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심당 본점에서 이삼백미터 떨어진 지점에 성심당문화원이 있다. 1층은 굿즈상품을 3층부터 5층까지는 전시실로 운영되어 온 곳이다. 정작 많은 이들은 여기를 잘모르고 잘 돌아보지 못한다.
총괄지휘자의 안내를 받으며 찬찬히 관람한다.
높은 조도의 조명이 환등기의 필름처럼 선명하게 글자를 비춘다. 밀가루 포대, 성당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퍼지듯, 슬라브에 코어를 뚫고 매달려있다. 타이포그라피와 실물의 배치는 거대한 반죽기, 팥빙수기로 3층 전시실을 관통하고 있다. 유리공예, 스테인글라스느낌이 나는 최고층의 기도실까지 드러나지 않으면서 스며들게 하고 있다.
기업 70년사. 경영주의 독차지 같은 기업 발간물을 많이 보아온 터라 자칫 과잉으로 흐르지 않을까 싶은데, 우려였나보다. 사업주로서 로망같은 것들이 있다. 생각들을 모으다보니 <자본주의와 자발적 예속>이란 책에 나오는 "공동결사기업" 모델이 안성맞춤이다 싶다. 협동조합도 아니고 기업에 방점이 따로 찍혀있는 것이 아니라 원가비용공개를 일주일마다 신문형식으로 나오는 성심당의 제도화에는 혀가 내두를 정도이다. 기본 문화로 정착된 것이다. 사랑의 성심당은 인사고과의 40%를 또 다른 사회화를 염두에 두고 운영하고 있는 것 같다.
1113인의 소망과 바램이 적힌 일터는 이미 3-4천명의 가족과 함께 삶은 꾸려가는 터전인 듯싶다. 많이 받으면 좋겠지만 정녕 그러한 것이 노동자의 심리는 아닌 것 같다. 일들을 겹쳐 쪼개고 더 작은 근무시간, 더 많이 활용할 수 있는 자신의 시간들을 부릴 수 있다면 말이다. 발라낸 노동이 아니라 삶에 함침된 노동은 수많은 것들을 구제할 수 있다. 열정과 에너지. 고무된 희망들. 그 곳이 일터라니, 설레지 않을 수 없다.
뒤풀이에서 그런 농담같은 이야기를 한다. 김영훈노동부장관이나 이재명대통령, 청와대관계자들이 꼭 전시를 보고 가면 좋겠다고 한다. 자본주의가 구조적으로 안고 있는 근골격계 질환을 피해갈 수 있는 4조 2교대가 아니라 6조 2교대의 현실도 가능하리라는 자극을 안고 갈 수 있다고 단언해본다. 여기서 또 다른 길과 답을 찾아보시라고 권한다.