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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Is...
  • 여자 없는 남자들
  • 무라카미 하루키
  • 14,220원 (10%790)
  • 2014-08-28
  • : 20,148

나는 자주 똑같은 꿈을 꿔. 나와 아키가 배에 타고 있어. 기나긴 항해를 하는 커다란 배야. 우리는 단둘이 작은 선실에 있고, 밤늦은 시간이라 둥근 창 밖으로 보름달이 보여. 그런데 그 달은 투명하고 깨끗한 얼음으로 만들어졌어. 아래 절반은 바다에 잠겨 있고. '저건 달처럼 보이지만 실은 얼음으로 되어 있고, 두께는 한 이십 센티미터쯤이야.' 아키가 내게 알려줘. '그래서 아침이 와서 해가 뜨면 녹아버려. 이렇게 바라볼 수 있는 동안 잘 봐두는 게 좋아.' 그런 꿈을 볓 번이나 되풀이해서 꿨어. 무척 아름다운 꿈이야. 언제나 똑같은 달. 두께는 언제나 이십 센티미터. 아래 절반은 바다에 잠겨 있어.      - p.96

 

가을이 찾아오던 어느 날 하루키 책이 곧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헤밍웨이의 단편소설집과 동명의 책이란다.

헤밍웨이의 책은 그간 많이 읽지 않아 그런 제목도 처음 들었다.

 

하루키의 장편도 좋지만 단편이나 에세이가 더 좋을 때가 많았다.

하루키의 소설 중에 여자 없는 남자들이 주인공인 적은 없었는데...

그래서 읽기 전엔 여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는 줄 알았는데...그건 아니다.

여자가 나오긴 하지만 여자를 잃어버렸거나 내 여자는 아니거나...뭐 이런 남자들이 나온다.

 

 

● 드라이브 마이 카

배우가 직업인 가후쿠는 운전기사를 구하게 되는데 여자 운전기사이다.

여자 운전자들에 편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여자는 남다르다.

가후쿠는 배우가 직업인 아내가 있었지만 몇해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줄 알았던 부부관계는 사실 알고보면 아내의 지속적인 외도가 숨겨져 있었다.

아내는 왜 다른 남자들을 만난 것일까?

 

"내가 아닌 것이 되는 게 좋아요?"

"다시 원래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걸 안다면."      - p.32

 

 

● 예스터데이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를 간사이 사투리로 부르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아마도 결혼하기로 되어있던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그 여자친구를 주인공에게 소개시켜준다.

뭔가 둘 사이에는 말로 설명할수 없는 문제가 있다.

결국 그 매혹적인 여자친구와 간사이 사투리를 부르던 친구는 홀로 따로따로 지내게 된다.

 

뭔가...단편 '반딧불이' - 상실의 시대 를 생각나게 하는 단편이었다.

 

 

● 독립기관

수많은 여자들을 한꺼번에 또 따로 만나고 다니는 성형외과 의사인 도카이

진정으로 여자를 사랑한 적은 없다.

그런데 그런 그가 진짜 사랑하는 여자를 만났다.

그런데 그 여자로 인해 서서히 죽어가게 된다.

자기처럼 여러 남자를 만나던 그 여자에게 역으로 당한 것이다.

 

모든 여자는 거짓말을 하기 위한 특별한 독립기관을 태생적으로 갖추고 있다,는 것이 도카이의 개인적인 의견이었다. 어떤 거짓말을 언제 어떻게 하느냐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모든 여자는 어느 시점에 반드시, 그것도 중요한 일로 거짓말을 한다. 중요하지 않은 일로도 물론 거짓말을 하지만 그건 제쳐두고, 아무튼 가장 중요한 대목에서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때 대부분의 여자들은 얼굴빛 하나, 목소리 하나 바뀌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건 그녀가 아니라 그녀 몸의 독립기관이 제멋대로 저지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그녀들의 아름다운 양심이 상처받거나, 그녀들의 평안한 잠이 방해받거나 하는 일은-특수한 예외를 별도로 친다면-일어나지 않는다.     - p.166

 

 

● 셰에라자드

어딘가에 갇혀 지내는 하바라와 그에게 식료품을 정기적으로 가져다주고 같이 잠자리도 하는 여자.

하바라는 그녀를 천일야화의 셰에라자드라고 이름붙였다.

기가막히게 이야기를 잘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고등학교시절 짝사랑 하던 남학생의 집에 몰래 들어가 볼펜이나 티셔츠를 훔치던 시절 이야기를 해준다.

몇 번을 그렇게 몰래 들어갔는데 어느 날 자물쇠가 바뀌어 있었다.

그녀는 그 이후로 그 집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대학교에 가서 우연히 다시 그를 만난다...

아..뭔가 재밌는 얘기가 나올 거 같은데...셰에라자드는 다음에 와서 이야기해 준단다.

그러고는 끝___

 

하루키 아저씨...저도 궁금하다고요....ㅜㅜ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현실에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현실을 무효로 만들어주는 특수한 시간, 그것이 여자들이 제공해주는 것이었다.     - p.214

 

 

● 기노

기노는 아내가 자신의 회사 동료와 바람 피우는 것을 목격하고 회사도 그만두고 집도 나가게 된다.

그러고는 기노라는 작은 바를 운영하게 된다.

그 가게에는 기묘한 사나이와 그리고 생각나면 찾아오는 고양이가 있다.

뭔가 기묘한 이야기잖아...

그런데 이상한 커플이 오기 시작하면서 뭔가 묘하게 달라진다.

어느 날은 커플 중 여자만 와서 기노와 자고 간다. 몸에 담뱃불 화상을 보여주면서...

그러고는 이상한 일이 생긴다...

기묘한 사나이는 기노에게 당분가 떠나 있으라고 한다...

아내에게 상처받지 않은 듯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지만...

사실 기노는 '상처받았다. 그것도 몹시 깊이'

 

기노가 떠나 여행을 하는 모습이...왠지 '양을 쫓는 사나이'를 보는 것 같았다...

 

 

● 사랑하는 잠자

아..이건 읽는 내내 정말 좋았다.

카프카의 '변신'을 모티브로 썼나보다.

변신의 후속이랄까....

 

카프카의 '변신'에서 인간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로 변했다면...

하루키의 '사랑하는 잠자'에서는 벌레 그레고르 잠자가 인간으로 변했나보다...

 

잠에서 깼을때 마치 카프카의 '변신'에서 가족들이 모두 즐기러 나간 그 상태인 듯, 집에는 아무도 없다.

막 식사를 하려다가 나간 것처럼 식탁에 음식도 차려놓고 말이다.

 

이 무슨 꼴사나운 몸뚱이인가. 벌거벗은 자신의 육체를 쭉 훑어보고 보이지 않는 부분은 손으로 더듬어보며 잠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꼴사납기만 한 것이 아니다. 너무도 무방비하다. 미끄럽고 허여멀건 피부(허울뿐인 체모가 덮여 있다), 보호해주는 게 전혀 없는 보들보들한 복부, 믿을 수 없을 만큼 기묘한 모양의 생식기, 두 개씩밖에 없는 길쭉한 팔다리, 퍼렇게 도드라진 허약한 혈관, 금세라도 부러질 듯 불안정하고 가느다란 목, 일그러진 큰 머리통. 그 위를 뒤덮은 잔뜩 헝클어진 긴 머리털, 조개껍데기처럼 좌우로 불쑥 튀어나온 귀. 이런 것이 정말 나인가? 이렇게 불합리한, 그리고 간단히 손상될 듯한 몸뚱이로(방어할 껍데기도, 공격할 무기도 주어져 있지 않다) 과연 이 세계에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까? 왜 물고기가 되지 않았을까. 왜 해바라기가 되지 않았을까. 물고기나 해바라기라면 그나마 좀 말이 된다. 적어도 그레고르 잠자인 것보다는 훨씬 말이 된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 p.280

 

역시 하루키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꼴사나운 몸뚱이라니...흐흐

 

그래서 잠시 내가 벌레나 다른 동물이였다가 갑자기 자고 일어났는데 인간이 되어있다면 무슨 느낌일까를 생각해봤다.

정말...끔찍할거 같다.

태어날때 제일 나약한 동물이 인간이지 않은가...

무엇하나 혼자 해결할 수 없고...당장 도구가 없으면 밥도 못먹는게 인간이다..

겨울이 되면 얼어죽을것이고...

 

아...저 잠자는 얼마나 끔찍했을까...

 

그런 잠자에게 여자가 찾아온다. 열쇠 수리공이다.

곱추처럼 굽은 등에 굼실굼실 움직이는 몸이라니...그런데 그런 여자를 보고 잠자는 흥분을 한다.

여자의 말에 의하면 세계가 무너져가고 있단다...

그 와중에 잠자는 그 여자를 다시 만나고 싶다고 생각한다.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잠자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물었다.

"누군가를 보고 싶다고 계속 생각하면 언젠가는 틀림없이 다시 만날 수 있어요."       - p.309

 

 

 

● 여자 없는 남자들

한밤중 한시가 넘어 걸려온 전화가 나를 깨운다. 한밤중의 전화벨은 언제나 거칠다. 누군가가 흉포한 쇠붙이로 세상을 깨부수려는 것만 같다. 인류의 일원으로서 나는 그것을 막아야 한다.     - p.315

 

갑작스런 전화벨 소리에 주인공은 잠에서 깨어난다.

오래전 만났던 여자의 남편이었다.

남편은 그 여자의 부고 소식을 알려준다.

안본지 오래된 여자의 부고 소식이라...결혼 소식도 못들었는데...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그건 여자 없는 남자들이 아니고는 이해하지 못한다.     - p.327

 

아...나도 여자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여자는 남자가 없어도 억척스럽게 살 수 있을것 같지만...남자들은 좀 다르긴 할 거 같다.

그래서 항상 하는 말 중에 집안에 여자 그러니까 엄마가 바로 서야 집이 잘 돌아간다는 말이 있다.

아빠 없는 집은 어떻게 그럭저럭 굴러가지만, 엄마 없는 집은 모든게 와장창 무너지게 되는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그날은 아주 작은 예고나 힌트도 주지 않은 채, 예감도 징조도 없이, 노크도 헛기침도 생략하고 느닷없이 당신을 찾아온다. 모퉁이 하나를 돌면 자신이 이미 그곳에 있음을 당신은 안다. 하지만 이젠 되돌아갈 수 없다. 일단 모퉁이를 돌면 그것이 당신에게 단 하나의 세계가 되어버린다. 그 세계에서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로 불린다. 한없이 차가운 복수형으로.     - p.327

  

 

 

 

 

여자 없는 남자들이란 제목이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헤밍웨이의 단편집 제목이었다.

 

 

 

 

별책부록으로 준 헤밍웨이의 저 단편집엔 3개가 실려있다.

- 하얀 코끼리 같은 산

- 살인자들

- 이제 내 몸을 뉘며

 

헤밍웨이의 책은 어릴 때 '킬리만자로의 눈'은 정말 감명깊게 읽었었다. 이제와 기억은 잘 안나지만 가본적도 없는 '킬리만자로'가 내 눈 앞에 펼쳐지는 듯 했다.

참, 대단한 작가이다.

그런데 저 단편을 읽다보니...하루키가 헤밍웨이의 영향도 많이 받았나보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루키같은 문체잖아....

엊그제 무진기행 읽을때도 그랬는데...ㅋ

헤밍웨이의 여러 책들을 읽어봐야겠다.

오랫동안 읽고 싶지만 읽고 싶지 않은 애증의 '노인과 바다'부터...

 

 

윤종신이 이 책을 읽고 '여자 없는 남자들'이란 곡을 만들어 불렀는데...

나름 분위기가 좋은 곡이었다.

  

 

책을 읽으며 조금 우울하기도 했었는데...

책 마지막에 나오는 퍼시 페이스의 <A Summer Place - 피서지에서 생긴 일> 를 들으며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하루키의 음악 선곡도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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