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알 것 같았다. 이 아이와 함께 하는 이 순간이 내가 겪은
여름 중 가장 찬란하고 벅찬 여름이 될 거라는 걸. 마주하는 순간 마다 그리워하게 되는, 유난히도 더운 여름이 계속 되고 있었다." (p. 187)
인간의 삶은 평범한 사건들이 빚어낸 기적이고 역사다.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삶의 순간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다. 그러한 순간들이
모여서 시간과 역사를 이루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개별적 세계가 빚어지기 때문이다. 지나온
세월 동안의 경험과 기억들은 현재의 우리를 구성한다. 즐거웠던 추억과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아픔들,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시절과 떠올리는 것조차 두렵고 고통스러운 시절들을 거쳐 오늘의
우리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역사와 존재 이유를 가진 하나의 섬이다. 서로의
고유한 존재방식, 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든다. 하지만 섬은 연결과 단절의 이중성을 가진 특별한 공간이다. 수면
위 드러난 부분을 기준으로 보면 섬은 단절된 공간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면 밑으로 섬과 섬들은 연결되어 있다. 삶이란
저마다 쌓아 둔 사연들로 섬들이 나누는 대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서로가 단절된 채
살아가는 것 같아 보이지만 우리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며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온기를 나누는 존재들이니 말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인간은 상실과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불완전함 이야말로 각자 다른 정체성을 가진 채 서로 다른 상황에 놓인 우리를 하나로 연결시켜주는 매듭이 되는 것 아닐까? 신뢰와 사랑, 자발적 책임이 동반된 관계를 구축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은 불완전한 현실을 일정 부분 해소시켜주는 심연의 해독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을
비로소 인간 답게 만들어주고, 삶을 살아가는 근원적인 동력이 되는 것은 일견 불필요하거나 비효율적인
행위처럼 보이는 사랑, 우정, 신뢰와 같은
가치들이다. 서로를 향해 뻗는 온기 어린 손짓이 결국 메마른 삶에 활기가 되어 내일을 밝히는
희망이 된다.
이꽃님 작가의 신작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는 사랑, 우정, 신뢰에
대한 이야기 즉, 우리네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화재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유찬'과 스스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아이라고
생각하는 '지오', 저마다의 아픔과 상처를 지닌 열일곱의
두 아이가 어느 해 여름 우연히 서로를 만나게 되면서 굳게 닫았던 세상을 향한 마음을 조금씩 열고, 함께
하는 삶으로 한걸음 씩 다가간다. 그러는 과정에서 덥고 습한 고통스러운 여름의 나날들은 시원한 바람이
불고 형형색색의 눈부신 푸르름이 아로새겨진 둘만의 새로운 계절이 된다. 젊은 날의 순수한 날것의 감정들과
첫사랑의 열정과 떨림의 순간들이 여름날을 청량감 있는 빛나는 순간들로 채운다. 지오, 유찬 두 아이의 시선을 대변하여 번갈아 교차하면서 전개되는 이야기의 구조는 이를 한층 더 극대화하고 현장감을
높이면서 독자들이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
"바람이 불었던 것 같다. 예전에는 나뭇잎이 초록색 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날은 아니었다. 어떤 잎은 아주 연한 연두색이었고 어떤 잎은 짙은 초록색이었다. 또 어떤 잎은 쨍한 초록색이었고 어떤 잎은 연둣빛이 사라져 가고 있었고 어떤 잎은 눈이 부시게 푸르렀다. 그 모든 잎들이 하나하나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때, 그 순간 유찬의 머리 위로 그토록 다양한 초록 잎들이 흔들리고 있었으니까." (p. 85)
유찬이네 가족은 서울에서 살다가 할머니의 고향이자 아버지의 고향이기도 한 '정주(定住)'라는 도시에 정착하게 된다.
일과 후 집에 돌아와도 계속 떠도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서울의 삶에 비해 '자리를 잡고
산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아버지의 고향 '정주'에서 유찬이의 가족은 안정감을 얻는다. 하지만 떠돌이의 삶에서 '정주(定住)'하는 삶으로
나아가고 있었던 찰나에 유찬이는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잃게 된다. 지오 또한 미혼모의 자녀로 태어나
투병생활을 하는 엄마를 지키고 또 의지하면서 불안정하고 힘겨운 삶을 살아왔다. 인생의 기로에 섰을 때, 혹은 도무지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절로
떠오르는 곳을 고향이라 부른다면 유찬이와 지오에게 고향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로 다른 상황과 입장 차이로 서로를 오해하고 미워했던 시기를 지나 새로운 만남과 관계정립을 거치며 유찬이와
지오는 점차 안정을 찾아가며, 함께 세상으로, '정주(定住)'하는 삶으로 다시 나아가게 된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상실과 결핍의 과정을 겪으며 천천히 소멸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개개인이 켜켜이 쌓아 올린 저마다의 사연들은 상실과 결핍의 기억을 머금은 채 조용히 빛난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이해 받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해라는 것은 마음이 구겨져 있는 사람 특유의 과시와 타인의 배려에 대한 무시와 거부를 넘어서야 하고, 또한 어떻게든 살아 보기 위해 세상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이해를 이용하는 위선을 극복해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타인과 삶의 온도를 맞춰가는 일이며, 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삶의 고통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진정한 위로의 경험을 얻는다. 초월적인 존재를 통해서도 치유 받을 수 없는 오직 사람에게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 것이다. 밝은 곳에서는 어두운 곳이 잘 보이지 않지만, 인간은 서로
간에 존재하는 적당한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과 온기로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니도 안다 아이가.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데 유도가 필요한 게 아이고
마음이 필요하다는 거. 삐뚤어진 마음을 제자리로 돌리는 건 이런 온기가 아닐까? 누군가를 지키는데 필요한 건 마음이라는 그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있었다." (p. 162)
우리는 동시대를 같이 호흡하면서도 온전히 현재를 살아내지 못하고 누군가는 과거의 한때에 머무르고, 또 누군가는 과거의 기억을 넘어 미래를 응시한다. 동시대를
같이 호흡하면서도 온전히 현재를 살아내지 못하고 누군가는 과거의 한때에 머무르고, 또 누군가는
과거의 기억을 넘어 미래를 향하는 것은 인간은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 (Kronos)' 보다 주관적이고 심리적 시간인 ‘카이로스 (Kairos)'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우리를 구성하는 것인 동시에 미래를 꿈꾸고 호흡하게 하는 두 번째 심장이 된다. 소설을
읽으며 우리는 어쩌면 과거에만 얽매여서, 또 편견과 집착, 아집에
파묻혀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거나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소설 속 지오의 말처럼 정말로 놀라운 사실은 세상에 대해 절망하고 있던 아이들이 '온
마음을 다하는 순간부터 세상은 변하기 시작한다는 사실 (p. 171)'을 새롭게
깨달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로에 대한 관심과 공감, 진심이
담긴 위로가 진실을 가능하게 하고, 아주 미약한 부분이나마 세상을 진보 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것 아닐까?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는
아픔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빛을 향해 함께 손을 뻗는 청춘의 이야기다. 유난히 무더웠던 2023년의 여름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청량감 있는 소설을 만나게 되어 너무나 기쁘다.
“뭐 하는 거야?”
“보면 몰라? 방금 내가 네 여름 먹었잖아.”
“뭐?”
“네 가슴에서 자꾸만
널 괴롭히는 그 못되고 뜨거운 여름을 내가 콱 먹었다고. 이제 안 뜨거울 거야. 괴롭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을 거야. 두고 봐.” (p. 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