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거리의화가의 서재 (거리의화가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03 Jun 2026 15:08:29 +0900</lastBuildDate><image><title>거리의화가</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155161733379275.jpg</url><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거리의화가</description></image><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남성 판타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00625</link><pubDate>Wed, 27 May 2026 22: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30062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12137808&TPaperId=173006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0/52/coveroff/k112137808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0/52/cover150/k11213780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05231</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남성 판타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95092</link><pubDate>Sun, 24 May 2026 21: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9509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12137808&TPaperId=1729509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0/52/coveroff/k112137808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0/52/cover150/k11213780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05231</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질병, 낙인 - [질병, 낙인 - 무균사회와 한센인의 강제격리]</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87170</link><pubDate>Wed, 20 May 2026 11: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8717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632532695&TPaperId=172871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860/70/coveroff/e63253269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632532695&TPaperId=1728717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질병, 낙인 - 무균사회와 한센인의 강제격리</a><br/>김재형 지음 / 돌베개 / 2023년 10월<br/></td></tr></table><br/>당신은 한센병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과거 문둥병, 나병이라고 불렸던 단어에 더 익숙하지는 않은가? 혹시 한센병의 발병 모습으로 감염력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한센병은 감염병이지만 실제 감염력이 상당히 약해 감염자와의 접촉횟수, 면역력에 따라 발병률이 달라진다. 솔직히 나는 한센병이라는 단어보다는 나병이라는 단어에 더 익숙했다. 소록도라는 곳에서 병을 치료하는 환자들이 있었는데 환경이 상당히 열악해 문제가 있었다 정도만 인식하던 세대였다. 1980년대만해도 2만 7천여 명에 달했던 한센인이 있었다는데 대다수가 시설에서 생활하거나 도시에 나가 산다해도 사회적 인식 때문에 자신의 병을 철저히 숨기며 살았다고 한다. 일부러 들여다 보지 않으면 나처럼 이들의 존재와 역사를 제대로 모르고 살아왔을 확률이 클 것이다. 저자는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실시한 ‘한센인 인권 실태조사‘에 참여하면서 한센인들을 처음 만났고, 이후 그들의 삶과 역사를 들여다보게 되었다고 한다. <br><br>한센병은 1873년 노르웨이 의사인 한센이 원인균을 발견한 이후 명명된 질병이다. 한센병은 그 역사가 길지만 19세기 중반 유럽에서 세균을 통해 감염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한센병에 걸린 사람을 찾아내 고립시키거나 격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현실로 구체화되었다. 제국주의 바람이 불면서 인종주의에 과학주의가 결합하여 식민지 환자에 대해서 별도의 강제격리 정책의 필요성이 부각된다. 그렇게 조선에서도 1916년 소록도에 병원 건립이 시작된 뒤 1917년부터 병원에서 환자를 받기 시작했다. <br>1917년 부랑 한센병 환자에 대한 격리가 시행되면서 1920년대 이후 부랑 한센병 환자들이 급증하였다. 1915년에 만들어진 전염병 예방령에는 급성전염병에 대한 제한만 담겨 있었으나 전염율이 낮은 한센병에도 적용되었다. 이후 명확히 감염 경로가 밝혀지지 않는 경우에도 의심되는 모든 것을 규제, 거부하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한센병 환자는 가족의 기피, 냉대는 물론이고 심하면 가족 간 불화로 이어지면서 자살하거나 가족 구성원에 의해 살해당하는 일까지 발생하였다. 문제점을 인식한 이들이 조선나근절책연구회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었으나 조선총독부에 의해 해산된 후 가담한 주요 인사들이 총독부 주도의 단체로 흡수되었다. <br><br>그렇다면 한센병에 관한 초기 치료법은 무엇이었을까? 효과가 입증된 치료제로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대풍자유로 1910년대 서양 나병원과 소록도자혜의원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대풍자유는 대풍자나무의 열매인 대풍자 속 씨앗에서 추출한 기름으로 고대부터 인도, 버마 등지에서 피부병에 쓰이던 것이라 한다. 1857년 경 인도 벵갈에서 활동하던 의사 모넷이 한센병 치료에 써 효과를 보면서 유럽에도 알려졌으나 특유의 악취, 자극이 있어 주로 다른 물질과 혼합하여 사용하였다. 조선에서는 1915년 무렵부터 쓰이기 시작, 서양 나병원에서 사용을 하다가 1921년경부터 소록도자혜의원에서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풍자유는 병이 더 심해지지 않도록 막는데 효과가 있었을 뿐이었다. 병의 완치 기준을 두고 세균학자와 임상의의 입장이 서로 달랐다. 세균학자는 세균 유무로 판단했다면 임상의는 건강의 회복 여부로 판단했던 것. 때문에 1920년대 중반 이후 사회 내에서 한센병이 완치할 수 있다는 인식이 약화되며 나병원을 점차 요양소(요양원), 수용소로 변경해서 부르기 시작했다. ‘소록도자혜의원‘은 1934년 ‘소록도갱생원‘으로 변경되었다. <br><br>초기만 해도 소록도자혜의원은 치료의 목적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변경된 명칭을 보면 느끼겠지만 1930년대 이후 일본과 그 식민지에서 한센병 관리 정책의 강화로 모든 한센병 환자를 시설에서 죽을 때까지 격리하는 정책이 발표되며 그 성격이 바뀌었다. 더불어 1935년 조선나예방령 공포로 환자들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 출입하기 어려워지고 경제활동을 하기 어려워졌다. 병원 내 환자들의 수용 인원이 점차 늘면서 확장 공사를 위해 환자들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1935년 1차 확장 공사, 1936년 2차 확장 공사가 진행되며 부족한 예산 문제에 봉착하자 병원은 환자들을 더 쥐어짠다.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환자들을 상대로 강제모금을 하고 먹는 배급량까지 줄였으며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구금하는 등의 짓을 벌인다. 1939년 3차 확장 공사 때는 선착장 공사 및 도로 공사, 직원 관사, 병사, 창고 등의 건물을 건설하는 일에 환자들을 동원하여 마침내 세계 최대 규모의 수용시설이 탄생하게 되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일에 동원되니 환자들의 생활 수준은 급격히 나빠졌고 소록도는 그렇게 죽음의 섬으로 변화했다. 남녀를 분리하여 수용하던 것에서 1936년 단종수술을 전제로 한 부부생활을 허용하면서 단종수술과 낙태수술을 가했다. 이는 환자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한 방편이었다. 참다 못한 환자들은 섬에서 탈출을 시도하기도 하고 직원을 살해하거나 다른 환자를 살해하거나 원장을 살해하는 사건(1942년 이춘상이 원장 스오를 칼로 찔러 죽였다)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br><br>한센병 환자들에게도 광복은 찾아왔다. 그러나 광복은 조선사회에서 한센병 환자에게 가해지던 폭력성을 제어할 통치자가 사라진 것 뿐이었다. 직원들의 폭력은 여전했고 먹을 물자는 계속 부족했다. 그러나 김형태 원장이 부임한 후 소록도를 개선하려는 노력에 환자들은 반색했다. 학교를 설립하고 환자 자치제를 도입하는 등 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반면 직원들은 그의 행보에 불만을 표했다. 결국 김형태 원장이 해임되고 횡령 혐의로 체포되면서 소록도 시스템은 다시 이전의 식민지 정책으로 회귀했다. 특히 흉골골수천자법으로 한센병균을 검출하려는 시도는 심각한 인권 침해였다. 사실을 알게 된 환자들은 조직적인 저항을 벌였다. 불만 일부를 해소하기 위해 병원 당국은 흉골골수천자와 노역을 중지시켰으나 환자 자치회를 해산시키고 병원 명령을 수행할 조무원 제도를 부활시키며 환자의 요구를 외면했다. 병원을 탈출한 환자들이 도시에서 부랑하자 전국적인 사회문제가 되었다. 이에 미군정이 개입한다. 1945년 말부터 전국 각지에 임시수용소를 두어 부랑 한센병 환자를 수용하기 시작했다. 일부 나병원은 국영으로 전환하였다.<br>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센병 신약도 개발되어 도입되었다. 1953년 프로민 등 DDS제가 표준 치료제가 기존의 대풍자유보다 치료 효과에 도움이 됨이 증명되었고 인도에서 개발한 댑손이 1951년 한국에 수입되어 1953년 전국적으로 보급되었다. 특히 댑손은 경구용인데다 효과도 더 좋고 저렴하여 주요 치료약으로 자리매김하였다. <br>국제사회는 엄격한 강제격리에서 점차 상대적인 격리를 지지하는 입장으로 변화함에 따라 환자의 인권도 고려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WHO나 UNICEF를 통해 남한의 보건정책 수립, 실행을 지원하기로 한다. 한국전쟁으로 한센병 지원 사업은 1961년부터 시작되었고 그 결과 한국의 한센병 상황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br><br>1949년이 되면 소록도에 환자를 집중 격리하는 한센병 관리체계에서 환자를 전국에 분산하여 격리하는 체제로 변환하라는 정책이 결정되면서 지역 분산 격리체제가 완성된다. 1957년 2월 28일부터 시작된 전염병예방법은 식민지 시기 전염병과 관련된 여러 법을 통합시킨 것으로 한센병은 만성전염병으로 분류되어 제3종 전염병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환자 관리에 있어서는 중대 질병으로 분류되는 제1종 전염병과 동등하게 취급하고 이전처럼 격리시설에서 환자를 격리하여 통제 권한을 시설 원장에게 부여하는 한계가 있었다. 1963년 개정된 전염병예방법을 통해 완치된 환자와 전염성이 없고 정부 방침을 잘 이행하며 머무를 집이 있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사람에 한해 강제격리 대상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때문에 한센병 환자에 대한 엄격한 통제와 강제격리가 폐지된 것처럼 보여 격리가 폐지되었다는 평가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전염병예방법에 신설된 조항과 이후 개정된 내용, 한센병 관리 운영 방식을 통해 그런 평가와는 현실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br>한편 한센병 환자의 사회복귀를 위해 기능복구사업과 궤양치료, 정형(+성형)수술, 재활훈련과 이동진료 등이 실시되었다. 그러나 격리 환자들은 여전히 감금실, 결핵병동, 정신병동 등 또 다른 격리시설에 수용되어 이중격리를 경험했다. 특히 격리 환자들의 자녀는 언제든 발병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 부모와 분리, 국립삼육학원에 수용되어 보육되었다. 아이들은 전염병 관리대상인 동시에 연구대상으로 쓰였다고(상상하기도 싫다). 정부는 임상 증상이 사라지고 균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아직 완치되지 않은 환자를 음성나환자로 분류하여 정착마을 사업을 진행하였다. 그런데 정부는 사업 부담을 음성나환자와 정착마을 인근 주민에게 떠넘기면서 갈등을 조장했고 그로 인한 한센인에 대한 낙인, 차별은 영속화되었다. 한센병 환자들은 한번 환자로 등록되면 음성환자가 된 후에도 평생동안 기록에서 제거되지 않고 계속 환자로 남았기 때문에 이는 편견과 차별을 강화하는 기제가 되었다. <br>1970년대 이후 한센병 환자가 다시 재발하는 문제가 일어나 정부의 고민이 깊어진다. 1983년 MDT 치료제가 도입되고 나서야 비로소 환자 수가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br><br>치료약으로 한센병 완치가 가능해졌음에도 한센병 환자에 대한 낙인과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 시장 개방화와 축산업의 기업화로 축산업으로 생계를 잇던 정착마을 중 대도시는 가구공장 임대업으로 전환하며 살아남았으나 농촌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한센인들은 정착마을에 대한 법률적제도적 개선 방안을 정부에 요구하기 시작했다.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는 일본에서 먼저 이루어졌다. 일본정부를 상대로 한 한센인의 소송(그 결과 2006년 법이 개정되고 한국 한센인들이 보상을 받음)은 한국사회에서 한센인의 낙인, 차별, 배제 문제가 공론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 시민사회가 먼저 일본법에 근거해 피해보상을 위한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이 소송을 계기로 한국도 한센인에 대한 인권침해 문제가 사회적으로 알려진다. 이후 한센인사건법이 제정되어 피해자에게 의료지원금과 생활지원금을 지급하고 국가가 한센인 피해사건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결실을 거두었다. 그러나 일본과 대만의 한센인 보상법은 한센인이 국가에 의해 일정 기간 강제격리됐다는 것이 인정되면 일괄 보상하도록 명시한 반면 한국의 한센인사건법은 인정받은 피해자에 한해서만 생활지원을 하게 했다. 더군다나 1963년 강제격리가 폐지되었다고 규정함으로써 이후 강제격리문제를 비가시화하고 그 피해를 온전히 규명하지 못했다. 또 피해 대상을 한센인으로 제한해 그 가족에 대한 피해 조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한센인권변호단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소송한 제기에서 정관수술, 낙태수술 등의 강제수술을 받아야 했음을 알렸다. 2017년 최종 원고승소 판결이 확정되었는데 위자료 산정에 있어 병원 측에서 원고인 한센인 측에 예산과 인력을 투입한 점을 감안해 감액하여 원고 측 요구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br><br>이렇게 한센인을 위한 법률적, 생활적 지원의 길은 열렸으나 여전히 사회구조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 책을 통해 국가가 선택하여 시행한 정책이 무엇이었고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860/70/cover150/e63253269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8607042</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일상, 장미의 계절(2026.05.18)</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84061</link><pubDate>Mon, 18 May 2026 15: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8406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833773&TPaperId=1728406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611/69/coveroff/k09283377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632532695&TPaperId=1728406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860/70/coveroff/e632532695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어느덧 장미가 지천인 계절이 되었다. 주말에 산책을 나갔다가 장미를 많이 만났는데 참 좋았다. 장미는 붉은 잎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이맘때쯤 연둣빛, 초록빛 나무와 대비되어 더 쨍한 느낌을 준다. 더군다나 요즘 햇빛이 참 눈부신지라 그 색깔이 더 곱게 느껴진다.&nbsp;사실 나에게는 장미가 6월의 꽃이다. 예전에도 페이퍼에서 언급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고등학교 때 교화가 장미였고 항상 6월에 축제를 했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축제 준비로 5월부터 바빠서 축제가 지나고 나면 번아웃 비슷한 것이 왔었다ㅋㅋ 세월이 흘러도 등나무 그늘과 써클실, 운동장 교단은 여전히 그 기억이 또렷하다.&nbsp;<br><br><br><br><br><br><br><br><br><br><br><br>지난 주말은 산책 말고는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책을 읽고 낮잠을 자고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주말에 읽은 책은 &lt;질병, 낙인&gt;, &lt;오월의 정치사회학&gt;이다. &lt;질병, 낙인&gt;은 이번 주 책모임용 책이었는데 읽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덧 일정이 코앞이라 후다닥 읽었고 &lt;오월의 정치사회학&gt;은 5.18에 맞춰서 읽었다. 원래 낮잠을 자는 편이 아니었는데 생체 리듬이 바뀐 건지 아침 나절 책을 몇 시간 읽고 나면 졸음이 쏟아져서 종종 자곤 한다. 졸면서 책을 읽을 수는 없으니까^^; 요즘 보는 드라마는 &lt;삼국지&gt;랑 어느 가족드라마다. &lt;삼국지&gt;는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으나 95부작으로 워낙 길어서 아직 1/3쯤 봤나보다. 명장인 여포의 죽음이 나왔는데 그가 죽을 때보다 그의 책사인 진궁이 죽을 때 더 감동적이었다. 조조는 진궁을 잡고 싶었으나 진궁은 자신을 보내달라며 죽음을 택한다. 조조가 노모와 가족들을 보살펴줄 것을 알고 있다고... 멋진 풍경을 보며 한 마디 하고 감탄하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가족드라마는 사람 많은 집에 바람 잘 날 없다고 돌아가면서 사고를 치는 통에 울화통이 터진다. 그럼에도 서로를 보듬고 나아가는 과정을 보면 따뜻함을 느끼기도 한다. 늘 느끼지만 결국 가족이 없는 이는 없으니까 결국 사랑하는 두 사람이 있더라도 그들만의 관계는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다.<br>지난 주말은 사실 지지난주 주말에 너무 놀아서 체력이 방전된 탓에 쉬어줘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nbsp;오랜만에 시가 모임을 갔더니 술을 마셔야 해서 힘들고(어찌나 말술들인지...) 사람들과 수다를 떨어야 해서 힘든 상황이ㅎㅎㅎ 그래도 항상 우리가 가면 반가워하고 챙겨주려고 하셔서 감사한 마음은 든다. 매년 6~7월쯤 모임을 하다가 5월에 모임을 가지니 날씨도 더 쾌적하고 여행하기에 좋았다. 게다가 매년 시가 근처에서 모임을 가졌는데 이번에는 장소를 아예 바꾸어서 진행했더니 새로웠다. 몇 년만에 충주를 다녀왔는데 놀멍 술멍하며 즐겁게 놀고 왔다. 일찍 출발하여 오전에 시간이 있길래 옆지기와 데이트를 했다. 탄금대 공원이랑 충주박물관을 보고 맞은편에 중앙탑공원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칠층석탑을 구경했다. 탄금대 공원에 갔다가 길을 잘못 들어 계단을 몇 번 더 오르락내리락했는데 덕분에 옆지기는 관절통을 호소하고ㅎㅎ 충주박물관은 스탬프를 다 찍으면 칠층석탑 키링을 주어서 덤으로 기념품도 챙겨서 기분이 더 좋았다. 석탑 인증샷 찍으려고 기다렸지만 사람이 계속 와서 석탑만 찍는 것은 포기했다.<br><br><br><br><br><br><br><br>5월도 어느덧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젠 낮에 초여름 이상의 기온으로 올라서 덥다 느껴진다. 그래서 저녁에 산책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그래도 아카시아 향을 맡으며 장미를 품을 수 있는 계절이 지금이다. 만끽하시길!<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860/70/cover150/e63253269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8607042</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오월의 정치사회학 - [오월의 정치사회학 - 그날의 죽음에 대한 또 하나의 시선]</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83653</link><pubDate>Mon, 18 May 2026 11: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8365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833773&TPaperId=1728365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611/69/coveroff/k09283377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833773&TPaperId=1728365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오월의 정치사회학 - 그날의 죽음에 대한 또 하나의 시선</a><br/>곽송연 지음 / 오월의봄 / 2023년 05월<br/></td></tr></table><br/>이 글은 ‘어떤 죽음에 관한 보고서’이다. 그러나 그 죽음이 어떻게 남은 자들의 삶 속에서 재인식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국가의 기억은 억압된 그리고 저항하는 개인의 기억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또 수용소 정치, 그리고 ‘감시와 처벌’이 잇따른 총체적 권력의 횡포는 질식된 시민으로서의 자유를 애도하는 근거가 된다. 폭력의 그늘은 평화의 빛으로 더욱 밝게 반사되고, 이성을 회복하라는 국가의 경고는 내 이웃들의 희생에 기꺼이 공감하는 감성에 무력해진다.<br><br>5.18이 다가오기에 어떤 책을 읽을까 하다가 눈에 들어와 고른 책이다. 사실 매해 기념일마다 관련 책을 읽지 못하지만 이런 기회가 아니면 그 중요함과 가치를 망각하고 흘려보내기 쉬운 것 같다. <br><br>저자는 제노사이드와 민주주의 정치문화를 연구하는 정치사회학자로 박사논문이 다름아닌 5.18이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그는 남도 부근에서 성장했으나 그때 쉬쉬하던 분위기를 기억한다고 한다. 그는 5.18에 대해 가해자의 행동에 주목하고 그 의도가 대체 무엇이었을지 질문한다. ‘죄의식도 망설임도 없이 한낮의 폭력을 전시한 잔인한 군인들과 지휘관들. 그들은 왜 그런 일을 벌였나? 그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광주는 왜 고립된채 도움을 받을 수 없었는가?‘ 이 책은 5.18에서 벌어진 학살의 실태, 그 원인과 영향을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내놓은 결과물로 가해자에 대한 논의를 다룬 것이 특징이다. <br><br>5.18 가해자들은 어떻게 탄생되었을까? 5.18 당시 가해자들은 고위간부&지도자와 정규군(특히 특전사)으로 나뉜다. 고위간부&지도자는 안정, 안보, 발전에 따른 군부 권위주의 정권 담론에 기대 12.12와 5.17에 이르는 다단계 쿠데타를 기획하고 5.18에서 신군부 조직을 이용하여 실행했다. 정규군은 친위부대, 장기근속자 위주의 전문특수부대로 명령체계에 따른 복종, 이데올로기를 주입받았다. 그들은 반공주의의 영향 하에 동료집단을 압박, 순응하는 시스템에 있었으며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을 통한 제노사이드의 경험으로 인해 실행력이 더해졌다. 특히 5.18의 죽음은 정규군, 그중에서도 특전사 부대원들이 계엄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br><br>제노사이드의 가해자들은 일반적으로 범죄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국가안보에 대한 도전 상황에서 지배 엘리트와 군대가 집단학살을 그 전략적 대응으로 선택하는 것에 이미 익숙할 것이며, 이들에 의해 지목된 집단은 대부분 완전히 파괴되지 않기 때문’이다.<br>제노사이드와 정치적 학살의 정의에서 핵심적인 개념은 ‘희생자의 특성’이 아니라 ‘국가의 성격과 의도’이다.<br><br>그렇다면 당시 대중은 왜 침묵했는가? 저자는 이를 스탠리코먼의 부인전략 이론을 기반으로 설명한다. 부인전략은 총기발사&자위권 발동의 전면적 부인, 완곡어법&책임전가의 해석적 부인, 필요성 강조&피해자의 존재부정&맥락화&자기중심적 대비인 함축적 부인이 있다. 먼저 5.18 당시 언론통제로 공식적인 논의 진행에는 한계가 있었다. 또 소문으로 떠도는 집단잔학행위에 대해 대중은 부인하거나 불신하는 태도를 보였다. 마지막으로 지식인은 사건을 방조하거나 협력했다. 사건에 대한 부인은 당시 뿐 아니라 현재까지 사람들 간 반목을 조장하고 사회와 국가 내 갈등을 심화시켰다.<br><br>학살 후 진실은 어떻게 은폐될 수 있었나? 국가는 학살을 정당화하거나 망각하는 방식으로 국가 공식 역사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오래도록 한민족이라는 기제는 민족의 통합이 당연하다는 논리 하에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게 만들었고 여기에 남북한으로 정부가 나뉘면서 이념에 기반한 차별은 더욱 강화되었다. 신군부 정부는 국보위 상임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삼청교육대를 설치하여 운용함으로써 전체주의의 지배원리를 실현시키고 배제를 합법화하는 법 제도를 정비함으로써 이를 구체화시켰다. 이는 국가 공식 기제에 반하는 것을 방해하는 세력으로 보고 모든 것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했다. 정부에 의하면 안정, 발전을 위해 안보는 필요하고 그 반대 급부로 민주주의는 극단적 민주론, 교조주의로 치부되었다. <br><br>보편/특수, 서양/동양, 선/악, 적/아我의 구분을 전제한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 구조는 이 시대의 지배 담론을 관통하는 인식론적 기저였다. 이 논리에 따르면 일명 교조주의, 극단적 민주론으로 지목된 민주주의의 가장 큰 과오는 위기를 자초하는 ‘혼란’이다. 이로 인해 ‘혼란’은 국가가 지목한 서구식 민주주의의 가장 큰 폐해인 동시에 시대를 진단하는 대표 키워드로 반드시 경계해야 할 ‘절대 악’으로 상정된다. 그 이유는 ‘국제정치와 세계 경제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북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서구와는 다른 ‘특수’ 상황에 있으며, 민주주의는 내부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해 안보와 안정, 발전을 저해하고, 결국 ‘국기마저 위태롭게’ 하는 망국의 위기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담화문이 진단하는 이 시대는 “구시대”의 위기와 혼란을 극복하고 “새 시대”를 맞이하는 일종의 “전환기” “분기점” “분수령”이며, 이를 위해 “총화” “단결” “단합” “통합”이 요구된다.<br><br>국가는 개인, 정당, 지역을 국가의 단결과 통합에 반대되는 사적인 이해 집합체로 분열과 갈등을 일으키는 주체로 대비시킨다. 광주는 불순분자의 배후가 있는 진원지로 대표되며 지역주의의 실현 모델이 된다. <br><br>그렇다면 학살은 왜 일어날까? 집단 간 격렬한 갈등이 있을 때 반드시 학살로 이어지는가? 저자는 5.18이 정치적 학살이라고 말한다. (일반적인) 제노사이드는 불평등이 민족, 종교, 인종, 사회경제적 차별 위에 중첩된 사회에서 벌어질 확률이 높다. 정치적 학살은 여기에 국가의 성격과 의도가 포함된 형태다. 한국의 쿠데타(들)는(은) 대항세력에 의한 체제 전복 위기를 폭력적 수단으로 해결하려 하면서 발생했다. 이념 갈등에 의한 사회균열운 정치적 균열을 만들어내며 유신체제를 복원할 것이냐, 아니면 민주화로 나아갈 것인가로 나뉘게 만들었다. 미국의 카터 집권 후반기 동북아 정책은 남한 정치의 국내 불안요소는 동북아 안정에 해가 된다 인식했고 이에 따라 5.18에 침묵(묵시적 동의)을 선택했다. <br>결론적으로 5.18은 반공주의, 배제적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군부 권위주의 엘리트들이 불특정 다수 민간인을 희생시킨 사례라 할 수 있다. <br><br>끝나지 않는 학살을 직면하기 위해서 우리는 남은 문제를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2021년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이 개정,공포되었다고는 하나 전두환을 포함한 5.18 학살의 책임자들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다. 또 현재도 여전히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 조작하고 이를 지역, 사회 갈등으로 만들어내려는 세력이 존재하기에 사건이 해결되었다는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는다. <br><br>반인권 범죄와 그 최극단인 학살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민주주의의 내면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다시 시선을 돌려 우리 안의 배제의 문화를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611/69/cover150/k09283377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6116984</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게이트우드 할머니의 발자국 - [게이트우드 할머니의 발자국 - 숲으로 걸어간 할머니, 엠마 게이트우드의 놀라운 여정]</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78392</link><pubDate>Fri, 15 May 2026 16: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7839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942638598&TPaperId=1727839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32/52/coveroff/e942638598_4c9d.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942638598&TPaperId=1727839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게이트우드 할머니의 발자국 - 숲으로 걸어간 할머니, 엠마 게이트우드의 놀라운 여정</a><br/>벤 몽고메리 지음, 우진하 옮김 / 수오서재 / 2026년 04월<br/></td></tr></table><br/>엠마 게이트우드는 미국 에팔레치아 트레일 도보 여행을 추진한다. 67세 여인이 두 발로 140여일의 시간을 걸어 트레일을 완주하다니 놀라웠다. 사실 67세가 할머니라고 하기에는 이제는 그 호칭이 어색한 것 같지만 1950년대만 해도 고령의 나이에 속했을 것이다. <br>더군다나 그녀는 도보 여행을 떠나기 전 자식들에게 그 사실을 숨기고 몰래 떠났다. 그 용기와 대담함이 놀라웠다. 자식들의 반응도 놀라웠던 것이 ˝어머니는 그러고도 남을 분이죠.˝라며 쿨하게 받아친다. <br><br>물론 그녀는 트레킹을 하기 전 충분한 준비를 했다. 평소에도 걷기는 꾸준히 해와서 체력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준비물을 최소한으로 하고 짐은 봇짐 하나가 다였다(무게는 7kg 정도). <br>에팔레치아 트레킹은 몇몇 사람이 도전하기는 했지만 게이트우드 전에 풀코스로 완주한 이는 단 몇 명에 불과했다.  <br><br>트래킹을 하는 동안 그녀는 길을 잘못 들어 헤매기도 하고 폭풍우를 만나 휩쓸릴 뻔하는 등 여러 번 위기에 처했다. 그 길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손을 내미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그녀를 놀랍거나 신기하게 본 이들이 지역 신문에 소식을 퍼나르면서 기사화가 되어 이후 인터뷰를 요청받는 등 점점 유명세를 타게 된다. 나중에는 그녀가 인터뷰를 피해다니는 지경에까지 이른다.<br><br>그렇게 게이트우드는 에팔레치아 트레일 풀코스를 끝내 완주한다. 심지어 한 번만 완주한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두 차례 더 완주했다고. 이후 그녀는 홍보대사 활동, 강연을 진행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그녀의 이름을 딴 트래킹 코스가 만들어지기도 했다고. 그야말로 미국 트레킹 여행의 전설이 되었다 할 수 있다. <br> <br>헌데 이 책의 장벽이 있다면 남편(페리)이다. 그의 이야기가 언급될 때마다 분노가 치미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제발 헤어져, 헤어지라고!‘를 수없이 외쳤다는. 11명의 자녀를 두었다는데... 어휴, 그 과정과 마음을 생각하면 내 속이 문드러지는 것 같았다. 그녀가 집을 박차고 나서 독립한 이유, 그리고 길을 나서서 또 다른 인생을 개척한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자식들의 인생 때문에 그녀는 몇 번이고 제자리에 앉았지만 결국 스스로 살기 위해서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입장과 마음을 이해해준 자식들의 마음도 공감이 갔다.<br><br>여행기이자 에세이지만 1950년대 전후 미국의 역사를 설명해주어 역사를 좋아하는 내게도 안성맞춤이었다. 내용이 그래서인지 자기계발서의 느낌도 좀 있었다. 힘든 상황에서도 결국 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스스로를 보듬었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덕분에 나도 희망과 긍정, 위로를 얻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32/52/cover150/e942638598_4c9d.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325221</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3 -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3 - 지역사·외부 역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65219</link><pubDate>Fri, 08 May 2026 21: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6521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02137905&TPaperId=1726521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98/coveroff/k502137905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02137905&TPaperId=1726521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3 - 지역사·외부 역사</a><br/>모리스 로사비 외 지음, 미할 비란 외 엮음, 김석환 옮김 / 사계절 / 2026년 04월<br/></td></tr></table><br/>1235년 카라코룸을 건설하기 시작했을 무렵, 몽골은 중앙아시아와 만주, 북중국의 많은 부분을 정복 및 점령했고 고려로도 진출했다. 우구데이 카안은 추가로 서방 원정을 계획했고, 이 원정은 러시아의 많은 지역을 정복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는 새로 획득한 영토를 약탈하기보다 이곳을 통치할 행정 중심이 필요함을 인정했다. 수도 건설은 몽골이 약탈자가 아니라 통치자로서 정통성을 한층 강화하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몽골 본토는 여전히 이동하는 목축민들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중앙집권화되지 않았다. - P16<br><br>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시리즈 마지막에 왔다. 시리즈를 구입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3권이기 때문에 기대감을 갖고 읽었다. 3권의 내용은 몽골 제국에 흡수되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통치된 지역과 당시 관계를 가진 지역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해당 시기 특정 지역에 어떤 국가가 세워지고 무너졌는지, 그리고 몽골이 행한 통치 방식은 어떠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br><br>우구데이는 제국 관리를 위해 카라코룸에 수도를 건설했으나, 이후 자연재해로 인한 환경적 요인, 카안을 둘러싼 권력 투쟁 등 내부 갈등으로 그가 다스리던 몽골 지역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우구데이 가문과 차가다이 가문 간 충돌의 결과로 원 조정은 1307년 몽골 지역의 군인뿐 아니라 주민을 위한 새로운 행정기구를 마련했다. 이러한 관료 기구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초원을 통치했을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유목민 가구와 집단은 광활한 몽골지역 도처에 흩어져 있었다. 청(淸, 1644~1911)과 몽골인민공화국(1924~1992. 1928년부터 1932년까지 가축의 집산화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도 목축민에게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하지 못했다는 측면에서, 몇몇 작은 마을들과 주변 지역, 그리고 거의 끝없이 펼쳐진 초원이 앞으로 설명할 정책들을 따랐을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게다가 조정에 있는 몽골인들은 원래 초원 출신이었지만, 많은 사람이 꽤 오랫동안 정주 세계에 거주했고 일부는 평생을 중국에서 보냈다. 그들은 유목민 사촌들과 연결이 끊겼고, 관심사와 정책 선호도도 달랐다. 이 몽골인들과 원 조정의 중국인 관료들이 고안한 행정기구가 과연 초원에서 효율적이었는지 여부를 규명하기는 어렵다(P34~35). <br><br>이후 권력을 잡은 쿠빌라이 카안은 원의 통치를 강화하기 위해 주둔군을 배치하는 대신 관료와 군인에게 물자를 공급하는 등 떡밥을 주는 정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시스템은 비효율적이었고 관리는 부패했다. 거기에 경제적 불안정이 더해지면서 막판에는 통치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여러 몽골 집단 사이의 충돌은 다양한 요인에서 비롯됐다. 그 가운데 하나는 중국에서 귀환한 몽골인과 몽골 지역에 남아 있던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었다. 중국에서 돌아온 피난민은 그 정확한 수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10만 명에 달했다. 이 새로운 집단은 목초지, 물, 가축 무리를 놓고 거주민과 경쟁했다. 따라서 식량과 필수품이 부족해졌다. 1388년까지 계속된 명의 공격으로 사태가 더욱 심해졌는데, 카라코룸에 위치한 보급 본부뿐만 아니라 토지도 손상됐기 때문이다. 이어진 명조의 무역 제한으로 몽골은 필요한 물품을 얻기 위해 중국을 침략해야만 했다. 이와 동시에 몽골은 분열 상태였다. 서몽골 집단 중 하나이자 몽골의 혼인 동맹이었던 오이라트가 칭기스 가문과 이른바 동몽골에 도전했다. 그들이 아릭 부케의 후손들과 손을 잡으면서 북원이 중국에 대한 권위를 되찾을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P44). <br><br>고려와 칭기스계 관계의 다른 측면들은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거의 30년(1231~1259) 가까운 파괴로 점철된 전쟁이 끝난 뒤 고려 황실은 1274년에 칭기스 가문 황제와 혼인 동맹을 맺었고 이러한 관계는 한 세기 동안 지속됐다. 칭기스계는 일부 초기 동맹 세력 및 지방 군주(콩기라트와 위구르 등)와 혼인 동맹을 맺었고, 몇몇 정치체(금, 남송, 맘룩)와는 장기간에 걸친 전쟁을 벌였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전쟁과 혼인이라는 두 가지 형태의 상호작용이 이처럼 눈에 띄게 결합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14세기 중반까지 고려는 동북아시아에서 칭기스계의 방벽이 됐고, 1380년대에는 정통성을 갖춘 국가로서 칭기스계의 지위를 인정하는 동아시아의 유일한 나라였다. - P51<br>이후에도 1380년대 내내 고려는 가문, 외교, 군사 이해, 공동의 역사 등 공식적, 비공식적 관계를 통해 원과 얽혀 있었다. 요동은 많은 고려 이주민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또 고려 이후 들어선 조선 왕조의 설립에 참여한 많은 주요 관료, 군인, 지식인이 몽골 치하에서 성장했다는 점에서 역사의 중요도를 가진다. 그리고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몽골 통치 시기 한반도는 중국을 넘어 유라시아 지역까지 더 넓은 네트워크에 연결되면서 많은 문화적 교류가 일어났다. <br><br>몽골은 1220년 코카서스 지역을 정복한 뒤 셋으로 나눠 노얀(지휘관)에게 분배하여 제국의 통제하에 두었다. 일 칸국(훌레구 울루스)이 성립한 이후 권력의 중심이 남쪽으로 이동하자 (몽골의) 코카시아에 대한 통치는 더욱 간접적으로 이루어졌으며 현지 귀족에 의존했다. 조지아와 아르메니아 귀족들은 백성들의 보호를 위해 대체로 몽골에 협조했다. 몽골은 복속민의 군사 원정 참여를 강제하였기에 아르메니아, 조지아 귀족들은 주치 울루스와 훌레구 울루스 간 전쟁에 참여한다. 훌레구 울루스의 가잔 칸이 권력을 차지하고 이슬람을 국교화하면서 기독교 탄압이 시작되자 귀족들은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켰다. 아부사이드 재위기 훌레구 울루스와 주치 울루스 사이 대립은 절정이었다. 조지아는 몽골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여기에 페스트까지 유행하자 지역은 쑥대밭이 되었고 티무르의 침입이 더해지면서 쇠락하였다. <br>몽골 제국의 탄생은 중세 국제 무역의 역사에서 중대한 사건으로, 캅카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몽골의 정복은 새로운 무역로를 열었고, 서유럽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지역에서도 국제 무역이 활발해졌다. 몽골은 캅카스의 주요 경제 중심지를 수없이 파괴했지만, 생산과 교환의 중심을 다른 곳으로 이전함으로써 이전에 국제 무역에서 소외됐던 타브리즈와 마라가 같은 도시들을 성장시켰다. - P127<br><br>˝시베리아˝라는 지명은 13세기에 작성된 「몽골비사」에 처음 등장하는 시비르, 즉 오비강과 예니세이강 사이에 거주하던 사람들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15세기까지 러시아에서 시비르는 오비와 이르티시 지역을 가리켰고, 러시아가 동쪽으로 빠르게 진출하면서부터는 우랄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북쪽 지역 전체를 의미하게 됐다(P139). <br>몽골은 시베리아의 삼림 지대를 군사 자원의 원천으로 보아 복속을 시도했으며 원 조정은 캅카스 지역의 귀족들 상대로 한 것처럼 간접 통치 방식을 사용했다. 그러나 몽골이 루스에 정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야를릭을 하사하고 공물을 받은 것에서 입증되듯 몽골은 루스를 지배했다(P203). 몽골의 통치권은 인구조사와 공물 납부, 그리고 루스 공작들의 몽골 군사 원정 참여를 통해서도 관철됐다. 일반 루스인들은 몽골군에 징집되거나 강제 노동에 동원될 수 있었고, 특히 숙련 장인의 경우는 더욱 그러했다. 공작들은 주치 울루스를 자주 방문했고, 때로는 수개월, 심지어 몇 년 동안 그곳에 머물렀다(P180). 또 루스 공작들 중 몽골 지배층과 혼인하는 경우도 많았다. <br><br>유럽, 아랍, 남아시아는 몽골이 직간접적으로 지배한 곳은 아니지만 이 시기 유라시아로 네트워크가 확장되어 연결된 만큼 서로 많은 교류가 이루어졌다. 이 책에서 외부 역사로 파트를 따로 다룬 이유다. 특히 무역과 상업, 종교, 과학과 기술 분야는 (지금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상당히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다. <br><br>유럽은 13세기 무서운 몽골 군대의 힘을 경험하면서 붕괴에 가까울 정도로 강한 충격과 파괴에 대한 두려움을 받으며 몽골이 어떤 나라인지 비로소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후 유럽은 몽골의 지속적인 위협을 받았으나 유럽인들은 몽골의 존재를 서서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몽골과 몇 차례 외교 소통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실제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이는 몽골의 내부 분열로 분권화하고 울루스들이 서로 다른 외교적 노선을 취했기 때문이다. 정치 외교적으로는 잘 풀리지 않았지만 상업 경제적으로는 달랐다. 흑해에 이탈리아 해양 세력, 제노바와 베네치아가 무역을 확대하자 러시아와 일 칸과 직접 대면하게 되었다. <br>유럽과 몽골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 존재는 아마도 선교사와 상인일 것이다. 특히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까지 선교사가 들어오면서 기독교의 영향이 확산되었다. 초기에 몽골이 유럽을 침공했었으나 그 침략의 충격을 극복하고 나자, 둘은 정치적, 상업적, 종교적 측면에서 관계가 발전했다. 정치적, 외교적 계획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이탈리아 해양 세력의 아시아 시장 진출은 호혜적 무역을 위한 유라시아 대륙로를 열었고, 흑해 식민지와 지중해 동쪽 항구라는 결절점을 통해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했다. 하지만 상인과 선교사는 자신이 활동했던 사회로부터 매우 분리된 상태로 지내며 몽골 지배층 내에 확고히 자리 잡았다(P238). 상인과 선교사가 유럽에서 주기적으로 왔다 갔다 한 것이 아니고 몽골 내에 자리 잡고 관계를 맺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br><br>몽골은 1219년 호레즘 왕국을 침공하면서 아랍 세계와 처음 맞닥뜨리게 되었다. 40년 뒤에는 이라크를 몽골 지배 하에 둔다. 또 1260, 1300년에 두 차례에 걸쳐 시리아를 침공한다. 시리아는 몽골로부터 두 차례의 침공을 받았으나 몽골이 잠시 점령한 뒤 얼마 후 맘룩이 지배권을 되찾기 때문에 그 영향이 크지는 않았다. 그래도 몽골이 아랍-중동에 진출한 이후, 사람들이 이라크, 자지라, 아나톨리아 등지로부터 시리아와 이집트로 이주하는 인구 변화가 발생했다. 맘룩-일 칸국(훌레구 울루스) 국경 지역에서는 일부, 어쩌면 상당한 정도의 문화 교류가 있었고, 이는 1320 년대 초 ‘평화 협상 과정‘과 함께 확실히 증가했다. 몽골이 아시아를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개방한 것은 확실히 이집트의 술탄국, 그리고 예멘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한 가지 영향만 특별히 꼽아야 한다면, 그것은 맘룩이 시리아를 점령하고 통치할 수 있도록 몽골이 길을 닦았다는 점이다(P279). 몽골의 위협이 맘룩을 단결하게 했다니 아이러니다. 게다가 맘룩은 몽골에게 통치술을 배워 강력한 중앙집권적 성격의 왕조를 만들었다. <br>남아시아(특히 인더스 남동부 지역)는 유라시아 대부분과 달리 몽골 제국에 통합되지 않았다. 몽골의 칸국과 남아시아 간에 외교 소통은 자주 이루어졌다. 이는 13~14세기 항해술이 발전하면서 더 활발해졌다. 무슬림, 힌두교도, 중국인 상인들이 운영한 상업 네트워크도 교류에 기여했다. 상업 교류는 다양한 통로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인도양의 해상 항로 뿐 아니라 미얀마와 티베트를 건너서 원으로 가는 육로, 델리와 이란을 연결하는 아프가니스탄 고개 길 등이 있었다. 은, 말, 향신료, 도자기, 직물, 노예 등 다양한 상품이 거래되었는데 남아시아가 교역지이자 중개지의 역할을 했다. <br><br>몽골은 ˝말 위에서 천하를 얻을 수는 있어도 통치할수는 없다˝는 중국의 유명한 클리셰를 반증하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말을 탄 채 이동하며 통치하는 것은 단점이 없지 않았지만 매우 혁신적이었음이 입증됐다. 초기의 대규모 공격 이후에 몽골은 궁극적으로 문화적 활기, 유라시아 규모의 통합, 상업의 활성화, 기술, 과학, 예술의 혁신, 새로운 종교적, 종족적, 지정학적 지형, 초원과 정주 제국 모두가 받아들인 세련된 제도를 낳았다. 몽골은 그들의 파괴적 정복에서 기인하기도 했고, 근대 민족주의 정서의 부침에 의해 더욱 강화된 야만인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13~14세기에 이 제국적 유목민들은 세계를 변화시켰고, 오늘날의 세계화 시대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 P363<br><br>이로써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읽기가 마무리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지배층의 관점에서 기술된 점이 아쉽기는 했다.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는데 욕심이었을까. 아무래도 남아 있는 사료들이 지배층의 관점에서 기술된 것이 많을 테니 또 어쩔 수 없는 부분인가 생각한다. 모쪼록 관련 연구가 더 늘어나서 후속 작업이 이루어지길 기대해봐야지. 이 시리즈 기획물은 몽골 제국의 역사적 흐름을 확인하면서 주변국과의 관계까지 조망할 수 있어 여러 모로 도움이 될 것 같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98/cover150/k502137905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69838</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2 -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2 - 주제별 역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64651</link><pubDate>Fri, 08 May 2026 14: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6465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22137905&TPaperId=1726465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97/coveroff/k422137905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22137905&TPaperId=1726465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2 - 주제별 역사</a><br/>미할 비란.김호동 엮음, 최소영 옮김 / 사계절 / 2026년 04월<br/></td></tr></table><br/>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2권은 주제별 역사 중 이념과 제도, 종교와 과학, 사회/경제, 여성의 지위를 다룬다. 1권이 주로 몽골이 통일 제국을 형성했다가 분열한 이후의 역사를 정치에 집중해서 다루었다면 2권에서 이를 좀 더 주제별로 더 깊게 들여다보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나는 상위 챕터의 묵직한 주제만큼 여성의 지위를 동등하게 챕터로 다룬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만큼 몽골 제국의 여성에 대해 다룰 비중이 크다 여겼기 때문이리라. <br><br>몽골 제국은 통일 제국에서도, 4개의 칸국으로 나뉘어진 제국에서도 기본적으로 같은 정치 구조 및 통치 제도를 유지했다. 몽골은 가족 및 가축과 함께 이동하는 텐트 복합체인 오르도를 운영했다. 어느 한 곳을 근거지로 정주하며 제국을 운영하는 경우가 익숙하지만 유목민은 보통 움직이며 생활하는 데다가 몽골은 통일되는 과정, 그 이후의 과정도 정복의 연속이었으므로 대상지 근처에 오르도를 옮겨 다니는 것이 더 나았으리라 판단했을 것이다. 물론 우구데이 때 수도인 카라코룸을 건설하기는 하지만 기존의 오르도 방식의 궁정은 계속되었다. 정복지에는 행정업무와 세입징수를 담당하는 ‘다루가치‘, 법적 문제를 판결하는 ‘자루가치‘를 배치하여 통치의 효율성을 높였다. 칸은 야를릭(칙령)과 우게(영지/명령)등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역참 제도(칭기스칸 이후 계속되어 뭉케 때 확장됨)를 운영하여 제국의 각 지역에 사신과 물품 운반을 이동하게 하였다.<br>통일제국 시기의 몽골군은 알긴치 (alginchi, 복수형은 alginchin)와 탐마, 정규군, 비유목민 군대, 카라울(qara‘ul) 혹은 카라굴(qaraghul), 케식 등 다섯 개의 주요 그룹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알긴치와 탐마는 변경과 불안정한 지역에 주둔하는 부대였다. 정규군은, 예상되는 바대로 침략과 정복을 위한 군대였고 유목민으로 구성됐다. 비유목민 군대는 비슷한 형태의 부대로 편성되었다. ˝카라울 혹은 카라굴은 ˝국경 수비대와 도로 순찰대 역할을 결합한 것으로 주력 부대의 일부로 기능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케식, 즉 칸의 친위대는 군주의 개인 경호뿐 아니라 다른 많은 역할을 수행했다. 통일 제국의 해체 이후에도 전체적인 구조는 유사하게 유지됐다. 알긴치, 카라울, 케식 부대가 그대로 존재했으며 비유목민 군대도 마찬가지였다. 탐마는 몽골의 정복 활동이 줄어들면서 쇠퇴했을수 있지만 군대의 핵심 요소는 계속해서 기마궁사였다. 해군을 운영한 것은 대원 울루스가 유일한데 이는 고려의 우수한 선박과 항해술의 기반이 있기에 가능했다. <br><br>어느 국가든 국민을 통합시키기 위해서 통치 이념을 만들기를 추구한다. 몽골은 ‘영원한 하늘‘이라는 ‘텡그리‘의 힘을 받들어 믿게 하여 타 종교와는 다른 믿음의 영역으로 구분시켰다. 하늘은 제왕(칸)의 힘과 카리스마를 돋보이게 하는 데 제격이었던 것이다. 이는 과거 한반도의 왕조도 마찬가지였다. <br>몽골인들의 이념적 메시지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신화, 종교적 신념, 정치적 원칙들의 혼합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광범위한 지리적 범위를 가진 실제현상이었으므로, 세부 사항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민족들에게 인식되고 이해될 수 있었다. 즉, 다른 전근대 제국과 마찬가지로 몽골이 건설한 제국은 헌신적인 활동가들로 이루어진 핵심 집단, 열정적이면서도 계산적인 합류자들로 이루어진 훨씬 더 큰 집단, 그리고 신들의 헤아릴 수없는 계획과 정복자들의 뛰어난 행운에 대개 어쩔 수 없이 복종한 수많은 신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P102). <br>몽골은 타 종교에 대해서 대체로 상대주의적 관점을 견지하고 관용성을 보였기에 다양한 종교 간 상호작용이 활발했다(물론 무슬림으로 개종한 칸의 경우 종종 이슬람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에 대해서 배타성을 보이기도 했다). 이는 비단 종교에서 그치지 않고 과학 및 기술에도 적용되었다. 예를 들어 본다면 과학, 예술 분야가 아닐까. 이는 실용성을 중요시했던 몽골인들의 지혜를 보여준다. 덕분에 의학, 천문학, 점성술 등 서아시아와 중국의 지식이 교류되어 다양한 결과가 축적될 수 있었다.<br><br>산업화 이전(더 구체적으로, 은행 제도 확산 이전)의 화폐 체계는 하위 수준(지역 내) 시장과 상위 수준(지역간) 시장의 교환 수단이 별도로 구성돼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 두 체계는 근거리와 원거리 교역의 규모, 빈도, 계절성의 상당한 차이로 인해 별도로 작동했다. 몽골 정권은 하위 시장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제국 전역의 공납 이동과 도량형 체계 통일을 결합원거리 교역에서의 화폐 통용성을 구축했고, 그 결과 전체 교역시스템에서 일련의 글로벌한 변화를 이끌어냈다. - P155<br>은이 세계 공통 화폐로 쓰여지기 시작한 것은 13세기 후반부터였다. 고대 시기에는 물물 교환으로 교역이 이루어졌다면 그 이후에는 화폐가 쓰였겠지만 그마저도 공통 기준은 없었다. 은이 쓰였다고 해서 모두 동전 형태의 은화가 쓰인 것은 아니고 은괴, 은화, 동전의 3층 구조로 이루어졌다. 이무렵 세계 각지에서 은광이 발굴되고 유라시아가 교역로로 연결됨으로써 가능해진 일이다. <br>몽골인들과 그들의 제국은 유라시아 전역에서 종교가 실천되는 방식과 장소뿐만 아니라, 인간 활동의 더 넓은 틀 안에서 종교가 이해되는 방식도 영구적으로 바꿔놓았다. 전자의 예는 이슬람 세계를 보면 충분한데, 그곳에서 아바스 칼리프조의 파괴와 그에 이은 몽골인들의 이슬람 개종은 수피즘의 부상뿐만 아니라 시아파 정치 권력이 부상하는 길을 열었다˝ 이 두 가지 발전은 근대 초기 이슬람 세계의 역사를 크게 변화시켰으며, 그 파장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몽골인들은 유럽 기독교인들의 종교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인류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열었으며, 이는 초기 근대 세계의 형성과 창조에 근본적인 역할을 했다.˝ - P240<br>금속공예, 도자기, 건축, 직물, 필사본 삽화 등에서 유라시아 전역의 기술과 양식이 혼합 및 전파되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원 지역의 문화에 티베트 불교/이슬람/기독교(천주교, 정교회 등) 양식이 더해졌을테니 상상해보면 다채로운 문화 양식이 공존했던 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br><br>몽골 황실에서는 여성들이 때때로 주도적인 활약을 하였다. 칸의 지위를 둘러싼 갈등과 이해 충돌이 자주 발생하였기 때문에 칸이 공석일 때 황실의 여인이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치 경제적으로 황실 여성들은 칸과 마찬가지로 쿠릴타이에 참석하고 정치적 조언을 했으며 독자적인 영지를 관리하면서 칙령을 내릴 권한을 가졌다. 또 사회적으로는 종교 활동을 후원하고 빈곤층을 구제하며 남편을 대신해 권위를 행사하거나 외교적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br>씨족, 부족 간 전략적 혼인을 통해 형성된 가족 관계는 남성들 사이의 정치적 동맹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몽골 제국 통치하에서 칭기스 가문의 여성과 혼인하는 영예를 얻은 남성은 황제의 구레겐(giüregen, 부마)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부마들은 통치자와의 긴밀한 사적 관계, 자신의 추종자들로 구성된 더 큰 부대를 지휘하는 군사적 특권, 그리고 이후 다시 자신의 자녀를 황실 가문과 혼인시킬 수 있는 사회적, 정치적 혜택을 누렸다. - P384<br>고려 시기 원 황실과의 정략적 혼인을 통해 고려 왕이 동시에 몽골의 부마가 되는 예를 떠올리면 된다. 부마 뿐 아니라 원의 마지막 황후였던 기황후는 고려 출신으로 원의 조정을 장악하기도 했다. <br><br>다만 몽골 시기 이후 여성의 지위가 상승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지 않나 한다. 이전인 중국 당대(618~907)의 시각 및 문헌 자료들은 상류층 여성을 말을 타고 폴로를 즐기는 풍만한 모습으로 묘사하는 반면, 송대(960~1279)의 자료들은 날씬하고 심지어 연약해 보이는 신체를 강조한다. 중국에서 말타기는 여성과 완전히 무관하고, 심지어 남성들에게도 드문 일이 됐는데, 이는 금과 몽골의 침입으로 북방의 말 사육지가 중국의 통제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상류층 가문에서는 아내와 딸의 생활 공간을 분리하는 게 규범이 됐다. 비상류층 여성들은 상황에 따라 농사, 가게 운영 등을 맡기도 했지만, 이후 수세기 동안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보이는 경우는 훨씬 줄어들었다. 송대에는 전족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족의 기원은 여전히 불분명하며 지역마다 다소 달랐지만, 문헌 증거와 고고학 증거 모두 12세기에 자리 잡기 시작해 상류층에서 모든 계층의 한인 여성으로 빠르게 퍼져나갔음을 보여준다(하카, 위구르, 만주, 그리고 다른 소수 민족들은 수 세기 동안 전족을 하지 않았다)(P416~417). 송대 이후로 강화된 유교 규범 문화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한다. 몽골의 점령은 중국의 혼인법에도 장기적 영향을 미쳤다. 1271년 쿠빌라이 카안은 모든 민족 집단에 대해 몽골의 수계혼 관행을 합법화했고, 치열한 법적 다툼과 소송의 홍수 속에서 과부의 정절은 중국 여성들이 수계혼에 저항할 수 있는 법적 수단으로 부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계혼은 중국에서 불법이 됐고, 과부의 정절을 지지하는 법들은 중국의 왕조 시대가 끝날 때까지 지속됐다(P417). <br><br>앞선 1권이 전체적인 몽골 역사의 훓어보기 성격이라면 2권은 주제별로 정리해놓았기에 관련 분야를 찾고 싶을 때 참고하기 좋을 것 같다. 다만 저자마다 편차가 있어서 글의 밀도가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이는 최대한 일반 독자를 위해 더 깊은 이해 수준을 위한 내용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기술해서이지 않나 싶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97/cover150/k422137905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69753</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시와 물질 - [시와 물질]</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62197</link><pubDate>Thu, 07 May 2026 10: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6219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722635525&TPaperId=172621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417/60/coveroff/e72263552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722635525&TPaperId=1726219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시와 물질</a><br/>나희덕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05월<br/></td></tr></table><br/>&lt;시와 물질&gt;이라니.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제목이었다. 시와 친하지 않고 시를 막상 읽으면 무슨 말인지 뜬구름 같이 느껴져서 아마 평생 읽은 시집이 손에 꼽을 것이다. 근데도 이 시집의 제목을 보니 궁금하고 계속 눈길이 가서 참을 수가 없었다. 유혹할 땐 읽어줘야지. 초반에는 좀 진도가 안 나가다가 이후에는 의외로 쭉쭉 읽었다. 희한한 경험이었다. 시가 이리 두루뭉술하게 느껴지지 않다니. 피부로 와 닿는 느낌이라니. 내겐 좀 특별한 경험이었다.<br><br>왜 그런가 생각해봤는데 저자가 인용하는 책, 기사, 사건 등이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었다. <br><br>자본과 이익을 위해 욕심을 부리는 인간, 환경을 뒷전으로 하고 개발에 앞장서며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려는 자들에게 일침을 날린다거나 노동자를 가벼이 여기는 관행에 분노를 내뿜기도 한다. SPC 노동자 이야기는 시를 읽으면서 주먹을 불끈 쥐게 되기도 했다(나는 그 이후로 파리바게뜨, 삼립, 쿠팡은 계속 불매 중이다). 예전에도 그래왔으니 계속 그래도 된다는 가벼운 생각은 선택하기 쉽지만 미래를 후퇴하게 만들 수 있다. SPC 공장에서는 불과 얼마 전에도 또 노동자의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나. 대체 이런 관행은 언제나 바뀌는 건지.<br>광장은 위치가 변하고 목적도 변화하였지만 진화 중이라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후퇴하는 광장터를 만들지 않고 불의를 참지 않기 위해 모인 시민들이 보여준 단결과 의지는 자랑스러운 문화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정치는 지지부진하고 후퇴한다 해도 시민 의식이 살아 있는 한 정치는 갈 길을 잃지 않을 거라 여긴다. <br>한국이 참전한 베트남 전쟁은 (정부가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을 품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진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미와 퐁니, 퐁넛에서의 민간인 학살을 시간이 오래됐다고 해서 덮어두기만 할 것인가. 여전히 피해자의 유족 및 후손들은 진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더이상 외면하지 말고 부끄러운 과거를 인정하는 것부터가 시작일 것이다.<br>히잡을 쓰지 않았다고 구금된 뒤 구타로 3일 만에 사망한 아미니의 이야기도 있다. ‘머리카락 깃발‘이란 제목과 내용을 보며 눈물이 났다. ‘자유‘라는 두 글자에 무게감과 고통을 또 한 번 느꼈다.<br>몰랐던 사건도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호주에 있는 ‘사과의 날‘이었다. 호주는 백인과 원주민 사이에 태어난 혼혈 아이를 가족으로부터 분리하는 정책을 자그마치 100년 간 시행했다고 한다. 정책은 1960년대 종료되었으나 실태 조사가 시작된 것은 1990년이 되어서야 시작되었다니... 이들을 도둑맞은 세대라 부른다고 한다. 흑백 분리, 인종 차별... 눈에 보이는 차별이 문제라고 인식한 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다. 이제 조금씩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도 문제임을 깨닫고 개선해나가는 중이라 여긴다.<br>조지 오웰의 장미라던지, 사울 레이터의 사진을 보고 영감을 받아 쓴 시도 반가웠다. <br>시의 이름은 정확하지 않지만 죽음에 대해 여러 번 생각하기도 했다. 장례식의 풍경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아주버님이 가는 길이 떠올랐다. 옆지기는 그때 무척 힘들어했다. 만난 뒤 처음으로 마주한 그의 눈물을 보면서 죽음의 무게를 느끼기도 했다. 항상 아주버님에 대해 불만이 많던 그였는데 막상 그가 떠났을 때 빈자리를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옆지기였나보다.<br><br>시가 아니라 마치 저자와 대화하는 느낌이랄까. 에세이 같기도 하고. 내겐 너무 명쾌해서 이해하기가 쉬웠다. <br>독자에 따라 이 시들이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호‘였다. 인간은 결코 단독으로 살 수 없고 세계는 이어져 있음을 느낄 수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417/60/cover150/e72263552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4176096</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1 -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1 - 정치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59241</link><pubDate>Tue, 05 May 2026 21: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5924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82137905&TPaperId=1725924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96/coveroff/k382137905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82137905&TPaperId=1725924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1 - 정치사</a><br/>미할 비란 외 엮음, 루스 던넬 외 지음, 조원희 옮김 / 사계절 / 2026년 04월<br/></td></tr></table><br/>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는 오래도록 몽골사에 몸담은 권위 있는 연구자들이 참여하고 최근 학계의 내용과 의견을 담은 만큼 몽골 제국사의 종합판이라 할 만하다. 제1권은 주제별 내용 중 앞부분에 해당하는 정치사로 몽골 제국의 왕조사를 정리해놓았다. 구체적으로는 칭기스칸이 부족을 통일한 이후의 제국에서 4개의 칸국이 성립하고 멸망할 때까지의 역사를 담고 있다.&nbsp;몽골사를 다시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읽게 될 줄 몰랐는데 어쩌다보니 펀딩에 참여하였고 기간 내 읽어주는 게 마땅하다 여겼다. 적절한 타이밍에 연휴 기간이 있어서 모두 읽을 수 있었다.<br>몽골 제국 이전에도 유라시아 역사에 요, 금 등의 유목 제국이 있었다. 하지만 몽골 제국이 이룬 성과는 지리적으로도 앞선 국가를 앞설 뿐 아니라 향후 제국의 역사에 기반이 되는 제도와 장치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영향력이 컸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몽골의 시대는 과거의 종말이자 새로운 세계의 탄생으로 여겨졌으며, 최근에는 세계화를 향한 도약의 초기 형태로 평가받고 있다(P167).&nbsp;<br>몽골은 유목민의 사냥, 전쟁, 사회 조직 기술을 제국 시스템에 통합하였다. 칭기스, 우구데이, 구육은 초기 제국 내 규범을 구축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칭기스칸은 흩어져 있던 부족을 통일한 뒤 1206년 몽골 제국을 선포하고, 십진법 기반의 군대 조직과 천호제, 황실 친위대(케식) 등을 도입하며 국가 기틀을 마련했다. 또한 서하(탕구트)를 복속시키고 금 원정, 중앙아시아 호레즘 정벌 등을 통해 영토를 확장했다. 칭기스칸은 죽기 전 네 아들에게 땅을 분배했다. 주치에게는 호레즘에서 카스피해 북쪽과 서쪽의 킵착초원을 부여했고, 차가다이에게는 위구르와 트란스옥시아나를 주었다. 우구데이에게는 몽골의 고향 땅을, 톨루이에게는 우구데이 영토에 인접한 중앙 지역을 주었다. 우구데이 카안은 수도 카라코룸을 건설하고 행정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뭉케 칸은 제국 전역에 인구 조사를 실시하고 분할된 통치 체제를 재조정하여 중앙집권화를 강화했다.<br>카안(대칸)이라는 칭호는 칭기스가 죽은 이후, 아마도 그의 손자 쿠빌라이에 의해 1264년경에 수여됐을 것이다. 알타이 민족들은 백색과 9라는 숫자를 길한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흰 깃발인 툭(tuq)은 초원 민족들에 대한 칸의 독점적 주권의 상징이 됐다. 1211년 이전부터 몽골인들은 자신들의 정치 체제를 대몽골국(大蒙古國, YekeMongol Ulus), 즉 몽골 제국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는 금의 중국식 명칭인 대금국(大金國)을 모델로 삼은 것이며, 한문 사료에는 대몽골국 또는 대조(大朝)로 기록됐다. 몽골의 집회에서 필수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잔치를 베풀고 상을 배분하면서, 이들은 제국 설립과 새로운 지배 엘리트의 추대를 위한 기반을 명문화하고 신성화했다. 몽골 사회의 무법과 폭력을 질서와 규율로 대체하려는 욕구는 곧 칸의 제도 개혁의 추진력이 됐다. 여기에는 초원 민족을 재편성하기 위해 칭기스 칸의 추종자들, 특히 영웅적인 행적을 보인 인물과 눈에 띄는 충신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의례도 포함됐다. - P52~53몽골이 영토를 급속히 확장하고 그에 따라 많은 비유목 민족들과 땅들을 흡수하면서 기회와 위기가 동시에 발생했다. 칭기스칸이 고향을 떠나 진군했을 때의 원래 목적(복수와 약탈)은 변화했다. 정복은 이제 신성한 사명이 됐다. 유라시아 초원은 점차 온전한 통일을 향해 가고 있었으며, 이는 우구데이에 의해 완성됐다. 이로 인해 초원 주변의 정주 문명들은 칭기스의 후계자들이 계속 확장해나가는 제국에 저항하기 어려워졌고, 결국 그 일부로 편입될수밖에 없었다. - P95<br>앞선 통일 제국 시기(1206~1260년)를 지나고 이제 후계자들에 의한 통치가 이어지게 된다.&nbsp;<br>먼저 대원 울루스(1260~1368년)로 이곳은 우리에게 원나라로 익숙하다. 뭉케에 이어 아릭부케와의 승계 전쟁에서 이기고 집권한 쿠빌라이는 국호를 '원'으로 정하고 대도(베이징)로 수도를 옮겼다. 그는 몽골의 공식 언어인 ‘팍바문자’를 도입(공식 문서 등 대외용 문자)했다. 그리고 대외적으로 남송 정복을 시작으로 일본, 베트남, 참파, 버마, 자바까지 진출했다. 원은 화폐를 발행하기 시작한 뒤 대내외 활동으로 화폐 양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러나 14세기 무렵이 되면 계속되는 해외 원정으로 국가 재정이 적자에 빠진다. 이후 제국은 기근, 역병이 들어 도적과 무장 집단이 증가하였고 지역 군벌들이 힘을 키우며 자연스레 제국 중앙의 힘은 빠지게 되었다.쿠빌라이는 집권 말기에 실패를 거듭했지만, 그의 남중국 정복은 카안의 울루스에 몽골 세계의 유일무이한 지위를 부여했다. 이는 제국의 원래 중심지인 몽골과 멀리 떨어진 해외 조공국들을 모두 아우르는 권위였다. 또한 이 정복은 몽골 통치자들에게 해양세계에 대한 인식을 열어주었고, 몽골 시대의 유명한 문화 교류를 활성화한 제도들의 정점이 됐다. 페르시아와 중국의 톨루이 계열통치자들은 이 전례 없는 해상 연결을 통해 중동과 동아시아 문명의 독특한 융합을 이루어냈고, 이는 청에서 오스만튀르크에 이르는 후대 유라시아 정권들에 영향을 미쳤다. - P294<br>뭉케는 훌레구에게 지금의 이란 지역의 총독을 맡겼다. 훌레구의 임명은 훌레구 울루스(1260~1335년)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훌레구 울루스는 일 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일 칸’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는데, 이는 ‘칸’이 아니라 ‘일’에 대한 해석 차이에서 기인한다. 일반적으로 ‘일’은 종속의 표시로 훌레구의 지위가 형 뭉케와 쿠빌라이에 비해서 낮음을 일컫는 것이다. 그렇지만 훌레구 울루스는 화폐에 ‘일 칸’이라는 용어를 왕조 초기부터 꾸준히 사용하였다. 아무튼 훌레구가 세운 이 왕조는 이란과 아제르바이잔을 중심으로 서남아시아에 영향력을 미쳤다. 가잔 칸은 과세 방식 개선, 도량형 표준화 등 개혁을 통해 국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이후 아부사이드 치하에서 왕조는 이슬람 문화를 기반으로 번영했으나 후손이 끊기며 막을 내렸다. 보시다시피 훌레구 울루스는 다른 울루스에 비해 그 역사적 기간이 짧다. 우선 훌레구 울루스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이란과 중앙아시아 사이의 국경이 불안정했다. 차가다이 세력은 주기적으로 습격하였고 주치 가문 역시 울루스 북부를 지속적으로 위협했다. 또 이집트의 맘룩 왕국은 주치 가문과 상호 의존 동맹을 맺으며 위협에 힘을 보탰으니 훌레구 울루스는 오래 유지될 수 없었던 것이다.&nbsp;그럼에도 훌레구 울루스는 이슬람 신학과 철학을 넘어서, 동방 이슬람 세계의 다양한 문화적 표현이 발전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P389)는 의의를 가진다.&nbsp;<br>금장 호르드에 소속된 민족들은 주치의 이름을 따라서 주치 울루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주치는 처음에 서몽골과 시베리아 삼림 지역을 기반으로 시작하였는데 나중에 호레즘의 오아시스와 서부 초원을 받은 데 이어 정복 활동으로 러시아의 여러 공국, 크림반도, 볼가-우랄 지역, 북캅카스까지 몽골 지배 하에 두게 되었다. 금장 호르드(주치 울루스: 1260~1502년)는 이슬람교를 수용하여 중앙아시아, 동유럽, 러시아에 이를 확산시켰다. 바투의 동생 베르케 때 이슬람으로 개종한 뒤 이후 금장 호르드의 통치자들은 자신을 술탄이라 부르며 주화에 새겼다(물론 칸이라는 용어도 썼다). 또한 지배층은 무슬림의 다양한 행정 인력을 등용하여 실용적이고 효과적인 시스템을 구축했다. 동슬라브 지역에 있던 공후들은 칸들과 혼인 동맹을 맺고 군사 지원과 면세 혜택을 받으면서 점차 부상했다. 이는 특히 모스크바 공국의 출현을 이끌어냈다. 우즈벡 칸 시대에 황금기를 맞이했으나, 이후 흑사병의 유행과 내부 갈등, 티무르의 견제 등으로 쇠퇴했다. 이후 여러 칸국으로 분열되었으며, 훗날 모스크바 공국이 금장 호르드의 영향력을 대체하게 되었다.&nbsp;<br>마지막으로 후계국 중 하나인 차가다이 울루스다. 안타깝게도 기록이 가장 적고 연구도 미비하다고 한다. 나도 차가다이 울루스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차가다이 울루스는 여러 국가 사이에 끼어 있었던데다 잦은 전쟁과 인재 유출로 어려움을 겪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미비했던 이곳이 몽골 제국의 해체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이후 티무르 제국과 인도 무굴 제국의 발원지가 되었다. 차가다이 울루스는 델리 술탄국이나 맘룩 왕국 같은 나라들, 교황청과도 관계를 맺었다. 뭉케 사후 차가다이 울루스는 톨루이 가문과 계속해서 갈등했다. 그렇지만 차가다이 가문은 권력을 계속 이어가 17세기 후반까지 모굴리스탄을 통치했고 그의 후손들은 20세기 초까지 신장에서 권력을 유지했다.몽골 중앙아시아는 ‘몽골의 시대’라고 불리는 번성했던 경제적, 문화적 교류에 참여했으며, 중심지라는 위치에 비해 두각을 드러낸 것은 아닐지언정 그 일원이었다. 강력한 칭기스 칸 계통의 정체들 사이에 끼어 있었고 중국과 이란에 견줄 만한 정주 기반이 부족했던, 경쟁하는 두 울루스의 본거지인 중앙 몽골 울루스는 몽골 정체들 중에서 패배자로 간주되었다. 이는 중국, 이란, 러시아와 달리, 우구데이와 차가다이의 영역을 물려받은 현대 국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몽골 중앙아시아는 단순히 지속했다는 사실 이상으로 몽골과 세계 역사에 그 흔적을 남겼다. - P640&nbsp;<br>한반도의 고려 역사와도 관련 있는 대원 울루스는 익숙하지만 이 책으로 더 세밀히 알게 된 부분도 있어 소득이 있었다. 훌레구 울루스와 금장 호르드는 지리적으로 멀고 문화적으로 멀어서 늘 어렵게 느껴졌는데 이제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간 것 같아서 좋다. 차가다이(중앙 몽골) 울루스는 상대적으로 몽골사에서 비중이 낮게 부여되었던 부분이었는데 그 영항력이 결코 작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nbsp;다만 정치사라고 하기에는 실제를 다 담지 못하는 것 같다. 정치 뿐 아니라 경제, 문화, 종교 등의 분야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근까지의 역사 동향을 알려준 것이 좋았다. 전문가들의 다양한 견해, 그리고 저자의 의견, 반론 등을 실어 독자로 하여금 객관적인 눈을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몽골 제국의 폭력성에 주목했던 경우도 있었다면 팍스 몽골리카에 주목하며 경제적, 문화, 종교적 영향에 주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것도 한쪽에만 쏠려 있지 않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96/cover150/k382137905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69612</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3</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56691</link><pubDate>Mon, 04 May 2026 11: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5669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02137905&TPaperId=172566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98/coveroff/k502137905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98/cover150/k502137905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69838</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3</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55710</link><pubDate>Sun, 03 May 2026 20: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5571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02137905&TPaperId=1725571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98/coveroff/k502137905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98/cover150/k502137905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69838</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2</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54129</link><pubDate>Sat, 02 May 2026 20: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5412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22137905&TPaperId=1725412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97/coveroff/k422137905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97/cover150/k422137905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69753</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2</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52812</link><pubDate>Fri, 01 May 2026 21: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5281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22137905&TPaperId=1725281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97/coveroff/k422137905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97/cover150/k422137905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69753</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읽고 사고 살고(2026.04.29)</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45618</link><pubDate>Wed, 29 Apr 2026 11: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4561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12137906&TPaperId=1724561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7/11/coveroff/k212137906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12137808&TPaperId=1724561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0/52/coveroff/k112137808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4월에는 굵직한 책들로 구입했다. 지난 달까지 책을 구입해놓고 아직 안 읽은 것들 투성이라 이번 달은 건너뛰려고 했는데 생각났을 때 사놓지 않으면 지나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더라. 결국 사기 위한 변명이지만.<br><br>아무튼 멋진 리뷰를 써주신 이웃님 덕분에 &lt;남성 판타지&gt;를 구입했고 &lt;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gt;는 펀딩했다.<br>몽골 제국사는 그동안 읽어둔 것들도 있고 해서 건너뛰려고 했는데 1권 내용보다는 2, 3권 내용이 궁금하여 결국 펀딩을 결정했다.<br>사실 정치사는 재미가 떨어지지만 일상사, 미시사나 주변사는 훨씬 재미가 있으니까. 3권의 내용이 그런 것을 다룬다. 2권은 주제별로 역사를 다룬 것이다. 이런 책은 레퍼런스하기에도 좋을 것 같다. 이미 1권은 읽기 시작했고 어느덧 4부를 읽고 있다. <br>남성판타지는 진짜 너무 무거워서 들다가 떨어뜨릴 뻔하여 식겁했다는. 조심 조심 다루어야할 것 같다. 사실 떨어뜨리는 것보다도 너무 두꺼워서 책 내부가 찢어질까봐 걱정이 되는데 모쪼록 잘 떨어지지 않는 제본이면 좋겠다. 내용은... 와. 이걸 읽을 수 있으려나. 그렇지만 늘 그렇듯 시도하는 것이 시도하지 않는 것보다 덜 후회하는 법이니까 (언젠가) 도전!!!<br>그리고 오랜만에 커피 500g으로 샀다. 커피를 점차 줄이고 있는데 간혹 3시 넘어서 커피를 마시면 좀 부담되는 경우가 있다. 늦게 마시지 않으면 좋지만... 이른 아침에도 위에 부담이 덜 갈 것 같고 해서 디카페인으로 샀다. 오늘 아침 드립해서 마셨는데 역시 맛있었다.<br><br>어제도 늘 그렇듯이 점심을 먹고 산책길에 나섰다. 비가 온 뒤라 흐리고 쌀쌀했다. 옷깃을 여미며 한 바퀴 돌고 회사에 들어가는 길이었는데 누군가 탁 하고 내 몸을 쳤다. 옆지기였다.<br>옆지기는 나와 비슷한 직업을 갖고 있다. 사실 나는 그를 회사에서 처음 만났고 1년간 몰래 사내 연애를 하다가 그후 옆지기는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다. 그 뒤로 우리는 4년의 연애 기간을 더 갖고 결혼했다. <br>어쩌다보니 지금 가까운 거리에 일터가 있어서 출근길에는 옆지기가 차로 데려다주고 퇴근길은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그러다보니 가끔 이렇게 산책길에 만날 때가 있다. 근데 3년 정도 이렇게 일하는데 산책길에서 만난 것은 손에 꼽는다. 옆지기는 걷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기 때문(오히려 자전거는 가끔 탄다). <br>비슷한 직업을 갖고 있어서 좋은 점은 이야기가 통한다는 점이다. 전문 용어를 이야기해도 이해를 못하면 아무래도 대화를 이어가는 데 한계가 있다. 회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어느 때는 내가 일이나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회사가 망해서 이직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고 또 어느 때는 옆지기가 일이나 회사 문제로 골머리를 쌓을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서로 버팀목이 되었다. 이 직업 세계의 생리를 잘 알고 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서로에게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옆지기는 만남을 갖게 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내게 가장 좋은 친구다. <br><br>4월이 단 이틀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몰랐다. 금요일도 일을 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그 날이 노동절이었다(그 사실을 알고 출근길이 갑자기 매우 즐거웠다). 5월 4일 부랴부랴 휴가를 냈으니 이제 며칠 간의 휴가가 다시 생긴 셈이다. 어딜 가도 사람이 많겠지만 날이 좋으니 집안에만 있을 수는 없지. 산책하면서 볕도 쪼이고 어느 정도는 옆지기와 재밌는 시간을 보내지 않을까 싶다. 남은 4월을 정리하며 5월을 또 반갑게 맞이해야겠다.<br clear="all">]]></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0/52/cover150/k11213780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05231</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혁명의 러시아 1891~1991 - [혁명의 러시아 1891~1991]</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45332</link><pubDate>Wed, 29 Apr 2026 08: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4533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12531540&TPaperId=1724533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2220/48/coveroff/k61253154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12531540&TPaperId=1724533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혁명의 러시아 1891~1991</a><br/>올랜도 파이지스 지음, 조준래 옮김 / 어크로스 / 2017년 11월<br/></td></tr></table><br/>2차 세계대전은 혁명을 심화하고 확장했다. ... 볼셰비키는 총칼을 사용해 러시아 혁명을 동유럽으로 수출했다. 이런 측면에서 냉전은 1917년 볼셰비키가 시작한 국제 내전의 연속으로 보아야 한다. ... 레닌의 권력 장악은, 러시아처럼 후진적인 농업 국가에서는 혁명이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없으며 산업화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해줄 국가나 더 선진화된 산업 국가에서 혁명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발상에 근거해 있었다. 고르바초프는 제외하더라도 스탈린,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는 모두 이런 신념을 공유했던 레닌주의자들이었다. ... 이러한 이유로 나는 혁명이 1991년 소련 체제의 붕괴와 함께 끝나는 100년의 단일한 사이클로 다뤄져야 한다고 본다. - P9~10<br>1905년 1월 9일 '피의 일요일'의 대학살을 규탄하는 파업과 시위가 일어났다. '피의 일요일' 사건은 차르 정부 권위에 대한 대중의 도전으로 갈수록 급진적인 반대 세력으로 비화되었다. 노동자 뿐 아니라 이는 농촌에도 확산되었다. 국민들은 국회를 만들고 입헌군주제를 설립하기를 요구했다. 차르 정부는 흔들렸지만, 무너지지는 않았다.&nbsp; 다양한 반정부 운동이 정치적으로 결집하지 못했고 군대는 정부에 여전히 충성했다. 일본과의 전쟁을 빠르게 중단한 정부는 자유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 사이를 벌어지게 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nbsp;<br>1906년 러시아는 의회 시대에 들어섰으나 황실은 여전히 정치 권력의 중심으로 남아 있었다. 입법권을 가진 두마는 차르와 귀족이 지배하는 상원의 동의 없이 의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차르는 두마의 요구가 급진적인 것으로 여겨 해산을 명령했다. 여러 정당들은 민중을 모아 이를 규탄하고자 하였으나 민중의 힘은 모이지 않았다. 총리 스톨리핀은 각 농민 가정에 공동경작지를 사유재산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려 했다. 황실과 이권을 뺏기기 싫은 귀족 이하 전제군주정 옹호자들은 결집했고 스톨리핀의 개혁 시도를 무효화했다. 이후 그가 암살당하며 개혁의 동력은 꺾이고 말았다.<br>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차르는 선전 포고 후 두마의 자진 해산을 선언했다. 그러나 러시아 내부에 전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와 더불어 개혁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차르는 못이기고 두마를 재소집한다. 1916년 무렵 황후와 라스푸틴의 영향력은 상당했던 모양이다. 두 사람에 의해 두마는 다시 폐회되어 정치 개혁의 기회를 잃어버렸다(같은 해 12월에 라스푸틴은 살해되었다). 게다가 황후가 군사 기밀을 독일 측에 전하고 있다는 소식이 퍼지는 바람에 군대 내 사기와 규율은 떨어지고 이는 차르와 군주정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졌다.<br>1917년 2월 혁명은 이런 배경에서 벌어진 것이다. "차르를 폐위하라! 전쟁을 그만하라!" 총파업과 시위는 이어졌다. 차르는 당연히 무력을 동원하여 군중을 탄압했다. 2월 26일(피의 일요일)에는 유혈 사태가 벌어졌는데 군인들이 차르와 군중 중 군중 편에 서면서 폭동의 규모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두마 지도자들은 긴급히 임시정부를 구성했고 소비에트는 임정을 지지하겠다 발표한다. 이 체제는 10월까지 지속되며 이중 권력 체제를 지탱하게 된다. 황제는 황위를 포기하고 미하일 대공에게 권좌를 내주었으나 군중이 반발하며 그도 권좌에서 하야하며 러시아 마지막 군주정인 로마노프 왕조는 막을 내렸다.그러나 소비에트와 임시정부 모두 농민과 노동자들의 요구 사항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레닌은 임정에 대한 지지를 그만두고 노동자들에 대한 무장, 소비에트에 모든 권력이 주어져야 한다 선언한다(4월 테제).&nbsp;<br>레닌은 소비에트를 비롯한 다른 정당은 모두 반대하며 볼셰비키에게만 권력이 집중되기를 원했으나 대다수 볼셰비키 지도자들은 좀 더 신중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군대 내에서는 소비에트들이 이미 볼셰비키의 수중에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드디어 군사혁명위원회가 페트로그라드의 부대를 장악하고 소비에트를 볼셰비키가 통치하는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케렌스키가 카자크 부대를 규합하여 볼셰비키에 대항했지만 이때 부르주아 세력, 사회주의 우파, 중도파 등은 세력을 잃었다.&nbsp;<br>1918년 1차 대전의 강화 조약을 맺으며 전쟁이 이제 끝나는가 했으나 백군과 적군 간에 내전이 곧이어 발발하였다. 전쟁으로 집단징집제가 시작되면서 물자는 부족해지고 탈영은 줄을 이었다. 개인 상업활동은 폐지되고 대부분의 산업이 국유화되었으며 배급제를 통한 사회 통제가 강화되었다. 적군의 물자(사람 포함) 징발로 인해 기아까지 가는 상황이 되자 국민들은 볼셰비키에 등을 돌리게 된다. 농민들은 자치를 회복하기를 원했고 파업은 계속되었다.&nbsp;<br>레닌은 1921년부터 두통과 피로에 시달리며 병마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후 레닌이 자리를 비운 동안 정부는 스탈린, 카메네프, 지노비예프 세 사람으로 이루어진 삼두정치체제를 통해 운영되었다. 레닌은 몸이 회복되었다가 다시 뇌졸증이 찾아왔다. 스탈린은 레닌 사후에도 여전히 집단지도부 하에 있었기 때문에 최고권력자는 아니었다. 193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두각을 나타낸다.&nbsp; &nbsp;1932년 러시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소비에트의 5개년 계획은 배급량을 삭감하고 노동 규율을 강요하는 등 국민 생활의 질을 떨어뜨렸고 이에 불만에 찬 국민은 소비에트 체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파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집권자인 스탈린은 당을 정화한다는 명목 하에 반대자(로 생각되는 이)는 숙청한 반면 엘리트 노동자는 승진을 시키면서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만들었다. 스탈린 집권부는 그동안 진행한 공산주의로서의 방향을 전환하여 좋은 삶에 대한 이상을 그리며 소비에 대한 욕망을 부추겼다. 스포츠, 오락 등을 강화한 반면 가부장 가족의 서사는 돌아온 것이다.&nbsp;<br>스탈린은 1937년부터 1938년까지 또 숙청을 감행한다. 이전에도 반대파로 몰며 숙청을 하기는 했지만 이번의 경우는 그 시기와 규모에서 앞선 시기를 압도했다. 구볼셰비키를 축출하고 트로츠키, 지노비예프, 부하린 등 자신에게 위협이 될 만한 리더들을 몰아냈다. 숙청 대상자에는 일반 평범한 시민들도 포함되어 있었던 만큼 유혈, 대량 살인이 벌어졌다. 소수 민족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대규모 이동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이후에 고향에 돌아간 이들이 얼마나 될까). 안타까웠던 것은 숙청자를 찾는 과정에 밀고자나 제보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물질 보상 등의 혜택이 주어지는 등 자발적인 동기도 있었지만 협박 등에 의한 비자발적인 동기도 있었다. 차라리 아예 모르는 사람들이면 모를까 지인에게서 이런 일을 겪는다면 트라우마가 상당할 것 같다. 어디 비단 이 사건 뿐이랴.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어.' 이런 상황이야말로 아비규환이 아닐런지...<br>러시아는 장기적으로 코민테른 주도 하에 러시아 혁명 사회주의를 세계에 수출하는 한편 외무인민위원회를 통해서 서방과는 관계를 이어가기를 원했다. 스탈린은 파시스트의 위협에 맞서기 위한 연합 전선을 펴기 위해 히틀러에게 명분을 던져 주었다. 이후 양국은 불가침 조약을 맺었으나 2차 대전이 발발하는 계기를 만들었으니 결과적으로 크나큰 실수였다. 2차 대전 기간 동안 러시아 국민들은 조국애를 주입받으며 희생을 강요당하는 삶을 살았다.&nbsp;<br>미국의 원자폭탄 투하 이후 미소 냉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러시아는 국가 이념 모시기 경쟁에 돌입, 많은 국가를 소비에트 하에 두려했다. 대부분은 이에 동화되었고 반기를 든 경우는 유고슬라비아의 티토가 유일했다.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한 뒤 한동안 베리아, 말렌코프, 보로실코프를 중심으로 한 집단 체제가 이어졌다. 그러다 1956년 흐루쇼프가 당에 대한 민중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 스탈린의 테러를 폭로하는 연설을 감행하는데 이는 공산주의를 표방하던 많은 국가들(특히 동유럽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반면 서구 문화가 유입되는 계기도 되었다).&nbsp;이어서 집권한 브레즈네프는 보수적 입장을 유지하며 최대한 현 체제를 흔들지 않으려 했다. 이는 내부 통제를 강화하고 동유럽,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등의 사회주의 국가에 내정 간섭을 감행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nbsp;<br>고르바초프는 책의 표현에 따르자면 '마지막 볼셰비키'다. 고르바초프는 레닌의 혁명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은 사람이었으니 이상주의자였다라 할 수 있다(레닌이 살던 시기 전후에 둘이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 그러니까 그의 생각에 지금이야말로 레닌의 혁명을 통해 소련이 부활할 수 있다 믿은 것이겠다. 레닌은 공산주의는 바로 올 수 없고 그 전에 자본주의를 거쳐가야 한다고 보았다. 고르바초프는 경제적으로 이전에 계획경제에 의한 규제를 폐지하고 페레스트로이카에 의한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감행한다. 그러나 이는 거대한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 그리고 정치, 사회적으로는 민주주의, 다원주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이는 헝가리 혁명, 체코 시민운동,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불러오는 등 동독 공산주의 정권의 몰락을 불렀다. 레닌의 이상을 따르다 역설적으로 소련을 위시한 공산주의 정권을 붕괴시킨 원인 제공자가 되다니 참 뭐라 해야 할지.고르바초프가 이렇게 물러나자 이후 집권한 옐친은 폭발한 민족주의 운동에 대응하여 소련공산당을 금지하고 각 공화국 내 소비에트 경선을 도입하는 조치를 취했다. 현 집권자인 푸틴은 재선, 삼선을 거듭하며 소련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회복하고 러시아는 강대국임을 강조하는 중이다.&nbsp;<br>1891년부터 1991년까지 러시아 근현대사를 압축하여 정리한 책이다. 얇아서 부담이 확실히 덜하다. 분량상으로 보면 읽는데 오래 걸리지 않는 책인데도 불구하고 읽는데 오래 걸린 것은 처음에는 관련 책을 함께 읽으며 비교해보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러기엔 여러 일들이 겹쳐 완독하기까지 오래 걸릴 것 같은 거다. 이러다간 앞선 내용이 생각나지 않을 것 같기도 해서 마저 읽어버렸다.<br>책의 두께감에 압박을 느끼는 분들에게 러시아의 근현대사를 한 번에 접할 수 있는 무난한 책이라 여겨진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2220/48/cover150/k61253154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2204878</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44675</link><pubDate>Tue, 28 Apr 2026 22: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4467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82137905&TPaperId=1724467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96/coveroff/k382137905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96/cover150/k382137905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69612</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닥터 지바고를 읽고 단상</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43489</link><pubDate>Tue, 28 Apr 2026 13: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4348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12531540&TPaperId=1724348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2220/48/coveroff/k61253154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15114&TPaperId=1724348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373/14/coveroff/897291511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15106&TPaperId=1724348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373/13/coveroff/897291510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2239X&TPaperId=1724348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168/46/coveroff/893292239x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22381&TPaperId=1724348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168/43/coveroff/893292238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최근 러시아의 근현대사를 집중해서 읽다가 우연히 알고리즘에 의해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작품의 제목은 들어봤지만 저자의 이름은 좀 낯설었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라...' 되뇌어봐도 입에 탁 붙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 책을 다 읽을 무렵 저자의 이름이 덜 낯설어지게 되었으니 다행인건가. 

러시아 문학을 읽을 때마다 러시아 인명에 익숙해지는 것은 왜 이리 어려운건가 다시 한 번 느낀다. 
성과 이름을 합쳐서 하나만 쓰면 될 것이지 이들은 이름이 워낙 길다 보니(성이 겹치니 구별을 위해 길어지는 것 같기도) 줄여서 부르는 이름이 있다. 문제는 원래의 이름과 발음조차 비슷하지도 않은 이름을 쓰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이럴 때는 매번 다른 인물인가 하고 헷갈리고 혼란에 빠지곤 한다. '아, 아까 그 사람이구나...' 하는 경우가 몇 번이고 생긴다는 말.

닥터 지바고는 1917년 러시아 혁명부터 그 이후의 갈등과 여진, 적군과 내군 간의 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그려지는 사랑 이야기다. 보편적인 주제인 사랑 이야기라 오히려 기대치를 내려놓고 봐서인지 나름 잘 읽었다. 물론 나는 역사적 배경에 더 꽂혀 읽었으나 점차 주인공의 감정과 서사에 연민을 느끼면서 마지막에는 주인공 남녀의 결말에 한편으론 허무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짠하기도 해서 복잡한 감정을 갖게 만들었다. 

세월이 사람을 만든다고 하는 말이 있던가. 사람은 의지를 갖고 삶을 헤쳐 나갈 수 있지만 이것은 너무 팍팍하지 않을 때 가능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내 땅을 빼앗기고 먹을 것을 제대로 먹을 수 없으며 선택의 자유를 빼앗긴다면 돌지 않을 사람이 누구인가 싶은 것이다. 그럴 때 이웃과 국가, 세상은 협력자가 되었다가도 배신자가 되기도 한다. 

지금에 와서 보면 러시아 혁명은 세계적인 사건이지 당시 러시아에 살던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전제군주정으로는 더 이상 살 수 없었던 이들이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겁니다! ... 전 러시아의 지붕이 뜯겨져 나갔고, 전 러시아의 민중과 우리는 열린 하늘 아래 놓이게 된 겁니다. 우리를 감시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자유! 말이나 요구뿐이 아닌 진짜 자유, 기대 이상으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자유죠."
"모든 이에게 변화와 대변혁이 일어났죠. 각자에게 두 가지 혁명이 일어났는데, 하나는 자신의 개인적인 혁명이고, 다른 하나는 공동의 혁명이라고요. 제 생각에 사회주의, 이것은 모든 개별적인 혁명이 강줄기가 되어 흘러 들어가는 바다, 삶의 바다, 자주성의 바다예요. ... 이제 사람들은 책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몸으로, 추상적으로가 아니라 실제 삶에서 그 혁명을 겪기로 결정을 내린 거죠."

이들이 원하는 이상은 공동의 목표인 것 같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각자 다름을 인지하게 된다.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편, 다른 한편에는 볼셰비키 편에 선 이들 간에 충돌이 발생했다. 보다 건설적인 계획을 위해서 일정 정도의 파괴는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측이 있었는가 하면(파괴의 정도는 논외로 하고) 기존의 체제를 개혁하여 새 삶을 일구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측도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 과정을 군중의 목소리를 빌어 '역사의 현장'이라고 표현한다. 이제  노동자 주민은 거주 공간을 제공받아 이주하고, 노동자가 아닌 주민은 새로운 집을 찾아 떠나야만 했다. 과연 이들은 이런 형태를 원했던 걸까? 사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혁명이 그들을 깨우고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더 큰 억압의 굴레를 마주해야만 했다. 생각했다. 과연 이들 중 진정으로 혁명을 원하는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되었을까. 그중 다른 이들에 의해 동화된 사람들이 있지는 않았을까. 변혁을 꿈꿀 수는 있어도 결행에 옮기기란 쉽지 않다. 구체적인 목표가 없는 경우는 도중에 파기될 수도 있고 실현 가능성조차 낮을 수 있다. 사실 영웅은 몇 명에 불과하다. 서로를 모방하며 만들어진 우연이 역사가 되기도 한다는 것, 필연 같기도 하고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이들은 이후 이동, 전쟁을 겪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 가깝거나 먼(또는 모르는) 이들을 통해 배신을 경험했으며 파멸, 죽음의 광경을 수도 없이 목도하게 되었다. 
남자들은 조국의 운명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전쟁터에 나갔고 여자들은 간호사로 나가 일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가정을 살리기 위해 더 힘든 고난을 마주해야 했다. 
 
라라는 일찍부터 자신의 삶이 망가졌다고 생각했고 미쳤으며 이후의 인생은 파멸, '돌아서 사는 삶'을 살아나가려 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서 유라는 자신도 모르게 끌리고 천사 같은 광영을 본다. 라라가 하는 모든 일이 신성하고 아름답게 보인 것을 보면 사랑에 빠진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 아니겠는가. 
유리 지바고(유라)는 의사로 혁명 초기에는 이념을 열렬히 신봉한 만큼 열정적이었으나 10월 혁명 이후에는 시들해진다. 피를 흘려가면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회의가 일었고 삶과 유리된 구호가 의미 없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발붙이고 있는 현실의 삶이었다. 나도 지바고의 이 생각에는 동의한다. 그치만 파트너로 토냐 대신 라라를 선택한 것은 선뜻 납득하기 쉽지 않았다. 토냐는 가정을 누구보다 잘 꾸려나간 강인한 여성이었다. 결국 감정이 가지 않았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데... 그래도 이미 있는 가정을 놓고 이상의 여인을 쫓는다는 것이 아무래도 나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도 유라와 라라의 사랑은 순탄하지 않았다. 자꾸만 커져 가는 라라에 대한 마음을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된 유라는 (드디어는) 결심 끝에 라라의 집에 간다. 이때 하필 지바고는 부대의 의사가 살해당했다며 의료 노역자로 동원당하고 만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강제 동원에서 빠져 나와 라라와 다시 해후한다. 그러나 그는 어쨌든 탈영을 한 것이었기 때문에 쫓기는 입장에서 그녀와 헤어질 수 없는 상황이었고 끝내 평생 다시 만나지 못한다. 둘의 최후가 어쩜 그리 안타깝던지... 그리운 이를 두고 떠나가는 마음은 어떤 것인지 생각하면 참 먹먹하다.  

"내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여인이여! 내 구부린 팔꿈치가 당신을 기억하는 한, 내 팔과 입술이 당신을 느끼는 한, 나는 당신과 함께 있으리라. 뭐든 훌륭하고 오래 기억될 당신을 위해 눈물을 흘리리라. 부드럽고 또 부드러운, 아프게 슬픈 묘사로 당신에 대한 추억을 기록하리라. 이것을 다 할때까지 이곳에 남으리라. 그 후에 떠나리라. 이렇게 당신을 표현하리라. ..."

3월에 읽기 시작했는데 4월이 끝나갈 무렵에서야 겨우 읽었다니 너무 오래 걸렸다. 길이가 상당한 소설인 만큼 등장 인물도 많고 그들 간에 얽힌 이야기도 많다. 그래서 사실 이해하는 것에 집중을 요하지만 중반 이후에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막 읽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배경 이야기를 적는 데는 수월해서 금방 적어내려간 반면 인물을 이야기하고 그들 간에 이야기를 어떻게 적어야 할 지는 잘 모르겠어서 자꾸 글이 멈칫 멈칫 했다. 

그래도 써놓지 않으면 잊어버리고 다시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울 것 같아 짧게나마 기록해둔다. <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168/43/cover150/893292238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1684338</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42263</link><pubDate>Mon, 27 Apr 2026 21: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4226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82137905&TPaperId=1724226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96/coveroff/k382137905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96/cover150/k382137905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69612</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40087</link><pubDate>Sun, 26 Apr 2026 21: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4008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82137905&TPaperId=1724008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96/coveroff/k382137905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96/cover150/k382137905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69612</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베이징 여행기(2026.04)</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28147</link><pubDate>Mon, 20 Apr 2026 15: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28147</guid><description><![CDATA[지난 주 베이징에 4박 5일 간 여행을 다녀왔다.<br><br>대부분 인생에 한 번쯤은 자금성과 만리장성에 가보는 꿈을 꿀 것이다.<br>나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br>그러고 보면 어릴적부터 내 버킷 리스트에는 유독 어딘가를 여행하는 것에 대한 갈망이 많았다.<br>무언가를 직접 보고 경험하는 것은 그때부터 내게 소중한 가치였던 셈이다.<br><br>베이징에 대한 인상은 상하이와는 완전 달랐다.<br>상하이는 금융 도시이자 경제 특구로 일찍부터 개방되어 외국인들, 관광객들이 많아 음식도 그렇고 글로벌적인 느낌이 강하다면<br>베이징은 중심가를 제외하면 골목에 옛 정취가 남아 있어 로컬적인 느낌이 강했다.<br>그리고 지역 범위가 넓어 가려는 곳을 걸어다니기는 무리인 만큼 지하철도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나 있는 편이었다(총 17호선이었던가?).<br>상하이는 도보를 많이 했고 항저우는 디디를 많이 이용했다면 베이징은 지하철을 정말 많이 이용했다.<br><br>베이징은 상하이보다 확실히 정치적인 느낌이 있다. <br>어딜 가든 보안 검색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경찰서가 거의 도로 한 블럭마다 존재했고 돌아다니는 군인과 경찰이 많았다. CCTV는 말할 것도 없고^^<br>또 봄철 황사가 워낙 악명이 높아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심했다.<br>폭우가 내린 한 날 빼고 대기질이 불쾌하다고 날씨앱에서 계속 알림이 왔다. 그런데 이 정도 수준은 예사인지 마스크를 안 쓰고 다니는 분들이 많았다. <br><br>만리장성은 여러 개의 코스가 있다. 현재 3군데 정도가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일찍부터 개방된 팔달령 만리장성이다. 이곳은 시내에서 기차로 이동할 수 있어 접근성이 좋아 늘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다. 그리고 목전욕 만리장성이 있다. 이곳은 후에 개방된 만큼 보존 상태가 좋아 외국인 등 관광객에게 인기가 많지만 버스 투어로만 이동 가능한 단점이 있다. 세번째는 사마대장성이다. 이곳은 야간에 개방이 되어 주로 야경을 보러 가는 곳이다. 앞선 두 곳이 낮에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이곳은 밤에 가볼 수 있는 만큼 특화된 점이 있다. 나는 사람에 떠밀리는 게 싫어서 목전욕 만리장성 코스를 택했다.&nbsp;<br>만리장성 가기 전날에 폭우가 내렸다.<br>봄철 베이징에는 비가 거의 안 내린다는데 폭우 수준으로 내리다니 아무튼... <br>당일 오전 7~8시 무렵까지 비가 내려서 걱정했는데 11시가 넘으니 구름이 걷히면서 해가 나기 시작했다.<br>하지만 오후가 날이 좋았어도 아침 일찍부터 이동하지 않았다면 인파에 떠밀려 사진 찍기도 어려울 뻔 했다.게다가 운무에 쌓인 만리장성은 제법 운치가 있었다. <br>케이블카와 리프트-루지 코스가 있었는데 나는 체력을 생각해서 케이블카를 골랐다(사방이 뚫린 곳은 고소공포증 때문에 어렵기도 하고). <br>14번에서 18번 코스까지 다녀왔다. 19, 20번은 깔딱 고개라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br><br>천안문과 자금성은 보통 같은 날 관광하는 경우가 많다.<br>천안문은 처음에는 개인으로 갈까 했는데 사전 예약이 갈수록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았고 자금성은 공부 안하고 가면 건물만 보다 올 것 같아 해설을 들으려고 투어를 신청했다.<br>단체라도 사전 예약이 어려워서 못 가는 경우도 많다는데 다행히 되어서 다녀올 수 있었다.<br>오전부터 황사가 심했고 후텁지근한 날씨였다. <br>천안문를 입장하는 데까지는 직진 코스를 다 막아버려 빙 둘러가야만 했다. <br>검문소 앞을 도착했을 때는 10시도 안 된 시간이었는데 이미 사람이 꽤나 되었다. 개인 줄은 이미 몇 바퀴를 돈 상태였고 단체 줄은 좀 적었다. 보통 개인 줄이 단체 줄보다 훨씬 길다고 한다. 심한 날에는 3~4시간도 서는 경우가 있다고. 그늘 하나 없는 볕에서 30분 넘게 서 있으니 이미 지치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그 정도에 끝나고 천안문 광장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운이 좋은 것이었다. <br>천안문 광장하면 떠오르는 모택동. 나는 이것이 사진인 줄 알았는데 그림이란다. 게다가 매년 그림을 바꾼다고. 예전에는 전담 화가가 있었는데 현재는 미술 대학 교수와 재학생들이 합작해서 그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br>자금성은 역시나 노란? 황금? 기와가 인상적이었다. 물론 우리나라 궁궐처럼 자연스런 느낌은 아니고 인공적인 느낌이 강하긴 하다. 한줄로 쭉 선 궁궐들은 고압적인 느낌이 강했다. <br>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옷차림이었다.<br>전세계의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긴 하지만 국내 방문객의 경우 지방 곳곳에서 올라오기 때문에 특별한 추억을 갖고자 하기에 대부분 명, 청 시대의 전통 복장과 화장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br>우리도 고궁 방문 때 한복을 입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처럼 이곳도 그런 것인가보다. 아무튼 복장이 정말 다양하고 화려했다.<br>베이징 하면 경극이 유명한데 사실 볼까 말까 망설였다.
내용을 하나도 이해를 못할 것 같아서...
그치만 현지에 가서 경극을 볼 기회가 또 있을까 싶어 과감하게 질렀다. 
대부분 관광 상품은 여러 극의 레파토리를 짜집기하여 1시간 남짓으로 구성하고 차를 곁들여 공연하는 것이 많았는데 나는 그런 방식은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모로 찾아본 끝에 완전한 극본의 풀 공연을 하는 곳을 찾아 사전에 예약하여 찾아갔다. 경극 배우로 유명했던 매란방을 기려 만들어진 공간인 매란방 대극원이었고 제목은 &lt;옥잠기&gt;다. &nbsp;사랑 이야기라 잘 알아 듣지 못해도 극을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전방 좌우로 대본이 나와 도움이 되었다.&nbsp; <br><br>이렇게 여행 기간 동안 보고 걷고 먹고 쉬고 그러면서 지냈다.<br>책은 한 자도 안 읽었다(혹시나 해서 종이책을 가져갔지만 역시나 그대로 가지고 왔다는^^;).<br>이번에도 서점은 한 곳을 다녀왔고 페이지 서점이라고 내부가 깔끔하게 잘 되어 있었다. <br>특히 어린이 책 코너가 참 잘 되어 있다고 느꼈다. 나도 그 코너에서 2시간쯤 머물면서 책을 읽다가 졸다가 하며 보냈다. <br>그리고 나오기 전 ‘역경(주역)‘ 관련한 만화책이 있길래 한 권 구입해서 왔다.<br>위화 등단 40주년 기념으로 된 책 ‘인생‘이 있었는데 살까 말까 하다가 무거워서 제외했다. 이미 읽기도 한 내용이니까.<br><br>온몸이 욱씬욱씬 여독이 풀리려면 며칠 걸릴 듯 하다. 그래도 언젠가 경험해보고 싶었던 곳을 다녀와서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20/pimg_715516173510023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28147</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사라지는 노동과 세계에 대한 이야기 -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09996</link><pubDate>Sat, 11 Apr 2026 11: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0999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72002&TPaperId=1720999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89/4/coveroff/8972972002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72002&TPaperId=1720999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a><br/>이라영 지음 / 동녘 / 2026년 02월<br/></td></tr></table><br/>작가의 이름은 여러 번 접했지만 책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간인 이 책이 노동사이자 한국 광업의 역사의 단면을 볼 수 있겠다 싶어 관심은 있었으나 읽은 분들의 후기가 궁금했다. 좋은 책이라는 반응이 많아서 믿고 읽어도 좋겠다 싶어서 구입은 해놓았으나 다른 책들에 밀려 읽지 못하고 있었는데 우연하게도 이 책을 이달 함께 읽는 책읽기 모임에서 읽을 기회가 생겼다. 읽을 순간은 이렇게 더 빨리 찾아왔다.<br>작가의 아버지는 양양의 광업소에서 30년을 넘게 일을 했다. 작가는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함께 양양에 살면서 광부들의 삶과 생활을 보고 들으며 성장했다. 하지만 부모는 가능한 그녀가 광산의 일에 거리를 두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일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곁에서 보고 들은 것이 있었으니 그녀는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광산이 들여다 보아야 할 과제로 마음 속에 남아 있었다. 국내 광산은 공급 감소와 가격 경쟁력에 밀려 상당수가 사장길을 걸었다. 그녀의 아버지도 1994년 일하던 광업소가 폐광하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이제는 다 죽었어.”라는 그녀의 아버지의 말이 미뤄둔 숙제를 결행해야할 때임을 주지시켰다.&nbsp;<br>광부하면 동굴에서 채광을 하는 모습만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광업은 여러 일로 나뉘어져 있다. 크게는 직접 작업장에서 일하는 생산직과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사무직으로 나뉜다. 이 생산직은 다시 갱 안에서 일하는 부서와 갱 밖에서 일하는 부서로 나뉜다. 갱 안에서 직접 광물을 캐는 채광직이 우리가 흔히 보아온 광부의 모습이고 이 채광을 위해 각종 기술을 지원하는 부서, 채광한 광물을 운송하는 부서 등 여러 부서가 있고 갱 밖에서도 전기나 중장비를 다루는 각종 기술직과 운반직, 채광한 광물을 선별하는 업무인 선광과가 있다. 쇳돌을 고르는 ‘선광’은 거의 여자들 몫이었다고 한다. 1950년대 한국 수출품 중 2위가 흑연, 철광석이었다 하니 그 규모를 가늠할 만하다.&nbsp;<br>양양 광업소는 국내 최대 자철을 생산하던 곳으로 일제강점기인 1933년 시험 채광을 시작하여 1938년 광산사업소를 짓고 광산 채굴을 시작했다. 1941년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시작한 이후 양양 동굴에서 캐낸 철광석은 일본으로 건너갔다. 1956년 국유화된 후 채굴을 재시작했고 1973년 포항 제철이 생기기 전까지 양양 광업소는 국내에 필요한 수요를 담당하다가 이후에는 생산된 철을 일본으로 수출했다 한다.&nbsp;해방 후 양양은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해방 후 38선이 그어지자 양양은 북한 땅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후 휴전이 되자 남한 땅이 된 것이다. 양양하와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으나 정작 뜻을 찾아볼 생각은 못하고 막연하게 긍정적인 의미로 쓰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차별과 혐오가 들어 있는 말이었다.&nbsp;&nbsp;‘양양하와이‘라는 속어를 연구한 이한길은 "양양하와이란 단어의 의미를 역사적 맥락, 군사적 충돌, 당시의 사회적 긴장 속에서 그 의미"를 찾는다. "5년여의 인공생활, 다시 5년여의 전쟁과 점령지로서의 생활, 도합 10여 년의 생활은 이 시대의 양양 사람들의 의식을 완전히 황폐화시키기에 충분했다며 양양하와이의 유래를 더 구체적으로 정리한다. "양양 사람들은 남쪽 사람들과 대화를 할적에는 항상 말 한마디마다 조심을 하였다. 그러니 말이 느릿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상대하던 남한 사람들은 양양 사람들을 가리켜 하와이라고 하였다. 마치 외국 사람이 한국말을 하는 것과 같았다고 비유했던 것"이다. 멀리서 보기에는 ‘다 비슷해 보이지만 양양과 강릉은 가까운 지역임에도 미묘하게 말씨가 다르다. 지금도 나는 강원도말을 ‘북한 말씨 같다‘고 하는 사람들을 볼 때 웃기 어렵다. - P180조심해서 느릿하게 말을 하는 것 뿐인데 이를 하와이라고 표현하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되짚어보면 강원도 사람들의 말이 북한 사람들의 말과 비슷하다고 하여 매체 등에서 너무나 안일하게 코미디 소재 등으로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이를 생각 없이 퍼나르고 배우지 않았나 곱씹게 되었다.&nbsp;양양의 이런 이력은 작가의 가족력과도 이어지는 면이 있다. 작가의 할아버지는 1921년생으로 남로당 당원으로서 좌익 활동을 했다. 한국 전쟁 중 할아버지가 실종이 되자 월북을 의심받으면서 가족들은 연좌제에 걸려들었다. 연좌제는 남은 가족들을 정서적으로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을 뿐 아니라 남한 사회 내에서 제도적으로 불이익을 주었다. 원래 작가의 아버지는 군인이 되기를 원했으나 연좌제라는 발목은 그가 온전한 직업을 가질 수 없게 했다. 작가의 어머니는 “네 아버지가 주저앉았잖아. 광산에.”라며 그때 그의 스트레스는 말도 못했다며 삶이 온통 울분에 차 있었다고 표현한다.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는 말에 함축된 삶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지 못하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엄연히 다르니까. 1978년 여러 노력 끝에 할아버지의 사망신고가 이루어지고 나서야 그녀의 아버지는 광부라는 직업을 비로소 얻을 수 있었다. 그 전에는 늘 빨갱이의 자식이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니며 감시 받는 세월을 견뎠을 것이다. 연좌제로 피해를 겪은 그는 광산의 불합리한 환경을 바꾸어보고자 광산 노조를 결심했으나 빨갱이에게는 그마저도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여러 번 시도하여 결국 노조위원장까지 갔다고). 게다가 당시 노조는 어용노조로 정부의 구미에 맞는 인사들로 채워져 있었다. 1980년 4월 일어난 사북항쟁은 신군부가 노조를 정화하겠다며 벌이는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과 충돌의 현장이었다. 신군부의 비상계엄령 후 노동법이 개정되어 노조는 산업별 체제에서 기업별 체제로 전환되었고 노조의 힘이 약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1987년 직선제가 시작되면서 노조도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분출했다. 그렇지만 이무렵이 되면 광산은 이미 규모가 축소화되면서 노조의 힘도 발휘되기 힘든 환경이 되었다.철광산업이 사장길에 접어든 것은 수입산 철광석이 증가하면서 국내 철광 가격이 경쟁력에 밀린 탓이 크다. 석탄산업이 사장길에 접어든 것은 신도시가 건설되면서 아파트가 증가하고 석탄 대신 기름 보일러를 때기 시작하면서 연탄 소비량이 감소되었고 1989년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에 의해 강제된 측면이 있다. 1995년 정선의 탄광촌은 생존권을 보장해달라며 투쟁한 끝에 합의를 보기도 했다. 이를 비롯해 여러 광산에서 생존권을 위한 투쟁이 벌어졌다.&nbsp;<br>광산 투쟁은 다른 산업 노조 투쟁과는 달리 여성들의 참여율이 상당히 높은 것이 특징이(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광업소와 사택의 거리가 가까워서 자연스레 직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성들은 사택촌에서 노동가를 익히기도 하고 서로 정보를 주고 받으며 노조에 힘을 던지기도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작가의 어머니는 작가의 아버지가 노조 위원장으로 집에 몇 달간 자리를 비우는 동안 강릉에서 작가와 함께 있으며 투쟁과는 거리를 두었다. 그런 영향 때문에 작가도 양양 철광산이 폐광 투쟁할 때 여성들의 활약을 몰랐다고 한다. 가정(과 아이)을 생각했던 측면도 있을테고 아버지의 활동이 그녀에게 부담을 준 측면도 있었으리라 보인다.<br>적지 않은 여성들이 ‘어머니마저‘ 밖에서 투쟁에 참여했을 때 자식들의 위치가 더욱 취약해질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은 그가치를 지키는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야만 정상적인 어머니로 인정받는다. 다른 자원이 없는 여성에게 모범적인 어머니 되기는 중요한 가치다. 1980년 사북항쟁에서도 자식 때문에 참여하지 않은 여성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집단생활이나 다름없는 지역에서 투쟁에 참여하지않는 아내/어머니의 복잡한 입장이 있다. - P272<br>세상이 변화하고 발전하면서 직업도 사라지고 새로 생겨난다. 어떤 직종은 어차피 ‘없어질 직업이기에 사라지는 수순으로 가는 게자연스럽게 여겨진다. 그러나 직업이 사라진다고 해서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사라지진 않는다. 직업은 사라져도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로 꾸준히 이동한다. 그들이 다 죽을 때까지 사회가 그들의 이동경로에 무심할 뿐 사람들 대부분은 사는 동안 꾸준히 일을 바꿔가며 생존한다. 무언가를 이루는 삶이 아니라 ‘견디는‘ 삶은 이름 없이 소멸하고, 이 삶의 경력은 무수한 노동으로 채워진다. - P45~46<br>일자리를 잃고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공포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나도 최근 몇 년간 지속해오는 걱정과 불안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AI가 등장하면서 인력이 기계로 대체되는 흐름을 더는 막을 수가 없게 되었다. 대부분의 광업 종사자들은 그 일에만 익숙하던 사람들이라 실직에 많은 이들이 무너지곤 했으리라 짐작한다. 과연 그들이 어떤 식으로 삶을 이어갔을지 궁금했는데 그 이야기도 담겨 있다.<br>광부들은 공통적으로 경제적 상실을 겪었고 일하던 환경과의 단절 속에서 관계가 분리되었으며 그리움(향수)를 경험했다. 그렇지만 광산 이후의 삶은 천편일률적으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어떤 이들은 다른 광산을 찾아 떠났고 아예 다른 직종을 찾기도 했다. 아파트가 늘어나던 1990년대 중반에는 아파트 경비원으로 취직하거나 시험을 봐서 주택관리사가 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편 카지노 기계실에서 일하다 이제는 사회복지가이자 서예 강사, 아마추어 연극인이 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죽어도 여기에서 죽겠다며 그곳을 떠나지 않고 채굴노동자에서 현장 관리 소장이 된 사람도 있다. 광산을 떠나 직업을 찾은 이들은 공부를 해서 시험을 보거나 구직을 위해 적극적으로 뛰어 들고 여러 취미를 가지며 정서를 돌보는 경우가 많았다.&nbsp;<br>그렇다면 폐광 후 그 도시는 어떻게 변모했을까. 정동진은 1991년까지 석탄 광산이 있었다가 폐광된 후에는 해돋이 관광지로 성공적으로 변모한 경우다. 광명도 탄광이 있었으나 지금은 테마 산업인 황금 동굴로 알려지게 된 곳이다. 동해는 노천 광산이 있었으나 지금은 거대한 테마파크로 변모했다. 문경도 대표적인 탄광 도시였으나 지금은 사극 촬영지로 더 유명해진 곳이 되었다. 정선 사북은 폐광 후 지역 경제를 진흥시키겠다는 목적으로 들어선 강원랜드로 이미지가 많이 변화한 곳이다. ‘극단 광부댁’은 광산 이야기를 전하는 연극 단체로 구성원들 중 광부 부인들이 있어서 이름이 그렇게 지어졌다. 처음에는 정선 아리랑을 배우는 동아리에서 출발했는데 이제는 도박 중독을 예방하기 위한 시민 연극 단체로 활동 중이라고 한다.&nbsp;<br>광업은 이제 한물 간 산업이고 광부도 빛바랜 존재로 느끼는 경우가 많아졌음을 느낄 때 정작 광업 종사자(였)던 사람들과 가족들은 힘을 잃는다(고 한다). 정작 국내 광산은 여전히 300개 정도가 운영 중이고 석회광산은 특히 많이 남아 있다고(정말 몰랐던 사실이다).&nbsp;<br>작가는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그러나 기억은 온전히 믿기가 어렵고 회고는 증언이 될 수 있는지 여부도 확실하지 않아서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1980년대 이후 자신이 온전히 기억할 수 있는 시기는 해석과 판단이 개입할까봐 거리두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 우려스러웠다고.&nbsp;<br>작가는 우려스러웠다지만 나는 이 책이 한 가족의 노동사이자 양양의 광업사로 확장되고 그곳에 살던 사람의 광부로서의 삶과 이후의 세계까지 담아낸 점이 정말 좋았다. 일반 역사책처럼 딱딱하지 않고 쉽게 읽히는데다가 사람들의 이야기에 녹아들다보면 감동과 함께 생각할 점을 많이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언급하고 싶은 것은 남성 광부의 삶 뿐 아니라 선광부로 일하는 여성의 삶, 그리고 광부 아내로서 사는 여성의 삶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점이다. 광부는 결코 혼자 존재할 수 없다. 매일 출근하는 이를 위해 도시락을 싸고 가족을 챙기던 여성들의 삶을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는 탓이다. 그들의 지원은 국내 광업이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던 힘이 되었다고 믿는다.&nbsp;<br>싸우는 사람들이 특별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 일상의 평범한 얼굴 속에 이미 투쟁과 저항의 역사가 흐른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다. 특별하게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누구나 싸우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것. 또한 이 싸움은 완벽하지 않고 모순과 뒤엉킨 채 일상을 살아가는 얼굴들이라는 것. 평범한, 싸우는 사람들이 지탱해온 역사의 일부를 기록하고자 했다. 혀가 없다고 취급받은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목소리를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그저 평범한 삶을 살다가 거대한 사건의 깊은 서사 속으로,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 작은 사람의 역사"는 여전히 부족하다. - P618]]></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89/4/cover150/897297200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3890449</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쇳돌</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07707</link><pubDate>Fri, 10 Apr 2026 07: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20770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72002&TPaperId=1720770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89/4/coveroff/8972972002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89/4/cover150/897297200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3890449</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쇳돌</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98273</link><pubDate>Sun, 05 Apr 2026 18: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9827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72002&TPaperId=1719827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89/4/coveroff/8972972002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89/4/cover150/897297200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3890449</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혁명의 러시아 1891~1991</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95819</link><pubDate>Sat, 04 Apr 2026 09: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9581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12531540&TPaperId=1719581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2220/48/coveroff/k612531540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2220/48/cover150/k61253154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2204878</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일상, 봄봄(2026.04.03)</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93847</link><pubDate>Fri, 03 Apr 2026 09: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93847</guid><description><![CDATA[매해 봄꽃이 피는데 언제나 봐도 좋다. 올해는 작년보다 빠르게 개화를 시작하여 벚꽃도 거의 반 이상이 폈다. <br>도심에 있으면 아무래도 삭막한데 이 시즌이 오면 만개한 봄꽃들을 볼 수 있다는 즐거움에 매일이 설레는 것 같다.<br>어제는 특히 날이 좋았다. 이틀 연속 날이 흐려서 피어난 꽃을 찍어도 우중충해서 아쉬웠는데 어제는 날이 쨍했기 때문이다. 미세먼지는 살짝 나쁨이었지만 봄 치고는 이 정도면 괜찮다 싶은 수준이었다.<br>점심 먹고 산책 나갔다 역시나 많은 인파에 놀란…!<br>사람들이 꽃을 배경으로 웃으며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니 ’봄은 봄이네.‘ 싶었다. <br>물가는 고달프고 전쟁 소식 때문에 암울하지만 그래도 봄꽃이 핀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잠시 행복 회로를 돌리게 하는 듯하다.<br>원래라면 벚꽃이 이번 주말이 피크일텐데 오늘 밤부터 비가 온다고 한다.<br>남은 봄 예쁜 풍경 많이 마주해야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03/pimg_7155161735080040.jpg</url><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93847</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혁명의 러시아 1891~1991</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93712</link><pubDate>Fri, 03 Apr 2026 08: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9371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12531540&TPaperId=1719371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2220/48/coveroff/k612531540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2220/48/cover150/k61253154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2204878</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혁명의 러시아 1891~1991</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91785</link><pubDate>Thu, 02 Apr 2026 08: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9178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12531540&TPaperId=1719178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2220/48/coveroff/k612531540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2220/48/cover150/k61253154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2204878</link></image></item><item><author>거리의화가</author><category>밑줄긋기</category><title>[오늘의 한문장] 혁명의 러시아 1891~1991</title><link>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91035</link><pubDate>Wed, 01 Apr 2026 20: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719103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12531540&TPaperId=171910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2220/48/coveroff/k612531540_1.jpg" width="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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