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무서움이 담겨 있는 기묘하고 아름다운 그림들]
그림 관련 서적을 즐겨 읽는 저는 명화도서광입니다. 어지간한 명화 책은 사서 읽든, 빌려서 읽든 한 번씩은 꼭 거쳐야 직성이 풀려요. 내가 알고 있는 그림이 얼마나 있나 확인하는 과정이랄지, 몰랐던 이야기를 알게 되는 재미가 있거든요. 그 중 재미있게 읽은 책이 일본작가 나카노 교코의 [무서운 그림] 이었는데요, 보기만 해도 '헉' 소리가 절로 나는 암울한 그림에 작가의 조곤조곤한 설명이 곁들여져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이번에 읽은 이원율 작가의 [무서운 그림들]을 읽게 된 이유도 사실 [무서운 그림]이 연상되어 기대감이 더 컸어요.
정말 다방면의 무서운 그림들이 소개되어 있는 책입니다. 처음을 장식하는 아르놀트 뵈클린의 <페스트> 그림을 보고 저는 처음에 악마를 그렸나 싶었어요. 제목을 보기 직전에 말이죠. 제목을 보고나서는 이 악마같이 생긴 형상이 '페스트'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정말 흉물스럽게 그려져 있습니다. 무난한 삶을 살아왔던 화가의 인생을 비틀어버린 것은 숱하게 거쳐야 했던 아이들의 죽음이었어요. 열 네명의 자녀를 얻었지만 다섯은 전염병으로 죽었고, 나머지 아홉 가운데 셋도 뵈클린보다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왜 하필 나인가'라고 울부짖는 그에게 <페스트> 속 사신은 '그렇다면 왜 당신은, 왜 이곳은 예외여야 하는가' 라고 답하는 듯 거침없이 낫을 휘두릅니다. 그의 <죽음의 섬> 이라는 그림 앞에서는 어딘가 숙연함이 느껴져요.
두 번째 그림은 존 콜리어의 <육지의 아이>예요.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만 떠올리면 인어는 우리에게 더없이 신비롭고 순수한 사랑의 결정체죠. 하지만 존 콜리어의 그림 속 인어는 음습한 느낌을 풍깁니다. 홍조 띤 얼굴로 다가오는 아이를 바라보는 흑발의 인어. 옆모습인데다 얼굴이 잘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얼굴이 검은빛을 띄고 있어서인지 무척 암울한 느낌을 전달해요. 인어에게 가까이 다가간 아이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림 자체는 아름다운데 이 그림 때문에 죽어야만 했던 화가도 있어요. <흰색 교향곡 1번 : 하얀 소녀>를 그린 제임스 휘슬러가 바로 주인공입니다. 그는 26세에 17세였던 조안나 히퍼넌을 만나 사랑에 빠져요. 어느 날 흰 원피스를 꺼내 입고 나온 조안나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리고자, 휘슬러는 은처럼 빛나는 흰색 안료를 잔뜩 챙겨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가 사용한 연백색의 안료. 이 안료의 재료는 납이었습니다. 납을 얇게 잘라 식초에 절인 뒤, 동물 분뇨를 채운 항아리에 넣어 썩혀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납은 증기로 바뀌고 분뇨에서 탄산이 만들어져요. 둘이 반응하면 탄산납 가루가 돼 밑으로 가라앉는데 이 가루를 모아 빻아 말리면 연백색 가루가 생기는 거죠. 이 과정에서 납을 들이마시게 된 휘슬러. 그는 몸속에 독이 쌓이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계속해서 아름다운 조안나의 모습을 화폭에 남깁니다. 납 중독과 여기에 더해진 히퍼넌과의 불화. 화가의 생애가 담긴 그림 이야기가 정말 재미있었어요.
이 밖에도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4원소 연작>, 엘리후 베더의 <스핑크스의 질문자>, 귀스타브 도레의 <어두운 숲>, 오딜롱 르동의 <키클롭스> 등의 작품을 만나실 수 있어요. 신화와 문화, 종교, 역사적 스캔들을 넘나들며 소개된 '무서운' 그림들. 특히 오딜롱 르동의 <키클롭스>는 무서우면서도 어딘가 서글픈 기분이 들게 하더라고요. 왜 외눈박이 거인이 이렇게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 그 사연은 책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기묘하면서도 아름답고 신비로운 명화 속 세계. 다양한 '무서움'을 발견할 수 있는 명화 감상 시간이 되길 바라며, 명화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꼭 읽어보시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 출판사 <빅피시> 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