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 청각장애인 엄마가 "아기를 낳고 처음에는 아기가 우는지 안 우는지 보느라 밤새 뜬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아이는 점점 자신의 부모가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을 알고,
소리를 내어 자신의 상태를 전하기보다 행동이나 표정으로 자신의 상태를
전달하는 식으로 적응하게 된다고 했다.
처음 그 글을 봤을 때, 너무나 청인 사회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이라서 충격을 받았다.
그렇구나, 내가 청인 사회에 익숙해서 다른 이들의 삶의 방식은 생각해본 적도 없는 거구나. 그때 처음으로 농인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다다서재에서 『서로 다른 기념일』이 출간되었고, 망설임 없이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감사하게도 서평단이 되어 읽어볼 수 있었다!)
『서로 다른 기념일』은 농인 부모가 청인으로 태어난 자식을 키우며, 그 과정에서 든 생각과 배운 것을 기록한 에세이다. 부모로서 느끼는 고충, 아이를 통해 느끼는 환희, 언어와 말의 차이 등. 2016년부터 시작된 기록부터 천천히 읽어보며 저자의 세계가 넓어지는 만큼 나의 시선도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간 나는 '언어적 표현'도 중요하지만, '비언어적 표현'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
말이 아닌 눈빛, 손짓, 표정, 순간의 몸의 움직임 등.
나에게 '비언어적 표현'이란 '말'이 아닌 것이었다. 언어=말이라는 좁은 사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 모든 것이 '말'에 포함되는 것이었는데, 나는 내가 입으로 뱉어내는 소리만 '말'이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말'이라는 단어 아래에 생동감 넘치는 모든 것을 담았고, 그것을 알아챈 순간 나는 스스로 만들어낸 경계가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
시선, 몸짓, 차림새…그런 건 우리한테 ‘언어‘보다 중요한 ‘말‘이니까.(중략)‘언어‘가 아니라 필체, 악수와 포옹을 할 때의 체온, 순간의 표정, 걸음걸이,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먹는 시간 등 같이 있으면서 알게 되는 것들을 ‘말‘로 받아들이면 ‘언어‘만으로 알 수 없는 상대방의 무언가가 전해져.
- P172
설령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표정, 힘찬 악수, 지그시 마주 보는 눈빛 등으로, 즉 언어를 떠받치는 ‘말‘로도 감동을 전할 수 있다. 그런 ‘말‘은 때로 농인에게 ‘언어‘보다 훨씬 깊은 울림을 주며 들리기도 한다.
- P175
아무리 선의 있는 언어였다고 해도 본인에게 말하지 않고 스태프에게만 말하고 끝낸 것은, 그리고 스태프가 어중간한 ‘언어‘만 전달해버린 것은, ‘같이 있지만, 당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라는 정보 격차를 여봐란 듯이 보여준 셈이다. 그런 것은 마나미를, 아니, 농인을 고독으로 밀어넣는 잔혹한 행위기도 하다.- P175
‘서로 다름‘은 승부를 가르거나 동일성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서로 다름의 골짜기를 그대로 두고 그 사이를 뛰어넘어 교류하려 할 때 비로소 지혜와 용기가 생겨난다.- P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