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처음 "들었던" 죽음은 5살 때였다. 아주 어릴 때이기 때문에 별 다른 감상이 없었다.
현실감도 없었고, 죽음에 대한 개념 자체도 없었고.
조금 더 큰 뒤, 초등학생 때 맞은 주변인의 죽음은 나에게 큰 충격과 우울을 안겨주었다.
당시 죽음에 관한 책을 읽으며 슬픔에서 벗어나려 애썼던 것이 기억난다.
그 뒤로 "죽음"이란 단어를 생각만해도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이 나곤 했다.
죽으면 만질 수도, 말을 할 수도 없는 거지 않냐며 울곤 했다.
죽음은 딱 한 번 뿐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특별하다. 그리고 두렵다.
그래서일까. 가까운 사람과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해본 적이 없다. 부모님과는 더더욱.
죽음을 이야기한다고 당장 죽음이 찾아오는 것도 아닌데 꺼렸다. 가끔 부모님의 죽음에 대해 상상할 때면 머릿 속이 복잡해졌다.
만약 병에 걸리시면, 혹은 사고가 나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무조건 살려야지. 아니야, 근데 언제까지 내가 그 돈을 감당할 수 있지?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불길하다며 몸서리를 쳤다.
앞서 길게 이야기 했지만, 나에게 죽음이란 두려운 존재고 입 밖으로 꺼내기에 꺼려지는 것이었다.
이렇게나 두려워하기 때문에 관심은 많아서 죽음에 관련된 책이나 글을 오히려 자주 찾아보았다. 알면 대비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어차피 준비가 되지 않는 문제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래서 『죽음을 배우는 시간』 이 나왔을 때,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삶의 어떤 순간에도 죽음은 찾아온다는 것. 그것이 『죽음을 배우는 시간』 의 가장 첫 메시지다."
6p, 『죽음을 배우는 시간』
"죽음은 언젠가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즉 어떤 이에게만 벌어지는 특별한 비극이나 천벌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47p, 『죽음을 배우는 시간』
『죽음을 배우는 시간』 은 30년간 의사로 일하며 수없이 죽음을 지켜본 의사가 쓴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을 시작하며, 저자는 "삶의 어떤 순간에도 죽음은 찾아온다"고 이야기 한다.
정말 당연한 사실인데, 항상 잊고 살기 때문에 이 문장이 참 기억에 남았다.
우리는 항상 등 뒤에 죽음을 두고 살지만, 살아가는 동안 마치 죽음이란 삶에 속하지 않은 일인 것처럼 생각한다.
그렇게 굴다가 죽음이 닥치면 너무나 갑작스레 그것이 찾아온 것처럼 놀라고 충격을 받는다.
(물론 정말 갑작스런 죽음도 있다. 준비할 수 있는 죽음이 얼마나 있겠나.)
숨을 쉬며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어느날 찾아오는 죽음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누구도 "이제 그만"이라는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71p, 『죽음을 배우는 시간』
책을 읽으며 가장 큰 충격을 받은 표현이 있다.
현대사회에서 죽음을 질병처럼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죽음이란 것이 치료가 되는 것인양, 사람들은 죽을 때가 된 사람을 데려와 어떻게든 생명을 연장시키려 한다.
일시적으로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치료를 받고 회복하여 나가는 중환자실이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마법의 방처럼 사용된다.
환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의사는 천하의 나쁜놈이 되어버린다.
소중한 사람이니까. 가족이니까. 어떤 이유를 붙여도 나의 그 사람은 세상에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
어떻게든 생명 연장을 시키는 것이 맞는 일일까?
돈을 무리하게 쏟아부어가며, 대화나 감정교류라곤 할 수 없는 병원에서 마음 아파하기만 하며.
이런 상황들을 봐온 저자는 말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누구도 이제 그만, 이라는 말을 하지 않아서"라고.
책장을 넘기며 고개도 함께 끄덕여지는 부분이 참 많았다.
물론 나 역시 지금은 그래, 죽음은 언젠가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야-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닥치면 모든 걸 부정할지도 모른다.
아마 부정할 것이다. 믿지 못 하며 어떻게든 사그라드는 생명을 움켜쥐려고 애쓸 것이다.
그 상황이 닥치기 전에 잘 생각해두고 싶다.
1분이라도 더 이 세상에 붙들어두려는 노력이, 육신만을 살려놓는 그 상황이.
과연 나의 소중한 사람에게도 좋은 일일까.
『죽음을 배우는 시간』 은 죽음을 감성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슬픔과 우울과 절망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고 (정말 나온다. 집에서 죽기 ABC 라는 파트에서)
<좋은 죽음의 조건>이라며 뽑아놓은 기준도 세상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누구도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하라고 이야기 해주지 않는다.
병원에서 호흡기를 뗄지 말지 고민하는 순간에, 이렇게 해보세요 하고 조언을 주진 않는다.
『죽음을 배우는 시간』 이 좋았던 것은 바로 이런 점이었다. 사람이 노화로 인해 죽을 때가 되면 어떤지,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했는지.
현대의 우리는 왜 이걸 붙잡고 놓지 못하고 있는지 (비즈니스화된 죽음)를 설명해준다.
원치 않게 인공호흡으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옆에서 말라가는 가족들 이야기.
결국은 놓아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을 설득력있게 전달한다.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어떤 메뉴얼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책이었다.
어떻게 해야 잘 죽을 수 있을까?
잘 사는 것만큼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저자의 엔딩노트를 마지막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죽음이 있기에 삶도 있는 것이고 죽음은 삶과 결국 같은 것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