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욤이

인간들이 이 정도의 지식을 갖지 못했던 시절, 사람들은 누구나 똑같이 그런 무지의 늪에 빠져있다는 사실로 자신을 위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솔랑카는 이 순간에도 어딘가의 누군가는 솔랑카 자신이 영원히 알지 못할 일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더구나 그렇게 이미 알려진 그 일들은 지극히 중요해서 반드시 알아둬야 할 것들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는 바보들이 흔히 느끼는 그 무지근한 노여움, 그 느릿느릿한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마치 수벌이나 일개미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마치 채플린과 프리츠 랑의 오래된 영화에서 비실비실 돌아다니는 수천 명 중의 하나, 높은 곳에 올라앉은 지식이 권력을 휘두르며 군림할 때, 그 밑에서 힘없이 살다가 언젠가는 사회의 톱니바퀴에 휘말려 으스러지고 말 운명을 가진 그 얼굴 없는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105-6쪽
극단적인 육체적 아름다움은 모든 빛을 끌어모아 이 캄캄한 세사을 밝혀주는 찬란한 등대가 된다. 저렇게 자비로운 불꽃을 바라볼 수 있거늘 그 누가 주변의 어둠 속을 들여다보랴? 저렇게 눈부신 광채가 나타났거늘 굳이 말하고 먹고 자고 일할 이유가 또 무엇이랴? 자신의 하찮은 인생이 끝나는 그날까지 그저 그 빛만 바라보고 있어도 좋지 않으랴?-143쪽
그래, 말은 행위가 아니다. 솔랑카는 초조하게 걸음을 옮기며 그렇게 인정했다. 그러나 또한 말은 곧 행위가 될 수도 있다.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장소에서 내뱉은 말은 산을 움직이거나 세상을 바꿔놓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옳거니,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는 것 - 즉 어떤 행동과 그것을 정의하는 말을 분리시키는 것 - 요즘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변명이 되는 듯싶다. ‘진심이 아니었다‘고 말함으로써 자기가 저지른 악행의 의미를 지워버릴 수 있다. -151-2쪽
죽은 세 여자와 그들의 살아 있는 자매들은 일찍이 엘리너가 정의했던 데스데모나의 의미에 딱 들어맞는 존재였다. 그들은 소유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저 바깥에는 흉악한 오셀로가 배회하고 있다. 다만, 이 오셀로의 목적은 자신이 소유할 수 없는 것을 파괴해버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는 그 소유 불가능성 자체가 자신의 명예를 모독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희곡 "오셀로"4ㅢ 이 Y2K판 리바이벌에서 그가 여자들을 죽이는 이유는 그들의 부정 때문이 아니라 무관심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단순히 그런 여자들도 얼마든지 망가뜨릴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그들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인간다움이 없음을 폭로하기 위해서, 그들의 인형다움을 폭로하기 위해서 말이다. 왜냐하면 그 여자들은 - 그렇다! - 인조인간이기 때문이다. 현대판 인형들, 기계화되어 컴퓨터로 움직이는 인형들. -166쪽
글쎄요, 어쩌면 제가 특권증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는 건지도 모르죠.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인지도 모르구요. "강박충동." "로프." 아시겠죠? ‘왜 그런 짓을 하지?‘ ‘우린 할 수 있으니까.‘ 그놈들은 자기가 황제라는 걸 증명하고 싶은 거죠. 자기들이야말로 우월하고 위대한 존재, 거룩한 존재, 말하자면 신과 같은 존재라는 걸 말예요. 법도 자기들은 건드릴 수 없다 이거죠. -3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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