신간을 거의 다루지만 계간지인 만큼 책을 읽고 서평을 쓰려면 시간이 걸리므로 서평을 읽을 때쯤 간혹 이미 읽어본 경우가 있다. 그럼 이 책을 연구자는 어떻게 읽었을지 확인해볼 수 있어 좋다. 안 읽어본 책이라면 일단 서평을 읽고 관심이 가는 책인 경우 보관함에 담아두거나 바로 읽고 싶은 책은 주문을 해서 읽어본다. 이번 호의 서평들 중 ‘자카르타가 온다‘는 얼마 전 읽었던 책이라 반가웠고 ‘중국 시민의 한국전쟁‘은 보관함에 담아뒀던 책이었으나 요즘 너무 묵직한 책들을 많이 읽은 것 같아 빼두었었는데 서평을 읽으니 궁금해져 다시 들어간 책이다. <br>‘심문실의 한국전쟁‘을 보니 앞선 ‘중국 시민의 한국전쟁‘과 비교하면서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궁금하다. 미국의 한국 전쟁에 대한 포로 송환의 문제에 대해서는 기존에 상당 부분 다뤄진 적이 있으나 재미사학자의 입장에서 그 기원을 추적하여 더 깊이 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자료적으로 한국 역사학계의 입장이 반영이 덜 되었다는 것이 아쉽지만 구체적으로 읽어보고 정리해보려 한다. 이외에도 현대중국에 대한 역사 인식을 담은 책과 이주사에 대한 책이 담겨 있어서 읽을 거리가 또 넘쳐나게 생겼으니 과연 행복한 고민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23/69/cover150/k72213961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236918</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최소한의 세계사 - [최소한의 세계사 - 6천 년 동서양 역사의 흐름을 꿰뚫는]</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47152</link><pubDate>Sun, 21 Jun 2026 17: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4715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32138500&TPaperId=173471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64/78/coveroff/k432138500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32138500&TPaperId=1734715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최소한의 세계사 - 6천 년 동서양 역사의 흐름을 꿰뚫는</a><br/>이다지 지음 / 프런트페이지 / 2026년 05월<br/></td></tr></table><br/>대중 교양서의 목적에 충실한 세계사 책이다. 400여페이지 남짓 되는 분량으로 읽기 쉬우면서도 핵심만 추려내 부담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작가가 교편을 잡고 강의하는 선생님이라 책의 내용을 강의를 듣는 듯 역사를 접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핵심만 요약해서 듣는 유튜브 강의가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매체라면 책은 독자가 나름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각 장마다 핵심을 요약하고 말미에는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연표와 대표 유물 사진을 실어 놓아 역사의 이해를 더 높였다.&nbsp;<br>책을 요약하기보다는 인상적인 부분 위주로 언급해보고자 한다.&nbsp;먼저 프랑크 왕국과 전성기 왕인 카롤루스 대제가 있다. 프랑크 왕국은 앞선 게르만족과 달리 기독교를 수용한다. 카롤루스 대제는 학문과 문화를 부흥시키고 문자 체계를 정비하였는데 정작 자신은 글 읽기에 서툴렀다 한다. 이때 교황 레오3세가 반대파의 습격을 받자 카롤루스 대제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카롤루스가 진압을 해준다. 당시 황제 명칭은 동로마 제국에만 쓸 수 있었는데 교황이 카롤루스를 황제로 인정하는 조치를 내린다. 1950년 신설되어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샤를마뉴상은 카롤루스의 업적을 기리며 유럽 통합에 기여한 인물에게 수여한다고 하니 그의 업적이 대단함을 알 수 있다.11세기 이슬람의 확장으로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이 충돌하며 벌어진 십자군 전쟁은 200여 년에 걸쳐 지속되었다. 그 영향으로 경제 분야에서 큰 변화가 일어난다. 상인이 성장하고 금융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영주가 사는 유럽의 성곽 도시 부르크 근처로 상인과 수공업자가 몰리며 자치 조직이 생겨난다. 후대의 ‘부르주아’라는 명칭이 부르크 안에 살던 사람들을 뜻하는 것으로 상인들, 수공업자를 가리키는 말이다.일찍 저문 서로마와 달리 동로마인 비잔티움 제국은 오래 살아 남았다. 이중 유스티아누스가 전성기를 이끌었다. 사실 유스티아누스라는 이름은 아는데 그 곁에 있었던 ‘테오도라’라는 여인이 있었던 것은 미처 몰랐다. 테오도라는 천민으로 둘은 결혼할 수 없었음에도 유스티아누스는 밀어붙였다고 한다. 그녀는 그저 황제의 아내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고 정치 감각이 뛰어났다. 전차 경기에서 흥분한 관중에 의한 사건이 반정부 시위로 번지자(니카의 반란) 유스티아누스가 수도를 버리고 도망가려했지만 그녀가 회유해 마음을 돌렸다고.르네상스 이후 신항로가 개척되고 상업으로 인해 돈을 번 부르주아는 실세로 부상한다. 앞선 중세 유럽의 지방 분권 체제에서 서유럽은 절대 왕정으로 변화하는데 부르주아가 왕권에 힘을 보탰기 때문이다. 절대 왕정은 지방마다 서로 다른 세금을 내야 하는 것보다 중앙 집권적 체제가 더 수월했던 부르주아와 부르주아가 준 돈으로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는 관료와 군대를 육성할 수 있었던 왕권이 맞물린 결과였다.&nbsp;미국으로 건너간 영국의 청교도인들이 먹은 음식이 랍스터였다(랍스터가 너무 흔했다고)는 이야기와 프랑스 혁명이 정치적 민주화 뿐 아니라 식탁의 민주화도 가져왔다는 이야기, 나폴레옹이 전쟁 때문에 병조림을 개발했다는 이야기는 흥미로웠다.<br>이슬람의 창시자인 무함마드는 메카의 유력 부족 출신이었으나 일찍 부모를 여의어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결혼 상대는 당시 잘 나가던 상단을 이끄는 주인으로 40살의 과부인 ‘하디자’였는데 무함마드는 그녀와의 결혼으로 경제적 안정을 선택한 것이다.&nbsp;이슬람의 지하드에 대한 설명도 인상적이었다. 지하드는 큰 지하드와 작은 지하드로 나뉘는데 큰 지하드는 바르게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노력이고 작은 지하드는 (이슬람 공동체, 신앙을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로) 타인을 공격해서 땅을 뺏는 전쟁을 말한다. 지하드가 전쟁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물론 작은 지하드는 그들의 명분일 뿐이고 사실상은 상대에게는 날벼락과도 다를 바 없는 것이기에 생각해봐야하는 것이지만.캘리그래피가 쿠란을 아름답게 쓰고자 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 오스만 제국에서 커피와 카페 문화가 시작되었다는 이야기, 오스만 제국의 블루 모스크라 불리는 술탄 아흐메트 사원의 첨탑이 6개가 된 이유가 건축가의 꾀에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nbsp;한편 오늘날 중동 갈등의 씨앗을 만든 영국의 무책임한 외교는 다시 봐도 답답한 측면이 있다.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기에 더욱 그렇다.&nbsp;&nbsp;인도의 카스트는 포르투갈인들이 들어와 붙인 이름이라 한다. 원래 이름은 ‘바르나’라고. 알렉산드로스 원정의 영향으로 그리스 문화가 유입되어 동서양이 융햡된 불상이 탄생했다. 인도의 카슈미르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 지대로 주민 대다수가 이슬람교임에도 인도에 통합되면서 분쟁 지역으로 남아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인도가 현재의 경제 시스템을 갖춘 것은 생각보다 오래 되지 않았다. 1991년 외환위기 후 규제를 완화하고 외국 자본을 유치하면서 시장을 개방한 것이 시작이었다.&nbsp;<br>이 정도로 언급하고자 한다. 책을 직접 읽어보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서술상 서양사는 권력투쟁 축의 이동을 통해 본 역사라 기존의 역사 관점을 답습하는 측면이 있고 동양사는 서양사와 달리 지역별로 구분(서아시아,인도,중국,일본)하여 일관성이 없는 아쉬움이 있었다. 물론 서양사와 동양사를 합쳐 서술하기에는 복잡도가 올라가는 측면이 있었을거라 보인다. 어쨌든 대중들에게 설명하기에는 이 정도가 적당했을거란 선택으로 보여진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64/78/cover150/k432138500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647802</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예수 하버드에 오다 - [예수 하버드에 오다 - 1세기 랍비의 지혜는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41227</link><pubDate>Thu, 18 Jun 2026 07: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4122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1026455&TPaperId=1734122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93/77/coveroff/893102645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1026455&TPaperId=1734122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예수 하버드에 오다 - 1세기 랍비의 지혜는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a><br/>하비 콕스 지음, 오강남 옮김 / 문예출판사 / 2026년 01월<br/></td></tr></table><br/>우리에게는 사실이 필요하다. 그러나 속임수에서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그런 사실에서 의미를 찾아낼 수 있도록 해주는 이야기들이다. - P67<br><br>년초 시사인의 책 추천사를 읽다가 담아둔 책이다. ‘이 책에서 예수는 신도들에게 복을 내리거나 쿠데타를 옹호하는 신이 아니라 오늘날의 사회와 삶을 향해 윤리적 결단을 요구하는 질문자로 부활한다. 최근 한국 기독교계를 바라보며 이 위대한 종교에 염증을 느낀 신앙인은 물론 비기독교인 독자에게도 일독을 꼭 권하고 싶다.‘ 이런 추천사를 보면서 담아놓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구매한지는 되었는데 지나갈 때마다 책 표지가 노려보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또 덥썩 손이 가지는 않았다. 유물론자이고 무신론자인 내가 이 책의 내용을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오롯이 이해 안가는 부분도 있었으나 결론적으로 중도에 그만두지 않고 읽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려 한다.<br><br>이 책에서 강조하는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신으로 생각되는 예수는 랍비였고 랍비는 이야기꾼이라는 것과 혼란한 현실에서 (올바른) 사실을 찾고 거기에서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 이야기꾼이란 그저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서 하는 만담가 같은 것은 아니고 현자나 철학자처럼 언제든 내 삶에 적용하여 실천할 수 있는 교훈을 전달해줘 깨달음을 주는 이에 가깝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내 삶과 분리되지 않은 메시지라는 것에 있기에 의미가 있는 듯하다. <br><br>갈수록 다양화되고 파편화되는 세상에서 중심을 잡고 살아나가기란 쉽지 않은 듯 싶다. 내가 옳다고 여겼던 진실이 다른 쪽에서는 옳지 않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이처럼 다원화된 세상에서 상대주의란 그래서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흐름이지만 한편으론 쉽게 선택한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럼 어쩌란 말이냐?‘하면서 현실을 놓아버린다면 냉소주의로 흘러가게 되는 것 같다. ‘이게 되겠어?‘처럼 낙관적인 반응보다는 회의적 반응이 되니 더는 긍정적인 방향을 찾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게 된다는 이야기다. 작가도 그런 ‘윤리적 사유‘ 논의의 가능성조차 생각하지 않는 지금의 현실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본래 절대주의적 믿음이란 어렵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지나친 믿음이 가져오는 파국을 여러 번 보았기 때문이다. 과연 절대주의적 선이란 것이 있을까. 그래서 공감이 가면서도 동시에 든 질문은 신자유주의 사회 이후 각자도생이 되버린 지금의 현실에서 공정과 상식을 비롯한 윤리가 통할 수 있는가와 통용될 수 있는 올바름에 대한 기준이 있는가였다. <br><br>그런 고민에서 시작한 것이 어쩌면 작가가 대학에서 수업을 진행한 이유이기도 할 것 같다. 학생들이 던진 질문들이 날카로운 것들이 많았다. <br><br>   지적이고 건강하고 매우 메력적인 19세 이상 30세 이하의 영국계 미국인 여인 구함. <br>   키는 5피트 4인치 내지 7인치, 체구는 작거나 중간 정도로 눈은 갈색이나 푸른색이어야 함.<br>나에게 이것을 보여준 여학생은 체외 수정을 위해 쓸 난자를 구하는 광고라고 했다. - P97<br>난자를 구하는 광고가 통용되는 세상에서 선이란 있는가.<br><br>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부 축적이나 부패 문제에 대한 언급이나 종교 갈등(나아가 믿음을 빙자한 전쟁)에 대한 작가의 견해는 두루뭉술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쉬웠다. 그리고 과학적 의학이 모든 형태의 질병을 물리치고 궁극적으로 승리하리라는 현대인의 확신이 너무 순진하다는 작가의 말도 좀 공감하기 어려웠다(그럼 미신을 믿으란 말인가). <br><br>예상할 수 있는 미래에 그리스도인들은 소수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 소수가 크든 작든 상관없이 다른 종교들과 이데올로기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세상에서 하나의 소수일 것이 틀림없다. 이 말은 미국의 공공 정책은 다양한 종교 집단과 무종교 동료 시민들이 공유한 가치를 반영해서 수립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등잔과 소금의 귀중함이 다시 한번 새롭게 인식되고, 그 형태가 어떠하든 그리스도교 제국주의에 대한 엄중한 질책으로 남게 되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 P206<br>예루살렘에 관한 과목을 택한 학생들에게서 내가 얻은 귀중한 통찰 중 하나는 그 악명 높은 ‘예루살렘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결국 예루살렘은 공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도시를 거룩하다고 믿는 모든 종교 전통 출신으로 종교에 헌신적인 학생들이 그 도시를 공유하는 길을 생각해낼 수 있다면, 그 참혹한 과거를 가진 도시의 장래도 어느 정도 밝아 보인다 하겠다. 필요한 것은 정치적, 윤리적 의지와 이와 함께 성스러운 장소가 공유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 P320<br><br>예를 들면 작가는 이렇게 굉장히 밝은 희망을 그리고 있으나 과연 이것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이는 윤리적인 문제로만 치부되기는 어려워 보여서다. 버튼 하나면 무기를 날려버릴 수 있는 세상이기에 돈과 이익이 얽혀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과거에도 수없는 종교 갈등과 전쟁이 있었기도 하고.<br><br>그래도 ‘설화가 없으면 우리에게 끊임없이 밀려오는 단편적 정보를 처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남의 이야기를 듣고 그러면서도 자기만의 이야기가 많아져야 한다는 이야기엔 공감이 갔다. <br><br>굳이 성경의 내용이나 교리적 메시지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읽을 수 있음을 나누고 싶었다. 간단히 100자평을 써야 하나 했는데 그러기엔 또 내용이 더 긴 것 같아 리뷰를 썼다. <br><br>역사의 궁극 완성을 이야기할 때 나 개인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어서 안 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인간 역사에 초점을 맞추기만 해서도 안 된다.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나기 이전 억겁의 세월을 지탱해온 실재를 위한 희망이어야 하고, 그 희망은 목성의 가장 먼 달이나 지극히 작은 우리 이웃을 위한 희망이기도 하다. - P437<br>부활, 승천, 재림 같은 그리스도교 언어는 이제 위기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 … 이제 우리에게는 새로운 언어가 절실히 필요하지만, 마구 급조할 수는 없다. 때가 되면 언제나 그러했듯이, 상상과 세속이 뒤섞이고 신화와 역사가 교차하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어디에서 저절로 솟아날 것이다. - P444]]></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93/77/cover150/893102645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1937770</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미래는 생성되지 않는다 - [미래는 생성되지 않는다 - 포스트 AI 시대, 문화물리학자의 창의성 특강]</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39794</link><pubDate>Wed, 17 Jun 2026 12: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3979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2623145&TPaperId=1733979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095/0/coveroff/896262314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2623145&TPaperId=1733979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미래는 생성되지 않는다 - 포스트 AI 시대, 문화물리학자의 창의성 특강</a><br/>박주용 지음 / 동아시아 / 2024년 06월<br/></td></tr></table><br/>우리 모두는 시공간 연속체라는 하나의 무대에서 살아가고 있다.<br>어릴 적 과학 탐구 과목 중 물리와 화학을 좋아했다. 그중 더 좋은 것을 꼽으라면 단연 물리였다. 사람들은 두 과목을 좋아한다고 하면 대부분 "공식 많고 외워야 하는 규칙이 많은 과목 아니냐, 그 어려운 게 뭐가 좋다고." 그런 반응들이었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그저 순수한 호감일 뿐이라고 말하곤 했다. 물론 좋아한다고 점수가 잘 나오는 과목도 아니었기에. 그래도 처음의 호감은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듯하다.&nbsp;<br>작가는 자칭 문화물리학자라고 말한다. 물리학과 문화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싶지만 책을 접하고 나의 편협한 생각이 깨지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작가는 물리학과 문화 사이에 필연적인 관계가 있다고 보았는데 이는 물리가 문화의 탐구 대상 안에 포함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작가가 그 연결고리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추적한 내용이다.&nbsp;<br>작가는 기본적으로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이라 느꼈다. 나는 디스토피아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당신은 어떤가. 세계는 가까워졌지만 사람들 간의 거리는 멀어졌고 환경은 점차 안 좋아지고 있지 않나 해서다. 작가는 다윈의 진화론을 들며 인류의 미래를 너무 염려스럽게 생각하지 말자고 이야기한다. '인간은 적자생존의 원리에 따른 생존경쟁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약자에 대한 동정심과 공동체의 윤리 같은 인간 특유의 현상을 통해 약자를 배려하고 생존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가고 있다'기 때문이다. 과도한 걱정을 내려놓고 우리가 그려나갈 미래를 그리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야기한다. 희망적인 이야기이긴 한데 과연 인간의 동정심과 공동체의 윤리가 현재도 남아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하물며 미래는? 내가 너무 비관적인건지.&nbsp;<br>한편 한국의 과학 기술이 세계에서 통하려면 우리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작가의 성토는 공감이 많이 되었다. 대표적으로 최근에 개봉한 승리호 이야기를 든다. 이전보다는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결과물은 좋지 않았다. '세계에서 통하는 과학 서사를 만드는 능력은 특수효과 기술력만이 아니라 인류의 기원과 미래를 탐구하는 깊은 주제 의식, 고난과 선입견을 극복하는 인물들, 편견과 편협한 도덕률을 벗어나려는 과감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서사라는 캔버스에 담아내는 자유로운 사고력이다'.&nbsp;이를 확장해보면 결국 창조력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다. 창조력이란 있는 것을 연결지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혀 생뚱맞은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창조력은 새로운 것이기도 하지만 영향력이 있어야 한다. 둘은 어쩌면 양 극단에 있는 개념 같은데 새롭다고 해도 사람들에게 너무 낯선 것은 아닌, 인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어렵기는 하지만 오히려 창조력이 신선함과 새로움만으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충분히 창조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nbsp;<br>그리고 최근 들어 우리 생활에 어느덧 익숙해진 AI에 대한 질문들이 가장 많았다. 당장 몇 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진화하는 AI가 인간을 앞서게 될 거라고 우려섞인 표현들이 많지 않나. 하긴 내 직업 분야도 처음에는 AI를 보조적인 도구로 쓰다가 이제는 필수로 사용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느낀다. 이제 더는 단순히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을 넘어서 더 나은 응용 결과물을 얻기 위해 고민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AI에 질문을 던져보면 늘 같은 대답을 하지 않는다. 오류가 있거나 엉뚱한 답변을 하는 경우도 잦기 때문에 AI가 던진 답을 그대로 썼다가는 곤란해진다. 반드시 여러 검증을 통해 그 답변이 정말 옳은 것인지 팩트체크를 해야 한다. AI는 제대로 된 검증을 해주지 않는다는 말이다.&nbsp;<br>한편 이런 질문도 던진다. 만약 전세계인이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면? 과연 그런 경우 소통의 문제가 없을까? 그렇다 해도 나는 본질적으로 사람의 생각의 패턴은 다 각기 다르고 삶의 경험들이 달라 소통이 완벽해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문학, 역사, 철학이 그래서 여전히 가치를 발휘하는 것 같다. 과거의 사람들을 만나며 고민을 듣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nbsp;&nbsp;개인적으로 가장 설렜던 내용은 엔트로피에 대한 내용이었다. 과학 이론서를 읽은 것이 몇 안되지만 그중 가장 재밌게 읽었던 책이 &lt;엔트로피&gt;였기 때문이다. 외부의 자극으로 질서에서 무질서로 변화한 정도를 나타내는 이 이론은 우주는 계속해서 더 무질서한 상태로 변화한다는 ‘열역학 제2법칙’과 함께 현재도 많이 언급된다. 질서가 있던 것도 무질서하게 나아간다면 미래도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고 자유롭게 상상하는 재미가 있지 않을까. '모든 예측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하다'&nbsp;<br>사실 이번 달 독서 모임 함께 읽기 책으로 선정되어 읽게 되었다. 솔직히 내가 스스로 이 책을 읽었을 것 같지는 않았는데 제목만 보면 너무 자기계발서 같이 느껴져서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내용이 많았다. 정답이 없는 질문들이 많지만 스스로 고민해보고 타인을 통해서도 관찰해보고 하는 과정을 거치다보면 지금보다는 더 나은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095/0/cover150/896262314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0950073</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여자, 기록을 가로채다 - [여자, 기록을 가로채다 : 고려 절부 조씨 부인*조선 기생 가련]</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39410</link><pubDate>Wed, 17 Jun 2026 08: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3941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72137900&TPaperId=1733941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1/coveroff/k77213790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72137900&TPaperId=1733941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여자, 기록을 가로채다 : 고려 절부 조씨 부인*조선 기생 가련</a><br/>장지연.윤민경 지음 / 푸른역사 / 2026년 03월<br/></td></tr></table><br/>구독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에서 이 책을 접했다. 마침 '역사 속 여자' 시리즈 4권을 읽고 난 뒤라 더 반가웠다. 역사 속에서 여성의 목소리는 잘 보기 힘들기에 이 책이 소중하다고,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남성인 자신은 헤아리고 느끼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며 직접 읽어보시고 각자가 평가하길 원한다고 말씀하셨다.&nbsp;<br>책의 주인공은 타인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가 전달된 고려의 조씨 부인과 조선의 기생 가련이다. 조씨 부인이 경험에 기반한 생생한 기억이 있음에도 직접 기록을 남길 수 없었던 경우라면 기생 가련은 기록을 쟁취하기 위해 남성 지식인을 이용한 경우다.<br>1270년 개경 환도를 반대하며 삼별초 항쟁이 시작됐다. 이때 조씨의 아버지는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가기 위해 머물러 있다 삼별초 군에 붙잡혀 남쪽으로 내려가는 상황이 되었다. 다행히 꾀를 쓴 그는 배를 돌려 무사히 개경으로 귀환했다고. 그러나 이후 그는 삼별초 진압을 위해 진도에서 제주도로 내려갔다가 결국 사망하고 만다. 이 상황에서 궁금했던 것은 조씨의 어머니의 이야기였는데 기록에 남아 있지 않아 알 수가 없다. 아무튼 그녀는 13살의 나이로 자신의 집안과 비슷한 계급인 하급 무관 한보에게 출가한다. 자세한 정황은 알 수 없지만 당시 몽골에 공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그녀가 조혼을 했을 확률이 높지 않았겠냐고 작가는 말한다. 1281년 2차 일본 원정 때에는 그녀의 시아버지가 사망한다. 당시는 여름이었기에 전염병이 있었던데다 1차 원정 때 경험으로 일본은 대비를 더 잘할 수 있었다. 조씨 부인이 27살 되던 해에는 남편마저 전투에 나갔다 사망한다. 당시 전투는 정식 싸움은 아니었으나 쿠빌라이 반란을 일으킨 카다안이 고려까지 밀려 들어오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그 싸움 피해가 무척 커서 조정은 다시 강화로 피란을 가야할 정도였다 한다. 여기서 그녀의 악재는 끊이지 않는다. 딸이 1남1녀를 출산하고 나서 그녀보다 먼저 사망한 것이다. 이후 조씨 부인은 길쌈 등 스스로의 힘으로 돈을 벌면서 생계를 이었다.&nbsp;<br>손녀 사위인 이양직은 이곡(고려 문관 이색의 아버지)의 친구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타인의 입을 빌어 이렇게 후대에까지 전해졌다. 그러나 작가는 실제 그녀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의문을 던진다. 우선 어머니와 외가 이야기가 없다. 시어머니 이야기도 없다. 손자에 대한 설명도 없다. 그녀의 이야기를 제외하면 여성들의 이야기는 단체로 소거되었다. 아무리 스스로 돈을 벌어 생계를 꾸려 갔다고 해도 당시 환경에서 그녀가 홀로 살아나갈 수 있었을까. 외가나 자매 등의 보호가 있지 않았다면 어려웠을테니 말이다. "만약 조씨의 일이 중국 조정에 알려지게만 된다면, 대서특필하여 기록으로 성대히 전해짐은 물론이요, 주려州閭에 정표하여 광채를 발하게 할 것이니, 어찌 끝내 이름이 파묻혀 없어지게 하겠는가." 조씨 부인 이야기는 아버지, 남편, 시아버지를 모두 잃은 여인이 개가하지 않음을 강조함으로써 이런 절부 이야기도 있더라를 보이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인데 타당한 말이다.&nbsp;<br>1671년에 태어나 89세를 살았던 함흥 기생 가련은 긴 생애동안 다양한 경험을 했다. 그녀는 한글을 잘 알고 쓰고 한문도 조금 알았지만 자신의 기록을 스스로 남기지는 않았다. 대신 그녀를 만난 사람들, 그녀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조선의 양반들이 그녀의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이건창이 쓴 &lt;가련전&gt;에는 그녀의 생애가 비교적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가련은 한양의 명문가 출신인 목생이 함흥에 있을 때 인연을 맺어 사랑을 한다. 덕분에 그녀는 숙종 당시 조정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데 목생이 남인이었기에 그와 관련한 정치색을 가지게 되었다. 목생은 한양으로 돌아갔으나 입소문을 탄 그녀의 행보를 안 남인 관료들이 너도 나도 찾아왔다고 한다. 노론을 비판하며 승승장구하던 그녀는 갑술환국 이후 남인이 정권을 잃으면서 힘을 잃었다고. 소설이지만 당시의 정치적 상황이라면 충분히 있을 법한 상황이다.&nbsp;가련은 함흥에 유람을 온 권섭이 머무는 동안 가까이 지내며 찐한 연애를 했다. 그렇지만 육체적인 관계만 그친 것은 아니고 권섭이 지은 글이나 시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원고 청탁을 하기도 했다고. 당시로서는 천한 신분이었지만 그는 학구열이 남달랐던 것 같다. 특히 권섭이 노론 출신이었음에도 자신의 남인 정치색을 굽히지 않은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녀는 권섭 뿐만 아니라 함흥으로 찾아오는 문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한시 등의 글을 수집, 청탁한 글들을 모아 &lt;가련첩&gt;을 만들기도 했다. 그녀는 평생을 이처럼 뜨겁게 사랑하고 공부하면서 살다 죽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뒤 함흥 대표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nbsp;<br>가련은 한편으로는 '명예 남인'을 자처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양반 남성이 주도한 정치 논리의 '성실한 학습자/체현자'에 그치지 않았다. 가련은 사랑할 만한 남자를 알아 보고 열성적으로 사랑하면서도, 그 남자를 통해 기생에서 벗어나 신분 상승하는 길을 도모하지 않았다. ... 존재 증명과 인정 욕구야말로 그녀의 생애를 관통했던 화두였다. 이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인 인간의 욕망은 천민 신분인 조선시대 기생의 처지에서는 지극히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었으나, 가련은 이러한 자신의 욕망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결국에는 성취해 냈다.&nbsp;<br>이동과 통신이 제한적인 시대일수록 기록자를 경유한 구전 지식의 전달 가능성을 고민해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전근대 여성 대부분이 직접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고 하여, 그들의 목소리 찾기를 섣부르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1/cover150/k77213790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60161</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예수 하버드에 오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32475</link><pubDate>Sat, 13 Jun 2026 16: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3247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1026455&TPaperId=1733247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93/77/coveroff/8931026455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93/77/cover150/893102645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1937770</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제3세계의 붉은 별 - [제3세계의 붉은 별 - 러시아 혁명은 제3세계를 어떻게 바꾸었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28482</link><pubDate>Thu, 11 Jun 2026 10: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2848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92534513&TPaperId=1732848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665/89/coveroff/k19253451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92534513&TPaperId=1732848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제3세계의 붉은 별 - 러시아 혁명은 제3세계를 어떻게 바꾸었는가?</a><br/>비자이 프라샤드 지음, 원영수 옮김 / 두번째테제 / 2018년 12월<br/></td></tr></table><br/>전쟁에서 이윤을 얻는 자본가들의 눈에서 빛나는 황금을 위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장관, 공장 소유주, 은행가들은 험한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기를 희망한다. 그들은 전시에 부자가 되고 있다. 전쟁이 끝난 다음 그들은 군비 세금을 내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와 농민들이 모든 희생을 당할 것이고 모든 대가를 지불할 것이다. <br>친애하는 여성 동지들, 가끔씩 시시한 장사꾼들에게 들끓는 분노를 터트리면서, 아주 오랫동안 계속해서 이 상황을 조용히 받아들일 것인가? ... 범죄적 정부와 도둑, 살인자 도당을 타도하자!<br>평화 만세! -P25~26<br><br>1917년 3월 8일 국제 여성노동자의 날 여성들은 ˝빵을 달라! 내 남편을 집으로 돌려보내라!˝는 구호를 외쳤다. 노동자와 농민은 계속 가난했는데 부유한 자본가는 전쟁 특수를 노리니 어찌 분노하지 않겠는가. 노동자들은 파업을 벌였고 들끓는 시위의 열기는 결국 러시아 군주정을 무너뜨렸다. 그 결과 임시정부와 소비에트의 이중 권력이 형성되었으나 여전히 노동자와 농민의 불만을 잠재우기는 어려웠다. 레닌은 차르가 물러났다 해도 독점자본주의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국가를 망가뜨릴 뿐이라 말한다. 나아가 그는 권력이 피지배계급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러시아 2월 혁명에서 끝나지 않고 10월 혁명이 일어난 하나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10월 혁명으로 소비에트는 스스로 권력을 장악했다. <br><br>10월 혁명은 전세계에 영향을 끼쳤다. 멕시코 혁명의 배경이 되었고 이집트와 이라크에서는 반란이 일어났으며 레닌의 민족자결권 선언 명령이 식민지 국민들에 영향을 주어 조선의 3.1운동, 중국의 5.4운동(나아가 중국공산당의 결성), 인도와 몽골 혁명을 초래했다. <br>1920년 동방노력자대회에 참여한 연설자 터키 공산주의자 나시예 하님의 요구사항 리스트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br>완전한 권리의 평등, 남성을 위해 세워진 교육, 직업 기관에 대한 여성의 무조건적 접근 보장, 결혼에서 양성의 평등한 권리, 일부다처제의 무조건적 폐지, 입법/행정 기관에서 여성 고용의 무조건적 허용, 대도시/중소도시/마을 등 모든 곳에서 여성의 권리와 보호를 위한 위원회의 설립 등이다. ‘진실로, 우리는 길 없는 암흑 속을 헤맬지도 모르고, 벌어진 틈 가장자리에 서 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새벽을 보기 위해서는 어두운 밤을 지새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P117)<br>여성 볼셰비키 혁명가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는 1921년 정치국 회의에서 동방 여성 특별 대회 필요성을 역설했으나 스탈린의 반응은 아직 너무 이르다며 시큰둥했다 한다. 그럼에도 결국 동방여성회의는 열렸고 동방의 여성들이 노조와 클럽으로 조직되어야 한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처럼 공산당은 여성 문제에 관한 여성의 투쟁을 발전시키기 위해 여성 전선을 창출했다. 이 조직들과 투쟁이 이슈를 형성하며 공산당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여 공산주의 여성운동이 발전할 수 있었다. 이는 향후 1945년 국제민주여성연맹의 탄생되는 배경이 된다.<br><br>그러나 코민테른이 활동을 시작한 이후 러시아의 모스크바 지도부를 제외한 다른 나라의 혁명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지도자들은 모스크바 지도부를 맹종함으로써 독립적으로 움직이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러시아 민중들과 다른 욕구를 가진 자기 대중들과의 접촉이 부족했다. 코민테른이 비판을 받고 나아가 비난을 받은 이유는 이런 영향도 있었을 것 같다. 조선도 비슷한 상황이었고 인도의 경우 ‘카스트에 기반한 봉건 질서 위에 자본주의적 질서를 겹쳐놓았을 뿐이다.‘ <br><br>제국주의 열강들은 비밀 협약을 맺었고 1945년 종전 이후에도 유럽은 파시즘을 단지 유럽적 현상, 독일과 이탈리아의 탈선으로 보려는 경향이 강했다. 파시즘이 단지 식민주의와 연계 없는 나치즘이라고 암시함으로써 유럽인들은 부활이 가능했다. 미국은 탈식민화가 진행되면 식민지 국가들이 공산주의자들에게 넘어갈 것을 우려했기에 식민주의의 지속을 지원했다. <br>1956년 소련이 헝가리를 침공하고 흐루쇼프가 스탈린을 폭로하자 제3세계에서는 소련의 명성에 금이 가는 계기가 되었다. 공산주의는 분열화되며 다층적 양상을 띠게 된다. 1966년 민족해방운동 진영에서는 트리콘티넨탈(삼대륙회의)을 개최하며 민족해방을 강화시키기자 단결하였으나 소련은 서구와의 데탕트로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지지를 낮춰갔다. <br>소련을 전적으로 숙청이나 다양한 상품 생산에서 실패한 것 등으로 기억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적 문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심화시키는 데 실패한 점도 기억해야 한다. - P163<br><br>러시아 혁명 이후 제3세계에 미친 영향에 대해 정리해놓은 책이다. 핵심만 요약해놓아 가볍게 보기 좋았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7665/89/cover150/k19253451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6658947</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예수 하버드에 오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27741</link><pubDate>Wed, 10 Jun 2026 21: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2774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1026455&TPaperId=1732774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93/77/coveroff/8931026455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93/77/cover150/893102645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1937770</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산곡미풍 - [산곡미풍 -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24964</link><pubDate>Tue, 09 Jun 2026 11: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2496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42138539&TPaperId=1732496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49/35/coveroff/k042138539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42138539&TPaperId=1732496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산곡미풍 -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a><br/>위화 지음, 백도라지 옮김 / 푸른숲 / 2026년 05월<br/></td></tr></table><br/>무심코 알라딘을 보던 중 레이더망에 걸려든 책이다. 위화 산문집이라니 어떤 내용일까 궁금했다. 소설로는 몇 권을 읽었지만 산문집은 또 다른 느낌일테니... 무엇보다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산곡미풍‘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 습기가 가득한 주변의 공기가 순간 산뜻한 봄바람을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br><br>산문집의 내용은 작가의 삶의 기억 어느 순간으로 데려간다. <br><br>작가는 현재 베이징에 생활하지만 태어난 곳은 항저우, 어린 시절은 그 부근의 하이옌이란 곳에서 십수년을 살았다. ‘바닷물이 왜 푸르지 않고 누렇지?‘라는 질문을 품고 그는 강에서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바다는 늘 푸르다고 이야기하는데 정작 작가가 마주한 현실의 바다는 누렇기 때문이었다. 의문을 품은 그는 직접 뛰어들었고 그것이 수영을 진화하며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br>세월이 흘러 그는 바다가 보고싶어져 부모님과 함께 갔다. 과거에는 바다를 자신이 더 좋아했지만 이제는 부모님이 바다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이는 자식이 크고 부모와 떨어져 살면서 함께 만나 경험하는 시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들과 함께 간 바다란 특별하다. 장소가 특별하다기보다는 역시 함께하는 시간이 중요하겠지. 좀 울컥했다.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드는데 날로 부모님의 건강은 좋아지기보다는 나빠지기 때문이다. <br><br>쿠스트리차 영화 감독의 신발끈은 늘 풀려있었다. 주변인들은 그가 왜 신발끈을 풀고 다니는지 궁금해했다. 마침내 얻은 그의 대답은 경직된 태도를 갖지 않고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작가는 유년 시절 말더듬증이 있었다고 한다. 극복하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나도 좀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발표 시간만 되면 온몸이 떨려오면서 심하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혼미해지곤 했다. 말더듬은 물론이고 그건 거의 공포에 가까운 경험이었다. 발표시간만 되면 주눅이 들어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누군가 내게 질문이라도 할까봐 그 시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었다. 그때 나는 몸의 긴장을 푸는 법을 몰랐던 것 같다. 지독한 긴장이 낳은 증상이 아니었을지. <br><br>천당풍의 여름 풍경은 눈을 감고 떠올리면 더 오롯이 즐길 수 있는 간접 경험이었다. 산들바람은 거센 바람도 얕은 바람도 아니다. 그 미묘한 세기의 느낌을 말로 정확히 표현하기란 쉽지 않을텐데 작가는 그 느낌을 내게 전해주었다.<br>유년 시절의 먹거리 중 프티드 마들렌을 이야기하자 작가도 그렇지만 자동스레 나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떠올랐다. 내 어린 시절의 먹거리는 뭐였지 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처럼 빵집이 많았던 시절도 아니었기에 마들렌은 귀한 것이 아니라 아예 명칭 자체가 낯선 것이었다. 내겐 분식 메뉴가 그나마 가까웠다고 할 것 같다. 특히 중학교 시절 학교 앞 맞은편의 분식점에서 먹었던 떡볶이와 고구마 맛탕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이처럼 맛은 추억을 재현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 분명한 것 같다.<br><br>작가의 부모님은 모두 의사 출신이다. 아버지는 외과의사였고 어머니는 내과의사로 일하셨다고. 그런 환경 덕분인지 5년 정도의 치과 의사 경력이 있는데 좋아서 한 일은 아니었기에 자연스레 그만두었다고. 어쨌든 이런 환경이었기에 그는 병원이라는 환경과 친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10년 간 살던 집의 방은 창문 맞은 편으로 영안실이 있었기에 망자들이 오가는 곳이었다. 그래서 죽음은 상상으로 그치지 않았고 현실과 가까이에 있었다. <br>지금의 아이들은 어떻게 유년 시절을 보낼까 하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물질이 유혹하는 소비주의 시대를 사는 아이들은 예전보다는 풍족하게 생활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부익부빈익빈이 더욱 심해지지 않았는가. 오히려 비교할 거리가 더 넘쳐나는 요즘은 나의 부족함을 받아들이기 더 어려워진 환경에 놓인 게 아닌가 싶다. <br><br>작가는 베이징을 좋아한다 말했다. 모르는 사람 사이를 걷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라고. 나 또한 그렇다.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때가 오더라도 과연 내가 도시를 떠나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평생을 이동하며 살아오긴 했지만 나도 도시를 떠나 산 적이 없다. 완벽한 타인의 도시에 정착한 사람들은 어떤 질문을 품으며 일상을 살아갈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49/35/cover150/k042138539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3493563</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자카르타가 온다 - [자카르타가 온다 - 냉전과 반공, 대량학살이 만들어 낸 세계]</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23629</link><pubDate>Mon, 08 Jun 2026 16: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2362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02034142&TPaperId=1732362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83/90/coveroff/k70203414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02034142&TPaperId=1732362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자카르타가 온다 - 냉전과 반공, 대량학살이 만들어 낸 세계</a><br/>빈센트 베빈스 지음, 박소현 옮김 / 두번째테제 / 2025년 12월<br/></td></tr></table><br/>오페라상 야카르타, 야카르타 비에네. 플란 야카르타,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로 된 이 표현들에서 ‘자카르타‘가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또한 이것은 트루먼 행정부가 ‘자카르타 공식‘을 따랐던 1948년에 자카르타가 의미했던 바와는 전혀 다르다. 그때의 ‘자카르타‘는 워싱턴이 위협으로 여기지 않아도 되는 독립된 제3세계의 발전을 뜻했다. 이제 ‘자카르타‘는 아주 다른 것이 되어 반공 대량학살의 동의어가 되었다. 자카르타는 미국에 충성하는 자본주의 권위주의 정권의 건설에 반대하는 민간인을 국가가 조직적으로 절멸시키는것을 뜻하게 되었다. - P334<br>1954년 과테말라, 1964년 브라질,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는 비슷한 형태의 참혹한 일들이 벌어졌다. 사건(?) 이후 해당 국가들은 정치 경제적으로 미국 질서에 편입되었다. '냉전반공'이란 단어가 익숙하면서도 어느 순간 이 단어와 제발 좀 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이 질서와 무관하지 못하다. 여전히 분단된 한반도는 이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동맹국인 미국을 비롯하여 주변국과의 관계를 고려하며 줄타기를 해야 하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제3세계의 많은 국가들도 그렇다. 오랫동안 진실을 은폐해온 미국과 소련의 문서들이 하나 둘씩 해제되면서 과거에 벌어졌던 충격적인 진실이 수면 위에 올라오고 있다. 가족이 흩어지거나 다치거나 죽고 국적을 상실해 떠돌아야 했고 수용소나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갇혀 악질적 고문을 받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공산주의를 척결한다는 구실로 수없이 자행되었다.&nbsp;<br>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 공산당이 부상하자 이를 경계한 미국은 트루먼 독트린 하에 좌파 정권이 들어서지 않도록 조치를 취한다(물론 미국 내에서도 반공주의적 입장만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등장인물인 프랭크 위즈너와 하워드 팔프리 존스의 입장만 봐도 서로 달랐으니까). 식민지 국가는 종전 후에도 독립을 위해 제국주의 국가와 싸워야 했다. 게다가 냉전의 분위기 속에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그들은 자유주의든 공산주의든 한 쪽에 서야했다. 미국은 CIA의 주도로 공산주의 확산을 저지하고 석유 확보를 위해 이란 정권을 무너뜨리려 했고 필리핀의 좌익 지도자인 훅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또 과테말라 정부의 집권자인 아르벤스도 몰아내려는 시도를 했다.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버마, 실론, 파키스탄, 인도는 반둥회의를 열어 절충주의를 표방했지만 이후 상황은 그들이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았다.&nbsp;<br>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는 서구 자유민주주의 대신 내각인 정당과 시민집단인 국가위원회를 둔 교도민주주의로 인도네시아만의 정치체를 실현하고자 했다. 앞서 수카르노를 암살하려고 시도했던 미국 정부는 인도네시아 군부와 손잡고 반공전선을 결성한다. 당시 미국은 근대화론이 유행하고 있었는데 소위 근대화를 위해서는 군사 독재는 거쳐 가는 단계의 하나다라는 인식이다. 미국에 체류하던 인도네시아 지식인들은 이 영향을 상당 부분 받았을 것이다. 은연중에 스며드는 것이 무서운 법 아니겠는가. 미국에 의해 콩고 총리인 파트리스가 처형되고 콩고에는 군부에 의한 친미 독재 정권이 들어섰다.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진보를 위한 동맹'이라는 경제 협력 프로그램으로 미국식 경제 체제가 시작되었다. CIA는 만델라를 체포하고 이라크 공산당에 대항하고자 사담 후세인의 반공바트당 정권을 세우기도 했다.&nbsp;<br>1959년 인도네시아 군부가 외국 국적자의 경제 제한법을 실시하면서 이민자들의 탈러시가 시작된다. 도착지는 브라질이었다는데 정작 브라질은 불평등에 의한 위계도, 인종차별도 심한 곳이었다. 1960년 브라질에 주앙 굴라르라는 사람이 등장해 개혁을 꿈꾸었다. 그러나 미국은 CIA에 자금을 투입하며 그를 끌어내리려 했다. 브라질 내 파시즘과 반공주의에 반대하던 민족해방동맹의 군인들이 해고된 동료들에 분개해 반란을 일으키자 정부는 학살로 대응했다. 대응차원에서 던진 수류탄이 폭발하자 정부는 이를 공산주의 봉기로 몰아가면서 좌파 인사를 모조리 잡아들이게 된다. 주앙 굴라르는 결국 미국이 참여한 쿠데타에 의해 자리에서 물러나고 새 정권이 들어서게 되었다.&nbsp;<br>영국이 영국령 말라야를 말레이시아로 세우려 하자 수카르노는 이에 반대했다. 그러나 케네디 후 들어선 린든 존슨 정부는 베트남에서 영국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영국의 말레이시아 연방안을 지지하기로 결정한다(거기에 인도네시아 원조를 완전 중단했다). 이에 복수하듯 인도네시아는 통킹만 사건이 벌어진 뒤 북베트남과 수교했고 말레이시아가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 이사국이 되자 유엔에서 탈퇴한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이런 복잡한 사정이 엮인 줄은 미처 자세히 알지 못했던 내용이다. 미국과 영국은 이에 정규 군인들로 구성된 조직원들을 인도네시아 군 장교 집에 투입시켜 체포한다. 다음 날 미국이 내세운 지도자인 수하르토에 의한 반공 반격 계획이 실행되면서 인도네시아 공산당과 수카르노는 악마화되었다 .<br>그후 아체, 발리 등에서는 소리 소문 없는 체포 이후 집단 학살이 이루어졌다. 여기에 인도네시아 무슬림 조직이 가담했다. 1945년 이후 한국 전쟁 시기 이후까지 한반도의 상황이 떠올랐다. 서로 간 이웃이었으나 죽고 죽이는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발리에서는 전 인구의 5%인 8만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결국 수카르노는 수하르토에게 모든 권력을 이양하고 권좌에서 내려왔다. 베트남, 과테말라, 중국, 캄보디아, 가나 등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졌다.&nbsp;<br>책의 제목 중 '자카르타'는 의미심장한 말이다. 이 시기 반공 대량학살을 의미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정부에 반하는 민간인과 지식인들이 절멸의 대상이 되었다. 칠레에서는 미국의 등을 업은 군부가 독재 정권을 세우고 반공 작전 하에 3천명 가까이 되는 인명이 죽었다. '자카르타 방식'의 대량 학살과 반공 작전은 중앙 아메리카 지역으로도 확산되었다. "그들은 공산주의이므로 무신론자이며, 악마이므로 죽여도 된다." 정말이지 그 시절엔 붉은색 콤플렉스 또는 노이로제 망령이 단체로 걸려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이것이 광기가 아니고 무엇인지...<br>이렇듯 미국이 주도한 경제 협력 프로그램과 반공 군사 동맹은 각국 군대와 결합하여 미국식 체제에 길들여진 권위주의 정권을 공고히 했다. 결과적으로 냉전기 동안 공산주의는 '악마'로 규정되었으며, 이를 척결한다는 명목하에 전 세계적으로 폭력과 광기가 정당화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분명 이렇듯 많은 국가적 피해를 입은 이들이 있음에도 그들이 자본주의 경제 체제 하의 미국을 벗어날 수 없다는 현실이다.&nbsp;&nbsp;<br>책은 여러 역사 문헌을 참고하고 관련 피해자의 직접 인터뷰를 함께 실었다.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면서 사건 속에 인물들의 경험담을 실어 그 역사가 실제적으로 느끼게 했다. 인물들의 이야기가 역사의 한 부분처럼 느껴지게 책의 내용을 편집한 기법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싶다. 미소 냉전기 아시아에서 펼쳐진 열전에 대한 내용은 앞서 출간된 여러 책들을 통해서 접할 수 있는데 이 책은 그 범위가 아시아만으로 국한되지는 않고 미국을 제외한 아메리카까지 포함하고 있다.&nbsp;<br>어떤 식으로건 냉전의 영향을 받아 온 나머지 세계에서 어떤 것은 변했지만 어떤 것들은 변하지 않은 채로 남았다. - P380]]></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83/90/cover150/k70203414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2839096</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자카르타가 온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22139</link><pubDate>Sun, 07 Jun 2026 21: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2213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02034142&TPaperId=173221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83/90/coveroff/k70203414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83/90/cover150/k70203414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2839096</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자카르타가 온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19144</link><pubDate>Fri, 05 Jun 2026 22: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1914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02034142&TPaperId=1731914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83/90/coveroff/k70203414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83/90/cover150/k70203414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2839096</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자카르타가 온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17197</link><pubDate>Thu, 04 Jun 2026 21: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1719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02034142&TPaperId=173171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83/90/coveroff/k70203414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83/90/cover150/k70203414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2839096</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중드 보다 중국사 - [중드 보다 중국사 - 봉신연의에서 삼국지까지, 드라마로 즐기며 읽는 중국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15527</link><pubDate>Wed, 03 Jun 2026 22: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1552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22034302&TPaperId=1731552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50/68/coveroff/k02203430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22034302&TPaperId=1731552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중드 보다 중국사 - 봉신연의에서 삼국지까지, 드라마로 즐기며 읽는 중국사</a><br/>이효민 지음, 공일영 감수 / 포르체 / 2025년 12월<br/></td></tr></table><br/>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재밌다. 이 책은 여러 모로 내 기호를 충족시킨다. 일단 중드를 좋아하고 그 중 역사를 담은 고장극을 뽑아 내용을 전개했다. 개인적으로 중드를 본 지 올해로 10년 차가 되었는데 본 드라마는 몇 없지만 압도적으로 고장극을 많이 보았다. 중드는 고장극의 장점이 현대극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하는데 작가의 생각도 나와 비슷한 것 같아 반가웠다. 다만 고장극은 중국 역사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기에는 좋으나 현대 중국어 습득력은 포기해야 한다. “삐샤~!” “황샹!” “니먼 트위샤바!” 이런 단어와 문장들만 주로 나오니 회화에는 써 먹을 수가 없다. <br>책은 진작 사두었고 4월에 베이징 여행을 하면서 가져가서 읽으려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여행 가면 노는데 정신이 팔려서 원… 놀 땐 놀아야지 주의라. <br><br>책은 신화의 시대부터 청나라 시기까지 해당 역사적 배경을 담은 대표 드라마를 소개하면서 당시 역사를 간접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여 독자에게 일거양득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드라마의 등장 인물을 소개하면서 허구와 진실을 가리는 시도를 하는데 그 부분도 개인적으로 좋았다. 늘 드라마를 보면서 등장 인물은 역사적 실존 인물일까, 사건은 진짜 벌어진 일인가 궁금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아주 유명한 인물이고 드라마 상으로도 이름이 같다면 알아보기 쉬우나 때때로 실존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쓰지 않고 다른 이름을 쓰는 경우도 있어서 역사적 배경을 알지 못하면 드라마와 역사가 따로 노는 경험을 할 수밖에 없다. 다만 역사는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 기록의 신빙성도 100%는 아니다. 또 내가 원하는 것이 드러나 있는 경우보다는 숨은 경우도 많아서 원하는 정보를 건져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 이런 부분은 감안하고 드라마만 재밌게 본다면 관계없지만 더 정확한 배경의 정보를 얻고 싶다면 관련 정보를 스스로 찾아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작가도 그런 부분 때문에 관련하여 더 세세한 정보는 역사학자 등의 전문가의 영역에 맡긴다고 서술하고 있다. <br><br>신화의 시대로 작가는 &lt;봉신연의&gt;라는 드라마를 꼽았다. 과거 20년 전만 해도 중드 고장극의 주류 장르가 무협 등의 정극이었던 것 같은데 최근에는 선협극이라는 장르가 꽤나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 같다. 선협극은 판타지 무협물을 가리키며 화려한 CG를 써서 화면의 색감이 화사한 것이 특징이다. &lt;봉신연의&gt;도 선협물 중 하나인데 아직 나는 보지 못했다. 아직 선협물은 여전히 좀 취약해서… 드라마 &lt;봉신연의&gt;는 중국 고대인 하상주 시기 중 상나라의 멸망 직전을 배경으로 한다고 한다.<br>내가 본 선협물은 &lt;삼생삼세 십리도화&gt;가 아마 처음이었을 것이다. 2017년 작품인데 CG가 솔직히 너무 적응이 안 되어서 중도하차할 뻔 했지만 매력 있는 캐릭터와 흥미 있는 스토리 덕분에 완주했던 기억이 난다. 너무 재밌어서 2, 3번은 다시 봤었다. <br>이 드라마를 위해서는 중국 신화에 관한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 육계는 인간계, 요계, 마계, 귀계, 선계, 천계로 구성된다. 천계는 신들의 세계, 선계는 신선의 세계, 요계는 요괴와 요정 어딘가쯤으로 보면 된다. 이 중 드라마는 천계와 인간계 사이를 다루고 있다. <br>주나라의 강자아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강자아는 우리가 흔히 강태공으로 알고 있는 그 인물이다(강태공은 낚시를 잘해서가 아니고 간택 당할때 그저 강에서 낚시를 하고 있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는 주나라 건국에 힘을 보탠 공신으로 책사이자 전술가였다. <br><br>한나라의 왕소군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왕소군은 당시 한나라 한원제 시절 흉노의 호한야 선우에게 화번공주라는 타이틀로 간 여인으로 역사책에서는 주로 비련의 여인으로 그려진다. 물론 한의 입장에서 그런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 &lt;왕소군&gt;에서는 주도적인 성격으로 표현하였다고 한다(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꼭 봐보려고 한다). 화번공주에서 번은 이민족. 화는 화친한다를 의미하여 화번공주는 주변 이민족들과 화친을 목적으로 혼약을 맺어 간 공주를 말한다. 한나라 시기에는 흉노와 오손국 등으로 화번공주를 보냈다. 공식적으로는 한나라에서 진짜 공주를 보내야 하지만 대체로 궁녀나 황족 중 한 사람이 대신 갔다고 한다. 한번 가면 평생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이었을텐데 그래도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정세에 도움을 주기도 하는 화번공주들의 역할이 당시 적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br>후한 말 전국 시기를 배경으로 한 삼국지와 진나라 말기 혼란스러운 시기를 배경으로 한 초한지는 중국 역사 상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가 아닌 가 싶다. 정작 많이 언급은 되지만 두 작품을 완독하기란 쉽지가 않다. 계속 보다 말다 했던 &lt;삼국지&gt;와 &lt;초한전기&gt;를 올해야말로 꼭 다 보겠다는 결심을 했다.  <br><br>개인적으로 중국의 역사 중 가장 나의 관심을 끄는 시기는 당송 시기다. 당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로 작가는 &lt;장안십이시진&gt;을 언급했다. 당나라 수도 장안 황실이 아닌 바깥에서 상원절(원소절) 때 벌어지는 이야기다. 당시 장안은 국제무역도시로 로마 인구가 10만이었는데 100만의 인구를 지녔을 만큼 엄청난 규모를 지녔다. 장안은 궁성과 백성의 거주 지역을 구분하여 만든 계획도시로 중국의 4대 수도 중 가장 서쪽에 위치하여 서경이라고도 불린다. 드라마 배경이 흔한 황실이 아니라 거리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더 흥미롭다. 당시 장안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사람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다녔을까 궁금하다. 정작 장안은 당나라 말 황소의 난으로 장안성이 함락되고 주원장이 장안을 파괴시키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현재는 시안에서 그때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뿐이라고. <br>송나라는 역시 &lt;포청천&gt;이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실존 인물은 포청천과 송나라 현종 황제 뿐 나머지는 가상의 인물이다. 어릴 적 포청천을 보겠다고 했는데 부모님께서 못 보게 하셔서 화가 나 울음을 터뜨렸던 기억이 난다. 내게 포청천은 공명정의의 대명사였다. 관리라면 이런 청렴함이 있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더불어 &lt;칠협오의&gt;도 잊을 수 없는. 전조와 백옥당은 그 시절 우리 집에서는 아이돌 버금 가는 인기였다. 나는 전조파, 여동생은 백옥당파로 매번 날을 세우고 설전을 벌였던 기억도 난다. 드라마 &lt;포청천&gt;에 실존 인물들이 많이 없다보니 작가는 &lt;청평악&gt;이라는 드라마를 알려준다. &lt;청평악&gt;의 등장 인물은 대체로 실존했다고. 송나라 인종 때를 배경으로 하는데 실제로 그 시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싶을 만큼 대단한 인물들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범중엄, 구양수, 사마광, 왕안석, 악비, 주희 등등… 당송팔대가의 문학, 사상, 당시의 철학과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공부할 맛을 느끼게 해주는 만큼 흥분하지 않을 수 없다. <br><br>청나라 시기는 성세였던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때의 역사를 배경으로 드라마가 만들어진다. 나는 &lt;연희공략&gt;이란 드라마로 당시 황실의 모습을 접했다. 드라마에서 변발이 적응이 안되었는데 알고 보니 변발도 고정적인 모습이 아니라 시기별로 조금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청나라 초기에는 뒤에 꽁지머리만 남기고 다 미는 형태로 가장 파격적인 형태였고 청나라 말기로 갈수록 순한 형태(?)로 바뀌었다고 한다. 만주족 여인은 굽이 높은 신발, 현대 치파오의 원형인 당시 후궁들이 입었다는 창파오, 부유함과 고귀함을 드러내기 위한 손가락 장식인 호갑투, 머리장식까지 더해져 복잡성을 더한다. 특히 굽이 높은 신발과 머리장식은 굉장히 불편했을텐데 그걸 감수했을 황실 여인들의 고충이 참 컸을 것 같은. 경극과 원명원, 이화원, 열하행궁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 전 베이징을 다녀와서인지 더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다. 경험한 것은 이해를 더 높일 수밖에 없으니까. <br><br>참! 작가가 참고한 책들의 목록이 적지 않은데 대체로 좋은 책들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br><br>책을 읽고 나면 보고 싶은 드라마가 여러 개 나올 수 있다. 고장극의 편수가 워낙 긴 편이라 다 보려면 꽤나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그저 재미로 봐도 되고 더 깊게 보고 싶다면 이런 저런 배경을 찾아보면서 보면 되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50/68/cover150/k02203430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1506848</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남성 판타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00625</link><pubDate>Wed, 27 May 2026 22: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0062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12137808&TPaperId=173006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0/52/coveroff/k112137808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0/52/cover150/k11213780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05231</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남성 판타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95092</link><pubDate>Sun, 24 May 2026 21: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9509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12137808&TPaperId=1729509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0/52/coveroff/k112137808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0/52/cover150/k11213780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05231</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질병, 낙인 - [질병, 낙인 - 무균사회와 한센인의 강제격리]</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87170</link><pubDate>Wed, 20 May 2026 11: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8717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632532695&TPaperId=172871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860/70/coveroff/e632532695_fb4a.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632532695&TPaperId=1728717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질병, 낙인 - 무균사회와 한센인의 강제격리</a><br/>김재형 지음 / 돌베개 / 2023년 10월<br/></td></tr></table><br/>당신은 한센병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과거 문둥병, 나병이라고 불렸던 단어에 더 익숙하지는 않은가? 혹시 한센병의 발병 모습으로 감염력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한센병은 감염병이지만 실제 감염력이 상당히 약해 감염자와의 접촉횟수, 면역력에 따라 발병률이 달라진다. 솔직히 나는 한센병이라는 단어보다는 나병이라는 단어에 더 익숙했다. 소록도라는 곳에서 병을 치료하는 환자들이 있었는데 환경이 상당히 열악해 문제가 있었다 정도만 인식하던 세대였다. 1980년대만해도 2만 7천여 명에 달했던 한센인이 있었다는데 대다수가 시설에서 생활하거나 도시에 나가 산다해도 사회적 인식 때문에 자신의 병을 철저히 숨기며 살았다고 한다. 일부러 들여다 보지 않으면 나처럼 이들의 존재와 역사를 제대로 모르고 살아왔을 확률이 클 것이다. 저자는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실시한 ‘한센인 인권 실태조사‘에 참여하면서 한센인들을 처음 만났고, 이후 그들의 삶과 역사를 들여다보게 되었다고 한다. <br><br>한센병은 1873년 노르웨이 의사인 한센이 원인균을 발견한 이후 명명된 질병이다. 한센병은 그 역사가 길지만 19세기 중반 유럽에서 세균을 통해 감염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한센병에 걸린 사람을 찾아내 고립시키거나 격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현실로 구체화되었다. 제국주의 바람이 불면서 인종주의에 과학주의가 결합하여 식민지 환자에 대해서 별도의 강제격리 정책의 필요성이 부각된다. 그렇게 조선에서도 1916년 소록도에 병원 건립이 시작된 뒤 1917년부터 병원에서 환자를 받기 시작했다. <br>1917년 부랑 한센병 환자에 대한 격리가 시행되면서 1920년대 이후 부랑 한센병 환자들이 급증하였다. 1915년에 만들어진 전염병 예방령에는 급성전염병에 대한 제한만 담겨 있었으나 전염율이 낮은 한센병에도 적용되었다. 이후 명확히 감염 경로가 밝혀지지 않는 경우에도 의심되는 모든 것을 규제, 거부하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한센병 환자는 가족의 기피, 냉대는 물론이고 심하면 가족 간 불화로 이어지면서 자살하거나 가족 구성원에 의해 살해당하는 일까지 발생하였다. 문제점을 인식한 이들이 조선나근절책연구회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었으나 조선총독부에 의해 해산된 후 가담한 주요 인사들이 총독부 주도의 단체로 흡수되었다. <br><br>그렇다면 한센병에 관한 초기 치료법은 무엇이었을까? 효과가 입증된 치료제로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대풍자유로 1910년대 서양 나병원과 소록도자혜의원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대풍자유는 대풍자나무의 열매인 대풍자 속 씨앗에서 추출한 기름으로 고대부터 인도, 버마 등지에서 피부병에 쓰이던 것이라 한다. 1857년 경 인도 벵갈에서 활동하던 의사 모넷이 한센병 치료에 써 효과를 보면서 유럽에도 알려졌으나 특유의 악취, 자극이 있어 주로 다른 물질과 혼합하여 사용하였다. 조선에서는 1915년 무렵부터 쓰이기 시작, 서양 나병원에서 사용을 하다가 1921년경부터 소록도자혜의원에서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풍자유는 병이 더 심해지지 않도록 막는데 효과가 있었을 뿐이었다. 병의 완치 기준을 두고 세균학자와 임상의의 입장이 서로 달랐다. 세균학자는 세균 유무로 판단했다면 임상의는 건강의 회복 여부로 판단했던 것. 때문에 1920년대 중반 이후 사회 내에서 한센병이 완치할 수 있다는 인식이 약화되며 나병원을 점차 요양소(요양원), 수용소로 변경해서 부르기 시작했다. ‘소록도자혜의원‘은 1934년 ‘소록도갱생원‘으로 변경되었다. <br><br>초기만 해도 소록도자혜의원은 치료의 목적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변경된 명칭을 보면 느끼겠지만 1930년대 이후 일본과 그 식민지에서 한센병 관리 정책의 강화로 모든 한센병 환자를 시설에서 죽을 때까지 격리하는 정책이 발표되며 그 성격이 바뀌었다. 더불어 1935년 조선나예방령 공포로 환자들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 출입하기 어려워지고 경제활동을 하기 어려워졌다. 병원 내 환자들의 수용 인원이 점차 늘면서 확장 공사를 위해 환자들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1935년 1차 확장 공사, 1936년 2차 확장 공사가 진행되며 부족한 예산 문제에 봉착하자 병원은 환자들을 더 쥐어짠다.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환자들을 상대로 강제모금을 하고 먹는 배급량까지 줄였으며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구금하는 등의 짓을 벌인다. 1939년 3차 확장 공사 때는 선착장 공사 및 도로 공사, 직원 관사, 병사, 창고 등의 건물을 건설하는 일에 환자들을 동원하여 마침내 세계 최대 규모의 수용시설이 탄생하게 되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일에 동원되니 환자들의 생활 수준은 급격히 나빠졌고 소록도는 그렇게 죽음의 섬으로 변화했다. 남녀를 분리하여 수용하던 것에서 1936년 단종수술을 전제로 한 부부생활을 허용하면서 단종수술과 낙태수술을 가했다. 이는 환자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한 방편이었다. 참다 못한 환자들은 섬에서 탈출을 시도하기도 하고 직원을 살해하거나 다른 환자를 살해하거나 원장을 살해하는 사건(1942년 이춘상이 원장 스오를 칼로 찔러 죽였다)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br><br>한센병 환자들에게도 광복은 찾아왔다. 그러나 광복은 조선사회에서 한센병 환자에게 가해지던 폭력성을 제어할 통치자가 사라진 것 뿐이었다. 직원들의 폭력은 여전했고 먹을 물자는 계속 부족했다. 그러나 김형태 원장이 부임한 후 소록도를 개선하려는 노력에 환자들은 반색했다. 학교를 설립하고 환자 자치제를 도입하는 등 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반면 직원들은 그의 행보에 불만을 표했다. 결국 김형태 원장이 해임되고 횡령 혐의로 체포되면서 소록도 시스템은 다시 이전의 식민지 정책으로 회귀했다. 특히 흉골골수천자법으로 한센병균을 검출하려는 시도는 심각한 인권 침해였다. 사실을 알게 된 환자들은 조직적인 저항을 벌였다. 불만 일부를 해소하기 위해 병원 당국은 흉골골수천자와 노역을 중지시켰으나 환자 자치회를 해산시키고 병원 명령을 수행할 조무원 제도를 부활시키며 환자의 요구를 외면했다. 병원을 탈출한 환자들이 도시에서 부랑하자 전국적인 사회문제가 되었다. 이에 미군정이 개입한다. 1945년 말부터 전국 각지에 임시수용소를 두어 부랑 한센병 환자를 수용하기 시작했다. 일부 나병원은 국영으로 전환하였다.<br>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센병 신약도 개발되어 도입되었다. 1953년 프로민 등 DDS제가 표준 치료제가 기존의 대풍자유보다 치료 효과에 도움이 됨이 증명되었고 인도에서 개발한 댑손이 1951년 한국에 수입되어 1953년 전국적으로 보급되었다. 특히 댑손은 경구용인데다 효과도 더 좋고 저렴하여 주요 치료약으로 자리매김하였다. <br>국제사회는 엄격한 강제격리에서 점차 상대적인 격리를 지지하는 입장으로 변화함에 따라 환자의 인권도 고려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WHO나 UNICEF를 통해 남한의 보건정책 수립, 실행을 지원하기로 한다. 한국전쟁으로 한센병 지원 사업은 1961년부터 시작되었고 그 결과 한국의 한센병 상황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br><br>1949년이 되면 소록도에 환자를 집중 격리하는 한센병 관리체계에서 환자를 전국에 분산하여 격리하는 체제로 변환하라는 정책이 결정되면서 지역 분산 격리체제가 완성된다. 1957년 2월 28일부터 시작된 전염병예방법은 식민지 시기 전염병과 관련된 여러 법을 통합시킨 것으로 한센병은 만성전염병으로 분류되어 제3종 전염병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환자 관리에 있어서는 중대 질병으로 분류되는 제1종 전염병과 동등하게 취급하고 이전처럼 격리시설에서 환자를 격리하여 통제 권한을 시설 원장에게 부여하는 한계가 있었다. 1963년 개정된 전염병예방법을 통해 완치된 환자와 전염성이 없고 정부 방침을 잘 이행하며 머무를 집이 있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사람에 한해 강제격리 대상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때문에 한센병 환자에 대한 엄격한 통제와 강제격리가 폐지된 것처럼 보여 격리가 폐지되었다는 평가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전염병예방법에 신설된 조항과 이후 개정된 내용, 한센병 관리 운영 방식을 통해 그런 평가와는 현실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br>한편 한센병 환자의 사회복귀를 위해 기능복구사업과 궤양치료, 정형(+성형)수술, 재활훈련과 이동진료 등이 실시되었다. 그러나 격리 환자들은 여전히 감금실, 결핵병동, 정신병동 등 또 다른 격리시설에 수용되어 이중격리를 경험했다. 특히 격리 환자들의 자녀는 언제든 발병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 부모와 분리, 국립삼육학원에 수용되어 보육되었다. 아이들은 전염병 관리대상인 동시에 연구대상으로 쓰였다고(상상하기도 싫다). 정부는 임상 증상이 사라지고 균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아직 완치되지 않은 환자를 음성나환자로 분류하여 정착마을 사업을 진행하였다. 그런데 정부는 사업 부담을 음성나환자와 정착마을 인근 주민에게 떠넘기면서 갈등을 조장했고 그로 인한 한센인에 대한 낙인, 차별은 영속화되었다. 한센병 환자들은 한번 환자로 등록되면 음성환자가 된 후에도 평생동안 기록에서 제거되지 않고 계속 환자로 남았기 때문에 이는 편견과 차별을 강화하는 기제가 되었다. <br>1970년대 이후 한센병 환자가 다시 재발하는 문제가 일어나 정부의 고민이 깊어진다. 1983년 MDT 치료제가 도입되고 나서야 비로소 환자 수가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br><br>치료약으로 한센병 완치가 가능해졌음에도 한센병 환자에 대한 낙인과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 시장 개방화와 축산업의 기업화로 축산업으로 생계를 잇던 정착마을 중 대도시는 가구공장 임대업으로 전환하며 살아남았으나 농촌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한센인들은 정착마을에 대한 법률적제도적 개선 방안을 정부에 요구하기 시작했다.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는 일본에서 먼저 이루어졌다. 일본정부를 상대로 한 한센인의 소송(그 결과 2006년 법이 개정되고 한국 한센인들이 보상을 받음)은 한국사회에서 한센인의 낙인, 차별, 배제 문제가 공론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 시민사회가 먼저 일본법에 근거해 피해보상을 위한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이 소송을 계기로 한국도 한센인에 대한 인권침해 문제가 사회적으로 알려진다. 이후 한센인사건법이 제정되어 피해자에게 의료지원금과 생활지원금을 지급하고 국가가 한센인 피해사건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결실을 거두었다. 그러나 일본과 대만의 한센인 보상법은 한센인이 국가에 의해 일정 기간 강제격리됐다는 것이 인정되면 일괄 보상하도록 명시한 반면 한국의 한센인사건법은 인정받은 피해자에 한해서만 생활지원을 하게 했다. 더군다나 1963년 강제격리가 폐지되었다고 규정함으로써 이후 강제격리문제를 비가시화하고 그 피해를 온전히 규명하지 못했다. 또 피해 대상을 한센인으로 제한해 그 가족에 대한 피해 조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한센인권변호단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소송한 제기에서 정관수술, 낙태수술 등의 강제수술을 받아야 했음을 알렸다. 2017년 최종 원고승소 판결이 확정되었는데 위자료 산정에 있어 병원 측에서 원고인 한센인 측에 예산과 인력을 투입한 점을 감안해 감액하여 원고 측 요구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br><br>이렇게 한센인을 위한 법률적, 생활적 지원의 길은 열렸으나 여전히 사회구조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 책을 통해 국가가 선택하여 시행한 정책이 무엇이었고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860/70/cover150/e632532695_fb4a.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8607042</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일상, 장미의 계절(2026.05.18)</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84061</link><pubDate>Mon, 18 May 2026 15: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8406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833773&TPaperId=1728406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611/69/coveroff/k09283377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632532695&TPaperId=1728406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860/70/coveroff/e632532695_fb4a.jpg" width="75" border="0"></a>&nbsp;<br/><br/>어느덧 장미가 지천인 계절이 되었다. 주말에 산책을 나갔다가 장미를 많이 만났는데 참 좋았다. 장미는 붉은 잎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이맘때쯤 연둣빛, 초록빛 나무와 대비되어 더 쨍한 느낌을 준다. 더군다나 요즘 햇빛이 참 눈부신지라 그 색깔이 더 곱게 느껴진다.&nbsp;사실 나에게는 장미가 6월의 꽃이다. 예전에도 페이퍼에서 언급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고등학교 때 교화가 장미였고 항상 6월에 축제를 했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축제 준비로 5월부터 바빠서 축제가 지나고 나면 번아웃 비슷한 것이 왔었다ㅋㅋ 세월이 흘러도 등나무 그늘과 써클실, 운동장 교단은 여전히 그 기억이 또렷하다.&nbsp;<br><br><br><br><br><br><br><br><br><br><br><br>지난 주말은 산책 말고는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책을 읽고 낮잠을 자고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주말에 읽은 책은 &lt;질병, 낙인&gt;, &lt;오월의 정치사회학&gt;이다. &lt;질병, 낙인&gt;은 이번 주 책모임용 책이었는데 읽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덧 일정이 코앞이라 후다닥 읽었고 &lt;오월의 정치사회학&gt;은 5.18에 맞춰서 읽었다. 원래 낮잠을 자는 편이 아니었는데 생체 리듬이 바뀐 건지 아침 나절 책을 몇 시간 읽고 나면 졸음이 쏟아져서 종종 자곤 한다. 졸면서 책을 읽을 수는 없으니까^^; 요즘 보는 드라마는 &lt;삼국지&gt;랑 어느 가족드라마다. &lt;삼국지&gt;는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으나 95부작으로 워낙 길어서 아직 1/3쯤 봤나보다. 명장인 여포의 죽음이 나왔는데 그가 죽을 때보다 그의 책사인 진궁이 죽을 때 더 감동적이었다. 조조는 진궁을 잡고 싶었으나 진궁은 자신을 보내달라며 죽음을 택한다. 조조가 노모와 가족들을 보살펴줄 것을 알고 있다고... 멋진 풍경을 보며 한 마디 하고 감탄하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가족드라마는 사람 많은 집에 바람 잘 날 없다고 돌아가면서 사고를 치는 통에 울화통이 터진다. 그럼에도 서로를 보듬고 나아가는 과정을 보면 따뜻함을 느끼기도 한다. 늘 느끼지만 결국 가족이 없는 이는 없으니까 결국 사랑하는 두 사람이 있더라도 그들만의 관계는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다.<br>지난 주말은 사실 지지난주 주말에 너무 놀아서 체력이 방전된 탓에 쉬어줘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nbsp;오랜만에 시가 모임을 갔더니 술을 마셔야 해서 힘들고(어찌나 말술들인지...) 사람들과 수다를 떨어야 해서 힘든 상황이ㅎㅎㅎ 그래도 항상 우리가 가면 반가워하고 챙겨주려고 하셔서 감사한 마음은 든다. 매년 6~7월쯤 모임을 하다가 5월에 모임을 가지니 날씨도 더 쾌적하고 여행하기에 좋았다. 게다가 매년 시가 근처에서 모임을 가졌는데 이번에는 장소를 아예 바꾸어서 진행했더니 새로웠다. 몇 년만에 충주를 다녀왔는데 놀멍 술멍하며 즐겁게 놀고 왔다. 일찍 출발하여 오전에 시간이 있길래 옆지기와 데이트를 했다. 탄금대 공원이랑 충주박물관을 보고 맞은편에 중앙탑공원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칠층석탑을 구경했다. 탄금대 공원에 갔다가 길을 잘못 들어 계단을 몇 번 더 오르락내리락했는데 덕분에 옆지기는 관절통을 호소하고ㅎㅎ 충주박물관은 스탬프를 다 찍으면 칠층석탑 키링을 주어서 덤으로 기념품도 챙겨서 기분이 더 좋았다. 석탑 인증샷 찍으려고 기다렸지만 사람이 계속 와서 석탑만 찍는 것은 포기했다.<br><br><br><br><br><br><br><br>5월도 어느덧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젠 낮에 초여름 이상의 기온으로 올라서 덥다 느껴진다. 그래서 저녁에 산책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그래도 아카시아 향을 맡으며 장미를 품을 수 있는 계절이 지금이다. 만끽하시길!<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860/70/cover150/e632532695_fb4a.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8607042</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오월의 정치사회학 - [오월의 정치사회학 - 그날의 죽음에 대한 또 하나의 시선]</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83653</link><pubDate>Mon, 18 May 2026 11: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8365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833773&TPaperId=1728365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611/69/coveroff/k09283377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833773&TPaperId=1728365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오월의 정치사회학 - 그날의 죽음에 대한 또 하나의 시선</a><br/>곽송연 지음 / 오월의봄 / 2023년 05월<br/></td></tr></table><br/>이 글은 ‘어떤 죽음에 관한 보고서’이다. 그러나 그 죽음이 어떻게 남은 자들의 삶 속에서 재인식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국가의 기억은 억압된 그리고 저항하는 개인의 기억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또 수용소 정치, 그리고 ‘감시와 처벌’이 잇따른 총체적 권력의 횡포는 질식된 시민으로서의 자유를 애도하는 근거가 된다. 폭력의 그늘은 평화의 빛으로 더욱 밝게 반사되고, 이성을 회복하라는 국가의 경고는 내 이웃들의 희생에 기꺼이 공감하는 감성에 무력해진다.<br><br>5.18이 다가오기에 어떤 책을 읽을까 하다가 눈에 들어와 고른 책이다. 사실 매해 기념일마다 관련 책을 읽지 못하지만 이런 기회가 아니면 그 중요함과 가치를 망각하고 흘려보내기 쉬운 것 같다. <br><br>저자는 제노사이드와 민주주의 정치문화를 연구하는 정치사회학자로 박사논문이 다름아닌 5.18이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그는 남도 부근에서 성장했으나 그때 쉬쉬하던 분위기를 기억한다고 한다. 그는 5.18에 대해 가해자의 행동에 주목하고 그 의도가 대체 무엇이었을지 질문한다. ‘죄의식도 망설임도 없이 한낮의 폭력을 전시한 잔인한 군인들과 지휘관들. 그들은 왜 그런 일을 벌였나? 그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광주는 왜 고립된채 도움을 받을 수 없었는가?‘ 이 책은 5.18에서 벌어진 학살의 실태, 그 원인과 영향을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내놓은 결과물로 가해자에 대한 논의를 다룬 것이 특징이다. <br><br>5.18 가해자들은 어떻게 탄생되었을까? 5.18 당시 가해자들은 고위간부&지도자와 정규군(특히 특전사)으로 나뉜다. 고위간부&지도자는 안정, 안보, 발전에 따른 군부 권위주의 정권 담론에 기대 12.12와 5.17에 이르는 다단계 쿠데타를 기획하고 5.18에서 신군부 조직을 이용하여 실행했다. 정규군은 친위부대, 장기근속자 위주의 전문특수부대로 명령체계에 따른 복종, 이데올로기를 주입받았다. 그들은 반공주의의 영향 하에 동료집단을 압박, 순응하는 시스템에 있었으며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을 통한 제노사이드의 경험으로 인해 실행력이 더해졌다. 특히 5.18의 죽음은 정규군, 그중에서도 특전사 부대원들이 계엄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br><br>제노사이드의 가해자들은 일반적으로 범죄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국가안보에 대한 도전 상황에서 지배 엘리트와 군대가 집단학살을 그 전략적 대응으로 선택하는 것에 이미 익숙할 것이며, 이들에 의해 지목된 집단은 대부분 완전히 파괴되지 않기 때문’이다.<br>제노사이드와 정치적 학살의 정의에서 핵심적인 개념은 ‘희생자의 특성’이 아니라 ‘국가의 성격과 의도’이다.<br><br>그렇다면 당시 대중은 왜 침묵했는가? 저자는 이를 스탠리코먼의 부인전략 이론을 기반으로 설명한다. 부인전략은 총기발사&자위권 발동의 전면적 부인, 완곡어법&책임전가의 해석적 부인, 필요성 강조&피해자의 존재부정&맥락화&자기중심적 대비인 함축적 부인이 있다. 먼저 5.18 당시 언론통제로 공식적인 논의 진행에는 한계가 있었다. 또 소문으로 떠도는 집단잔학행위에 대해 대중은 부인하거나 불신하는 태도를 보였다. 마지막으로 지식인은 사건을 방조하거나 협력했다. 사건에 대한 부인은 당시 뿐 아니라 현재까지 사람들 간 반목을 조장하고 사회와 국가 내 갈등을 심화시켰다.<br><br>학살 후 진실은 어떻게 은폐될 수 있었나? 국가는 학살을 정당화하거나 망각하는 방식으로 국가 공식 역사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오래도록 한민족이라는 기제는 민족의 통합이 당연하다는 논리 하에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게 만들었고 여기에 남북한으로 정부가 나뉘면서 이념에 기반한 차별은 더욱 강화되었다. 신군부 정부는 국보위 상임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삼청교육대를 설치하여 운용함으로써 전체주의의 지배원리를 실현시키고 배제를 합법화하는 법 제도를 정비함으로써 이를 구체화시켰다. 이는 국가 공식 기제에 반하는 것을 방해하는 세력으로 보고 모든 것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했다. 정부에 의하면 안정, 발전을 위해 안보는 필요하고 그 반대 급부로 민주주의는 극단적 민주론, 교조주의로 치부되었다. <br><br>보편/특수, 서양/동양, 선/악, 적/아我의 구분을 전제한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 구조는 이 시대의 지배 담론을 관통하는 인식론적 기저였다. 이 논리에 따르면 일명 교조주의, 극단적 민주론으로 지목된 민주주의의 가장 큰 과오는 위기를 자초하는 ‘혼란’이다. 이로 인해 ‘혼란’은 국가가 지목한 서구식 민주주의의 가장 큰 폐해인 동시에 시대를 진단하는 대표 키워드로 반드시 경계해야 할 ‘절대 악’으로 상정된다. 그 이유는 ‘국제정치와 세계 경제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북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서구와는 다른 ‘특수’ 상황에 있으며, 민주주의는 내부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해 안보와 안정, 발전을 저해하고, 결국 ‘국기마저 위태롭게’ 하는 망국의 위기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담화문이 진단하는 이 시대는 “구시대”의 위기와 혼란을 극복하고 “새 시대”를 맞이하는 일종의 “전환기” “분기점” “분수령”이며, 이를 위해 “총화” “단결” “단합” “통합”이 요구된다.<br><br>국가는 개인, 정당, 지역을 국가의 단결과 통합에 반대되는 사적인 이해 집합체로 분열과 갈등을 일으키는 주체로 대비시킨다. 광주는 불순분자의 배후가 있는 진원지로 대표되며 지역주의의 실현 모델이 된다. <br><br>그렇다면 학살은 왜 일어날까? 집단 간 격렬한 갈등이 있을 때 반드시 학살로 이어지는가? 저자는 5.18이 정치적 학살이라고 말한다. (일반적인) 제노사이드는 불평등이 민족, 종교, 인종, 사회경제적 차별 위에 중첩된 사회에서 벌어질 확률이 높다. 정치적 학살은 여기에 국가의 성격과 의도가 포함된 형태다. 한국의 쿠데타(들)는(은) 대항세력에 의한 체제 전복 위기를 폭력적 수단으로 해결하려 하면서 발생했다. 이념 갈등에 의한 사회균열운 정치적 균열을 만들어내며 유신체제를 복원할 것이냐, 아니면 민주화로 나아갈 것인가로 나뉘게 만들었다. 미국의 카터 집권 후반기 동북아 정책은 남한 정치의 국내 불안요소는 동북아 안정에 해가 된다 인식했고 이에 따라 5.18에 침묵(묵시적 동의)을 선택했다. <br>결론적으로 5.18은 반공주의, 배제적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군부 권위주의 엘리트들이 불특정 다수 민간인을 희생시킨 사례라 할 수 있다. <br><br>끝나지 않는 학살을 직면하기 위해서 우리는 남은 문제를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2021년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이 개정,공포되었다고는 하나 전두환을 포함한 5.18 학살의 책임자들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다. 또 현재도 여전히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 조작하고 이를 지역, 사회 갈등으로 만들어내려는 세력이 존재하기에 사건이 해결되었다는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는다. <br><br>반인권 범죄와 그 최극단인 학살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민주주의의 내면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다시 시선을 돌려 우리 안의 배제의 문화를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611/69/cover150/k09283377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6116984</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게이트우드 할머니의 발자국 - [게이트우드 할머니의 발자국 - 숲으로 걸어간 할머니, 엠마 게이트우드의 놀라운 여정]</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78392</link><pubDate>Fri, 15 May 2026 16: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7839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942638598&TPaperId=1727839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32/52/coveroff/e942638598_4c9d.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942638598&TPaperId=1727839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게이트우드 할머니의 발자국 - 숲으로 걸어간 할머니, 엠마 게이트우드의 놀라운 여정</a><br/>벤 몽고메리 지음, 우진하 옮김 / 수오서재 / 2026년 04월<br/></td></tr></table><br/>엠마 게이트우드는 미국 에팔레치아 트레일 도보 여행을 추진한다. 67세 여인이 두 발로 140여일의 시간을 걸어 트레일을 완주하다니 놀라웠다. 사실 67세가 할머니라고 하기에는 이제는 그 호칭이 어색한 것 같지만 1950년대만 해도 고령의 나이에 속했을 것이다. <br>더군다나 그녀는 도보 여행을 떠나기 전 자식들에게 그 사실을 숨기고 몰래 떠났다. 그 용기와 대담함이 놀라웠다. 자식들의 반응도 놀라웠던 것이 ˝어머니는 그러고도 남을 분이죠.˝라며 쿨하게 받아친다. <br><br>물론 그녀는 트레킹을 하기 전 충분한 준비를 했다. 평소에도 걷기는 꾸준히 해와서 체력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준비물을 최소한으로 하고 짐은 봇짐 하나가 다였다(무게는 7kg 정도). <br>에팔레치아 트레킹은 몇몇 사람이 도전하기는 했지만 게이트우드 전에 풀코스로 완주한 이는 단 몇 명에 불과했다.  <br><br>트래킹을 하는 동안 그녀는 길을 잘못 들어 헤매기도 하고 폭풍우를 만나 휩쓸릴 뻔하는 등 여러 번 위기에 처했다. 그 길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손을 내미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그녀를 놀랍거나 신기하게 본 이들이 지역 신문에 소식을 퍼나르면서 기사화가 되어 이후 인터뷰를 요청받는 등 점점 유명세를 타게 된다. 나중에는 그녀가 인터뷰를 피해다니는 지경에까지 이른다.<br><br>그렇게 게이트우드는 에팔레치아 트레일 풀코스를 끝내 완주한다. 심지어 한 번만 완주한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두 차례 더 완주했다고. 이후 그녀는 홍보대사 활동, 강연을 진행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그녀의 이름을 딴 트래킹 코스가 만들어지기도 했다고. 그야말로 미국 트레킹 여행의 전설이 되었다 할 수 있다. <br> <br>헌데 이 책의 장벽이 있다면 남편(페리)이다. 그의 이야기가 언급될 때마다 분노가 치미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제발 헤어져, 헤어지라고!‘를 수없이 외쳤다는. 11명의 자녀를 두었다는데... 어휴, 그 과정과 마음을 생각하면 내 속이 문드러지는 것 같았다. 그녀가 집을 박차고 나서 독립한 이유, 그리고 길을 나서서 또 다른 인생을 개척한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자식들의 인생 때문에 그녀는 몇 번이고 제자리에 앉았지만 결국 스스로 살기 위해서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입장과 마음을 이해해준 자식들의 마음도 공감이 갔다.<br><br>여행기이자 에세이지만 1950년대 전후 미국의 역사를 설명해주어 역사를 좋아하는 내게도 안성맞춤이었다. 내용이 그래서인지 자기계발서의 느낌도 좀 있었다. 힘든 상황에서도 결국 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스스로를 보듬었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덕분에 나도 희망과 긍정, 위로를 얻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32/52/cover150/e942638598_4c9d.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325221</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3 -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3 - 지역사·외부 역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65219</link><pubDate>Fri, 08 May 2026 21: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6521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02137905&TPaperId=1726521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98/coveroff/k502137905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02137905&TPaperId=1726521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3 - 지역사·외부 역사</a><br/>모리스 로사비 외 지음, 미할 비란 외 엮음, 김석환 옮김 / 사계절 / 2026년 04월<br/></td></tr></table><br/>1235년 카라코룸을 건설하기 시작했을 무렵, 몽골은 중앙아시아와 만주, 북중국의 많은 부분을 정복 및 점령했고 고려로도 진출했다. 우구데이 카안은 추가로 서방 원정을 계획했고, 이 원정은 러시아의 많은 지역을 정복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는 새로 획득한 영토를 약탈하기보다 이곳을 통치할 행정 중심이 필요함을 인정했다. 수도 건설은 몽골이 약탈자가 아니라 통치자로서 정통성을 한층 강화하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몽골 본토는 여전히 이동하는 목축민들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중앙집권화되지 않았다. - P16<br><br>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시리즈 마지막에 왔다. 시리즈를 구입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3권이기 때문에 기대감을 갖고 읽었다. 3권의 내용은 몽골 제국에 흡수되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통치된 지역과 당시 관계를 가진 지역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해당 시기 특정 지역에 어떤 국가가 세워지고 무너졌는지, 그리고 몽골이 행한 통치 방식은 어떠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br><br>우구데이는 제국 관리를 위해 카라코룸에 수도를 건설했으나, 이후 자연재해로 인한 환경적 요인, 카안을 둘러싼 권력 투쟁 등 내부 갈등으로 그가 다스리던 몽골 지역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우구데이 가문과 차가다이 가문 간 충돌의 결과로 원 조정은 1307년 몽골 지역의 군인뿐 아니라 주민을 위한 새로운 행정기구를 마련했다. 이러한 관료 기구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초원을 통치했을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유목민 가구와 집단은 광활한 몽골지역 도처에 흩어져 있었다. 청(淸, 1644~1911)과 몽골인민공화국(1924~1992. 1928년부터 1932년까지 가축의 집산화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도 목축민에게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하지 못했다는 측면에서, 몇몇 작은 마을들과 주변 지역, 그리고 거의 끝없이 펼쳐진 초원이 앞으로 설명할 정책들을 따랐을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게다가 조정에 있는 몽골인들은 원래 초원 출신이었지만, 많은 사람이 꽤 오랫동안 정주 세계에 거주했고 일부는 평생을 중국에서 보냈다. 그들은 유목민 사촌들과 연결이 끊겼고, 관심사와 정책 선호도도 달랐다. 이 몽골인들과 원 조정의 중국인 관료들이 고안한 행정기구가 과연 초원에서 효율적이었는지 여부를 규명하기는 어렵다(P34~35). <br><br>이후 권력을 잡은 쿠빌라이 카안은 원의 통치를 강화하기 위해 주둔군을 배치하는 대신 관료와 군인에게 물자를 공급하는 등 떡밥을 주는 정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시스템은 비효율적이었고 관리는 부패했다. 거기에 경제적 불안정이 더해지면서 막판에는 통치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여러 몽골 집단 사이의 충돌은 다양한 요인에서 비롯됐다. 그 가운데 하나는 중국에서 귀환한 몽골인과 몽골 지역에 남아 있던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었다. 중국에서 돌아온 피난민은 그 정확한 수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10만 명에 달했다. 이 새로운 집단은 목초지, 물, 가축 무리를 놓고 거주민과 경쟁했다. 따라서 식량과 필수품이 부족해졌다. 1388년까지 계속된 명의 공격으로 사태가 더욱 심해졌는데, 카라코룸에 위치한 보급 본부뿐만 아니라 토지도 손상됐기 때문이다. 이어진 명조의 무역 제한으로 몽골은 필요한 물품을 얻기 위해 중국을 침략해야만 했다. 이와 동시에 몽골은 분열 상태였다. 서몽골 집단 중 하나이자 몽골의 혼인 동맹이었던 오이라트가 칭기스 가문과 이른바 동몽골에 도전했다. 그들이 아릭 부케의 후손들과 손을 잡으면서 북원이 중국에 대한 권위를 되찾을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P44). <br><br>고려와 칭기스계 관계의 다른 측면들은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거의 30년(1231~1259) 가까운 파괴로 점철된 전쟁이 끝난 뒤 고려 황실은 1274년에 칭기스 가문 황제와 혼인 동맹을 맺었고 이러한 관계는 한 세기 동안 지속됐다. 칭기스계는 일부 초기 동맹 세력 및 지방 군주(콩기라트와 위구르 등)와 혼인 동맹을 맺었고, 몇몇 정치체(금, 남송, 맘룩)와는 장기간에 걸친 전쟁을 벌였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전쟁과 혼인이라는 두 가지 형태의 상호작용이 이처럼 눈에 띄게 결합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14세기 중반까지 고려는 동북아시아에서 칭기스계의 방벽이 됐고, 1380년대에는 정통성을 갖춘 국가로서 칭기스계의 지위를 인정하는 동아시아의 유일한 나라였다. - P51<br>이후에도 1380년대 내내 고려는 가문, 외교, 군사 이해, 공동의 역사 등 공식적, 비공식적 관계를 통해 원과 얽혀 있었다. 요동은 많은 고려 이주민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또 고려 이후 들어선 조선 왕조의 설립에 참여한 많은 주요 관료, 군인, 지식인이 몽골 치하에서 성장했다는 점에서 역사의 중요도를 가진다. 그리고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몽골 통치 시기 한반도는 중국을 넘어 유라시아 지역까지 더 넓은 네트워크에 연결되면서 많은 문화적 교류가 일어났다. <br><br>몽골은 1220년 코카서스 지역을 정복한 뒤 셋으로 나눠 노얀(지휘관)에게 분배하여 제국의 통제하에 두었다. 일 칸국(훌레구 울루스)이 성립한 이후 권력의 중심이 남쪽으로 이동하자 (몽골의) 코카시아에 대한 통치는 더욱 간접적으로 이루어졌으며 현지 귀족에 의존했다. 조지아와 아르메니아 귀족들은 백성들의 보호를 위해 대체로 몽골에 협조했다. 몽골은 복속민의 군사 원정 참여를 강제하였기에 아르메니아, 조지아 귀족들은 주치 울루스와 훌레구 울루스 간 전쟁에 참여한다. 훌레구 울루스의 가잔 칸이 권력을 차지하고 이슬람을 국교화하면서 기독교 탄압이 시작되자 귀족들은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켰다. 아부사이드 재위기 훌레구 울루스와 주치 울루스 사이 대립은 절정이었다. 조지아는 몽골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여기에 페스트까지 유행하자 지역은 쑥대밭이 되었고 티무르의 침입이 더해지면서 쇠락하였다. <br>몽골 제국의 탄생은 중세 국제 무역의 역사에서 중대한 사건으로, 캅카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몽골의 정복은 새로운 무역로를 열었고, 서유럽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지역에서도 국제 무역이 활발해졌다. 몽골은 캅카스의 주요 경제 중심지를 수없이 파괴했지만, 생산과 교환의 중심을 다른 곳으로 이전함으로써 이전에 국제 무역에서 소외됐던 타브리즈와 마라가 같은 도시들을 성장시켰다. - P127<br><br>˝시베리아˝라는 지명은 13세기에 작성된 「몽골비사」에 처음 등장하는 시비르, 즉 오비강과 예니세이강 사이에 거주하던 사람들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15세기까지 러시아에서 시비르는 오비와 이르티시 지역을 가리켰고, 러시아가 동쪽으로 빠르게 진출하면서부터는 우랄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북쪽 지역 전체를 의미하게 됐다(P139). <br>몽골은 시베리아의 삼림 지대를 군사 자원의 원천으로 보아 복속을 시도했으며 원 조정은 캅카스 지역의 귀족들 상대로 한 것처럼 간접 통치 방식을 사용했다. 그러나 몽골이 루스에 정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야를릭을 하사하고 공물을 받은 것에서 입증되듯 몽골은 루스를 지배했다(P203). 몽골의 통치권은 인구조사와 공물 납부, 그리고 루스 공작들의 몽골 군사 원정 참여를 통해서도 관철됐다. 일반 루스인들은 몽골군에 징집되거나 강제 노동에 동원될 수 있었고, 특히 숙련 장인의 경우는 더욱 그러했다. 공작들은 주치 울루스를 자주 방문했고, 때로는 수개월, 심지어 몇 년 동안 그곳에 머물렀다(P180). 또 루스 공작들 중 몽골 지배층과 혼인하는 경우도 많았다. <br><br>유럽, 아랍, 남아시아는 몽골이 직간접적으로 지배한 곳은 아니지만 이 시기 유라시아로 네트워크가 확장되어 연결된 만큼 서로 많은 교류가 이루어졌다. 이 책에서 외부 역사로 파트를 따로 다룬 이유다. 특히 무역과 상업, 종교, 과학과 기술 분야는 (지금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상당히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다. <br><br>유럽은 13세기 무서운 몽골 군대의 힘을 경험하면서 붕괴에 가까울 정도로 강한 충격과 파괴에 대한 두려움을 받으며 몽골이 어떤 나라인지 비로소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후 유럽은 몽골의 지속적인 위협을 받았으나 유럽인들은 몽골의 존재를 서서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몽골과 몇 차례 외교 소통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실제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이는 몽골의 내부 분열로 분권화하고 울루스들이 서로 다른 외교적 노선을 취했기 때문이다. 정치 외교적으로는 잘 풀리지 않았지만 상업 경제적으로는 달랐다. 흑해에 이탈리아 해양 세력, 제노바와 베네치아가 무역을 확대하자 러시아와 일 칸과 직접 대면하게 되었다. <br>유럽과 몽골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 존재는 아마도 선교사와 상인일 것이다. 특히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까지 선교사가 들어오면서 기독교의 영향이 확산되었다. 초기에 몽골이 유럽을 침공했었으나 그 침략의 충격을 극복하고 나자, 둘은 정치적, 상업적, 종교적 측면에서 관계가 발전했다. 정치적, 외교적 계획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이탈리아 해양 세력의 아시아 시장 진출은 호혜적 무역을 위한 유라시아 대륙로를 열었고, 흑해 식민지와 지중해 동쪽 항구라는 결절점을 통해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했다. 하지만 상인과 선교사는 자신이 활동했던 사회로부터 매우 분리된 상태로 지내며 몽골 지배층 내에 확고히 자리 잡았다(P238). 상인과 선교사가 유럽에서 주기적으로 왔다 갔다 한 것이 아니고 몽골 내에 자리 잡고 관계를 맺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br><br>몽골은 1219년 호레즘 왕국을 침공하면서 아랍 세계와 처음 맞닥뜨리게 되었다. 40년 뒤에는 이라크를 몽골 지배 하에 둔다. 또 1260, 1300년에 두 차례에 걸쳐 시리아를 침공한다. 시리아는 몽골로부터 두 차례의 침공을 받았으나 몽골이 잠시 점령한 뒤 얼마 후 맘룩이 지배권을 되찾기 때문에 그 영향이 크지는 않았다. 그래도 몽골이 아랍-중동에 진출한 이후, 사람들이 이라크, 자지라, 아나톨리아 등지로부터 시리아와 이집트로 이주하는 인구 변화가 발생했다. 맘룩-일 칸국(훌레구 울루스) 국경 지역에서는 일부, 어쩌면 상당한 정도의 문화 교류가 있었고, 이는 1320 년대 초 ‘평화 협상 과정‘과 함께 확실히 증가했다. 몽골이 아시아를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개방한 것은 확실히 이집트의 술탄국, 그리고 예멘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한 가지 영향만 특별히 꼽아야 한다면, 그것은 맘룩이 시리아를 점령하고 통치할 수 있도록 몽골이 길을 닦았다는 점이다(P279). 몽골의 위협이 맘룩을 단결하게 했다니 아이러니다. 게다가 맘룩은 몽골에게 통치술을 배워 강력한 중앙집권적 성격의 왕조를 만들었다. <br>남아시아(특히 인더스 남동부 지역)는 유라시아 대부분과 달리 몽골 제국에 통합되지 않았다. 몽골의 칸국과 남아시아 간에 외교 소통은 자주 이루어졌다. 이는 13~14세기 항해술이 발전하면서 더 활발해졌다. 무슬림, 힌두교도, 중국인 상인들이 운영한 상업 네트워크도 교류에 기여했다. 상업 교류는 다양한 통로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인도양의 해상 항로 뿐 아니라 미얀마와 티베트를 건너서 원으로 가는 육로, 델리와 이란을 연결하는 아프가니스탄 고개 길 등이 있었다. 은, 말, 향신료, 도자기, 직물, 노예 등 다양한 상품이 거래되었는데 남아시아가 교역지이자 중개지의 역할을 했다. <br><br>몽골은 ˝말 위에서 천하를 얻을 수는 있어도 통치할수는 없다˝는 중국의 유명한 클리셰를 반증하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말을 탄 채 이동하며 통치하는 것은 단점이 없지 않았지만 매우 혁신적이었음이 입증됐다. 초기의 대규모 공격 이후에 몽골은 궁극적으로 문화적 활기, 유라시아 규모의 통합, 상업의 활성화, 기술, 과학, 예술의 혁신, 새로운 종교적, 종족적, 지정학적 지형, 초원과 정주 제국 모두가 받아들인 세련된 제도를 낳았다. 몽골은 그들의 파괴적 정복에서 기인하기도 했고, 근대 민족주의 정서의 부침에 의해 더욱 강화된 야만인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13~14세기에 이 제국적 유목민들은 세계를 변화시켰고, 오늘날의 세계화 시대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 P363<br><br>이로써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읽기가 마무리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지배층의 관점에서 기술된 점이 아쉽기는 했다.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는데 욕심이었을까. 아무래도 남아 있는 사료들이 지배층의 관점에서 기술된 것이 많을 테니 또 어쩔 수 없는 부분인가 생각한다. 모쪼록 관련 연구가 더 늘어나서 후속 작업이 이루어지길 기대해봐야지. 이 시리즈 기획물은 몽골 제국의 역사적 흐름을 확인하면서 주변국과의 관계까지 조망할 수 있어 여러 모로 도움이 될 것 같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98/cover150/k502137905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69838</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2 -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2 - 주제별 역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64651</link><pubDate>Fri, 08 May 2026 14: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6465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22137905&TPaperId=1726465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97/coveroff/k422137905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22137905&TPaperId=1726465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2 - 주제별 역사</a><br/>미할 비란.김호동 엮음, 최소영 옮김 / 사계절 / 2026년 04월<br/></td></tr></table><br/>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2권은 주제별 역사 중 이념과 제도, 종교와 과학, 사회/경제, 여성의 지위를 다룬다. 1권이 주로 몽골이 통일 제국을 형성했다가 분열한 이후의 역사를 정치에 집중해서 다루었다면 2권에서 이를 좀 더 주제별로 더 깊게 들여다보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나는 상위 챕터의 묵직한 주제만큼 여성의 지위를 동등하게 챕터로 다룬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만큼 몽골 제국의 여성에 대해 다룰 비중이 크다 여겼기 때문이리라. <br><br>몽골 제국은 통일 제국에서도, 4개의 칸국으로 나뉘어진 제국에서도 기본적으로 같은 정치 구조 및 통치 제도를 유지했다. 몽골은 가족 및 가축과 함께 이동하는 텐트 복합체인 오르도를 운영했다. 어느 한 곳을 근거지로 정주하며 제국을 운영하는 경우가 익숙하지만 유목민은 보통 움직이며 생활하는 데다가 몽골은 통일되는 과정, 그 이후의 과정도 정복의 연속이었으므로 대상지 근처에 오르도를 옮겨 다니는 것이 더 나았으리라 판단했을 것이다. 물론 우구데이 때 수도인 카라코룸을 건설하기는 하지만 기존의 오르도 방식의 궁정은 계속되었다. 정복지에는 행정업무와 세입징수를 담당하는 ‘다루가치‘, 법적 문제를 판결하는 ‘자루가치‘를 배치하여 통치의 효율성을 높였다. 칸은 야를릭(칙령)과 우게(영지/명령)등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역참 제도(칭기스칸 이후 계속되어 뭉케 때 확장됨)를 운영하여 제국의 각 지역에 사신과 물품 운반을 이동하게 하였다.<br>통일제국 시기의 몽골군은 알긴치 (alginchi, 복수형은 alginchin)와 탐마, 정규군, 비유목민 군대, 카라울(qara‘ul) 혹은 카라굴(qaraghul), 케식 등 다섯 개의 주요 그룹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알긴치와 탐마는 변경과 불안정한 지역에 주둔하는 부대였다. 정규군은, 예상되는 바대로 침략과 정복을 위한 군대였고 유목민으로 구성됐다. 비유목민 군대는 비슷한 형태의 부대로 편성되었다. ˝카라울 혹은 카라굴은 ˝국경 수비대와 도로 순찰대 역할을 결합한 것으로 주력 부대의 일부로 기능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케식, 즉 칸의 친위대는 군주의 개인 경호뿐 아니라 다른 많은 역할을 수행했다. 통일 제국의 해체 이후에도 전체적인 구조는 유사하게 유지됐다. 알긴치, 카라울, 케식 부대가 그대로 존재했으며 비유목민 군대도 마찬가지였다. 탐마는 몽골의 정복 활동이 줄어들면서 쇠퇴했을수 있지만 군대의 핵심 요소는 계속해서 기마궁사였다. 해군을 운영한 것은 대원 울루스가 유일한데 이는 고려의 우수한 선박과 항해술의 기반이 있기에 가능했다. <br><br>어느 국가든 국민을 통합시키기 위해서 통치 이념을 만들기를 추구한다. 몽골은 ‘영원한 하늘‘이라는 ‘텡그리‘의 힘을 받들어 믿게 하여 타 종교와는 다른 믿음의 영역으로 구분시켰다. 하늘은 제왕(칸)의 힘과 카리스마를 돋보이게 하는 데 제격이었던 것이다. 이는 과거 한반도의 왕조도 마찬가지였다. <br>몽골인들의 이념적 메시지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신화, 종교적 신념, 정치적 원칙들의 혼합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광범위한 지리적 범위를 가진 실제현상이었으므로, 세부 사항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민족들에게 인식되고 이해될 수 있었다. 즉, 다른 전근대 제국과 마찬가지로 몽골이 건설한 제국은 헌신적인 활동가들로 이루어진 핵심 집단, 열정적이면서도 계산적인 합류자들로 이루어진 훨씬 더 큰 집단, 그리고 신들의 헤아릴 수없는 계획과 정복자들의 뛰어난 행운에 대개 어쩔 수 없이 복종한 수많은 신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P102). <br>몽골은 타 종교에 대해서 대체로 상대주의적 관점을 견지하고 관용성을 보였기에 다양한 종교 간 상호작용이 활발했다(물론 무슬림으로 개종한 칸의 경우 종종 이슬람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에 대해서 배타성을 보이기도 했다). 이는 비단 종교에서 그치지 않고 과학 및 기술에도 적용되었다. 예를 들어 본다면 과학, 예술 분야가 아닐까. 이는 실용성을 중요시했던 몽골인들의 지혜를 보여준다. 덕분에 의학, 천문학, 점성술 등 서아시아와 중국의 지식이 교류되어 다양한 결과가 축적될 수 있었다.<br><br>산업화 이전(더 구체적으로, 은행 제도 확산 이전)의 화폐 체계는 하위 수준(지역 내) 시장과 상위 수준(지역간) 시장의 교환 수단이 별도로 구성돼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 두 체계는 근거리와 원거리 교역의 규모, 빈도, 계절성의 상당한 차이로 인해 별도로 작동했다. 몽골 정권은 하위 시장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제국 전역의 공납 이동과 도량형 체계 통일을 결합원거리 교역에서의 화폐 통용성을 구축했고, 그 결과 전체 교역시스템에서 일련의 글로벌한 변화를 이끌어냈다. - P155<br>은이 세계 공통 화폐로 쓰여지기 시작한 것은 13세기 후반부터였다. 고대 시기에는 물물 교환으로 교역이 이루어졌다면 그 이후에는 화폐가 쓰였겠지만 그마저도 공통 기준은 없었다. 은이 쓰였다고 해서 모두 동전 형태의 은화가 쓰인 것은 아니고 은괴, 은화, 동전의 3층 구조로 이루어졌다. 이무렵 세계 각지에서 은광이 발굴되고 유라시아가 교역로로 연결됨으로써 가능해진 일이다. <br>몽골인들과 그들의 제국은 유라시아 전역에서 종교가 실천되는 방식과 장소뿐만 아니라, 인간 활동의 더 넓은 틀 안에서 종교가 이해되는 방식도 영구적으로 바꿔놓았다. 전자의 예는 이슬람 세계를 보면 충분한데, 그곳에서 아바스 칼리프조의 파괴와 그에 이은 몽골인들의 이슬람 개종은 수피즘의 부상뿐만 아니라 시아파 정치 권력이 부상하는 길을 열었다˝ 이 두 가지 발전은 근대 초기 이슬람 세계의 역사를 크게 변화시켰으며, 그 파장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몽골인들은 유럽 기독교인들의 종교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인류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열었으며, 이는 초기 근대 세계의 형성과 창조에 근본적인 역할을 했다.˝ - P240<br>금속공예, 도자기, 건축, 직물, 필사본 삽화 등에서 유라시아 전역의 기술과 양식이 혼합 및 전파되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원 지역의 문화에 티베트 불교/이슬람/기독교(천주교, 정교회 등) 양식이 더해졌을테니 상상해보면 다채로운 문화 양식이 공존했던 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br><br>몽골 황실에서는 여성들이 때때로 주도적인 활약을 하였다. 칸의 지위를 둘러싼 갈등과 이해 충돌이 자주 발생하였기 때문에 칸이 공석일 때 황실의 여인이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치 경제적으로 황실 여성들은 칸과 마찬가지로 쿠릴타이에 참석하고 정치적 조언을 했으며 독자적인 영지를 관리하면서 칙령을 내릴 권한을 가졌다. 또 사회적으로는 종교 활동을 후원하고 빈곤층을 구제하며 남편을 대신해 권위를 행사하거나 외교적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br>씨족, 부족 간 전략적 혼인을 통해 형성된 가족 관계는 남성들 사이의 정치적 동맹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몽골 제국 통치하에서 칭기스 가문의 여성과 혼인하는 영예를 얻은 남성은 황제의 구레겐(giüregen, 부마)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부마들은 통치자와의 긴밀한 사적 관계, 자신의 추종자들로 구성된 더 큰 부대를 지휘하는 군사적 특권, 그리고 이후 다시 자신의 자녀를 황실 가문과 혼인시킬 수 있는 사회적, 정치적 혜택을 누렸다. - P384<br>고려 시기 원 황실과의 정략적 혼인을 통해 고려 왕이 동시에 몽골의 부마가 되는 예를 떠올리면 된다. 부마 뿐 아니라 원의 마지막 황후였던 기황후는 고려 출신으로 원의 조정을 장악하기도 했다. <br><br>다만 몽골 시기 이후 여성의 지위가 상승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지 않나 한다. 이전인 중국 당대(618~907)의 시각 및 문헌 자료들은 상류층 여성을 말을 타고 폴로를 즐기는 풍만한 모습으로 묘사하는 반면, 송대(960~1279)의 자료들은 날씬하고 심지어 연약해 보이는 신체를 강조한다. 중국에서 말타기는 여성과 완전히 무관하고, 심지어 남성들에게도 드문 일이 됐는데, 이는 금과 몽골의 침입으로 북방의 말 사육지가 중국의 통제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상류층 가문에서는 아내와 딸의 생활 공간을 분리하는 게 규범이 됐다. 비상류층 여성들은 상황에 따라 농사, 가게 운영 등을 맡기도 했지만, 이후 수세기 동안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보이는 경우는 훨씬 줄어들었다. 송대에는 전족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족의 기원은 여전히 불분명하며 지역마다 다소 달랐지만, 문헌 증거와 고고학 증거 모두 12세기에 자리 잡기 시작해 상류층에서 모든 계층의 한인 여성으로 빠르게 퍼져나갔음을 보여준다(하카, 위구르, 만주, 그리고 다른 소수 민족들은 수 세기 동안 전족을 하지 않았다)(P416~417). 송대 이후로 강화된 유교 규범 문화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한다. 몽골의 점령은 중국의 혼인법에도 장기적 영향을 미쳤다. 1271년 쿠빌라이 카안은 모든 민족 집단에 대해 몽골의 수계혼 관행을 합법화했고, 치열한 법적 다툼과 소송의 홍수 속에서 과부의 정절은 중국 여성들이 수계혼에 저항할 수 있는 법적 수단으로 부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계혼은 중국에서 불법이 됐고, 과부의 정절을 지지하는 법들은 중국의 왕조 시대가 끝날 때까지 지속됐다(P417). <br><br>앞선 1권이 전체적인 몽골 역사의 훓어보기 성격이라면 2권은 주제별로 정리해놓았기에 관련 분야를 찾고 싶을 때 참고하기 좋을 것 같다. 다만 저자마다 편차가 있어서 글의 밀도가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이는 최대한 일반 독자를 위해 더 깊은 이해 수준을 위한 내용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기술해서이지 않나 싶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97/cover150/k422137905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69753</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시와 물질 - [시와 물질]</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62197</link><pubDate>Thu, 07 May 2026 10: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6219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722635525&TPaperId=172621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417/60/coveroff/e72263552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722635525&TPaperId=1726219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시와 물질</a><br/>나희덕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05월<br/></td></tr></table><br/>&lt;시와 물질&gt;이라니.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제목이었다. 시와 친하지 않고 시를 막상 읽으면 무슨 말인지 뜬구름 같이 느껴져서 아마 평생 읽은 시집이 손에 꼽을 것이다. 근데도 이 시집의 제목을 보니 궁금하고 계속 눈길이 가서 참을 수가 없었다. 유혹할 땐 읽어줘야지. 초반에는 좀 진도가 안 나가다가 이후에는 의외로 쭉쭉 읽었다. 희한한 경험이었다. 시가 이리 두루뭉술하게 느껴지지 않다니. 피부로 와 닿는 느낌이라니. 내겐 좀 특별한 경험이었다.<br><br>왜 그런가 생각해봤는데 저자가 인용하는 책, 기사, 사건 등이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었다. <br><br>자본과 이익을 위해 욕심을 부리는 인간, 환경을 뒷전으로 하고 개발에 앞장서며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려는 자들에게 일침을 날린다거나 노동자를 가벼이 여기는 관행에 분노를 내뿜기도 한다. SPC 노동자 이야기는 시를 읽으면서 주먹을 불끈 쥐게 되기도 했다(나는 그 이후로 파리바게뜨, 삼립, 쿠팡은 계속 불매 중이다). 예전에도 그래왔으니 계속 그래도 된다는 가벼운 생각은 선택하기 쉽지만 미래를 후퇴하게 만들 수 있다. SPC 공장에서는 불과 얼마 전에도 또 노동자의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나. 대체 이런 관행은 언제나 바뀌는 건지.<br>광장은 위치가 변하고 목적도 변화하였지만 진화 중이라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후퇴하는 광장터를 만들지 않고 불의를 참지 않기 위해 모인 시민들이 보여준 단결과 의지는 자랑스러운 문화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정치는 지지부진하고 후퇴한다 해도 시민 의식이 살아 있는 한 정치는 갈 길을 잃지 않을 거라 여긴다. <br>한국이 참전한 베트남 전쟁은 (정부가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을 품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진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미와 퐁니, 퐁넛에서의 민간인 학살을 시간이 오래됐다고 해서 덮어두기만 할 것인가. 여전히 피해자의 유족 및 후손들은 진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더이상 외면하지 말고 부끄러운 과거를 인정하는 것부터가 시작일 것이다.<br>히잡을 쓰지 않았다고 구금된 뒤 구타로 3일 만에 사망한 아미니의 이야기도 있다. ‘머리카락 깃발‘이란 제목과 내용을 보며 눈물이 났다. ‘자유‘라는 두 글자에 무게감과 고통을 또 한 번 느꼈다.<br>몰랐던 사건도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호주에 있는 ‘사과의 날‘이었다. 호주는 백인과 원주민 사이에 태어난 혼혈 아이를 가족으로부터 분리하는 정책을 자그마치 100년 간 시행했다고 한다. 정책은 1960년대 종료되었으나 실태 조사가 시작된 것은 1990년이 되어서야 시작되었다니... 이들을 도둑맞은 세대라 부른다고 한다. 흑백 분리, 인종 차별... 눈에 보이는 차별이 문제라고 인식한 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다. 이제 조금씩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도 문제임을 깨닫고 개선해나가는 중이라 여긴다.<br>조지 오웰의 장미라던지, 사울 레이터의 사진을 보고 영감을 받아 쓴 시도 반가웠다. <br>시의 이름은 정확하지 않지만 죽음에 대해 여러 번 생각하기도 했다. 장례식의 풍경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아주버님이 가는 길이 떠올랐다. 옆지기는 그때 무척 힘들어했다. 만난 뒤 처음으로 마주한 그의 눈물을 보면서 죽음의 무게를 느끼기도 했다. 항상 아주버님에 대해 불만이 많던 그였는데 막상 그가 떠났을 때 빈자리를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옆지기였나보다.<br><br>시가 아니라 마치 저자와 대화하는 느낌이랄까. 에세이 같기도 하고. 내겐 너무 명쾌해서 이해하기가 쉬웠다. <br>독자에 따라 이 시들이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호‘였다. 인간은 결코 단독으로 살 수 없고 세계는 이어져 있음을 느낄 수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417/60/cover150/e72263552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4176096</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1 -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1 - 정치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59241</link><pubDate>Tue, 05 May 2026 21: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5924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82137905&TPaperId=1725924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96/coveroff/k382137905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82137905&TPaperId=1725924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1 - 정치사</a><br/>미할 비란 외 엮음, 루스 던넬 외 지음, 조원희 옮김 / 사계절 / 2026년 04월<br/></td></tr></table><br/>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는 오래도록 몽골사에 몸담은 권위 있는 연구자들이 참여하고 최근 학계의 내용과 의견을 담은 만큼 몽골 제국사의 종합판이라 할 만하다. 제1권은 주제별 내용 중 앞부분에 해당하는 정치사로 몽골 제국의 왕조사를 정리해놓았다. 구체적으로는 칭기스칸이 부족을 통일한 이후의 제국에서 4개의 칸국이 성립하고 멸망할 때까지의 역사를 담고 있다.&nbsp;몽골사를 다시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읽게 될 줄 몰랐는데 어쩌다보니 펀딩에 참여하였고 기간 내 읽어주는 게 마땅하다 여겼다. 적절한 타이밍에 연휴 기간이 있어서 모두 읽을 수 있었다.<br>몽골 제국 이전에도 유라시아 역사에 요, 금 등의 유목 제국이 있었다. 하지만 몽골 제국이 이룬 성과는 지리적으로도 앞선 국가를 앞설 뿐 아니라 향후 제국의 역사에 기반이 되는 제도와 장치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영향력이 컸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몽골의 시대는 과거의 종말이자 새로운 세계의 탄생으로 여겨졌으며, 최근에는 세계화를 향한 도약의 초기 형태로 평가받고 있다(P167).&nbsp;<br>몽골은 유목민의 사냥, 전쟁, 사회 조직 기술을 제국 시스템에 통합하였다. 칭기스, 우구데이, 구육은 초기 제국 내 규범을 구축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칭기스칸은 흩어져 있던 부족을 통일한 뒤 1206년 몽골 제국을 선포하고, 십진법 기반의 군대 조직과 천호제, 황실 친위대(케식) 등을 도입하며 국가 기틀을 마련했다. 또한 서하(탕구트)를 복속시키고 금 원정, 중앙아시아 호레즘 정벌 등을 통해 영토를 확장했다. 칭기스칸은 죽기 전 네 아들에게 땅을 분배했다. 주치에게는 호레즘에서 카스피해 북쪽과 서쪽의 킵착초원을 부여했고, 차가다이에게는 위구르와 트란스옥시아나를 주었다. 우구데이에게는 몽골의 고향 땅을, 톨루이에게는 우구데이 영토에 인접한 중앙 지역을 주었다. 우구데이 카안은 수도 카라코룸을 건설하고 행정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뭉케 칸은 제국 전역에 인구 조사를 실시하고 분할된 통치 체제를 재조정하여 중앙집권화를 강화했다.<br>카안(대칸)이라는 칭호는 칭기스가 죽은 이후, 아마도 그의 손자 쿠빌라이에 의해 1264년경에 수여됐을 것이다. 알타이 민족들은 백색과 9라는 숫자를 길한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흰 깃발인 툭(tuq)은 초원 민족들에 대한 칸의 독점적 주권의 상징이 됐다. 1211년 이전부터 몽골인들은 자신들의 정치 체제를 대몽골국(大蒙古國, YekeMongol Ulus), 즉 몽골 제국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는 금의 중국식 명칭인 대금국(大金國)을 모델로 삼은 것이며, 한문 사료에는 대몽골국 또는 대조(大朝)로 기록됐다. 몽골의 집회에서 필수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잔치를 베풀고 상을 배분하면서, 이들은 제국 설립과 새로운 지배 엘리트의 추대를 위한 기반을 명문화하고 신성화했다. 몽골 사회의 무법과 폭력을 질서와 규율로 대체하려는 욕구는 곧 칸의 제도 개혁의 추진력이 됐다. 여기에는 초원 민족을 재편성하기 위해 칭기스 칸의 추종자들, 특히 영웅적인 행적을 보인 인물과 눈에 띄는 충신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의례도 포함됐다. - P52~53몽골이 영토를 급속히 확장하고 그에 따라 많은 비유목 민족들과 땅들을 흡수하면서 기회와 위기가 동시에 발생했다. 칭기스칸이 고향을 떠나 진군했을 때의 원래 목적(복수와 약탈)은 변화했다. 정복은 이제 신성한 사명이 됐다. 유라시아 초원은 점차 온전한 통일을 향해 가고 있었으며, 이는 우구데이에 의해 완성됐다. 이로 인해 초원 주변의 정주 문명들은 칭기스의 후계자들이 계속 확장해나가는 제국에 저항하기 어려워졌고, 결국 그 일부로 편입될수밖에 없었다. - P95<br>앞선 통일 제국 시기(1206~1260년)를 지나고 이제 후계자들에 의한 통치가 이어지게 된다.&nbsp;<br>먼저 대원 울루스(1260~1368년)로 이곳은 우리에게 원나라로 익숙하다. 뭉케에 이어 아릭부케와의 승계 전쟁에서 이기고 집권한 쿠빌라이는 국호를 '원'으로 정하고 대도(베이징)로 수도를 옮겼다. 그는 몽골의 공식 언어인 ‘팍바문자’를 도입(공식 문서 등 대외용 문자)했다. 그리고 대외적으로 남송 정복을 시작으로 일본, 베트남, 참파, 버마, 자바까지 진출했다. 원은 화폐를 발행하기 시작한 뒤 대내외 활동으로 화폐 양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러나 14세기 무렵이 되면 계속되는 해외 원정으로 국가 재정이 적자에 빠진다. 이후 제국은 기근, 역병이 들어 도적과 무장 집단이 증가하였고 지역 군벌들이 힘을 키우며 자연스레 제국 중앙의 힘은 빠지게 되었다.쿠빌라이는 집권 말기에 실패를 거듭했지만, 그의 남중국 정복은 카안의 울루스에 몽골 세계의 유일무이한 지위를 부여했다. 이는 제국의 원래 중심지인 몽골과 멀리 떨어진 해외 조공국들을 모두 아우르는 권위였다. 또한 이 정복은 몽골 통치자들에게 해양세계에 대한 인식을 열어주었고, 몽골 시대의 유명한 문화 교류를 활성화한 제도들의 정점이 됐다. 페르시아와 중국의 톨루이 계열통치자들은 이 전례 없는 해상 연결을 통해 중동과 동아시아 문명의 독특한 융합을 이루어냈고, 이는 청에서 오스만튀르크에 이르는 후대 유라시아 정권들에 영향을 미쳤다. - P294<br>뭉케는 훌레구에게 지금의 이란 지역의 총독을 맡겼다. 훌레구의 임명은 훌레구 울루스(1260~1335년)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훌레구 울루스는 일 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일 칸’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는데, 이는 ‘칸’이 아니라 ‘일’에 대한 해석 차이에서 기인한다. 일반적으로 ‘일’은 종속의 표시로 훌레구의 지위가 형 뭉케와 쿠빌라이에 비해서 낮음을 일컫는 것이다. 그렇지만 훌레구 울루스는 화폐에 ‘일 칸’이라는 용어를 왕조 초기부터 꾸준히 사용하였다. 아무튼 훌레구가 세운 이 왕조는 이란과 아제르바이잔을 중심으로 서남아시아에 영향력을 미쳤다. 가잔 칸은 과세 방식 개선, 도량형 표준화 등 개혁을 통해 국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이후 아부사이드 치하에서 왕조는 이슬람 문화를 기반으로 번영했으나 후손이 끊기며 막을 내렸다. 보시다시피 훌레구 울루스는 다른 울루스에 비해 그 역사적 기간이 짧다. 우선 훌레구 울루스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이란과 중앙아시아 사이의 국경이 불안정했다. 차가다이 세력은 주기적으로 습격하였고 주치 가문 역시 울루스 북부를 지속적으로 위협했다. 또 이집트의 맘룩 왕국은 주치 가문과 상호 의존 동맹을 맺으며 위협에 힘을 보탰으니 훌레구 울루스는 오래 유지될 수 없었던 것이다.&nbsp;그럼에도 훌레구 울루스는 이슬람 신학과 철학을 넘어서, 동방 이슬람 세계의 다양한 문화적 표현이 발전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P389)는 의의를 가진다.&nbsp;<br>금장 호르드에 소속된 민족들은 주치의 이름을 따라서 주치 울루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주치는 처음에 서몽골과 시베리아 삼림 지역을 기반으로 시작하였는데 나중에 호레즘의 오아시스와 서부 초원을 받은 데 이어 정복 활동으로 러시아의 여러 공국, 크림반도, 볼가-우랄 지역, 북캅카스까지 몽골 지배 하에 두게 되었다. 금장 호르드(주치 울루스: 1260~1502년)는 이슬람교를 수용하여 중앙아시아, 동유럽, 러시아에 이를 확산시켰다. 바투의 동생 베르케 때 이슬람으로 개종한 뒤 이후 금장 호르드의 통치자들은 자신을 술탄이라 부르며 주화에 새겼다(물론 칸이라는 용어도 썼다). 또한 지배층은 무슬림의 다양한 행정 인력을 등용하여 실용적이고 효과적인 시스템을 구축했다. 동슬라브 지역에 있던 공후들은 칸들과 혼인 동맹을 맺고 군사 지원과 면세 혜택을 받으면서 점차 부상했다. 이는 특히 모스크바 공국의 출현을 이끌어냈다. 우즈벡 칸 시대에 황금기를 맞이했으나, 이후 흑사병의 유행과 내부 갈등, 티무르의 견제 등으로 쇠퇴했다. 이후 여러 칸국으로 분열되었으며, 훗날 모스크바 공국이 금장 호르드의 영향력을 대체하게 되었다.&nbsp;<br>마지막으로 후계국 중 하나인 차가다이 울루스다. 안타깝게도 기록이 가장 적고 연구도 미비하다고 한다. 나도 차가다이 울루스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차가다이 울루스는 여러 국가 사이에 끼어 있었던데다 잦은 전쟁과 인재 유출로 어려움을 겪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미비했던 이곳이 몽골 제국의 해체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이후 티무르 제국과 인도 무굴 제국의 발원지가 되었다. 차가다이 울루스는 델리 술탄국이나 맘룩 왕국 같은 나라들, 교황청과도 관계를 맺었다. 뭉케 사후 차가다이 울루스는 톨루이 가문과 계속해서 갈등했다. 그렇지만 차가다이 가문은 권력을 계속 이어가 17세기 후반까지 모굴리스탄을 통치했고 그의 후손들은 20세기 초까지 신장에서 권력을 유지했다.몽골 중앙아시아는 ‘몽골의 시대’라고 불리는 번성했던 경제적, 문화적 교류에 참여했으며, 중심지라는 위치에 비해 두각을 드러낸 것은 아닐지언정 그 일원이었다. 강력한 칭기스 칸 계통의 정체들 사이에 끼어 있었고 중국과 이란에 견줄 만한 정주 기반이 부족했던, 경쟁하는 두 울루스의 본거지인 중앙 몽골 울루스는 몽골 정체들 중에서 패배자로 간주되었다. 이는 중국, 이란, 러시아와 달리, 우구데이와 차가다이의 영역을 물려받은 현대 국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몽골 중앙아시아는 단순히 지속했다는 사실 이상으로 몽골과 세계 역사에 그 흔적을 남겼다. - P640&nbsp;<br>한반도의 고려 역사와도 관련 있는 대원 울루스는 익숙하지만 이 책으로 더 세밀히 알게 된 부분도 있어 소득이 있었다. 훌레구 울루스와 금장 호르드는 지리적으로 멀고 문화적으로 멀어서 늘 어렵게 느껴졌는데 이제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간 것 같아서 좋다. 차가다이(중앙 몽골) 울루스는 상대적으로 몽골사에서 비중이 낮게 부여되었던 부분이었는데 그 영항력이 결코 작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nbsp;다만 정치사라고 하기에는 실제를 다 담지 못하는 것 같다. 정치 뿐 아니라 경제, 문화, 종교 등의 분야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근까지의 역사 동향을 알려준 것이 좋았다. 전문가들의 다양한 견해, 그리고 저자의 의견, 반론 등을 실어 독자로 하여금 객관적인 눈을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몽골 제국의 폭력성에 주목했던 경우도 있었다면 팍스 몽골리카에 주목하며 경제적, 문화, 종교적 영향에 주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것도 한쪽에만 쏠려 있지 않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96/cover150/k382137905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69612</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3</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56691</link><pubDate>Mon, 04 May 2026 11: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5669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02137905&TPaperId=172566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98/coveroff/k502137905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98/cover150/k502137905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69838</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3</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55710</link><pubDate>Sun, 03 May 2026 20: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5571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02137905&TPaperId=1725571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98/coveroff/k502137905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98/cover150/k502137905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69838</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2</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54129</link><pubDate>Sat, 02 May 2026 20: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5412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22137905&TPaperId=1725412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97/coveroff/k422137905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97/cover150/k422137905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69753</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2</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52812</link><pubDate>Fri, 01 May 2026 21: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5281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22137905&TPaperId=1725281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97/coveroff/k422137905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97/cover150/k422137905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69753</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