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가 자신을 너무나 좋아해주는 돈 많고 능력있는 게다가 젊은 남자와 결혼하게 되었다. 신데렐라같은 동화 주인공의 삶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영화나 소설이 여기에서 이야기를 끝 맺겠지만 [아주 사적인 시간]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가 시작이다.
부와 명예를 손에 거머쥐고도 주인공이 그것을 박차고 나선다면 세속적인 우리는 그녀의 선택을 '손에 굴러온 복을 걷어차버린' 격이라고 비아냥거릴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어 나가면 그런 주인공의 선택에 공감하게 된다. 삶 속에서 자신이 가진 욕구를 솔직히 들여다보면 현재의 모습이 약간 포커스가 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그 포커스를 맞추려고 계기를 조정할 수도 있고, 다른 이들은 포커스가 맞지 않았어도 참고 살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여기서 포커스의 중요성을 말한다. 타인의 보는 시선 속에 내 삶이 아무리 훌륭할지라도 스스로의 삶을 들여다보는 뷰 파인더 속에 초점이 나가 있다면 영상으로서 나의 삶은 엉망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연인으로서 부부로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가 표현한 것처럼 둘이 한 곳을 바라보는 것이 사랑이라는 말로 정의할 수 있겠다. 한 사람의 감정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두사람의 감정이 공명한다면 둘은 한 곳을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처럼 철없는 한 여자의 이혼기가 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사랑과 삶에 대한 솔직한 성찰로 바꿔 놓았다. 겉보기에 아무리 화려한 삶일 지라도 '이 삶은 아니야'하고 박차고 나온 노리코의 선택은 그녀의 '이주 사적인 시간'을 되찾기위한 몸부림이었다.
연인으로서 부부로서 하나가 된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전히 상대의 '사적인 시간'을 인정해주는 것 아닐까. 용광로처럼 각자의 삶이 용해된다는 것보다 상대의 삶을 인정하고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 진정한 합체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삶의 격랑에 휩쓸려 '사적인 시간'을 뺏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인정해 주는 것' 그것이 진짜 사랑의 시작이란 생각이 든다. 아마 주인공 노리꼬가 남편 '고'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이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