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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지나 벌써 봄이 된 용PD의 서재
  • 영원한 제국
  • 이인화
  • 14,220원 (10%790)
  • 2006-09-15
  • : 1,659

대학을 졸업한 직후에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을 읽게 되었다. 우리 역사를 소재로 실체와 허구를 넘나드는 작가의 재주에 탄복하며 하룻밤 새 이 소설의 막바지까지 내리 읽어갔었다. 어찌된 이유인지 소설의 결말을 앞두고 나는 책을 내려놓았고 그 후 십 수 년이 지나도록 [영원한 제국]은 내게 미처 다 읽지 못한 소설로 남아있었다. 그토록 재미있어 하면서도 왜 나는 이 소설의 결말을 보지 못하였을까? 내 스스로는 너무 재미있기에 독서를 끝내기가 아쉬웠다고 되뇌었지만 그것은 정확한 이유가 아니었다. 그때가 93년이니 이제 십삼 년이 지난 뒤에 나는 다시 집구석에서 햇볕에 바랜 [영원한 제국]을 다시 꺼내 들었다. 


여러 가지 숙제로 머리가 번잡한 시기였다. 과거의 그날처럼 [영원한 제국]의 이인몽은 다시 날 정조 24년의 어느 날로 귀환시켰다. 이제 대학교수가 된 이인화는 이 소설로 인해 한국 소설의 구원자로 비쳤다. 지식이 없고 관념만 난무한 책받침의 시화같은 한국 소설에 진저리쳤다.  [영원한 제국]을 읽고 우리에게도 이처럼 뼈대가 굳고 근육이 단단한 문학이 있음을 감사하게 했다.  [영원한 제국]은 한국 문학의 신세계로 보였다. 그러한 감동은 지금도 여전하다. 


왕권과 신권(臣權)의 대립 속에서 왕권의 회복을 통해 나라의 부흥을 꿈꾸는 이인몽의 꿈, 그와 맞서 기득권을 지키려는 노론 심환지의 갈등구조는 여전히 독자를 흥분시킨다. 고루하게 '황공하옵니다. 마마'만 외치는 줄 알았던 조선 조정의 희미했던 이미지는 검은 뿔테 안경을 코에 걸쳐 쓴 정조대왕의 모습으로 색채와 음영이 생겼다. 조선중기의 정치 철학과 사회상에 대해 그 어느 역사책보다 [영원한 제국]은 더 깊은 이해를 주었다. 영원한 제국의 생동력은 10여년이 지나 21세기가 된 오늘에도 왕성하다. 여전히 독자를 흥분시키고 각성시켜주었다. 어쩌면 죽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헌사인 이인화의 [인간의 길]은 이 [영원한 제국]에서 씨를 뿌렸을지 모른다. 저자는 현군(賢君)의한 절대정치가 근대화로 가는 역사적 절차임을 주장했다. 그렇기에 저자는 정조대왕의 20세기판 현신을 박정희 대통령으로 간주했을 것이라 추론하는 것도 가능하다. 실지로 [영원한 제국]의 구판(舊版)본 266쪽에 저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홍재(정조 대왕)유신에 실패함으로써 우리 민족사는 160년이나 후퇴했다. 우리의 불행은 정조의 홍재 유신 대신, 박정희의 10월 유신을 경험해야 했다는 사실이다. 그야말로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받은 것으로, 현명한 왕법이 지배하는 절대왕정 대신, 조야하고 참혹한 개발 독재를 겪은 것이다."


저자의 이러한 생각은 [인간의 길]을 집필하면서 변화를 겪었을 것이다. 2006년에 개정판을 내면서 이 부분이 글 속에서 어떤 변화를 겪었을지 궁금하다. 그런데, 왜 나는 90년대의 어느 밤 [영원한 제국]을 중도에 읽지 않았을까?


아마 나는 소설의 비극적인 결말을 예상해서였을 것이다. 이인몽의 선택과 행동에 그만큼 공감했기에 그의 품은 청운의 꿈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꼴을 차마 바라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 구재겸이란 별기군이 이인몽의 집에 난입하면서 주인공이 의지와 행동에 주체성을 잃었기에 흥미를 없어진 면도 있다. 즉 노론의 계략에 흔들리며 무력해진 주인공의 행보가 이 소설의 플롯 마지막 부분에 박력을 잃게 했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출간 당시에 [장미의 이름]을 비롯한 외서를 모방했다는 구설수가 있었지만 이는 꼬투리를 잡기 위한 시비이다. 오히려 [영원한 제국]은 그 후에 등장한 역사 소설의 귀감이 되었다. 이정명의 [뿌리 깊은 나무]는 '제국'의 그림자 없이는 결코 등장할 수 없었던 소설이라 생각한다. [영원한 제국]은 이처럼 시효로서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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