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왜 가끔 시가 되느냐>를 읽다가.
시들을 읽어보지도 않고 "지쳤어..." 하던 날들이었다.미문(美文)과 형이상학적인 문장, 멋있고 근사한 문장은 20대 미술기자 생활을 할 때 이미 충분히 보았다. 무수한 찬사들과 빚어서 쪄낸 그 찐빵들의 냄새에 질려서 그 세계를 떠난 거였으니까. 정말이지 그런 식의 글쓰기는 더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글에 대한 고민은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한 어떤 식으로든 이어진다. 시를 배우고 쓰면서는 '詩'라고 하는 것의 세련된 수사와 비유와 이미지에 숨이 막혔다. 단어를 특별하게 가지고 노는 시, 이미지를 놀랍게 다루는 시, 분명 굉장히 많이 배웠으리라 여겨지는 시, 어떻게든 압축하고 좋은 비유를 찾아내려고 애쓴 시(내 시도 여기 어디쯤에 있으리라) 등등. 어디서고 단어와 글을 달달 볶아 좋은 기름을 짜내려고 애쓴 흔적들이 보인다. 그건 당연한 건데, 나는 왜 미리 지쳐버리는 걸까. 하지만 나도 좀 노력해서 그런 시를 써야 하지 않을까, 고민도 되는 시간. 그러다가 이 시집을 만났다.
담백한 맛, 굳이 특별한 맛을 내려고 애쓰지 않은 듯한 이 맛. "그냥 집에 있는 거 대충 차렸어요." 수줍은 듯 밥상만 슬쩍 내밀고 주인장은 뒤꼍으로 사라졌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만난, 마음을 환히 맑히는 들꽃같은 이 시들. (오자를 고치려다 보니, '밝히는'이 아니라 '맑히는'이 맞다. 정말 그렇다!) 편편이 그러해서 어느 시 하나만 딱 짚기도 어렵다. <밥냄새>에서 '...저 홀로 피어나던 마음처럼/ 조용조용 살아오르는 밥 냄새'도 그러하고 <상추 씻는 바다>에서 민박집 아낙이 상추 씻는 모습을 보면서 이른 아침 바다를 열고 있는 시인의 맑은 눈빛도 그러하다. <뒷고기>란 시를 읽으면 대낮인데도 그만 소주 한 잔을 하고 싶어진다. <이름>시는 또 어떤가. 옛날에 '금잔디'란 이름의 담배가 있었나 보다. '...이마를 비추던 담뱃불이 아니었다면/ 맺힌 숨소리/ 고놈이 어디를 향했으리오/ 금잔디가 아니었다면/ 어느 산골짝으로 날아갔으리오/ 종일 바람이 불어와서/ 그 옛날 담뱃갑 위로 몸을 누이는/ 그 오랜 금잔디' 시집 한 권을 다 완독하지도 않고 이런 글을 쓰다니 (어제 받아서 아직 읽고 있는 중) 시인께 죄송하지만, 대신 시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시 한 편 전문을 여기에 옮긴다. (시인님, 바라시는 대로 되고 있나이다~)
행간(行間)겨울이 봄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것처럼넘기는 갈피마다무엇인가 글썽이기를 바랐다있는 듯 없는 듯햇빛이나 바람 같은 것들이따뜻하거나 서늘하게 살고 있기를 바랐다나의 말과 말이 겨우 이어져살아나려고 할 때영영분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떠난 어머니나 봄날 아지랑이처럼아른거리기를 바랐다그 사이로지나가는 사람들이 머뭇머뭇서성이게 되기를오래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