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잭와일드님의 서재
  •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 무라카미 하루키
  • 17,550원 (10%970)
  • 2023-09-06
  • : 163,344

하루키의 '글'을 좋아한다. 내가 '소설'이 아닌 '글'이라 표현한 것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 학창시절 '노르웨이의 숲'으로 하루키를 처음 만난 나는 그 후 거의 30여년간 그의 팬답게 수줍고 조용한 하루키언이자 하루키스트로 활동해왔다. (나는 그의 데뷔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아닌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바꿔 재출간하기 전 '노르웨이의 숲'으로 그를 처음 접했다.) 그의 책 신간이 공개되면 매번 예약구매할 정도로 유난을 떨진 않았지만, 익숙하고 당연한 의식처럼 관심있게 챙겨 봐오곤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내가 그의 소설보다 에세이에 더 애정을 품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한 권 한 권 그의 책들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 서가의 한 켠이 하루키의 책들로 채워지게 되었는데, 소설보다 에세이가 훨씬 많았던 것이다. 소설가인 그를 소설로서 처음 만나 팬이 된 나인데, 왜 나는 소설 보다 그의 에세이에 더 애정을 갖게 된 것일까?

 

 

물론 소설 만큼이나 그의 에세이도 좋았던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하루키는 에세이를 통해 일상의 빛났던 순간들, 여행과 음악, 책 등 다방면에 걸친 자신의 취향, 귀중하고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를 독자에게 건넨다. “세상엔 실로 갖가지 함정이,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은밀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아무 일 없이 매일 평온하게 살아가기란 그리 간단치가 않다.”며 삶의 아포리즘을 드러내기도 하고, "일정 수준의 경지에 올라선 작가답게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은 모두에게 찬사를 받는 것이 불가능한, 본의 아니게 타인에게 해를 끼치기도 하는 비정한 세계에 속해 있다는 것, 또 그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작가가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작가의 숙명을 비장하게 언급하기도 한다. 그의 에세이에는 소설로서는 독자에게 전하지 못하는 메시지와 그를, 또 그의 소설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단초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순히 스토리만이 아닌 주인공이 구축한 세계와 그 세계에서 성장하는 주인공을 그리는 하루키만의 스타일에 매료되어 왔던 내가 그의 최근소설에서 예전만큼의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이유도 일부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올해 기사단장 죽이기 이후 6년 만에 신작 장편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한편으로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고 구매를 망설이지는 않았지만, 막상 읽으려고 마음을 먹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이 사실이다. 이전에 그의 신작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여느때와 달리 소설을 읽기 전에 신작에 대한 배경지식을 찾아보고, 다른 독자들의 리뷰와 평가에 대해서도 찾아보면서 소설을 읽기 전에 유난히 뜸을 들였다. 내가 그의 신작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 것은 이 소설은 30대의 하루키가 중편으로 발표했던 것으로, 43년이 지난 2023년 70대의 하루키가 장편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였다. 30대의 하루키와 70대의 하루키가 완성해낸 신작. 더군다나 "이 작품에는 무언가 나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처음부터 그렇게 느껴왔다. 다만 당시의 나는 유감스럽게도 아직 그 무언가를 충분히 써낼 만큼의 필력을 갖추지 못했다"며 "나에게 이 작품은 줄곧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신경쓰이는 존재였으므로 이 작품을 완성한 지금 솔직히 마음이 무척 편안해졌다"고 하루키 자신이 직접 작가 후기에 남긴 것을 보고, 그의 오랜 팬으로서 소설을 집어들 수 밖에 없었다.

 

 

“그냥 원하면 돼. 하지만 무언가를 진심으로 원한다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야. 시간이 걸릴지도 몰라. 그사이 많은 것을 버려야 할지도 몰라. 너에게 소중한 것을. 그래도 포기하지 마.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 p.15

 

 

하루키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책, 클래식과 재즈, 맥주, 위스키, 파스타 등 자신만의 확고한 취향과 질서로 쌓아올린 세계가 존재하고, 이성과 자유로운 연애를 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중년의 남자는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도 여전하다. 그는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모험을 하며 성장을 한다. 하루키의 소설에 익숙하게 등장하는 클리셰는 여전하지만, 익숙한 클리셰의 변주를 통해 하루키는 절망과 상실, 사랑과 희망, 현실과 이상에 대해 말한다. 소설의 화자인 '나'는 17살의 남고생이다. 화자는 여고생 '너'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어느 날 '너'는 '나'에게 "현실의 나는 그림자일 뿐이고, 진짜 나는 견고한 높은 벽에 둘러쌓인 도시에 있다"고 말한다. 이런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기고 남기고 소녀는 갑자기 사라지고, 이후 주인공은 상실의 아픔을 품고 살아간다.

 

 

소년은 자신의 '그림자'를 버리고 도시로 사랑 꿈을 향해 떠나지만 도시 속에서의 삶도 그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이유를 알수 없이 부유하는 삶을 살고 있는 그에게 벽 바깥에 떼어 놓고 온 '그림자'가 그를 흔든다. 그림자는 도시의 삶이 오히려 허상이고, 벽 바깥에 존재하는 현실의 삶이 진실이라고 속삭인다. 현실과 비현실, 점점 더 모호해지는 진실과 거짓의 경계 속에서 우리는 어느 세계를 믿고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소녀를 찾아 벽으로 둘러쌓인 도시와 현실을 오가며 고뇌하던 소년은 어느덧 중년이 되어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하루키는 감각을 자극하는 상상력으로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사람들이 마음속에 품고 사는 비밀에 대한 생각과 의문을 자유롭게 펼쳐낸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각자 다른 상황 속에서 다른 선택을 내리며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삶에 관한 소설이다.

 

 

삶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안정된 상태라고 느끼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미지의 것이 느닷없이 닥친다. 이렇게 질서가 무너진 혼돈 속에서 우리 삶은 현실부정과 절망,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잠식되어 간다. 삶은 질서와 혼돈으로 점철되어 있다. 안정된 질서 속에 갑자기 혼돈이 찾아오기도 하는 반면, 모든 것을 상실한 듯한 절망적 순간에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기도 한다. 삶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질서와 혼돈의 경계 위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삶에서 인생의 의미가 빛을 잃어가고, 절망과 두려움이 고개를 드는 순간과 마주칠 때 우리는 무엇에 의지하며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진실'이 다르고, 본능적으로 자신을 정당화하고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경계'가 필요하다.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경계들, 그리고 그 수많은 경계에도 불구하고 맺어지는 수많은 관계들...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역사와 존재이유를 가진 하나의 섬이다. 섬은 연결과 단절의 이중성을 가진 특별한 공간이다. 수면 위 드러난 부분을 기준으로 보면 섬은 단절된 공간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면 밑으로 섬과 섬들은 연결되어 있다.

 

 

우리를 만드는 것은 경험이 아니라 그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이다. 우리는 수많은 경험을 하면서 삶을 살아간다. "동일한 사건을 두고서도 사람들은 서로 다른 언어적, 신체적, 심리적 반응을 보인다. 이것은 그 사건을 대하는 개인의 믿음, 즉 공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건(Accident)을 경험하면서 개인은 자신만의 공식(Belief)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Consequence)를 창출해낸다는 'A-B-C 법칙'처럼  마치 세월의 풍화 속에서 동식물이 퇴적, 암석화의 과정을 거쳐 화석이 되듯이 우리가 겪은 경험은 사건의 잔상과 흔적, 진실의 파편 속에서 원형만이 살아남아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구성한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축적되고 숙성되어 각자의 독자적인 '말'의 방식이 되고, 개인의 고유한 방식은 일상의 다양한 만남과 대화를 거치며 수정되고 발전되어 간다. 과거 경험을 토대로 현재의 일상을 탐구하는 모든 개인은 모더니스트 (Modernist)인 동시에 자기 자신의 역사가 (His own Historian)라고 할 수 있다.

 

 

"한 세계와 또다른 세계의 경계를 초월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고통을 수반하는 각인. 나는 아마도 그것을 내 존재의 일부로 간직한 채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 p.667 -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으며 저마다 개별적 삶을 살면서도 타인과 또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한 시대를 이루고, 그것이 되풀이되고 순환되는 과정을 거쳐 역사를 구성하는 인간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동시대를 같이 호흡하면서도 온전히 현재를 살아내지 못하고 누군가는 과거의 한때에 머무르고, 또 누군가는 과거의 기억을 넘어 미래를 응시한다. 동시대를 같이 호흡하면서도 온전히 현재를 살아내지 못하고 누군가는 과거의 한때에 머무르고, 또 누군가는 과거의 기억을 넘어 미래를 향하는 것은 인간은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 (Kronos)' 보다 주관적이고 심리적 시간인 ‘카이로스 (Kairos)'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우리를 구성하는 것인 동시에 미래를 꿈꾸고 호흡하게 하는 두번째 심장이다. 우리는 상실과 결핍, 몰이해라는 인간의 한계와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무심하게 흘러가는 세계 속에서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으로 한 조각의 진실과 삶의 의미를 구하려 애쓰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건 아주 오래전에 죽어버린 시간의 단편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얼마 안되는 그 따스한 추억은 낡은 빛처럼 내 마음속을 지금도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 그리고 죽음이 나를 사로잡아서 다시금 무의 도가니에 던져 넣을 때까지의 짧은 한때를 나는 그 빛과 함께 걸아갈 것이다." - 1973년의 핀볼, p. 198 -

 

 

소설 속에서 '그림자'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그림자는 고단한 일상에서 미처 신경쓰지 못하고 지나친 내면의 목소리, 삶의 본질을 상징하는 것 아닐까? 내가 내린 나름의 답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타인과 또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한 시대와 삶을 이룬다. 그것이 되풀이되고 순환되면서 빛이 되고, 그림자를 만든다. 그림자는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 속에서 불완전한 형태와 빛깔을 띠지만 나와 완전히 분리할 수 없는, 필연적으로 나를 구성하는 일부분이다. 소설에서 주인공인 '나'는 삶을 탐구하는 여정 속에서 길 위에 길게 드리워진 자신의 옅은 그림자를 본다. 그 옅은 그림자는 삶이 지속될수록 꼬리를 끌며 그를 따라오며 점점 짙어졌었다. 그건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자신의 내면이었다. 사랑과 꿈을 향했던 여정은 결국 자신의 내면에 침잠하는 여정이었다. 긴 방황을 거친 후에 비로서 그림자를 재발견한 것처럼 앞으로의 삶은 행복의 빛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 그의 그림자는 빛을 따라 묵묵히 그의 삶을 지지해줄 테니 말이다.

 

 

“모든 건 스쳐 지나간다. 누구도 그걸 붙잡을 수는 없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p. 143 -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So we beat on, boats against the current, borne back ceaselessly into the past.)”라는 소설사에서 가장 유명한 엔딩을 남겼던 피츠 제럴드의 말처럼 이제 막 데뷔작을 내고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는 젊은 시절의 하루키는 영원한 것은 없고, 모든 건 스쳐 지나간다는 것, 그 흐름은 누구도 붙잡거나 돌이킬 수 없으며, 순종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 후 하루키는 수많은 저작을 남기고, 소설과 에세이를 통해 삶에 대한 수많은 아포리즘을 남겼다. 적어도 나에게는. 하지만, 이제 70대의 거장이 된 그의 수많은 말 속에서도 현 시점의 나에게 가장 깊게 다가오는 것은 30대의 그가 남긴 말이라는게 참 아이러니하다. 그와 함께 했던 날들의 소중함과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와 앞으로 함께 할 날들이 많이 남지 않았음을 느끼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세상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밀려나지 말고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으로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의 말에 다시 한번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