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은 클리세로 가득판 영화이다. 액션이라기 보다는 남성의 환타지가 투영된 인물이 007이란 스파이다. 본드걸은 그 007의 환타지에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이다. 오현종이란 소설가가 이러한 007의 환타지에 딴지를 걸었다.
매번 본드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던 007과 본드걸은 그 뜨겁던 정사 후에 어떤 관계가 되었을까? 다음 시리즈로 넘어가면 당연히 교체되는 본드걸의 운명을 거부한 미미하는 한국 여인이 있다면... 때마침 007도 토종 한국인이라면 우리는 이제 어떤 내러티브를 만날 수 있을까?
오현종은 이런 독특한 발상으로 독자의 흥미를 돋운다. 사실 그리 대단한 발상도 아니다. 창작의 샘이 메마른 헐리웃의 프로듀서들이 후편(sequel)을 만들어내는 것도 모자라 전편(prequel)을 만들어낸 것이 최근의 일이다. 오현종의 발상이 특이한 점은 후편과 전편 사이인 중편(midquel)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시리즈와 시리즈 사이에, 임무와 임무 사이에 007의 사생활은 어떠했을까'하는 작가의 발상이 미미라는 본드걸은 만들어냈다.그녀의 발상에 마음이 동한 독자는 작가에게 후한 점수를 쳐주시라. 아마 그러한 작가의 발상 덕분에 우리는 이 책을 펴들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마케팅의 소임은 다한 것이고 우리는 작가의 문학적 성취를 평가할 차례다.
책장을 덮고 난 소감은 풍자라고 하기엔 그 수준이 낮고 스파이물이라고 하기엔 치밀하지 못하며 페미니즘류라고 불리기엔 너무 진부한 소설이다. 발상은 기발하되 문학적인 성취가 별로다. 어떤 이들이 문학적인 성취가 무엇이냐고 질문할텐데 글쎄 그 질문은 평론가들에게 해주길 바란다. 나는 정통으로 문학을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학에 심취한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문학이라는 한 예술에 내가 슬며시 딴지를 걸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문학은 문학대로 영화나 다른 비디오 매체와 달리 존재할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미미의 모험]을 읽고 난 소감은 이 소설은 구태여 책으로 읽지 않고 얼마 있으면 영화화될 순서를 기다리는 것이 나으리란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이미 한 영화사에서 판권을 구입했다고 하니...)
아마도 영화는 그 런닝타임인 100분을 알차게 메우기 위해 작가의 여백이 많은 텍스트를 채워 넣는 작업을 할 것이다. 그 어느 영화화된 문학처럼..아무리해도 이 소설은 영화가 작가의 텍스트를 충실히 구현하지 못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나는 소설가가 키치적인 접근을 했다고 해서 그만으로 칭찬받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키치라는 접근이 상업화된 자본주의 마케팅의 소산이 아니라고 누가 자신있게 나설 것인가? 반대로 통속 소설이라해서 함부로 도매금으로 넘기는 것도 옳지 않다고 본다. 스티븐 킹이나 이선미의 대중 소설이나 분명 어느 정도의 문학적 성취도 있다고 생각한다.
[본드걸 미미양의 모험]이 허탈한 것은 속이 너무 뻔히 보이고 그 만큼 실속이 없기 때문이다. 문학이면 문학답게, 스파이류면 스파이물 답게, 페미니즘이면 페미니즘 답게 전력을 다해 달려달란 말이다. 어영부영 포장해서 서점에 내놓은 상품이라면 우리는 이미 질리도록 많이 가지고 있지 않은가. 도대체 정체가 뭐냔 말이다.
발상은 훌륭했다. 하지만 더이상 007에 딴지를 걸지말고 미미에게 시비를 걸어본다. 007를 굴레를 벗어난 다음 미미가 문학적으로 이루어낸 성과가 무엇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