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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 시선
  •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
  • 김현진
  • 12,600원 (10%700)
  • 2020-06-17
  • : 214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은 연작소설집이다. 짤막한 단편 속에 다양한 여자들이 그려진다. 쫌생이 같은 남친에 가난이 죽도록 싫지만 해결 방법이 없어 답답한 여자, 데이트폭력에 고통 받는 여자, 믿었던 남자로부터 뒤통수 맞은 여자, 장밋빛 미래를 꿈꾸다가 살해 당한 여자.

이렇듯 보기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지고 눈물도 안 나게 화가 나는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무엇보다 가장 비참하고 화가 난 것은, 소설에 그려지는 여자들의 삶이 하나도 낯설지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냥, 그냥 내 삶의 어느 일부를 떼어다 놓은 것 같은 소설이었다. 주변에서 한 번쯤은 들어 봤던 그 이야기가 소설 속에 그대로 옮겨져 있었다. 그래서 이 리뷰를 쓰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익숙한 시궁창을 어떻게 쓰면 좋을까,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리뷰를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나는 어떻게 이 책을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성이 느끼는 공포나 좌절이나 슬픔을 조금이나마 느껴보고 싶다면 읽어보세요?
삶의 체험 현장! 한국 여자 편.
무엇을 말해도 속이 시원하지 않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어떤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지에 대한 것 밖에 없다.

1. 만약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는데 과장됐다고 생각한다면, 읽어보시길 바란다. 그건 정말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간 소설이다. 이 책을 읽으면 알게 될 것이다. 그건 정말 순한 맛이었음을...

2. 주변에 약속이 끝나고 헤어질 때 '집에 도착하면 연락해!'라고 자연스레 말하는 여자가 있거나, 늦은 밤에 거리를 걷는데 누가 뒤에 따라오는 것 같아 무서웠다고 말하는 여자가 있거나, 남자친구가 술만 끊으면 정말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여자가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그들이 뭣하러 서로 집에 잘 들어갔는지 확인하는지, 왜 밤에 골목길 걷는 걸 두려워 하는지, 분명 어딘가 안 좋은데 왜 도움을 구하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특별한 여자 이야기에 대한 소설이 아니다. 그냥 어디에나 있는 여자 이야기다. 나에겐 너무나 익숙하고, 주변인들을 통해 한 번쯤은 들어 본. 그런 이야기다. 아주 흔하다.

뒷표지에 "상처 받은 한국 여자의 이야기, 감당할 수 있겠어요?"라는 카피를 보고 뭘 감당한다는거지? 했는데. 너무 리얼해서 나는 차마 감당을 못 하겠더라.

마지막으로 에필로그를 보고 떠오른 내 생각을 남기며 리뷰를 마치겠다.

웹 사이트를 보며 시간을 죽이다가 본 글이 있다. <지금의 내 나이 때 엄마를 만난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란 제목의 글이었다. 1위가 '나 신경 쓰지 말고 엄마 인생 살아', 2위가 '엄마 아빠랑 결혼하지 마', 3위가 '나 낳지마'였다. 그 글을 보고 씁쓸하게도 나 역시 공감했다. 아마 많은 딸들의 마음이 비슷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딸도 있겠지만) 살다보니 엄마도 하고 싶은 일이 있었을 것이고,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엄마도 연애나 결혼이 필수가 아닌 삶을 상상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사회적으로 당연해보이던 것이 사실 당연한 것이 아니라면? 그걸 알았다면. 이렇게 생각이 번지자 입맛이 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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