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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을 선대스의 삶
중학교 입시에서 탈락한 학생들 중 수십 명이 자살을 시도했다. 대전에서는 입학시험에 낙제한 소년이 할복자살을 했고, 청진에서는 답안지에다 낙방을 하면 자살을 하겠다는 혈서를 쓴 학생이 결국 시험에 떨어지자 겁이 난 교장이 수시로 찾아가 학생을 위로했다.

일류 대학을 가기 위해 일류 중학교 입시를 준비하는 국제중 시대의 이야기 같지만 놀랍게도 이것은 1930년대의 교육 풍경이다. 심각한 취업난에 조금 더 높은 학력과 조금 더 나은 학벌을 갖기 위한 제로섬게임의 역사는 참으로 유구했던 것이다.

2007년 수시전형에서 내신 1등급의 일반계 고등학교 학생은 탈락시키고 내신 8등급의 특목고 학생들을 합격시킴으로써 고려대가 사실상의 고교등급제를 시행한 사실이 알려졌다. 본고사 부활, 고교등급제 실시, 기여 입학 허가 등 지난 정권이 고수하던 3불이 흔들리자 아이러니하게도 강북의 학부모들이 먼저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나섰다. 이제 공교육이 정상화되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강남권과의 교육 격차를 줄일 수 있다. 국제적인 추측이 난무한 가운데 과연 그러한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만, 유사한 시대 상황도 아니고 유사한 경제 구조, 소득 수준도 아닌데, 끝을 알 수 없는 향학열은 대체 어디서 유래하는 것일까? 한국 사람은 정말 학구열 유전자라도 가지고 태어난 것일까?

강준만 교수의 『입시전쟁 잔혹사』는 완고한 학벌 사회와 학력 인플레가 어디서 유래했는지, 그 구조는 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를 파헤쳐 들어간다. 매관매직이 횡행하던 조선의 파행적 과거 제도부터 전체 가계소비지출 중 교육비 비중이 최대치에 이른 2008년에 이르기까지 한국 교육제도의 근저를 지탱해 왔던 구조적, 정신적 뿌리를 더듬어간다. 이 거스름의 과정은 물론 교육제도 개선, 학력 사회 완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학력 사회를 철폐하자는 식의 희망적인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강준만 교수 스스로 그것은 이미 불가능한 지경에 이렀다고 말한다.

교육이 입시에 맞춰짐으로써 학문적 발전과 상관없이 경쟁의 우위를 점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돼 버린 이유가 어디 있는지를 밝혀내지 않고서 대학 입시제도 개선과 같은 한시적인 교육 정책 변화는 쇼에 불과하며 이명박 정권에 이르러 급기야 퇴폐적인 미치광이 쇼가 돼 버린 교육 현실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 것인가.

이 책의 미덕은 시종일관 논설조의 말투로 이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능이 처음 실시되던 해, 8월이라 매미 소리도 한창이니 행여 듣기 평가에 지장이라도 줄세라, 매미를 잡으러 발 벗고 나선 교사들, 갑작스럽게 비행기가 뜨질 않아 당황스러웠다던 외국인의 술회, 집 나간 아들을 찾기 위해 ‘이제 과외 공부 안 시킬 테니 집으로 돌아오라’는 신문 광고를 낸 학부모. 일본 만화에서나 쓰일 법한 유머 장치들이 수십 년째 일사불란하게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이 나라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무엇에 홀려 있고 거기서 깨어나기 위해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지 말해주고 있다.

강준만, 『입시전쟁 잔혹사』, 인물과 사상사, 값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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