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꽤 두꺼워서 언제 읽나 싶었는데 중반부 넘어가니까 속도가 상당히 붙는다. 몇몇 챕터는 숨도 못쉬게 재미있다. 실화인데다가 잔인무도한 내용이 많아 이걸 재미있다고 표현하기가 좀 그렇기는 한데 아무튼 중반부를 넘어가면 책 읽기를 멈추기가 싫을 정도로 무지무지 흥미롭다. 웬만한 지명들도 머릿속에 들어와있기 때문에 지도를 찾아보지 않아도 쭉쭉 책을 읽어나갈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 이름은 계속해서 메모를 해야 한다.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나온다. 게다가 계속 바뀐다. 인도 총독이 도대체 몇 명째 바뀌는 건지;;; 사람 이름은 메모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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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1에서는 알렉산더 번스 이야기까지 적었다. 이 사람 별명이 '부하라 번스'라길래 부하라와 관련된 엄청난 사건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알렉산더 번스는 오히려 카불과 더 연관이 있다. 다만 영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맞나?) 부하라에 다녀왔다는 사실 때문에 '부하라 번스'로 불렸던 듯 하다. 이 사람 계속 카불에 머물렀고 카불에서 죽는다.
이 카불 이야기가 <그레이트 게임> 중반부의 하이라이트다. 1차 영국-아프간 전쟁(1839-1842)이라고 불리는 사건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사건이 부하라에서 영국인 장교 두 명이 참수되는 사건(1842)이다. 이 책의 맨 첫 장에 등장한 찰스 스토다트와 아서 코널리다. 이 둘의 죽음 역시 1차 영-아프간 전쟁과 무관하지 않으므로 역시 가장 하이라이트는 1차 영-아프간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아프간 전쟁의 원인은 기본적으로 영국이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가만히(?) 있던 아프간에 들어가서 지도자를 바꿔놨으니 말이다. 아프간은 그당시 통일 왕조가 없이 각 부족들이 난립한 상황이었다. 영국은 아프간에 통일 정권을 세우고 싶었다. 각 부족이 분열되어 있으면 영국이 컨트롤하기가 어려울 뿐더러 각기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러시아의 꼬드김에 넘어갈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영국은 아프간에 꼭두각시를 앉혀두고 아프간이 인도의 보호자 역할을 수행하도록 만들고 싶었다(정말 욕심도 크다;;).
그 당시 카불 통치자는 '도스트 무함마드'라는 인물이었는데 몇몇 영국인들은 그냥 이 사람을 통일 아프간의 통치자로 세우자고 주장했다. 잔인무도하기는 했으나 카리스마가 있었고, 어쨌든 그 시점 아프간의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영국의 인도 정책에 대해 상당히 입김이 셌던 맥노튼(캘커타의 정치국장)이라는 사람의 생각은 달랐다. 도스트 무함마드를 쫓아내고 '샤 슈자'라는 인물을 통일 아프간의 지도자로 만들자는 것. '샤 슈자'는 도스트 무함마드와 권력 다툼을 하다가 쫓겨나서 인도로 망명한 인물인데 호시탐탐 카불 왕좌를 탐내고 있었다. 맥노튼은 이 사람을 아프간 꼭두각시로 앉히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무슨 생뚱맞은 계획인가 싶지만 또 나름대로 맥노튼이 샤 슈자를 민 이유가 있긴 있었다. 그 당시 도스트 무함마드는 바로 옆 동네인 펀자브의 란지트 싱과 페샤와르 지역을 놓고 으르렁대고 있었다. 한때는 카불의 영향권 아래 있었으나 그 당시에는 펀자브의 영향권 아래 있었던 땅이다. 도스트 무함마드는 계속 그 땅을 돌려달라고 주장하고, 펀자브의 란지트 싱은 절대 안 준다고 버티고 있던 중이었다. 영국이 인도를 보호하려면 아프간과 펀자브가 친하게 지내야 하는데 그 놈의 땅 문제 때문에 도저히 둘이 친해질 기미가 없었다. 그래서 맥노튼은, 도스트 무함마드를 내쫓고 온순한 샤 슈자를 앉힌 다음 샤 슈자로부터 다시는 페샤와르를 탐내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아내면 아프간과 펀자브가 친해질 수 있겠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원래 계획은 펀자브의 군대를 이용해 카불을 치고 도스트 무함마드를 쫓아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바지에 펀자브 지도자가 발을 삭 빼고, 결국 영국군이 단독으로 카불로 쳐들어가게 되었다. 영국군이 밀고 들어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도스트 무함마드는 카불을 버리고 도망갔다. 영국군과 샤 슈자는 카불에 무혈입성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듯 보였으나 문제가 있었다. 샤 슈자가 아프간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었다는 것이다. 외국 군대가 들어와서 멀쩡한 왕을 쫓아내고 인기도 없는 사람을 왕위에 앉혔으니 이게 제대로 돌아갈리가 없다. 게다가 영국군이 남의 땅인 카불에서 너무 방탕하게 지냈다. 매일 밤 화려하게 무도회를 열고 돈을 써재끼느라 아프간에 물자가 부족해지고 물가가 치솟았다. 심지어 아프간 여자들까지 건드렸다고 하니 아프간 사람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이 당시 '부하라 번스'로 불리는 알렉산더 번스도 카불에 있었다.(이 사람 별명은 카불 번스가 되어야 한다구요.) 알렉산더 번스는 사실 영국군이 몰아낸 그 도스트 무함마드랑 친했는데, 명분 앞에 우정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번스가 자기 손으로 도스트 무함마드를 내쫓고 샤 슈자를 그 자리에 앉혔다는 게 역사의 아이러니다.
1841년 11월. 카불의 상황을 잘 아는 인물이 번스에게 경고를 한다. 오늘 밤 당신의 목숨을 노리는 시도가 있을 거라고 말이다. 아프간 사람들이 영국군에 대항해 대규모 무장 봉기를 일으킬 계획인데 그 영국군의 중심에 있었던 알렉산더 번스를 첫 번째 타깃으로 노릴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번스는 시민들의 무장 봉기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자신의 집 경비를 강화하기는 했으나 그뿐이었다. 영국군 병영으로 대피하지도 않았고 카불의 요새 발리 히사르로 들어가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날 대참사가 벌어진다.
영국군에 불만을 가진 아프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알렉산더 번스와 그 주변 인물들을 죽이고 말았다. 게다가 시민 봉기 소식을 들은 무함마드 아크바르(도스트 무함마드의 아들)가 여기에 가세해 영국군을 몰아붙였다. 처음에는 오합지졸로 시작한 봉기였는데 지도자까지 생겼으니 아프간 사람들의 사기가 크게 올랐다. 그런데 이 아크바르라는 인물이 진짜 잔인한 사람이다. 이 책에서 나온 것만 보더라도 거짓말을 몇 번을 한 건지 셀 수도 없다.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아크바르를 믿고 협상에 나선 영국 측도 순진하다고 볼 수 있겠으나, 하 모르겠다. 아크바르와 협상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영국군에게는 악몽의 시작이었으니 말이다.
우선 아크바르는 협상을 하자고 꼬드겨서 영국 측 맥노튼을 불러내어 죽인다. 그리고 남아있는 영국군과 가족들 및 민간인들에게 인도로 돌아가라고 말을 한 뒤 어마어마한 대학살극을 벌인다. 아크바르가 아프간 사람들에게 영국인들의 이동 경로를 흘렸고 영국군에 앙심을 품은 아프간 사람들이 합심해서 이런 대학살을 벌였다. 이 부분은 너무 참혹하니까 패스. 그런데 글 자체는 정말 실감나게 잘 써서 숨도 못 쉬고 읽었다. 마지막에는 영국인 군의관 한 명이 살아남아서 이 참상을 전해준다.(몇몇 인도인 병사들도 동굴에 숨어있다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몇 달 후 밝혀진다.) 1만 명이 넘는 인원 중 단 몇 명만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이다.
영국군은 엄청난 타격을 입고 아프간에서 철수하게 된다. 그리고 원래 카불의 지도자였던 도스트 무함마드가 다시 돌아와 카불을 지배한다. 그러니까 아무 것도 바뀐 게 없었다. 그야말로 360도 돌아서 제자리로 돌아온 것. 이럴 거면 아프간에 왜 쳐들어갔냐고!!!(대참사를 벌인 주범자인 아크바르는 그 후로도 별탈없이 카불에서 살다가 병사했다고 한다.)
【영국은 심한 상처를 입었다. 아무리 많은 훈장을 수여하고, 개선문을 세우고, 연대 무도회를 비롯한 갖가지 잔치를 열어도 마지막 아이러니는 감출 수가 없었다. 영국이 아프가니스탄을 떠나자마자 다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샤 슈자의 아들은 석 달이 안 되어 권좌에서 쫓겨났다. 영국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며 밀어냈던 도스트 무함마드가 왕좌로 복귀하는 것을 무조건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누구도 도스트 무함마드가 아프가니스탄에 질서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결국 한 바퀴 원을 그리고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영국이 아프간에서 당한 대참사 소식은 부하라까지 흘러 들어간다. 그 당시 부하라에 찰스 스토다트와 아서 코널리가 인질로 잡혀 있었다. 일단 찰스 스토다트가 먼저 잡혔고, 아서 코널리는 그를 구하러 갔다가 같이 잡힌 거였다. 도대체 스토다트가 왜 인질이 됐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기는 한데,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스토다트가 부하라의 예절을 어겼다는 것이다. 왕을 만나러 갈 때는 말에서 내려서 걸어가야 했는데 말을 타고 들어갔다던가 하는 이유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런 건 너무 사소한 이유다. 그 당시 중앙아시아에서는 러시아와 영국의 기싸움이 너무 심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부하라의 지도자는 아마도 시험을 해본 게 아니었을까. 영국이 얼마나 강한 나라인지 모르겠으니 일단 인질을 잡아보고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당시 영국은 아프간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찰스 스토다트, 그리고 그를 구하러 들어간 아서 코널리를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부하라의 지도자는 영국인 인질을 잡았는데도 영국에서 너무 조용한 걸 보고 여러가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생각보다 영국의 힘이 약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이 영국이 보낸 공식 사절이 아니라 첩자일 가능성이 크다. 그 당시 중앙아시아에서는 워낙 흉흉한 소문이 많았다. 유럽인은 전부 스파이로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사실 꼭 틀린 말은 아니다. 다들 정보 빼내려고 혈안이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찰스 스토다트와 아서 코널리가 운 나쁘게 부하라 지도자에게 잡혔고 영국 정부에게 버림 받았고 영국이 아프간에서 쫓겨났다는 소식까지 들은 것이다. 그 결과는 두 사람의 죽음이었다. 워낙 잔인한 성격이었던 부하라의 지도자는 굳이 두 사람을 살려두어 후환을 남길 필요가 없겠다고 판단하여 두 사람을 참수시켰다. 물론 바깥 세상에 본보기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함부로 부하라에 들어와서 스파이 짓을 했다가는(물론 스토다트가 스파이는 아니었다만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이런 꼴을 당한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그렇게 영국군 장교가 둘이나 부하라에서 죽임을 당했는데도 역시나 영국은 가만히 있었다. 카불 대참사 직후여서 도저히 군대를 부하라까지 움직일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아프간까지 가서 그 수모를 당했는데, 아프간보다 더 먼 부하라까지 가라고? 갈 사람도 없었을 것이고, 그 당시 영국 국내 여론도 안 좋아서 쉽사리 그런 결정을 내리긴 어려웠다. 그렇게 그레이트 게임의 두 선수가 사망하고 게임의 전반전은 막을 내렸다.
이 다음부터는 영국과 러시아가 약간의 소강 상태를 맞이한다. 특히 영국은 아프간에서 당한 충격이 너무 커서 그걸 수습하는 것만 해도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인도 내부 문제도 심각했다. 1857년 세포이 항쟁이 벌어지고 영국은 동인도 회사를 통한 인도 간접 지배 방식을 버리고 직접 통치로 전환한다.
그리고 이제 그레이트 게임의 후반부로 접어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