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츠바나 다카시의 서재를 읽으면서
이소룡과 그의 미완의 마지막 작품이자 유작인 사망유희(死亡遊戱,
Game of Death)가 떠올랐다. 먼저 20만권이란
압도적인 지식의 세계 속을 홀로 부유하며 성장해온 다츠바나 다카시의 모습은 무술, 쿵푸를 바탕으로 태극권, 유도, 가라데, 무에타이, 태권도 등의 요소를 조합하여 상대방의 동작을 미리 저지하는(Stop-hitting)
절권도(截拳道)로 재창조한 이소룡의 모습과 닮아
있다.
또한 고양이 빌딩이라는 공간 속에
의학, 생물학, 역사, 종교, 과학 等에 이르기까지 찬란하게 펼쳐진 지식의 스펙트럼은 5층의 사망탑을
한층씩 올라가며 강한 상대와 차례대로 대결을 벌이는 사망유희의 계단형 격투 구조를 연상시켰다. 무엇보다도
고양이 빌딩의 서가는 다카시의 지식, 추억, 고뇌의 편린들이
축적된 개별적 세계이자 역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다카시의 순수한 '지적 호기심'이 동력이 된 것이다. 이소룡이 무도인으로서 전통이나 계파에 구애
받지 않고 순수하게 강함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한 과정도 다카시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본 도서 리뷰의 방식을 사망유희의 계단형의 일대일(Head to Head) 격투구조
형식을 차용해보기로 하였다. 계단형 격투구조 자체는 고양이 빌딩 곳곳을 순회하며 해설하는 본 도서의
전개와도 유사점이 있다. 일대일 격투구조는 스스로 학습하며 성장한다는 다카시의 앎에 대한 철학을 상징하기도
하고 또한 본 리뷰에서 도서의 방대한 지식세계를 모두 다룰 수 없는 현실적 한계를 고려한 타협점이기도 하다. 사망유희처럼
여기서도 고양이 빌딩의 장소마다 인상 깊었던 점 한가지와 그것에 대한 소회 위주로 서술해보고자 한다.
고양이 빌딩 1층
고양이 빌딩 1층은 의학, 생물학, 심리학, 핵발전 등에 대한 도서로 채워져 있다.
1층에서는 다카시의 연구에 대한 생각과
최신기술에 대한 습득방식에 대한 고민이 옅보였다. 현대 사회에 있어 연구의 자유의 중요성은 누구나 인정하는
부분일 것이다. 다카시는 전쟁중이거나 독재국가가 아니라면 연구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은 있을 수 없으며
또 있어서도 안된다고 주장하는데 절대적으로 자유로워야 할 문학과 예술 분야에 조차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는 한국의 현실이 오버랩되며 만감이 교차하였다.
또한 최신기술이 실시간으로 적용되고
있는 현장과 그것이 도서라는 체계적인 형태로 정리되는데 까지의 시차 (time lag)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은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트랜스포매이션이 화두가 된 현재, 지식습득의
형태와 방안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한다.
고양이 빌딩 2층
고양이 빌딩 2층의 서가는 그리스도교와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에 관한 책들을 보유하고 있다.
2층에서 주목한 것은 저자가 언급한 일본의 역사였다. 다카시는 헤이안, 카마쿠라, 무로마치, 도쿠가와, 호조시대를 거치며 일본의 정치는 권력이 공식적인 곳에서 비공식적인 실력자가 있는 곳으로 이행해온 과정의 연속이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는 국정논단과 비선실세로 인해 국정의 정상적 시스템이 붕괴된 한국적 상황에서 흥미롭게
다가왔다. 또한 학문적으로 정통으로 인정받고 교과서에도 게재되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진실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다카시의 주장에서는 국정 교과서 논란이 떠올랐다. 역사는 사실의 집합체이며 모든 사실을
집대성할 수 없다는 현실적 한계를 고려해볼 때, 객관적 사실만을 선택한다는 것 그 자체도 객관적이라고
할수는 없다. 따라서, 여타의 학문과 마찬가지로 역사도 하나의
관점에서만 판단할 수 없는 것이며 과학의 진보는 현상을 보는 다른 시각의 반복에서 이루어져왔다는 다카시의 주장에 공감한다.
고양이 빌딩 3층
고양이 빌딩 3층은 신비주의와 신화, 종교, 과학에
관한 책들로 가득하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책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전통적인 (Conventional) 종이책의 역할을 언급하는 대목이었다. 다카시는
책이라는 것은 텍스트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콘텐츠 이상의 의미를 갖는 요소들이 모두 독자적으로 자기표현을 하는 종합미디어라고 주장한다.
책의 존재 목적은 그 안에 담긴
텍스트를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효과적이라는 것…” 진부한 논쟁이긴 하지만 종이책과 전자책의 차이점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책은 독자가 텍스트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종이책은 오감만족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표지가 전달해주는
시각적 이미지, 종이의 질감과 잉크의 향기, 책장을 넘길
때 손가락과 입술에 느껴지는 감촉, 사각거리는 소리는 총체적으로 책의 의미를 부연해주는 것들이며 전자책으로는
구현하기 힘든 것이다. 종이책 본연의 장점은 본 도서 <다츠바나
다카시의 서재>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식인의 책에
대한 여정을 서가 정밀 촬영술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시각적 즐거움과 함께 텍스트의 의미를 보다 풍성하게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은 종이책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다. 절대적으로!!
고양이 빌딩 옥상
고양이 빌딩 옥상은 로마 等 서양사와
철학과 관련된 책이 주로 모여 있는 곳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디자인 씽킹 (Design Thinking)의 개념이 떠올랐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란 파리잡이통에 갇힌 파리에게 어떻게 하면 밖으로 나올 수 있는지 가르치는 것을 의미한다. 본능에
이끌려 파리잡이통에 들어온 파리는 위쪽으로 밝은 외부를 향해 날려고 하고 그렇게 함으로서 덫에 걸려 파리는 외부로 나가지 못하게 된다. 즉, 파리는 전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채 본능에 따라 날기만 하기
때문에 아무리해도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본능에 반하는 방향으로 날아 미로와
같은 구조를 통과하여 유리병 밑 가장자리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이는 현대 철학의 문제는 질문이 잘못된
것이고, 당연히 그 질문에 맞게 대답하는 것도 방향이 잘못될 수 밖에 없는 것을 의미한다. 디자인 씽킹은 문제에 대한 공감(Empathize)하는 과정을 거쳐
문제를 정의(Define)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Ideate)를
제시하는 것을 반복하는 사고의 방법론이다. 현상문제에 대한 진심어린 공감에서 우러나온 문제제기를 토대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며, 한번 제기한 문제제기도 적절한 것이었는지 끊임없이 검증하는 과정을 거친다.
산초메 서고 / 릿교대학 연구실
산초메 서고와 릿교대학 연구실에는
미술과 영화, 음악에 대한 서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흥미로웠던 것은 역사는 현재
시점으로부터 역순으로 배워야 한다는 다카시의 주장이었다. 일본인들은 모두 조몬시대와 야요이시대는 잘
알고 있지만 현대사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다카시는 일본의 역사교육은 새로운 시대를 정면에서 가르치려고
하지 않지만 진짜 가르쳐야 할 것은 현대의 역사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과거의 200년이 이해가 되면 그것을 기반으로 현재의 시점이 이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적은 한국의 현실에도 유효한 부분이다. 한국의 학생들도
현대사에 대해서는 깊이 학습하지 않는다. 수학의 확률 통계와 마찬가지로 고조선, 삼국시대, 조선시대까지의 역사는 수학능력시험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지만
현대사는 교과서에서 차지하는 비중 자체가 작고 학생들도 신경써서 공부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 바로
이 시점도 역사의 한페이지로 기록되는 것임을 감안할 때 현대사 학습은 현재의 상황이 어떻게 만들어져왔고 각자의 위치에서 우리는 어떠한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 버젼의 <다츠바나 다카시의 서재>를 기다리며
이 책은 한국 뿐만 아니라 책을
사랑하는 모든 독자들에게 의미가 있는 책이다. 책을 선택하는 기준에서부터 학문과 지식을 대하는 자세에
이르기까지 다카시는 전기회로의 임피던스에 비유하며 독자들에게 통찰력을 제공하고 있다. 다카시의 주장처럼
어느 누구의 그 어떤 상황에도 완벽하게 적합한 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책을 사랑하는 독자가 해야할 것은
책의 머리말을 읽어 보거나 훌훌 넘겨가며 부분 부분 읽어보면서 책과 나와의 임피던스를 맞추며 나에게 적합한 책을 찾는 것이다. 이 부분은 특정 무술의 형태나 한계에 매달리지 않고, 자신의 신체특성이나
스타일에 맞는 프리스타일 파이팅을 추구하는 이소룡의 무예철학과도 많이 닮아 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아쉬운 부분이
느껴졌다. 독자들이 지식인의 서재를 궁금해하는 이유는 지식인이 읽는 도서의 목록 그 자체만이 아니다. 도서의 목록을 넘어 지식인이 그 도서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사회적 역사적 맥락 속에서 해설을 듣고 싶은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본인 저자 다카시는 한국의 독자들과 다른 공간에서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경험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한국인 독자들에게 채워줄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느껴졌다. 또한 서가 정밀 촬영술도 서가
형태와 느낌은 놀라울 정도로 잘 전달해주었지만 언어적 한계로 인해 책의 텍스트를 부연하고 돋보이게 해주지는 못했다. 저자가 일본에 서양철학이 소개된 역사와 일본 출판업계 및 고서점의 현실에 맞추어 독자들에게 조언하는 등 일본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책에 대한 설명을 전개한 부분도 있다.
이소룡은 "산다는 것은 순전히 사는 것이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을 아니다."고
하였다. 지식을 탐구한다는 것은 지식 축적을 통해 어떤 목적 달성을 염두에 두는 것이 아니라 앎이라는
그 자체로서 빛나는 경험이라는 것을 다카시는 보여주고 있다. 일본의 다카시처럼 한국에도 지식과 학문에
대한 긴 여정을 애정어린 조언과 함께 독자들에게 공유할 사람은 없는 것일까? 그 누군가가를 기다리며
오늘도 나는 책과 나와의 임피던스를 맞춰보며 나만의 책으로의 여행에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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