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뒤따라온 의혹들>이라는 책을 읽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사랑에...>는 백혈병 진단을 받은 자녀를 둔 부모가 쓴 책이다.(진짜 좋고 의미있는 책이다!) 거기에 바로 이 책 <암 : 만병의 황제의 역사>가 여러 번 인용되었길래 도대체 암이라는 병이 뭐길래 사람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는지 궁금해져서 찾아보게 되었다.(부끄럽게도, 백혈병이 암의 일종이라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다. 그 정도로 나는 암이라는 병에 대해 무지했다.)
이 책은 암과 관련된 방대한 분야를 다룬다. 암이라는 병 자체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암 치료법의 역사, 미국 정부로부터 암 관련 예산을 따냈을 당시의 일화들, 암의 원인과 예방, 암 환자들이 겪는 고통 등 다양한 주제를 망라하고 있다. 책이 워낙 두꺼운 데다가 암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 어떤 부분은 조금 스킵하면서 지나가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재밌고 잘 쓴 책이라고 생각한다. 의사인데 이 정도의 책을 써낼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이 저자가 쓴 다른 책들도 읽고 싶어져서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항암제를 발견하고 그걸 환자들에게 적용해가는 여정이었다. 그걸 이해하려면 다시 백혈병 이야기로 돌아가야 한다. 미성숙한 백혈구가 엄청나게 많이 증가해 문제를 일으키면 백혈병이다. 통제할 수 없는 비정상적 세포 증식이라는 암의 특성이 백혈구에 나타난 것이다.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ALL)은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서 주로 발병하는데 과거에는 치료할 방법이 없어 대부분 사망했다고 한다.
백혈병을 치료하기가 어려웠던 이유는 액체 형태의 암이기 때문이다. 1890-1900년대, 종양을 잘라내거나(=절제술) 종양을 태워버리는(=방사선 치료) 시술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백혈병처럼 혈액에 생기는 암은 잘라낼 수도 태워버릴 수도 없었다. '백혈병은 그것에 처방할 약물이 아예 없는 내과의사들과 혈액을 수술할 수는 없는 외과의사들이 포기한, 고아나 다름없는 질병'이었으며 '질병들의 국경선상에 사는, 분야와 분과 사이에서 숨어 지내는 추방자'였다. 형태가 없는 암은 수술이나 방사선으로 치료하기가 어려웠다. 그렇다면 약물로 치료할 수는 없을까?
1928년, 영국 의사 루시 윌스는 인도 방직 공장 노동자들 중 출산한 여성들이 심각한 빈혈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빵에 발라먹는 효모 식품인 '마마이트'를 먹이면 그러한 빈혈 증상이 완화되었다. 정확히 '마마이트' 속 어떤 성분이 그러한 효과를 가져오는지는 나중에 밝혀졌다. 혈액 생성에 필수적인 성분 중 하나인 엽산이었다. 1940년대, 어린이 병원에서 일하는 시드니 파버라는 이름의 의사는 바로 이 엽산에 주목했다. 피 생성, 혈액, 골수, 엽산...이런 것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면 백혈병에 걸린 아이들에게도 엽산을 먹여보면 어떨까? 결과는 대실패였다. 엽산을 투여한 환자들 몸에서 백혈구 수가 두 배로 증가했다. 엽산은 백혈병 세포를 촉진시키는 것이 분명했다.
요즘 같았으면 백혈병 환자들에게 엽산을 투여해서 백혈구 수가 두 배로 증가한 시점에서 시드니 파버는 병원에서 쫒겨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940년대였고, 백혈병은 어차피 치료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위험한 실험은 유야무야 넘어갔다. 그 당시에는 새로운 약물을 임상시험할 때 환자 측의 동의를 받는 일이 흔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나가서 다행인, 무서운 시절이었다. 시드니 파버는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엽산이 아이의 백혈병 세포 생산을 가속시켰다면 반대되는 다른 물질, 즉 항엽산제를 투여하면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즈음 다른 과학자가 엽산의 길항제(=대항제)를 발견했다. 시드니 파버는 테로일아스파르트산(PAA)이라고 불리는 항엽산제를 받아 백혈병에 걸린 아이에게 투여했으나 기대할 만한 반응은 없었다. 그러던 중 '아미노프테린(=메토트렉세이트)'이라는 새로운 항엽산제가 파버에게 도착했다. 그걸 백혈병 환자에게 투여했는데 놀랍게도 백혈구 숫자가 거의 정상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 사건은 화학물질로 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걸 밝혀낸 최초의 사례였다.
이러한 발견은 백혈병 환자들에게만 의미 있는 소식이 아니었다. 다른 분야의 암을 치료하는 의사들 역시 새로운 치료법이 절실하던 때였다. 암에 대해서는 절제술도 방사선 치료도 모두 한계가 분명했다. 두 치료법은 국소 종양에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이미 전이된 암에는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게다가 방사선 치료는 방사선 자체가 암을 유발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 더 공격적으로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암은 전신 질병이고, '전신 질병에는 전신 치료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널리 퍼졌다. 화학요법의 등장은 또 하나의 구세주였다.
항엽산제가 항암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진 후로도 여러 가지 항암제들이 등장했다. 그 발견 과정이 다소 충격적이다. 전쟁 때 화학 무기로 쓰였던 머스타드 가스가 항암제로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머스타드 가스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심각한 피부 손상을 겪으며 사망했다. 이 사람들의 골수를 검사해보니 대개 혈액에서 백혈구가 사라지고 골수가 말라붙은 상태였다. 의사들은, 멀쩡한 사람의 골수를 말라붙게 하는 독약이 비정상적인 백혈구 증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는 치료약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의사들은 머스타드 가스를 환자에게 실험했다. 다른 신체 기관의 손상을 막기 위해 반드시 정맥을 통해 조심스럽게 주사해야 했다. 림프종을 앓고 있던 남성에게 머스타드 가스를 투여했더니 증상이 완화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곳에서 6-MP라고 불리는 독성 강한 물질이 백혈병 환자들의 증상을 완화해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리고 또 다른 독극물이자 항암제인 빈크리스틴이 추가로 발견되었다. 항암제는 그야말로 약보다는 독에 좀더 가까운 화학 물질이다. 사람을 거의 죽기 직전까지 만들지 않고서는 암 세포를 없애기가 어렵다. 암 세포는 그 정도로 강한 힘을 갖고 있다.
이 정도 독한 약물로 치료를 했는데도 환자들의 암은 계속해서 재발했다. 이제 남은 방법은 여태까지 항암제로 밝혀진 약물들을 섞는 것뿐이었다. 메토트렉세이트, 프레드니손, 6-MP, 빈크리스틴 등을 적절한 용량과 적절한 순서로 섞어서 환자들에게 투여했다. 투여 약물의 머릿글자를 따서 VAMP, MOPP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하지만 초기 칵테일 요법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치료된 듯 보였으나 곧 재발했다.
혹시 투여한 약물의 용량이 너무 적었던 건 아닐까? 투여 기간이 너무 짧았던 건 아닐까? 도널드 핑컬이라는 종양학자는 '전면전'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메토트렉세이트를 척추에 투여하면서 뇌에는 고선량의 엑스선을 쏘고, 그 후에도 고용량의 약물을 환자가 견딜 수 있는 최대치로 오랜 시간 투여해보면 어떨까. 그 결과는 뜻밖에도 좋았다. 이 과정을 모두 견뎌낸 환자들의 재발률이 낮아졌다.
여러 가지 약물을 섞어서 투여하고, 암이 없어진 것 같아보여도 좀더 확실하게 치료하는 것이 항암의 표준으로 서서히 자리 잡은 듯 보인다. 이러한 치료법이 마련되기까지 너무나 많은 우여곡절과 희생이 있었다. 암을 정복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굴복하지는 않으려는 의사들의 이야기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이러한 과정들이 매우 드라마틱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현재 암이라는 병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하더라도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만약 주변에 암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면, 매우 묵직하게 다가올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