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독하는 정독을 위해서는 조용한 개인적 공간이 필요하며, 홀로 그 공간에서 부동자세를 취해야 한다. 인류가 처음부터 책을 읽을 만한 집중력과 오랫동안 부동자세로 있을 수 있는 인내력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닐 터이다. 그래서 높은 집중력과 훈련을 요하는 이런 자세는 역사적으로 발전해온 것이 틀림없다. 또한, 근대인들은 어려서부터 가정과 학교, 도서관과 같은 ‘근대적’ 공간에서 책 읽는 자세를 집단적으로 훈련한다. 부모와 선생이 행하는 이 훈련에 적응하지 못하면, ‘주의산만한’ ‘열등생’이나 ‘지진아’가 된다. -136쪽
대중은 묵독을 위한 신체훈련과 비슷한 훈련을 연극과 영화 보기를 통해서도 새롭게 경험한다. 1890년대와 1900년대 활성화되었던 토론공간을 대체하며 등장한 극장과 영화상영관은 공공의 공간인 동시에 고립된 개인의 공간이다. 이 공간의 문화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각적 체험을 근간으로 했다. 서구적인 근대극장의 관객은 익명의 다른 개인들과 함께 동일한 체험을 공유하되, 객석의 개별 시선들을 하나로 모으는 수렴점으로서의 무대나 스크린을 쳐다보게 된다. 타인과의 대화나 교류는 중단되고, 부동자세로 한 곳만을 집중하여 응시해야 한다. -1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