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포스팅은 서평단 참여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저는 심리 상담사로 활동하고 있는 육아맘이기도 합니다. 상담을 하다보면 내담자들에게 했던 말만 반복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 사람이 쓰는 언어는 그 사람의 세계라는 말을 있습니다.
활용하는 언어가 제한적이면 그 사람의 세계 또한 제한적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처럼 언어 또한 그러한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이 사실을 깊이 인정하며 언어와 표현의 영역을 확장하고픈 욕구가 생겨나서 《이어령의 말 2》를 읽어봤습니다.

책을 좋아하지 않았던 시기엔 지성인들이 존재하는 줄도 몰랐고 지성인들이 험악했던 세상을 유연하게 만들어온 존재였는지도 몰랐어요.
유혈로 얼룩졌던 무자비한 과거를 지성으로 무혈로 개척하기까지 지성인들의 사색과 투쟁이 없었다면 평화로운 현재를 만나기 힘들었을 겁니다.
이 사실을 책을 통해, 지성인들을 만나서야 알게 되었어요. 지성인들의 통찰력과 혜안에 엄청난 힘이 있다는 걸 알기에 이젠 그들을 추종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한분이 국문학자이자 대한민국 언론인이였던 이어령 교수입니다.
《이어령의 말1》에 이어서 《이어령의 말2》가 나았습니다. 이어령 교수는 작고하셨지만 그럼에도 그의 생전 모습이 담긴 책 표지에선 여전히 그의 생명력이 전해집니다.
>> 작가 이어령 교수에 대하여

이어령 교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언론인이자 언어의 마술사에 버금가는 국문학자입니다. 그가 생전에 출간한 저서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사실 제대로 읽어보진 않았지만 뜨문뜨문 그의 글을 읽어오긴 했습니다. 짧은 글귀여도 관점이 전환되거나 확장되며 새로운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세상의 진리를 다 알려준다는 느낌보단 탐구하게 만드는 동기를 자극해서 꾸준히 탐구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의 글에는 말이죠. 책 뒤쪽 날개를 보면 그의 이력이 나와 있습니다. 지성인으로 한 생을 살아간 그의 흔적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 구성 및 내용

《이어령의 말1》에 이어서 《이어령의 말2》이 출간되서, 목차를 보면 10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감성/지성/자연/문화/물질/정신/일상/상상/생명으로 총 9 챕터로 구성되어 있어요. 인간 존재가치와 자연, 그리고 지성을 넘나드는 주제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다루고 있는 주제가 세부적인 듯하나 광범위합니다.

각 챕터별 주제에 맞는 어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휘에 맞는 글귀가 담겨져 있습니다. 어휘와 글귀는 이어령 교수의 저서에서 발췌한 내용들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어휘와 그렇지 않은 어휘가 섞여 있습니다. 익숙한 어휘여도 관점을 확장한 글귀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 어휘가 이렇게 표현된다고? 이런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고 덩달아 감탄하게 됩니다. 창의력과 상상력이 더해진 국어사진같은 느낌이 듭니다.
>> 감상평
블로그 리뷰러로 활동하지만 심리상담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육아맘입니다. 블로그에 글을 쓸 때나 상담을 할 때 제가 쓰는 표현이 거기서 거기라는, 한계를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고 어휘력을 늘려보려고 노력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어휘력이 늘고 있는지 인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허나, 꾸준히 들여다보고 읽고 쓰기를 반복하다보면 언제부턴가 어휘력이 풍부해질 것이란 확신도 듭니다. 확신이 들기까지, 노력을 멈춰서는 안되겠죠. 이에 힘을 실어주는 책이 《이어령의 말2》입니다. 이어령 교수의 어휘력 모음집입니다.
책을 그냥 후루룩 넘겨볼 땐, '뭐야, 그냥 단어만 조합해 놓은 거잖아?'라는 작잖은 실망감을 비추긴 했으나, 막상 어휘 하나와 그 아래 글귀를 읽고선 감탄을 하게 되었으며, 이어령 교수의 어떤 저서에 담겼던 글인지 찾아보게 되더라구요. 마주한 어휘의 전후 맥락이 너무 궁금해져서 말이죠.
이어령 교수는 국문학자여서 국어만 다루는 줄 알았죠. 하지만 언론인이기도 해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호기심이 상당하셨다고 합니다. 인간의 존엄성, 생명의 가치, 자연과 우주, 영성의 세계까지,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들 들여다보고 해석하고 그 속을 통찰해는 결실을 어휘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이어령 교수의 혜안은 그야말로 탁월하며 신선의 경지에까지 오른 분으로 느껴졌습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지성의 영역에 힘을 조금더 키웠으면 하는 바람이 듭니다. 그래야만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할 수 있는 힘이 내면적으로 생겨나거든요. 이에 이어령 박사의 어휘들이 크게 도움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국어사전을 구비하고 있어요. 국어사전은 어휘의 개념적인 면만 담았다면 이어령 박사의 국어사전엔 개념을 넘어 신념과 철학/역사/사회/문화/예술영성의 가치까지 담아내서 지성과 통찰력을 키우는데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 문장수집
p. 119 (역사) (중략) 역사가 없으면 세대도 없다. 할아버지가 입던 옷을 아버지가 입고, 아버지가 입다 버린 것을 그 자식이 입는다. 그러다가 옛날 화려했던 옷은 조각보처럼 남루해지고 그 색채는 바래고 만다. (중략) 역사란 흘러가버린 시간이 아니라 괴어 있는 시간, 미래를 량해 도리어 흘러내려오는 그런 시간이다.
p. 130 (국어) 국어는 정신의 정부이다. 외적이 침입하여 국토를 빼앗아도 국어가 남아 있는 한 국민의 정신을 통치하는 정부도 사라지지 않는다.
p. 149 (세대) 세대는 태양이다.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는 맑고 싱싱한 햇살처럼 그것은 탄생한다. 그래서 거기 또 하나 새로운 시간이 마련되는 것이다. 그것을 사람들은 오늘이라고 부른다. 태양이 떠올라야 오늘이 있듯이 새로운 세대가 탄생되는 곳에 오늘의 역사, 오늘의 생활이 있다. 그러나 태양의 운명은 그렇게 떠오르던 것처럼 또한 그렇게 침몰해가야만 한다. (중략)
p. 166 (친절) 어디엔가 친절이 남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친절을 받아들일 만한 마음은 아무 곳에도 없다. 이제 대가 없는 친절이란 의심과 경계를 살 뿐이다. 도리어 불안과 공포를 준다. 무상의 시대는 지나가고 말았다. 남에게 친절하지 않은 것이 도리어 치절이 되는 세상인 것이다.
p. 213 (의미) 말과 글에 담긴 나의 생각과 마음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온 그 모든 기억이 그 말과 글 속에 담겨 있습니다. 어떤 세월도, 어떤 공간도 우리가 남기는 이 말과 글의 의미를 멸망시킬 수는 없습니다.
p. 285 (사람)(중략) '사람이 된다'는 말은 어렵고, 그러면서도 희망이 있는 말이야. 지금 어떤 일이 잘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마. 인간은 끝없이 무언가가 되어가는 존재니까 말이야. 네 운명은 누가 결정지어 주는 게 아니라 네 힘에 의해서, 네 의지와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져. 그러니까 우리는 얼마든지, 어떤 형태로든 무언가가 될 수 있어. 우리는 사람이니까.
p. 291 (생각) 인간의 뇌는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아서 평생을 퍼내도 마르는 법이 없어. 오히려 반대로 그 샘물을 길어 올리지 않아서 물길이 막혀버리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야. 생각은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아서 부지런히 갈고 닦지 않으면 생각에 기름 덩어리가 덕지덕지 끼게 된단다.
p. 329 (준비) 열매들은 꽃의 진정한 죽음들이다. 아무리 향기로운 과일도 끝내는 썩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동그란 죽음 속에는, 모든 그 과일 속에는 내일의 생명인 씨앗이 박혀 있지 않는가. 그렇다. 부패의 죽음 속에는 언제나 새로운 생명의 세계가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