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불쾌함
박용준
“청춘―청춘은 불쾌하다. 그때는 어떤 의미에서 보아도 생산적이라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539절
청춘(靑春)이라는 시간은 분명,
‘푸른 봄(푸를 청, 봄 춘)’이라는 본래의 뜻이 무색하게
어둡고 쓸쓸하여 불쾌하다.
어느 것도 정해진 것 없이 떠도는 이 헛된 젊음은
불안하고 두렵고 가난하기 때문이다.
청춘을 미화하는 많은 수식어들은 그래서
비릿하기 짝이 없다.
그 어느 것 하나 내 청춘의 은밀한 열정을
위로해주지 않으니,
푸른 봄(靑春)의 하늘은 되려 무정하리만치
차갑고 앙상하기만 하다.
사랑은 늘 실패하고, 희망은 여전히 묘연하다.
그래서 청춘의 봄은 곧 밤이다.
“10 밤의 여행자들
당신은 사는 게 힘겨워져 밤마다 어디론가 떠나는 꿈을 꾸었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그 밤을 따라서 한없이 달려가다 보면 누군가를 혹은 당신이 알지 못했던
그 무엇인가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신이 어디론가 달려가는
동안에도 천사들은 쉽게 나타나지 않고, 당신은 수없이 촛불을 꺼트려야 했다.
촛불이 꺼진 캄캄한 어둠 속에서 당신은 오로지 믿을 수 있는 자신의 몸을 더듬어
길을 내고, 새롭게 이 세계의 지도를 그려야 했다.
그럴 때마다 당신은 당신이 숨 쉬는 매 순간의 공기들이 너무 답답해 어디론가
떠나려고 했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허공에다 당신은 매일 간절한 키스를 한다. 그 입맞춤이 대지의 가슴에 닿아
그곳에서 아름다운 나무들이 태어나기를, 그 나무 아래서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 함께 머물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어느 날 당신은 창밖에 환하게 핀 앵두꽃을 보고 밤이 어디론가 사라진 줄 알았다.
당신은 그 꽃을 보면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에 눈물을 흘렸다.
눈물이 때로는 음악이 된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다.
그래서 당신은 매일 밤마다 촛불을 켜 들고 어디론가 여행을 떠난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 박정대, 「열두 개의 촛불과 하나의 달 이야기-10 밤의 여행자들」,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중에서
힘겹게 버티듯 걸어가는 청춘의 밤길 끝에는
과연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기다리고 있는 그 무엇이 있기는 할까.
간절한 키스는 늘 허공을 향할 뿐이고,
뜨거운 눈물은 새싹하나 꽃피우지 못하고,
대지에 흩어진다.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 머물 수 있기를 기도하는 촛불이
홀연한 연기만을 남긴 채 꺼지고 마는 청춘의 어두운 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팔매질하는 어리석은 나의 청춘은 매일 밤마다 촛불을 켜 들고 어디론가 떠나는 꿈을 꾼다.
그 밤길 속의 나의 한걸음 한걸음이
세계의 지도를 새롭게 그리는 것인지,
제자리를 맴맴 도는 것 것에 불과한지는,
도무지 모를 일이다.
“청춘은 독보적이어야 하고 혼자만의 길을 열심히 도도하고 고고하고 당당하게 걸어가라. 판에 박힌 듯 한 삶에 얽매이지 말고 약동하는 젊음을 불태워라, 청춘들아.”
- 김열규, 『그대 청춘』 중에서
도도하고 고고하고 당당하게 걸어가라는 한 작가의 주문은
청춘의 영혼에 별 위로가 되지 않는 말이다.
약동하는 젊음을 불태우려는 나의 사명이
불꽃처럼 산화한들 또 무엇이 그리 문제가 되겠는가.
그래서 청춘이 빚어내는 강렬함과 밀도의 이 시간이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린들 또 무엇이 그리 문제가 되겠는가.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 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 있는 이 밤”
(김수영, <달나라의 장난> 중에서)
온몸 곳곳이 아픈 밤이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전문
오직 사랑하는 자만이 질투를 드러내는 법이다.
사랑의 희망을 잃은 자는 결코 질투하지 않는다.
내 희망의 내용이 비록 질투뿐임을 발견한다 할지라도,
내가 가진 것이 오직 탄식밖에 없음을 알아차린다 할지라도,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나의 청춘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맨다.
이 방황이 절대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청춘이라는 이름뿐이나,
허영과 교만으로 가득 찬 내 청춘의 비열함은
언제쯤 세상에 굴복할 수 있을 런지.
그럼에도 나는 우선 여기에 한 줌의 재로 흩어지고말
헛 것의 짧은 글을
청춘의 기록으로 남겨둔다.
껍데기로 점철된 이 헛 것의 글도
오직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용서받을 수 있기를.
행여나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라면,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 없는 책갈피 속에서 떨어지는
그런 종이에 적힌 사소한 글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