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냐 > 복종하지 않으면 다리를 잘라버린다!
빨간구두 - 안데르센동화 20
한스 크리스찬 안데르센 지음, 김종순 옮김 / 문이재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물려받은 애니메이션 동화책 중에 '빨간 구두'가 있었나보다. 공주풍 애니메이션 그림체가 취향에 안맞아 내가 고를땐 빼놓는데 딸래미는 그 시리즈를 좋아한다. 너무 강해 조미료를 쏟아부은것 같은 그 애니메이션 그림책. 암튼, 오늘 딸래미가 읽어달라고 '빨간 구두'를 들고왔다. (리뷰작으로 고른 저 '빨간구두'와는 출판사가 다르다..뭐, 별 차이없겠지만)

별 생각없이, 읽기 시작한 무심한 엄마. 하지만, 곧바로 생각났다. 춤추는 빨간구두와 함께 발목(이건 내 기억이고, 책엔 다리로 나왔다)을 잘라버려야 할텐데. 이건 호러야, 호러...어떻하나. 6살짜리에게 이게 과연 얘기되는 책일까.

그래도 무딘 엄마. 계속 읽었다. 다들 알겠지만 내용은 이렇다.

가난한 카렌. 맨발로 다니다 발을 다치자 그녀를 동정한 구둣방 아주머니가 빨간 구두를 준다. 집에 돌아와 자랑하려 하는데, 병든 엄마가 숨을 거둔다. 신발이 없던 카렌은, 아니 빨간 구두에 푹 빠져 다른 생각이 안든 카렌은, 엄마의 장례식에 빨간 구두를 신고 갔다가 동네 사람들의 눈총을 받는다.

장례식에서 그녀를 불쌍히 본 어느 할머니가 그녀를 거두는데...예쁘게 자란 카렌. 할머니가 교회에 신고갈 검정 구두를 사라는데, 구둣방 갔다가 삘이 꽂혀 빨간 구두를 산다. 할머니는 교회에서 빨간 구두를 신은 카렌에게 깜짝 놀라고...다음엔 그러지 말라고 하는데, 카렌은 그 다음주 깜빡하고 또 빨간 구두를 신는다...뭐, 모두들 수군거리고.. 어찌저찌 충격받은 할머니는 또 숨을 거두고...미친듯 춤을 추는 저주의 빨간 구두를 신은 카렌은 온갖 고난끝에 결국 다리를 자른다. 그리고 교회에 와서 불쌍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며 속죄하다가 결국 영혼은 구원받는다....

빨간 구두에 대한 욕망. 예뻐지고 싶다는, 돋보이고 싶다는, 남과 다른 개성에 대한 욕망은 죄악. 설혹 그 또래 소녀의 당연한 욕망이라 할지라도..교회는, 장례식은 '검은 구두'를 요구한다. 차라리 맨발일지언정...빨강은 불경한 색인 것이다. 검은빛의 금욕에 대한 압박은 너무 거세다. 다리를 잘라버려도 성이 차지 않을만큼, 교회는 매섭게 금욕을 요구한다.

욕망에 충실한게 전부인가? 아니다. 카렌은 할머니께 검은구두를 샀다고 거짓말하고, 할머니가 병든 사이 빨간 구두와 미모를 자랑하고 싶어 왕자님이 개최한 무도회에 간다. 어른 말은 좀체 듣지 않는 아이. 거짓말을 하는 아이다. 책 시작할 때만 해도, 병든 어머니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효녀 수준이었는데, 갑자기 빨간 구두에 유혹당한 이후에는 '죄악'에 물들어버린, 구제할 수 없는, 맹목적인 아가씨로 둔갑한다. 자기를 거둬준 할머니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착한 아가씨인데, 그놈의 구두 앞에서는 무뇌아가 되버린다.

결국 어른 말을 듣지 않고, 이웃의 눈총을 무시하고, 교회에 거역한 죄는 다리를 잘라버리는 형벌로 이어진다.  심지어 카렌 스스로 마땅한 벌이라며 속죄하고 봉사의 삶을 택한다. 이건 '내탓이오'가 아니라 절대권력을 존중하라고 세뇌된 거다. 욕망도 나쁘지만, 기성세대와 교회에 반항한 죄는 목숨을 내놓아야 마땅한데, 많이 봐줘서 다리를 자른거란 얘기다.

책을 덮고 딸 눈치를 봤다. 다소 겁에 질렸다. 당연하지. 괜찮냐고 물으니 괜찮단다.

'딸아, 세상에..어른 말 안듣는다고 그런 폭력이 용서되는건 아니란다. 동화로 아이를 협박하고 복종을 요구하는 건 잘못된 거란다.'...물론 이런 말은 안했다. 내 딸은 여섯살이다. 대신 저 책을 치워버릴 생각이다.

어린 시절 안데르센 동화 잘 읽고, 잘 자라서 어느새 엄마가 됐지만...뭔가 속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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