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木筆















































신유물론의 흐름 가운데 하나. 그리고 잘 응시하지 않는 작가 이리가레. 들뢰즈를 제대로 읽어내지 않고서는 진도를 잘 나갈 수 없다. 설령 이해하였다고는 하나, 제 몸의 사유 또한 열려있지 않으면 그 또한 헤쳐나갈 길이 쉽지 않다. 그러니 어쨌든 양자역학처럼 몸과 마음으로 접목시켜 이해해내기는 요원한 일이기도 하다. 남성작가의 신유물론자들이 길을 잃고 헤매는 이유들 가운데 하나도 그 존재가 갖는 다수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생각한다는 것은 무얼까? 사유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뭔가 알고싶다는 것 더 느끼고 싶은 것, 말로 표현을 할 수 없지만 뭔가 있다는 것. 이렇게 욕구는 알 수 없는 것과 언어 밖의 것으로부터 번진다. 


그제 서재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서문을 읽다. 간결하면서도 쉽다 싶다. 그 간 들뢰즈를 관통하려고 애쓴 보람인가 아니면 이리가레를 알아주지도 언급도 하지 않는 책들을 많이 만나서이기도 한가. 어쨌든 반가움이 봇물처럼 솟아오르는 듯싶었다. 어제도  이른 밥을 해먹고 이겨먹을 듯이 책을 본다. 반갑고 반갑네. 왜 미처 봐주질 않았을까. 하고싶던 이야기들과 간추리고 싶던 요지들이 하나씩 쌓인다 싶다.


위치를 정확히 두고 전후좌우위아래를 살피는 일이 먼저다. 왜 그것을 놓치고 있었던가. 흥미로운 내일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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