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9.11 테러 사태가 일어났을 때 많은 사람은 이제 현실이 영화를 압도하는 공포를 가져오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최근 우리를 놀라게 했던 세기의 사건은 영화에서나 일어남직한 상상을 압도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었다. 현실의 사건이 영화적 상상력을 압도하는 요즈음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은 그녀의 [태양은 가득히]처럼 영화화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요즘의 현실처럼 스펙타클하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이스미스의 소설은 독자에게 여전히 재미와 공포를 전해주고 있다. 하이스미스의 단편집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는 언제든지 일상의 사건 에서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도 가해자이거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드러내어 독자를 긴장시키고 있다. 만약 당신의 집에서 시신의 일부를 발견한다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 '고양이가 물어 온 것'에서 그려지고 있다.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에서는 한 인간의 존재를 손쉽게 파괴할 수 있는 패거리 문화의 공포를 그리고 있다. '바구니 짜기의 공포'를 통해 작은 소품을 통해 실존적 고민을 하는 캐릭터의 재미를 보여주었다. 그 외 모든 단편이 독자들이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상황을 통해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서 소설의 설정에 휘말리게 한다. 악령과 사탄이 나오지 않지만 그 서늘함의 수준은 결코 그에 못지 않다. 내 안에 있을 수 있는 악령과 사탄의 존재에 선뜻 놀라서 일지도 모른다.
이 지독히 현실적인 소설은 결말에서도 지독히 현실적이다. 대중 문화의 상업적인 해피 엔딩에 익숙한 우리에게 하이스미스의 냉철한 결말은 오히려 새로운 충격일 정도이다. 사실 삶이란 이렇게 차디찬 얼음처럼 얼굴에 부딫치는데 우리는 모래에 고개를 처박은 타조처럼 소설과 영화의 달콤한 해피엔딩에 습관적으로 중독되어 있다는 각성을 하게한다. 재미있고 서늘하다. 한 겨울 얼음 물에 세수를 한듯한 오싹함이 한 번 잡은 책장을 놓지 못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