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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세의 모드 할머니는 치매다. 가게에 가는 길에 뭘 사러 가는지 잊어버리기 일쑤에, 딸과 손녀의 얼굴을 못 알아볼 때도 있고, 한번은 집안일을 돌보러 와준 간병인을 강도로 경찰에 신고한 적도 있다. 새로운 기억들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흩어지고, 부족한 기억을 메우기 위해 적기 시작한 메모들은 때로는 더 큰 혼란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 와중에 모드 할머니의 기억이 끝없이 붙드는 단어가 있다. 실종. 누군가가 사라졌다. 그리고 할머니는 그 사람을 찾아야만 한다.
치매가 그 어떤 병보다 흔해진 요즘 같은 시대에 어떤 현상으로서의 치매나 특정 대상으로서의 치매 노인을 그린 소설들은 많지만, 엠마 힐리의 '엘리자베스가 사라졌다'는 치매를 앓는 노인의 시점으로 독자를 끌여들여 그들이 보는 세상을 경험하게끔 한다. 밥 먹고 돌아서면 방금 먹었던 걸 잊어버려 자식들이 자기를 굶어 죽인다고 비난한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하지만, 같은 사건을 노인의 입장에서 보게 되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모드 할머니는 정말 배가 고프다. 빵이 든 바구니 위에는 '토스트는 그만'이라는 쪽지가 붙어 있는데, 누가 왜 그걸 적어두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자꾸만 화를 내고 잔소리를 하는 딸이나 간병인들은 할머니를 속상하게 할 뿐이다. 그래서 모드 할머니는 은근슬쩍 토스트 한 장을 집어든다. 요리는 안된다고 아무리 들어도 계란 삶는 정도는 괜찮겠지, 하고 냄비에 불을 얹는다. 혼자 꿋꿋이 외출을 감행하고 친구의 집을 찾아간다. 똑같은 질문을 수십번 반복하고, 이해할 수 없는 위험한 행동을 시도하고, 때로는 주변 사람들을 골탕 먹이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그 모든 일들이 모드 할머니 자신이 되고 보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여기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생생한 공포다. 기억이 없다는 것, 기억하고 싶어도 잊게 된다는 것, 어느 순간 모든 게 낯설어지고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이 소설은 담백한 문체로 치매 노인이 겪는 일상 속 공포를 고백한다.
보통 치매 환자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건 가장 오래된 기억이라고 한다. 모드 할머니의 기억 역시 끝없이 뒤를 돌아본다. 딸과 손녀의 얼굴이 낯설어질수록 십대 소녀 시절의 일들은 생생히 살아나 모드 할머니를 2차 세계대전 직후의 영국으로 이끈다. 옛 추억 속에서 할머니를 현실 세계로 끄집어내어 행동하게 만드는 건 늘 그녀의 정겨운 친구 엘리자베스다. 엘리자베스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전화도 받지 않고 집에 찾아가도 아무도 없는데다 밥도 잘 안 준다는 엘리자베스의 아들 피터는 뭔가를 숨기는 것만 같다. 모드 할머니의 주머니 속 쪽지들에는 한결같이 '엘리자베스가 실종됐다'고 적혀 있다. 엘리자베스가 사라졌다. 그녀를 찾아 구해낼 수 없는 건 모드 뿐이다. 그런데 사라진 사람이 엘리자베스만이 아니다. 아주 오랜 옛 기억, 그 속에는 어느날 사라져버린 수키 언니가 있다.
그렇게 모드 할머니는 불완전한 기억을 붙들고 두 사람의 행적을 쫓는다. 여행가방 하나만을 남기고 사라진 채 끝끝내 돌아오지 않은 수키 언니,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는 엘리자베스. 자신을 돌보러 와주는 딸 헬런에게 모드 할머니는 끝없이 두가지 말만 반복한다. "엘리자베스가 실종됐어"와 "호박은 어디에 심는 게 좋을까?"는 이제 헬런을 미치기 일보 직전으로 만드는 신호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럼에도 모드 할머니는 고집스레 물고 늘어진다. 경찰서를 찾고 신문에 실종신고를 내고 끝없는 위험을 감수하며 엘리자베스의 집을 찾는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닮은 기억 속에서 수키 언니의 자취를 더듬는다.
치매는 고통스러운 병이다. 병을 앓는 당사자에게도 그렇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모드 할머니의 입장이 되어 할머니의 행동을 이해하게 된다 해도 딸 헬런이 할머니를 위해 얼마나 큰 수고를 감수하는지를 부정할 수는 없다. 끝없이 사고를 치는 할머니 때문에 헬런이 화를 내게 되는 것도, 그렇게 화를 내면서도 끝끝내 할머니를 챙기는 것도 어느 순간에는 먹먹하게 다가온다. 모드 할머니는 헬런이 자기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고 비난하지만, 자기 기억에 자신이 없기는 할머니 자신도 마찬가지이다. 이야기의 큰 줄기를 이루는, 실종사건을 쫓는 스릴러적 요소 외에도 작가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치매 노인과 그 가족의 삶에 동반되는 고충을 어루만진다. 모드 할머니와 헬런, 그리고 손녀 케이티의 일상 속 갈등과 화해를 통해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담담히 감싸준다.
병원에 가서 입원한 엘리자베스를 만나고 돌아오던 날, 마침내 헬런은 모드 할머니의 횡설수설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진실을 발견한다.
"그 얘기는 아까 다 했잖아요. 그런데 엘리자베스가 아니죠?"
"엘리자베스는 실종됐어."
이 이름이 아니다. 이름이 틀렸다는 건 알겠는데 원래 이름이 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헬런이 차를 세운다.
"엘리자베스 아줌마네 정원에 누가 묻혀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수키 이모요?"
수키. 바로 그 이름이다. 수키. 수키. 가슴 근육이 조금 편해진다.
"엄마?"
헬런이 심하게 더듬거리며 핸드브레이크를 위로 비틀어 올린다.
마침내 모드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서 비밀의 파편을 찾아낸 헬런이 정원을 파헤쳐 백골을 발견했을 때 어쩐지 소름이 끼쳤다. 생각해 보면 답은 그것 뿐이었는데 400여 페이지에 걸친 이야기를 따라가며 어느새 나도 함께 모드 할머니의 엉킨 기억 속에서 헤매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담벼락에 조약돌을 붙인 집, 호박, 프랭크 형부, 수키 언니, 더글러스, 엘리자베스, 실종, 실종, 실종... 모든 단서는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그 길을 찾는 게 왜 그리도 어려웠는지. 무엇보다도 혼란스러운 기억 속에서 필사적으로 단서들을 붙든 할머니의 마음이, 미리 알았다면 '나도 그 나무 상자에 웅크리고 들어가 70년 동안 언니 곁에 있어줬을'거라고 이야기하는 할머니의 짙은 그리움이 아프도록 생생했다. 70년이 지나도 바래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70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이제 와서 수키 언니를 찾는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을지도 모른다. 언니는 이미 죽었고, 범인 역시 세상을 떠났을지 모를 일이다. 결국 모드와 수키의 부모님은 어떤 진실도 알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리고 모드 할머니의 치매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엘리자베스의 장례식에서도 여전히 모드 할머니는 엘리자베스가 실종되었다고 걱정한다. 그러나 그러면 좀 어떤가. 희미해지는 기억 속에서도 모드 할머니는 진실을 붙들고 살아갈 것이다. 헬런과 케이티와 때로는 투닥대고 때로는 서로를 부둥켜 안고 울고 웃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