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3
시詩는 죽었다
자화상 - 내가 나에게 - 유 준 -

詩를 쓰겠다니 한 마디 하고 넘어 가자
詩想이 떠오르지 않아 가물가물하거든
여느 詩人의 당찬 말대로
달팽이에게 가 구걸하여 
더듬이 좀 잠시 빌리자 하라

하여, 네 지질한 詩想으로 똬리를 틀어
달팽이 더듬이에 살짝 올려놓으려무나
詩語가 덜컹덜컹 떨어져 가슴이 뛸지니 
바로 이때, 반짝반짝하는 詩語를 잡거라

떨어진 詩語는 고운 체로 잘 흔들고 걸러 
운율을 섞어 빚은 질그릇에 담거라 
예를 들자면, 여느 詩人들이 흔히 즐기는 
잡다한 詩語로 마구 덧칠을 해대면 꽃 잎은 시들고
쪼잔한 詩想으로 줄기를 무지 비틀면

잔뿌리까지 흔들려 詩魂을 죽이나니
詩語에 톤을 달아 강약을 주되
행간에 움직이는 詩를 쓰거라
댕기머리 가시내 널뛰듯 춤추는 詩를 쓰거라
운율이며 톤이 짝지어 춤추거든
뒤돌아 보지 말고 詩를 탈고하거라

잔소리 한 마디 덧붙이자면
詩에 질그릇 냄새가 안나고
詩魂이 죽어 감동이 없거든
詩가 못 되니 잡글이라 할지니
그 詩는 버려라


#유준 #창작 #글 #e詩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