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엄마가 수술하러 병원에 갔을 때 나 혼자 분리수거를 한 적이 있다. 부모님댁의 묵은 짐을 정리하는 중이라 분리수거 하는 날마다 버릴 게 산더미처럼 나온다. 그날도 엄청나게 많은 짐을 들고 나가야 했는데 우리집 강아지가 혼자 못 있겠다면서 잽싸게 나를 따라나왔다. 기본적으로 혼자 있는 걸 싫어하는 성향이기는 하지만 엄마가 있을 때는 분리수거하러 나갔다 오는 시간 정도는 혼자 있었다. 하지만 주보호자인 엄마가 없으니 분리불안 성향이 심해지면서 잠시도 혼자 있지 못하는 강아지가 되어버린 것ㅠㅠ
그날따라 눈이 많이 와서 강아지를 유모차에 태웠다. 유모차 안에 분리수거 바구니 하나 넣고, 그 위에 하나 쌓고, 손으로는 유모차 밀고 발로는 박스 하나 밀면서 분리수거장까지 다녀왔다. 솔직히 너무 힘들었다ㅋㅋㅋ. 혼자서 짐정리 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분리불안 성향 강아지 돌보면서 눈 오는 날 분리수거까지 하려니까 돌아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다ㅠㅠㅠ그럼 뭐하나. 나 아니면 할 사람이 없는데. 혼자서 낑낑 대면서 분리수거를 마쳤다.
그리고 오늘, 다시 돌아온 분리수거 날. 오전 햇빛이 너무 좋아서 분리수거는 오후에 하기로 하고 엄마랑 나는 각각 산책을 나섰다. 엄마는 강아지를 데리고 나갔고, 나는 혼자 나갔다. 아파트 단지를 걸어가다가 엄마보다도 나이가 많아보이는 어르신이 한 손에 분리수거용 바구니 두 개를 들고 또 한 손으로는 종이가 가득 든 박스를 질질 끌고 가는 게 보였다. 얼른 달려가서 박스 하나를 들어드렸다. 혼자서 낑낑 거리면서 분리수거 하는 괴로움을 알기에 나도 모르게 몸이 그렇게 움직였다. 지난주에는 혼자서 너무 힘들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었으니 이런 것도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좋아하는 문장이 있다. <헬로, 뷰티풀>에 나오는 문장인데 힘들 때마다,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이 문장이 떠오른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5/0130/pimg_7692901334587056.png)
설 연휴는 조용히 보내고 있다. 물론 여전히 짐 정리를 하면서. 엄마는 오늘 말씀하셨다. "그동안 그렇게 많이 버렸는데 아직도 정리할 게 남아있어?" 예, 그러게나 말입니다. 수납의 힘은 생각보다 막강하다. 아주 많은 짐이라도 요리조리 잘 쌓아놓으면 좁은 공간에 배치해놓을 수 있다. 그래서 수납을 잘한다는 건 양날의 검이다. 많은 짐을 효율적으로 보관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쓸모없는 짐을 잘 숨겨두는 능력이 되기도 한다. 곤도 마리에가 설파한 정리의 기술 첫 번째는 정리할 물건을 모두 꺼내서 펼쳐놓으라는 거다. 안 쓰는 물건을 상자에 넣어두고 베란다에 차곡차곡 쌓아두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그걸 꺼내서 전부 펼쳐보면 어마어마한 양이 된다. 거기에 충격을 받아야 비로소 정리가 시작되는 거다. 그 작업이 아직도 진행 중이다ㅠㅠ도대체 언제 끝나...
최근에는 그릭 요거트에 빠져 있다. 그릭 요거트를 사먹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일반 플레인 요거트를 사서 그릭 요거트 메이커에 넣어서 만들어 먹고 있다. 1차 유청분리, 2차 유청분리를 거치면 크림치즈처럼 꾸덕한 그릭 요거트를 만들 수 있다. 나는 뭐든지 꾸덕하고 되직한 걸 좋아하기 때문에 꾸덕한 그릭 요거트 완전 내 취향이다. 엄마는 너무 되직한 걸 좋아하지 않아서 요거트에 두유를 첨가해서 드시고 있다. 무가당 플레인 요거트는 새콤한 맛이 너무 강해서 먹기가 힘들었는데 유청 빼고 꾸덕하게 만드니까 신기하게도 새콤한 맛이 싹 빠지고 딱 먹기 좋은 상태가 된다. 빵에 발라 먹어도 맛있고 과일이랑 먹어도 맛있다.
오늘도 쿠팡프레시로 1.8리터 짜리 플레인 요거트 두 병을 주문했다. 그릭 요거트 만드는 데에 최소 30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에 미리미리 주문해서 만들어놔야 한다. 1.8리터로 만들어도 유청 다 빼고 나면 얼마 안 남는다. 둘이서 사나흘이면 싹 먹어치울 양이다. 매일 아침 먹으려면 쉬지 않고 공장처럼 그릭 요거트를 만들어내야 한다ㅋㅋㅋ. 요즘 그릭 요거트 만들어 먹는 게 나의 낙이다.
어제부터 중앙아시아 지도 그리는 법을 연습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관련된 책들을 계속해서 읽고 있는데 머릿속에 지도가 쫙 펼쳐지지 않으니까 읽다가도 턱턱 막힌다. 그래서 중앙아시아 나라 위치랑 주요 도시 위치 정도는 머리 속에 입력해놓으려고 한다. 어제부터 일기장에 그려가면서 연습하는 중인데 은근히 쉽지 않다. 예쁘게 그릴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연습해야지. 그리고 언젠가는 우즈베키스탄에 꼭 가보고 싶다. 부하라, 사마르칸트가 전부 우즈베키스탄에 있다니...!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이제 진짜 음력으로도 찐 2025년이다. 작년 한 해는 삼재가 꼈나 싶을 정도로 너무 힘들었는데(진짜 삼재일까봐 무서워서 알아보지 않았음) 올한해는 어떻게 지나갈지 벌써부터 흥미진진하다. 그래봤자 모든 일은 다 지나가게 마련이다.
힘들고 기분 나쁜 일은 흘려보내고 나를 즐겁게 해주는 기억들만 꽉 붙들어야겠다. 우울한 일들은 일부러 일기장에 적지 않고 잊어버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애써서 즐거운 일만 적는 중이다. 태어나길 워낙 시니컬하게 태어나서 즐거운 일만 골라내는 게 쉽지는 않지만 어쨌든 노력하는 중이다. 노력한다면 점점 더 나아지겠지. 되면 되고, 아님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