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을 매료시키는 힘은 가장 황당한 모험과 대상에 대한 애정, 그리고 그것을 향한 부단한 탐구에서 나온다.” (p. 158)
인간은 모험하는 존재이다. 아무도 도달하지 못한 곳에 도달하고, 새로운 경험을 누리고 싶다는 인간의 모험심은 우리에게 내재된 원초적인 욕구이고, 문명 발전의 근간이기도 하다. <돈키호테>가 세계 최초의 근대소설로 평가를 받고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도 모험을 하며 성장을 거듭하는 인간의 원형을 그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나 청년이었고, 우리 안에는 여전히 모험 그 자체인 청년, 모험을 하지 않고선 견디지 못하는 인간의 원형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자연과 단절되어 삶에서 모험이 거세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뒤돌아 생각해보면 시대마다 각자 다른 형태와 방식으로 표출되었을 뿐, 인간은 항상 저마다의 모험을 하고 있었다. 정상원 작가의 <글자들의 수프>를 읽으며, 현대인이 추구하는 모험 중에 대표적인 사례가 음식에 대한 탐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의 전작 <탐식수필>의 부제도 ‘미식탐험을 위한 안내서’였다. 음식을 만들고 소비하는 것은 탄생과 소멸인 동시에 끝없이 반복되는 생과 사의 윤회와도 같다. 또한, 그러한 행위의 반복은 인간의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삶을 지속해나가기 위한 기본적인 행위인 동시에 궁극의 아름다움을 탐구할 수 있는 신의 선물이기도 하다. 혀를 거쳐서 뇌로 전해지는 행복, 단순하기까지 한 그것은 지금 이 시간에도 전 세계에서 저마다 다른 형태와 방식으로 소비되고 또 발전하고 있다.
“그 공간, 그 소리, 그 냄새가 나야만 비로소 온전해지는 맛의 경험들이 있다.” (p. 98)
무언가를 입에 넣어 씹는 순간은 인간이 자신의 생 앞에서 가장 진실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정상원 작가의 <글자들의 수프>를 익으며 같은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은 그 기억들을 공유하고 있고, 그러한 공유된 기억들이 구체적인 음식에 대한 취향을 다를지라도 서로를 이해하는 단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애초에 ‘맛’이라는 건 실존하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각자의 내밀하고도 고유한 추억, 그리고 집단으로 공유되는 기억이 ‘맛’ 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지 않을까? 공유된 기억이 매개가 되어 타인의 내밀한 추억을 들여다보고, 결국에는 서로를 이해하고 위무하며 우정을 쌓는다. 또한, 마들렌 조각과 홍자 한 모금이 원인을 알 수 없는 감미로운 기쁨으로 치환되며 인생의 고뇌에서 벗어나 황홀감을 느끼게 해주었다는 정상원 작가의 고백처럼 ‘맛’이라는 신의 선물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인류에게 기쁨을 주기도 한다. <글자들의 수프>는 베테랑 쉐프이자 작가인 정상원이 독자들에게 보내는 미식으로 떠나는 여행의 초대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